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기술경쟁(1)
한국 엑스게임즈 본사.
지수철이 거대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있는지 모른다.
“저 말 참 듣기 좋단 말이야.”
그러자 지수철의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비디오 마지막 화 조회수가 500만을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편 수를 전부 합치면 수천만이 넘고요. 곧 넷플러스에서 시즌 2가 풀린다는 말에 지금도 조회 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인기가 대단하군.”
“네. 거의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네 생각에는 어때? 저 친구가 엑스게임즈를 잘 운영해 줄까?”
“아이온 게임즈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아를 이긴 라이즈 킹덤이라는 게임 IP를 보유한 회사이기도 하니까요.”
지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나도 저 친구에게 회사를 넘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럼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으신 겁니까?”
지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 그런데 그걸 저 친구가 먼저 하고 있군.”
화면에는 강철이 스타트업에 도움을 주고,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수철은 그 컨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애청자이기도 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강철 대표가 한 것처럼 회사를 운영하면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수철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보고 저렇게 하라고?”
-마이트의 기계학습 알고리즘에도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구현되어 있지 않을 뿐이죠. 그걸 구현하면 됩니다.
화면에서 강철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걸 보십시오.
카메라가 코드를 클로즈업했다. 그 모습을 보던 지수철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저렇게까지 개발을 잘할 자신이 없네. 그저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거나, 개발 가능성, 개발 능력 같은 것들을 점칠 뿐이지. 저 친구는 뭐랄까…… 마치 일론 머스크 같아. 뛰어난 두뇌와 실행력을 가진.”
비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신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이비디오를 통해 나오는 내용만 보면 엄청난 능력자였다.
“만약 내 회사를 사준다면 그 돈으로 저 친구에게 투자를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야.”
“저분에게요?”
“그래. 왠지 그 돈을 다시 몇 배로 불려 줄 것 같거든.”
지수철은 말을 하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수철이 보던 아이비디오의 ‘스타트업을 찾아라’ 첫 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첫 화가 완전히 끝나고, 광고하나가 흘러나왔다.
-The Startup. 1화.
-Fast Tester 편.
-Coming Soon.
지수철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광고를 바라보았다.
* * *
미국.
2번째 회사까지 촬영을 마친 강철은 함께 온 가족들과 함께 금문교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좋다. 우리 아들 덕분에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밥을 다 먹어보고. 엄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하하, 엄마 이 좋은 날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희진은 코스 요리로 나온 고기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었다.
“오빠, 나 지금 천국에 와 있는 거 아니지?”
창밖에는 금문교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골든게이트 해협이 어우러져 절경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밥이나 먹어 시간 많으니까. 고기 식겠어.”
“히히, 알았어.”
정신을 차린 이희진이 재빨리 포크와 칼을 집어 들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너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당연하지. 장학금 받고 있어.”
“그래. 열심히 해. 물론 오빠가 있긴 하지만 항상 본인 능력이 중요하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하지만 강철은 진중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리고, 너랑 엄마 명의로 따로 빼놓은 게 있으니까. 먹고살 걱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야.”
그 말에 이희진이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아, 오빠!”
“알았어. 그만할 테니까. 밥 먹자.”
최용희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철아 그게 무슨 말이니. 네가 없다니. 너도 이 좋은 날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마라.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엄마 최용희의 말에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그렇게 한창 가족 간에 식사하던 중.
이희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저기. 엘리아냐?”
강철의 고개가 슬며시 돌아갔다. 그러자 정말 트리플의 엘리가 매니저 일행과 함께 레스토랑을 들어서고 있었다.
이희진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빠. 엘리랑 같이 촬영한다면서.”
“맞아. 넷플러스에서 방송될 거야.”
“어때? 팬들 사이에 얼음 공주라고 소문이 잔뜩 났던데 정말 그래?”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음 공주라…….”
-대표님 이건 무슨 말인가요.
-아, 그런 거였군요.
-그냥 방송하는 데 기본적인 지식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철이 느끼기에는 싹싹한 친구였다. 딱히 차갑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식사하면서도 눈을 힐끔거리던 이희진이 중얼거렸다.
“어, 어. 우리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그런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내 강철의 자리에 도착한 엘 리가 먼저 인사를 해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 네. 엘리 씨.”
“가족분들과 같이 식사하시나 봐요.”
“하하, 네. 여기는 저희 어머니, 그리고 여기는 제 동생.”
최용희가 살짝 고개를 숙였고, 이희진은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패, 팬이에요.”
엘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이희진은 그 모습을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엘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희진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찬성이야.”
“……응?”
최용희는 이희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나도 참해 보이고 좋아.”
그제야 강철은 어떤 의미인지 알아들었다.
“아, 엄마 나이 차가 몇 살인데.”
최용희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나이 차가 많이 나? 혹시 미성년자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내가 벌써…….”
그런 강철을 보며 이희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랑 몇 살 차이 안 나잖아. 엘리가 22살이고 오빠가 올해 29살이니까. 7살? 조금 나긴 하네.”
강철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지.”
이희진이 그런 강철의 팔을 툭 쳤다.
“오빠. 7살 차이는 나이도 아니야. 하여간 난 찬성이니까 잘해봐.”
강철은 말도 안 된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편.
자리를 잡고 앉은 매니저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네가 웬일이냐 먼저 인사를 다 하고.”
엘리의 입에서 중저음의 몽환적인 음색이 흘러나왔다.
“같이 촬영하는 사인데 인사 정도는 해야죠.”
물을 먹던 매니저가 ‘풉’ 하고 먹던 물을 뱉어냈다.
“뭐, 뭐?”
“왜요. 이상해요?”
“내가 그렇게 선배들한테 인사해야 한다고 할 때는 듣는 시늉도 안 했잖아.”
“그때는 시간이 없었잖아요. 당장 무대 준비하는 것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인사할 시간이 어딨어요.”
매니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곤 엘리를 바라보았다.
“그 말 진짜야?”
엘리가 당돌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보았다.
“아뇨. 거짓말인데요.”
당황한 매니저가 멍하니 엘리를 보았다. 엘리는 아무렇지 않게 식탁 위에 있던 메뉴판을 탁 펼치며 말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주문이나 해요. 매니저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아, 알았어.”
이내 둘을 비롯한 스탭들은 메뉴판에 집중해나갔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엘리만은 예외였다. 메뉴판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가끔 테이블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는 곳에 강철이 앉아 있었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
갑작스러운 강철의 지시에 당황한 재고관리 시스템 담당자는 푹푹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부하직원이 말했다.
“그냥 못 하겠다고 하세요.”
“어떻게 그러냐. CTO님이 지시하신 일인데.”
