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18화 (18/59)

3장 기회가 온다

벤처 투자는 대부분 3단계로 구성된다.

시리즈 A.

시리즈 B.

시리즈 C.

각각 초기, 중기, 후기로 각 단계가 올라갈수록 회사는 성공 가능성이 커지며 그만큼 받을 수 있는 투자금도 늘어난다.

강철은 테라펀드에게 시리즈 C 수준의 투자를 요구했다.

금액은 1,000억.

송고은 조차 기함하며 말도 안 되는 숫자라고 했다. 하지만 강철의 생각은 달랐다.

-서치 렌즈의 이미지 인식률과 아이 체크의 이미지 인식률.

많은 테스트를 한 결과 아이체크의 이미지 인식률이 미미하게 더 높았다. 강철은 그걸 기반으로 테라 펀드를 설득했고, 결국 투자 유치를 받아냈다.

1,000억.

벌써 두 번째 투자 유치였다. 그만큼 회사가 성장세에 돌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각종 경제신문지에서도 작게나마 이슈화를 시켜 다루었다.

그 소식은 당연히 진선미 전무에게도 들었다. 그리고 1,000억이라는 숫자는 재벌인 진선미도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진선미가 진심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지금까지 투자받은 금액만 1,500억이요? 그 정도면…… 이제 회사는 안 다녀도 되는 거 아니에요? 설마…… 정말 오빠 돈이 들어가서…….”

그 말에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확인 결과 그건 아니었습니다. 테라펀드와 케이벤처캐피털에 확인 결과 주주명부에 회장님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강철 CTO 개인 회사였습니다.”

진선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순수하게?”

“네.”

“하하…… 하하하. 그 사람 참.”

“능력이 대단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CTO를 하고 밖에서는 사장한다. 그런데 벌써 투자만 1,500억을 받았고, 기업가치는 수천억에 이른다.”

“얼마 전 계열사인 아이온게임즈에서 출시한 ‘시티 라이더’도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고 있습니다. 현재 앱스토어 1위에 게임잡지 기자 말에 따르면 최소 일 매출 3억은 될 거라고 합니다.”

“일 3억이면 월 90억. 년이면 1,000억이 넘잖아요.”

“더구나 게임이라 영업이익률이 40%는 될 겁니다.”

진선미는 꿀꺽 마른침만 삼킬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서가 말을 이었다.

“아이체크 다운로드 건수도 벌싸 600만을 넘었습니다. 성능 비교 사이트의 측정에 의하면 서치 렌즈보다 이미지 인식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그 말은 서치보다 기술력이 좋다는 뜻이에요?”

“맞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딜리버리브라더스 그리고 유우이상점이라는 신선식품 판매 사이트를 인수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 진선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두 개 회사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대략 두 개 회사를 100억 정도에 인수했다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현재 가치로 보면 500억은 넘은 것 같습니다.”

진선미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불과 1년 만에 이룬 성과군요.”

“네.”

놀란 진선미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꺼냈다.

“엄청나군요. 그런데 그런 능력자가 왜 아직도 회사를…….”

“사실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합니다. 어쩌면 돈으로 직접 지원받은 게 아니라 무형의 지원을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벤처 투자사를 소개받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거죠.”

“흠…….”

“전무님도 아시겠지만, 회장님께서 사람 보는 눈이 있으니까요. 이강철 CTO가 어려울 때부터 도움을 줬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남아 있는 거라면.”

“말이 되긴 하군요.”

“네. 하지만 이건 그냥 제가 시나리오를 쓴 것에 불과합니다.”

진선미의 웨이브 진 긴 머리가 베베 꼬였다. 둘이서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을 찾긴 힘들었다.

“지금 이 CTO 뭐 하고 있죠?”

“최근 대산 그룹 플랫폼 전환 계획 때문에 바쁜 것 같았습니다.”

“그럼…… 진행 상황 확인도 한번 할 겸 한번 만나야겠군요. 올라오라고 하세요.”

이내 진선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아니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제가 한번 내려가 봐야겠어요. 매번 올라오라고 할 수도 없으니.”

“알겠습니다.”

* * *

달칵.

강철이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 공시내용을 확인했다.

-임원ㆍ주요주주 특정증권등 소유상황 보고서 이강철

-주식 비율 0.5%.

대산 그룹의 주식 0.5%를 보유했다는 공시였다.

과거에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회사에 다니다가 이렇게 회사 지분까지 인수하고 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불과 3개월밖에 안 남았다…….’

그때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그 돈으로 강철은 대산 그룹 지분을 더 취득할 생각이었다.

대산 그룹은 유통계의 절대강자로 꿋꿋이 살아남는다. 현재 온라인 쇼핑 1위인 쿠키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적자 구조를 견디지 못하다가 점점 규모가 축소된다.

그 자리를 빅트리가 치고 들어가면서 오프라인, 온라인의 절대 강자가 되는 것이다.

‘(주)대산의 주가가 폭락할 때 개인 명의로 5%, 미국 사모 펀드 명으로 10%를 사면…… 명예회장의 뒤를 잇는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어. 더 많은 돈을 투자했으니 어쩌면…… 더 많은 지분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향기로운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흠…… 흠흠.”

귓가에 들리는 헛기침 소리에 강철이 고개를 들었다.

“어…… 전무님?”

“많이 바쁜가 봐요.”

강철이 슬그머니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 창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닙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네.”

CTO였지만 아직 별도의 집무실은 없었다.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둘은 그대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진선미가 상큼한 미소로 강철을 보았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라고 해야겠네요. 우리 회사 CTO가 아직 개인 비서에 집무실도 없어서야.”

“하하, 아닙니다. 이것도 편합니다. 직원들과 접촉이 많아야 애로사항도 듣고 일 처리도 빨리 확인할 테니까요.”

“확실히 생각이 남다르네요.”

“감사합니다.”

“대산 3.0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대산 3.0 프로젝트.

진용민이 건넨 서류에 있던 내용을 빌드업 해 강철이 명명한 이름이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1월 초에는 보고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기대가 커요. 이강철 CTO가 했던 건 항상 성공했으니까요.”

강철은 이번에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듣자 하니 밖에서 운영하는 개인 회사가 벌써 1,500억을 투자 유치했다던데…….”

“운이 좋았습니다.”

“혹시 회장님과 관련된 건가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준비했던 제 개인 회사입니다.”

진선미가 뚫어져라. 강철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그 회사가 이토록 성장하는데 왜 아직도 대산을 다니는 거죠?”

-여길 인수해서 아시아의 나일이 되려고요.

그런 야망을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다.

“서로 조건이 맞기 때문입니다. 당장 제 회사 서비스를 전무님이 이용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항상 전무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조건이 맞지 않으면 회사를 나가겠군요.”

“네. 어차피 전 1년짜리 임시직원이니까요.”

“호호,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지금 이 CTO가 준비하고 있는 대산 3.0 프로젝트. 사실 제가 기획했던 내용이란 건 알고 있나요?”

“네. 기획서 곳곳에 전무님의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빅트리도 제가 제안한 것이고요.”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선미가 지긋이 강철을 보았다.

