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31화 (31/59)

2장 강철의 일상

화면을 보던 천준호가 기쁨에 가득 차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옆에 있던 윤찬민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돼요? 뭐가?”

“이거 봐봐.”

천준호가 손가락으로 모니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프로그래밍 언어 협회.

-NEW Programming Language

-return.

그걸 본 윤찬민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저, 정말 됐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개발자들이 몰려들었다.

“뭐가. 되긴 뭐가 돼.”

그들도 화면에 나타난 문구를 보곤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헐…… 진짜 등록됐네.”

“말도 안 돼…….”

“그럼 우리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든 회사가 된 거야?”

“대박…….”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린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프로그래밍 언어협회에서 공식 인정한 언어.

그 타이틀이 업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천준호는 가쁜 숨을 참기 힘들었다.

“DRP 성능도 올라가고 프로그래밍 언어도 만들고. 진짜 대박이다.”

“이 정도면 우리도 이제 세계적인 기술 기업 된 거 아냐? 우리나라 사람 중에 프로그래밍 언어 만든 사람 없잖아.”

“하긴 오성전자나 포털 사이트에서도 만들었다는 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직원들이 윤찬민과 천준호를 보았다.

“이야…… 그럼 이제 너희들 서치로 이직하는 거냐?”

뜬금없는 질문에 천준호가 반문했다.

“네?”

“아니, 그렇잖아. 프로그래밍 언어 만들 정도로 실력 있는데 굳이 계속 여기 다닐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세계 최고 회사는 아니잖아.”

그 말에 천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 당장 세계 최고 회사는 아니죠.”

“그럼?”

“CTO님이 계시잖아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 언어도 CTO님이 제안하신 거고요.”

“아…… 하긴…….”

그러자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리턴.

그걸 개발한 핵심 개발자는 이 둘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전 안 된다고 했는데 그분이 된다고 했고, 중간에 너무 어려워서 포기할 뻔했는데 그분이 해결해 주셨어요. 흐흐, 그런데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여기 꽉 붙어 있어야지.”

윤찬민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지금 막 로켓이 발사되려 하는 데 가긴 어딜 갑니까. 안전벨트 꽉 메고 있어야지.”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산 그룹이 로켓처럼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 * *

그 시각 대산 마트 은평점.

그곳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점장까지 매장에 직접 내려와 진두지휘를 펼치고 있었다.

“여기 먼지 한 톨도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 말에 점장을 수행하던 직원이 또 다른 직원에게 지시했다.

“뭐해, 당장 치워.”

“알겠습니다.”

“이거 과일 디스플레이는 또 왜 이래. 빨갛게 맛 좋은 게 앞에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이렇게 생채기 나 있는 게 앞에 있으면 누가 먹어.”

그의 지시에 또다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한참을 그렇게 매장 시찰을 하던 점장이 부하직원에게 물었다.

“어디쯤 오셨대?”

“이제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가자.”

“네.”

그 말에 점장이 정문이 있는 쪽으로 바삐 움직였다. 이미 사전에 도착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매장을 드나들던 고객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점장은 고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때? 나 지금 괜찮지?”

“하하, 네. 말끔하십니다.”

“오케이. 좋았어.”

그리고 잠시 뒤.

정문 앞에 검은색 세단이 도착했다. 먼저 내린 비서가 문을 열었고, 강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서가 반 발 앞에서 말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걸음을 옮겼다.

몸에 딱 맞는 정장에 검은색 구두.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따로 화장하진 않았지만,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런 강철을 고객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 저기 이강철 회장 아냐?”

“마, 맞는데.”

“그러네…….”

“대박 이강철이다.”

“저기 봐봐. 진짜 이강철이야.”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강철이 그런 시민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찰칵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경호원이 나서려는 순간 강철이 눈짓했다. 그러자 비서가 실행에 옮겼다.

“괜찮습니다.”

“네.”

제지하려던 경호원이 비키고, 강철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철이 하는 건 오프라인 매장 시찰.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서의 말에 따르면 알고리듬 뒤이어 아이온 인공지능까지 서치에 매각하면서 강철의 인지도는 연예 급으로 확 올라갔다고 했다. 더구나 넷플러스에서 방송하는 The Startup까지 히트하면서 그에 대한 시민들의 호감도는 상상 이상.

지점장들이 이럴 때 매장에 한 번 얼굴을 비춰주면 회사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여 굳이 오프라인 시찰을 잡은 것이었다. 강철이 매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점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은평점 점장 한기훈입니다.”

“네. 이강철입니다. 그냥 한번 인사차 들린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네. 그럼 이쪽으로.”

“네.”

강철은 지점장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과거.

그가 죽기 전 대산 그룹에 다닐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지점장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수행한다?

‘나쁘진 않네.’

