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14화 (14/59)

5장 능력 있습니다(2)

강철의 생각은 대화를 나눌수록 확실해졌다.

“이거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잘못되면…….”

진선미가 일순 말을 멈추었다. 더 이야기했다간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강철은 그 걱정스러운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불안해하고 있다.’

강철은 점점 제 생각에 확신을 가지며 천천히 구체적인 방안을 설명했다.

“자세한 건 살펴봐야겠지만 먼저 대산 닷컴과 그 리뉴얼 버전까지 옮겨도 30%는 가능할 겁니다.”

“빅트리까지요?”

빅트리.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대산 닷컴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네. 어차피 빅트리가 오픈하면 대산 닷컴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럼 서버가 남을 테고요. 그런데 이대로 진행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버가 두 배로 필요하겠군요.”

“네. 하지만 NCS는 데이터 센터처럼 물리적 하드웨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딱 필요한 만큼만 서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팟성 인스턴스나 NCS에서 제공하는 NC4 스위치를 사용해 최적화를 수행하면 비용은 더 줄게 됩니다. 당연히 운용 요원도 적게 필요하고요. 또한, 기술 내재화를 통해 외주 인력은 한 명도 쓰지 않을 겁니다.”

슬며시 기어 나오는 기술적인 이야기에 진선미가 살짝 입술을 핥았다. 어떤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NC4? 스팟 인스턴스는 잠시 사용한다 그런 말인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이내 진선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해 NCS의 여러 기능을 이용하면 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본사에 데이터 센터를 짓고 그걸 쓰는 이유가 있는데…… NCS로 옮긴다는 게 좀.”

“어차피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거대한 시스템을 운용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강철의 거듭된 설명에 전선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흠…….”

고민에 빠진 진선미의 머릿속이 휘몰아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털어낸 진선미가 결론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추진해 보죠.”

진선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강철이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진선미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게 잘못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린다. 어쩌면 회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 * *

진선미의 집무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온 강철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내에 암암리에 퍼진 소문과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가 오버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이 진 전무님을 치워내려고 외주비용 -30%라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그리고 진 전무는 그 일 때문에 전전긍긍해 있고.’

그걸 듣자마자 머릿속에 퍼뜩 5년 후의 일이 떠올랐다.

-남매간의 경영권 분쟁.

5년 후.

대산 그룹의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진 명예회장 진동만이 죽으며 그의 유언이 공개된다.

-진용민 : 8%.

-진선미 : 11%.

불과 3% 차이였지만 그 파급력은 작지 않았다. 진선미를 더 높게 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이사진은 술렁였고, 진선미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결국, 진선미가 백화점을 비롯해 프리미엄 아울렛, 패션, D&S 등 계열사 6개를 가지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때 진 전무님이 명예회장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건 추천시스템 때문이었어. 그걸 잘 만들어 플랫폼화 직전까지 간 공으로 더 많은 지분 상속을 결정하게 되니까. 그런데 추천시스템이 내게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

추천시스템의 통제권이 완전히 자신에게로 넘어왔다.

결국, 이걸 만든 공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중용한 진용민의 공이 되는 것이고.

그건 즉 진선미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아까도 잘못되는 걸 걱정하며 말을 흐린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강철의 고민은 하나였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내게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지만, 자신이 새우가 아니라 같은 고래라면.

‘어쩌면 그 고래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가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대산 그룹은 강철이 먹기에는 너무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꼭 당장 많은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냐. 투자를 받아도 되니까.’

꿈과 비전.

그리고 경력이 있다면 투자를 받아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 강철의 강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앞으로 대산 내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해외사업 철수.

물류대란.

실적쇼크.

빅 트리.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

…….

경영권 분쟁까지.

사내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서 능력을 보인다면 상무, 전무를 거쳐 부사장, 사장 결국에는 주인까지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대산 그룹을 인수해서 아이온의 밑으로 넣으면…….’

자신이 대산 그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꽤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다.

‘하긴 천 조 그룹을 꿈꾸고 있는데 대산 그룹 정도야. 위로 올라가는 발판이지.’

흐읍.

강철이 긴 숨을 들이쉬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차분히 준비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강철은 핸드폰을 켜 ㈜대산의 주가를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주가 : 52,300원

-시가총액 2조4천억

-유통 주식 수 : 46,996,298.

대부분 기업의 경우 대주주가 유통 주식 수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대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산이 그룹의 전체 계열사별 지분을 50% 이상씩 가지고 있는 구조였다.

즉 ㈜대산만 인수하면 전체 그룹을 인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론적으로 7,200억이 있다면 대산 그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7,200억이라…….’

과거였다면 그 액수를 듣자마자 불가능하다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케팅팀에서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준다고 했으니까. 안정적인 캐시 카우는 생겼고, 정현진이 부장으로 있는, 대산 닷컴도 잘만 엮으면 일감을 하나 따낼 수 있다.’

그 밖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많았다.

1. 아이온 게임즈의 게임 출시

2. 아이온 투자 진행.

3. 아이체크 IPO.

4. 나인소프트, 딜리버리브라더스의 성장.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제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7,200억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참. 회사에서 자기 회사 차지할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확실히 과거와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저 하루하루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면, 이제는 더 많은 것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런 강철에게 유혜인이 다가와 결재판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A4 용지가 수 장 꽂혀 있었다.

“알고리즘 수정본입니다.”

딴생각에 빠져 있던 강철이 당황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네.”

유혜인이 그런 강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유혜인의 눈길을 피해 핸드폰을 슬며시 주머니에 넣었다.

“왜…… 왜요.”

“아니요. 그냥 요즘 회사에서 핸드폰 보는 시간이 많으신 것 같아서요.”

“하하, 별것 아닙니다.”

강철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바로 유혜인이 내민 A4 용지에 집중했다.

“음……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알고리즘의 시간 복잡도가 많이 개선됐네요. 하하, 갈수록 실력이 느는데요?”