“불가능하면 불가능하다고 해야죠. 어쩌겠어요. 그렇게 머리 싸매고 있다고 해서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 말에 재고관리 시스템 담당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DSP(대산 재고 관리 플랫폼).
그 개발 계획을 짜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DSP 개념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회사별로 비즈니스 환경이 다르고, 물류 시스템이 다른데 어떻게 그걸 플랫폼화시켜서 서비스로 제공해요. 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담당자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럼 DRP는?”
부하직원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거야…….”
“그것도 처음에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진기 팀장을 필두로 김정민, 최수철 과장 등등 다들 한 팀이 돼서 만들어냈고.”
“하지만 그분들이랑 우리는 다르잖아요.”
“뭐가?”
부하직원은 차마 그 뒷말을 하지 못했다.
능력.
그에 다르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너 정현진 팀장 알지.”
“팀장님이랑 동기잖아요.”
“그래, 걔 능력이 나랑 비슷했어.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CTO님 밑에서 승승장구하고 계시죠. 내년이면 임원 단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런데 나는?”
“팀장님은…….”
CTO님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계십니다.
부하직원은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나도 잘하고 싶다. 그래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그러니까 팀장님 말씀은 비슷한 능력이었던 정 팀장님이 하시니까 팀장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이잖아요.”
“그래.”
“그럼…… 정 팀장님께 조언을 한 번 구해보는 건 어떨까요.”
“……조언?”
“어차피 우리끼리 머리 싸맨 결과가 ‘불가능’이니 그 결과를 바꾸려면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잖아요.”
100번 들어도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담당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정 팀장 좀 만나고 올게. 그리고 너도 천 과장이랑 동기지?”
“그, 그렇죠.”
“그런데 걔는 과장이고 넌 대리고.”
“…….”
“넌 천준호한테 가서 조언 좀 구해봐. DSP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냐고. 그리고 다른 얘들도 전부 DRP 팀 쪽에 보내서 조언 들으라고 전해. 그리고 내일 아침에 바로 회의한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담당자가 고개를 휙 돌리곤 부하직원을 향해 말했다.
“야! 너도 과장 달 수 있어.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강철이 없는 사이 회사에 벌어지고 있는 작은 헤프닝이었다.
* * *
미국 뉴욕.
강철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곳이었다. ‘The Startup’은 미국 각 도시를 돌며 총 12개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뉴욕이 마지막 스타트업이 있는 곳이었다.
“촬영 끝났습니다.”
양기형 PD의 말에 강철이 주변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강철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주인공은 강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철에게 엘리도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엘리의 말에 강철이 삼촌 미소를 지었다.
“하하, 네. 엘리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인사치레라도 촬영이 잘 끝났으니 밥 한 끼 하자는 말이 없었다.
뭔가 섭섭함을 느끼려 할 때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인 넷플러스 사람이 자신이 원하던 말을 꺼냈다.
“촬영도 잘 끝났는데 오늘 회식 한번 할까요? 한 번도 안 했잖아요.”
“좋아요!”
“회식해요!”
그 직원이 강철에게 다가가 의견을 물었다.
“대표님, 시간 괜찮으세요?”
하지만 강철은 따로 잡아놓은 약속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선약이 있어서. 대신 심 비서.”
강철은 가까이 다가온 비서에게 법인 카드를 한 장 내밀었다.
“이걸로 뉴욕에서 좋은 식당 하나 섭외해 드려요. 촬영도 잘 끝났는데 수고하셨다는 기념으로.”
“알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대표님 최고!”
“잘 먹겠습니다.”
강철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하, 네.”
이내 심 비서를 보며 말했다.
“내 차는?”
“대기 시켜놨습니다.”
“약속 장소 어딘지 알죠? 끝나고 그쪽으로 오면 됩니다.”
심 비서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그렇게 강철이 터벅터벅 건물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엘리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촬영장을 빠져나온 강철이 향한 곳은 뉴욕 시대의 조용한 루프톱이었다.
최고층에 있는 루프톱.
그곳에서 신주영이 강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하하, 네. 오랜만이네요. 미국 생활은 어떻습니까?”
“뭐랄까요. 바라던 생활이어서 그런지 너무 좋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처리해 드릴 테니.”
“네.”
그리고.
바로 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변형인플루엔자 이후.
벌어들인 돈이 어디로 어떻게 투자되었는지 상세한 이야기가 오갔다. 물론 거기에는 대산 그룹 지분 인수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전화와 메일 상으로 전부 보고 했던 내용이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또 달랐다.
그렇게 과거의 이야기가 끝나고.
현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말씀하신 대로 총 5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 완료했습니다.”
미국에서 총 12개의 기업과 촬영을 했다. 촬영을 위해 검토한 스타트업만 100여 개.
강철은 그중에서 50여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 확실히 미국 스타트업들의 기술력이 뛰어났고, 한국보다는 큰돈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 스타트업 당 최대 500억. 최소 10억씩의 돈이 들어간 것이다. 강철이 가지고 있는 현금도 빠르게 소진되었다. 그만큼 신주영의 걱정도 커졌다.
신주영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2,000억 규모로 떨어졌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하면 현금이 모자랄 수도 있습니다.”
“흠…….”
“더구나 일전에 말씀하신 엑스게임즈는 최근 변형인플루엔자 사태 이후로 기업가치가 2배는 넘게 올라갔습니다. 시가 총액이 17조 거기에 대주주 지분 15%를 블록딜 형태로 넘겨받는다고 해도 현금만 2조가량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경영권 웃돈이 붙어야 할 테고.”
“네. 그러면 한 2조5,000억을 예상합니다.”
“확실히 돈이 부족하긴 하군요.”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일단 아이온 그룹 자회사들을 상장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온게임즈, 나인소프트, 딜리버리브라더스, 아이체크만 상장시켜도 2조는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분율은 줄어들겠지만요.”
“그걸 가지고 아이온이 엑스게임즈의 대주주 지분을 넘겨받는다.”
“네. 아이온 게임즈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엑스게임즈 지수철 사장은 중국 쪽으로도 인맥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게임으로써는 유일하게 중국 판호를 얻을 수 있었고요.”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할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군요.”
“네.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알아보니 아이체크가 세계적으로도 많이 쓰더군요. 당장 회사 내에서도 상당수가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한국 코스닥이 아닌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면 더 많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도 있을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 말에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코스닥이 아니라 나스닥 말입니까?”
“네. 세계의 자본이 모이는 곳에 상장시키면 생각보다 더 큰돈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진지하게 고려를 해보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지수철 사장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아이온 그룹 상장 계획도 세우도록 하고.”
“네.”