“진용민 회장님은 절대 하지 못할 생각이죠. 아마 시간이 지나 제가 회사를 나가면 CTO라는 직책은 다시 사라질지도 몰라요. 말로는 나일 같은 기술 기업이 돼야 한다고 하지만 그 속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강철이 굳어진 표정으로 진선미를 보았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나와 손을 잡아야 해요.”

“그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진선미가 강철의 말을 잘랐다.

“그래야 당신이 더 클 수 있어요.”

“……네?”

진선미가 뜨거운 눈빛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능력과 재벌이라는 제 배경이 합쳐진다면 대산 그룹을 차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철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진선미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죠. 아시겠지만 전 미혼인 몸이에요. 지금까지 만난 남자친구도 몇 안 되고요.”

강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진선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전무님.”

진선미는 39살.

자신은 27살이다. 비록 속은 45살 중년 아저씨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진선미가 그런 강철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한국에서 사업하는 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재벌이라는 배경이 생기면 달라질 겁니다. 1,500억 유치 정도가 아니라 더 큰 돈,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어요.”

“…….”

“그리고 전 바람만 피우지 않는다면 술집 가서 노는 것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어요. 세상에 이런 여자 흔치 않아요.”

하지만 강철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생은 성공보다는 행복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어떤 일도 ‘행복’에 우선 할 수는 없었다.

“전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그것 역시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 말에 진선미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저와는 그게 안 된다?”

대답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완전히 찍히는 수가 있었다.

“조건 보는 결혼은 싫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외모’라는 조건이 결혼을 선택한 주요 이유였다.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마음.

그걸 보고 결혼할 생각이었다. 진선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첫 번째 조건이 뭔가요?”

강철은 자신도 닭살이 돋아 쉽게 말하지 못했다.

“마…….”

진선미가 이번에도 ‘풉’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마음?”

강철의 귀가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진선미는 방금 그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진심이란 말이야?’

그게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자신 앞에서 위선을 보이던 다른 재 벌집 자제들과는 달랐다.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고,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진선미의 두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그 마음.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거군요.”

“네. 돈은 이미 충분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 없이도 더 많이 벌 자신이 있고요.”

그 자신감에 진선미는 또 한 번 마음이 끌리는 걸 느꼈다.

진선미가 강철이 있는 쪽으로 깊숙이 상체를 숙였다. 블라우스 속에 감쳐진 하얀 살덩이들 때문에 강철이 급히 눈을 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그 말을 남긴 진선미가 휑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다. 텅 빈 자리에는 진선미 특유의 향이 남아 있었다.

강철이 문 쪽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 *

미국 뉴욕.

갑작스레 온 연락에 신주영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전화상에서 들린 충격적인 내용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옆자리에 있던 마이클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투자금을 더 넣자고 하시네.”

“……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2x 인버스보다 더 리스크 테이킹을 했으면 한다고…….”

그 말에 마이클도 마른침을 삼켰다.

마이클 쿠어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IB 은행에서 수년간 투자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 그런 그도 이런 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숏, 롱 합성도 아니고 오직 숏으로만요?”

신주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이 급히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 나요?”

“800억.”

“……네?”

“도합 1,300억으로 미국에 숏을 친다.”

“…….”

마이클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신주영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지…… 뉴스 뭐 새로 올라온 거 있어?”

마이클이 이번에도 핸드폰을 살폈다. 뉴욕 증권가에서 도는 찌라시만 수십 개가 넘게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미국이 망한다는 뉴스는 없었다.

마이클은 시야를 넓혀 유럽, 아시아 쪽 뉴스를 살폈다. 이번에도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없습니다.”

“흠…… 도대체 뭘 보시고 이런 결정을 내리신 걸까…….”

신주영이 아는 강철은 확실하지 않으면 돈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런 마이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왜?”

“여기 뉴스가 또 하나 떴는데…….”

신주영이 고개를 쑥 내밀어 핸드폰 화면을 살폈다.

-변형 인플루엔자.

지난번 확인했던 뉴스와 같은 것이었다. 마이클이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않은 모양인데요?”

“중국 베이징 내 총 감염자 32명. 감염자 확산 중. 겨우 30명밖에 안 되잖아. 매년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감염자만 몇 명인지 몰라?”

“그, 그렇긴 하지만.”

“올해 미국 독감으로 인한 감염자만 1,900만 명에 사망자 1만 명이 넘는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이클이 쩝 입맛을 다셨다. 신주영이 그런 마이클을 보며 말했다.

“좀 더 알아봐. 대표님은 알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리스크 테이킹 하라면 해야지. 풋옵션 3월물 좀 알아보고.”

이번에도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 * *

대산 그룹 본사 대회의실.

그곳에 각 계열사 시스템 담당자들이 모여 있었다.

대산 3.0.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인 추천시스템의 전사 적용을 위한 1차 회의 때문이었다. 추천시스템 발표 당시에는 우호적이었던 분위기가 지금은 사뭇 달랐다.

“그러니까 추천시스템에 맞추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데이터를 추가로 받아야 하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데이터의 형식도 바꿔야 한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인력 지원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거기에 올해 중점 사업인 NCS 이전까지.”

이번에도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인력 지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추천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인원들이 백화점 마트, 패션 등등 각 시스템에 붙어서 지원을 해줄 테니까요. 그리고 NCS 이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강철이 한 차례 자리에 앉아 있는 인원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산 닷컴에서 NCS 이전을 담당했던 인원들이 지원해 줄 겁니다. 질문 사항 있으신 분?”

신입사원에서 이사 그리고 CTO까지.

불과 1년 만에 승승장구하는 강철의 앞에서 감히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새롭게 배정된 강철의 비서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NCS 이전에 추천시스템 적용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까지. 인원은 안 뽑아주고 일만 시킨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 일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추천시스템. 그리고 NCS 이전을 담당했던 친구들이 일당백의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네?”

“추천시스템 개발. NCS 이전. 둘 다 기존의 직원들을 데리고 한 일입니다. 물론 추천시스템은 사내에서 고르고 고른 인원들이긴 하지만 데이터 표준화 정도는 약간의 노력만 들인다면 기존 직원들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강철이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NCS 이전은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러니까 CTO님이 가르친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을 교육하면 된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한 것처럼요.”

이내.

똑똑.

누군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건 유혜인과 최수철이었다.

“CTO님 알고리즘 개선 회의 시간입니다.”

강철이 비서에게 눈짓하자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천시스템 알고리즘.

이건 사내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나가고, 다시 회의가 이어졌다. 최수철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답보 상태입니다. 성능 개선이 전혀 되질 않고 있어요.”

“그때 발표한 이후로 말입니까?”

최수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 보이는 수식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여러 논문을 살펴보고, 기존의 수식들에도 변화를 줘봤지만 0.5%∼1%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 정도면 오차 범위 내라 저희가 수정한 수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요.”

추천시스템을 발표한 지도 벌써 수개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성능 개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그대로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셋이서는 한계라는 거군요.”