강철의 칭찬에 유혜인의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중첩 반복문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네. 확실히 고민한 흔적이 보여요. 하지만…….”

강철이 말을 흐리자 유혜인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공간 복잡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네요. 만드신 코드를 그대로 코딩하게 되면 메모리 사용량이 늘어나게 돼서.”

강철이 힐끗 천준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천 주임이 불평불만을 엄청나게 할 것 같은데요.”

빠득.

유혜인이 이를 갈았다.

“그, 그래선 안 되죠.”

“그 부분만 수정하면 좀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건 유혜인을 훈련 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 입문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일을 진행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네. 다시 수정해 볼게요.”

그 사실을 알기에 유혜인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비서실장의 보고를 들은 진용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대산 닷컴을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고?”

“네. 이강철 이사가 추진하고 있다 합니다.”

“그 녀석은 누가 자기 승진시켜줬는지 모르는 거 아냐?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진 전무가 이강철 이사가 운영 중인 아이온의 데이터 분석 서비스 사용 계약을 하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아이온?”

“네.”

“그 녀석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거래군. 후우…… 그래서 어때? 클라우드 서비스 그걸 사용하면 정말 비용 절감될 것 같아?”

“알아본 결과 가능성은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 쇼핑 1위 사업자인 쿠키에서도 데이터 센터에서 나일 클라우드로 옮긴 후 비용 절감에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까요.”

진용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럼 성공할 수도 있단 말이잖아.”

그 안에 실린 거친 기세에 비서실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진용민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는데?”

“대산 닷컴부터 클라우드 서비스로 옮기기 위해 설계 중입니다. 이미 추천시스템을 그쪽에 구축하고 있어서 과정이 더 순조롭게…….”

“추천시스템 개발은? 그거만 해도 다른 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거 아냐?”

“그게 추천시스템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최근에 들어온 진행 상황을 보면 구매율 27.8%, 매출 예측 오차 9.8%로 후자는 목표치를 달성했습니다.”

“그 자식 그거 뭐야. 진짜 신입사원 맞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확실히 능력은 있는 거 같습니다. 이건 회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용민이 앞에 놓인 차를 후루룩 마셨다.

자신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승진시킨 건 아니었다. 그저 상당한 기술 능력에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다고 생각해 파격적인 승진을 단행했다.

그런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기술 능력이 자신이 생각한 것 그 이상이었다.

“프로젝트에서 빠지라고 지시할까요?”

진용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회사에 보는 눈 많은 거 알잖아.”

보는 눈.

명예회장 진동만의 심복이었다. 그 눈들이 자칫 이상한 말이라도 한다면 자신의 입지에 흠집이 날 수도 있었다.

“일단 지켜봐.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상관없지만. 성공한다면…… 확실하게 줄을 세워야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진용민이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대산 패션, 대산 D&S. 그 이상은 절대 넘어가선 안 돼.”

비서실장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비슷한 시각.

NCS 한국 지사에서 한창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의 지사장 김준모가 직원들을 보며 물었다.

“본사에 보고할 NCS(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우수사례 보고 건은 어떻게 됐어?”

“총 3건 준비했습니다. 아이체크의 백엔드 서비스. 대산 그룹의 추천시스템. 나인소프트의 유우니라는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직원의 보고를 들은 김준모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대산 말고는 아직 다 스타트업 수준 아냐?”

“네. 그렇긴 한데 아이체크와 나인소프트의 쇼핑몰은 꽤 유명합니다. 소비자들 입소문을 타고 있으니까요.”

“선정 이유는.”

“대산의 추천시스템은 NC2, 아이체크는 데이터 스트림 서비스의 나일시스, 나인 소프트는 블루/그린 디플로이 우수사례로 적당한 것 같다는 박 에반젤리스트님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박호선 에반젤리스트?”

“네.”

“그분 말이면 믿을 만하지. 좋아 그 건은 그렇게 하자고.”

“네.”

“다른 안건은?”

“끝입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무리하지. 우수사례로 뽑힌 회사에는 요금 할인해 줄 테니까. 혹시 홍보할 수 있냐고 한번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직원은 바로 메일을 작성해 각 회사에 전송했다.

* * *

온라인 쇼핑 부문장 황희석의 집무실.

정현진이 눈을 내리깔고 앉아 있었다. 황희석은 깍지를 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강철. 그 자식 도대체 뭐야.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회사를 이렇게 헤집고 다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외주비용 절감 프로젝트 그거 총괄로 이강철이 선정됐다.”

“……네?”

“곧 회의 소집할 거야. 진 전무님 말씀으로는 NCS인가 뭔가를 쓴다던데.”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그거 쓰면 정말 외주비용을 30%나 줄일 수 있어? 네 생각에는 어때?”

정현진이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감이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해. 될 거 같아. 아니야.”

“……잘 모르겠습니다.”

황희석이 답답한 한숨을 토했다.

“하아…… 이런 것도 내 심복이라고. 너 엔지니어 맞아? NCS 그거 유명하다면서. 그것도 모르냐.”

인격 모독에 정현진의 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정현진이 겨우 변명했다.

“개발자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건…….”

“알았으니까 변명은 그만하고.”

살짝 화가 올라온 정현진이 으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황희석에게 보이진 않았다.

탁.

탁.

황희석이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탁.

이내 힘껏 주먹을 쥔 황희석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거 실패하게 만들어.”

“……네?”

“요즘 회사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알아 몰라.”

이번에도 정현진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질문이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걸 물으시는 건지…….”

이번에도 황희석은 정현진을 타박했다.

“척하면 ‘착’이지. 기술 말이야. 기술.”

“아…….”

“회사가 기술 중심으로 변하려 하고 있잖아.”

정현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희석이 답답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마 추천시스템이 완성되면 그게 더 가속화될 거야. 회장님께서 나일 같은 회사로의 변화를 꿈꾸고 계시니까. 요즘은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말이 위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어.”

황희석이 위아래로 정현진을 스윽 훑었다.

