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대산 3.0 출시
미디어.
강철은 그 위력을 요즘 만큼 느끼는 적은 없었다.
제목 : [단독]대산 3.0 프로젝트 실체 없는 주가 부양 수단?
-대산 그룹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대산 3.0 사업이 실체가 없는 프로젝트라는 내부 폭로가 터져 나왔다. 대산 그룹에서 개발 중인 추천시스템을 타 기업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이것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략)
결과적으로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이다. 타 쇼핑몰에서는 다른 데이터 형태를 사용하는데 그걸 플랫폼화하여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1차 고객 모집에서도 단 한 고객사도 유치하지 못했다. 즉,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되고 만 것이다.
그 뉴스 한 번에 대산 그룹 주가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게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언론이 없었다.
더구나 JBS에서 진행하던 드라마나 스타트업 발굴 작업까지 진행이 멈추자 대중과 소통할 공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강철은 그 내용을 상세히 PD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PD님을 모셨습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을 요약해보면 ‘아이온미디어’에서 컨텐츠 제작을 할 건데 이직할 생각이 있냐. 이 말씀이군요.”
“네. 그리고 가장 먼저 제작할 컨텐츠는 전에 말씀하셨던 스타트업 발굴 작업이 될 겁니다. 그걸 찍어 아이비디오에 만든 채널에 올리고요. 다들 아시다시피 아이비디오는 이제 전통 미디어를 대체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말에 JBS 방송국 PD 양기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의 말대로 과거와 달리 이제는 10%만 나와도 시청률이 잘 나왔다고 할 만큼 지상파의 위상이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
“일단 기존에 받으시는 기본급에 1.5배. 거기에 플러스 알파 성과급을 더해 드리겠습니다. 만약 제작한 프로그램이 망한다 해도 해당 액수로 60세까지 정년 보장을 해드리고요.”
강철이 내건 조건에 양기형이 마른 침을 삼켰다. 확실히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방송은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작가도 필요하고, 촬영 감독도 있어야 하고 또…….”
“원하시는 인원으로 팀을 꾸리시면 됩니다. 그 팀에 속한 인원들도 기존 월급의 1.5배. 그리고 개개인의 역량에 대한 성과급을 드릴 테니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는 양기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장비도 원하시는 데로 사시면 됩니다.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건 양기형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강철.
그는 이미 수조 원의 재산으로 국내 10대 부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비디오에 채널을 만들고, 거기에 올릴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 이 말씀이시죠?”
“네. 처음 기획은 그렇지만 차차 채널의 규모가 커진다면…… 자체 플랫폼을 만들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온TV 같은.”
그 말을 끝까지 들은 양기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좋은 조건이라는 건 알지만……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하지만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미 일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채워 넣을 사람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아는 사람을 넣고 싶은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서요.”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양기형과의 자리를 마무리한 강철이 비서를 불러 물었다.
“대산 마트 주주총회 일정이 잡혔다고요?”
“네. 앞으로 2달 뒤. 안건은 대표 이사를 비롯해 사외이사까지 포함. 총 4명의 이사진이 교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동만 쪽 우호지분이 몇 프로나 됩니까?”
“소액주주 우호지분을 제외하고, 18%입니다.”
“우리 쪽 지분이 ㈜대산을 비롯해 진선미를 합쳐 37%니까. 일단은 우위에 있긴 한데…….”
“변수는 소액주주입니다. 진동만 측에서 적극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펼치면서 소액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받고 있습니다. 연속해서 터져 나오는 대산 3.0에 대한 의구심에 소액주주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강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안심시켜 줘야겠군요. 그래야 주주제안을 통해 제 사람들로 이사진을 포진하는 안건을 정기 주총에서 통과되고, 대산 마트 경영권도 안정이 될 테니.”
“그 말씀은 대산 3.0을 출시한다는 말씀입니까?”
“네. 대산 3.0 PM, PL 회의 소집하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회의실에 대산 3.0 프로젝트 관련자들이 모였다.
“갑자기 무슨 회의지…….”
“뉴스 안 봤냐. 대산 3.0 프로젝트가 허상이라고 하잖아.”