“그리고 만약 IPO 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방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주영이 말을 이었다.
“변형 인플루엔자 사태 당시 미국 전역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네. 그때 제가 몇 사두라고 했었죠.”
“하하, 네. 그 이후로도 부동산 가격이 쉽게 회복이 안 되다가 치료제가 나오고 난 이후 부동산 가격이 원래 가격으로 회복했습니다.”
“오호~”
“그리고 당시 자산 배분을 위해서 대표님이 지시한 것에 더해서 부동산을 좀 더 매입했습니다. 주식 비중이 너무 높은 것 같아서요. 마침 연준에서 제로금리도 시행하기도 했고.”
“그걸 팔아도 돈이 꽤 되겠군요.”
“네. 아니면 담보로 돈을 빌려도 됩니다. 금리가 사실상 0%대니까요.”
“알겠습니다.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네.”
둘은 그 뒤로도 상당 시간 동안 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뉴욕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다음 날.
강철은 호텔에서 특별한 손님을 맞이했다.
넷플러스 CEO.
테드 하트리가 강철을 만나기 위해 직접 뉴욕으로 찾아온 것이다.
강철도 살짝 놀랐다. 시가 총액만 240조에 이르는 대기업의 수장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중년 미를 풀풀 풍기는 모습은 영화배우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도 사업가. 그저 친해지기 위해 강철을 찾아온 건 아니었다.
“최근 실리콘 밸리에 이슈가 되는 서비스가 하나 나타났는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주 무대는 한국이지 실리콘 밸리가 아니었다.
테드 하트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DRP. 대산 추천 플랫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걸 사용 중인 기업들의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덕분에 나일의 NCS 개발자들이 죽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비슷한 성능을 내는 추천 플랫폼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져서.”
그 말에 강철이 픽 실소를 흘렸다.
“그래요?”
“하하, 네. NCS에서도 추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해 주긴 하는데 성능에서 많은 차이가 나니까요.”
“다행이네요. 열심히 만든 만큼 성과를 보이니…….”
“그래서 저희도 DRP에 대해 성능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더군요.”
“네.”
“이쯤 되면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사실 넷플러스는 최근 신사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자 테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침 그 신사업이 현재 대표님이 서비스 중인 DRP와 컨셉이 완벽하게 일치했고요. 저희가 강점을 가진 추천 시스템을 외부에 개방해서 서비스로 제공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DRP를 만나게 된 겁니다.”
넷플러스.
그곳의 추천 시스템 성능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자신과 비슷한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강철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넷플러스 CEO 테드를 바라보았다.
“그걸 보니 딱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거 더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겠구나.”
빠르게 일을 진행한다. 강철은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DRP를 사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테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최근 알고리듬을 60억 달러에 매각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보다 높은 금액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 60억 달러라는 말이었다. 현재 ㈜대산의 시가 총액보다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DRP를 다른 곳에 팔려고 만든 게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DRP는 아직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테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아직이라…… 그 말씀은 금액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 같은데요. 그럼 100억 달러라면 어떨까요?”
100억 달러.
현재 환율로 11조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그 말에 강철도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평가가…… 후하시군요.”
“어떻습니까?”
그런 테드를 강철은 유심히 보았다.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
‘디즈니 플러스.’
최근 OTT 시장에 진출한 초강자였다. 그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려면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새로운 캐시카우가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DRP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대산의 캐시카우였다. 미래라면 모르지만 아직은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흠…….”
“최근 DRP는 가파르게 성장 중입니다. 여러 기업이 사용하겠다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요.”
테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지금까지 친절하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말씀드렸지만 저희도 관련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 DRP의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는 겁니다.”
강철이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경쟁은 발전의 밑거름이라 생각하니까요.”
이번에는 테드가 강철을 유심히 보았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안 파는 걸 보면 확실히 팔 생각이 없어 보였다.
테드가 능수능란하게 굳어져 있던 표정을 풀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의 말씀대로 선의의 경쟁을 한번 해보도록 하죠.”
“네.”
테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으로 배웅을 나간 강철은 소파로 돌아와 바로 비서를 불렀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DRP 개발진 회의 소집하세요.”
“알겠습니다.”
호텔 방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이온 인공지능 사무실.
강철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넷플러스.
그곳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추천 플랫폼 때문이었다.
넷플러스의 추천 성능은 나일에 버금갈 정도로 현존 최고로 알려져 있었다.
강철이 개척한 시장에 넷플러스까지 참전한다면 앞으로 경쟁이 더 심화될 게 뻔했다. 그전에 압도적인 성능 차이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강철은 그 해답으로 ‘척 헤이글’이 만들고 있는 ‘사라’를 떠올렸다.
강철의 방문에 척 헤이글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네. 미국까지 온 김에 한 번 찾아와 봤습니다. 개발은 잘되고 있나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난관이 가로막고 있어서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 사라.
그건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서치에 팔린 이후에도 10년이 지난 후에야 상용화가 될만큼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리 쉽게 개발되진 않으리라.
강철도 당장 성과를 기대하고 있진 않았다.
“혹시 진행 상황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고.”
“물론입니다. 저도 한번 대표님께 문의를 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둘은 바로 회의실로 이동했다.
인공지능.
그리고 추천시스템.
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았다. 가장 비슷한 점은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확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확률적으로 A 물건을 살 확률을 높이는 것.
이게 추천시스템이었고.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확률을 높이는 것.
이게 인공지능시스템이었다. 그 안에는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들이 즐비했다. 그걸 단순하게 한 줄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말이었다.
척 헤이글이 설명하고 있는 것도 결국, 확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비지도 학습이 가능한 이른바 S-MEAN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걸 그대로 사용하는 건 여러 단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특정 중심을 설정한 후 해당 중심과의 거리 계산을 통해 ‘사라’가 행동하게 되는데 이때 중심별 가중치 부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척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당 내용을 경청했다.
‘확실히 가장 똑똑하긴 해.’
강철이 현재까지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자신보다 낫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더그 라이스터.
물론 그도 뛰어나긴 하지만 강철은 그의 알고리즘을 개선시켰다. 결과적으로 강철이 더 뛰어난 머리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척 헤이글은 아니었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간에 임의의 점 A를 선택할 때 색다른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그의 설명은 강철로서도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했다. 하지만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설명을 듣고 있던 강철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네.”
“방금 하신 말씀대로면 결국 인공지능의 개성이 최초 결정되는 초깃값 S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군요.”
“네. 마치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개인적인 성향을 타고나는 것과 같습니다. 민감한 사람, 둔한 사람, 똑똑한 사람, 게으른 사람.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이런 성향을 어울리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강철은 설명을 이어나가려는 척을 한 번 더 막았다.