“그러면 너 살아남을 자신 있냐? 나일이나 서치 같은 곳의 기술자처럼 할 자신 있어?”

정현진은 쉬이 답하지 못했다.

“…….”

그런 정현진을 보며 황희석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되면 이강철 이사에게 날개를 다는 꼴이 되겠지. 그럼 우리 다 옷 벗어야 하는 거야. 치고 올라오는 생생한 신입 많은데 굳이 우리 같은 노땅 쓸 필요 없지. 안 그래?”

황희석은 스스로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끈 떨어진 연 신세 되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프로젝트 실패하게 만들어. 그사이 빅트리 완성하고. 전무까지 올라가서 내가 너 끌어줄 테니까.”

정현진은 잠자코 듣고 있었고, 황희석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너도 끝이야. 알지? 어차피 5개월 만에 비용 30% 줄이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잖아. 누구나 다 실패할 거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 넌 그 당연한 일을 해내면 돼.”

정현진이 주저하자 황희석이 재촉했다.

“알았어! 몰랐어. 왜 이렇게 대답이 없어.”

정현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아마 곧 이강철 이사이 총괄로 팀 꾸려질 거야. 대산 닷컴과 개발 중인 빅트리가 옮겨가는 일이니 넌 당연히 포함될 거고. 무슨 말인지 알았지?”

정현진이 이번에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산 닷컴 회의실.

정현진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떠다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후자를 선택하길 잘했지.’

황희석이 싫어한다고 해서 그와 적대적인 노선을 탔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강철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대산 닷컴을 NCS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총괄은 제가 맡게 되었고요.”

황희석이 했던 말이 강철에게서 흘러나왔다. 정현진이 강철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강철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기간은 5개월. 관련해서 시스템 설계를 하려면 대산 닷컴 현황이 필요한데요. 정 팀장님?”

“아, 네.”

“말씀드린 현황 좀 띄워보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정현진이 심기준 과장을 보며 지시했다. 그러자 심 과장이 앞 화면에 PPT를 한 장 띄웠다.

“구성도를 보니까. 예비로 만들어둔 서버가 10대 정도 있더군요.”

심기준 과장이 바로 답했다.

“네. 대산 닷컴에 최대 사용자가 몰렸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둔 서버입니다. 특가 세일 같은 이벤트가 진행될 때 종종 사용자가 몰려서요.”

“NCS로 올리면 이런 비용이 절감될 겁니다. NCS에서는 NC4나 람다 같은 걸 써서 트래픽이 몰릴 때만 돈을 내고 사용하면 되니까요.”

심기준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NC4가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말을 하던 강철이 회의실에 모인 대산 닷컴 인원들을 쭉 훑었다. 역시나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강철이 혹시나 하여 물었다.

“혹시 NCS 사용해 보신 분?”

“…….”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신기술.

그런 것들과는 먼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용어 하나하나를 제가 설명해 드리면서 이 프로젝트를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배우셔야 할 겁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불편한 기색들이 흘러나왔다.

“지금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이건 또 언제 하라고.”

“하아…… 또 일이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사방이 닫힌 회의실이었다. 강철의 귀에도 똑똑하게 들였다.

‘이걸 그냥 윽박지를 수도 없고.’

과거 자신이 바로 저 직원들의 위치였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이 밀려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월급은 그대론데 일만 많아지니까.

‘회사는 흔히 세 가지로 다닌다. 일이 재밌거나. 함께하는 사람이 좋거나. 돈을 많이 주거나.’

일단 돈을 많이 주는 건 자신의 권한이 아니다. 일이 재밌느냐? 반응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람밖에 없었다.

“신길웅 대리님. 최근 결혼 준비로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업무시간에 볼일 봐도 됩니다. 휴가도 눈치 보지 말고 쓰세요.”

“네?”

“대신 업무 시간에 일 처리만 제대로 해놓으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흥민 과장님. 맞벌이하시는 데 아침마다 자녀분 유치원 등교 때문에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네 뭐.”

“등교하시고 넉넉하게 11시 전에만 출근하세요.”

“……네?”

“제가 가진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배려는 최대한 해드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직원들의 눈빛이 조금씩 변했다. 강철은 다른 직원들도 한 명씩 호명했다.

-심기준.

-문규석.

-김재섭.

그렇게 한 명씩 호명한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로 사항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주세요. 최대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강철이 슥 직원들을 살폈다.

“그리고 전 우리 팀원들 이름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잊지 않을 테니까. 한번 잘해봅시다.”

임원이 이름을 기억한다. 과장에게도 가슴이 울렁이는 말인데 대리나 주임급에서는 더했다.

불평불만만 가득했던 눈빛 속에 아주 조금 의욕이라는 것이 생겼다.

* * *

한 시간가량의 프로젝트 설명이 끝나고.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정현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황 상무님과 협의가 된 건가요? 그분이 온라인 쇼핑 부문장이시라 이번 일도 결제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진 전무님이 컨트롤해 줄 겁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진 전무님께 직보하고 있어서 황 상무님 결제는 필요 없습니다.”

“그, 그런가요. 하지만 황 상무님이 일에서 배제되는 걸 아시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 같은데…….”

강철이 픽 웃음을 흘렸다.

“황 상무님. 진 전무님. 누가 더 상급자일까요?”

그 말에 정현진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강철이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없습니까? 그럼 회의 마무리할까요.”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려 할 때

기다렸다는 듯이 황희석 상무가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강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황희석은 웃고 있었다.

“외주비용 절감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로 했다고요?”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빅트리도 NCS로 옮긴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그와 관련해서도 개발팀에 설명했습니다.”

황희석이 자연스럽게 의자 하나를 쓱 빼내 앉았다.

“그런데 총괄이시면 NCS에 관해 잘 아시나 봅니다?”

“하하, 네 뭐. 추천시스템을 NCS에 적용하며 공부를 좀 했습니다.”

황희석이 실눈을 뜨며 강철을 보았다.