“보긴 했지. 그런데 그거 사실 아니잖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그럼…….”
“그래 출시 임박.”
“아…….”
“더그 라이스터 교수님 합류하고 나서 추천 성능도 팍팍 올라갔잖아.”
더그 라이스터 교수가 합류하고 나서 추천 성능은 마의 30%의 벽을 깨는 데까지는 불과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추천 성능 35%.
두 달만 5%의 성능 향상을 이뤄낸 것이다. 그건 곧 추천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35%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그 정도면 이제 대산 3.0 출시해도 되겠지.”
“하지만 아직 고객사가 없잖아.”
그 말에 대산 3.0에 긍정적인 뷰를 열심히 말하던 동료도 입을 다물었다.
“쩝…… 그렇긴 해. 1차 모집에서 단 한 기업도 이용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니…….”
둘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문이 열리고 강철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자리에 앉은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산 3.0 가동 준비 상태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그 말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PM이 답했다.
“현재 알파 테스트 진행 중입니다.”
알파 테스트.
서비스 출시 전 진행하는 테스트로 알파테스트가 끝나면 서비스가 출시된다.
“예상 기간은요?”
“다음 주까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사용자들을 받아도 되겠군요.”
“테스트도 거의 완료돼서 실 고객을 받아도 되긴 하지만…… 아시겠지만 1차 고객 모집에서 자사 서비스를 이용해 보겠다는 기업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 말에 강철이 비서를 향해 말했다.
“PPT 띄워보세요.”
강철의 말에 비서가 PPT를 띄웠다. 그러자 화면에 여기 개발자들 고개를 갸웃 거리게 만드는 회사 이름이 주르륵 나타났다.
-올드카닷컴.
-나인스트.
-에그팡.
…….
중고차 판매부터, 패션 액세서리 그리고 한국의 다나와 같은 IT기기 판매회사들이었다. 모두 미국에서나 유명한 회사들로 한국에서 사는 이들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이분들이 저희 서비스를 이용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모여 있는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네?”
“저기가 어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인데요.”
“저런 듣보잡 회사를 유치해 봤자…… 크게 영향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직원들의 반응에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올드카 닷컴. 미국 중고차 시장 점유율 1위인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나인스트. 미국 10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쇼핑몰이고요. 에그팡은 20, 30대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IT 기기 커뮤니티입니다. 오성전자에서도 제품을 출시 한 후에 일 차적으로 에그팡에 올라오는 리뷰를 살펴볼 정도로요.”
강철의 설명에 직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들이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난번 에이글 심사위원 참관을 갔다가 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대산 3.0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더군요.”
“아…….”
“각 회사명 옆에 붙어 있는 이메일로 연락하면 바로 답장이 올 겁니다. 제가 말은 이미 해두었으니 자리로 돌아가시는 데로 당장 연락해 보고 일 추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마무리하죠. 다음 주에 진행 상황 1차 보고 받겠습니다.”
“네.”
그 말을 끝으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 * *
한남동 진동만의 서재.
창문에 쳐진 커튼으로 인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진동만이 으득 이를 갈고 있었다.
“뭐? 고객사를 확보했어?”
“10곳이라…….”
“다들 미국 최상위 권의 쇼핑몰.”
“알았어.”
아직 대산 그룹 곳곳에는 진동만의 심복이 많았다. 그들이 시시각각 현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소식은 진동만의 기분을 상당히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다.
“개가 아니라 범이었어…….”
처음에는 그저 말 잘 듣는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호랑이.
그것도 자신이 있는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을 만큼 위협적인 호랑이라는 것을.
진동만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만약 전화에서 나온 내용대로 대산 3.0이 잘 마무리된다면 정말 대산 그룹은 퀀텀 점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주주들의 이강철에 대한 신임도는 한층 더 높아지게 된다.
그 이후에는 대산 그룹을 되찾을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게 뻔했다.
진동만이 힘주어 주먹을 쥐었다.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쉰 진동만이 인터폰을 들었다.
“오성 연결해.”
-네.
잠시 후.
인터폰 너머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입니다. 큰아버지.
