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실력을 보여주면
진용민의 집무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략기획실장 이철휘를 노려보았다.
“사모 펀드가 우리 회사 지분을 매집 중이다.”
“네. 공식적으로는 일반투자 목적이라고 하는데…… 그쪽과 전화 통화가 되질 않아 확인은 못 했습니다. 아마 전화를 해도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다시 공시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잖아.”
“네. 그렇긴 합니다.”
“최근 회사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데도 투자를 진행한다…….”
진용민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재 유통업은 사양 산업이었다. 신성장 산업인 2차전지나, 바이오, 인터넷, 게임 같은 분야도 많은데 왜 우릴?
그때 이철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승자독식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타 사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있는 것 때문에?”
“네. 이미 경쟁사인 엘리 마트는 오프라인 매장 철수를 준비 중이고, 현재 온라인 1위 사업자인 쿠키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단 오프라인에서는 대산이 1위군.”
“네. 온라인도 빅트리가 잘 오픈한다면…….”
이철휘가 말을 멈추었다. 현재 빅트리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진용민이 으득 이를 갈았다.
“이번에 빅트리가 제대로 오픈했다면 온라인에서도 순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어.”
이철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흠…….”
“일단은 지분 매입 상황을 예의주시하겠습니다.”
진용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나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나 잘 감시해.”
“네. 그리고 이강철 CTO가 지분을 계속 매입하고 있습니다.”
“5%까지 매입한다고 하더군.”
“현재까지 2% 사들였습니다. 이것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알았어.”
“지분구조 관련 보고 사항은 끝입니다. 다음으로 빅트리 관련 사항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 뒤로도 이철휘의 보고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진용민은 가끔은 인상을 찌푸렸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도 사모 펀드들의 지분매입은 계속 이어졌다.
* * *
대산 그룹 7층.
빅트리 개발팀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개발팀의 PL(프로젝트 리더)인 장학진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지겹다 지겨워.”
하루 쉬었더니 더 일하기가 싫어졌다. 일이 잘 풀리기라도 했다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만들수록 에러는 뻑뻑 터졌고, 문제를 고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솔직한 심정으로 포기하고 싶었다.
“프로젝트 완전히 갈아엎어야 하는 거 아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선 장학진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산발이 된 머리로 일하고 있는 천준호였다. 그도 과거 안면이 있었다.
“어, 천 주임. 여기서 뭐 해.”
“똥 치우고 있습니다.”
“……뭐?”
“빅트리에 거대한 똥이 있는데 이 CTO님이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아…….”
대충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야, 우리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상황이 그렇다 보니까.”
“뭐, 어찌 됐든 일단 수정해서 올려놨으니까. 한번 보세요.”
“수정했다고?”
“일단 전 기능에 테스트 코드 추가하고, 기능 추가 쉽도록 전체적인 구조를 바꿨습니다. 진짜 과거 코드는…….”
천준호가 뒷말을 삼켰다.
-천 주임님. 제가 천 주임님에게 매번 똥이나 싼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강철의 그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과거 천준호는 자신보다 실력이 없는 이들에 대해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게 강철을 만남으로써 희석된 것이다.
“하여간 보시면 압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학진이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그러다 보니 더 놀라운 사람을 발견했다.
“……CTO님?”
“왔습니까. 다들 출근하면 한번 모아주세요. 코드 구조를 전체적으로 변경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장학진이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커밋된 코드를 다시 내려받았다.
Commit Total Count : 1031.
지금까지 Git 저장소에 올라와 있는 Commit 개수가 1,000개가 넘었다. 그 말은 코드 수정이 1000번 이상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겨우 이틀 만에 뭐 이렇게 많이 했어.”
보통 일반 개발자가 하루 할 수 있는 커밋량이 많아야 10개를 넘지 않는다. 지금 보니 대충 5명 정도 개발하고 있으니 일반 개발자의 수배 생산성을 발휘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양만 많이 한 건 아니었다. 실제 코드를 찬찬히 확인한 장학진은 깔끔하게 정리된 코드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미국 뉴욕.
신주영이 깍지를 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휴우, 일단 하나 8% 완료.”
“저도 완료했습니다.”
“그럼 펀드 2개는 채운 건가.”
“네.”
