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28화 (28/59)

6장 아이온 사단(2)

한국 청와대.

연락을 받은 정책실장 서종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네.”

달칵.

이내 전화가 끊기고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함께 있던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락 왔습니까?”

서종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나 고용은 계획한 바가 있어서 올해 안으로 차근차근 진행될 거고, 심사관은 따로 일정이 있어서 안 되겠다고 하네.”

“결국, 자기들 맘대로 하겠다는 뜻이군요.”

정책실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투자.

고용.

그 두 가지를 말한 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관련 내용을 집행해 달라는 뜻이었다. 한 기업의 수장이 그 정도 뉘앙스도 모르진 않으리라.

그런데 기업에서 계획하고 있는 바에 따라 추진한다고 하다니…….

“확실히 강단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정도로 이야기했으면 알아듣고 먼저 액션을 할 법도 한데.”

“흠…… 전경련에서 온 연락. 아직 진행 중인 거 없지?”

“네. 딱히 저희가 움직일 만한 요소가 없어서 멈춰 있습니다. 검찰이나 국세청을 청와대에서 움직이는 건 좀.”

“그럼 공정위 쪽은 어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들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곳이었다.

“아…… 그쪽이라면 뭔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더구나.”

“내 후임들이 능력 있는 친구가 많지.”

서종석.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에서 정책실장으로 영전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공정거래위원회에 그와 친분이 있는 인물이 많았다.

“일단 대산 그룹 자체가 공정위 위반 소지가 많고, 최근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딜리버리브라더스도 법을 어긴 케이스가 있을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경우가 없으니까요. 꼭 먼지를 털겠다는 것보다는 이쯤에서 한번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흠…….”

서종석이 턱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브레이크.

그걸 밟으면 기업에서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앞으로 기업에 협조를 구할 때 한결 편해지긴 하리라.

하지만 그에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았다. 해당 기업인과 공생이 아닌 피곤한 눈치 게임을 벌여야 한다.

“다만 실장님도 아시겠지만 요즘 이강철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타트업을 찾아라’는 방송 덕분에 여론도 호의적이고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오는 이점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보좌관이 장단점에 대해 더 설명하고 나서, 서종석이 깊은숨을 쉬었다.

“그래, 좀 더 지켜보지.”

“알겠습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집무실에서 진선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선미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강철을 보았다.

“정말 이럴 거예요?”

강철이 의뭉을 떨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오성. 진성호 회장. 그가 대산 그룹을 탐내고 있다고요.”

강철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관없습니다.”

“마트를 빼앗겨도 괜찮다는 말이에요? 더구나 ㈜대산의 지분 대부분이 미국 자본인데 오성의 힘은 한국에만 미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언제까지 당신의 편에 설 거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첫 번째 어차피 오프라인 마트는 지점 폐쇄를 고려 중이라 가져가도 크게 타격은 없습니다. 둘째 ㈜대산이 넘어갈 일은 없습니다.”

넘어갈 일이 없다. 그 말에서 진선미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설마 미국 자본들이 전부…….”

강철이 쐐기를 박았다.

“그들이 왜 절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일을 잘해서? 알고리듬을 서치에 매각해서?”

진선미도 재벌가의 여식으로 눈치가 있는 여자였다. 강철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빠르게 알아차렸다.

“차명 계좌 만든 거예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어쨌든…… 미국 자본이 결과적으로 당신 것이라는 말이군요.”

강철은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긍정을 표했다.

“알고리듬을 매각한 자금만 60억 달러입니다. 아이온 그룹은 제가 80% 지분을 가진 개인 회사나 마찬가지고요.”

그 말에 진선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가끔 CTO라는 직책 때문에 있었던 사실이 기억났다.

‘하긴 아이온 그룹이 상장하면 국내 부호 순위 5위에도 들 수 있는 사람이었지. 물론 지금도 엄청난 돈을 소유 중이고…….’

진선미가 새초롬하게 눈을 뜨며 강철을 보았다.

“그러니 상관없다.”

“뭐랄까. 전무님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사 일만 잘해주세요.”

