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25화 (25/59)

3장 도약을 위한 발판

비슷한 시각.

강철은 공항 출국장에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데이터 분석 대회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뿔테 안경을 낀 한 여자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코딩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은 전부 완벽주의자라고 하던데 대표님은 어떠신가요?”

여자의 직업은 드라마 작가였다. 강철을 모티브로 미국드라마 ‘실리콘밸리’의 한국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취재 중이었다.

“저도 비슷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탭과 스페이스바 사용을 두고 싸운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요. 저는 아닌 쪽이고요.”

대답을 들은 작가가 살짝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네? 뭐가 안 되나요?”

“미드 실리콘밸리는 보면 주인공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탭과 스페이스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와 비슷한 장면을 한국에도 넣고 싶어서요. 그런데 습관이 없다 하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모든 물건을 각을 맞춰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주인공. 그게 틀어지면 불편해하는.”

여자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아, 아주 좋은 아이디어네요. 정말 감사해요. 이런 건 제가 생각해야 하는 건데.”

강철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좋은 작품 만들어주시면 저한테나, 대산에나 도움이 되니까요.”

요즘 강철은 새삼 미디어의 파괴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얼마 전 했던 인터뷰.

그 직후 여론은 완전히 강철의 편으로 들어섰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은 재벌에 대한 반감이 있다. 강철이 재벌의 반대편에 선 투사처럼 비친 것이다.

덕분에 대산의 매출은 오르는 중이었고, 대산 마트 소액주주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강철이 마트를 차지하는데 한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헤헤, 최선을 다해볼게요.”

“네. 저도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그런 질답은 비행기에 탈 때까지 이어졌다.

* * *

장장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리 섭외해 놓은 자동차를 타고, 바로 호텔로 이동해 하루를 푹 쉬고 이후부터 바로 일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일정은 에이글 직원들과의 간담회.

심사위원 주의사항에 대해 간략한 브리핑을 받는 시간이었다. 강철은 그곳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유명인이 다 모여 있잖아…….’

일반인은 모르지만, 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봄직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리차드 버.

마크 에스퍼.

더그 라이스터.

등등 강철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강철의 시선이 그중에서도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더그 라이스터. 내가 업그레이드시킨 라이스터 회귀 분석을 만든 사람도 왔다.’

강철은 놀란 심정으로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강철을 향했다. 급기야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에게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강철의 가슴께 달려 있는 인식표를 향했다.

“혹시 에이글 아이디 리터너?”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가온 사람의 이름은 ‘더그 라이스터’ 요즘 업계에 화두가 되는 최신 추천 알고리즘인 라이스터 회귀 분석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강철도 그 알고리즘을 사용해 추천시스템을 만들었다.

평소 존경하던 인물을 만났기 때문일까. 강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네. 맞습니다.”

“하하, 반가워요. 더그 라이스터입니다.”

강철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더그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를요?”

강철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사에서도 관련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그 뛰어난 성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나 아웃 라이어를 분석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부분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알고리즘을 잘 사용하고 있다니, 그건 상용화에 적용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이론상으로 그럴 수 있다, 정도로 만든 것인데…….”

“아, 그래서 그 부분은 제가 수정을 좀 했습니다.”

더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그래요?”

“하하, 네.”

“그, 그것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교수님 덕분에 저도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둘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문이 열리고 에이글 관계자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에이글의 론 브라운입니다.”

그 말에 둘은 대화를 멈추고, 정면을 주시했다.

주의사항은 특별할 게 없었다.

-채점표 채점 방법.

그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설명은 30분 안에 끝이 났다.

이 자리에 모인 건 대부분이 세계적인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채점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더그가 강철에게 막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이번에는 론 브라운이 강철에게 다가왔다.

“꼭 뵙고 싶었습니다. 리터너 씨, 아니, 이강철 씨.”

강철이 초롱초롱한 론 브라운의 눈동자를 보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론이라고 불러주세요.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에이글 사이트에 올라오는 당신의 활약을 보면서 랜선 너머로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나 이번에 1위를 찍기 위해서 Question 게시판에 단 답글. 그리고 문제를 풀어낸 방법을 보면서요.”

강철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거의 광신도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 그러셨군요.”

“혹시 시간 되십니까. 진짜 꼭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푼 방식을 보면 라이스터 회귀분석 알고리즘을 많이 사용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보면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말을 듣던 더그 라이스터가 헛기침을 흘렸다.

“흠…… 흠흠.”

론의 시선이 강철의 옆을 향했다. 그리고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며 목에 걸린 인식표를 보았다.

“아, 더그 교수님.”

“오랜만이네. 지난번 서치 행사 이후로 4개월 만인가?”

“하하, 네. 마침 교수님도 계셨군요. 교수님이 만드신 라이스터 회귀분석 알고리즘을 이분이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잖아요.”

“마침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려던 참이네.”

“어, 그럼 그거 저도 같이 들어도 될까요?”

강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그런데 자세한 수식까지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알고리즘이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이디어 수준에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조용한 회의실 좀 부탁드립니다.”

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안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앞을 일련의 무리가 막아섰다.

“저도 좀 들어도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저분이 리터너였어요? 저도 같이 듣고 싶은데…….”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강철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겠다며 나섰다.

강철이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아……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데…….”

“괜찮습니다. 그리고 끝나고 저랑도 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에이글에 올라왔던 문제들 중에 ‘consumer behavior prediction’을 분석 내용 중에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도 손을 들었다.

“그, 그거 저도 궁금하던 참인데.”

“저도…….”

생각지도 못한 인기에 강철의 난감함은 커져만 갔다.

* * *

비슷한 시각.

진동만은 직접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전경련.

