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27화 (27/59)

5장 아이온 사단(1)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서울 가산 디지털 단지에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강철입니다.”

강철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검은 눈그늘이 짙게 내려온 상대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바,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서 지켜볼 테니까. 평소 일하시는 모습을 한번 보여주세요. 그리고 혹시 지금까지 만드신 프로그램 코드도 공개가 가능할까요? 제가 보고 개선할 점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즉시 수정해 드리려고 하는데.”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러면야 저희야 감사하죠.”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코드를 공개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기술 빼가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아주 작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강철에게 들릴 정도는 충분했다.

강철이 바로 입을 열었다.

“부담되시면 안 보여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순수한 호의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요.”

그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던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장은 연신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전혀 부담 안 됩니다. 전부 보셔도 됩니다.”

“아, 네.”

“야, 빨리 자리 하나 안내해 드려.”

직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사장의 말을 거부하진 못했다.

잠시 후.

자리를 안내한 직원이 따로 사장을 불러냈다.

“사장님 진짜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뭐가.”

“코드를 다 보여주라고 했잖아요. 그러다 기술 탈취를 해가면 어찌합니까.”

그 말에 사장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한테 탈취해 갈 기술은 있고?”

“……네?”

“아니, 그렇잖아.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 뭐냐.”

“그건……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사용자들의 주식투자를 쉽게 도와주는…….”

직원의 말을 사장이 끊고 들어갔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누가 더 잘하지? 에이글에서 1등을 차지하고 심사위원까지 한 저 사람. 아니면 우리?”

그 말에 직원은 더는 반박하기 힘들었다. 객관적인 실력에서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사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서비스 회사야.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아니라고. 저분이 오셔서 코드를 직접 보고 개선점을 말해주시면 오히려 이득인 상황이지. 그렇지 않아?”

하지만 직원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핵심 알고리즘 어디서 가져왔냐.”

“깃 허브에서…….”

“그건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야. 다른 이들도 보고자 하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어.”

“…….”

직원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다음 달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투자가 안 되면 두 명 정도 내보내야 할지도 몰라.”

현재 5명이 근무하고 있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런데 2명을 자르면 3명밖에 남지 않는다. 지금까지 만든 서비스를 출시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직원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했다.

“그렇게 상황이 어려운지는 몰랐습니다.”

“괜찮아. 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니까. 사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이 프로그램 신청한 거야. 혹시나 도움을 받으면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또 잘 만하면 저분이 투자를 해주실 수도 있고. 사실 누가 뭐라 해도 저분은…….”

그 말을 직원이 받았다.

“스타트업계에 전설 같은 분이시죠.”

“그래 한국에서 알고리듬 같은 기업을 발굴해내 서치에 매각한 사례는 전무하니까.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잖아.”

“아이체크 서비스, 라이즈 킹덤, 딜리버리브라더스. 유우니 상점. 결제 보안 서비스 리민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도 잘해서 소위 말하는 아이온 사단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성공은 떼놓은 당상이지. 저분 별명이 벤처계의 미다스니까.”

그런 사장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사장이 직원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할 말이 있으시다네.”

직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회의실에 총 10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그 중심에 강철이 있었다.

“보여주신 코드는 잘 봤습니다. 확인해 보니 깃허브에 공개된 ‘마이트’를 사용하셔서 서비스를 개발 중이더군요.”

사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기계학습의 대표알고리즘인 마이트를 이용해서 매일 시장에 공개되는 여러 변수를 활용. 최적의 종목을 추출하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마이트는 정형화된 데이터가 입력값으로 들어가면 원하시는 성능이 나오는 알고리즘입니다. 하지만 제가 읽어본 서비스 목표에는 회사별로 터져 나오는 뉴스도 자사의 알고리즘에 입력 변수로 넣고 싶다고 나와 있던데 맞나요?”

“네.”

“그리고 마이트는 그런 비정형 데이터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사장이 빠르게 답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웠는지 귀가 빨개져 있었다. 대답하던 사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쉽게 찾을 수가 없더군요.”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혹시 ‘마이트’ 내부를 살펴보신 적 있으십니까?”

마이트.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대표주자로 공개 자료로 완전히 공개되어 있었다. 즉 그 말은 누구나 내부 코드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장을 비롯해 이곳 스타트업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 없습니다.”

“그럼 뉴스 같은 비정형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었나요?”