인터폰 건너편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진성호.
현 오성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이렇게 연락을 하신 걸 보면…… 많이 급하신 모양입니다.
“상황이 어렵게 됐어.”
-네. 여기저기서 말이 많더군요. 더구나 그 친구는 오성과 조인트 벤처까지 맺었고요. 하하, 아주 영악한 놈입니다. 아마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손을 잡은 것 같은데…….
“널 위협할 수도 있어.”
-하하, 아무리 큰아버님이시지만 농담이 심하시군요.
“긴말 필요 없고. 어떻게 할 셈이야. 대산은 엄연히 오성의 방계다. 그게 다른 놈의 손에 넘어가는 걸 그냥 두고만 볼 셈이냐?”
-제가 어떻게 해드리길 원하십니까?
“다시 찾아다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과 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네 녀석이 말하는 요즘 시대의 방식으로.”
-대산이 오성 그룹의 실질적 지배 아래 놓여도 상관없습니까?
진동만이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게 싫어 오성을 뛰쳐나와 대산을 여기까지 키웠다. 그런데 다시 오성 그룹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하지만 다른 이의 손에 뺏기는 건 더 치욕스러웠다.
“알았다.”
-하하, 옛날 큰아버지였다면 절대 수락하지 않으셨을 텐데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 봅니다.
“그래서 어찌할 거냐?”
인터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음습해졌다.
-전 제 걸 빼앗기는 게 제일 싫습니다.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 * *
갑작스러운 연락에 강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조인트 벤처를 없던 일로 하자는 말씀이시죠?”
-네. 죄송하지만 관련 기술이 저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이 들렸다. 대답하는 강철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네에…….”
-최초 냈던 금액은 말씀해 주신 계좌로 입금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잘해보고 싶었는데…….
“하하, 아닙니다.”
-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친 강철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뭐지 이건 선전 포고 같은 건가…….’
오성 그룹 회장 진성호.
그가 진동만의 조카라는 사실을 강철도 익히 알고 있었다. 대산 그룹이 오성 그룹의 호텔 사업부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두 기업은 혈연으로 묶여 있고, 진동만이 진성호에게 SOS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조인트 벤처를 없던 일로 하면서 대산 그룹에서 손을 떼라며 나에게 경고를 한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철이 집무실에 설치된 인터폰을 눌렀다.
“심 비서 들어와 보세요.”
-네.
잠시 후.
비서가 들어오자마자 강철이 말했다.
“오성전자 조인트 벤처 건이 취소됐습니다.”
강철의 비서.
심태선이 눈을 반짝였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취소를…….”
“제가 생각할 때도 일종의 경고 사인을 보낸 것 같아요.”
“결국, 진동만 회장이 도움을 요청했군요.”
강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성전자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니.”
“알겠습니다. 위험요인에 대해 시뮬레이션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진선미 전무 좀 들어오라고 하세요.”
이내 고개를 숙인 비서가 집무실을 나섰다.
* * *
비슷한 시각.
진선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세요.”
전화를 받는 진선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우리 사이에 이런 통화쯤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진성호.
오성 그룹의 회장이자 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였다. 그랬기에 진선미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아빠가…… 연락을 한 건가요?”
-하하, 큰아버지와 연락은 계속하고 있었다.
진선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말이 거짓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평소 오성 그룹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
-지분.
“……네?”
-네가 가진 대산 지분, 오성 그룹으로 넘겨라.
진선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진성호는 제왕의 자리에 있는 만큼 강압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값은 적절히 치러주마. 큰아버지도 동의하셨다.
입을 다물고 있던 진선미가 겨우 입술을 뗐다.
“전…….”
하지만 그 맒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마.
이내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진선미가 황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는 사이. 삐리리리. 인터폰이 울렸다.
-CTO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연락을 받은 진선미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까지…….’
대산의 공주에서 여기저기 불러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진선미는 새삼 자신의 위치를 실감했다.
강철의 집무실 앞.
그곳에 선 진선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똑똑.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진 전무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방안에서 들린 강철의 말에 비서가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진선미가 안으로 들어가자 강철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그 모습을 보자 배알이 뒤틀렸다.