진선미가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곤 도발적인 눈빛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절 더 알아볼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삐질.

강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하, 네 뭐.”

진선미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곤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댔다.

“휴우…… 그냥 포기해야 하나. 하긴 생각해 보면 CTO님과 나이 차도 많이 나고 그쵸?”

나이 차.

강철이 죽기 전 나이가 45살이었다. 그렇게 보면 진선미는 오히려 연하였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해줄 필요를 느끼진 못했다.

“네.”

“냉정하네요.”

“질질 끄는 건 서로를 위해 좋지 않으니까요.”

또 한 번 깊은숨을 내쉰 진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깔끔하게 포기하도록 할게요.”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이내.

진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강철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아찔한 뒤태가 강철의 도파민을 과하게 분비시켰기 때문이었다.

‘너무 일만 하고 살았나…….’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진선미와의 일을 마무리하고.

비서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넷플러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말을 이었다.

“이번 The Startup. 촬영을 2MC 체제로 진행해보자고 합니다.”

The Startup.

강철이 진행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찾아서’의 넷플러스 버전이었다.

“그것도 괜찮군요. 제가 방송에는 미숙하니까요.”

그 말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런데 상대가 아나운서가 아니라 여자 아이돌입니다.”

“아이돌이요?”

“네. 최근 빌보드 차트 인을 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인 트리플의 엘리라고 합니다.”

강철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에, 엘리요?”

트리플.

IJ 엔터테인먼트 출신 걸그룹으로 회귀 후 강철에게 큰 수확을 안겨준 그룹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철의 최애 걸그룹이기도 했다.

“네. 이왕이면 아나운서가 좋을 텐데…… 걸그룹은 스타트업에 대한 지식도 부족할 테니까요. 아마 화제성을 중심으로 섭외를 한 모양입니다. 소속사에서도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빌보드 차트인을 했으니 그걸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 같고요.”

하지만 강철에게 그런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트리플의 엘리라니…… 트리플의 엘리라니!’

과거 벤처를 창업하고 계속 망하기만 할 때 지쳐 있는 심신을 위로해 준 것이 트리플의 노래였다. 그중에서도 엘리의 음색에 흠뻑 빠져 그녀의 파트만 반복해서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녔다.

비서가 생각에 빠진 강철에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난 강철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바, 바꿔요? 뭘 바꿉니까.”

“네?”

강철이 급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냥 그대로 갑시다. 다 생각이 있으니 섭외를 했겠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말씀하신 엑스게임즈 인수 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강철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이내 비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수철 사장이 게임 산업에 흥미를 잃은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이걸 판 돈으로 다른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보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투자를요?”

“네. 상당한 야망이 있는 인물인데 게임으로는 세계 10대 기업에 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투자를 해보려고 하는데 자본금이 부족한 거죠.”

“흠…….”

“더 자세한 건 만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둘의 대화는 한 시간이 더 흘러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트리플의 엘리와 자리가 마련되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상대는 빌보드 차트 인까지 한 세계적인 여자 아이돌 그룹 트리플의 엘리. 그녀를 보자마자 강철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바, 반갑습니다. 이강철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엘리가 핏줄이 보일 것 같은 하얀색 손을 내밀었다.

“엘리예요.”

강철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긴장으로 인해 손바닥이 순식간에 땀으로 축축해졌다. 덕분에 강철의 손을 잡은 엘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강철의 가슴이 한층 더 가파르게 뛰어버렸다. 귀가 발갛게 변하고, 볼에는 홍조가 나타났다.

강철은 재빨리 손을 떼고, 괜한 헛기침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쁘긴 이쁘다.’

회귀 전 자신이 봤다면 한눈에 반했으리라. 그만큼 예뻤고, 또 매력적이었다.

그녀를 보는 강철의 입가에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짧은 악수 시간이 끝나고, 엘리가 소속된 IJ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입을 열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소속사에서도 사장이 직접 온 것이다.

“이렇게 출연 섭외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리플이 최근 빌보드 차트 인을 하면서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인지도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 윈윈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트리플의 국내 인기야. 어마어마하니까요. 저도 종종 트리플의 썸타임을 듣습니다.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썸타임.