“그건…… 또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마이트’ 알고리즘을 보완할 생각이었습니다.”

강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두 알고리즘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건 최적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노가다성 일도 많고요. 이 인원으로 처리하는 데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사장이 괜히 입맛을 다셨다. 자신도 익히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강철이 전면에 화면을 하나 띄웠다. 거기에는 마이트 내부 알고리즘이 나와 있었다.

“여기 이 부분 보이십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을 향했다.

//TODO

//Logic to process unstructured data should be inserted.

해석해 보면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하는 로직을 이곳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개발을 하다 멈춘 코드 몇 줄이 있었다.

강철이 그 부분을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마 마이트 개발팀에서도 관련 내용을 개발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TODO 리스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고요. 결과적으로 제 생각에는 여기에 코드를 추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 말에 사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 그렇기야 한데 저희 실력이…….”

강철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의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다닥.

타다닥.

그러자 화면에 빠르게 코드가 채워졌다. 영타로 대략 500타가 넘어가는 속도였다. 그만큼 박진감 있게 화면 가득 코드가 채워진 것이다.

강철은 손을 움직이면서 입도 멈추지 않았다.

“비정형 데이터 처리의 기본은 입력된 비정형 데이터에서 원하는 단어를 뽑아내는 작업입니다. 특히나 한국말은 어미에 따라 시제가 현재, 미래, 과거를 왔다 갔다 해서 조심해야 하죠. 그 부분은 여러 오픈소스가 있지만, 아이온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 있습니다. 현재 가장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순간에도 강철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 그렇게 형태소 분석이 완료되면 작업은 거의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정형 데이터가 정형 데이터로 변한 것이니까요.”

말을 하며 코드를 치던 강철의 손이 뚝 멈췄다.

“일단 러프 하게 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고 더 발전시켜 보세요.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시고요.”

어느새 완성된 코드에 사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강철의 집.

커다란 모니터 앞에 모녀가 앉아 있었다.

“오빠가 아이비디오도 한다고?”

강철의 어머니 최용희가 딸 이희진을 보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니까. 뭐, 스타트업을 돌아다니면서 투자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라나. 뭐라나.”

이희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새삼 오빠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감 되기 때문이었다.

“네 오빠 참 착하지 않니?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게 더 중요한 건데 이거야말로 정승같이 쓰는 것의 표본이잖니.”

그 말에 이희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최용희에게 강철은 이제 신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종교 수준의 찬양 일색이었다.

“오빠도 사람이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얘는 네 오빠가 어떤 사람이야. 대산 그룹의 CTO, 서치에 알고리듬을 60억 달러에 매각. 개인적으로 아이온이라는 그룹을 이끌어가는 사장님이야. 사장님.”

최용희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이 아니잖아. 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에이글에서 1위를 하고, 그 자격으로 심사위원에 선발돼 미국까지 날아갔던 사람이야.”

최용희의 입에서 강철의 이력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채널명이나 말해봐.”

“아이온 TV라나 뭐라나.”

그 말에 이희진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이온 TV.”

그걸 누르고 들어가자마자 이희진은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구독자가 40만?”

구독자 40만.

이희진도 아이비디오를 많이 보기에 저게 얼마나 힘든 수치인지 잘 알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타트업을 찾아라. 1화. 주식투자 서비스 슈퍼앤트! 조회수가…….”

조회수 1,103,000.

올린 지 삼 일밖에 되지 않은 영상의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다.

“조회수가 100만이 넘잖아.”

최용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게 왜?”

“조회수가 무려 백만이라고…… 이 정도면 진짜 엄청난 숫자야.”

이희진이 영상을 클릭해 보았다. 그 순간에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었다.

-삐쥬 : 갓철님 대단하시네요. 우리나라 스타트업 멱살 캐리.

-bm21133 : 자사 코드까지 아낌없이 공유해주는 갓철! 가즈아!

한글 댓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airstart : I learned a lot. I like you.

-qmqkqkqk : Please upload the video.

영어로 된 댓글도 수두룩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최용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아들이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철이 크게 될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이희진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조회수가 벌써 100만이라…… 하긴 재벌이 올리는 영상이니 당연한 건가.’

재벌.

이희진은 새삼 자신의 오빠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 * *

미국 실리콘 밸리.

나일의 추천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포브스’는 최근 업계에 돌고 있는 소문을 꼭 확인해 볼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올드카 닷컴에서 사용 중인 추천시스템의 성능이 상당히 뛰어나 다라…….”