“그럼 나머지 펀드에 5%를 담았으니 벌써 21%나 되네.”
마이클도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그 정도면 벌써 대주주인데요.”
신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오너 일가가 보유 중인 지분이 30%였다. 그 사람 다음이 바로 자신들이었다.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5%를 모으신다고 했으니 우리도 거의 30%네. 대주주를 넘어서 어쩌면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겠어.”
“그러면 일단 배당 성향부터 올리라고 해야겠습니다. 번 돈의 10%밖에 배당을 안 하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치예요. 미국에서 이러면 당장 소송감입니다. 어디 투자할 때도 없으면서 사내 유보금만 쌓아서 ROE만 떨어뜨리고 있잖아요. 완전히 무능한 경영진입니다. 재무제표 보는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니까요.”
그 말에 신주영이 픽 웃음을 흘렸다.
“한국에 그런 기업이 한둘이 아니야. 그나마 오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양호해진 편이지. 한국 재벌들 대부분이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주영이 말을 이었다.
“개인 회사라 생각해.”
“주주들 것이 아니라요?”
신주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 주주가 가진 주식과 회사 오너가 가진 주식이 다른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
“그거 불법이잖아요.”
신주영이 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 아니야. 그게 합법이지.”
“헐…….”
“그러니까. 배당도 안 하고 회사에 돈을 쌓아두고 있는 거야. 그 돈을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 것이 아니라 자기들 것으로 생각하니까.”
마이클이 며칠 동안 간 깎지 않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들을수록 화가 나는데…… 이참에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진이 어떻게 되는지.”
“하하, 네가? 무슨 수로.”
“뭐, 제가 아니라 대표님이 하시면 되죠. 저희 둘 지분까지 합치면 거의 30%잖아요. 그리고 배당금 올려주겠다고 소액주주들 권한 위임까지 받으면 충분히 40%까지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흠…….”
“더구나 여기에 들어가 있는 미국 자본도 꽤 되잖아요. 주주명부 요청해서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합쳐 달라고 하면.”
“50%도 넘길 수 있겠구나.”
마이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이요.”
“흠…….”
“더구나 대표 1년 만에 CTO까지 올라갔잖아요. 그 정도면 사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니까.”
“대표이사도 될 수 있겠어.”
“어차피 주식회사니까. 주주총회 요청해서 특별결의로 안건 상정해 버리면 지네들이 어쩌겠습니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알았어. 대표님한테 한번 말해볼게.”
마이클이 허공에 주먹질하며 말했다.
“아마 대표님도 승낙하실 겁니다. 주주 알기를 개똥으로 아는 놈들은 한 번씩 본때를 보여줘야 정신을 차리니까요.”
그 모습에 신주영은 피식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 * *
타닥.
타다닥.
사무실에는 조용한 가운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강철 역시 자리에 앉아 개발에 열중했다. 얼마 전까지 추천시스템에 들어갈 알고리즘에 대해서만 고민하다 보니 코딩 감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하다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그런 강철에게 한 직원이 다가왔다.
“저기, CTO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다가온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고객 장바구니 기능에 비지터 패턴을 사용하신 것 같은데 제가 아는 모습과 조금 달라서요.”
“아, 그거요. 비지터 패턴이 뭔지는 아시죠?”
“네. 데이터와 로직을 분리해서 처리해야 할 때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CTO님이 짜신 코드를 보면 제가 아는 것과 달라서…….”
“그런데 단점이 하나 있어요.”
“새로운 작업이 추가될 때마다 데이터에도 관련 로직을 추가해 줘야 하는 것 말씀이시죠?”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경력 있는 직원이라 그런지 대화하기가 편했다.
“그 부분 때문에 의존성이 커져서 에러가 날 확률이 커지고 있어요. 그래서 자바 리플렉션 기능을 사용해서 의존성을 줄여준 겁니다. 기능 추가도 좀 더 유동적으로 할 수 있게 했고요.”
“아…… 그래서 그게…….”
“하하,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직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저기 CTO님 저도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하하, 네. 말씀하세요.”
“결제 쪽에 보시면…….”
비단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빅트리 수정을 맡은 지도 벌써 2주째였다.