말단 대리였던 과거 자신으로써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얼굴마담 역할을 하기 위해 온 것이라 강철은 마트를 둘러보는 식으로 살펴보았다. 그 옆에서 지점장이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 은평점은 벌써 15년째 대산 마트에서 전체 1등을 하고 있는 매장으로써 항상 고객님들께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네. 충분히 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한 마디에 지점장의 입이 귀까지 가서 걸렸다.

그도 이제 알고 있었다. CTO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이강철이 회사의 실질적이 오너라는 사실을.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네.”

강철은 그렇게 지점을 한 바퀴 쓱 돌았다.

확실히 인지도가 상승했는지 자신을 보기 위해 많은 고객으로 지점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분명 매출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 * *

그렇게 매장 시찰이 끝나고.

이날 저녁 9시.

강철은 대산 백화점 압구정점에 있었다.

“이게 마지막 일정입니다.”

비서의 보고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9시면 백화점 운영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찾은 것은 VVIP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대산 프리이빗 클럽.

이 이름으로 매년 진행되는 행사는 돈 많은 부호가 쾌적한 상태에서 명품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마련된 행사였다. 프라이빗한 행사답게 쇼핑만 하는 건 아니었다.

친목도모.

연예인 공연.

명사강연.

등등 여러 행사가 기획되어 있었다. 이것도 일선 매장에서 요즘 가장 핫 한 인물인 강철이 한번 찾아봐 주면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하여 참석한 것이었다.

-알고리듬 60억 달러.

-아이온 인공지능 120억 달러.

-The Startup.

이 세 가지 키워드만으로도 강철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행사장을 찾는다는 소식이 미리 알려졌기 때문인지 평소 때보다 유독 젊은 여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강철을 보며 수군거렸다.

“사진보다 실물이 났네.”

“저분이 이강철?”

“……180억 달러면 우리나라 5대 부호 아냐?”

“돈만 많은 게 아니라 머리도 그렇게 똑똑하다며.”

“난 인공지능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더라.”

그렇게 수군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다가가진 못했다. 자신들이 다가가 말할 급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어머, 정말 실물이 훨씬 괜찮으시네요.”

가까이서 들리는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드레스에 얼굴은 강남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며 본 것처럼 인조미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 모습을 확인한 비서가 재빨리 귓속말을 전했다.

“LK 리테일 그룹의 막내딸 최수린입니다.”

LK 리테일.

국내 최대 편의점 체인 회사였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최수린 님.”

“호호, 제 이름도 아시는 거예요?”

“VVIP님들의 신상정보 정도는 머릿속에 넣고 있습니다.”

최수린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철을 보았다.

“호호, 기분 좋네요. 이렇게 유명하신 분이 제 이름을 다 기억해 주신다니.”

“행사는 괜찮으십니까?”

최수린이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사실 이런 행사에는 잘 안 나오긴 하지만…… 오늘은 아주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말이죠.”

그러면서 강철을 빤히 보았다. 궁금한 게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눈빛이었다.

그런 강철에게 관심을 표하는 건 최수린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 부인이 젊은 여자와 함께 강철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비서가 재빨리 귓속말을 전했다.

“혜성 그룹 안주인과 그 셋째 딸입니다.”

혜성그룹.

국내에서 가장 큰 건설사인 혜성 건설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LK 리테일보다 시가총액이 몇조 원은 더 큰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최수린이 살짝 몸을 비켰다.

“호호호호, 반가워요. 안복녀예요. 여기는 내 딸 김시원.”

김시원이라는 여자가 다소곳하게 강철에게 고개를 숙였다. 강철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내 알아보니 아직 미혼에 여자친구도 없다고 하던데.”

강철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맞습니다.”

“제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얘가 인성도 좋고, 학교도 괜찮아요.”

이번 누가 봐도 자신의 딸과 잘 만나보라는 뜻이었다. 안복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건설 쪽에서 IT 기술이 필요한 게 많아요. 스마트 홈이다. 스마트 시티다. 스마트 팩토리다. 그거 이강철 사장이 전문이잖아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안복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 결혼 어떻게 하는지 잘 알 테니까.”

다행히 안복녀의 말은 그쯤에서 끝났다.

“오늘은 인사 정도만 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약속 한번 잡았으면 좋겠는데…….”

이 자리에서 당장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안복녀가 물러나고, 여러 여자가 강철에게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선보이려 한 듯이.

그리고 그런 강철을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한 쌍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금세 시선을 바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오늘 행사에 참석해주신 내, 외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빌보드 차트 인의 기록을 세운 트리플의 축하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엘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이 다시 강철을 향했다. 이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강철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강철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엘리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강철을 보고 있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의 아파트 단지.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에서 에어로빅 센터에서 수업을 마친 최용희의 곁으로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다가왔다.

“강철 엄마.”

“네.”

“혹시…… 그 강철이 여기 이 강철이에요?”