“그렇다면 이 초깃값 S를 잘 잡으면 개인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척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추천시스템 때문에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아요. 이게 추천시스템에 적용되면 개인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서.”
“그렇다면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물론 초깃값 S를 잘 잡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존 추천시스템 성능에서…… 대략 계산을 해보면 30%는 더 향상될 겁니다.”
강철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척이 설명해 놓은 칠판에 수정을 가했다.
“여기 각 초깃값을 구하는 벡터 수식에 범위 제한 조건을 넣고, 해당 초깃값과 군집의 거리를 구하는 식을 이런 식으로 수정하면…….”
척 헤이글이 턱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수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추천에 좀 더 어울리는 공식이 되긴 하네요. 물론 백 테스트는 필요하겠지만요.”
백 테스트.
만들어진 수식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해 보는 과정이었다. 수식을 만드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백 테스트도 그에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강철은 해당 수식을 바로 사진으로 찍어 이제는 추천시스템 PL(프로젝트 리더)를 맡은 천준호에게 전송했다.
이강철 : 이 수식으로 코드 짜서 바로 백테스트 해보세요.
천준호 : 넵!!
지시를 마친 강철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일단 문제 하나는 해결됐고…… 인공지능에 어떤 난관이 있다고요?”
“그럼 방금 이어가던 설명 다시 하겠습니다.”
“네.”
고개를 끄덕인 척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때마다 둘은 치열하게 토론했고, 척이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후.
기술 토론이 끝나고.
둘은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다. 척 헤이글이 몇 가지 할 말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술자답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서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있다고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치가 어떻게 알고?’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최근 제 연구결과로 학사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걸 본 모양입니다. 혹시 서치에 입사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척은 뛰어난 인재니까요.”
“하하, 조금 낯부끄럽네요. 하여튼 그래서 이미 소속이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온 인공지능 대표로 있다고.”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척이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이온 인공지능을 인수하고 싶다 하더군요. 자세한 인수가액은 현 개발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지만 최소한 20억 달러는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억 달러.
2,000억이 넘는 돈이었다.
하지만 액수를 말하는 척의 표정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강철이 평생 일을 안 해도 될 만큼의 돈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척’의 목표는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좋은 제안이긴 하군요.”
“대표님이라면 당연히…….”
“거절합니다.”
“하하, 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번 DRP 시스템을 오픈하면서 타 산업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3자 동의를 통해 아이온 인공지능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두었으니 정리가 되면 바로 접근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걸 활용하면 더 빨리 사라를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서치보다 절대적인 양에서 연구 데이터가 부족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척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제가 드릴 말씀은 끝났습니다.”
척은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 * *
미국 샌프란시스코 서치 본사.
그곳에서 인공지능 분야 기술 총괄을 맡은 노먼 라이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흠…….”
함께 있던 부하직원이 물었다.
“왜요? 그쪽에서 거절했어요?”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20억의 두 배인 40억 달러에도 회사를 팔지 않겠다네.”
“척 헤이글이?”
그 말에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서치의 인공지능 부서의 최대 관심사는 ‘척 헤이글’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들고 있는 ‘사라’라는 인공지능이었다.
부하직원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뭘 만들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40억 달러에도 회사를 팔지 않겠다니.”
“투자자가 따로 있다네. 자신보다 회사 지분이 많데. 그래서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고.”
“투자라니…… 아직 대학생인데 벌써요?”
“지난번에 에이글 데이터 분석 대회 출전했었나 봐. 거기에서 투자자를 만났고.”
“누군데요?”
“알고리듬의 이강철.”
“아! 60억 달러?”
“맞아.”
“와우~ 그 사람 진짜 선구안이 좋네요. 알고리듬에 이어서 넷플러스에서 촬영한 The Startup에 대해서 소문 도는 것 보면 꽤 알짜 기업들을 싹쓸이해 간 것 같던데.”
“그래?”
부하직원이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기술이 성숙하진 않아서 지켜보던 기업 있잖아요. 우리도 Fast Tester 거길 보고 있었거든요. API 테스트 업체인데 사실 그것보다는 가상 머신 관련 기술을 연구 중이라 관심을 가졌는데.”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자기 이강철 그 사람이 투자를 진행했더라고요. 소문에 의하면 가상머신 관련 기술도 해당 회사에 공유를 해주고.”
그 말에 노먼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부하직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잠깐. 가상머신 관련 기술을 공유해?”
“네. 이건 그냥 소문인데 이강철이 거기에 가서 Fast Tester가 개발 중이던 가상 머신 관련 기술에 도움을 주었고, 지분을 획득했다고 해요. 물론 투자도 함께 진행하고요. 그래서 얻은 지분이 50%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런 일이 Fast Tester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쿼트, 나인스, 엑티비티 리절브 등등 여러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에서 동시에 벌어졌다고 해요.”
“그 말은…… 이강철 그 사람이 해당 스타트업에 가서 기술을 가르쳐 주고, 그걸 대가로 지분을 받았다. 이 말이야?”
“하하, 네. 처음에 듣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업만 벌써 10개가 넘어요. 그래서 좀 알아보니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스타트업 여러개를 인수했다고 하더라고요.”
노먼은 한 번 더 놀랐다.
“미국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이 10개가 넘는다고?”
“네. 대략 30개쯤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허…….”
이건 그대로 듣고 있을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우리한테 판 알고리듬 돈을 스타트업에 뿌리고 있다나 뭐라나.”
“그 돈으로 척 헤이글에게도 투자했다. 그리고 다른 스타트업에도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투자를 진행 중이고. 그 말은……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말이군.”
“들어보면 확실한 정도가 아니에요. 다들 ‘천재’라고 하던데요?”
“천재라…….”
그 말을 듣고 나자 노먼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쩌면 아이온 인공지능에도 그의 손길이 깊숙이 닿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서치보다 빠르게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20억.
40억.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인수하는 것이 서치에 최선 일 수 있었다.
“사장님을 만나봐야겠어.”
노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연속해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추천시스템 성능향상.
DRP 시스템 점검.
DSP(대산 재고관리 플랫폼) 개발 계획.
마라톤으로 이어진 회의는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강철도 지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미국에서 이미 추천시스템 성능향상에 관한 힌트를 얻어왔다. 그걸 다시 설명하고, 개발에 적용된 걸 확인하고, 다시 아이디어를 수정하여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DRP 시스템 점검은 또 어떤가.
곧 넷플러스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한 것을 암시했다. 그전에 시스템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놔야 하는 것이다.
오류 상황 대처.
속도 향상.
추천 성능향상 등등.