강철이 이것만 계속 고민한다면 분명 성과가 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NCS 이전, ㈜아이온 현재 진행 중인 해외 투자 등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수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알고리즘 팀에도 사람을 더 뽑아야 할까요?”

“흠…….”

생각나는 인재가 몇 명 있긴 했다.

신시아 밸리

에드워드 브룩.

압축 알고리즘을 만들어낸 그 두 사람이라면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대산 그룹이 자신의 것도 아닌데 그 친구를 여기로 이직시키고 싶진 않았다.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채용 공고부터 내보죠. 지원자들 수준을 보고 결정하도록 합시다.”

“네.”

“나도 좀 더 고민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곧 개선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걸로 알고리즘 개선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사이 윤찬민을 비롯한 하진기, 천준호, 최규범 등등 강철과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각 시스템으로 퍼져 나가 NCS 이전 추천시스템 적용을 위한 데이터 표준화 가이드를 제공했다.

사내 반응은 한결같았다.

-확실히 실력이 있다.

그들의 조언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사내 평판은 높아졌고, 윤찬민이 1월 이달의 우수사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월에는 최규범이 이달의 우수사원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일명 이강철 사단에 속한 직원들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도 CTO님 라인 타야 하는 거 아냐?”

“나도 그러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대산 3.0 프로젝트에 들어가려는 직원이 수두룩해.”

“휴우…… 하긴 그럴 거 같긴 해. 거기만 들어가면 사실 승진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강철 CTO님 밑에 있던 사람들 이달의 우수사원에 속속 선정되는 거 보니까 솔직히 부럽더라.”

“능력이 있으니까.”

“거기에 끌어주는 것도 조금 있긴 하겠지.”

그러다 직원 한 명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이러다 황 상무님은 밀려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온라인 부문장?”

“CTO랑 자리가 좀 겹치잖아. 둘 중 한 명은 정리되지 않겠어.”

“흠…….”

그런 직원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진용민의 집무실.

그곳에 황희석이 앉아 있었다.

“요즘 어때?”

“대산 닷컴 리뉴얼 작업을 마무리 중입니다. 빅트리 사이트가 런칭되면 쿠키를 물리치고, 온라인 쇼핑 부문 1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진용민이 두 손에 깍지를 끼며 황희석을 보았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말이 나오는 것 같아서 말이야.”

“…….”

“빅트리 CBT(Closed Beta Test) 결과를 확인해 봤는데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용자 비율이 30%나 돼. 그런데도 자신 있나?”

황희석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말을 하는 의도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이강철 CTO에게 맡기실 생각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이대로 자리를 빼앗기는 수밖에 없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자신 있습니다. 무조건 성공시키겠습니다.”

진용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지금까지 회사에 해온 게 있으니 이번 한 번은 믿어보도록 하지.”

황희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을 빠져나온 황희석은 바로 빅트리 개발 팀장을 호출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정현진.

그가 현재 대산 닷컴 팀장이자 빅트리의 총괄 PM(프로젝트 매니저)이었다. 황희석과 연을 끊기로 했기 때문인지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앞, 뒤를 말씀해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CBT 결과 말이야. 30%나 부정적 평가를 했잖아.”

“사용자 기능, UI, UX 그리고 디자인까지. 전부 상무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정했습니다.”

즉 너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었다. 황희석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정현진이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답했다.

“분명 저희 개발진은 다른 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상무님께서 본인의 감으로 수정해야 한다며 현재 빅트리를 만드신 거고요.”

“정현진. 너 이러면 이제 막가자는 거지.”

정현진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있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현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확실히 이강철 CTO와는 달라.’

그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건의하면 충분한 숙의 끝에 개발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하지만 황희석 상무는 아니었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 소통.

그게 현재의 빅트리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거냐며 아랫사람을 탓하는 모습에 아주 조금 남아 있던 약간의 정마저 떨어져 나갔다.

황희석이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 부로 빅트리 팀장 자리 내려와. 알았어?”

정현진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호오, 이제 믿는 구석이 있다. 이거지.”

정현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만 열심히 한다면 이강철 CTO가 자신을 발탁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이강철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실을 정현진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마이클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거 좀 보세요.”

“뭔데.”

화면을 확인한 신주영의 표정도 서서히 탈색되어 갔다.

-중국 베이징 변형 인플루엔자 대유행.

-감염자 2,000명 돌파.

중국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마이클은 바로 미국 주가지수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가지수는 아직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둘은 직감했다.

“보스가 말한 게 이건가…….”

“설마…….”

그 ‘설마’는 며칠이 지나서야 사실 임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인 입국 금지.

그게 시작이었다.

* * *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거쳐 미국, 유럽까지.

변형 인플루엔자는 과거 강철이 경험한 것처럼 전 세계를 강타했다.

결국, 강철이 근무하고 있는 빌딩에도 확진자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게 된 강철은 집에서 편안하게 이후의 일을 계획할 수 있었다.

-금일 확진자 823이 추가되었습니다.

-미국 뉴욕이 락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베트남, 인도에서도 연일 확진자가 추가되고 있습니다.

TV에서는 연일 감염병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뉴스를 보며 강철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역시 그대로 되풀이되는구나.”

이내 강철은 채널을 돌려 경제 뉴스를 틀어보았다. 그러자 자신이 궁금해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코스피 최악의 하루. 서킷 브레이크 발동. 전 종목 마이너스 기록.

서킷 브레이크는 코스피 지수가 -8% 이상 기록할 때 발동되는 조치였다. 지수가 -8%이니, 개별 종목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강철은 그중에서 ㈜대산의 주가를 살펴보았다.

㈜ 대산 전일비 -15%.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대산에게는 그야말로 직격타였다.

“일주일 동안 50%가 빠진다. 그 뒤로 쭉 횡보. 그때가 기회다.”

당시에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연일 주가가 폭락하면서 회사가 망하는 건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만큼 파급력이 큰 질병이었다.

물론 얼마 뒤.

치료제가 발견되면서 주가가 조금 올라오긴 하지만 이미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대산 백화점, 마트 이용객이 확 줄어든 것이다. 덕분에 ‘쿠키’는 반사 이익을 얻으며 가파르게 성장한다.

그때.

드르륵거리며 강철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주영 심사역.

강철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이강철입니다.”

-대표님.

“말씀하세요.”

-지금까지 수익금만 300억이 넘었습니다. 일부 분할 매도할까요?

강철이 단호히 답했다.

“기다리세요.”

만약 자신이 미래를 모르고 있었다면 일부 매도를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언제 매도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지구 반대편 미국에 있는 신주영은 알지 못했다.

-더 기다리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보면 나스닥 선물도 지금 -3%. 제한선까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아마 내일도 힘든 하루가 될 겁니다.”

-…….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강철이 그런 신주영에게 물었다.

“거기는 괜찮습니까? 뉴욕도 락다운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신 심사역 건강이 더 걱정이군요.”

-제가 있는 곳은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비상식량도 충분히 비축을 해둬서 밖에 안 나가도 한 달은 살 수 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라 치안 걱정도 없고요. 다만…… 지금이라도 수익이 났을 때 일부 익절을 하는 것이…….