“이젠 일어나지도 않는군요.”
그 말에 강철이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하지만 진선미는 새침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됐어요. 그래서 용건은요?”
강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배를 탔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진성호 회장은 어떤 분입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잔뜩 당황한 진선미가 되물었다.
“네?”
“오성 그룹 진성호 회장.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나마 제 주변에서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전무님이라서요.”
진선미가 조용히 있자 강철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갑자기 조인트 벤처를 해체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잘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건 위에서 사인이 있었다는 뜻이고…….”
“아버지가 진성호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네. 정황이 딱 맞아떨어지니까요.”
“흠…….”
“그래서 그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대비를 할 테니.”
진선미가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강철이 귀를 쫑긋 세웠다.
“어렸을 때부터 왕으로 키워진 사람이에요.”
진선미가 강철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재벌가에서 배우는 제왕학에 대해 들어봤어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여러 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그중 실제로 제왕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실 특정 학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이었다.
심리.
경영.
역사.
철학.
정치.
여러 인문 학문을 아우르는 과정. 진선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한 머리를 타고나서 제왕학을 빠르게 익히고, 오성 그룹의 차기 회장을 차지한 사람이죠. 아주 거만하고, 오만하지만 때에 따라 아주 불쌍하고, 약한 모습으로 여론을 등에 업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
강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말을 하는 진선미의 눈빛에서 진성호에 대한 두려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던 진선미가 뚝 말을 멈춘 채 강철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진성호 회장에게 연락이 왔어요.”
“설마 지분을 달라고…….”
진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즉 당신에게 경쟁자가 생겼다는 말이에요.”
강철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경쟁자가 생겼으니 자신에게 있던 대산 지분에 대한 가격결정권이 다시 진선미에게 넘어갔다는 말이었다.
“지분 가치가 올라갔다는 뜻입니까?”
“네. 물론 과하게 불러 판을 깨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적정치를 제시하지 않으면 진성호 회장에게 붙을 수도 있어요.”
이내 진선미가 눈을 가늘게 뜨며 강철을 보았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그 눈빛이 도발적이었다.
강철이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먼 산을 보았다. 그러자 진선미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진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코끝을 간질이는 짙은 향만이 남아 있었다.
* * *
미국 샌프란시스코.
올드카 닷컴의 데이터 분석 팀장인 마크 리퍼트는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오늘이 오픈 일이지?”
“네. 앞으로 30분 후면 DRP 시스템이 정식 오픈합니다.”
DRP(Daesan Recommendation Platform).
강철이 추진한 대산 3.0의 결과물이었다. 그 결과물이 곧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그거 연동 테스트했을 때 추천 성능 결과가 31%였나.”
부하직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가중 평균을 적용해서 정확히 30.5%였습니다.”
“그리고 추천 성능이 25% 이하로 나올 때는 서비스 요금을 아예 받지 않고.”
“맞습니다.”
마크가 거칠게 돋아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사장님 기대가 큰데 과연 잘 나올지 모르겠어.”
“연동 테스트 때는 잘 나왔으니 정식 오픈에서도 잘될 겁니다.”
“그게 테스트 데이터를 이용한 거라서…… 그게 걱정이지.”
테스트 데이터.
물론 실제 환경과 같은 데이터였다.
하지만 실제 시스템을 오픈하면 언제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십수 년간 업계에 근무해 온 마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하직원은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잘될 겁니다.”
그리고 30분 후.
DRP 시스템이 오픈하고 올드카 닷컴의 메인 배너에 DRP에서 보내주는 데이터가 오픈되기 시작했다. 올드카 닷컴 데이터 분석팀에서는 실시간으로 해당 배너의 클릭률이 집계되고 있었다.
“32%, 31.9%, 32.1%…….”
부하직원이 실시간으로 그 수치를 말해주었다. 마크도 두 눈을 부릅뜨고 관리자 페이지에 올라오는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흐른 뒤 부하직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까지 31.5% 정도가 평균입니다.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데요?”
마크도 흡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원래 타켓 성능이 25%였잖아.”