그곳에서 여러 재벌 그룹 회장들을 만날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차는 빠르게 본가를 벗어나 여의도로 향했다.

늦은 밤.

거리에 사람은 거의 없었고, 진동만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전경련 회의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몇몇 그룹의 회장들이 도착해 있었다.

물류.

유통.

금융.

전자.

등등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거물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중 한 회장이 진동만에게 다가왔다. 물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진동만과는 꽤 친한 사이였다.

“진 회장 왔구만.”

진동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왔네. 별일 없지?”

“나야 뭐, 매일 비슷하지.”

“요즘 변형 인플루엔자 덕분에 택배사업이 아주 호황이던데 앓는 소리는.”

“하하, 운이 좋았지. 그나저나 자넨 어떻게 된 건가?”

“엘리엇 펀드 기억나나?”

물류 그룹 회장 남정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펀드 때문에 국내 최고 대기업 중 하나가 큰 사달을 겪었다. 이후에 대기업에서부터 주주 친화적 정책이 서서히 보편화하고 있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남정복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또 그놈들이야?”

진동만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야.”

“지독하다…….”

“펀드를 세 군데로 나눠서 각각 우리 회사 지분을 매집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내가 생각할 때는 펀드 세 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야.”

“그 말은…….”

“그래. 같은 놈이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

남정복이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흠…….”

“나도 열심히 알아봤지만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펀드 규모가 수조 원을 넘어가는 거 보면 물주가 대단한 놈인 건 분명한데 말이야.”

“아직 정체도 불분명하단 말이군.”

“맞아. 아마 그 물주가 이강철 그놈을 우리회사에 심은 것 같아. 개평으로 사업을 도와주고. 가장 큰 문제는…….”

잠시 뜸을 들이던 진동만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이 다른 기업에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지.”

“……뭐?”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아주 대단한 물주가 개입한 것 같다고.”

남정복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 물주가 또 다른 사모 펀드를 세워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자 한다면?”

“하필이면 왜 한국 기업을…….”

“자네도 알다시피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회사에 쌓아놓은 돈이 많지 않은가. 경영권 확보해서 그 돈 다 풀면 회사를 산 돈은 채우고도 남지.”

그 말에 남정복이 마른침을 삼켰다.

당장 자기 회사부터 딱히 투자할 때가 없어 사내 유보금이 자본금의 수천 프로가 쌓여 있었다. 미국이라면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배당을 통해 ROE를 올리고 주주들에게 회사돈을 환원해 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이런 기업이 수두룩한 것이다.

진동만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거야.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남정복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전경련 회원사들이 하나둘씩 속속들이 입장했고,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진동만은 진실 속에 과장을 섞어가며 자신을 도와 할 이유를 설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원사 사장, 회장들이 굳은 표정으로 그 말을 경청했다.

* * *

강철의 설명이 끝나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더그 라이스터였다.

“그러니까. 내가 올린 라이스터 회귀분석의 단점을 고칠 방법을 한국대의 라영건 교수라는 분이 발표했고, 그 발표에도 문제가 조금 있지만, 자네가 결국 그걸 수정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칠판에 쓰여 있는 것이 그 라영건 교수가 만들어낸 수식이고.”

강철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번 더 설명해 드리자면…….”

더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네. 설명은 그 정도로 충분해. 결론적으로 알고리즘이 가진 단점인 전체 평균치가 틀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아이작 벡터 머신을 사용했다는 것 아닌가.”

“그 개념이 들어가면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겠지. 아이작 벡터머신은 연산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단점이 있으니까. 이걸 상용화시키려면 느린 속도를 커버하기 위해 서버 비용이 너무 들겠지. 자네는 그걸 해결한 거고.”

“네.”

“그리고 그 이상은…… 기업 비밀이다.”

강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하얗게 돋아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맞습니다.”

더그가 화이트 보드에 쓰여 있는 수식에 집중했다.

MIT.

그곳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한평생 관련 분야를 연구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신선한 접근 방법이었다.

“아주 인상적이야…….”

“감사합니다.”

“이게 한국의 빅트리라는 사이트에 적용되어 있다고 했나?”

“네. 이 알고리즘을 사용해 추천 성능을 30%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 업그레이드를 해서 5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계에 부딪혀서 혹시 성능 향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라이스터 회귀분석이 아웃 라이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다루긴 하지만 50%까지는 쉽지 않을 거야. 옆 사람이 추천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확률이 50%가 되지 않으니까.”

이를테면 친구가 치킨을 먹자며 후라이드를 추천했다. 그때 후라이드를 선택할 확률이 50%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강철도 알고 있었다.

“그걸 넘어서는 게 목표라서요.”

놀란 더그가 한 번 더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허허…….”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이군. 나와 사상이 비슷해.”

“감사합니다.”

강철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더그를 바라보았다.

‘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아니라 심사위원인 더그를 섭외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도 그를 탐내고 있었으니까.

더그가 강철의 그런 눈빛을 알아차리곤 물었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50%. 그 수치를 위해 지금도 연구하고 있는데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더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저 비슷한 말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제안하는 건가?”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학협력 식으로 함께 연구한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계신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더그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아무나와 작업하진 않아. 자네가 물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줬고,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연구라는 건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있어야 하니까.”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관련해서 테스트를 받겠습니다.”

“…….”

강철은 자신 있게 한 번 더 강조했다.

“자신 있습니다.”

지금까지 코세라를 통해 관련 강의를 전부 습득했다.

초급, 중급, 상급.

각 등급에서부터 각종 해외 논문까지 살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연히 더그 라이터스가 발표한 논문도 빼놓지 않고 읽어보았다. 그의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더그가 묘한 눈빛으로 강철을 보았다.