이제 강철이 점검해야 하는 건 이런 IT 관련 내용만이 아니었다.
대 고객 서비스 점검.
시스템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한 회사의 오너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끝내고 나도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DSP 시스템을 개발 계획부터 점검해야 했다.
-어떻게 개발을 진행할 건지.
-개발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필요한 기술 셋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점검해야 할 사항이 수백 가지를 넘어갔다. 그중에서도 강철이 가장 공을 쏟은 건 ‘엑스게임즈’ 인수였다.
얼마 전, 지수철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강철 씨를 선택한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아이온 게임즈와의 시너지 효과.
-2. 당신이라는 사람.
마지막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동반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함께 벤처 투자회사를 세워 고문해 준다거나 하는.
저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제시한 문서에는 저 말이 사실로 담겨 있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현 시세의 +5%로 한다.
그 문구만 봐도 지수철이 한 말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었다.
대부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의 주식을 블록딜 형태로 넘겨받을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20%를 더한다. 5%라는 것은 거의 최저 수준의 수치였다.
강철은 제안을 수락했고, 결국 지수철이 가지고 있던 엑스게임즈 지분 15%를 장외에서 블록딜 형태로 넘겨받기로 했다.
하지만 강철이 당장 가진 현금은 2,000억.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철은 아이온 그룹을 IPO를 결정했고, 그와 관련된 준비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청담.
아이온 그룹 본사.
그곳에 신주영을 비롯해 강철이 신임하는 심 비서. 그리고 회사의 기획실 실장이 모여 있었다. 아이온 그룹 IPO 관련 회의를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신주영 대표님의 말로는 나스닥에 상장하는 게 가장 좋다는 말씀입니까.”
“네. 아이체크는 이미 세계적인 서비스가 되었으니까요. 이 서비스만 상장해도 시가총액 10조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보다 사용자도 적고, 기술력도 떨어지는 핀트리스트, 인포인, 플립뉴스 등등도 10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체크도 충분히 가능성이 크다고 보입니다.”
아이체크.
이미 해당 서비스의 다운로드 숫자는 앱 스토어 기준으로 5천만을 넘어섰다. 한국을 넘어선 세계적인 서비스가 된 것이다.
신주영은 그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나스닥 심사 통과가 엄청나게 까다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뉴욕에서 제가 활동한 시간이 벌써 반년을 넘어갑니다. 그간 월스트리트의 생태계를 많이 파악했으니까요. 무조건 통과되도록 하겠습니다.”
신주영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간의 성과를 통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긴 탓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에서 상장 심사를 한다면 더 빠르게 통과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대표님이 과학기술 자문위원회 위원에 중기부에서 표창도 받으셨으니까요.”
대화를 나누던 두 직원이 강철을 보았다. 결국, 결정은 강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코스닥.
나스닥.
각각의 장, 단점에 대해 들어보았다. 하지만 강철은 내심 한 곳을 정해놓고 있었다.
‘꿈의 나스닥.’
과거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나스닥에 상장까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던 강철이 결론을 내렸다.
“나스닥으로 합시다. 그리고 아이체크가 10조라는 기업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이온 게임즈도 동시 상장을 추진하고요.”
그 말에 신주영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아이온 게임즈는 아직 게임 포트폴리오가 너무 한정적이라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라이즈 킹덤이 북미 시장에서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강철이 아이온 게임즈의 대표 김봉수를 호출했다.
잠시 후.
회의실로 들어온 김봉수가 라이즈 킹덤의 후속작을 들고 들어왔다.
“나스닥 상장 전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야심작입니다. 게임 타이틀은 ‘워리어’ 세계적인 게임 도타, 리그오브 레전드의 뒤를 잇는 게임이 될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워리어.
강철이 살던 시대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틀딱 게임이 되고, 최신 3D 그래픽을 자랑하는 워리어가 세계 최고의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된다. 강철도 꽤 재밌게 했던 게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게임.
그 인기는 출시 전까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 게임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리라는 것을.
* *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넷 플러스에서 The Startup이 정식 출시 되었다.
그 프로그램이 사이트에 올라오자마자 가장 먼저 시청하는 건 역시나 강철의 어머니 최용희였다.
“희진아! 이희진!”
“왜!”
“와서 이것 좀 틀어봐.”
“또 뭐.”
“네 오빠 출연한 거. 올라왔다고 알람이 왔네.”
방에서 거실로 나온 이희진이 최용희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살폈다. 거기에는 정말 알람이 하나 떠 있었다.
-The Statrtup. 제1화 Fast Tester 방송 중.
“이 알람은 또 어떻게 했데?”
“이건 네 오빠가 해줬지.”
이희진은 툴툴거리면서도 TV에서 넷플러스에 접속해 해당 방송을 틀어주었다.
이희진은 동시에 인터넷에 뜨는 뉴스들을 확인해 보았다.
-The Statrtup. 제1화 Fast Tester 출시!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다. The Startup.
우호적인 기사들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댓글들 반응도 하나같이 긍정적이었다.
그걸 보던 최용희가 불쑥 물었다.
“뭐래?”
“재밌다는데.”
“역시. 누구 아들인데.”
넷플러스 내에서 인기순위도 엄청났다. 업로드되자마자 TOP 5를 기록한 것이다.
Monster
2. Bombman
……..
5. The Startup.
전체 인기순위에서도 5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희진은 프로그램의 반응을 살피고, 최용희는 TV에 나오는 이강철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이 뿌듯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비슷한 일이.
트리플 숙소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오오~ 이강철 대표님 저분 꽤 잘생겼잖아.”
가장 친한 동료인 아린의 말에 엘리가 TV에 나오는 강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 중에는 확실히 괜찮은 인물이었다.
엘리의 동료가 짓궂은 얼굴로 물었다.
“저 대표님 아직 20대라면서?”
“그치.”
아린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너도 20대고.”
“그런 일 없어.”
“난 찬성.”
“나도.”
“나도!”
“나아아아도!”
트리플은 4인조 걸그룹.
그중 3명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엘리를 보며 손을 들었다. 엘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걸까아아.”
동료들의 놀림에 엘리의 귀가 조금씩 붉어졌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도 아린이었다.
아린이 엘리의 귀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 얘 봐봐 귀 빨개졌어.”
“아니, 그건 네가 자꾸.”
“설마 너 진짜?”
“아, 아니라니까.”
엘리는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아린이 그 뒷모습을 보며 황망히 중얼거렸다.
“설마 진짠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엘리는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차갑게 대꾸해야 정상인데…….
아린은 급히 엘리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 * *
비슷한 시각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국장 천수잉은 이번에 올라온 판호 발급 대상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천년수호, 청룡언월도, 왕자영오…….”