강철이 한 번 더 단호히 말했다.

“기다리세요.”

신주영도 더는 매도를 권유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음 날.

미국 시각으로 아침 9시 30분.

나스닥, S&P 500, 러셀 지수 가릴 것 없이 하락세로 시작했다. 숫자를 확인한 마이클이 즐거운 비명을 터뜨렸다.

“와우! 이거 보여요? 단숨에 +700억. 벌써 수익률만 50%에요.”

하지만 신주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만약 지수가 회복되면 단숨에 날아갈 숫자야. 대표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팔지 말라는 건지…….”

“왓 더 헬! 팔지 말라고요?”

신주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이 급히 물었다.

“단 1%도?”

이번에도 신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계약도 팔지 말라고 하시네.”

“와우! 진짜 야수의 심장을 가지신 분이네. 역시 그래야 돈을 버는 건가…….”

신주영이 다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 사이에도 자신들이 계약한 풋옵션 계약들의 수익률은 가파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55.2%.

+56.3%.

+56.8%.

그 숫자를 보고 있으니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거 정리하고 나면 제약 회사 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노바스.”

“노바스…… 노바스라.”

마이클이 컴퓨터를 조작해 해당 주가를 확인해 보았다. 노바스 역시 이번 폭락장을 견디지 못하고 가파르게 떨어지는 중이었다.

주가를 확인한 마이클이 말했다.

“-15% 기록 중이네요.”

“노바스에 들어가라는 것 보니까 거기에서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를 가진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좀 담아 볼까요?”

“그거야…… 알아서 판단해. 손실 나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 들어가라는 지시가 없었어.”

팔짱을 낀 마이클은 화면을 노려볼 뿐 쉽사리 ‘노바스’를 매수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떨어지는 칼날을 잡을 용기가 없었던 탓이다.

* * *

한남동 진선미의 집.

그녀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안에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번 달 마트, 백화점 매출이 -40%를 기록할 예정입니다. 그나마 한국의 방역 체계가 잘 작동해 이 정도지. 만약 미국이나 일본처럼 락다운이 되었다면…… 매출이 -70%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엄청나군요.”

“네. 반대로 온라인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 중입니다. 대산 닷컴 매출이 전 월 대비 30%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현재 온라인 쇼핑의 절대강자인 쿠키는 더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된다는 겁니다.”

“음…….”

“더구나 이 현상이 단발에 그치지 않고 더 가속화될 것 같다는 겁니다. 컨택에서 언택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형 인플루엔자 사태가 끝나고 난 후에도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것 같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진선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이강철 CTO가 인수했다던 딜리버리브라더스. 그리고 유우니 상점? 이번 사태로 엄청난 득을 봤겠는데요?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이번 언택트로의 변화 중심에 있잖아요.”

비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비서가 들고 온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A4 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상세 내용입니다.”

-딜리버리브라더스 기업가치 3,000억.

-유우니 상점 앱 다운로드 QoQ 100% 성장.

…….

두 기업 도합 6,000억 가치 추정.

지난번 확인했을 때보다 또다시 수배가 성장해 있었다.

“이거…….”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입니다.”

진선미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강철이 가지고 있다던 나머지 두 개 회사가 떠올랐다.

대충 상황을 눈치챈 비서가 말을 이었다.

“생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이 실내에 있으므로 인해 ‘시티라이더’도 엄청난 수혜를 입었습니다. 곧 출시할 ‘라이즈 킹덤’에 대한 기대도 어마어마하고요.”

“설마 그 사람…… 이런 상황을 다 예측한 걸까요?”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식적으로 이런 상황을 전부 예상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다만?”

“미래를 보는 안목이 제 생각보다 뛰어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놀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진선미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사람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아마 재택근무 중일 겁니다.”

“약속 잡아보세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 * *

-5%.

-7%.

-10%.

그리고 다시 -5%.

미국 주식은 빠르게 하강했다. 강철은 코스피 -2x 인버스 ETF에 넣어두었던 개인 돈을 전부 팔아 다시 미국 ‘노바스’ 주식을 매수했다.

노바스에서 치료제가 발견되자마자 해당 회사의 시가총액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물론 그사이 대산 그룹 주식도 올라갈 테지만 노바스 정도는 아니었다.

-노바스 100주 매수되었습니다.

-노바스 240주 매수되었습니다.

이른바 패닉셀이 이루어진 시장에서 강철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당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그건 물론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주영이 마이클에게 지시했다.

“지시 떨어졌다. 풋 포지션 전부 청산하고 노바스 매수해.”

“옛썰!”

대답한 마이클이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풋옵션을 전부 청산하자 계좌로 들어온 돈만 4,500억이 넘었다. 단숨에 수 배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둘은 그 돈으로 노바스를 집중 매수했다.

노바스.

세계적인 제약 회사로 시가총액만 100조에 이르는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패닉셀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시가총액이 60조까지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팔고자 하는 매도자는 넘쳐났다. 다들 미국이 곧 멸망할 것처럼 주식을 팔아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둘은 주가를 그렇게 올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수 시간에 걸친 매수를 끝낸 마이클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매수 완료했습니다.”

“나도.”

겨우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밀려왔다.

“휴우…….”

그런 마이클에게 신주영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개인계좌로 매수할 거야?”

마이클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패닉셀 기간에는 겁이 나 차마 인버스 투자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도 놓치고 싶진 않았다.

고민하던 마이클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 재산 40만 달러. 올인할 겁니다.”

신주영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올인?”

“네. 매니저님은요?”

신주영인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둘은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내 노바스를 매수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그때쯤.

지구 반대편 한국 반포에 있던 강철도 매수를 끝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새벽 2시.

미국 장이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바람에 새벽이 되어서야 매수를 끝낸 것이다.

‘풀 대출에 신용까지 전부 끌어다 써서 개인적으로 들어간 돈 만 150억. 거기에 미국에 세워둔 사모 펀드에서 들어간 돈이 4,500억이다. 이게 곧…… 다시 수배로 불어나면.’

조 단위의 돈이 생긴다.

거기에 자신이 자회사로 둔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시티라이더는 ‘변형 인플루엔자’ 덕분에 일 매출 5억을 달성했고, 유우니상점 과 딜리버리브라더스 그리고 핀테크 업체 리민스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황금비가 내렸다.

‘대산 그룹을 차지하는 일이 정말 눈앞까지 왔어.’

강철은 핸드폰으로 대산그룹 주가를 확인해 보았다.

-주가 : 25,100원.

고점 대비 거의 절반이 떨어져 있었다. 백화점이나 마트 매출이 가파르게 하강한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주가는 크게 상승하지 못해. 빅트리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서 대산의 온라인 쇼핑 경쟁력이 쿠키에 미치지 못하니까.’

하지만 몇 년 뒤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적자를 버티지 못한 쿠키가 서서히 자멸하면서 대산 닷컴의 리뉴얼 버전인 ‘빅트리’에 기회가 오기 때문이었다.

그때.

드르륵거리며 강철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신주영 : 노바스 매수 완료했습니다.