‘지금까지 회사 대표가 직접 테스트를 받겠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럼 일단 실력을 한번 보지. 나와 연구를 함께 할 실력이 충분하다면 나도 마냥 거부하고 싶진 않으니까.”

강철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내 더그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강철이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흐른 뒤.

회의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둘이 나누는 대화의 수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무슨 말이지 론 알아듣겠어?”

“잘 모르겠다.”

론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데이터 분석 분야에 10년을 넘게 근무하고 있었지만 둘의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건 비단 론과 그 동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참석한 다른 심사윈원들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사이 더그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초평면 최대 오차 클래스 분류법을 사용하면 선형 회귀 분석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초평면의 법선 벡터가 분류기로 표현되는 값을 찾는데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로직이 어떻게 되냐 하면…… 말보다는 쓰는 게 설명이 빠를 것 같군요.”

강철이 화이트 보드에 수식을 적고 결괏값을 도출했다.

“보시면 ∂ 0.2 값이 도출됩니다. 아시겠지만 이 값이 낮을수록 성능이 좋다는 뜻이죠. 해당 분류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 0.5가 나왔을 겁니다.”

강철의 설명에 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잘 알고 있군.”

더그는 대학생 수준에서 대학원생 수준, 그리고 그 수준을 또 한 번 올려 박사급, 자신이 일하고 있는 MIT의 교수급으로 계속 질문의 수준을 올렸다.

그때마다 강철의 대답은 지금처럼 거침이 없었다.

‘확실히 똑똑해.’

벌써 던진 질문만 1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철이 고민에 휩싸인 더그를 보며 말했다.

“이제 질문 끝나신 겁니까?”

더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럼 과제 연구는 같이 해주시는 거로 알아도 될까요?”

이 정도 실력이면 함께 연구 개발을 했을 때 분명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알겠네. 한번 추진해 보지.”

그 말에 강철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스럽지 않게 하겠습니다.”

정작 그 말에 더 놀란 건 론 브라운이었다.

‘허…… 더그 교수님이 산학협력 과제를 하신다니…….’

더그 라이스터.

그는 업계에서도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교수였다. 엔간한 기업과는 교류하지 않았고, 서치에서도 실력 있는 사람 몇몇과만 친분이 있다 알려져 있었다. 에이글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도 창업자가 애제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더그 라이스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그래.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지.”

둘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 * *

에이글 데이터 분석 대회.

대회는 총 3일간 진행된다. 그동안 심사위원이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매일매일 각 팀이 내놓은 결과를 보고 간단히 채점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강철은 남는 시간 동안 대회장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온 목적인 ‘인재 섭외’를 하기 위함이었다. 정말 실력이 있다면 억만금을 주고 서라도 인재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대회장을 둘러보는 강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딱히 인상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회 2일 차.

강철은 오늘도 대회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흠…….’

이미 한번 30팀을 쭉 훑어보았지만 그리 인상적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강철의 옆으로 론이 다가왔다.

“하하, 오늘도 대회장을 둘러보시는 겁니까.”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네.”

“아직 대표님 마음에 드는 친구를 못 만나셨나 보군요. 하긴 대표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쉽진 않을 겁니다.”

강철이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대회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강철에게 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가 추천할 만한 친구를 한 명 알고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강철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추천이요?”

“네. 평소 사이트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인데 이번 대회에도 참가했더라고요. 잠재성이 있는 친구니까. 한번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 그러면야 저야 감사하죠.”

“현재 버클리에 다니고 있는 친구인데 데이터 분석 쪽에 관심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노력도 많이 하고요. 저기 7번째 테이블 보이십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유진 데브스라는 친구입니다. 한번 집중적으로 살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강철은 론이 가리킨 테이블 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총 4명이 팀을 이뤄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척, 내가 하라고 한 건 했어?”

그러자 척이라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야, 데이터 정제만 벌써 몇 시간 째야. 이거 3일 안에 끝내야 한다고.”

그 말에도 척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강철이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았다.

‘저기 말하는 사람이 유진 데브스.’

강철의 시선이 반대편에 있는 남자의 가슴께로 향했다. 거기에 붙어 있는 인식표에는 선명한 글자로 이름이 적혀있었다.

‘척 헤이글?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얼굴도 익숙하고…….’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척 헤이글이 입을 열었다.

“중고차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 몇 가지가 문제에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해당 차의 옵션, 변속기 종류 그리고 색상. 이를테면 난 검은색이 좋거든.”

그러자 다른 팀원이 손을 들었다.

“난 회색.”

그 말에 대화를 주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봐봐. 선호하는 색상이 달라. 그러면 가장 선호도가 많은 색상이 비싸지 않을까?”

그러자 유진 데브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문제에도 해당 요소는 없었잖아. 주어진 데이터에서도 그런 항목은 없었고. 지금 그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니까.”

그 말에 남자가 급히 모니터를 보며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주어진 데이터를 더 자세히 살펴봤는데. 두 번째로 준 데이터에 ITEM_01이라는 항목. 이게 중고차 색상 같아.”

“……뭐?”

“000이 블랙, 8525585가 그린. 2558585가 레드. 이거 HTML RGB 색상표 표잖아.”

그 말에 유진이 급히 자리를 이동해 척의 모니터를 확인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색상표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이거까지 넣어서 데이터 뽑으면 더 정확할 것 같은데 어때?”

그 말에 유진이 아닌 강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났다. 척 헤이글. 사라의 아버지.’

사라.

강철이 죽기 전 발표된 현존 최고의 인공지능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걸 만든 사람이 바로 ‘척 헤이글’. 세기의 개발자로 칭송받았던 사람이었다.

* * *

강철은 당장에라도 척 헤이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대회장이다. 심사위원은 공정한 채점을 위해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척 헤이글이라니 그가 이곳에 출전했었구나…….’