하나같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간혹 미국이나 일본에서 제작된 게임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발급된 게임은 없었다.
윗선의 지시로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게임도 8개가 신청했지만 전부 배제했습니다.”
천수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지시한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 부하직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만…… 최근 한국의 지수철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 사장이? 왜?”
“라이즈 킹덤에 대해 판호 발급을 해줬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흠…….”
“아시겠지만 지수철 사장은 윗선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 마냥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천수잉 국장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수철은 윗선만이 아니라 자신과도 꽤 안면이 있었다. 벌써 10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라이즈 킹덤은 엑스게임즈 출시작도 아니잖아?”
“네. 아이온 게임즈라는 곳에서 만든 게임인데 최근 IT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강철이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이강철…… 이강철……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부하직원이 바로 입을 열었다.
“The Startup의 주인공으로, 넷플러스와 함께 중국 스타트업 투자 준비 중입니다.”
천수잉이 검지를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The Startup.”
천수잉도 재밌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넷플러스가 아직 중국에 정식으로 진출해 있지는 않았다. 천수잉의 딸이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해 보던 영상을 우연히 본 것이다.
“네. 그게 인기를 끌면서 넷플러스 측에서 시즌 2는 중국에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걸 기점으로 중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하겠다며 관련 문의를 하는 중이고요.”
“우리 쪽에도 검토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맞습니다.”
천수잉이 생각에 잠겼다.
지수철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허락해 주는 게 맞지만 근 3년간 한국 게임은 단 하나의 판호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허락한다는 건 자신의 결정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한번 확인해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하직원은 절대 판호는 나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한국은 미국에 더 가까우니까.’
세계의 중심인 중국을 멀리하고, 미국을 가까이하는 이상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 * *
-The Startup. 시즌 2 제작 확정. 다음 나라는 중국에서!
-넷플러스 인기 프로그램 3위 The Startup.
-이강철 대표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
-아이온 그룹의 대표, 대산그룹의 CTO. 그리고 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자.
아침부터 강철과 관련된 뉴스가 쏟아졌다. 그걸 보는 진용민의 표정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강철, 이강철. 이놈의 이강철 얘기는 도대체 얼마나 더 봐야 하는 거야!”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보고 있던 신문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모습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신문을 집어 들어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진용민이 그런 비서를 보며 물었다.
“소액주주 위임장 현황은 어떻게 됐어?”
“15%까지 올라갔던 우호지분이 9%대로 떨어졌습니다. 방송이 나가고부터 그 추세는 더 가속화되는 추세고요.”
“곧 3분기 실적 발표지?”
“네.”
“회사 분위기는 어때?”
비서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실대로 보고했다가는 화를 낼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하게 될 말이기도 했다.
“DRP 매출이 서서히 올라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3분기에만 500억입니다.”
그 말에 진용민이 픽 헛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안 되잖아. 대산 한 해 매출이 5조인데 500억 가지고.”
하지만 비서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영업이익률이 엄청납니다.”
“얼만데?”
“40%라고 합니다.”
“……뭐?”
“500억 중 200억이 영업이익입니다. 매출은 지속해서 늘어나는 중이고요.”
믿지 못한 진용민이 다시 물었다.
“……그거 말이 되는 숫자야?”
“회계팀에 확인했으니 맞을 겁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을 겁니다. 그게 알려지면 대, 내외적으로 고객사들의 단가 인하 압력이 있을 수 있어서.”
진용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곤 할 말을 잃어버렸다.
㈜대산의 핵심 사업인 백화점 매출이 5조였다.
거기에 영업이익이 대략 3,000억이었다.
영업이익률 6%.
40%라는 숫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 정도면 거의 게임 쪽과 비슷한 거 같은데…….”
“맞습니다. 이것도 한번 시스템을 구축해 놓으면 고객이 늘어날 때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니까요. 소위 영업레버리지가 높은 사업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진용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또 뭐?”
“대산 마트가 점점 ㈜대산에 종속적으로 변해갑니다.”
“종속적?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이를테면 이제 대산마트에서 DRP는 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걸 사용하지 않으면 매출이 10% 정도 깎일 것이라는 보고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한, 이강철 이사가 추진 중인 물류자동화시스템도 ㈜대산의 것입니다. 만약 대산 마트가 다른 쪽으로 넘어가면 사용료가 비싸질 겁니다. 그리고.”
진용민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다.
“또 뭐.”
“DSP.”
“DSP?”
“대산 재고 관리 플랫폼이라고 합니다. 그걸 개발에 대산 마트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진용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툭 내뱉었다.
“그냥 그런 것들 다 안 쓰면 되잖아.”
“그러면 매출이 20% 정도, 비용은 30% 정도 올라간다는 것이 내부 결론입니다.”
매출은 20% 다운.
비용은 30% 상승.
수치만 보면 무조건 써야 하는 것들이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강철 CTO가 이런 식으로 대산 마트를 ㈜대산에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대산의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마트가 돌아갈 수 없도록.”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진용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일이 더 어려워지고 있어.’
어쩌면 대산 마트를 다시 찾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도 집무실에서 넷플러스에서 방송되는 자신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 부분을 몇 번이나 돌려 보았다. 다시 들을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졌다.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강철이 급히 인터넷 브라우저를 껐다. 이내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CTO님. DRP 1차 점검 시간입니다.”
“아, 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회의실에 도착하자 참석해 있던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방송 잘 봤습니다.”
“이것도 인기가 장난 아니던데요.”
강철이 괜히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하하, 그래요?”
“네. 화면발도 잘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잘생겼다고 난리입니다.”
“하하, 하하하.”
칭찬이 계속될수록 강철의 웃음소리도 높아져 갔다.
그렇게 안부를 나누는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헤픈 웃음을 흘리던 강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현재 최고 성능이 35%, 40%까지는 올려야 넷플러스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가장 중요한 건 초깃값 설정입니다. 이 개념은 꼭 가져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개별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완벽하게 구축해 해당 고객의 특징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맞아요. 방법은 무엇을 사용해도 상관없습니다. 제대로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요.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시스템은 분명 40%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강철의 설명을 회의 참석자들은 받아적기에 급급했다.
MIT.
하버드.
한국대.
등등 한국을 비롯해 해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참석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지만, 강철과 토론을 벌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강철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까지 ‘척 헤이글’ 그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바로 DSP 관련 회의가 진행되었다. 강철이 화면 앞에 서서 직접 시스템 구성도를 설명했다.
“먼저 DSP는 DRP와 마찬가지로 MA(Microservices Architecture) 구성을 하게 될 겁니다. 각 기능 간 의존성을 최대한 줄여서 서비스의 성능은 향상하고 한 기능이 다운된다 해도 서비스 전체는 살아 있을 수 있도록.”