이번 빌보드 차트인 한 노래로,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었다. 노래가 좋다는 칭찬에 엘리가 분홍빛 입술을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일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 모습에 강철의 두근거리는 가슴도 조금은 진정되었다. 이 상황에 조금씩 적응이 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이 한마디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강철이 비서에게 손짓하자 트리플의 앨범을 가지고 왔다.

“여기 사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진짜 팬이라서…….”

그 말에 엘리는 바로 펜을 들어 사인을 해주었다.

‘이런 게 성덕인가…….’

새삼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이 실감 나는 하루였다.

* * *

며칠 후.

미국 실리콘 밸리 나일의 NCS 추천 플랫폼 담당자 스티브 포브스는 벅벅 머리를 긁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라이스터 교수 섭외 실패?”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성능 테스트 결과 DRP 추천 성능이 얼마 나왔는지 알아?”

“얼마?”

“35%.”

그 말에 동료가 두 눈을 부릅떴다.

“35%? 그 수치면 NCS 추천 플랫폼이 아니라 나일 쇼핑몰 추천 성능과 비슷한 수치잖아.”

스티브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비등한 수치지. 그리고 이대로 가만히 두면 회사에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질 테고.”

동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일.

이 치열한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항상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CEO님 스타일 잘 알잖아. 남보다 못하면 바로 날아가는 거.”

“…….”

동료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라이스터 교수님 섭외가 실패했다는 건 죽으나 사나 사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스티브가 고민에 휩싸였다.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성능 향상을 하려면 최소한 1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일의 CEO는 그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1. 이대로 잘린다.

2. 외부인사를 영입한다.

2번째 방법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1번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한숨을 푹푹 쉬며 핸드폰을 보던 스티브가 눈을 반짝였다.

-The Startup.

-You can also be the main character of the unicorn.

당신도 유니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3번째 선택지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두운 밤.

강철이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염치가 없지만.

으로 시작하는 문구는 과거 인연이 있는 윌마트의 루이스 캐스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재고 관리 시스템 성능 향상에 도움을 달라…….”

과거 추천 시스템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줬던 것처럼 재고 관리 시스템 성능 향상에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윌마트.

미국에서 나일을 상대할 유일한 유통그룹이었다. 나일이 온라인에 강점을 두고 있다면 윌마트는 오프라인에 강점을 두고 있었다.

윌마트는 그 강점을 살리는 전략으로 치열하게 나일과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흠…….”

하지만 강철의 고민은 도움을 주고, 말고가 아니었다.

“윌마트를 인수할 수 있다면…….”

윌마트를 인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최고 그룹 오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어제를 기준으로 360조였다.

윌마트의 시가총액은 437조. 강철이 가진 자산을 전부 팔아도 윌마트의 지분 10%도 가질 수 없었다.

“당장은 어려워. 하지만 언젠가…….”

벌써 두 번째 받은 메일을 통해 윌마트의 약점을 알 수 있었다.

IT.

추천 시스템에서부터 재고 관리 시스템까지. 성능 향상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아마 IT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물론 세계 최고의 기업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력까지 세계 최고는 아니었다.

“DRP를 윌마트의 페이지에 넣고, 재고 관리 시스템 역시 우리 쪽 걸 사용하도록 하면…….”

그렇게 하나씩 윌마트의 시스템에 자신의 손길을 넣으면 대산 그룹을 인수했던 것처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슬며시 피어올랐다.

미간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강철이 이내 결심을 굳히고 답장을 작성해 나갔다.

-도움을 드리겠다.

-단, 조언의 형식이 아닌 DRP처럼 우리 쪽 DSP를 사용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다.

DSP(대산 재고 플랫폼).

오늘 받은 메일을 통해 착안한 시스템의 이름이었다.

다음 날.

강철은 바로 전략기획실에 DSP의 사업성에 대한 자료조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재고 관리 시스템의 운영팀에서 DSP 개발 가능성에 대한 조사 역시 진행 시켰다.

사업성.

개발 가능성.