“회사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실적을 내야 하는 곳이란 건 잘 아실 거로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번 프로젝트…….”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강철은 이 사람이 자신에게 적의를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황희석이 말을 하는 사이, 강철은 얼마 전 NCS에서 보내온 메일을 화면에 띄웠다.

제목 : NCS 우수사례 선정 협조.

내용 : 안녕하십니까. NCS 한국지사입니다.

귀사의 추천시스템이 NCS 활용 우수사례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해당 사례를 NCS에서 홍보 자료로 사용 가능한지 문의드립니다. 만약 허용해 주신다면 요금 절약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겁니다. 상세 조건은 협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중략)

그럼 답변 부탁드립니다.

강철이 황희석을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말씀하신 실적을 내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회의가 끝나고.

텅 빈 회의실에서 황희석이 팔짱을 낀 채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황희석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고 있었어?”

회의실에 남은 건 황희석과 정현진 단둘.

질문을 받은 정현진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저도 몰랐습니다.”

“NCS 우수사례. 저거 뽑히기 쉬운 거야? 돈을 주면 해준다든가…….”

하지만 이건 정현진도 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도 NCS 기술이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실제 사용하는 방법이나 어떻게 우수사례로 뽑히는 것 따위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황희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죄송합니다.”

“기술적 서포트를 위해 널 데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뭐 아는 것이 없네. 부장 달고 뭐 한 거야?”

정현진이 입을 우물거렸다.

‘뭐 하긴, 당신 실적 높여주려고 협력사 쥐어짰지.’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기능을 넣는다는 건 곧 비용으로 줄인 것이 되어 실적으로 연결된다. 지금까지 정현진이 골몰한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뭐 했냐니…….

그 말에 속에서 천불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하아…… 이래서야 내가 널 믿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겠냐?”

황희석이 팔짱을 풀고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보니까. 확실히 실력이 있는 건 같긴 하네. NCS가 우리한테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비약이니 저게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NCS 우수사례 선정 협조.

화면에는 여전히 같은 문구가 떠 있었다. 황희석이 한층 더 목소리를 낮췄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실패 말입니까?”

“그래. 무조건 실패하게 만들어.”

정현진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법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점점 마음이 다른 사람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대답 안 해?”

“……아, 알겠습니다.”

황희석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옷 벗으면 그럼 너도 어떻게 될지 알지?”

그 눈빛에 실린 악의에 정현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황희석이 정현진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말했잖아. 우린 한배를 탄 몸이라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옷 벗으면 대산 협력업체 쪽으로 가게 될 테고. 내가 너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해 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은 그 소리에 정현진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 * *

회의를 마친 강철이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윤찬민을 호출했다.

“윤 주임. 말했던 설계도 준비됐어요?”

추천에 외주비용 절감까지.

거기에 아이온 일까지 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강철은 이 일은 윤찬민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네. 지금 바로 보고 드릴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회의실로 이동했고 윤찬민이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대산 닷컴 및 빅트리의 NCS 이전 방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삑.

윤찬민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넘어갔다.

“먼저 AS-IS인 대산 닷컴 현황입니다. 총 사용서버 52대. L4 스위치 10대. 데이터 베이스 5대…….”

근 10여 분 동안 현황 설명이 지속하였다.

대산 닷컴은 대산 그룹을 대표하는 쇼핑몰인 만큼 규모가 상당했다. 그만큼 복잡했고, 많은 서버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황 설명이 끝나고.

“다음 TO-BE 즉 NCS로 어떻게 이전할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DB는 NCS의 자체 DB인 밀키웨이를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것만 해도 오라클 DB 사용으로 나가던 로열 티를 80% 이상 절감할 수 있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던 강철이 ‘툭’ 물었다.

“오라클은 자체 RAC 구성이나 오라클에서만 제공하는 함수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점을 버리겠다는 말인가요?”

“네. NCS에서도 오라클 RAC에 버금가는 고가용성을 보장해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뢰도 99.999999%의 데이터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고요.”

“흠…… 그럼 밀키웨이DB에 맞도록 함수 수정이 관건인데.”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산 D&S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네요.”

명백한 반어법이었다. 즉 그럴 실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민하던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 되도 되게 해야겠죠. 그건 넘어가고 다음 부분 말씀해보세요.”

“다음은 어플리케이션 서버 이전 방안입니다. 해당 서버들은 자사 추천시스템처럼 기본적으로 로커 위에서 기동할 예정입니다. 추천시스템을 구성하며 만들어 둔 이미지를 NC2 서버에 설치하여 쿠버네이티스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생각입니다.”

“만약 서버가 죽었을 때의 조치 방안은요?”

“로커 옵션으로 자동으로 재기동하도록 만들면 됩니다. 또한, 만약 3번 이상 재기동에 실패하면 NCS에서 제공하는 SQS 기능을 통해 로그 서버로 전달되게 됩니다. 해당 로그 서버는 전 서버의 생존 상태는 집계, 관리 되게 하며 이상이 있을 시 등록해 놓은 각 엔지니어에게 알람을 해주게 될 겁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 내내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윤찬민이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강철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윤찬민을 보았다. 확실히 전생에서도 빼어난 실력으로 팀장위치까지 올라가는 실력자다웠다.

“준비를 많이 했네요.”

“이미 추천시스템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빠져 있던 강철이 말했다.

“그럼 이번 프로젝트 한번 진행해 볼래요?”

“……네?”

“내 뒤가 아니라 내 앞에서 대산 닷컴 NCS 이전을 한번 진행해 볼 생각이 있냐 물어보는 겁니다. 그 정도면 아마…… 이달의 우수사원이 아니라 올해의 우수사원에 선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데.”

윤찬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강철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런칭 전까지 추천시스템 운영에 급한 일은 없잖아요. 자잘 한 수정 정도만 있을 뿐이지.”

“그, 그렇긴 한데 너무 큰 프로젝트라…….”