척 헤이글.

강철도 그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접한 게 다였다.

-척 헤이글. 세계 최초 자기학습 인공지능. 사라 개발.

-사라,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미지, 문자, 언어를 인식하다.

-통역사 자리가 사라진다. 그 자리를 대체한 사라.

사라가 나오고 나서 세상은 대변혁이라 부를 만큼 달라진다. 통역사만큼 완벽한 통역이 제공되기에 통역사 일자리가 사라지고, 더 향상된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호사.

의사.

같은 대표적인 전문직종들도 자리를 위협받게 된다. 사라는 그만큼 충격적인 인공지능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10년 후의 일이었다. 아직 ‘척 헤이글’은 에이글 데이터 분석 대회에 나온 참가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무조건 모셔가야 해.’

다이아몬드 원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줍지 않으면 바보인 것이다.

강철은 애타는 표정으로 척을 보았다. 그런 마음도 모른 채 론 브라운이 다가왔다.

“보시니 어떻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괜찮은 친구라고.”

“네.”

강철은 척 헤이글에게 가려는 시선을 애써 돌렸다. 다른 이에게 ‘척’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론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회 끝나고 자리 한번 마련해 드릴까요?”

강철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야 저야 감사하죠.”

“하하, 네. 제가 꼭 성사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강철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더 있다가 괜한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다.

‘척 헤이글, 무조건 잡는다.’

아무래도 미국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 * *

에이글 데이터 분석 대회.

이곳에 스폰을 해주는 기업은 다양했다.

서치.

나일.

어도비

등등 세계 유수의 회사들이 이곳에 스폰서 자격으로 지원금을 대준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지원금만큼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문제를 데이터로 해결해 드립니다.

에이글은 이러한 모토 아래 각 회사에서 문제와 데이터를 받는다. 그리고 해당 데이터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회사는 문제를 해결해서 좋고, 에이글은 후원을 받아서 좋고, 그렇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후원사 중에는 올드카닷컴이라는 곳도 있었다. 미국 중고차 시장의 40% 이상을 선점하고 있는 회사였다.

그 회사의 데이터 분석팀 팀장이 직원을 보며 물었다.

“어때, 괜찮은 결과물 좀 나왔어?”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긴 합니다. 일단 7팀에서 내놓은 모델, 10번 팀 모델, 22번 팀 모델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져와 봐.”

그 말에 직원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흠…….”

“결과적으로 보면 추천 성능이 12%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디벨롭만 잘하면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대회 끝이잖아. 그럼 여기까지가 한 계라는 뜻인데…….”

“사실 오만 달러에 이 정도 결과물이면 돈값은 충분히 한 겁니다. 아직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 결정 못 한 상태니까요.”

그 말에 팀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올드카 닷컴에 데이터 분석팀은 추천시스템 개발을 위해 최근 만들어졌다. 여러 추천 모델을 고민하던 중 에이글에서 데이터 분석 대회를 연다기에 스폰을 해주고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일단 좀 살펴보고, 괜찮은 모델로 선택하도록 하지.”

“네.”

“그리고 심사위원 중에 이강철이라는 사람 있잖아.”

“아, 더그 라이스터 교수님이 칭찬하신 분이요?”

“그래, 그분이랑 대화를 좀 했으면 하는데…… 혹시 방법이 있을까?”

“한번 에이글 측에 물어보겠습니다. 아니면 나가서 직접 물어볼까요? 계속 대회장을 둘러보면서 참가자들을 살피고 있는 것 같던데.”

팀장이 턱을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분이 라이스터 회귀 분석으로 추천 성능 30%를 만들었다고 했지?”

“네. 그 자리에서 듣긴 했지만 참 신기합니다. 그 알고리즘이 타 알고리즘 대비 연산속도가 40% 빠르지만, 전체 평균치에 문제가 생기는데 어떻게 그걸 해결했는지…….”

“그럼 그분에게 우리 일의 고문을 좀 맡아달라고 하면 어떨까.”

“고문이요?”

“그래. 분석 모델은 이번 에이글 대회에서 나온 걸 사용하고, 그걸 디벨롭 하는 방향에 대해 고문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는 거지. 그럼 더 빨리 추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요.”

“라이스터 교수님이 인정한 분이니 회사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그럼 지금 바로 가볼까요?”

그 말에 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지.”

“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대회장을 찾아간 둘은 이내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뭐냐…….”

둘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강철의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사,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네요.”

“어서 가자. 더 늦기 전에.”

“네.”

둘은 굳은 표정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강철은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하, 네. 시간이 되면 한번 봐드리겠습니다.”

“아…… 고문자리요. 제가 이미 하는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까지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다 보니 든 생각은 하나였다.

‘추천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회사가 상당하다.’

추천.

그건 이미 시대의 대세가 되어 있었다. 아주 큰 사이트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중소형 서비스에서도 추천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이건 곧 대산 3.0의 고객이 되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대산 3.0.

추천시스템을 플랫폼화해서 다른 회사에 제공하는 프로젝트였다. 강철에게는 이들 한 명 한 명이 고객들로 보였기에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했다.

“하하, 네. 최대한 한번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명함을 주며 꼭 한번 대화를 나누자는 제안을 해왔다. 한 회사는 아주 직접 이직 제안을 하는 곳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라이룰루의 CEO 로저 셔먼입니다. 최고의 대우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강철이 어색한 미소로 로저 셔먼을 보았다.

하지만 다행히 누군가 그런 강철의 민망함을 대신해 주었다.

“아직 저분이 누구신지 모르시네. 알고리듬 CEO가 저분이잖아요. 서치에 60억 달러에 매각된. 그런데 누가 누굴 채용한다고. 라이룰루 쇼핑몰 기업가치가 1조도 안 되는 거로 아는데…….”