그동안 강철은 나서서 직원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었고, 이제는 먼저 다가와 궁금한 것들에 관해 물어볼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직원들 사이에 강철에 대한 칭찬이 자자해진 것이다.
“확실히 CTO님 실력이 있으셔.”
“하하, 제가 괜히 따르겠습니까.”
“왜 다들, 이 CTO님 팀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
“과장님도 들어오고 싶으세요?”
장학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미 과장이고 나이도 많은데…… 될까.”
“우리 팀은 실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
“네. CTO님은 오로지 실력 하나로만 평가해요.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회사에서 미운 오리 새끼였던 제가 이달의 우수사원 되는 거.”
천준호의 말에 장학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봐, 봤지.”
“과장님도 실력만 있으면 팀에도 들어올 수 있고, 우수사원이든 승진이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말에 다른 직원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 그래?”
“정말?”
“나도 될까?”
관심을 보이는 직원들에게 천준호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실력만 있으면 돼요. 저나 찬민이 일하는 거 보셨죠? 그 정도만 하면 됩니다.”
그 말에 직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천준호나 윤찬민의 코드 생산량은 자신들의 1.5배를 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처음부터 이런 거 아니에요. CTO님 밑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잘하게 된 겁니다. 물론 저야 처음부터 실력이 있었지만요.”
장학진이 픽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여간 실력만 보여주면 된다는 거잖아.”
천준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개발 능력. 그것만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면 CTO님이 꼭 기억해 주실 겁니다.”
강한 믿음이 서린 말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서서히 주변 직원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 * *
한국 시간 밤 11시.
미국 뉴욕시간으로는 아침 10시쯤 강철에게 전화가 한 통 도착했다.
“네. 신 이사님.”
신주영의 공식 직책은 강철이 미국에 세운 투자 법인의 대표 이사. 그랬기에 호칭도 이사로 바뀌었다.
-대산 지분 매입 완료했습니다.
강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이제 기본적인 준비는 완료된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기 너머 신주영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그리고 혹시…… 이렇게 지분 매입하는 게 단순 투자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함이십니까?
아직 강철이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말한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신주영은 왜 대산 지분을 매입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건 차차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정말 경영권 인수가 주목적이라면…… 마이클이 한 제안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마이클이 어떤 제안을 했습니까?”
-대산 그룹 지분 구조를 보시면 미국 자본이 17%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마이클이 아는 사람이 많고요.
“그들에게서 위임장을 받겠다.”
-네. 물론 대산에서도 지분을 많이 가진 주주들은 따로 관리하겠지만…… 우리는 몸이 더 가까우니 충분히 작업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충 계산해 보신 게 있습니까? 17%를 전부 가져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마이클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보수적으로 잡아도 10% 정도는 끌어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략 40% 정도 됩니다.
“큰 수치긴 하군요.”
-대표이사를 변경하라면 조금 더 모으긴 해야 합니다. 대산 그룹 정관을 보면 대표이사 선임이 이사회의 결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사진들이야…….
“회장님의 거수기들이죠.”
-하하, 네. 아마 그럴 겁니다. 그걸 바꾸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먼저 정관 변경을 해야 하는데 그건 특별 결의 사항입니다. 그리고 특별 결의를 하기 위해서는 주주 2/3의 찬성이 필요하고요.
“최소 67%가 필요하다.”
-네. 그래서 마이클은 한국에서도 소액주주들을 모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해 왔습니다.
쭉 이야기를 들어보던 강철이 한 가지 의문점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마이클이 참 적극, 적이군요. 전 그냥 지분 매입을 지시했을 뿐인데…….”
그 말에 신주영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하하, 그게…… 사실 마이클도 이번에 대산 그룹 지분을 매입했습니다.
“……네?”
-대표님의 투자가 계속해서 성공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것이죠. 그래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표님이 대산의 대표 이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강철도 픽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네.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 *
빅트리 수정은 순항했다.
1주차. 에러 501건.
2주차. 에러 198건.
3주차. 에러 23건.
4주차. 에러 11건.
기하급수적으로 빅트리에서 발생하던 에러가 줄어든 것이다.
강철이 한 일은 디자인이나 기능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것들을 할 수 있지도 않았다.
에러.
오로지 빅트리에서 발생하는 문제 사항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고, 결국 그걸 해결한 것이다.