그걸 본 강철이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서울 모처에서 강철이 진선미와 마주한 채 앉아 있었다.

“여기 고기가 먹을 만해요.”

“네.”

확실히 흰색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 먹음직스러워졌다. 그걸 직원이 조심스럽게 불판에 올려 구워주었다.

“더구나 여기 직원들은 전부 일본인이라 한국말을 일절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검증되었기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다는 강점이 있죠.”

점원이 강철의 접시에 잘 익은 소고기 한 점을 놓았다. 그걸 살짝 소금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정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나중에 가족들 데리고 한번 와야겠어.’

강철은 엄마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기를 또 한 점 입안에 넣었다.

진선미가 그런 강철을 보며 말했다.

“딜리버리브라더스, 그리고 유우니 상점. 매출이 상당하다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이런 사태가 터질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진선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브 진 긴 머리에 감춰져 있던 쇄골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 운이 신기하게도 이 CTO만 쫓아다니고 있어요.”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다 보니 운이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거고요.”

강철은 또 한 점 고기를 먹었다.

‘여기 진짜 맛있네…….’

먹을수록 감탄이 흘러나왔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맛이었다.

‘나도 출세하긴 했어. 재벌이 사주는 소고기라니…….’

그런 생각을 하자 ‘킥’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선미가 지긋이 강철을 보았다.

“그 운. 혹시 조금 나눌 수 있나요?”

강철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나타났다.

“……네?”

“얼마 전 투자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 돈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건 아니잖아요.”

강철이 고개를 들고 진선미를 보았다.

“제게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맞아요. 금전적으로도 좋고, 필요하다면 인맥으로라도 좋고요.”

그럼.

당신이 가진 대산 그룹 지분을 넘기세요.

강철은 애써 그 말을 삼키고 다시 고기를 한 점 집었다. 그 모습에 진선미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다음 계획이 있긴 하군요.”

강철은 누구나 수긍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일단은 회사 일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현재 사태로 컨택 산업의 대표주자인 대산 그룹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요.”

“그런 계획 말고, 또 어떤 회사를 인수할 생각이시죠?”

이번에도 같은 단어가 맴돌았다.

대산 그룹이요.

강철은 고기를 삼키며 그 단어도 집어삼켰다. 그리고 바로 답했다.

“아직은 계획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회사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이번 투자로 총알은 든든하게 마련되었다. 굳이 진선미와 공동 투자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진선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와 공동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요?”

강철이 애써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정말 계획이 없습니다. 이것까지 거짓이라 말씀하신다면…… 저로서는 더 할 말이 없군요.”

진선미는 자신이 끌려다니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압박했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날까 두려웠다. 어느새 강철은 자신이 있는 위치까지 다가와 있었으니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 말 믿겠어요.”

강철의 말은 당연히 거짓이었다. 앞으로 몇 개의 스타트업을 더 인수할 생각이었다.

대표적인 회사가 디스이즈 닷컴이다.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다양한 개인들이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하지만 돈이 있는 데 굳이 진선미의 자금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강철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신주영 : 대표님 뉴스 떴습니다.

그 말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신주영 : 노바스에서 만든 기존 인플루엔자 치료제 ‘노바스-A-플루’가 효과가 있답니다.

강철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 * *

-백신도 없다.

-치료제도 없다.

-감염력은 기존 질병의 몇 배다.

변형 인플루엔자의 위용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기세로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퍼져나가던 질병은 ‘노바스’의 ‘노바스-A-플루’ 플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물론 당장 해당 약품이 전 세계에 공급될 만큼 넉넉지 않았다. 당연히 공급 부족이 일어났고, 노바스로 쌈짓돈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건 곧.

기존 주주들의 환호성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마이클이 잔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61%!”

“62%!”

“65%!”

치료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노바스의 주가는 쉴 새 없이 올라갔다.

중국.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남미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를 강타한 병이었다.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약의 존재는 시장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미국은 상/하한가 제한이 없는 나라였다.

마이클이 들고 있던 온더락 위스키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70%!”

함께 있던 신주영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님이 보신 게 이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노바스’를 콕 집으셨겠어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노바스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이클이 한껏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것까지 알 필요 있습니까.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또 한 잔의 술을 마셨다.

무려 하루 만에 7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건 곧 마이클이 넣은 돈도 70%가 넘게 올랐다는 말이었다.

신주영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계속 올라간다.”

“현재 전문가들 말로는 이 변형 인플루엔자는 이제 감기처럼 매년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노바스는 자사 약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어요. 즉 변형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죠.”

신주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현재 노바스의 올 한 해 매출 전망치만 무려 400억 달러예요. 거기에 약을 독점 공급하고 있으니 OPM은 수십 프로를 넘을 겁니다. 그 말은 즉.”

“최소 1루타는 친다?”

1루타.

증권계의 은어로 보유주식이 2배가 된다는 뜻이었다. 마이클이 고개를 흔들었다.

“최소 3루타. 이 분위기로 봐서는 홈런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홈런.

10배를 뜻하는 말이었다. 놀란 신주영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

“지금 전 세계가 변형 인플루엔자 덕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시잖아요.”

유가 10불.

미국 락다운.

유럽 봉쇄.

항공기 운항 중단.

관광산업 -90% 성장.

전 세계 GDP -10%.

전 세계 경제가 전쟁 속에서 포화를 맞은 것처럼 파탄 나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노바스의 약이 평화를 지킬 구세주로 등판한 것이다.

그랬기에 신주영도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 마이클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대표님이 매도 타이밍은 언제라고 하십니까?”

“3배 올라가면 조금씩 팔라고 하시더라.”

“3배…… 3배라. 제감에는 최소한 5배부터 팔아야 하는데…….”

이건 강철도 노바스가 얼마까지 올라가는지 알지 못하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당시 노바스에 치료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해당 주가가 얼마까지 가는지는 몰랐다.

“그럼 네가 한번 건의해 봐.”

고개를 끄덕인 마이클이 핸드폰을 집었다.

* * *

치료제가 발견되고, 빌딩 전체 방역이 끝나자 대산 그룹 본사도 재택근무에서 출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사로 출근한 강철은 바로 회장실로 올라가야 했다.

강철이 자리에 앉자마자 진용민이 입을 열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왜 그런 회사에 투자했을까 궁금했어.”

그걸 듣자마자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다.

딜리버리브라더스.

유우니 상점.

현재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두 회사에 관한 이야기이리라. 진용민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냥 유통업에 관심이 있다 보니 투자한 것으로 생각했지.”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그게 다행히 운때가 맞아 좋은 결과를 내게 됐습니다.”

“좋은 결과 정도가 아니더군. 매월 수십 퍼센트씩 성장하고 있다지?”

“다행히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주신 덕분입니다.”

“딜리버리브라더스도 이용자가 폭증했다고 하던데.”

“네. 다들 집에서 시켜 먹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서요.”

“아마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서도 그런 트렌드는 크게 변하지 않을 거야. 한 번 편안함을 맛본 인간을 다시 되돌리기는 쉽지 않거든.”