추천시스템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전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를 주름잡고 있는 나일의 NCS 서비스였다. 그런데 이 소문에 의하면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벤치마크 결과 봤어?”

스티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그거 보면 너도 깜짝 놀랄걸. 벤치 마크 결과 NCS에서 제공 중인 추천 서비스보다 성능이 20%가 더 높아.”

“20%나?”

“엄청나지?”

스티브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동료가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더 엄청난 거 말해줄까?”

“뭔데?”

“더그 라이스터 교수님 알지?”

스티브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그 라이스터.

업계에 꽤 유명한 MIT 교수이기 때문이었다. 동료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교수님이 DRP라는 곳에 합류했어. 이건 소문이 아니라 팩트다.”

그 말에 스티브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뭐? 라이스터 교수님이?”

“그렇다니까. 지난번에 에이글 심사위원으로 가셨었잖아.”

“그건 들었어.”

“그때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가 잘 됐나 봐. 그래서 DRP에 합류하신 거고. 그분이 참여해서 개발했으니 성능이 오죽하겠냐.”

“허…….”

“진짜 잘못하다간 NCS가 문제가 아니라 나일의 추천 성능이 뒤처질지도 몰라.”

그 말에 스티브가 마른침을 삼켰다.

나일.

그곳은 능력이 떨어지면 바로 잘리는 곳이었다. 만일 타사 대비 성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면 자신의 일자리는 바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던 스티브가 한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그걸 보며 동료가 물었다.

“뭐 하냐?”

“분석해야지.”

“아, 그럼 이게 이번에 DRP 성능 체크 하려고 만든 그 웹사이트야?”

스티브는 모니터에 집중한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어, 이 웹사이트 명의로 DRP 서비스 신청했다. 최대한 한번 분석해 봐야지.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하니까.”

스티브가 무섭게 일에 집중해 나갔다. 자신이 일자리에서 잘리는 그런 최악의 경우는 피하고 싶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이 집무실에서 비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트라켄은 2억.”

“네.”

“아이슈에는 1억.”

“네.”

“오이마켓은 5억.”

“네.”

강철이 말하면 비서가 받아 적었다. 방송 출연을 신청한 스타트업들 중 투자할 만한 대상을 고르는 작업이었다.

“레트로늄 2억.”

“네.”

강철이 말하면 비서가 받아적었다.

아이온 벤처투자.

그곳과 PD가 일차적으로 거른 스타트업들 중에서 일차적으로 투자할 만한 회사를 고르는 작업이었다. 방송에 나가는 회사는 그중에서도 한 번 더 거르는 작업을 거친다.

스토리.

그게 있어야 방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자 대상은 철저히 비즈니스가 성공할 가능성만 따지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투자 대상으로 선정한 스타트업만 벌써 50개를 넘어갔다. 액수로 치면 100억이었다.

“100억 됐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서류를 내려놓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군요.”

하지만 비서의 의문은 일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를 하셔도 되겠습니까? 괜히 돈을 허공에 날리는 건 아닌지…….”

스타트업.

불과 5명, 10명이 근무하는 회사에 강철은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를 집행했다. 비서는 그 돈이 혹시나 허공에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제가 전 재산이 100억밖에 되지 않았다면 그런 게 걱정이겠죠. 하지만 제가 가진 현금성 재산만 1조가 넘어갑니다. 거기에 100억이면 겨우 1%.”

비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1조.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100억, 아니, 1,000억 정도는 허공에 사라져도 됩니다. 어차피 투자란 것은 언제나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이니까요.”

1,000억.

강철은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 스타트업에 총 1,000억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미래에 이름을 들어본 기업은 5억에서 10억까지. 아예 들어본 적이 없지만 ‘아이온벤처투자’ 직원들이 추천했거나 자신이 보기에도 BM이나 대표자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보다 적은 금액을 생각하고 있었다.

강철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는 비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씨를 뿌리는 작업입니다. 심 비서는 요즘 코스피 시장이 어떻게 움직여지는 혹시 아십니까?”

“유동성 장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부동의 1위는 오성전자죠. 2위부터 10위까지가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하고 있고요.”

비서는 조용히 그 말을 경청했다. 지금은 들을 때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2위가 바뀌었을 때마다 한국 산업 지형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까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 시작된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장세, 과거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닷컴 버블. 저는 지금이 그때와 비슷하게 세상이 엄청난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리 투자를…….”