테스트 결과 에러 5건.
결국, 한 달 만에 빅트리에서 발생한 에러를 5건으로 줄였다.
불과 한 달 전, 클릭만 해도 에러가 나는 상태에서 괄목상대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빅트리 재오픈일이 되었다.
“오픈 준비 끝났죠?”
임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사이 그는 조금 더 초췌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빛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강철의 말에 임종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여기저기 지시를 내렸다. 하나둘씩 고객 접속을 막고 있던 제한이 풀리고, 사이트가 정상 접속이 가능해졌다는 사인이 흘러나왔다.
강철도 빅트리 닷컴에 접속해 보았다.
‘에러를 수정하긴 했지만, 사용자가 늘 것 같진 않아.’
빅트리는 한마디로 투머치였다.
복잡한 기능, 난잡한 디자인이 더해져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망하면 오히려 더 좋다. 주가는 내려가고, 싼값에 지분을 매입할 기회였으니까.
임종인이 생각에 빠진 강철에게 다가왔다.
“오픈 완료했습니다. 당장 문제 상황은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하하, 아닙니다. CTO님이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때.
강철의 비서가 다가왔다.
“CTO님.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진용민의 집무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강철이 앉아 있었다.
“확실히 기능상에 문제는 보이지 않는군.”
“네.”
“그러면 이제 과연 소비자가 만족할지가 문제인데…… 자네 생각은 어때?”
“황 상무가 어떤 식으로 이런 기능이나 디자인으로 사이트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최근 유우니 상점의 성장세가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그건 비단 신선 식품을 제때 공급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당연하고, 사이트 이용이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빅트리는 그렇지 않아 우려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진용민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신도 사이트를 이용해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대산 닷컴을 진두지휘했던 황희석에서 전권을 맡겨 만들어낸 것이 실수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던 대산의 온라인 시장 성장세에 찬물을 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강철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당장 사이트와 앱을 새롭게 런칭하고 돌아오는 고객들의 피드백에는 악플이 어마어마하게 달리는 중이었다.
-라임 레몬 : 갈수록 앱이 이상해지네. 이걸 지금 새롭게 런칭한다고 한 거임? 물건 하나 사는데 확인해야 할 건 수두룩 하고, 요즘 다 되는 페이류 결제도 없고. 불편해서 바로 삭제다.
-sungmini : 쇼핑플랫폼 중에 그냥 최악. 에러나 뻑뻑 뿜어내다. 다시 런칭한 것 같은데 기존에 받은 상품권 아니었으면 접속도 안 했다.
-김준우 : UI 개선을 이따위로 한 앱은 처음 본다. 이거 만드는 데 수십억들이었다고 하던데 차라리 나한테 돈을 줬으면…….
악플의 대부분은 사용자 UX, UI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걸 본 진용민의 안색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오픈한 지 아직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악플이 어마어마해.”
강철도 올라오기 전에 확인한 내용이었다. 진용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흠…… 자네가 지금 하는 일이 대산 3.0 프로젝트지?”
“네.”
대산 3.0.
대산 그룹을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려 비밀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건 신사업이고, 빅트리는 당장의 캐시카우가 되어줄 사업이었다. 어느 게 더 중요하다 하기 힘들 만큼 둘 다 중요한 사업이다.
“이것까지 맡으면 일이 많아질 것 같나? 이참에 온라인 부문장도 바꿔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걸 아주 절실히 느꼈어. 그래서 자네가 이것도 한번 해줬으면 하는데…….”
회사란 원래 이런 곳이다. 일을 잘하면 더 많은 일을 맡기는.
만약 자신이 이 일을 맡으면 황희석은 날아가는 것이다. 아마 작은 계열사 사장으로 가거나, 옷을 벗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겠습니다.”
진용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하, 그래.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어.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잠시 뒤.
강철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온라인 사업 부문장이라…….’
사실 CTO라고 해봤자. 새로 생긴 직책이라 크게 권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온라인 사업 부문장은 다르다. 대산그룹을 이루는 세 가지 축.
마트.
백화점.
온라인.
이 축 중 한 가지가 된 것이다. 그건 곧 대산 그룹에서 올라갈 수 있는 거의 정점에 올라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불과 1년 만에 이룬 성취였다.