그들이 내민 건 핸드폰.

거기에는 자랑스러운 자기 아들 이름이 대문짝만한 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차세대 리더 10인. 이강철.

그걸 본 최용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맞아.”

그러자 아주머니들끼리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내가 그랬잖아. 맞다고.”

“그 이강철이 이 이강철이었다니…….”

“완전 재벌가 사모님이잖아.”

하지만 개중에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정말 이강철 이분이 아들이라고?”

최용희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그 이강철이 내 아들 이강철 맞는다니까.”

최용희의 확인사살에 아주머님들은 그저 마른 침을 삼킬 뿐이었다. 아주머니들이 놀란 눈으로 최용희를 보았다.

“최, 최씨 아줌마 재, 재벌이었구나.”

“아이 뭐, 그 정도는 아니고.”

“우리 아들이 그러던데, 이강철이 국내 부자 5위라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그때.

최용희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전화를 받은 최용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어디라고요?”

-여기 노블레스 중매업체인데요. 신성중공업 셋째 따님과 혼사 자리가 들어왔습니다.

“시, 신성중공업이요? 셋째 딸이요?”

신성중공업.

90년대 재계 1위를 기록한 신성그룹 계열사 중 한 곳으로 지금도 신성자동차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용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 모습을 여러 아주머니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강철이 퇴근해 돌아오자마자 최용희가 불렀다.

“철아.”

“네.”

“혹시 내 번호 네가 흘리고 다니냐?”

강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오늘 너랑 중매 서고 싶다는 연락 몇 통이 왔어. 신성중공업, 세계은행장 딸, 강남에 부동산만 수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 등등.”

“하하, 전 그런 적 없어요. 아마…… 여러 경로로 유출됐을 거예요. 아시잖아요. 요즘 개인정보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하긴…… 그렇긴 하다만.”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그러자 강철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전부 안 된다고 거절하세요. 아시겠지만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고, 중매로 결혼하는 건 더 싫어요.”

최용희는 마음 같아서 한 번쯤 만나보라, 말하고 싶었지만, 아들의 단호한 말에 더는 권할 수 없었다. 최용희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알았다. 그렇게 하마.”

“네.”

둘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철의 전화벨이 울렸다.

드르륵.

드르륵.

번호를 확인해 보니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네. 이강철입니다.”

-아 저는 선강대학교 총장 박만우입니다.

선강대학교.

자신이 졸업한 학교의 총장이었다.

“아, 네. 총장님.”

간단한 칭찬이 오가고, 총장이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번에 학교에서 명사강연회를 여는데 혹시 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명사 강연이라…….

딱히 갈 이유도, 딱히 가지 않을 이유도 없는 애매한 제안이었다.

“일단 비서에게 말해서 연락 넣어드리겠습니다. 먼저 일정을 확인해 봐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끝났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자신이 나왔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에서부터 동창회까지. 알고 있던 인맥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쇄도했다.

“이거 핸드폰 번호를 바꾸든가 해야지…….”

돈이 생기면 날 파리가 꼬인다고 했던가. 몇몇 주기적으로 연락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날 파리였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른한 주말 오후.

강철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최근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서부터 DRP 업그레이드까지 하느라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돈이 많아도 쓸 시간이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으차.”

강철은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위해 약속을 잡아놓은 참이었다.

삐삐삐.

삐삐삐.

마침 핸드폰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슈퍼카 매장 방문.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글귀였다.

오늘 강철은 차 문이 위로 열리는 자동차를 구매할 생각이었다. 전생에서도 한 번쯤 타보고 싶었지만, 아직 시간이 없어 매장을 가보지 못했다.

잠시 후.

씻고 나오자마자 운전기사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강철은 그 차를 타고, 청담에 있는 람보르기니 매장에 도착했다. 그곳에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국내 총판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 그룹의 부사장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강철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후성 그룹 부사장 조명철입니다.”

후성 그룹.

재계 순위 27위인 후성은 여러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세계적인 슈퍼카들을 들여오는 총판 역할이었다. 조명철은 그 후성가의 삼남.

그룹의 핵심사업인 중공업이나 건설 쪽과는 거리가 먼 수입차 판매 계열사를 맡고 있었다.

의외의 인물에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 네.”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마침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고 하셔서 이렇게 제가 직접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차에 대해 일가견이 있으니 최대한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철은 기껏해야 지점장이나 총판 그룹사의 임원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룹의 직계가 직접 나와 설명해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나와 친해지고 싶은 모양인데…….’

대산 백화점 행사에서 절실히 느꼈다. 재벌들이 얼마나 자신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지를. 역시 이 세계는 돈 있는 자가 왕이었다.

강철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조명철은 열심히 설명을 해나갔다.

“람보르니기의 가장 큰 장점은 페라리보다 도로주행에 장점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페라리보다 제로백에서는 느리지만 기름을 덜 먹는다고들 하죠. 하하, 물론 기름 아끼려고 타는 차는 아니지만요.”