“전부 혼자서 하란 건 아니에요. 내가 옆에서 서포트해 줄 거예요. 이를테면 상급자가 말을 안 들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기회였다. 당연히 잡아야 한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여기 추천시스템에 들어온 것 아니었던가.

윤찬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보겠습니다.”

“네. 열심히 해봐요. 잘되면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현재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 밀어준다는 뜻은 자신의 앞길이 탄탄대로라는 말이기도 했다.

윤찬민의 입가에 웃음이 새겨졌다.

* * *

회의를 마친 강철은 바로 ㈜아이온이 있는 청담 사무실로 향했다. 빌딩 앞에 내려 운전기사에게 퇴근을 지시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주회사인 ㈜아이온.

밑에.

아이온게임즈.

아이체크.

딜리버리브라더스.

나인소프트.

가 있는 구조였다. 사무실 위치도 이와 같았다.

총 5층짜리 빌딩의 꼭대기에 ㈜아이온이 있었고, 한층 아래로 내려가면 게임이, 그 밑에 아이체크가 있었다.

그렇게 자회사로 편입된 순으로 총 5개의 회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철은 잠시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빌딩 입구에는 ‘㈜아이온’이라는 간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슴 한편이 뿌듯했다. 그리고 이걸 이룬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누구도 모르는 비밀 덕분에 이룬 성과긴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떻단 말인가. 세상에는 더한 기회를 잡았음에도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

“더 열심히 해보자.”

의지를 다진 강철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김봉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을 나왔다. 이미 퇴근 시간을 지나서 그런지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네. 별일 없죠?”

김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작 베타테스트 반응이 괜찮습니다. 이것도 꽤 잘 될 것 같아요.”

아이온 게임즈에서 만드는 첫 작은 시티라이더.

하지만 강철은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시티 라이더는 한때 앱 스토어 1위까지 기록하긴 하지만 국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온게임즈를 유지할 수 있는 캐시카우? 딱 그 정도였다.

강철이 큰 기대를 하는 건 다음 작품이었다.

“네.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난번 말씀드린 차기작 말인데요.”

“라이즈 킹덤이요?”

라이즈 킹덤.

미래 중국 게임회사가 만들어 중국을 넘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대작 게임이었다. 개발비만 수십억이 들어갔다고 알려진 이 게임을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강철은 이걸 한국에서 만들어 중국에 역수출해 외화를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그것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일단 인원 세팅 중입니다. 개발 시작은 아무래도 시티 라이더 출시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규모면 개발비가 부족한데 그건 어떻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투자를 진행해 채울 테니까. 다른 애로 사항은요?”

“하하, 아직은 없습니다. 직원들 근무 만족도도 아주 높아요. 자율출퇴근에 점심시간은 2시간씩 주고, 일만 잘하면 노 터치니까. 직원들 사이에 이런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김봉수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 회사는 절대 안 망하고, 잘됐으면 좋겠다. 계속 다니고 싶다.”

“하하, 잘됐네요. 직원들의 애로 사항은 적극적으로 말해주세요. 최대한 해결해 드릴 테니까요.”

“네. 전에 말씀하신 대로 스톡옵션 지급 계획도 밝혔더니 로열티가 한층 더 올라갔습니다.”

강철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5층으로 이동했다.

5층에 있는 건 ㈜아이온. 그곳에서는 대산 그룹 마케팅팀에 납품할 데이터 분석 서비스 ‘에이시스’ 개발이 한창이었다.

강철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가 개발 도구인 인텔리J를 실행시켰다. 다른 직원들도 이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에이시스’ 개발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다닥.

고용한 가운데 키보드 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 * *

나일 한국지사.

그곳의 지사장이 회사 소속의 에반젤리스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올해 실적도 컨센서스를 무난히 상회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반대편에 앉아 있던 박호선 에반젤리스트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아닙니다. 지사장님이 잘 도와준 덕분이죠.”

“특히 박 에반젤리스트님이 열심히 활동해 주신 덕분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는 곳이 아주 많아요.”

후루룩.

커피를 마신 박호선이 지사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부탁드린 건 확인이 됐나요?”

“아, 대산 추천시스템 설계자 말씀이신가요?”

“네.”

“마침 그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수사례 선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때 한번 회의를 할 텐데 같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 에반젤리스트님이 궁금해, 할 정도라니. 실력이 상당한가 보네요.”

“NC2에서 로커와 쿠버네이티스를 조합해 운용하는 건 아직 저도 겉핥기로 연구 중인 분야인데 아주 효율적으로 구성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게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VPC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신경을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거든요.”

지사장도 NCS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박호선 정도로 빠삭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기술 연구가 아니라 회사의 발전이기 때문이었다.

“흠…… 그 정도인가요?”

“네. 제 생각에는 추후 NC2를 쓰는 회사들의 트렌드가 될 수도 있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그걸 표준화해서 하나의 서비스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표준화라면 본사에 신규 서비스 개발을 제안하자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일반화해서 제공하면 꽤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정말 채택되면 박 에반젤리스트님…… 미국 본사로 가실 수도 있겠는데요.”

서비스를 제안해 채택된다. 그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NCS의 수 많은 서비스는 미국 본사의 브레인들이 다년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박호선도 그런 브레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하, 아닙니다. 아직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요.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지사장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만약 서비스가 정말 채택이 되고, 출시돼서 사용자가 늘어난다면 한국지사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지게 될 겁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실제 구성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최우선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네. 잡히는 대로 바로 연락해 주세요.”

지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강철의 눈에 들기 위한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될수록 정현진은 속이 타들어 갔다.

‘X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최종 기간 5개월.

그전에 중간 점검 발표일이 있었다. 그때까지 뭔가를 하지 않으면 황희석에게 끌려가 또 한 번 불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하리라.

거기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어쩌면 옷을 벗으라는 소리도 할지 모른다.

‘차라리 이강철 이사한테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청할까.’

첫인상이 나쁘긴 했지만, 지난번 만남에서도 부탁을 들어주면 빚을 없애주겠다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소한 적의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을 망친다 해도 황희석이 날 끌어줄 것 같지도 않고…….’