‘이제 지분 매입만 열심히 하면 되겠어.’
대산에서는 올라올 만큼 왔다. 회사 일을 하면서 ㈜아이온을 키우고, 대산의 지분을 차근차근 사들이다 보면 대산 그룹을 아이온의 자회사로 둘 수 있으리라.
‘이후 대산을 인수하고, 그걸 기반으로 나일처럼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자. 나일이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와 나일 마켓으로 전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것처럼…… 아이온은 추천 플랫폼과 빅트리 마켓으로 전 세계를 휘어잡는 거야.’
그게 강철이 그리고 있는 최종 목표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국내에도 아마 천조 기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강철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벌컥 문이 열리며 비서가 뛰어들어 온 것이다.
“CTO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빅트리가…… 다, 다운됐습니다.”
“네?”
놀란 강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무실을 뛰어나갔다. 사무실로 가자 직원들이 혼비백산한 채 사무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강철에게 임종인이 다가왔다.
“NCS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네?”
“그쪽에서 확인하고 있다 하긴 하는데…… 현재 나타나는 에러만 봐서는 NCS의 DNS 서버 쪽 문제로 보입니다.”
DNS 서버.
아이피와 도메인을 매칭 해주는 서버로 우리가 xxx.com으로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건 이 DNS 서버가 있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급히 핸드폰으로 빅트리 닷컴에 접속해 보았다.
-502 Bad Gateway.
정말 DNS로 인한 문제가 맞는 듯 보였다.
“젠장…….”
지난번 보안 사고에 이어 벌써 2번째 사건이었다.
“우리만이 아니라 쿠키를 비롯한 국내에서 NCS를 이용하고 있는 사업자들의 서비스가 전부 셧 다운됐다고 합니다.”
그 말은 ㈜아이온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강철은 재빨리 유우니 상점에 접속해 보았다.
“…….”
유우니 상점도 작동이 안 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소식을 들은 황희석이 만면에 화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하하, 일이 잘 안 되나 봅니다.”
강철이 굳어진 표정을 애써 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임 팀장님 플랜 B 실행하세요.”
“이미 지시했습니다.”
플랜 B.
나일과 보안 사고가 있은 후 만들어 둔 대비책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현재 문제가 되는 건 한국 리전이다. 그랬기에 북미, 유럽 리전에 최소 사양으로 백업 서버를 만들어 준 것이다. 지금도 북미, 유럽 리전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분 뒤.
임종인이 빅트리에 접속해 본 후 강철에게 다가왔다.
“복구 완료했습니다.”
강철이 황희석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그러곤 쌩하니 몸을 돌려 버렸다. 남의 불행을 기쁨으로 삼는 자와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을 돌린 강철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NCS만 믿어서는 안 되겠어.’
당장 복구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 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생겼다.
강철은 대안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 * *
-쿠키 접속불가. NCS 장애(1보)
-NCS로 인한 O2O 서비스 대규모 접속 불가사태 발생.
-NCS 다운되니 쿠키, 배달사랑, 코인거래 전부 다운.
NCS에 문제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속보로 전해진 뉴스였다. 하지만 빅트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장애가 발생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멀티리전 백업서버를 기동해 문제에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진용민은 못내 그 사실이 흡족했다.
“확실히 능력이 있긴 있어. NCS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해 놓다니 말이야.”
비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들어보니 국내에서 NCS를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 중 살아 있는 건 빅트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쿠키도 뻗어서 빅트리가 반사 이익을 보고 있고요.”
“장애가 난 지 1시간이 넘었지?”
“네.”
“하하하하. 쿠키 놈들 꼴 좋구만.”
쿠키.
대규모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국내 온라인 쇼핑의 절대강자로 자리 잡은 서비스였다. 대산에서도 온라인 쇼핑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며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비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참 신기합니다. 서비스 운영 비용은 대폭 절감하면서 예전보다 더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다니…….”
“그게 기술의 힘 아니겠나. 나도 예전에는 기술이라는 게 뭐 별거 있겠어? 생각한 시절이 있긴 했지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진용민이 회상에서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그 친구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 기술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상상 그 이상이야.”
비서는 회장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였다.