조명철은 농담까지 섞어가며 차량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강철은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간혹 추임새를 맞추며 조명철을 상대했다.

“그럼 한번 타보시겠습니까.”

“네.”

스르륵.

차문이 부드럽게 위로 열리고 강철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에 앉아보았다. 시가 7억5천만 원에 달하는 차였다.

하지만 승차감이 크게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타던 세단보다 불편한 느낌?

‘간지 하나만큼은 엄청나네.’

외부 디자인만이 아니라 내부장식들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세련미를 자랑했다.

“한번 도로주행 해보시겠습니까?”

“네. 그럼 한번.”

이내 조명철이 지시하자 직원들이 재빨리 도로주행 준비를 마쳤다.

부아앙!

액셀을 밟자마자 720마력 엔진이 굉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힐끔거리며 시선을 던졌다. 강철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도로로 차를 몰고 나갔다.

‘좋구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슈퍼카를 몰자 새삼 자신이 얼마나 큰 부자가 됐는지 실감이 나고 있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설레는 기분이랄까. 그런 기분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듯 재벌가의 자식이 칭찬 세례를 쏟아냈다.

“저도 대학 시절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The Startup을 보며 정말 개안을 한 기분이었습니다. 확실한 기술을 가진 기업을 알아보고, 거기에 적절한 기술 공유와 투자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걸 세계 여러 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에 팔아 엑시트까지. 정말 M&A의 교과서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희 회사에 초청을 하고 싶습니다. 후성 그룹도 최근 여러 신기술을 집중 육성하는 중인데 직원들이 대표님을 만나면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서요.”

“네. 한번 스케쥴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명철은 너무 들이대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켰다. 덕분에 강철은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마칠 수 있었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마세라티.

강철이 그날 하루에만 구입한 차였다. 돈으로 치면 대략 30억가량.

하지만 강철이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쇼핑을 마친 강철은 차가 인도되기 전까지 타라며 조명철이 수배해 온 람보르기니를 몰고, 동생이 있는 신사역으로 향했다. 오늘 차도 산 김에 동생에게 드라이브라도 한번 시켜줄 겸 약속을 잡은 것이다.

“어, 근처 다 왔다.”

“보여.”

“그래 그거 맞아.”

약속 장소에 도착한 강철이 차 문을 열어주었다.

스르륵.

문이 위로 열리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이희진이 얼굴이 보였다.

“야, 타.”

“……오, 오빠. 이건 뭐야?”

“한대 뽑았어. 어때? 오빠 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냐?”

강철의 농담에 이희진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희진의 볼이 달아오른 건 강철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이희진의 옆쪽에 있는 그녀의 친구들 때문이었다.

“희, 희진아 네 오빠…….”

“……오, 오빠가 이강철이었어?”

“대박…… 대박…….”

친구 두 명이 강철을 한 번 보고, 차를 한 번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살짝 부끄러움을 느낀 강철이 말을 더듬었다.

“치, 친구들이랑 있었구나. 하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네.”

이내 이희진의 친구들이 그녀의 옆구리를 괜히 쿡쿡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그 눈빛에는 자신들도 한 번 차에 타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이희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호, 혹시 얘네들도 같이 타도 될까?”

그녀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강철을 보았다.

“조용히 있겠습니다.”

“절대 오붓한 오누이 사이 방해 안 할게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강철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이게 좌석이 두 개밖에 없어서요.”

강철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좌석에서 나와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그걸 본 그녀들도 아쉬운 입맛을 다실 뿐 더는 강요하지 못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신사역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 *

미국 샌프란시스코 올드카 닷컴.

넷플러스에서 새롭게 만든 서비스를 테스트하던 마크 리퍼트가 다시 CEO를 찾았다.

“대표님.”

“왜 무슨 일이야?”

“이번에 DRP 쪽에서 업그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CEO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그 업그레이드 덕분에 추천 성능이 좀 더 올라갔어요. 정확한 수치는 넷플러스에서 보장하는 것보다 30% 정도입니다. 그래서 넷플러스와 진행 중인 연동 작업을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비용이 더 나가더라도 이걸 써야 한다는 말이지?”

“네. 성능이 올라가고 나서 매출이 또 늘었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점유율이 60%까지 올라갈 것 같습니다.”

“흠…….”

“소문에 의하면 타사에서는 넷플러스의 추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한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아마 실패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넷플러스 추천 플랫폼 NRP 개발진 중에 제가 아는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초창기 단계인 자사 서비스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성능이 제대로 나올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마크의 적극적인 의견 피력에 고심하던 CEO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았어. 넷플러스 연동 개발은 잠시 보류하고 상황부터 지켜보지.”

“네.”

비단 올드카 닷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DRP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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