이 두 가지는 개발을 진행하기 전 선행되어야 하는 조사였기 때문이었다.

지시를 들은 비서가 다음 보고 사항을 이야기했다.

“넷플러스에서 미국 광고 시작했습니다. 첫 촬영일은 2주 후에 시작하려고 하는데, 일정이 괜찮은지 물어왔습니다.”

2주 후.

딱히 급한 일정이 없었기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MC는 트리플의 엘리 씨와 2인 체제로 진행하는 거로 결정하겠습니다.”

강철은 엘리라는 말만 들어도 미소가 비집고 새어 나오려 했다.

삼촌 팬.

과거 그는 트리플의 찐 삼촌 패이기 때문이었다.

“네.”

“그리고 중기부에서 표창을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표창이요?”

“‘스타트업을 찾아라’로 벤처 투자 활성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이유입니다.”

“흠…….”

“거절할까요?”

“아닙니다. 심 비서 말대로 정부와 무조건 척을 지는 것도 모양새가 안 나오니까요. 이번에는 가서 만나보도록 하죠.”

“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대화하던 강철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대산 마트 우호지분 확보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것도 순항 중입니다. ‘스타트업을 찾아라’가 인기를 끌면서 CTO님에 대한 대외 이미지가 좋아져서인지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최근 대산마트 주가가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장내에서 주식을 매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주명부를 확인해 봐도 딱히 특별한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성에서 차명 계좌로 매집하는 것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하지만 강철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오성 전자 하나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왜 대산을 탐내는지…….”

그 말에 비서가 물끄러미 강철을 보았다.

그 순간.

강철은 깨달았다.

‘하긴 내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닌가.’

유통사업을 기반으로 온갖 스타트업에 씨를 뿌리며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더구나 아이온 그룹은 어떤가. 이미 거기에 소속된 자회사만 5개가 넘어갔다. 욕심으로 치면 강철도 진성호에 못지않은 것이다.

강철이 오른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돼요. 왜인지 알 것 같으니까. 진선미 전무에게 들은 것도 있고.”

그 말에 비서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정 안되면 마트는 넘겨줘도 됩니다. 주요 소프트웨어를 ㈜대산에서 가지고 있으면 대산마트는 쭉정이에 불과하니까요.”

강철의 말대로 대산 그룹은 그 체질이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기술 서비스 기업.

이제 대산 마트도 ㈜대산에서 만들어낸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류 자동화 시스템.

-추천시스템.

-ERP.

등등.

앞으로 재고 관리 시스템까지 플랫폼화시켜서 대산 마트에 제공한다면 의존도는 더 심화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리해서 지분 매입은 하지 않겠습니다.”

강철이 단호히 답했다.

“네. 차라리 그 돈으로 스타트업 하나 더 투자하는 게 낫습니다.”

며칠 뒤.

강철은 약속대로 중소벤처 기업부를 찾았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장관이 나와 강철을 맞이했고, 간단한 인사를 한 후에 다과회 시간을 가졌다.

칭찬 일색.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보자면 강철은 칭찬할 일밖에 없었다.

벤처 투자.

고용.

투자.

등등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칭찬 폭풍이 지나가고 장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최근 정부에서 IT 관련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체가 없다.’, ‘혈세 낭비다’, ‘방향이 잘못되었다.’ 등등 여러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강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뉴스를 보기 때문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좋은 방안이 나오질 않고 있어요.”

“계획은 이미 발표된 것 아닌가요?”

“하하, 그건 그저 큰 틀에 불과합니다. 세부 예산 배정은 다시 이루어질 겁니다.”

정부 일은 잘 모르기에 강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기부 장관의 하소연이 마무리될 때쯤 본론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과학기술회의의 IT 기술 기반 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문위원이요?”

“네. 만약 수락만 해주시면 관련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을 엮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것마저 거부하면…….’

아마 지난번 청와대에서 만난 정책 실장의 기분이 꽤 상할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고.

고민하던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세한 내용을 보내주시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장관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하하, 네. 오늘 행사가 끝나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행사는 바로 시작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청담.