“헉…….”

“알고리듬?”

“그 주인공이 이분이었어.”

“어쩐지…….”

강철을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에 놀람이 새겨졌다.

알고리듬.

서치.

60억 달러.

그 세 단어가 주는 충격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웬만한 회사 관계자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멀어지는 걸 강철로서는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다들 추천시스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이러실 게 아니라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사실 제가 알고리듬을 매각하고, 새롭게 추천시스템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씀들을 들어보니 다들 추천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 비용이면 우리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그 말에 모인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철을 보았다.

“결코, 시간을 버리시진 않을 겁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 말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강철을 따라나섰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다 큰 성인들이 강철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 인터넷은 불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lma5*** : 이강철이 미국에서 사모 펀드 데리고 와서 대산 먹었다면서? 그거 완전 매국노 아니냐?

-ccle**** : 대산 오너만 불쌍하게 됐네. 이강철 그 xx. 완전 쓰레기네.

-nove**** : 기술자가 맞네. 기업사냥 기술자.

언론이 만들어낸 강철의 이미지에 대중들은 분노의 화살을 쏟아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전경련에서도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사모 펀드의 한국 기업 침탈 방지를 위한 상법 개정안.

그걸 공식적으로 국회에 요청한 것이다. 일이 진동만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기쁜 건 진용민이었다.

“언론 덕분에 여론이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지난번 이강철의 인터뷰로 인해서 소액주주들이 이탈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먼저 위임장을 보내주고 있어요. 이 기세라면 앞으로 일주일만 지나면 50%를 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동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 돼. 중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도 사모 펀드의 경영권 참여 목적의 지분투자를 막는 법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건 소급 적용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만약 리턴 펀드가 대산 마트 지분도 인수한다면?”

“그러면…….”

“막을 방법이 없어. 자금력에서 달리니까. 소급 적용을 안 한다 해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거라도 지켜야 할 거 아니냐.”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 선미는 어떻게 됐어?”

“제 연락을 아예 받질 않습니다.”

“쯧쯧. 고얀 놈. 이렇게 아비를 배신해.”

“단단히 마음이 돌아선 것 같습니다.”

진동만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줄 것을……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

옆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진용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50%를 넘으면 대산 마트 이사진을 좀 더 확실한 사람들로 전부 물갈이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존 이사진들이 우리 편이라고는 하지만…… 지난번에도 뒤통수를 한번 맞아서 그런지 불안합니다.”

“그건 좋은 생각이구나. 그렇게 하도록 해. 이참에 대표이사에서부터 싹 바꾸지.”

“그리고 JBS에서 이강철을 모티브로 하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미국 출장에 드라마 작가도 따라갔고요.”

“……그래?”

“그래서 그걸 엮어서 추문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강철, 방송사의 기묘한 협력.”

“아주 멘탈이 탈탈 털리도록 만들어 버려. 대산을 차지한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야지.”

진용민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튿날 속보로 관련 내용이 인터넷상에 흘러나왔다.

-[단독] 이강철, 방송사와의 기묘한 협력.

-현재 이강철 씨가 미국 출장 중인 것으로 파악 중인데요. 그것이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방송사와의 여러 협력을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방송사 PD, 작가까지 나서서 이강철 씨의 이미지를 향상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는 것인데요. 신천 일보에서 단독 취재했습니다.

방송사와 강철의 스캔들로 몰아가는 내용이었다.

* * *

대산 3.0에 대한 설명을 마친 강철이 여러 회사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말씀대로 된다면 꼭 한번 써보고 싶군요.”

“이미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테스트 중 일시에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서비스해 드리고 있으니 사용해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용을 중단하셔도 됩니다.”

“그럼 일단 연락처 하나 주시면 검토해 보겠습니다.”

주로 이런 식의 대화였다. 그렇게 뿌린 연락처만 10여 곳이 넘어갔다.

강철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생겨났다.

‘이제 척 헤이글만 섭외하면 완벽해.’

회의를 끝낸 강철은 어떻게 하면 척 헤이글을 채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강철의 옆으로 비서가 다가왔다.

“이거 한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가 내민 건 한국발 뉴스.

-[단독] 이강철, 방송사와의 기묘한 협력.

뉴스를 확인해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뉴스를 믿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만 수천 개가 달렸습니다. 자체적으로 확인 결과, 대산 마트 소액주주들이 오너 일가에게 위임장을 주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강철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추잡하구만.”

국세청.

검찰.

그 두 개는 덕천과 이앤박을 이용해 막았다. 별 탈 없이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제는 언론을 통한 공격이라…….

“일단 회사 차원에서 사실무근이라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허위 사실 유포에는 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도 했고요. 그래도 여론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국회에는 사모 펀드의 지분참가 제한에 관한 법률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비서가 빠르게 상세 설명을 덧붙였다.

“사모 펀드의 경우 투자 목적이 아닌 경영 참여 목적을 제한하는 법안입니다. 그런 정황을 보면 다른 재벌가에서도 진동만 일가와 협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흠…….”

강철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군.’

작은 피라미가 발악한다면 그냥 두고 보면 된다.

하지만 진동만은 아직 피라미가 아니다. 대산 그룹을 세운 거인이었고, 그가 발악한다면 자신도 상처를 입을 게 분명했다.

비서가 고민에 휩싸인 강철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뉴스에는 뉴스로 대응하는 게 가장 좋긴 해. 어차피 공식 성명을 발표한다고 해도 기존의 뉴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 말씀은…….”

“이참에 에이글을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여.”

“……네?”

