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2화 (32/59)

3장 지분을 정리하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넷플러스 본사.

테드 하트리는 실시간으로 NRP(넷플러스 추천 플랫폼)의 성능 현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28.5%라…… 이건 DRP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지 않습니까?”

그의 질문에 개발 담당 이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우리 쪽 추천 시스템은 간단히 말해 비디오 스트리밍 구매 데이터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능 면에서 NRP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요.”

테드의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 말씀은 DRP는 하는데 우리가 못하는 이유는요?”

“그건…….”

개발 담당 이사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답이 너무 간단했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부족하다.

그게 정확한 답이었다. 테드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몰아치기만 하는 건 성과가 아닌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테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현재 마련된 대안이 있습니까?”

“가장 좋은 대안은 DRP에서 근무했던 인원을 스카우트하는 겁니다. 그게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긴 한데…….”

“그런데요?”

“관련 인원들이 전부 한국에 있어 스카우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국 지사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 지사에 연락해서 스카웃 부분을 문의해 보니 DRP를 개발한 주요 개발자들은 이직 의사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럼 죽으나 사나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래서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테드의 말이 날카로워졌다.

넷플러스.

자신이 만든 이 회사는 최고의 실력자가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내부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와 있기는 합니다. 확인해 보니 DRP에서 ‘리턴’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해당 언어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짰다고 하더군요. 그게 현재 프로그래밍 언어협회에도 등록이 되어 있고요.”

“우리도 그걸 기반으로 시스템을 변경해 보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러면 일단 속도는 지금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성능은 여전히 답보할 수 없습니다. 성능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우리가 가진 알고리즘을 튜닝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흠…… 그래서 알고리즘 연구 전문 인력을 채용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 인원들이 지금 여러 알고리즘을 검토 중이긴 한데…… 이 연구라는 게 사실 돈은 계속 투입되나 성과는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라서요.”

테드의 표정은 계속 어두워졌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상황이 어렵다는 이야기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테드의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플랫폼 사업.

이 시장은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기술 개발이 늦어질수록 승리할 가능성은 작아진다. 테드가 물었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쯤 나올 것 같습니까?”

“최소…… 두 달 정도는 지나봐야 어떤 성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달.

이미 DRP는 자신들보다 뛰어난 성능을 서비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두 달이 더 늦어진다? 더구나 두 달 이후 DRP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 사업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비서가 다가와 테드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CBT(클로즈 베타 서비스) 예정 기업들이 속속 철회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뭐요?”

“DRP 측에서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같은 가격에 제공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굳이 우리 쪽 서비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

그 말에 테드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CBT 철회.

그건 곧 자사 고객들이 NRP가 아닌 DRP를 사용한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테드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떠다녔다.

‘서치가 아이온 인공지능을 인수한 것처럼 더 큰 금액을 불러서라도 DRP를 인수해야 했나…….’

추천 플랫폼 시장.

그건 앞으로 미래 시장 규모의 예측이 힘들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개발 담당 이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개발해 보겠습니다.”

테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걸로 회의는 마치죠.”

회의가 끝났지만,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 * *

주말 간 휴식을 취한 강철은 바로 일에 집중했다.

엑스 게임즈 인수.

아이온 그룹 나스닥 상장 최종 결정.

DSP(대산 재고 관리 플랫폼) 개발 계획 확정까지.

줄줄이 예정되어 있던 일들을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엑스 게임즈 확정이 나자마자 그 사실이 언론에 발표되었다.

-아이온 그룹 엑스 게임즈 인수.

-아이온 게임즈 X 엑스 게임즈 대형 게임 회사 탄생.

-글로벌 게임회사로의 도약.

-이강철 또 한 번 빅딜을 성사시키다.

강철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강철은 그 뉴스에 맞춰 아이온 게임즈의 신작 발표회를 했다.

중국이 만들고 세계를 휘어잡은 게임 워리어.

그 광고 모델로 인연이 있는 트리플을 기용해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자 반응은 바로 왔다.

-PC방 인기순위 3위.

게임을 출시하자마자 단숨에 피시방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임 3위에 올라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리그 오브 레전드가 1위였지만 심심치 않게 워리어가 LOL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게임을 출시한 강철은 앞으로 2주 뒤로 예정된 넷플러스 The Startup 시즌 2 촬영 준비를 위해 스타트업 투자 검토까지 해야 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가볍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실무팀에서 강철은 일차적으로 걸러낸 스타트업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판스? 이건 들어본 적이 없고.”