“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선도할 기업은 아이온과 대산그룹입니다. 하지만 미래 회사가 더 커지면 여러 독과점 이슈도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같은 편인 회사가 많을수록 운신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비서를 보며 강철이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의 아군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 컨텐츠는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미국, 유럽, 일본, 인도까지. 전 세계를 돌며 진행할 겁니다. 그렇게 전 세계에 씨앗을 심을 거고요.”

강철의 야심에 비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네. 이미 미국 스타트업도 선별 작업 중입니다. 그중에서 투자 대상을 정할 테고요.”

강철의 큰 그림에 비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투자 회사 리스트 정리를 마친 후.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와대에서 온 연락은 어떻게 할까요? BBIG의 대표 사업가 중 한 분으로 대표님을 모시고 싶다 하는데.”

그 말에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정부 그것도 청와대에서 직접 부르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그 날 스케쥴은 전부 비워두겠습니다.”

“또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이를테면 투자 약속을 해달라든가. 고용 창출이라든가…….”

투자.

고용.

강철이 본 뉴스에서는 기업인들이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항상 이 두 가지를 약속했었다. 그랬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비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아마 전화상으로 그렇게 직접 물어보진 않을 겁니다. 다만 오찬에서 따로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

말을 하던 비서가 서류를 한 움큼 내밀었다.

“그래서 이걸 한번 읽어보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청와대 질문 대응방안.

커다란 제목의 서류 안에는 여러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적혀 있었다.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차적으로 준비된 것이라 대표님이 수정할 내용이 있다면 수정하셔서 입장을 정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네. 수고하셨어요.”

대화를 마친 비서가 돌아가고 강철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았다. 강철이 보고 있는 건 ‘아이온TV’ 거기에 올라온 자신의 영상을 살폈다.

“조회수가 또 올라갔잖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내가 잘생겼다고? 하하, 내가 그랬나.”

“멋있다, 잘생겼다. 부티난다. 뇌섹남이다…….”

댓글에는 우호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강철은 그걸 읽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 * *

강철의 야심만큼이나 방송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제1화. 조회수 : 2,520,111회.

제2화. 조회수 : 2,423,145회.

제3화. 조회수 : 1,341,314회.

회차가 지날수록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편집하던 양기형의 입가에도 함박웃음이 걸렸다.

“대박이다. 완전 초대박이야.”

양기형과 함께 넘어온 조연출도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거 외국에서도 인기가 있다면서요?”

“그러게. 참 신기해. 대표님이 자금 지원 확실하게 해줄 테니까. 영어 자막도 준비해서 넣으라고 해서 추가했을 뿐인데…… 이런 상황을 예상하시고 말씀하신 것 같기도 하고.”

“알고리듬 때문인가…….”

“에이글 덕분 아닐까? 거기서 대표님이 꽤 유명하잖아.”

“뭐, 어쨌든 조회수가 잘 나오니 됐죠.”

“하하, 그래.”

편집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화면을 주시하던 양기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네.”

화면에는 강철이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스피커로는.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이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유행어가 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

“저도요.”

방송 말미.

강철이 스타트업 대표들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 말이 일종의 인터넷 밈이 되어 대유행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한참 편집에 몰두하던 양기형이 드르륵거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내 핸드폰을 확인한 양기형의 두 눈을 비벼댔다.

“뭐, 뭐야 이게.”

연신 꿀꺽거리며 마른침을 삼키던 양기형이 화면을 터치해 상세 내용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넷플러스 한국지사입니다.

자신이 본 메일 제목은 거짓이 아니었다. 양기형이 빠르게 상세 내용을 확인했다.

-해당 컨텐츠의 짜임새와 구성이 넷플러스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여 해당 컨텐츠의 판권을 사고 싶습니다. 또한, 시즌 2부터는 아이비디오가 아닌 넷플러스에서 방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중략)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요약해보면 넷플러스에서 자신들이 만든 컨텐츠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기형이 편집을 하던 조연출을 흔들었다.

“야, 이거 좀 봐봐. 빨리.”

“뭔데요. 이거 빨리 편집에서 오늘 저녁 6시까지 올려야 되는데…….”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인상을 쓰던 조연출도 메일을 보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 넷플러스요?”