“어차피 대산 그룹의 핵심이 추천시스템이 되었으니까. 에이글을 인수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겠어.”

에이글.

데이터 분석 플랫폼.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데이터 과학자만 6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를 인수한다면 대산 그룹의 추천시스템이나 대산 3.0 역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강철이 비서를 보며 지시했다.

“본사 연락해서 기업가치 평가 한번 해봐. 난 CEO를 만나볼 테니.”

이런 결정은 원래 회장이 해야 한다. 하지만 비서도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강철은 당연히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강철은 바로 핸드폰을 들어 ‘론 브라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하, 네. 말씀하십시오.

“에이글 CEO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저희 CEO님이요? 마침 CEO님도 강철 님을 뵙고 싶어 했는데 잘 됐군요.

“아, 네. 그럼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면 맞추겠습니다.”

-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철은 다시 조금 전까지 했던 고민에 빠져들었다.

척 헤이글.

그를 섭외하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 * *

한국 JBS.

강철을 따라 미국에 온 PD가 속해 있는 지상파 방송사였다. 둘의 염문의 주인공이 된 곳이기도 했다.

그곳의 드라마국 국장이 전화기를 붙들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전화기 반대편에서 잔뜩 억울함이 이 목소리가 들렸다.

-국장님도 아시잖아요. 이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그래서. 진짜 아무 상관 없는 거지?”

-그렇다니까요. 저 진짜 이강철 대표한테 1원 한 푼 안 받았어요. 여기 미국에서도 회사에서 끊어준 이코노미석 타고 왔고요. 물론…….

PD가 잠시 말을 흐렸다. 국장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숨기는 거 없이 전부 말해야 해. 이거 잘못하면 검찰까지 넘어갈 수도 있어.”

-아니, 그냥 밥 한번 얻어먹었어요. 인터뷰해야 해서 같이 식당을 갔는데 이분이 대표이다 보니까. 좀 좋은 데서 밥을 먹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밥 한번 얻어먹은 게 다예요.

“밥 한번 먹은 게 다다.”

-그렇다니까요. 지금 한국에서 나오는 뉴스 누군가 기획한 거예요.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합니다.

PD가 오히려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국장은 인상을 찡그릴 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일단 알았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사내 전화기가 울렸다.

“네. 본부장님.”

-일단 올라와 봐.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

심각한 말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본부장실.

그곳으로 올라가자 본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예능 국장도 함께였다.

“위에서 연락이 왔어.”

“어떤…….”

“조용히 있으라고.”

“……네?”

“이강철 모티브로 드라마 제작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거 일단 취소해.”

“본부장님…….”

본부장이 예능국장을 보며 말했다.

“예능 쪽에서도 취소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리빌딩 하는 프로그램 말입니까?”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황이 안 좋아.”

“어떤 상황 말입니까?”

“그냥 그런 게 있어. 너까지 알 필요는 없다.”

드라마 국장이 이를 꽉 깨물었다.

자신도 벌써 방송국 생활만 10년이 넘었다.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감으로 아는 것이다.

드라마 국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다른 데서 먼저 할 수도 있어요.”

“…….”

“종편이나 아이비디오에서 먼저 방송되면…… 파급력이 상당할 겁니다.”

“그래도 할 수 없어. 이미 위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본부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드라마 국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겠습니다.”

이내 그 소식은 이역만리 미국에 전해졌다.

* * *

대회 마지막 날.

스폰서 평가 : 20%

심사위원 평가 : 30%.

모델 성능 평가 : 50%.

각각의 점수를 합쳐 최종 순위가 정해졌다. 하지만 강철이 주시하고 있는 팀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순위권 팀들이 업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스카웃 전쟁이 펼쳐질 때 강철은 조용히 해당 팀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니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강철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자리를 정리하던 팀원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강철은 먼저 유진 데브스를 보며 말했다.

“제가 추천시스템 관련 인재를 찾고 있는데 론 브라운이 추천을 해줬습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고.”

그 말에 유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강철.

그 이름 세 글자를 유진 데브스도 알기 때문이었다.

“알고리듬 CEO…… 맞으십니까?”

“하하, 네. 정확히는 전 CEO입니다.”

“여, 영광입니다. 알고리듬에서 만든 라이트 알고리즘은 저도 인상적으로 봤어요.”

“하하, 네. 시간이 된다면 오늘 저녁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무, 물론입니다.”

그 말에 다른 참가자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보았다.

에이글 데이터 분석 대회.

그곳에 참가한 건 실력을 겨루고 남들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유진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부러운 것이다.

강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른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혹시 다른 분들도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했으면 하는데 어떠신가요?”

그 말에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중에는 분위기에 휩쓸린 ‘척 헤이글’도 있었다.

잠시 후.

저녁 식사 자리.

강철은 유진과 대화하고 있었지만 척 헤이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라를 어떻게 개발했을까.

10년 뒤라지만 지금도 엄청난 실력을 갖췄을 텐데 왜 이런 대회에 참가한 것일까.

대회가 끝나면 뭘 하려는 것일까.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다. 기회를 살피던 강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짐작하셨겠지만 이렇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 건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유진을 비롯한 팀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척 헤이글’은 그저 담담히 밥을 먹고 있었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이 낸 답안을 아주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걸 보니 더 제 회사에 채용하고 싶더군요. 물론 대우는 최고 수준으로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서치의 신입 연봉의 1.5배를 드리겠습니다.”

서치의 대졸 신입 엔지니어 초봉이 연 15만 달러였다. 거기에 1.5배면 20만 달러는 넘는 금액. 아직 대학생인 이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금액에 유진을 비롯한 다른 팀원 2명은 눈을 반짝였지만 ‘척 헤이글’만은 예외였다.