“아이오우? 이것도 그렇고…….”

“미야푸라…… 흠…….”

중국 스타트업까지 기억에 남아 있진 않았다. 다만 혹시나 실제 이름을 보면 기억나는 이름이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강철의 시선이 한 회사에서 앞에서 멈춰섰다.

“포니 라이드? 포니 라이드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강철은 바로 기업의 상세 내용을 살펴보았다.

-창업자 : 마진산.

-기업 개요 : 라이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특징 : 오직 라이다 소프트웨어만 개발 중. 라이다 센서와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3D 데이터를 인식해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이 내용을 보면 볼수록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손정수 회장이 투자했던 회사 같은데…….”

강철은 그 밑에 쓰여 있는 투자 현황을 살펴보았다.

-투자자 현황 : 무.

그 말은 아직 시리즈 A 투자도 유치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만약 이 회사가 자신이 생각한 그곳이 맞는다면 흙 속에 숨겨진 진주나 다름없었다.

라이다.

그건 자율주행에 꼭 필요한 센서였고, 그걸 컨트롤 하는 소프트웨어는 미래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포니 라이드는 1픽으로 찜하고.”

어차피 기술의 성공은 자신이 직접 보면 알 수 있었다.

“자 또 뭐가 있나…….”

강철은 그렇게 투자할 회사를 선별해나갔다. 미래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릴 회사들이 강철의 투자 목록에 하나둘씩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진동만은 소위 VIP들만 입장할 수 있는 으슥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상대는 현재 전경련 회장을 맡은 임수창.

그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청와대에서 답이 없네. 자네가 말한 건은 이대로 묻힐 것 같아. 사실 각 기업별로 이해득실이 너무 달라서 자네를 도와줄 수도 없는 형편이고 말이야.”

그 순간.

진동만은 거대한 종이 자신의 머리를 치는 느낌이었다.

‘이제 난 끈 떨어진 연 신세라 이건가…….’

새삼 자신이 어떤 처지에 휩싸였는지 절절히 절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정부에서도 줄 수 있는 도움이 없고, 다른 기업에서도 도움 줄 게 없다.”

임수창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게 됐네. 자네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성에서도 이 일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어.”

그 말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오성.

정부나, 전경련보다 믿었던 회사였다. 그곳에서도 도움을 못 주겠다니.

임수창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강철 그 친구가 요새 하는 일이 하나같이 오성에도 꼭 필요한 일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이 바뀐 모양이야. 그 친구와 협력하는 게 더 이득이 된다고. 사실 생각해보면 오성이 유통회사 차지해서 뭐하겠는가. 전자 외의 회사를 하나씩 잘라내도 모자랄 판에.”

“…….”

진동만은 이를 갈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점 화가 올라오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두근.

두근.

지병이 도질 것 같은 느낌에 진동만은 급히 안주머니에서 약을 챙겨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임수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성호 회장이 욕심이 많긴 하지만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유통회사 하나 차지하겠다고 그가 가진 칼을 휘두르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온다는 사실을 잘 알겠지. 왜냐하면…….”

머뭇거리던 임수창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강철 그놈이 너무 컸어. 자네도 보지 않았나. 알고리듬에 이어 아이온 인공지능까지 서치에 팔면서 단숨에 국내에서도 부호 순위 5위를 차지했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모두가 피곤해지는 상황이 된 거지.”

진동만도 눈이 있고, 귀가 있었다. 최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국가 과학기술 자문위원에도 선정됐나 봐. 정부에서도 주목하는 인물이 된 거지. 그런 친구 잘못 건드렸다가는 상처뿐인 싸움이 될 수 있어. 그러니 자네도 이제 그만하고…….”

하지만 임수창은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진동만이 탁자를 ‘탁’ 소리가 나도록 때렸기 때문이었다.

“그만 듣기 싫네!”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임수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해줄 말은 여기까지야. 그냥 술이나 한잔하고 잊어버리자고. 여기 상 좀 내와.”

그 순간 방문 너머에서 교태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내 스르륵 문이 열리고 치파오, 한복, 원피스, 기모노 등등 세계 각국의 옷을 입은 여자들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진동만은 술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으드득, 됐네.”