명품거리가 즐비하고, 조용했던 그 동네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이복희는 모처럼 몰리는 손님들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줌마 여기 순두부찌개 하나랑 된장찌개 2개요.”

“네.”

“아줌마 여기 주문이요.”

“네. 지금 갑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손님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건 최근 한 달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내 생각에는 사용자가 터치하기도 전에 앱에서 알려주는 노티 방식이 좋은 것 같은데.”

“일종의 구독 같은 느낌으로요?”

“그래. 그런 말도 있잖아. 아이비디오의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했다. 그것처럼 우리 서비스도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먼저 제공해 주는 거지.”

“흠…….”

“왜 어려울 것 같아?”

“그렇진 않을 거예요. 이 대표님이 DRP 시스템 무료 이용권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수익이 날 때까지는 계속 테스트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 그거. 우리도 그거 적용하자.”

“네. 밥 먹고 올라가서 검토해 볼게요.”

이복희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밥을 많이 팔고 돈만 많이 벌면 되니까.

그때 또 한 팀이 가게로 들어왔다.

“여기 주문이요.”

이복희가 활기찬 표정으로 답했다.

“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박상규.

‘스타트업을 찾아라’를 통해 강철에게 투자를 받은 슈퍼앤트의 대표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박상규에게 부하직원이 말했다.

“진짜 신의 한 수였습니다. 투자도 받고 이렇게 매일 아침, 점심, 저녁도 공짜로 먹고. 더구나 서비스 성능도 이제 목표치에 도달하지 않았습니까. 곧 상용화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박상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아마 거기서 끝났을 거다.”

“더구나 마이트에서 온 연락 보셨어요?”

그 말에 박상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봤지.”

“해당 내용을 커밋 해줘서 감사하다. 혹시 커미터의 자격을 받고 싶다면 알려달라.”

얼마 전 기계학습 알고리즘 마이트로부터 오픈소스 커미터 자격을 부여해 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에 박상규의 기분도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냥 거절하려고. 너도 알잖아. 그거 대표님이 가이드 라인 제시해 준거. 그게 없었으면 완성 못 했을 거야.”

부하직원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긴 하지만 실제로 코딩하고, 테스트하면서 완성도를 높인 건 형이잖아요.”

“대표님의 슈도 코드(의사 코드)가 없었으면 못 했었어.”

틀린 말은 아니기에 부하직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뭐…….”

“그보다 슈퍼앤트 서비스 출시하면 마케팅을 해야 하잖아.”

“네. 그것도 고민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거 아이온 미디어에서 맡아주기로 했다.”

“거기면…….”

“그래 우리가 출연한 스타트업을 찾아라. 만든 곳.”

“아이온 TV 구독자도 지금 100만 명 넘지 않아요?”

박상규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드리우며 말했다.

“그치. 거기에만 올라가도 사용자 꽤 모일 거야. 더구나 아이온 그룹 차원에서 밀어준 데. 너도 알지? 거기 아이 체크 있는 거. 거기서 광고 한번 띄워주면 엄청날 거다.”

“오오~ 이러다 우리 진짜.”

“부자 되겠어.”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스타트업을 찾아라’ 출연 이후 정말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인생이 흘러가고 있었다. 배고팠던 창업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이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옆 자리.

그 옆 가게.

그 옆 건물.

청담동 일대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 * *

얼마 뒤.

강철은 넷플러스 촬영을 위해 미국에 도착했다.

이미 사전 섭외는 전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처럼 각 회사를 돌며 촬영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로 엘리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한 엘리가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강철도 마주 인사했다. 자꾸 보다 보니 얼굴에 익숙해졌고, 더는 처음처럼 가슴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고.

엘리는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선보였다. 그녀의 역할은 ‘스타트업’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이었다. 시청자들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강철의 대답을 들으며 리액션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하! 투자 순서는 시리즈 A, B, C 이런 순서로 진행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아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앱 대부분이 자바라는 언어로 만들어졌다는 말이군요.”

“아하!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방문할 곳은 간단히 말해 테스트를 쉽게 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씀이시죠?”

아하!

아하!

아하!