“하하, 네. 그래서 계약한 거잖아요. 어차피 25% 성능이 나오면 돈을 안 내도 되니까. 손해 볼 건 없다.”
“대신 우리 쪽 데이터가 노출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괜찮은 조건이다.”
“흐흐, 그래. 그런데 실 서비스에서도 30% 이상이 꾸준히 나오면 우리가 운영하는 거보다 낫겠어.”
부하직원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잠시 후.
관리자 페이지에 나타난 수치가 점점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주 보며 웃고 있던 마크와 그의 부하직원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뭐, 뭐야 이거.”
-31.5%.
-31.2%.
-30.8%.
-30.5%.
곧 30%의 추천 성능이 깨질 것 같았다. 시계열 그래프로 봐도 하강추세는 완연했다.
부하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치를 확인했다.
-30.1%.
-30.0%.
하지만 한 번 기세를 탄 수치는 멈추지 않고 떨어졌다.
-29.0%.
이내 20%대에 들어가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마크가 급히 지시했다.
“DRP 쪽에 연락해 봐, 이거 왜 그런지. 이 수치 그쪽에서도 보고 있을 거 아냐.”
부하직원이 황급히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비슷한 시각 한국.
한국 DRP 팀에서도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올드카 닷컴 추천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DRP팀 PM을 맡은 김정민 과장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원인은?”
“현재 시스템상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럼 왜 성능이 떨어져.”
“그건…….”
부하직원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김정민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가 각 시스템의 상태를 살폈다.
수집.
정제.
분석.
결과.
전송.
총 5단계로 되어 있는 시스템의 상태는 전부 그린이었다. 어떤 문제도 없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왜…….”
그때.
DRP팀이 있는 사무실로 급히 강철이 들어섰다.
“올드카 닷컴 상태가 왜 이렇습니까.”
당황한 김정민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CTO님. 그게…….”
“아직 원인 파악 안 된 겁니까?”
“네. 죄송합니다.”
올드카 닷컴.
이건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다. 이게 성공해야 다음이 있는 것이다.
강철이 비서를 보며 말했다.
“여기 내 자리 하나 세팅하세요.”
“네.”
강철이 팔을 걷어붙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에도 올드카 닷컴의 추천 성능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27%.
-26.5%.
-26.1%.
이대로 둔다면 끝도 없이 떨어질 게 뻔히 보였다. 강철이 머뭇거리고 있는 직원들을 보며 지시했다.
“시스템상의 문제는 안보니까, 일단 데이터부터 확인합시다. 수집된 데이터가 제대로 들어왔는지, 정제과정에서 변형되지는 않았는지. 그것부터 확인해서 보고하세요.”
강철의 말에 멍하니 있던 직원들이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네. 알겠습니다.”
강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건 무조건 성공해야 해.’
만약 실패한다면 대산 3.0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 내용이 사실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여러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 * *
일하려는 강철에게 급히 비서가 다가왔다.
“CTO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강철의 시선이 비서가 내민 핸드폰을 향했다.
-DRP의 몰락. 서비스 오픈과 동시에 에러 발발.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중고차 온라인 쇼핑몰 올드카 닷컴과 연동 중인 DRP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 서비스 오픈 당일 발생한 이 문제는 아주 치명적인 것으로 이 상태로는 서비스를 더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략)
기사는 아주 악의적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비서가 강철을 보며 물었다.
“대응할까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과로 보여주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에 앉은 강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스템의 로그를 살피는 것이었다.
로그.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통합 로그 시스템.
그곳에 접속해 DRP 관련 시스템들의 로그를 살펴보았다. 에러가 발생하면 해당 내용이 자동으로 에러 게시판에 보여야 하건만 ‘에러’ 표시는 단 한 건도 보이지 않았다.
‘에러가 안 보여. 이건 시스템이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는 뜻인데…….’
하물며 ‘WARN’ 경고 표시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은 전부 정상적으로 처리 중이라는 말이었다.
‘역시 데이터가 문제인가…….’
입력데이터.
그게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현재 DRP 플랫폼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받아 실시간으로 분석 후 전송해 주고 있었다. 올드카 닷컴 쪽에서 넘어오는 데이터가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어. 추천 성능이 35%는 나와야 하는데 30%밖에 안 나 오는 게…….’