황희석은 궁지에 몰리자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온갖 인신공격을 하며 자신을 헐뜯은 것이다.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혀 있었다.

‘가? 말아?’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맹렬하게 부딪쳤다.

그렇게 고민하는 정현진의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음이 들리는 순간 누군지 떠올랐다.

“네. 대산 닷컴 정현진입니다.”

-어떻게 되고 있어? 일하면 바로바로 보고해야 할 거 아냐.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역시나 그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현진은 결심했다.

“아직 진행된 게 없어서요. 진행하자마자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빨리 진행해. 중간보고 2주 뒤인 거 알지?

“네.”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만들어. 알겠어?

“……알겠습니다.”

이내.

뚝 하고 전화기가 끊어졌다. 정현진의 이성도 ‘뚝’ 하고 끊어졌다.

* * *

얼마 뒤 중간보고일.

대산 D&S의 외주비용 절감은 회장님의 관심사였기에 대한 D&S의 사장을 비롯해 관련 인원들이 전부 모였다. 그중에는 온라인 쇼핑 부문장인 황희석도 앉아 있었다.

그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 자식이 그냥 한번 깨지고 말겠다, 이거지…….’

정현진은 도저히 방법이 없다며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황희석이 넋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최규범 과장을 보며 물었다.

“자신 있지?”

“네. 건네주신 자료를 통해서 별도로 비용 분석을 해봤습니다. NCS APN(어드밴스드 파트너) 사 중 한 곳인 메가정보통신으로부터 비용 절감이 너무 과장 됐다는 확답도 들었고요.”

최규범 과장.

빅트리를 개발하기 위해 현 온라인 1위 사업자인 쿠키에서 스카우트해온 인재였다. 황희석은 정현진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았다. 별도로 최규범 과장에게 일을 맡겨 비용 절감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을 해본 것이다.

“그래도 쉽진 않을 거야. 이미 구축 중인 추천시스템이 NCS의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으니까.”

“하하, 그거야 별거 아닙니다. NCS는 자사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산 그룹처럼 규모가 있다면 없는 이유라도 만들어서 우수사례로 선정하려 할 겁니다. 홍보 효과가 꽤 클 테니까요.”

그제야 황희석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하하, 내 생각도 그래. 분명 과장된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

최규범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자료를 많이 준비해 왔으니, 진땀깨나 흘릴 겁니다.”

황희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대회의실로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강철도 있었다.

강철이 황희석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오셨군요.’

옆자리를 보니 자신도 아는 최규범 과장이었다. 둘이 속닥거리는 걸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

강철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정현진에게 들었던 말이 떠다녔다.

-황희석 상무가 이 일이 실패하길 바란다.

-성공 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도록 만들라고 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생각에 빠진 강철에게 옆에서 준비하던 윤찬민이 말했다.

“이사님 발표 준비 끝났습니다.”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선미 전무를 비롯해 회장 진용민까지 차례대로 입장했다. 대회의실이 대산 그룹 임원으로 가득 찼다.

준비가 완료되고.

강철이 마이크에 입을 댔다.

“그럼 외주비용 절감 프로젝트 중간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진용민이 고개를 끄덕였고, PPT 첫 장이 넘어갔다.

* * *

PPT 첫 장이 넘어가는 순간.

목표치 -30%.

자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숫자가 찍혀 있었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을 보며 물었다.

“진짜 하려나 본데?”

“NCS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확인한 결과로는 최적화에 최적화를 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절대로 쉽진 않을 거라는 사족을 덧붙였습니다.”

“그 말은 이강철 이사가 NCS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네. 최소한 NCS의 에반젤리스트는 돼야 하고, 그중에서도 선임급은 돼야 가능할까 말까. 그런 수준이라 합니다.”

“에반젤리스트?”

“간단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강철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전사 시스템을 전부 이전한다면 더 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는 5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번 이전 대상으로 선정한 시스템은 대산 닷컴과 대산 닷컴의 리뉴얼 버전인 빅트리. 프리미엄 아울렛 이렇게 총 3개 시스템입니다.

-해당 시스템의 총 현황은…….

진용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이 맞았군. 3개 시스템 정도가 포함될 거라더니.”

“네.”

“흠…… 다른 시스템까지 옮기면 더 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강철 이사가 산출한 근거를 역산해 보면 전체 시스템 이전 시 최소 40% 이상의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진용민이 살짝 입을 벌렸다.

“엄청나군.”

“네. 저게 정말 구현된다면……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철이 리모컨을 눌렀고, 또 PPT가 한 장 넘어갔다.

진용민을 비롯해 임원진들이 강철의 말에 집중했다. 강철은 그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 기술 내용은 최대한 배제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이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NC4, 람다, 나일시스 등등 NCS에서 제공하는 여러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그런 기술들을 사용 및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상세 내역은 첨부된 자료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로 끝내고 넘어가려 하는데…….

질문을 받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황희석 상무였다.

“보아하니 NCS의 고비용 서비스인 어플리케이션 스위치 서비스에서부터 고 사양 NC2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30%가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산 닷컴의 집계 시스템의 경우에는 스팟성 인스턴스를 사용해 비용 최적화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서버 대수를 타이트하게 잡고, 사용량이 늘었을 때 차례로 서버가 운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그러자 황희석이 옆자리의 최규범 과장에게 눈치를 주었다.

최규범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빅트리 개발팀의 최규범 과장입니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 몇 가지 오류가 있어서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강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류’라는 전제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오류가 확실합니까?”

최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용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말씀해보세요.”

“일단 말씀하신 NC2 인스턴스 대수로는 서비스 운용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현재 대산 닷컴의 사용자 수에 대응하려면 최소한 15대의 인스턴스가 필요한데 7대면 그 절반, 아무리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해도 너무 보수적으로 잡으신 것 같습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그다음 비용이 많이 드는 DB의 경우 MY-SQL 기반의 전용 DB를 사용하신다고 하셨는데요. 그 DB 숫자도 너무 보수적…….”