진동만이 이를 갈며 자리를 박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수창이 그 모습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인제 그만 놔줘야 할 때야. 아니면 협력을 하거나. 우리는 이제 과거 시대의 유산일 뿐이야. 세상이 변했어.”

하지만 진동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난 아니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 * *

한남동 진동만의 서재.

진동만이 으득 이를 갈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이온 인공지능 서치 120억 달러 매각.

벌써 며칠째 이 내용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모든 언론이 이강철의 수족이 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뉴스가 터져 나왔다. 신문을 잡은 두 손의 힘줄이 울퉁불퉁 돋아났다.

옆에 있던 진용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점점 일이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젠장. 호랑이를 들였어.”

“어떻게 할까요?”

“하아…….”

진동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 몇 달간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고, 주름은 더 깊어졌다. 최근 온 힘을 동원해 다시 회사를 되찾아 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전경련에서 이 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

그 말에도 진용민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 이미 비서로부터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성에도 손을 떼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진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놈이 우리보다 가치 있다 여긴 거지.”

이내 진용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렇게 몇 번을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뗐다.

“그럼, 일이 어려워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다른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동만이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물었다.

“어떤?”

진용민의 목소리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제가 선미를 한 번 더 찾아가 봤습니다.”

진동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

“혹시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몇 가지 안을 의논해 봤습니다. 그중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것들이 있었고요.”

진동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해봐.”

“그건 선미에게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미가 생각해낸 안이라서…….”

말 꼬리를 흘리던 진용민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데 들어오라 할까요?”

진동만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까.

이내 문이 열리고 진선미가 서재로 들어왔다.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진선미가 툭 말을 던졌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렇게 될 거라고.”

“그런 말이나 할 거면 썩 나가.”

진선미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답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오늘 이 자리도 제 주장을 굽히거나 회사를 되찾을 방법을 말씀드리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에요.”

진동만이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진선미를 노려보았다.

“그럼?”

“이강철, 그와 협력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찾아왔죠.”

그 말에 진동만이 들고 있던 신문을 진선미에게 던져 버렸다.

“나가!”

진선미가 픽 코웃음을 쳤다.

“아버지가 항상 말하는 혁신을 실제로 진행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협력하지 않고, 그저 회사를 다시 찾는 데만 골몰하다니. 왜 대산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알 것 같네요.”

진동만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진용민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달이 났을 때 이강철과 협력할 방안을 찾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으리라.

진용민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진선미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오빠랑도 이미 합의를 봤어요.”

그녀가 또렷이 그를 쳐다보았다.

진용민.

사실 그의 생각은 아버지 진동만과는 조금 달랐다. 그랬기에 진선미를 다시 찾은 것이기도 하니까.

“나는…….”

진동만이 진용민의 대답을 막았다.

“합의? 헛소리 그만하고 나가! 더 들을 것도 없다. 대산은 우리 것으로 남아야 해. 남을 줄 바에 차라리 부숴 버리는 게 답이야.”

“네?”

진동만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내 손에 들어 있던 걸 순순히 줄 것 같으냐?”

입가에 서린 불길한 미소에 진선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싸움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겁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일을 진행하다간 우리도 다칠 수 있어요.”

진동만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진선미를 바라보았다.

“전쟁에서 상처를 입는 건 당연한 일이다. 팔, 다리 하나쯤 잘리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다치는 건 우리가 아니야.”

진동만은 여러 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중 대산에 치명적인 내용도 꽤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신들도 다치게 된다. 그 비밀들은 자신이 오너일 때 만들어진 것이니까.

진동만은 그 비밀에 진선미와 이강철을 엮어 함께 보내 버리려는 생각이었다.

진선미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버지!”

하지만 진동만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나가.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라.”

진동만이 싸늘한 표정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진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진용민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결심을 하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 생각에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진동만의 이마에 삐죽 힘줄이 돋아났다.

“이젠 네 녀석까지 반기를 들겠다?”

“아버지 그게 아니라 선미의 말도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강철이 능력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가…….”

하지만 진용민은 끝까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진동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조용! 지금 그게 회사를 빼앗긴 놈이 할 소리냐? 애초에 네 녀석이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

진동만의 노성이 진용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진용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아버지 말씀이 조금 심하십니다. 이강철은 아버지께서도 좋게 본 놈입니다. 머슴으로 쓰기에 적당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뭐, 뭐라? 네 녀석이 지금!”

순간.

진동만이 가슴을 움켜쥐더니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당황한 남매가 급히 진동만을 부축했다.