착하면 척.
그의 마음을 읽은 비서가 말했다.
“대산 3.0에 더 힘을 실어 주라고 할까요?”
진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팀 규모도 지금보다 더 키우라고 해. 그리고 이강철 CTO에게 권한을 더 부여하고.”
“지금보다 권한을 더 부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진용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체 전결로 처리할 수 있는 자금을 더 키우고, 인사권한도 마찬가지로 키워줘. 대산 3.0이 성공한다면 정말 회사 체질 개선이 제대로 될 것 같으니까.”
비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 * *
빅트리 개발팀은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였다. 임종인이 여전히 잘 작동되는 빅트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쿠키도 죽었는데 우리는 살았네.”
옆에 있던 부하직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하…… 그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유가 있었어요.”
그 둘 사이에 천준호가 끼어들었다.
“CTO님이 아무 이유 없이 일 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보다 몇 수는 내다보고 계세요. 더구나 지난번 테스트 서버 돌릴 때 보안 사고 나서 서버 멈췄었잖아요.”
“그랬지.”
“아마 그때 느끼셨을 겁니다. 백업 플랜이 필요하다는 걸.”
“그걸 리전을 분산해서 해결하다니. 사실 그렇게 하면 시스템 구성도가 너무 복잡해져서 NCS에서도 추천하는 방식은 아니잖아.”
“하지만 결국 CTO님이 옳았죠.”
그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CTO님은 뭐 하고 계세요?”
“그러게요. 어디 가셨지…….”
천준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부터 강철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강철은 NCS 한국지사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의 지사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원인 나왔습니까?”
지사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그가 대산 그룹 임원이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NCS를 이용하는 대형 고객 중 한 명이었기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원인도 못 밝혔다고요?”
“…….”
“이거 참…….”
과거 NCS는 강철의 우상이었다. 그곳에 취업하는 게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그 생각이 깨지고 있었다.
“지금 본사에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NCS 때문에 빅트리가 죽을 뻔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한 시간 매출이 얼마인지 아세요?”
지사장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쿠키보다는 작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앞으로 빅트리는 쿠키에 버금가는 대형 고객이 될 곳이었다. 더구나 강철이 NCS를 이용하는 방법이 표준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곧 서비스 출시까지 앞두고 있었다.
그것뿐인가?
얼마 전 보안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그걸 가지고 NCS 본사 보안팀에 관련 컨설팅까지 진행했다.
강철이 그런 지사장을 한 번 더 압박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은 본사밖에 못 하는 겁니까? 여기 개발자분들은요?”
“한국지사는 대부분 서비스 판매를 위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기능 개발은 본사에서 이뤄집니다.”
“그 말씀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군요.”
“……네.”
역시나 자신이 예상한 대로였다. 강철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역시 기능 개발은 본사에서 이뤄지고 있었어.’
강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추천 플랫폼만이 아니라 그게 돌아갈 클라우드 서비스를 한번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나일의 NCS.
현재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였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볼 생각이었다.
이름하여 ACS(아이온 클라우드 서비스.
그러자면 개발자를 뽑아야 하는데 역시나 제 생각대로 NCS 한국지사에는 쓸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헛걸음만 한 건 아니었다.
‘한국지사 사람들을 기획자로만 쓰면 되긴 해.’
특히나 선임 에반젤리스트인 박호선을 데려다가 기능 정의를 부탁하면 NCS 못지않은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고객사는 이미 있었다.
‘NCS를 사용하고 있는 대산의 서비스들을 ACS로 옮기면 되니까. 그걸 레퍼런스로 해서 잘 운영하면 차차 다른 서비스들도 ACS를 이용해 주겠지.’
그런 강철의 생각은 모른 채 지사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 * *
쿠키 본사.
그곳의 데브옵스 팀(서버 운영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의용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젠장…… 도대체 언제 정상화되는 거야.”
벌써 두 시간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데브옵스 팀은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데브옵스팀 팀장이 후회 섞인 목소리로 한탄했다.
“아 나 진짜. 그때 멀티 리전 체계를 구축했어야 하는데…….”
한의용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거 비용도 너무 많고, 시스템 구성이 너무 복잡해서 애초에 선택지에서 제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야 하지. 근데 그래도 해야 했어. 2시간 매출이면 그 비용 뽑고도 남잖아.”