넷플러스.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였다.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그곳에서 온 연락이었다.

“그래. 거기서 판권을 사고 싶다네.”

“헐…….”

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사실 JBS를 그만두며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월급은 보장된다는데 그저 월급을 축내는 식충이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무수한 불안을 안고 아이온미디어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만루 홈런을 때린 격이었다.

양기형이 조연출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우리…… 대박 났다.”

조연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청담.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재준은 오늘도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최근 이쪽 빌딩은 매물이 없습니다.”

“매물이 없어요?”

“네. 빌딩이 나오자마자 싹 나가고 있어서요.”

“헐…… 부동산 경기가 좋다고 하더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하, 네.”

김재준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돌려보냈다. 이내 자리에 앉은 김재준이 책상 위에 올려둔 커피를 한 모금 빨았다.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함께 앉아 있던 중개보조원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벌써 일 년 치 벌이를 다 벌었잖아요.”

하지만 김재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야.”

중개보조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이렇게 빌딩이 싹쓸이되면 내년에 어떻게 되겠냐?”

중개보조원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 직원을 보며 김재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물건이 잠길 테니 거래가 안 될 거 아냐. 올해 산 사람이 내년에 또 사겠어.”

“물건이 잠겨요? 왜요?”

“최근 빌딩을 매집하고 있는 데가 어디야.”

“아이온 게임즈, 아이온 미디어, 딜리버리브라더스, 나인소프트…… 그러고 보니 전부 아이온 계열사네요.”

“그래. 더구나 최근 거기 대표가 스타트업 찾아다니면서 투자하고 있잖아. 그럼 투자한 회사들이 일할 공간이 있어야 할 거 아냐.”

“흠…….”

“내가 볼 때는 그 회사들 전부 청담에 모일 것 같다. 그럼 그 회사들이 1, 2년 후에 자리를 옮길 것도 아니고. 계속 여기서 일을 하게 되겠지. 그럼…… 빌딩을 다시 팔지 않을 테고.”

드디어 중개보조원은 김재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깨달았다.

“사장님 말씀대로면 정말 내년부터는 거래가 없어질 수도 있겠네요.”

“그래 더는 청담에서 빌딩 거래로 돈을 못 벌 수도 있다고 봐야지. 우리는 거래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야 하는데 거래 자체가 안 일어날 테니까.”

중개보조원이 마른 침을 삼켰다.

향후 일 년.

그동안 벌어야 할 돈을 최근 몇 달 사이에 벌었다. 그런데 앞으로 일 년 이후에 생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김재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빨간색 점.

그 점 반경 1㎞ 내에 파란색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그 주변이 대부분 아이온 계열사 들이 입주해 있는 빌딩이었다. 그야말로 빌딩 포식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재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더 얼마나 매입을 하려는지…….”

* * *

비슷한 시각.

그런 김재준의 걱정을 모르는 강철은 빌딩 매입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안다고 해도 멈추지 않았겠지만.

“추가 10채 매입 완료했습니다. 현재 청담에 나와 있는 매물은 더는 없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스타트업을 30개는 더 투자할 겁니다. 그걸 전부 청담에 모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빌딩을 지속해서 매입하겠습니다.”

“부동산에 올라와 있는 건물만이 아니라, 보유자들을 수소문해서 더 적극적으로 매수하도록 하세요. 스타트업만이 아니라 기존 회사에도 추가 인원이 속속 채용되고 있으니.”

“알겠습니다.”

이건 강철이 가지고 있던 꿈 중 하나였다.

-백화점에 가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주세요.

그다음 단계는.

-이 거리에 있는 빌딩이 전부 제 것입니다.

이런 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일종의 사심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비서도 그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넷플러스에서 ‘스타트업을 찾아라’ 판권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그 말에 강철이 눈을 반짝였다.

“넷플러스에서 판권을요?”

“네. 그리고 혹시 시즌 2를 기획하고 있다면 그건 넷플러스 단독 방송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즌2를 기획하고 있긴 했다.

-시즌 1 한국편.

-시즌 2 미국편.

-시즌 3 중국편.

이런 식으로 전 세계를 돌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콘텐츠였으니까.

“확실히 그쪽에서 방송을 해주면 파급효과가 더 클 수도 있겠군요.”

“제작비도 더 많이 투입할 수 있습니다. 회삿돈을 아낄 수도 있고요.”