강철이 그 말을 끊고 들어갔다.

“결국, 핵심은 서버 숫자를 너무 적게 잡았다는 말이군요.”

“네.”

강철이 지긋이 최규범을 바라보다. 들고 있던 리모컨을 눌렀다.

삑.

그러자 화면이 넘어가며 추천시스템의 시스템 구성도가 나타났다.

“아마 많은 분이 비슷한 의문을 가지실 거로 생각합니다. 저놈은 어떻게 30%나 줄인다고 말하나,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건 아직 공개한 적이 없는 추천시스템 상세 구성도입니다. 이걸 기존 데이터 센터에 구축했을 때를 산정해서 비용 계산을 해봤습니다.”

삑.

또 버튼을 누르자 +45%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기존 시스템 운영을 참고해 데이터 센터 구축을 가정하여 시뮬레이션해보자 비용이 45%가 늘어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최규범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보여주시는 시스템 구성도는…….”

강철이 다시 그 말을 끊었다.

“잠시만요. 아직 이야기 중입니다.”

강철은 이사. 최규범은 과장이었다.

당연히 최규범이 입을 다물었다. 최규범을 조용히 시킨 강철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어차피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저희끼리 토론을 해봐도 결론 나지 않습니다. 서로 각자의 입장에 맞는 논리만 펼치기 때문이죠. 이럴 때는 전문적 식견을 갖춘 외부 인사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NCS의 선임 에반젤리스트 박호선님을 모셨습니다. 박 에반젤리스트님.”

강철의 소개에 박호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NCS 박호선입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최규범 과장도 아실 겁니다. 쿠키 서버 이전 당시 도움을 줬다고 하던데요.”

최규범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박호선이 최규범을 보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과장님. 여기서 다시 뵙네요.”

“아…… 네.”

옆에 있던 황희석이 급히 물었다.

“……진짜 아는 사람이야?”

최규범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국내에서 NCS 구성으로 가장 유명하신 분이에요. 한국지사가 아니라 곧 미국 본사로 이동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로.”

“……그, 그래?”

“저도 이번 건 관련해서 자문하려고 했는데 저분 몸값이 워낙 비싸서 연락을 못 드렸는데 여긴 어떻게…….”

황희석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박호선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간단하게 말씀드릴까요? 근거를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

대답은 진용민이 했다.

“결론만 부탁드립니다.”

“현재 구성은 전부 실현 가능합니다. 그 구성의 최적화가 매우 잘 돼 있어서 NCS에서 참고하고 싶을 정도로요.”

NCS에서 참고하고 싶다.

그 한마디로 논란이 종결되었다.

강철이 황희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물어볼 말씀 있으십니까?”

* * *

회의가 끝나고.

양주삼 사장이 강철에게 다가갔다.

“오늘 발표 잘 봤네. 아주 인상적이었어.”

“네. 감사합니다.”

“우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벌써 본사 임원이라니. 자네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알 것 같더군.”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렇게만 하자고.”

“네.”

양주삼이 시작이었다. 대산 D&S 임원들을 비롯해 대산 그룹 본사 인원들까지 강철과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회사의 주축이 될 사람과 안면을 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진선미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수고했어요.”

“좋은 결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만 잘 마무리되면 지난번 말한 데이터 분석 건은 확실하게 밀어줄게요.”

“감사합니다.”

“추천시스템 개발 진행은요?”

“큰 문제 없습니다. 일정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진선미가 슬쩍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회의가 끝났기 때문에 임원들은 속속 자리를 뜨고 있었다.

진선미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귓속말을 전했다.

“그날 명예회장님도 오실 거예요.”

강철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명예회장 진동만.

대산 그룹의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었다.

진선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만약 기회가 되면 한마디만 해주세요.”

강철은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진 전무 덕분에 프로젝트를 잘 끝냈다.

자신의 칭찬을 해달라는 뜻이리라.

강철이 진선미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부탁해요.”

재벌이 자신에게 부탁한다?

이 상황 자체가 잘 믿기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진선미와의 인사까지 끝나고, 임원들이 속속 자리를 떠났다.

회의실이 거의 텅 빌 때쯤 황희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하하, 준비를 많이 하셨더군요.”

“네. 열심히 했습니다.”

“실제 이전까지 아무 문제 없겠죠?”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명색이 온라인 쇼핑 부문장인데 종종 진행 상황 공유 부탁드립니다.”

강철도 마주 웃어 보였다.

아직 이 사람은 정현진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른다. 굳이 적의를 보일 필요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 팀장이나 심 과장 통해서 말씀드리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강철은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가 회의실을 떠나고 나서야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 * *

하루.

이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추천시스템은 강철이 뽑은 팀원들이 개발했고, NCS로의 이전은 대산 닷컴 팀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물론 중간중간 생기는 어려움은 강철이 나서자 해결되었다. 열심히 한 만큼 성과도 나타났다.

-구매율 : 30%.

-매출 예측 오차 : 7.5%.

추천시스템은 최초 목표치 그 이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프리미엄 아울렛은 이전 완료.

대산 닷컴 이전 완료.

빅트리 이전 완료.

세 시스템의 이전도 완료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시스템 구성만 했을 뿐이지 가장 중요한 테스트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가장 먼저 대산 닷컴 통합 테스트를 하는 날이었다. 일의 중요도가 높은 만큼 강철도 직접 자리해 테스트를 지켜보았다.

“대산 닷컴 NCS 이전 1차 통합 테스트 진행하겠습니다.”

윤찬민의 말에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각자 위치에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이내 윤찬민이 시나리오상 가장 첫 번째를 말했다.

“서버 기동.”

“서버 기동하겠습니다.”

담당 직원이 NCS에서 간단한 버튼 클릭 몇 번으로 서버를 기동시켰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정상 기동 로그 확인했습니다.”

-Spring Boot.