2시간.
무중단 서비스를 해야 하는 온라인 서비스에게는 치명적인 시간이었다.
매출.
신뢰.
그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놓치기 때문이었다. 한의용이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그때 입안에서 혀를 굴리던 팀장이 말했다.
“최규범이 대산으로 스카웃된 이유가 NCS 마이그레이션 때문이라고 했지?”
“아, 맞습니다.”
팀장이 재빨리 빅트리 닷컴에 접속해 보았다.
-bigtree.com.
신기하게도 아무 이상 없이 접속되고 있었다.
“이거 뭐야. 얘네 NCS 이전한 거 아니었어?”
“아닌데…… 최 과장님이 분명 대산도 NCS 이용한다고 했는데…….”
“그럼 설마? 멀티 리전을 적용한 건가?”
“그, 그런 것 같은데요.”
“최규범이 멀티리전 구성을 할 줄 알아? 분명 우리 이전할 때 에반젤리스트도 어렵다고 난감해했던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한의용이 자신의 기억을 뒤적여 보았다. 가장 최근 만났던 게 1개월 전이었다.
그때 술을 마시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회사에 이강철 CTO라고 있는데 진짜 엄청난 분이다.
-도통 모르는 게 없어.
-아마 쿠키도 곧 온라인에서 대산에 밀리게 될걸.
-그 전에 우리 쪽으로 와. 지금 개발자 엄청나게 뽑고 있으니까. 지금 아니면 기회 없다.
최규범은 평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 정도 수준으로 말했다는 건…….
‘엄청난 실력자란 뜻인데…….’
한의용이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팀장이 말했다.
“너 최규범이랑 연락하지?”
“아, 네.”
“멀티 리전 한번 물어보면 안 되냐.”
“……네?”
“이참에 우리도 멀티리전 구성해야지. 이런 상황 또 발생하면 어쩔 거야.”
“그, 그렇긴 하죠.”
“한번 대충 물어봐 봐. 어떻게 했는지.”
“그래도 그건 회사 대외비일 텐데…….”
“그런 게 어딨어. 걔도 거기 가서 쿠키 쪽 구성 열심히 알려줬을 텐데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지.”
한의용은 탐탁지 않았지만, 팀장의 압박에 전화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 * *
띠리리.
띠리리.
최규범의 핸드폰이 연신 울렸다.
“나는 진짜 모른다니까. 그거 우리 팀에서 다른 인원들이 구성한 거야.”
“난 다른 쪽 개발했어.”
“알았어. 알았다니까. 한번 알아볼게.”
그건 비단 최규범에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었다. 개발팀 다른 인원들에게도 과거 인연이 있었던 개발자들에게 연락이 쇄도했다.
벌써 3시간째.
NCS가 정상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들 백업 플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현재로써는 최선인 멀티 리전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빅트리 개발팀 직원들에게 문의 전화를 걸었고, 직원들은 고양감에 휩싸였다.
그때.
강철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앉아 있던 직원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CTO님 오셨습니까.”
평소보다 목소리를 조금 컸고, 표정은 밝았다. 그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간 강철은 바로 천준호를 찾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아, 그건 아마 멀티리전 때문일 겁니다.”
“멀티리전이요?”
“그것 덕분에 빅트리가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아는 다른 개발자들에게 관련 문의가 쇄도하는 모양입니다. 덕분에 다들 약간의 우월감에…….”
“아…….”
강철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천준호가 고개를 끄덕였고,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 주임님 개발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지 않습니까.”
직접적인 칭찬에 천준호의 귀가 발갛게 변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주변에 뛰어난 분들이 많을 겁니다.”
“대산 3.0 때문에 그러십니까? 개발자가 더 필요해서?”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인 소프트의 유우니 상점.
데이터 분석 서비스.
아이온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기존한 것을 업그레이드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천 주임도 알 겁니다. 제가 따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이미 사내에 암암리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그랬기에 천준호도 알고 있었다.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NCS와 비슷한 ACS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기존 것들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진짜 능력 있는 개발자가 필요해요.”
“아…….”
“쓸 만한 사람 좀 있습니까?”
이내 천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저,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