진용민이 깍지를 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강철을 지긋이 보며 말을 이었다.

“그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 이런 상황을 예측했든 하지 않았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결과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 자넨 결과로 보여주었고.”

“감사합니다.”

“CTO에 임명되었을 때 기억나나? 책임경영을 위해서 대산 그룹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했지.”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용민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대산 지분과 자네 회사 지분을 맞교환하는 건 어떤가? 그리고 일 적으로도 협력하는 거지. 이를테면 유우니 상점에서 우리 회사 물류창고를 이용하거나. 딜리버리브라더스에서 우리 쪽 배달 건을 처리해 준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이야.”

괜찮은 제안이긴 했다. 자신들의 회사에는 안정적인 일감을 받고, 덤으로 대산 그룹 주식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비율이었다.

“그건…… 상세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단순히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지분 교환은 각자가 평가하는 기업 가치가 다를 테니까요.”

“그래, 한번 고민해 봐.”

“알겠습니다.”

대답한 강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제 개인적으로도 지분을 좀 인수하려 합니다.”

“좋지. 지금 같은 시기에 매입해 주면 주주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그래,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

“일단은 한 100억 정도 생각 중입니다.”

그 액수에 진용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0억?”

“네. 그러면 한 1% 정도 매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매입했던 것과 합치면 대략 1.5% 정도 됩니다.”

“하하, 과감하구만.”

진용민을 보던 강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뒤로도 돈이 들어오는 대로 꾸준히 매수해 최종적으로 5% 정도를 맞출 생각입니다.”

“……5%?”

5%면 임원이 아닌 일반인이더라도 지분 공시 의무자였다. 그렇게 법으로 정한 이유는 추후 대주주로서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 대산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더구나 현재 주가가 많이 내려가 있어 돈을 끌어모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자네가 시장에서 매입한다는데 내가 말릴 수는 없겠지. 더구나 우리 회사 임원이 회사가 성장한다 생각하고 주식을 매입한다니…… 오히려 반가운 일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진용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가는 강철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노바스의 주가는 마이클의 말대로 3배를 넘어 40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철은 그의 의견대로 그때까지 단 한 주도 팔지 않았다.

그리고 400%가 넘어가는 순간.

“매도 타이밍이 왔습니다.”

마이클이 건의했고, 강철이 승인했다. 시장에 노바스 주식이 대량으로 풀려 나갔다.

* * *

-매도 완료했습니다.

진용민과의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도착해 있는 문자였다. 문자 내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총 매수 금액 : 434,011,000,000.

-총 매도 금액 : 1,513,391,000,000.

차익만 1조 원에 이르는 돈이었다. 문자를 확인한 강철이 두 눈을 쓱쓱 비볐다.

“이거 실화 맞지…….”

그렇게 눈을 비비며 다시 봐도 내용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강철은 바로 문자를 보냈다.

-계획대로 이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강철이 세운 계획.

그건 단순했다.

-사모 펀드 세 개를 설립한다.

-각 사모 펀드의 이름으로 6%씩 대산 그룹 지분을 인수한다.

그게 신주영에게 내린 지시였다. 이후 남은 금액은 신주영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서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

강철은 문자를 하나 더 추가했다.

-6%에서 8%로 올려서.

그렇게 되면 24%가 된다.

강철이 가진 5%를 더하면 29%.

즉 대산 그룹의 최대주주가 자신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싼값으로도 지분을 왕창 매입할 수 있었다.

띵.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황희석 상무였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엘리베이터에 탄 강철이 닫힌 문틈 사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철이 툭 내뱉었다.

“자기만 손해지.”

곧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 * *

진용민의 집무실.

황희석이 죄인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황희석이 조심스럽게 서류를 내밀었다.

“2차 CBT 결과입니다.”

-부정평가 25%.

런칭을 준비 중인 빅트리의 부정평가가 겨우 5% 개선된 것이다. 진용민이 기대하고 있던 수치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10% 아래로 내리라 했을 텐데.”

“그게…… 현재 개발된 내용에서 대대적 변화를 주려고 하니 시일이 너무 촉박해서…….”

“요즘 보면 자네가 일하는 사람인지 변명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이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었다. 황희석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최대한 빨리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원래 이거 4월 1일에 런칭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오늘이 3월 28일.

런칭일에서 불과 3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CBT가 진행 중이었다. 이 속도라면 절대 4월 1일에 런칭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황희석의 고개를 한층 더 숙였다.

“죄송합니다.”

진용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황희석이 지금껏 해온 일은 분명 있었다. 그게 없었다면 당장 내쳤으리라.

황희석이 애써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한 달만 주시면 제대로 처리해 놓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만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을 따르려는 이가 없을 테니까.

진용민이 황희석을 노려보았다.

“정말 자신 있지?”

“네. 만약 해내지 못한다면.”

“그러면?”

“임원 자리…… 내려놓겠습니다.”

“그래, 그 정도 결심이면 뭔가 성과가 있겠지.”

황희석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을 빠져 나 왔다.

그가 집무실을 나와 찾은 곳은 빅트리 개발팀.

새롭게 개발팀장으로 선임된 임종인을 찾았다.

“임 팀장.”

“네.”

“일단 한 달 시간 끌었다. 무조건 그때까지 끝내.”

“사, 상무님. 한 달은 너무 촉박합니다.”

“뭐가 촉박해 이미 개발 다 끝난 거 아냐?”

임종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무님이 말씀하신 대로 수정하려면 코드 기반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오류가 많아져 테스트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어차피 한 달 안에 개발이 완료되지 않으면 자신은 옷을 벗어야 한다.

“그냥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

임종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오픈 첫날부터 에러나 뻑뻑 내면서…….’

침몰할 것이다. 그런 미래가 뻔히 예상되는데…….

황희석을 얼굴을 보자 차마 더 말할 용기가 안 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 달이야. 그동안 밤이고 주말이고 나와서 만들어. 이것만 잘 끝나면 포상은 확실하게 챙겨줄 테니까. 알았어?”

깊은 한숨을 내쉰 임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국 뉴욕.

신주영은 강철의 지시대로 사모 펀드 3개 만들어 각각의 명의로 대산 그룹 주식을 매입했다.

0.5%.

0.2%.

0.4%.

그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아주 조금씩 진행되었다. 적은 돈이면 상관없지만 수천억의 돈이 한 번에 들어갈 때 주가가 급등하는 예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주식을 사기만 하면 안 된다. 때로는 산 주식을 다시 팔며 주가를 떨어뜨린 후 개인들의 실망 매물을 받아내는 식으로 지분을 모아갔다.

아주 지난하고, 지루한 과정이었다.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는 이유였다.

“후우, 그런데 보스는 왜 대산 그룹 지분을 매입하라고 하셨을까요? 설마 이것도 급등하려나…….”

신주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의 유통 재벌 중 하나일 뿐이야. 이게 갑자기 급등할 모멘텀 같은 건 없는데…….”

“노바스도 그냥 제약회사였잖아요.”

그 말에 신주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긴 그건 그렇지만.”

마이클도 확신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저 한번 던져본 말에 불과했다.