DRP에는 대산에서 개발한 최신 추천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35%라는 수치가 나와야 하는데 5%나 부족한 성능이 나온 것이다.
고민하던 강철에게 부하직원이 한 명 다가왔다.
“CTO님 이것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직원의 컴퓨터로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는 각 데이터를 16진수로 변환한 표가 나타나 있었다.
“보시면 파일 중간중간에 특수문자 rw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캐리지리턴이 표현된 것 같은데 DRP 프로토콜 상에는 n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어요.”
“잘못 기록되었군요.”
“네.”
“그럼 그 부분을 없애고, 테스트 서버에서 한번 돌려보세요. 추천 성능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강철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저걸 보자 아주 강한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저것만이 아니다.’
올드카 닷컴에서 보내온 다른 데이터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해결하면 추천 성능이 30%가 아니라 애초 계획인 35%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 * *
미국 올드카 닷컴 본사.
그곳의 데이터 분석 팀장 마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27%.
-26.5%.
-26.1%.
계속 추천 성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25%까지 떨어지면 어차피 서비스 비용을 내지 않아도 돼 손해 볼 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강력히 주장해 구축한 시스템이다.
즉 이게 실패하면 회사에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팀장님.”
“어.”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단 사용자별 관심 자동차 데이터가 잘못돼서 왔다고요.”
“잘못돼?”
“네. 캐리지리턴 문자 전송 과정에 오류가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n’이 넘어와야 하는데 ‘rn’이 넘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까. 파일을 기록할 때 옵션이 잘 못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 문제라는 말이잖아.”
부하직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네.”
“그것 때문에 추천 데이터 성능이 5%나 떨어졌단 말이야?”
“그건 아직 DRP 쪽에서도 테스트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일단 알았어. 잘못된 건 수정해서 보내줘.”
“네.”
마크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역시나 문제가 생기는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삐익.
순간 자신의 앞자리에 설치된 인터폰이 울렸다.
-잠시 올라와 보세요.
마크가 고개를 푹 숙였다. 회사 CEO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올드카 닷컴.
미국 중고차 시장의 49%를 점유하고 있는 1위 업체로 그 회사의 CEO는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마크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DRP 연동, 애초 팀장님의 강력한 건의 때문에 한 겁니다. 아시죠?”
“네.”
“DRP 측에서 30%의 성능을 낼 수 있다. 우리는 최대로 한다고 해도 25%가 현재 한계 수치다. 5%의 갭이 있으니 데이터가 조금 유출되거나, 기술 내재화가 안 되는 것보다는 이득이다.”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픈을 해보니 추천 성능이 25%로 떨어졌네요.”
“그건 시스템상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것으로 차차 좋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래 시스템 오픈 첫날에는 대부분 문제가 생깁니다. 그건 서치라고 해도 예외 아닙니다.”
CEO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앞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마크가 마른침을 삼켰다.
에러.
그게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CEO가 마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연동하고 있으니 기술 내재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데이터는 계속해서 DRP 쪽으로 넘어가고 있고…… 전 지금도 DRP를 사용하는 것의 이점을 모르겠습니다.”
“추천시스템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체 개발했으면 시스템 오픈도 당장 1년 뒤에나 가능했을 것이고 말씀드렸다시피 성능도 상당히 떨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 문제는 저희가 잘못해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고요.”
“흠…….”
그때.
마크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뭐, 또 문제가 있었어?”
“휴우…… 그래서 수정은 했다.
”이제 다시 정상화될 거라고? 그런데…….“
”……뭐?“
”알았어.“
전화를 끊은 마크가 CEO를 보며 말했다.
”수정 완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 좀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크가 CEO의 컴퓨터로 걸어가 관리자 페이지에 들어갔다.
-DRP 추천시스템 성능.
해당 지표의 수치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었다.
-27%.
-28%.
-30%.
30%까지 수정된 데이터가 입력되자마자 순식간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31%.
-32%.
-32.5%.
-33%.