사실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강철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큰 파급효과를 내는 것이냐였으니까.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지시가 끝나고.

비서가 말했다.

“청와대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강철이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와대.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강철을 긴장시켰기 때문이었다.

* * *

청와대.

그곳에서 정책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종석은 최근 밀려든 기업인들의 탄원서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전경련 측에서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이번 대산 그룹 찬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서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서종석이 함께 자리한 민정수석을 보며 물었다.

“검찰에서 내사종결 시킨 건 아닙니까?”

“네. 증거 부족으로 종결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건지…….”

“아직 진동만이 재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정책실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동만.

그가 아무리 영향력이 커도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을 움직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챈 민정수석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마 그런 생각도 있을 겁니다. 두려움.”

“아…… 혹시 자신들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네. 대산 그룹이 최근 어려움을 겪곤 있었지만, 국내 대표 대기업 중 한 곳입니다. 그런 곳이 그렇게 쉽게 넘어갔으니 자신들도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제야 정책실장도 이해가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이 건을 어떻게 더 조사하자는 건지…….”

“사실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검찰이나 국세청에 압력을 가한다는 뉘앙스가 풍기면 야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정책실장이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말했다.

“야당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정무 수석을 통해 들어온 말인데 이 건에 대해서는 야당에서도 재계 쪽 입장을 수용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당론이라고 합니다.”

“하긴 현 야당이 누구를 대변하는지 잠시 잊고 있었군요.”

자유대한당.

현 야당인 그들은 과거부터 재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 여당인 민주통합당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민정수석이 한 층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정책실장이 허리를 숙이며 귀를 기울였다.

“국민연금 지분을 가지고, 고용. 투자에 대한 약속을 받는 겁니다. 거기에 재계의 입장을 슬며시 흘려주면서 정부에서도 계속 제보가 들어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투자나 고용에 대한 약속을 받아낼 수 있다?”

“네. 더구나 언택트 시대로의 전환 정책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는 대표적인 사례가 필요한데…… 지금 대산 그룹에서 추진 중인 DRP나 이강철 개인이 하는 ‘스타트업을 찾아라’가 정부와 협업을 통해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 그려질 테니까요.”

정책실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비서실장님과도 이야기해 봐야겠군요.”

정책실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실장실로 향했다. 오찬까지는 불과 3시간.

그전까지 의견을 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3시간 후.

강철은 청와대 오찬장에 앉아 있었다. 딱히 알고 있는 재계 인사가 없었기 때문에 멀뚱히 앉아 있는 그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BBIG.

그중 G(Game)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한 엑스 게임즈의 지수철 대표였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강철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과거 자신이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우상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강철이 벌떡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십니까.”

“하하, 언젠가 한 번 꼭 만나 뵙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는군요.”

지수철이 살짝 당황한 강철을 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최근 아이온 게임즈에서 런칭한 라이즈 킹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탐나는 게임이더군요.”

“감사합니다.”

“앱스토어에서도 우리 판타지아를 밀어내고, 1등을 차지하다니 덕분에 주가가 쑥 내렸습니다.”

판타지아.

지수철이 운영하는 엑스게임즈의 대표게임이었다. 그 게임이 아이온 게임즈에서 출시한 라이즈 킹덤 덕분에 부동의 1위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래도 판타지아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매출도 어마어마하니까요.”

지수철이 의자를 끌어내 아예 강철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듣자 하니 라이즈 킹덤도 중국 진출을 위해서 판호 신청을 했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면 판타지아도 위태로워질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서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판호.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한-중 관계가 악화하며 수년 전부터 판호 발급은 중단된 상태였다.

그랬기에 강철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판호가 실제로 발급될지도 모르고요.”

“그거 어렵진 않습니다. 제가 도와 드린다면요.”

강철이 두 눈을 살짝 떴다.

’저 말은 기브 앤 테이크를 하자는 말인가…….‘

살짝 고민한 강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야 저야 감사한데…….”

지수철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대신 한 가지 고민해 봐 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지수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최근 업계에 도는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엑스게임즈를 매각하고 싶어 한다.”

강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말은 자신도 들어 알기 때문이었다.

“그 소문 사실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엑스게임즈를 발전시켜 줄 적임자를 찾고 있었는데…… 라이즈 킹덤을 해보고 알았습니다. 그 적임자가 누군지.”

그러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강철도 지수철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지수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시면 따로 연락 주세요.”