“저도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딱히 주가가 오를 만한 상승요인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매수하려다 참는 중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은 사모 펀드 세 개로 나눠서 매수를 진행한다는 점이에요. 마치 상대가 모르길 바라는 것처럼.”

순간.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설마 경영권 인수?”

마이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이요.”

“그런데 왜 대산을 인수하시려는 걸까. 다른 기업도 많은데…….”

잠시 고민하던 마이클이 손뼉을 쳤다.

“대표님이 거기 CTO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마…… 그럴 거야.”

신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내부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아실 거잖아요.”

“그렇지.”

“대산이 앞으로 망할지 더 크게 돼서 성공할지도 아신다는 말이잖아요.”

“그 말은…….”

마이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대산 그룹이라는 곳이 엄청나게 발전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신주영이 마이클을 보며 눈짓했다.

“그럼…… 우리도 살까?”

마이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조건.”

둘은 사모 펀드 계좌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 계좌로도 대산 그룹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 * *

대산그룹 전략 기획실.

그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회사의 지분 변화 모니터링이었다. 특정 개인에게 지분이 쏠린다거나 기관이 매집한다거나 하는 신호를 사전에 파악해 오너 일가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전략 기획실에서도 김용원 과장이 그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김용원이 매매 동향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CTO님이 벌써 1.5%나 사셨네. 외부에 사업체가 있다 하시더니 돈을 많이 벌긴 버셨나 봐.”

옆에 있던 대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과장님 그거 모르세요?”

“뭐?”

“지금 딜리버리브라더스랑 유우니 상점 엄청 잘나가잖아요. 더구나 시티라이더는 앱스토어 최고 매출 1등도 찍었고요.”

“그랬어?”

“회사에 소문이 파다해요.”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

“그런데 지분을 얼마나 매입하시려는 걸까요?”

“회장님 통해서 내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5%까지 하신다던데.”

그 말에 대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5%나요?”

“나도 그 말 듣고 놀랐다. 아무리 요새 주가가 많이 내려가긴 했지만 5%면. 최소 500억은 넘잖아.”

“후아…… 이 CTO님 작년에 신입사원 아니었어요?”

그 말에 과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랬지.”

“그런데 1년 만에 대산 그룹 지분을 5%라니…….”

김용원 과장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 딴 세상 이야기 아니겠냐.”

그런 김용원의 눈이 모니터 한곳에 멈췄다.

“사모 펀드가 우리 주식을 왜 이렇게 샀지…….”

최근 사모 펀드 세 곳에서 매일 조금씩 조금씩 대산 주식을 매입하고 있었다.

3.7%.

4.1%.

3.9%.

아직 5% 공시 룰에 걸릴 정도가 아니라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주명부를 확인할 수 있는 김용원은 알 수 있었다.

“리턴 펀드, 라이트닝 펀드, 블랙데이 펀드라…….”

이들 세 곳이 매집한 지분만 벌써 10%가 넘었다.

과거 한국 자동차 회사가 미국 펀드의 공격으로 경영권 위협을 받은 이후 한국 재벌들은 상시 이들의 지분 매입을 경계해 왔었다.

그런데 그 일이 대산 그룹에 일어난 것이다.

“개별로 보면 아직 5%도 안 되잖아요.”

김용원이 턱을 문질렀다.

“예감이 안 좋단 말이야…….”

“별일이야 있겠어요. 명예회장님을 비롯한, 오너 일가 지분이 30%나 되는데.”

“그렇기야 하지.”

그랬기에 김용원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빅트리 런칭일.

사무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부하직원이 임종인을 보며 말했다.

“팀장님 진짜 오픈합니다.”

“오픈해. 안 그러면 내가 죽는다. 일단 오픈하고, 아직 미구현된 기능은 차차 추가하면 되잖아.”

하지만 부하직원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가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기존 기능 테스트도 충분치 못해서 오류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임종인이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일단 해.”

“……알겠습니다.”

부하직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다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속속 보고 사항이 올라왔다.

그걸 전부 취합한 직원이 임종인에게 말했다.

“전체 서버 기동 완료했습니다. 도메인 오픈만 하면 됩니다.”

임종인이 슬쩍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43분.

오픈 시간은 10시였다. 아직 17분이 남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멈춰?’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금세 사라졌다. 어차피 오픈을 하나 안 하나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젠장…… 정형진이 말릴 때 멈춰야 했는데…….’

자신이 황희석 밑으로 들어가기로 했을 때 전임자였던 정현진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분명 자신을 말렸다.

파국.

결과는 그것 하나뿐이라고 했었다. 이제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띠.

띠.

띠.

시간이 흐르고 결국 약속의 10시가 되었다.

“도메인 오픈해.”

“네.”

그리고 한 시간 뒤.

고객 센터는 성난 고객들의 항의 전화로 마비 상태가 되어버렸다. 임종인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쉴 새 없이 울리는 사무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국, 황희석이 사무실까지 내려와 호통을 쳤다.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오픈하면 안 된다고.”

“뭐?”

“전 이제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이 자식이 진짜!”

임종인이 먼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정 부장 말을 들어야 했는데 승진에 눈이 멀어서…….”

앞에 있는 황희석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 * *

그 소식은 사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강철이 있는 9층.

대산 3.0 프로젝트팀에도 그 소식이 들렸다. 그 소식을 들은 강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주가 확인이었다.

‘떨어진다…….’

-주가 : 25,300원.

그새 정보가 샜는지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던 주가가 다시 내려가 있었다.

‘좋았어.’

이렇게 되면 자기 생각보다 더 싸게 주식을 매집할 수 있었다. 한창 주가를 확인하며 웃고 있는 강철에게 비서가 똑똑 문을 두드리곤 들어왔다.

“CTO님.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네.”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바로 진용민이 있는 꼭대기 층으로 이동했다.

‘이 시점에서 날 찾는다는 건 빅트리 개발을 맡기실 생각인 것 같은데…….’

자신이 맡으면 물론 100% 성공이다. 미래 빅트리가 어떤 디자인에 어떤 기능을 탑재해서 잘나가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대산 그룹을 인수한 이후에 되어야 할 일이다.

‘오너 일가에서 보유 중인 지분이 31%. 최소한 그 정도는 모아야 해…….’

그래야 경영권 다툼이 생겨도 이길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이 대산 그룹에서 해온 성과를 보여주면 소액주주들도 아마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강철이 진용민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황희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고, 진용민이 거친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앉지.”

“네.”

진용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소식 들었나? 빅트리가 빠그라졌어.”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에러만 뻑뻑 뿜어내다가 자꾸 죽어버려서 현재 사이트를 막아놓은 상태야. 다시 대산 닷컴 쪽으로 포워딩?”

황희석이 급히 부언을 덧붙였다.

“포워딩 맞습니다.”

“그래, 그거. 이게 지금 말이 되나? 이런 식으로 쇼핑몰 작업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황희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강철은 담담히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후우…….”

깊은숨을 내쉰 진용민이 강철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맡아서 해결해 줘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일단 상태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상태가 심각하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

진용민이 으득 입술을 깨물었다.