수치가 꿈틀거리며 계속 올라간 것이다. 좋아지고 있는 지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관리자 페이지의 다른 탭을 클릭해 본 마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메인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온 소비자 중 실제 구매의사를 밝히는 비율이 50%를 넘었습니다.“
그 말에 CEO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정말입니까?“
마크가 모니터를 돌려 화면을 보여 주었다.
”여기요.“
모니터를 본 CEP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크의 말대로 수치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수치는 둘이 보고 있는 와중에도 우상향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과거 수치가 40%가 안 됐으니…….“
마크가 환한 표정으로 답했다.
”구매 의사도 10%나 올라간 것이죠.“
다행히 자신의 결정이 맞았다.
지구 반대편.
시스템 수정을 마친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휴우…….“
”우리 쪽 문제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아까는 정말 얼마나 식은땀이 나던지.“
강철의 입가도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저도요. 회사 역점 프로젝트인데 출시 첫날 실패하면.“
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끔찍합니다.“
”하하, 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미국과의 시차로 인해 늦은 밤까지 일하게 된 것이다.
”올드카 닷컴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상당히 만족스러운 눈치입니다. 추천 성능이 저희가 제시했던 35%까지 올라갔고, 그게 실제 구매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매출을 올려줄 것 같다고 합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네. 저희로서도 다행인 상황입니다. 타사에 제공할 아주 좋은 레퍼런스가 쌓인 셈입니까요.“
”내일 바로 제가 드린 리스트에 나와 있는 전체 회사에 연락 돌리도록 하세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개 회사는 바로 계약을 진행할 겁니다.“
”네.“
이내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필수 모니터링 인원만 배치하고 전부 퇴근하도록 합시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
-I'd like to inquire about the service application.
-Is your offer still valid?
-I'd like to talk to you about DRP application.
…….
올드카 닷컴의 성공적인 적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에이글 대회에서 명함을 나눠줬던 회사에서 연락이 쇄도한 것이다. 강철이 대기하고 있던 비서를 찾았다.
”문자 전송해 줄 테니까. 내일 여기 연락 온 회사에 관련 내용 좀 전해주세요. 곧 우리의 고객사가 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심 비서도 이만 퇴근해요. 난 차 타고 가면 되니까.“
”네.“
지시를 마친 강철이 사무실을 나섰다.
아직 컴컴한 밤.
하지만 강철의 앞길은 환하게 밝기만 했다.
* * *
한국 청와대.
그곳의 주인이자 대통령인 천건복이 정책실장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변형 인플루엔자 때문에 한국 GDP가 올해 역성장을 하게 생겼어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정책실장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지 않아도 관련 정책을 준비 중입니다. 소위 언택트 서비스에서부터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그린에너지에 대한 것까지 담아 준비 중입니다.”
“전기차, 바이오, 인터넷 이런 것들 말입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유럽을 비롯한 미국, 중국까지.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관련 산업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BBIG 말이군요. 배터리, 바이오, 인터넷, 게임.”
“네. 그래서 관련 산업을 편입한 펀드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또한,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기술 육성을 시도할 거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천건복이 불쑥 한 이름을 내뱉었다.
“최근 이강철이라는 이름이 많이 들리던데…… 그 사람이 하는 건 정확히 어떤 일입니까? 추천시스템 플랫폼을 개발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상대가 원하는 내용을 알아서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그 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이고요.”
“호오…… 그럼 그거야말로 정부가 추구하는 데이터 산업 육성에 딱 걸맞은 것 같은데.”
“하하, 네 맞습니다. 최근 매일 늦게까지 집무실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관련 공부를 많이 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해야지요.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둘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앞에 놓여 있는 차를 한 잔 마신 천건복이 말했다.
“말씀한 대로면 청와대로 초청해서 한 번쯤 만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겠습니다. 각 BBIG 별 대표 인물들을 대상으로 청와대 오찬을 준비 중이었는데 그때 한번 이름을 넣어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이후로도 한동안 둘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경제성장율 전망 : -1.2%.
세상을 휩쓴 전염병 때문에 한국은 최악의 한파를 겪고 있었다.
그걸 해결할 묘안을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