지수철은 그 말을 끝으로 명함을 남긴 채 자리를 옮겼다.

강철은 손 위에 남겨진 명함을 한번 보고 지수철을 한번 보았다.

미래에도 엑스게임즈 매각설이 시장에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적당한 매수자를 찾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고 들었다.

돈을 잘 벌고 있는 엑스게임즈였기에 시장에 무성한 추측이 돌아다녔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없었다.

’연락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건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왜 황금알을 낳고 있는 회사를 팔려고 하는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강철에게 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청와대 정책실장 서종석입니다.”

서종석이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 * *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강철은 차량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비서가 물었다.

“청와대에서 좀 어려웠나 봅니다.”

강철은 답하지 않은 채 잠시 창밖을 보았다.

-나라가 몹시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이 투자와 고용으로 국가를 받쳐 줘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서종석의 미소 속에는 날카로운 칼이 감춰져 있었다.

-기업이 그런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정부에서도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최근 대산 그룹 인수과정에서 잡음이 상당하더군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강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청와대에 관련 민원이 들어올 지경입니다. 이걸 처리하다 보면 결국 서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으니 서로 좋게좋게 처리했으면 하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돌리고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주 심플했다.

투자.

고용.

그걸 해라 그러면 잡음을 묻어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활동이 어려운 환경이 될 수도 있다.

약간의 협박이 담긴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주 부정적인 인상만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협박만 받은 건 아니었다.

-혹시 회사를 운영하는 데 어려운 점 있습니까. 정부는 대표님 같은 성공한 기업가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또한, 대표님이 운영하는 회사가 잘 되길 바라고요. 건의사항을 말씀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강철이 머뭇거리자 서종석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실제 현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아야 정책을 입안할 때 관련 내용을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잘돼야 합니다.

그 말에 강철은 리민스를 운영하며 느낀 금융규제, 추천시스템을 운영하며 느낀 개인정보 활용에 관한 규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 말을 서종석은 놓치지 않고 받아적었다.

강철에게 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자신의 말을 받아적는다. 처음 받았던 부정적인 인상이 조금 옅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서종석은 미소를 감추지 않은 채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최근 대표님이 진행하는 스타트업을 찾아라. 그게 아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더군요. 해당 사업이 정부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아 저희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심사위원으로 합류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강철의 기억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긍정.

부정.

두 가지가 묘하게 섞여 있는 기억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던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안 합니다.”

옆에 있던 비서가 되물었다.

“……네?”

“오늘 청와대에서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심 비서는 받아적지도, 핸드폰에 녹음하지도 않았다. 그런 행동이 추후 문제 발생 시 증거자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이큐가 150이 넘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엑스게임즈 인수.”

그 말에 심 비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지수철 대표로부터 직접 제안이 왔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엑스게임즈를 매각하고 싶다 하더군요. 그 부분을 좀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두 번째는 투자, 고용의 공식발표.”

“……역시.”

“거기에 절 이번 정부의 경기부양책 홍보 대사로 기용하고 싶어 하던 눈치였습니다. 중소기업부에서 주최하는 벤처투자 심사관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흠…….”

“그 건에 대해 둘 다 거절하세요.”

“대표님 정부에 반하는 기업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 한 대로 가야 합니다.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다가는 스텝이 꼬일 수 있어요.”

“그래도 최소한 보조를 맞추는 듯한 뉘앙스 정도는 풍겨줘야 그 계획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각종 규제와 소송에 헛된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비서의 조언에 강철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비서의 말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 투자나 고용은 우리 쪽 계획을 한, 두 달 앞당기는 수준으로 진행하고, 심사관 제안은 업무가 많아 못 한다고 전달하세요.”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심 비서가 항상 고생이 많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대화를 마친 강철이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래도 출세했어. 청와대도 다 가보고.’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한국 넷플러스 지사를 양기형 PD와 함께 찾아갔다. 넷플러스 측에서 꼭 함께 만났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넷플러스의 한국 지사장이 직접 나와서 강철을 맞이했다. 강철이 거물이기 때문이었다.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방송이 잘 될 수 있다면 제가 직접 와야죠.”

그 말에 지사장이 눈짓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다른 직원이 바로 기획안을 꺼내 들었다.

“본론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하, 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스타트업을 찾아라. 아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 컨셉을 크게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조미료를 첨가하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강철이 기획안을 집어 들었다.