“아버지!”

“김 비서 바로 병원에 연락해! 어서!”

심장을 움켜쥔 진동만의 두 눈이 스르륵 감겼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진선미가 강철을 찾아왔다.

“소식 들었어요?”

강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동만 회장. 병세 위중.

주요 언론사에서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로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들었습니다. 쾌차하셔야 할 텐데…….”

그 말에 진선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입니다. 진 회장님은 유통업계의 거물. 과거 제가 정말 존경했던 분이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날 여러 일이 있었어요.”

강철이 가만히 있자 진선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와 오빠는 강철 씨와 협력하자는 입장. 아버지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었죠.”

말을 하던 진선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일이 이렇게 됐네요.”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다.

‘그 말은 지금 나랑 협력하자는 뜻인 것 같은데…….’

협력.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 해도 강철은 내키지 않았다. 자신이 내부에서부터 대산을 갉아먹었듯이 이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걸 눈치챈 진선미가 말을 이었다.

“물론 탐탁지 않은 면이 있을 거예요. 나야 원래부터 회사에서 아웃사이더였지만. 오빠가 돌아오는 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둘 다 품기에는 제 가슴이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안을 가져왔어요.”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숙였다.

몇 가지 안.

그 안이 마음에 든다면 승낙할 생각도 있었다. 진선미가 말을 이었다.

“첫 번째. 마트, 백화점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를 우리 남매에게 전부 넘기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보유 지분과 완전히 맞바꾸는 거죠.”

대산그룹의 계열사.

강철이 근무했던 프리미엄 아울렛을 비롯해 건설, 편의점, 호텔, 커피트리, 스타몰 등등 10여 개가 넘는 계열사가 있었다. 그걸 전부 넘긴다는 안이었다.

“완전히 계열 분리하는 겁니까?”

“맞아요. 대신 오빠, 저, 그리고 앞으로 명예회장님에게서 우리 남매에게 상속될 지분까지 전부 넘기는 조건이에요. 이 정도면 지분 가치로 따져봐도 강철 씨가 크게 손해 보는 안은 아닐 거예요.”

강철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미 대산 그룹의 계열사 가치는 전부 머릿속에 넣어놓고 있었다. 회귀 후 똑똑해진 머리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그것과 진선미, 진용민이 가진 지분 가치를 비교했다.

‘지금 가치로만 쳐도 대략 내가 500억가량 손해군.’

하지만 마트와 백화점을 완벽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감내할 만한 수준인 것이다.

“두 번째 안은 뭡니까?”

그 말에 진선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사실 1번 안이 너무 매력적이라 다음 안은 준비를 못 했어요.”

당당하게 하는 그 말에 강철이 대꾸하지 못하는 순간, 진선미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제 지분과 계열사 4개를 바꾸려 했었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괜찮은 조건이잖아요.”

그 말에 강철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진선미의 말대로 하려고 했었으니까.

“아무리 마트를 대산에 종속시킨다 해도 한계는 있을 거예요. 이건 기회예요. 만약 다시 아버지가 눈을 뜨시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진동만.

유통업계의 거인은 갑작스러운 심근 경색으로 식물인간 상태였다. 그렇다면 시간 제한이 있는 제안이라는 뜻이었다.

고심하던 강철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진선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은 안 돼요. 비록 아버지 상태가 안 좋지만 언제 깨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이기도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강철은 대화를 마치자마자 기획실 직원들을 소환했다.

그날 밤늦게까지 지분 교환에 대한 손익 계산이 계속되었다.

* * *

제안을 마친 진선미는 바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 VIP실.

그곳에 진용민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어떻게 됐어?”

“하루만 생각해 본다네.”

진용민의 시선은 진동만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마트, 백화점 빼고…….”

“전부 다. 넘긴다.”

그 순간.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감시장치에서 알림 소리가 들렸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진동만을 향했다. 하지만 누워 있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생각에는 어때? 이강철 그놈이 승낙할 것 같아?”

진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인 사람이야. 아버지 지분까지 합치면 대충 계산도 맞고.”

이번에는 진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편의점, 프리미엄 아울렛, 커피트리, 건설을 가지고. 네가 나머지를 가진다.”

진선미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합의한 대로.”

진용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안이 최선이라는 걸 알지만 가슴이 쓰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또 한 번 환자감시장치가 삐빅 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러나 누워 있는 진동만은 눈을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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