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23화 (23/59)

1장 힘을 합치면(2)

진동만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인터폰을 눌렀다.

“어떻게 됐나?”

-첫 번째 안건 가결되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첫 번째 안건은 황희석 등기이사에 대한 해임안이었다. 그리고 그 건은 부결시키기로 약속된 건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결이 되었다. 계획과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미국 측에서 가결에 투표했습니다.

“그래 봤자 27%잖아. 왜 가결이 돼.”

-미국 리턴 펀드의 대표가 미국 자본 전부에 대한 위임장을 들고 왔습니다.

“그럼 40%?”

-그게…… 이강철 이사도 가결에 손을 들었습니다.

놀란 진동만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이강철 그놈이 결국…….”

불길한 예감의 정체가 실체를 드러냈다. 이강철을 볼 때마다 뭔가가 불안했었는데…….

-예상 밖의 행동에 주총장도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음 안건은?”

-곧 미국 측이 제안한 이사 2명 및 이강철 이사의 등기이사 선임 건 표결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끊은 진동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서성거렸다.

“역시 그때 내 감을 믿었어야 했어…….”

지분교환.

그 말이 나왔을 때 불길함이 극에 달했다. 그래서 직접 이강철을 만나 이야기까지 나눴건만…….

“내 감이 떨어진 건가…….”

이강철에게서 딱히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순 없었다. 더구나 그가 지금까지 회사에 해왔던 일을 생각하니 놓치기 싫은 인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허락해 주었건만,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삐리리리.

삐리리리.

소리와 함께 인터폰이 울렸다.

-2번째 안건도 원안대로 가결되었습니다.

“…….”

진동만이 이를 악물었다.

결국, 황희석은 해임되었고, 미국 측 이사 2명 그리고 이강철이 등기이사에 올랐다. 정황상 이강철은 미국 사모 펀드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단기간에 그렇게 큰 부를 이뤘다는 건 누군가가 도와준 것이 분명했다. 그게 사모 펀드일 가능성이 농후했고.

“당장 등기이사진들 전부 소집해.”

-알겠습니다.

일단은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한다. 남은 이사진만 틀어쥐고 있어도 반격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삐리리리.

삐리리리.

다시 울린 인터폰을 받아든 진동만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광영 이사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방금 주주총회에서 3명이 선임되었으니, 김광영까지 합치면 저쪽은 총 4명이 된다. 더구나 주식까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사회.

주식.

둘 다 과반을 넘긴다는 건 회사를 넘긴다는 말과 같았다. 진동만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 상황이 주주총회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무효야! 다시 표결해!”

주총장에 참석했던 한 주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주주총회를 주관하던 대표이사 차학윤은 그 상황을 수수방관하기만 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난 찬성 못 해! 이거 절차 제대로 지킨 거 맞아? 주주총회 절차 설명부터 다시 해야지!”

모두 차학윤이 미리 심어놓은 주총꾼이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시 주주총회를 방해해 멈추라고 지시해 놓은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마이클이 손을 들자 그의 경호원들이 위압감을 풍기며 방해꾼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뭐…… 뭐야.

“Be quiet sit down.”

흑인.

거기에 190㎝가 넘는 거구의 모습에 상대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는 거야.”

경호원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내, 내 몸에 손이라도 하나 대봐. 바로 나랑 경찰서 가는 거야. 어!”

그리고 천천히 내려오자마자, 남자는 바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에 한 대로 맞았다가는 경찰이 오기 전에 피떡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란을 잠재운 마이클이 경영진을 향해 말했다.

“다시 시작합시다.”

어설픈 한국어였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 * *

가결.

가결.

가결.

부결.

부결.

주주총회 결과였다. 강철이 원했던 안 들은 전부 가결되었고, 그가 원치 않았던 안은 전부 부결되었다.

그 결과가 나오자마자 언론을 통해 관련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산 그룹 이사진 대거 교체. 미국 자본의 적대적 M&A의 시작인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된 대산 그룹. 그 앞날은.

-대산 그룹 적대적 M&A 당하다.

기사 대부분이 대산 그룹이 미국 자본에 의해 적대적 M&A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언론사와 진용민이 약속했던 뉴스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주총장 밖은 뉴스로 시끄러웠지만, 내부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장시간의 주주총회가 끝나고, 주주들이 전부 퇴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몇몇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강철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진용민도 있었다.

진용민이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두고 보자. 이대로 끝나진 않을 거야.”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는 곳이 비즈니스 세상입니다. 그렇게 적대감을 드러내시면 불리해지는 건 회장님이십니다.”

“이게 두고 보자 하니까 누가 누구한테 충고 짓거리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어? 하하,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내가 이대로 조용히 물러날 것 같아?”