“특히나 방송 말미에 나오는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묘한 희열이 느껴지더군요. 그때 딱 이 방송이 떠올랐습니다. 한 장을 넘겨보시면 저희가 생각한 방향성이 나옵니다.”

-The Apprentice.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NBC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쇼로 You're Fired. 이 말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었죠.”

“아…….”

기획안을 내민 직원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전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 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하면 ‘I'll invest.’ 이 말이 전 세계에 퍼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대더군요.”

강철의 볼도 살짝 상기되었다. 직원의 설득이 타당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더구나 현시대는 스타트업의 시대라 불릴 만큼 수많은 벤처 회사들이 꿈틀대고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아주 적절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각국 정부에서도 자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송이니 우호적일 테고요. 당장 미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할 의향이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만 중국 진출이 어렵다는 게 문제인데…… 그건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강철을 설득하기 위함인지 직원의 말은 끝이 없었다.

“이 프로그램은 본사에서도 가능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하니까요. 그만큼 대표님의 스타성을 저희는 엄청나게 높게 보고 있습니다.”

거듭된 칭찬에 강철의 볼이 좀 더 붉어졌다. 강철의 시선은 A4 용지 한 곳에 멈춰 있었다.

-The Apprentice.

도널드 트럼프는 이 프로그램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대선에 나가 미합중국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었다. 그만큼 인기 프로그램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강철의 이번 생 목표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돈만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재밌겠는데.’

더구나 어차피 스타트업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참이었다.

일거양득.

수락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함께해 보죠.”

“하하, 네. 감사합니다.”

지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 * *

비슷한 시각.

미국 시애틀 윌마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루이스 캐스가 푹푹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

그걸 옆에서 본 동료가 물었다.

“잘 안 되지?”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천시스템을 안정시킨 후 그걸 기반으로 재고 관리 시스템 성능 향상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구매 데이터로 만들어보고 있긴 한데 쉽진 않네.”

“그게 쉬웠으면 우리도 나일처럼 됐겠지.”

재고 관리 시스템.

해당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건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준비.

아무 물품이나 준비해 두면 안 된다. 이 시점에 소비자가 살만한 물건을 준비해 둬야 한다. 그래야 바로바로 판매하며 재고를 적정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었다.

루이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것 역시 추천시스템처럼 예측의 영역이라 루이스가 주도적으로 개발 중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한숨을 쉬던 루이스가 한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또 미스터 리한테 부탁해 봐야 하냐…….”

“이강철?”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조언 덕분에 우리 추천시스템도 성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으니까. 혹시 이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지.”

“하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너 그 소식은 들었냐?”

“뭐.”

“라이스터 교수님이 미스터 리와 협업 중인 거.”

“……그래?”

“둘이서 DRP라는 걸 만들었나 봐. 일종의 추천 플랫폼인데 성능이 엄청나다고 하더라. 덕분에 올드카 닷컴 매출도 껑충 뛰었다고 하던데? 독과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루이스의 표정이 점점 오묘하게 변해갔다.

“더구나 그 사람 대산 그룹에 근무한다고 했었어.”

“대산이라면…… 우리가 한국 진출했을 때 경쟁사였잖아.”

루이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분명 재고 관리시스템도 있겠지?”

“뭐 조언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때랑 몸값이 확 달라졌을걸. 알고리듬 매각에 대산 그룹에서도 CTO 자리에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거기에 아이온이었나. 그것도 유명하잖아.”

“하긴 맞다…….”

“나도 거기서 나온 아이체크 서비스 이용하고 있는데 진짜 좋긴 좋더라. 그냥 사진만 찍으면 칼로리가 나오니까. 엄청 편해.”

“부탁하기에는 너무 거물이 되어 버렸다. 이걸 어쩐다…….”

루이스가 머리를 감싸 쥐고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나일은 제품을 주문하면 불과 1, 2일 만에 물건이 준비되고 배송된다. 전부 재고를 최적화해 관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윌마트의 사정은 달랐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온라인이 취약했다. 그래서 배송에 하루나 이틀이 더 걸리고 있었다. 그걸 개선 시켜야 하는데…….

“그래도 뭐 한 번 일했던 정이 있으니 어떻게 되지 않을까?”

동료의 희망 섞인 권유에 고민하던 루이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일단 연락이나 한번 해보자.”

이내 빠르게 메일을 작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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