-c.b.s.SpringBootLoggingApplication : String Spring…….

-ConfigServletWebServerApplicationContext : No active…….

강철도 자리에 앉아 로그 집계 서버로 올라오는 내용을 확인했다. 그중에 ERROR 표시가 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체 서버 기동 완료했습니다. 서비스 시나리오 첫 번째 로그인에서부터 물품 구매까지 진행하겠습니다.”

테스트는 차분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3시간에 걸친 테스트가 끝나고.

강철이 윤찬민의 어깨에 턱 손을 얹었다.

“잘 끝났네, 수고했어요.”

“아직 마무리 작업이 남았습니다. 수정해야 할 것도 많고요.”

“끝까지 잘 부탁합니다.”

“네.”

테스트를 마친 강철은 회식하라며 카드를 넘겨주고, 회사를 나왔다. 이내 차를 타고 바로 청담 아이온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투자 협의.

㈜아이온의 지분을 넘기고 투자를 받기로 한 것이다.

사무실에 도착한 강철은 차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자리에는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일찍 오셨군요.”

“네. 회사 구경도 할 겸. 조금 일찍 왔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케이벤처캐피털의 신주영 심사역입니다.”

신주영.

강철이 알고 있는 미래에 회사의 대표 심사역으로 능력을 펼치다 별도 투자 회사까지 세우게 되는 능력자였다.

강철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강철입니다.”

악수한 강철은 바로 노트북을 실행시켰다. 투자를 받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들어둔 회사 소개 내용이었다.

“바로 말씀을 드릴까요?”

“사전에 주신 자료는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혹시 발표 자료에 다른 내용이 있을까요?”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럼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운데 앉아 있던 신주영이 자신이 펼쳐놓은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투자를 받으시려는 이유가 핀테크 업체 인수라고요?”

“맞습니다. 나인 소프트가 서비스하는 유우니에서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딜리버리브라더스가 그걸 배달을 해준다. 이 시나리오에서 유일하게 빠져 있는 게 결제라서요.”

“혹시 인수 하려는 업체명을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신주영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보내주신 자료를 보면 회사 가치를 5,000억으로 측정하셨더라고요. 그리고 투자받고 싶은 금액은 지분의 10%인 500억.”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주영의 미간이 주름이 잡혔다.

“아이온 게임즈는 아직 게임 출시 전이고, 아이체크는 사용자가 300만이긴 하지만 아직 명확한 BM이 없습니다. 딜리버리브라더스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겨우 적자를 면하는 중이고, 그건 나인 소프트도 마찬가지. 그리고 ㈜아이온의 데이터 분석 서비스는 아직 수익도 나지 않는 중인데 5,000억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가 회사의 단점을 하나하나 열거한 이유는 회사의 가치를 낮게 잡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 의도가 뻔히 보였다.

강철은 굳이 말로 하지 않고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이건 대산 그룹이 아이온에서 개발 중인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 업무협약) 문서입니다.”

“MOU면 강제성이 없지 않습니까.”

“강제성이 없다니요. 제가 대산의 임원입니다.”

그 한마디에 신주영이 입을 다물었다. 이내 강철이 또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에이글 닷컴에서 전체 랭킹 10위권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만 주는 인증서입니다.”

-CERTIFICATION IN AGGLE

-This Certifies that

-Lee Kang Chul

증서를 받은 신주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확인한 강철이 말을 이었다.

“이 증서를 받은 사람이 국내에는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이거 확실한 겁니까?”

“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세요.”

그 말에 신주영이 바로 에이글에 접속해 확인해 보았다.

Current Rank 8.

Highest Rank. 3.

신주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3위까지 가셨습니까?”

강철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요즘은 안 해서 밀려났지만요.”

전 세계에서 3위라는 말이었다. 강철이 놀란 신주영에게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BM과 기술력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을 거라 생각되는데 어떠세요.”

그런데도 신주영은 망설였다.

“그래도 500억은 좀…….”

“전 케이벤처캐피털에 아이온에 투자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귀사가 아니더라도 투자하겠다는 곳은 많아요.”

케이벤처캐피털.

미래에도 회사는 여러 성공한 투자로 명성을 날린다. 투자를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해 가고자 하는 태도가 더 유명한 회사였다.

그랬기에 강철은 일 차적으로 이곳과 함께하고 싶었다. 물론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다른 곳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500억…… 500억이라…….”

회사에서 투자할 수 있는 총 자본이 5,000억이라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500억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린 신주영이 고개를 들었다.

“일단 상의해 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2주 안에 말씀 주셔야 합니다. 아니면 다른 투자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2주 후에 강철이 노리고 있는 핀테크 업체가 코엑스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박람회에 나온다.

그때 그 회사를 인수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추천시스템 완료 보고 일이 되었다. 마지막 시나리오 점검까지 마치고, 앉아 있는 강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왔구나…….’

한 노인이 대강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전생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동만 명예회장이었다.

70세가 넘은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그는 대산 그룹의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주인이기도 했다.

그 주인이 곧장 강철을 향해 다가왔다.

“오늘 발표한다는 사람이 자넨가?”

“네. 이강철 이사입니다.”

“아직 어리군.”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가 어떤 성향인지 정도는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었다.

“실력은 어리지 않습니다.”

그는 수그리는 사람보다 자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모르나?”

“그건 이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무게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건 진심이기도 했다.

1년 만에 이사를 달고, 자신이 만든 회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크기에 비례해 강철의 그릇도 커진 것이다.

진동만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강철을 보았다.

“허…….”

강철은 한발 더 나아갔다.

“직접 보시고 판단해 주시겠습니까?”

진동만은 대답하지 않은 채 몸을 휙 돌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수행하던 비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시작하시랍니다.”

강철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대산 그룹 추천시스템 총괄 이강철입니다. 지금부터 시스템 개발 최종 발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삑.

강철이 리모컨을 눌렀고, 대강당의 거대한 스크린에 강철이 만든 추천시스템의 최종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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