강철이 앞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여러 단점이 있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개발의 복잡도가 올라가고, 기존 시스템보다 서버 대수가 늘어나 관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연히 빌드, 배포, 형상 관리가 어려워질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요구사항이 생길 DSP를 기존 대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DRP 회의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강철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기 급급했다.
“다음은 개발 언어입니다. 여러분이 검토해온 언어는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고성능 MA 구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언어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알고리즘 쪽에는 가장 빠르고 범용성을 가진 C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대량 데이터 분석 쪽에는 파이썬보다 빠르다 알려진 스칼라를 채택하는 걸 검토해보세요.”
강철의 설명은 그 뒤로도 수십 분이 이어졌고, 개발 계획은 점점 완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강철은 앉자마자 다시 넷플러스를 실행시켰다. 요즘 이곳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보지도 못하고 바로 꺼야 했다. 비서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서치 한국지사장이 면담 요청을 해왔습니다.”
“면담이요?”
“네. 아이온 인공지능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약속 잡으세요.”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면서 당장 오늘이라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오늘 저녁 일정에 뭐가 있었죠?”
“넷플러스 런칭 축하 파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흠…….”
고심하던 강철이 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쪽에는 일정이 생겨 참석 못 할 것 같다고 말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큰 건인 것 같으니.”
“네.”
* * *
잠시 후 저녁 7시.
강철은 청담 아이온 그룹 본사 건물에 있었다. 청담에서 가장 높은 7층짜리 빌딩이었다.
그곳에서 강철은 서치 한국지사장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간단한 인사치레가 오가고 한국지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온 인공지능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들었습니다. 특히나 ‘척 헤이글’이라는 인재가 대표님과 조화를 이루면서요.”
역시나.
생각했던 주제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제안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금액을 좀 올리기로 했습니다. 알고리듬과 같은 60억 달러로요. 어떻습니까?”
이내 지사장이 강철의 눈치를 살폈다. 강철은 살짝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60억 달러.
분명 큰돈이었다. 하지만 10년 뒤 척 헤이글이 만든 사라의 가치는 500억 달러가 된다. 물론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미래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500억이라는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
‘그에 비하면 10배나 적은 금액이다.’
강철은 머릿속으로 얼마 전 공부한 기업가치 평가방법을 떠올렸다.
DCF 일명 현금흐름할인법.
미래 기업이 창출할 현금을 현재의 가치로 할인하여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방법으로 대략 계산해 봐도 60억 달러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강철의 고개가 막 돌아가려 할 때 지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80억 달러는 어떻습니까?”
단숨에 20억 달러가 올라갔다. 지사장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대표님이 앞으로 5년간 인공지능 관련 연구에 합류해 주셔야 합니다.”
의외의 조건에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요?”
“네. 척 헤이글도 대표님을 많이 의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에이글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셨고요. 그 밖에도 대내외적으로 여러 시스템 개발에 직접 참여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신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제가 합류하는 것으로 20억 달러가 올라간다…….”
2조가 넘는 돈이었다. 기분 좋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80억 달러에도 매각할 의사는 없었다. 아직 성과는 나오지 않았고, 개발 중인 시스템이지만 미래 어떻게 될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지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부족하십니까?”
그 질문에 강철은 단호히 답했다.
“네.”
그 단호함에 지사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표님 아직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연구입니다. 단 1원의 수익금도 회원도 없는 그저 개발 중인 시스템이고요. 앞으로 투자해야 할 비용만 얼마가 들어갈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80억 달러면 정말 엄청난 금액입니다.”
“물론 미래가 불확실하면 그럴 겁니다.”
“…….”
“하지만 개발이 확실하다면요?”
“…네?”
“현재 개발 중인 ‘사라’ 그 계획이 완벽히 실행될 거로 생각한다면 얼마를 제시하시겠습니까?”
강철이 역으로 물은 질문에 지사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의 권한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금액은 여기까지였다.
“……잠시만요. 본사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본사 C 레벨과 통화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미국 서치 본사.
기다리고 있던 연락을 받은 서치 CEO 앨런 파인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쪽에서 80억 달러를 거절했습니다. 계약할 수 없다 뭐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거로 봐서는 분명 여지를 남겨둔 것 같기는 한데…….”
“그럼 더 큰 금액을 원한다는 말이군요.”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 80억 달러나 제안했는데도 더 큰 금액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과하긴 합니다.”
앨런이 회의참석자들을 보며 물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의에는 회사의 주요 이사진이 전부 참석해 있었다. 그중 기술 담당 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반대입니다. 현재 해당 기술에 대한 논문과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몇 가지 예시가 전부인 상황입니다. 그런 기술을 8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과거 딥 체인저도 겨우 6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과하긴 하죠. 10배나 차이가 나니.”
기술 이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 무려 10배입니다. 그런데 그 성능이 10배나 차이가 날까요? 전 의문입니다. 아이온 인공지능에서 보내온 시연 연상도 과거 딥 체인저가 보여줬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때.
노먼 라이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노먼이 빠르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딥 체인저가 비슷한 학습을 위해 사용한 시스템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실 겁니다.”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딥 체인저.
현재 서치의 대표적인 인공지능이지만 매년 수백억의 적자가 나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해당 시스템 유지를 위해 엄청난 양의 서버가 필요했고, 그 유지보수 비용만 해도 그만큼의 비용이 소모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온 인공지능의 ‘사라’는 다릅니다. 비슷한 성능을 내는데 필요한 자원이 딥 체인저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겁니다. 이를테면 경량화된 인공지능이라 볼 수 있는 거죠.”
그러자 기술 이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내용은 없지 않았습니까.”
“저도 처음 전달받고 믿기지 않아 확인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아이온 인공지능을 직접 방문해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의 시선이 노먼의 입을 향했다. 노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사실이더군요. 그래서 이 회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회의를 하자고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흠…….”
“절반이라…….”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노먼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연산 속도. 경량화된 것만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풀 때 걸리는 시간도 40% 정도가 빨랐습니다.”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인공지능 성능 평가에 측정되는 AI 퍼포먼스 테스트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AI 퍼포먼스 테스트.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성능을 측정하기 위한 평가도구였다.
속도, 정확성, 추론, 기억 등등 여러 평가 기준이 세워져 있었고, 노먼이 말한 건 그 중 속도를 뜻했다.
노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는 딥 체인저에 뒤지고 있었지만, 속도 면에서는 달랐습니다.”