강철이 처음으로 ‘척’을 보며 물었다.

“미스터 척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척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저요?”

“하하, 네.”

“아…… 저는 따로 연구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딱히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연구해 보고 싶은 것이라…….

그게 ‘사라’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사라’는 척 헤이글의 전 여자친구로 그녀가 교통사고 죽고 나서, 그녀를 현실 세계에 재탄생 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철의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저 친구는 회사에는 안 들어간다고 했어요. 꼭 만들어야 할 게 있어서.”

유진의 말에 강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 말에 척이 답했다.

“‘사라’라고 제 전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현실 세계로 다시 데려오고 싶거든요.”

빙고!

제 생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강철은 애써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괜한 것을 물어봤군요.”

척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아니에요.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 인걸요.”

“그럼 연구개발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시겠군요.”

“네. 이번 상금으로 돈을 마련하려 했는데 쩝…….”

그러면서 슬쩍 강철을 흘겨보았다. 이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표님 덕분에 에이글에 올라오는 상금을 다 놓쳤습니다. 진짜 실력이 대단하시더군요.”

“아…….”

“하하, 뭐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뤄서 진 거니 다른 감정은 없어요. 그냥 조금 아쉬울 뿐.”

강철이 그런 척 헤이글을 힘주어 보았다.

“그럼 제가 미스터 척에게 투자를 하겠습니다.”

“……네?”

“연구개발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겁니다. 그 돈을 제가 대겠다는 말입니다.”

“아직…… 개념만 잡은 상태인데…….”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실력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더구나 전 알고리듬을 매각하면서 충분한 돈이 생겼습니다. 크게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팀원들이 여전히 망설이는 척 헤이글을 부추겼다. 머뭇거리던 척도 결국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됐다.

강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미국에서 에이글 인수절차만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진동만의 마지막 남은 숨통이 끊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 * *

-대산 그룹 4억 달러에 에이글 인수 협상 체결.

-세계적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에이글. 대산 그룹의 품으로.

-대산 그룹 사모펀드에 인수되자마자 에이글 인수 행보.

-유통에서 기술로. 대산 그룹 3대 혁신 방안 발표.

에이글 인수가 결정되자마자 관련 내용이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1. 주주친화적 정책.

2. 신 성장동력 확보.

3. 투명경영.

과거와는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구체적인 주주 친화 정책으로는 배당성향을 30%까지 끌어올리고 미국처럼 분기별 배당을 실기하겠다, 신성장동력 확보에는 에이글 인수를 통해 추천시스템 플랫폼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투명경영은 기업의 CSR 활동을 통해 혹시 모를 갑질을 근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크게 이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다. 다만 주가는 바로 반응했다.

대산 마트 : 132,000. +20%.

주가가 해당 발표를 하자마자 장중 20%가 넘는 상승 폭을 보이며 상승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대산 마트 종목 게시판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long*** : 이번에는 제발 30만 원까지 가자. 나 20만 원에 물렸다.

-ki990**** : 외인, 기관 쌍끌이 매수 들어왔다. 가즈아~!

-yamm**** : 개미들만 오지게 파네. x신들아 지금은 사야 할 때야.

-abcd**** : 너네들 에이글 인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냐? 그리고 이강철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냐? 대산이 나일처럼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이거 TP(Target Price) 50만 원 본다.

가장 핫 한 주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변형 인플루엔자로 인한 세계 경제 역성장으로 각국 정부는 제로금리 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풀린 유동성이 자산가격을 자극해 주식을 비롯해 부동산이 대폭등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대산 마트의 에이글 인수를 비롯한 주주 친화 정책은 주가에 불에 붙이기 충분했다.

대산 마트 : 198,000. +15%.

주가는 매일매일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그건 소액주주들을 비롯해 대산 마트 주식을 가진 주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주가가 오르는 걸 싫어할 주주는 없었다. 강철은 거기에 기름을 붓고자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산 마트 이사회를 소집해 말했다.

“대산 마트가 가진 자사주 폐기를 안건으로 올렸으면 합니다.”

“자사주 폐기요?”

“그건 좀…….”

이사진들이 서로 난색을 보였다.

“CTO님은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이렇게 주가가 올라갈 때 자사주를 시장에 풀어 현금을 확보하는 게 이득입니다.”

강철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이렇게 주가를 올린 건 누굽니까?”

등기이사 중 대표이사의 눈동자가 떨렸다. 현재 대산 그룹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건 에이글 인수, 배당성향 확대를 결정한 강철 덕분이기 때문이었다.

“그야 물론 CTO님 덕분에…….”

“그런데 이런 시점에 자사주를 시장에 매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철의 눈에서 레이저가 쏟아져 나왔다. 대산 마트 대표이사가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대표이사는 진동만 쪽 사람이다. 사정 봐줄 필요가 없었다.

강철이 한 번 더 강렬한 말을 쏟아냈다.

“주가가 내려갈 테죠. 그럼 소액주주들의 원망이 제게 쏟아질 테고요. 지금 절 엿 먹이시려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이사회는 진동만이 장악하고 있지만, 대산 마트의 대주주는 대산 그룹이다. 그 그룹의 실질적 주인의 말이기에 대표이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 이사회 안건 올려서 자사주 폐기하세요. 언론에 그렇게 발표하겠습니다.”

대표이사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분명 진동만이 싫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그런 대표이사를 보며 일침을 가했다.

“뭐 하세요. 그만 나가보지 않고.”

“……네.”

머뭇거리던 대산 마트 대표이사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바로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배포되었다.

-대산 그룹 전체 보유 자사주 소각 결정.

-주주 친화 정책의 연속. 대산 그룹 전체 자사주 소각.

-사모펀드에 인수된 대산 그룹. 주주 친화 정책으로 주가 부양.