소속사에서 ‘아하!’를 유행어로 밀기로 작정했는지 말을 시작할 때 아하! 라는 말을 계속 붙였다. 그 말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강철이 아저씨 미소를 지으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 * *

패스트 테스터.

그곳의 창업자 허먼 케인이 자신들의 사무실을 찾은 강철 일행을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자신의 결정이 잘한 것인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함께 창업한 윌리엄 코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코드를 보여주는 건 좀 심하지 않냐?”

“그게 아니면 섭외가 안 된다는데 어쩌냐.”

“차라리 섭외 안 하고 말지. 다른 데서 투자받으면 되잖아.”

허먼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투자해 주면 당연히 받았지. 너도 알잖아. 다른 데서 투자 거절한 거.”

윌리엄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알지 아주 잘 알지…….”

“우리 서비스가 사실 일반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객층도 개발자 한정이라 비즈니스 모델도 약하고.”

그 말에 윌리엄이 벅벅 머리를 긁었다.

“내 가 생각할 때는 이거 나오면 개발자들이 무조건 사용하는 서비스인데. 하여간 뭘 모르는 놈들과는 대화를 말아야 해.”

“여튼 코드를 복사해 가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 정도니까. 괜찮겠지. 잘하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여러 대의 가상 머신을 띄워서 실제 환경과 99% 일치하는 부하 테스트 진행하는 거?”

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지금 그게 안 돼서 서비스 출시를 못 하고 있잖아.”

패스트 테스터.

해당 서비스의 핵심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테스트였다. 개발자들이 만든 API를 쉽고 간단하고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도록 도와 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래밍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서비스들이 시중에 몇 개 출시되어 있었다. 허먼은 그들과 차별화된 기술로 가상머신을 생각해냈고, 바로 거기에서 개발이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그걸 강철이 해결해 주겠다며 나선 상황이었다. 둘의 시선이 앉아 있는 강철을 향했다.

타닥.

타다닥.

엘리의 귓속으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마다 화면에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알파벳이 빠르게 나타났다. 이해는 못 할지언정 자신의 본분을 잊지는 않았다.

“이게 그 가상머신이라는 걸 만드는 과정이라는 말이죠?”

“맞아요. 어느 정도의 부하를 견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부하요? 설마…… 상사 부하 그런 건 아니죠?”

강철은 대화하면서도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 아닙니다. 그런 부하가 아니라 일종이 성능이에요. 가끔 인터넷에 접속하면 느리다고 느낄 때 있죠?”

“네. 너무 많아요.”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포털 서비스에는 수 천대, 수만 대의 핸드폰이 동시에 접속해요.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그런 환경을 똑같이 구성해 놓고, 테스트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엘리가 검지로 볼을 꾹 누르며 고개를 모로 젖혔다.

“음…….”

강철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보통은 불가능해요. 수만 대의 핸드폰을 회사에서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걸 사람이 동시에 누른다는 건.”

“아하! 불가능하겠네요.”

“하하, 네. 그래서 가상 머신이라는 게 필요해요. 이게 수만 대의 핸드폰 역할을 해주는 셈이죠.”

“이제 조금 알겠어요.”

“하하, 네. 이제 곧 마무리되니까. 회의실로 사람들 좀 불러줄래요?”

“넵!”

엘리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았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는 인기스타로서의 거만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긴…… 한국에서나 인기스타지 아직 미국에서도 빌보드 글로벌 순위 95위니까.’

빌보드.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순위는 핫100이다. 그게 곧 미국에서의 인기를 방증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순위는 각 나라에서의 인기도가 반영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어쨌든.

엘리의 노력으로 회의실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강철이 화이트보드에 단 세 단어를 써 놓았다.

하드웨어.

커널.

어플리케이션.

강철이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가상 머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하드웨어는 어떤 CPU를 쓰는지 어떤 램을 쓰는지, 두 번째 커널은 어떤 커널을 쓰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플리케이션. 이건 패스트 테스터의 어플이 되겠군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철이 회사의 대표인 허먼을 보며 말했다.