그 말을 들은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시가총액 수백조가 넘는 서치의 인공지능을 속도에서 따돌렸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노먼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 역시 100억 달러는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강철이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가 만든 라이트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준 이익을 생각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알고리듬.
거기에서 만든 라이트 알고리즘을 도입한 이후 서치는 엄청난 시스템 비용을 절약하고 있었다.
서버를 한 대, 두 대 사용한다면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치에서 운영하는 서버는 100만대를 족히 넘어간다. 이동하는 데이터양을 줄였을 때의 비용 절감 효과가 엄청난 것이다.
노먼이 쐐기를 박았다.
“그런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입니다. 이미 그 결과를 조금 엿보기도 했고요.”
노먼의 말에 앨런의 고심이 깊어졌다.
60억 달러.
그에 이은 80억 달러를 넘어설지도 모를 M&A.
그건 분명 서치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회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만큼 거대한 결정이기도 했다.
앨런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 * *
늦은 밤.
청담 아이온 그룹 본사.
강철은 늦게까지 남아 밀린 서류에 결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서류를 집어 든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판호 발급 불가.
그걸 본 강철이 심 비서에게 물었다.
“결국, 불가통보를 받았군요.”
“네. 지수철 사장도 힘을 썼다고는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흠…….”
“중국 시장 진출은 추후를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철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중국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그걸 이대로 포기한다는 것이 사업가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 비서가 서류를 살피는 강철에게 말했다.
“그리고 서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의논을 해보고 결정을 한다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닐 테니까요.”
“또한 넷플러스에서 한 번 더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DRP 시스템을 팔 생각이 없냐고.”
“없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심 비서의 표정에 의문이 서렸다.
인공지능.
그건 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왜 DRP는 단호히 팔지 않는 것일까.
그런 마음을 눈치챈 강철이 툭 한마디 내뱉었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을 개발한 건 ‘척 헤이글’입니다. 알고리듬의 라이트 알고리즘을 만든 건 에드워드 브룩이고요. 그들이 비록 계약상으로 묶여 있긴 하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강철이 자신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하지만 DRP는 다릅니다. 제가 처음부터 직접 설계하고 만든 시스템. 남다른 애착이 있을뿐더러 그 기술이 어디로 가진 않죠.”
“그러니까. 두 회사는 개발을 직접 한 인원들이 다른 곳에 가서 비슷한 걸 만들어도 막을 방도가 없지만, DRP는 아니다.”
“맞아요. 그래서 DRP는 팔지 않고, 다른 사업들은 가격만 맞으면 팔 생각을 하는 겁니다. 특히나 제가 투자한 이런 스타트업들은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심 비서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앞으로 일 처리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네.”
강철은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서류를 전부 처리하려면 한참을 더 일해야 했다.
* * *
비슷한 시각.
대산 그룹 본사 사무실 불도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회사에 남아 강철이 알려준 알고리즘을 구현하던 천준호가 빤히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속도문제가 생기겠는데…….”
현재 실시간 추천 서비스의 제공 속도는 최대 1000ms 즉 1초였다. 하지만 강철이 알려준 대로 알고리즘을 코드화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1.5초가 걸리고 있었다. 여러 방법으로 최적화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흠…… 이걸 어떻게 한다.”
천준호는 자신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매일 야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며칠째 고민하고 있었지만 도통 해결책이 나오질 않았다.
“하아…….”
그러면서 탁탁.
엔터키를 쳐보았다. 테스트 프로그램이 돌아가며 화면에 결과가 나타났다.
-1500ms.
-1700ms.
-1400ms.
-1500ms.
대충 평균을 내보면 1500ms.
고객사에 서비스할 속도가 아니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천준호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자신의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CTO님께 헬프 요청을 해야 하나…….”
씁쓸한 입맛을 다신 천준호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천준호는 바로 강철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강철이라고 당장 뾰족한 수가 생각나진 않았다.
그 덕분에.
야심한 밤.
강철은 잠들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속도 관련 논문이…….”
강철도 이리저리 관련 내용을 찾아보며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RISS.
PQDT Global.
서치 논문검색.
등등 수많은 논문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해 관련 있는 내용을 찾아보았다.
-초경량 딥러닝 성능 개선 설계 및 개발
-하이브리드 필터링 추천 성능 향상 방안.
-마이크로서비스 시스템 설계의 표준.
등등 속도 관련 분야는 가리지 않고 학습했다.
그렇게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던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 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휴우…… 쉽지 않아.”
확실히 천준호가 며칠을 고민해도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마이크로 서비스를 포기하고, 통짜로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고민에 휩싸여 있던 강철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엘리 : 많이 바쁘신가 봐요. 회식도 못 나오시고.
“엘리?”
강철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이런 야심한 밤에 갑자기 왜?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강철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논문에 집중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강철의 눈에 한 논문이 눈에 들어왔다.
-딥러닝 관련 프로그래밍 언어별 속도 비교 및 성능 향상 방안 고찰.
한국의 한 박사 논문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의 성능을 벤치마킹 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가장 최적의 언어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강철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대안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직접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결론을 내린 강철은 이번에는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 관련 논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강철의 머릿속에서 답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 *
미국 샌프란시스코 올드카 닷컴.
그곳에서 데이터 분석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마크 리퍼트는 요즘 회사 다닐 맛이 났다. 그의 제안으로 회사에서는 DRP를 채택했고, 덕분에 매출이 20% 신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중 8%가량이 DRP 사용 비용으로 나가지만 그걸 제하고도 12%가 이익이었다. 그런 그를 올드카 닷컴의 CEO가 호출했다.
마크가 앉자마자 CEO가 서류 뭉치 하나를 건넸다.
“이거 한번 검토해 봐.”
“뭡니까. 이게?”
“넷플러스라고 알지?”
“네.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잖아요.”
“그래. 또 한 가지 유명한 게 있잖아.”
“추천이요?”
CEO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극비리에 제안을 하나 해왔어.”
“어떤…….”
“자신들이 추천 플랫폼을 하나 만들 건데 DRP보다 더 싼 가격에 공급해 주겠다고 하네.”
“네에?”
“넷플러스야 전통의 강자니까. 더 잘하지 않겠어?”
“그럼 이 서류는…….”
“그쪽에서 준 프로토콜 서류야. 우리 쪽에 적용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한번 검토해 보라고. 대외비라니까, 보고 바로 폐기해.”
“그럼 바꾸시기로 마음을 먹으신 겁니까?”
“비용은 싸고, 성능은 더 좋은데 안 쓸 이유가 없잖아.”
너무나 맞는 말이라 마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비단 올드카 닷컴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DRP를 사용하는 대부분 회사에 비슷한 제안이 도착해 있었다.
to be continued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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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KIN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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