그 뉴스는 소액주주들을 또 한 번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진동만에게는 치명적인 소식이었다. 신문을 들고 있는 진동만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개자식이 누구 돈을 함부로…….”

진용민의 표정이 한없이 구겨졌다.

“이강철의 발표 때문에 지금 소액주주들의 위임장 철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트 쪽 대표이사는? 단도리 제대로 쳤다면서.”

진용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명 그랬는데…….”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가 하나 올라왔다.

-주식 소각 결정.

대산 마트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고, 이는 곧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진동만이 혀를 차며 진용민을 보았다.

“쯧쯧, 인력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해서야.”

진동만의 힐책이 진용민은 억울했다. 이렇게 갑자기 일이 흘러갈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변명을 할 순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일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모펀드가 지분 투자는 할 수 있어도, 경영 참여로 목적 변경은 못 하게 돼. 그들의 주주권리도 등기이사 관련 안건에 대해서는 제한될 거고. 그럼 일단 한숨 돌릴 수는 있다.”

“그래도 이 추세로 소액주주들의 이탈이 계속된다면 기존 이사진까지 전부 변경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말 그대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인데…….”

진동만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백화점에 이어 마트까지 잃게 된다. 그야말로 전부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보유 중인 주식은 남게 되겠지만…… 돈만 남고 권력을 잃게 된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또 한 번 오성전자를 찾아가 봐야지. 그래도 내가 큰 아버지인데 못 본 척하진 않겠지.”

오성 전자를 주력으로 하는 오성 그룹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그룹이었다. 대산 그룹의 진동만은 오성 그룹의 창업자인 진성호의 5번째 아들이었다. 오성 그룹을 이끄는 진성호는 자신의 조카인 것이다. 진용민에게는 사촌 형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진용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버지에게 오성그룹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수모.

그 두 글자로 대변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오성 그룹에 또 한 번 손을 벌리겠다, 말하고 있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대산은 넘어갔지만, 대산 마트는 안 된다. 진용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그걸 막을 생각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오랜만에 강철은 청담에 있는 ㈜아이온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척 헤이글’과 화상 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아이체크의 송고은이 강철을 맞이했다.

“오셨어요. 대표님.”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오늘 회의는 아주 중요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척 헤이글’은 인공지능 분야의 실력자. 그가 만든 인공지능이 우리 ‘아이체크’ 서비스에 도입된다면 관련 성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겁니다.”

“정말 이미지 인식률 99.98%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미지 인식률 99.98%.

실제 인간의 이미지 인식률이 94.90%였다. 99.98%는 그걸 아득히 넘은 것으로 이후 활용할 곳은 아이체크만이 아니라 무궁무진했다. 아마 기업 가치도 조 단위는 훌쩍 넘어가리라.

“네. 인공지능 ‘사라’를 만들면서 나오는 개발 과정 우리 아이체크에 하나씩 적용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칭찬하는 모습을 처음 봅니다.”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요.”

인공지능 사라.

그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미국의 척 헤이글과 화상통신이 연결되었다. 송고은은 회의가 진행될수록 왜 강철이 이토록 척 헤이글을 입에 닳도록 칭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천재.

머릿속에 그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강철은 바로 대산 그룹으로 돌아왔다. 대산 추천시스템 프로젝트 정기회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프로젝트 관련 개발자들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더그 라이스터 교수님이 저희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했다고요?”

최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CTO님으로부터 들었으니 사실이겠지.”

“더그 교수님은 기업과는 협업을 잘 안 하시는 거로 유명하신 분인데 도대체 어떻게…….”

“CTO님 말로는 에이글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섭외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유혜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몇 번 이야기를 나누니까. 섭외됐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강철이 유혜인의 뒤에서 불쑥 입을 열었다.

“말 됩니다. 제가 직접 섭외했거든요.”

“아…… CTO님.”

강철이 시선을 돌려 회의실에 붙어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 다 됐습니다.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이내.

화상통화가 연결되고, 화면에 더그 라이스터가 나타났다. 데이터 분석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그의 엄청난 실력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더그 라이스터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대산 추천시스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강철은 바로 한 남자를 맞이해야 했다.

“교수님?”

대산 그룹 추천시스템 고문으로 있는 라영건 교수가 강철을 찾아온 것이다. 최근 일이 바빠 만나지 못했는데 라영건 교수가 직접 비서에게 연락해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이네.”

“하하, 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라영건 교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MIT의 더그 라이스터 교수가 합류했다는 말 사실인가?”

강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문이 거기까지 갔습니까. 마침 오늘 1차 미팅을 했습니다. 라이스터 교수님은 회귀분석 알고리즘 업그레이드를 담당하실 거예요.”

라영건이 놀란 눈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허허…….”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영건을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나도, 나도 그 팀에 넣어주게.”

“……네?”

“내 우상이 누군지 아는가?”

“설마.”

“맞아. 더그 라이스터 교수님이야. 이참에 우리 랩 실 대학원생들 전부 그 팀에 넣어줄 수 있나?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라이스터 교수와 협업을 해보겠나.”

라영건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눈빛에서 나오는 강력한 열망에 강철이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일단 실력 평가를 한 번 하고…….”

“그래, 폐를 끼칠 수는 없지. 내 당장 학교로 돌아가서 완벽하게 준비시키겠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라영건 교수가 돌아가고, 강철은 수 통의 연락을 받아야 했다. 하나같이 유명 대학의 교수들로 더그 라이스터 교수와 협업을 해볼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더그 라이스터.

학계에 알려진 그의 위상은 강철의 생각 그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대산의 추천시스템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질 힘이 되었다.

한국의 추천 관련 석학들이 대산 그룹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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