강철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해보셔도 됩니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넌 몰라. 대한민국 땅에 재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청와대를 비롯한 국세청, 검찰, 그리고 다른 재벌들까지. 그 힘들이 전부 널 향하면 어떻게 될까?”

“그거야 뒤가 구린 분들이 걱정하셔야 할 부분이고요. 전 깨끗합니다.”

진용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깨끗하게 돈을 벌었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분노에 휩싸인 진용민은 도저히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니었다.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할 말 끝났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너…… 너 이 자식이익!”

진용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강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새 강철이 고용한 경호원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누구도 강철에게 손댈 수 없었다.

그런 강철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만요.”

진선미였다.

“잠깐 얘기 좀 해요.”

“선약이 있어서요.”

강철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떠났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약속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진선미가 입술을 잘끈 씹으며 그런 강철의 뒤를 쳐다보았다.

서울의 모처.

사생활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가게에 강철이 마이클, 신주영과 함께 앉아 있었다. 강철이 그들에게 술을 한 잔씩 따라주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일을 정말 잘 마무리해 주었어요.”

“하하, 아닙니다.”

“보스 덕분에 저희도 큰돈 벌었습니다. 오너 일가가 물러나게 생겼다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대산 그룹 주가가 들썩이더군요.”

-(주)대산 주가 : 57,300.

과거에도 이런 경우는 많았다.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만큼 족벌 경영에 대한 폐단이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하, 꽤 많이 샀나 봐요.”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올인.”

놀란 강철이 되물었다.

“……네?”

“지금까지 대표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믿고 올인했습니다.”

강철의 시선이 신주영을 향했다. 그러자 신주영이 살짝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네, 뭐. 저도…….”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대산 그룹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통기업으로 성장할 테니까요.”

마이클이 술잔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신주영도 마주 술잔을 들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드려야 할 말입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흥청망청 술을 마신 강철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제는 다시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벤처 투자 말씀이십니까?”

“네. 그리고 제가 별도로 리스트를 보내드릴 테니 거기에는 집중적으로 투자해 주시고요.”

신주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굴리게 될 테니 인원 확충도 충분히 해두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런 둘 사이에 마이클이 끼어들었다.

“하하,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에요? 오늘은 그냥 편하게 마시자고요!”

강철이 다시 술자리에 집중했다.

부어라.

마셔라.

승리를 자축하는 밤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 * *

진동만의 서재.

그곳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

무거운 분위기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적을 끌어들여 안방을 내준 진선미는 죄인이 된 표정으로 푹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지분이 29%다. 거기에 국민연금을 더한다고 해도 34%. 저들에 비하면 한참이 모자라.”

진용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현재 대산 그룹에서 가장 큰 계열사가 대산 마트. 어차피 대산 그룹이 가지고 있는 마트 지분은 30.1%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지분을 최대한 모아 마트를 빼앗아 온다면 쭉정이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기에 진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진선미.”

진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네 지분 전부 오빠한테 증여해.”

놀란 진선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넌 이제 대산 그룹 일원이 아니다.”

“아…… 아버지.”

“먹고살 방책은 마련해 주마. 강남에 빌딩 하나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다.”

진선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바로 이렇게 내쳐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진동만이 한 번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증여한다는 내용 써놓고 나가거라.”

그 말에 진선미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싫어요.”

“……뭐? 이게 지금 이 사달을 일으키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미 제 지분입니다. 그걸 팔아도 강남에 빌딩을 사고 남아요. 그런데 지분을 전부 내놓고 나가라고요?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선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용민이 그런 진선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진선미!”

“어차피 여기서 다 뺏기고 버림당할 거. 그 사람한테 갈 거야.”

“……뭐, 뭐?”

“부회장이라도 시켜달라고 하지 뭐. 그리고 마트를 비롯한 회사 지분을 넘겨줄 테니까. 계열사 몇 개 달라고 하면?”

진선미의 역공에 이제는 진동만의 눈동자가 떨렸다.

정말 진선미의 말대로 된다면…… 사태는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

진선미가 그런 진동만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보아하니 이제 이곳에 제 자리는 없는 것 같네요. 지금까지 감사했어요. 아버지.”

벌떡 일어난 진용민이 그녀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았다.

“이게 정말!”

하지만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거세게 팔을 휘둘러 진용민의 손을 뿌리친 것이다.

“내가 약해서 참은 게 아니야. 알지? 어렸을 때부터 운동 꾸준히 한 거.”

그 말에 진용민이 주춤거렸다. 진선미는 재벌가의 자제답지 않게 어렸을 때부터 각종 무술을 섭렵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이에 맞지 않은 몸매를 지닐 수 있었다.

“너…… 이 자식이 진짜.”

하지만 진선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제는 정말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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