“한 달 안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래, 일단 해보고, 다시 조율해 보지.”

“알겠습니다.”

“바로 나가서 인수인계해.”

진용민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황희석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진용민이 꼴 보기 싫다는 듯이 손짓하며 말했다.

“뭐 해, 어서 나가보지 않고.”

“네.”

조용히 밖으로 나온 황희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강철 역시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황희석의 집무실에 도착한 후에야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라고 별수 없을 거야.”

“…….”

“어디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지.”

황희석의 적의에 강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 털썩 앉은 황희석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시X, 애새끼들이 일을 똑바로 못하니까 내가 대신 욕을 처먹네…….”

그는 끝까지 남 탓에 골몰했다. 강철은 그런 황희석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인수인계나 부탁드립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여전히 싸가지가 없어.”

강철이 조용히 보고 있자, 황희석이 인터폰을 눌렀다.

“임 팀장 들어오라고 해.”

-네.

임종인이 딱딱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제부터 빅트리 담당은 여기 이 CTO다.”

“……네?”

“그렇게 됐어. 이제 이 친구한테 보고해.”

그러자 딱딱하던 임종인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임종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강철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대할 때와는 180도 다른 안색에 황희석의 눈썹이 치켜세워졌다.

“……너 이 자식.”

황희석이 한마디 하려는 찰나.

강철이 임종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시간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빅트리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개선 계획을 세우니까.”

“알겠습니다.”

황희석이 밖으로 나가는 둘을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 * *

총체적 난국.

빅트리의 상태는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코드는 스파게티로 짜여 알아보기 힘들었다. 테스트 코드는 거의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1부터 10까지.

전부 바꿔야 할 상황이었다. 임종인이 애써 변명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보니……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테스트 코드 정도는 짜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임종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임종인을 보며 강철이 말을 이었다.

“전사에 사용하기로 한 화면 테스트 자동화 툴은요?”

“죄송합니다.”

강철이 만든 화면 테스트 자동화 툴도 세팅이 안 되어 있었다.

‘빅트리를 런칭한 게 기적이군.’

강철이 생각하기에 이건 오픈하지 말았어야 한다. 임종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죄송합니다.”

그랬기에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께서 한 달 안으로 처리하라고 하시는데…… 상황이 이 지경일 줄은 몰랐네요.”

“…….”

“일단…… 개발자들 전부 불러오세요. 회의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임종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죄송하다가 아닌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강철은 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다른 의미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쓰러지겠어.’

다들 다크 서클이 가득했고, 피부는 까칠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강행군을 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흠…….’

살짝 한숨을 내쉰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드 컨벤션을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대로 기능을 수정해봤자. 또 어디에서 문제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역시나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후우.”

“쩝.”

직원들은 상대가 CTO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기에 불평 안 할 뿐이었다. 강철이 화면에 PPT를 하나 띄웠다.

“이건 추천시스템을 만들 때 사용했던 컨벤션으로 이걸 적용하는 것부터 작업을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린 사람들은 제대로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어.’

또르륵.

펜대를 굴리며 딴짓을 하는 개발자에서부터 먼 산을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대로는 안 된다.

‘흠…….’

고민하던 강철이 피곤함에 찌든 개발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전 수개월 동안 주말 출근, 평일 야근을 병행한 탓이리라. 이런 이들에게 또다시 야근, 주말 출근을 말한다면…….

아마 자신이라도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할 것이다. 물론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강철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들 짐 싸서 일찍 퇴근하세요.”

“……네?”

“그리고 내일은 휴가니까 안 나오셔도 됩니다. 그때가 되면 코드 컨벤션은 맞춰져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하실 일은 쉬면서 그 변화를 숙지하는 겁니다.”

의문의 연속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이상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철이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어리둥절해 있던 임종인이 재빨리 강철을 따라 나왔다.

“CTO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정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장님도 일찍 퇴근해서 좀 쉬세요.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저희 퇴근하면 어쩌시려고…….”

“일단 타 팀에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강철의 말이 끝나기 전에 추천시스템을 담당했던 인원들을 사무실로 들어왔다.

천준호 주임.

윤찬민 주임.

심기준 과장.

강철이 아끼는 인재들이었다.

“이 친구들 데리고, 보완하고 있을 테니까. 푹 쉬고 오세요.”

잠시 후.

직원들이 전부 퇴근했지만, 임종인은 남아 있었다.

그도 나름대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팀장인 자신은 끝까지 강철의 옆에 남았다.

그런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직접 코딩을 하신다고요?”

“네.”

“……CTO님이 직접이요?”

강철이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에 도는 소문으로 듣긴 했었다.

-이강철 CTO님 코딩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그저 뜬소문이라 생각했다.

“CTO님이 우리 중 아마 가장 잘하실걸요.”

“……그, 그래?”

“네. 저도 처음에 깜짝 놀랐어요.”

천준호 주임의 말이었다. 강철이 이제는 텅 비어버린 사무실에 노트북을 들고 온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작업 시작합시다.”

“네.”

“넵!”

“넵!”

이내 조용한 가운데 키보드 치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임종인은 자신이 들은 것이 결코 뜬 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Author : Lee Kang Chul

Commit : 57d10c2

Message : 코드 규칙 수정

Author : Lee Kang Chul

Commit : 19d0811

Message : 디자인 패턴 추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강철이 입력한 커밋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 * *

대산 그룹 전략 기획실.

김용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보았다.

블랙데이 펀드 6%.

리턴 펀드 5%.

라이트닝 펀드 5.6%.

최근 무섭게 지분을 매입하는 세 개의 사모 펀드에서 결국 5% 지분을 넘게 매수했고, 지분 공시 수준까지 다다른 것이다.

김용원이 바로 팀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 했다.

“리턴 펀드, 라이트닝 펀드, 블랙데이 펀드. 이 세 곳 전부 5%를 넘겼습니다. 지금도 계속 매집 중인 것 같고요.”

전략기획실장 이철휘.

그가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물었다.

“목적은?”

“공시된 내용으로는 일반투자 목적입니다.”

“대산 그룹에 투자하겠다.”

“최근 빅트리 프로젝트도 난항을 겪으면서 주가가 내려갔을 때 오히려 더 매입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 회사 미래를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

김용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은 유통회사 중에 왜 우리를…….”

김용원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최근 감염병 사태로 인해서 오프라인 마트들이 차츰 지점을 철수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몇 년 후 대산 마트가 수혜를 입을 거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승자독식 구조가 만들어진다.”

“네. 이런 변혁의 시기에는 각 산업의 1등 기업만 살아남게 되니까요.”

이철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당장 경쟁사인 엘리 마트에서도 오프라인 매장 5개를 철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당연히 그 수혜를 대산 마트가 입게 될 것이다.

“그쪽에 따로 연락은 해봤어?”

“네. 하지만 도통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이철휘가 턱을 문지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정말 단순 투자 목적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지만, 갑자기 경영권 참여라고 하겠다고 나선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럼 의도가 확인된 게 아니잖아.”

“…….”

“알았어. 일단 내가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김용원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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