“기존의 버추얼 박스나 VM을 사용해도 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그건 너무 무겁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네. 저희는 아주 콤팩트하게 가상머신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VM이나 버추얼 박스를 사용하면 일반 데스크탑에서 10개씩 띄우기가 힘드니까요.”

“해당 가상 머신들은 실제 물리적 환경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무거울 수밖에 없긴 하죠.”

“맞습니다. 그래서 물리적 하드웨어 자체도 추상화를 하려고 합니다. API 콜 한 번 하는데 실제 CPU까지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아주 작게 경량화를 했지만, 테스트는 실제 환경처럼. 그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회의실에 함께 앉아 있던 엘리는 큰 두 눈을 껌벅였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API? 경량화는 가볍게 만든다는 뜻인 것 같은데…… CPU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거고.’

아주 일반인 수준에서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랬기에 대화를 나누는 강철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강철이 고갯짓을 하자 회의실에 설치된 빔에서 화면이 하나 나타났다.

“코드를 보니 기본적으로 리눅스 커널 코드를 ‘후킹’해서 커널이 하드웨어가 실제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방법을 사용하셨더라고요.”

강철이 화면에 나타난 코드를 보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리눅스는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온 시스템. 후킹이 쉽지 않을 겁니다.”

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킹? 그게 무슨 말이야…….’

허먼은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 했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코드를 괜히 보여줬나. 기술적으로 도움되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

어서 투자나 해주고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속내가 투덜거리는 말투에서 드러났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시도 중이고요. 그런 다 아는 말을 듣자고, 이번 방송을 신청한 건 압니다.”

그 반응을 눈치챈 강철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론이 너무 길었군요.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하던 강철이 자리에 앉아 노트북에서 한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그러자 수십 개의 창이 뜨며 수십 개의 프로세스가 화면에 나타났다.

2분할 된 다른 화면에서는 빠른 속도로 로그가 나타났다.

14:00:01 call_req_handle srv_h_id 1.

14:00:01 call_req_handle srv_h_id 2.

14:00:01 call_req_handle srv_h_id 3.

14:00:01 call_req_handle srv_h_id 4.

저 로그는 누구보다 허먼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나타나야 할 로그이기 때문이었다.

“뭐, 보시다시피 이렇게 됩니다.”

허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강철을 보았다. 그건 회의실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강철이 짠 코드를 확인한 허먼이 공동 창업자인 윌리엄을 따로 불러냈다.

“……저거 진짜더라.”

윌리엄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짜?”

허먼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원격으로 프로세스 생성이 안 되고, 생성된 프로세스를 킬 하는 기능도 없고 또…….”

“그런 거야 나중에 추가하면 되고. 진짜 된다고?”

허먼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되. 우리 생각대로 가상 머신을 만들어서 API 테스트를 가능하게 해주더라.”

“헐…… 말도 안 돼…….”

윌리엄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벌써 수개월째 매달리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런 걸 불과 일주일 사이에 해결한다고?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어. 투자를 받게 되면 저 기술에 대한 지분만큼 넘어가게 돼서…….”

“우리 지분이 줄어들지.”

“그래, 기술과 돈을 합쳐서 총 40%의 지분이 저 사람한테 넘어가야 해.”

윌리엄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40%.

너무 큰 수치이기 때문이었다. 허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안한 금액이 천만 달러 그리고 저 기술. 사실 우리랑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포스트맨이 2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는 것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보다 작은 업체인 래피드API(RapidAPI)가 최초 900만 달러를 투자받았지. 천만 달러는 그것보다는 많은 금액이고.”

“맞아. 어떻게 할래?”

“네 생각은?”

허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찬성이다. 저 기술이 없으면 또 언제까지 개발해야 할지도 몰라. 코드를 보긴 했지만 그대로 만들어내려면 또 일 년은 더 해야겠지. 그래도 개발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벅벅 머리를 긁은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 하자. 천만 달러가 어디냐.”

결론을 내린 둘은 강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내 다음 촬영이 진행되었다. 이들이 투자를 받기로 했으니 한국에서 ‘대 히트’한 말을 촬영해야 한다.

-I'll invest.

한국어가 아닌 유창한 영어가 강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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