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13화 (13/59)

4장 능력 있습니다(1)

하나의 상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입.

분류.

보관.

소개.

판매.

배송.

등등.

하지만 대부분 과정이 전산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전산은 중요해졌고,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에 외주가 이어졌고, 대산 D&S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산 닷컴 정현진이 잔뜩 성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일야.”

“현재 신성 소프트에서 확인 중이라고 합니다.”

신성 소프트.

대산 그룹의 재고관리 시스템을 유지보수 해주는 업체였다. 보고를 받은 정현진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X발. 진짜 일을 어떻게 했기에 전 상품에 품절이 뜨는 거야!”

정현진의 고함에 사무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함께 있던 담당 과장의 목이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심 과장은 뭐 한 거야. 이런 거 하나 관리 못 하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지금 사이트 전체 품절 뜬 거 안 보여?”

“……그, 그래서 일단 시스템 재기동 지시했습니다. 신성 소프트 말로는 프로세스 재기동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정현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때.

드르륵.

드르륵.

거리며 심 과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네.”

“재기동했다고요?”

“알겠습니다.”

“재고관리 시스템 재기동했다고 합니다. 페이지 리프레시 하면 괜찮을 거라고 합니다.”

“빨리해 봐.”

심 과장이 급히 핸드폰으로 대산 닷컴에 접속했다.

-유반장 짜장면(품절)

-스탠드 선풍기(품절)

-나이키 운동화(품절)

…….

하지만 여전히 전 상품이 품절이었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당황한 심 과장이 다시 화면을 리프레시 했다.

-유반장 짜장면

-스탠드 선풍기

-나이키 운동화모음

그제야 품절 표시가 사라졌고, 관련 상품을 들어가자 재고를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나왔다.

심 과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걸 보며 정현진이 물었다.

“뭐야, 된 거야?”

“네. 조치 끝났습니다.”

“어디 봐봐.”

정현진이 핸드폰을 뺏어 화면을 확인했다. 이내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화면을 보곤 말했다.

“신성 소프트 지금 어딨어?”

“본사 데이터 센터에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는 대산 D&S 본사가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있었다.

“거기 사장 당장 여기로 들어오라고 해. 누굴 호구로 아나.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코빼기를 안 보여.”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심 과장이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사무실이 입구 쪽에서부터 시끌벅적해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엉거주춤 일어나 하나둘씩 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현진이 슬쩍 시선을 던졌다.

‘저 새끼가 여긴 왜…….’

정현진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사님.”

“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주 인사를 한 강철이 바로 정현진을 향해 걸어갔다. 정현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셨습니까.”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정현진이 투덜거리며 답했다.

“방금 해결했습니다.”

“그래요?”

“네.”

강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와 똑같았다. 그때도 전 상품 품절 사태가 일어나고 30분 후에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 그리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6시간이 걸렸다.

당시 너무 큰 문제였기 때문에 재발 방지 차원에서 전사에 관련 내용이 공유되고, 관련 케이스 스터디가 진행되었다. 그랬기에 강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재고관리 시스템을 재기동해서 말입니까?”

정현진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신경 쓰실 사안이 아닙니다.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알아서 잘했으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겠죠?”

“…….”

정현진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어쨌든 강철은 본사 임원. 기분이 나쁘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강철이 시선을 돌려 심기준 과장을 보았다.

“심 과장님.”

지명 당한 심기준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정현진과 달리 강철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네.”

“재고관리 시스템 코드, 시스템 접속 정보. 넘기세요. 지금부터 제가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네?”

심기준이 의문을 표했지만, 강철은 설명하지 않고 지시했다.

“뭐 합니까. 시간이 없어요. 한 시간 시스템이 멈추면 회사에 손해가 얼만지 아세요?”

그 말에 심기준이 후다닥 움직였다. 정현진은 그런 강철을 빤히 쳐다만 볼뿐이었다.

‘웃기고 앉아 있네. 이게 그리 만만해 보이냐?’

국내 1위 유통기업 대산의 재고관리 시스템이었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복잡했다.

정현진은 절대 강철이 해내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 * *

진선미가 강철이 떠난 텅 빈 자리를 보며 물었다.

“오 비서 생각은 어때? 이강철 이사가 정말 해결할 수 있을까?”

반대편에 앉아 있던 비서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추천시스템을 만들어낸 걸 보면 개발 능력이 분명 뛰어난 것 같긴 한데…….”

“재고관리시스템은 또 다르다?”

“네. 아시다시피 하루 물동량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시스템을 입사해서 얼마 되지도 않은 분이 다룬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요.”

“내 생각도 비슷해. 어쩌면 다른 이들처럼 협력사를 쥐어짜고 있을지도 모르지.”

비서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본사 4층에 있는 대산 닷컴 팀 사무실에 앉아 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합니다.”

진선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래?”

“네.”

진선미의 입가에 호기심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개발 능력만큼은 확실하다 그건가.”

“만약 이걸 이강철 이사가 해결한다면…… 이강철 이사의 입지가 좀 더 단단해지겠군요. 능력에 관해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겠지.”

진선미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며 중얼거렸다.

“궁금하긴 하네. 진짜 해결할지. 그리고 정말 해결하면…….”

“그러면 전무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에 주역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

진선미가 생각하는, 대산 그룹의 미래였다. 그리고 그 핵심이 추천시스템이었다.

나일이 자사에서 사용하기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로 전 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듯이 진선미는 대산 그룹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추천시스템을 플랫폼화시켜 세상에 내보일 생각이었다.

“흠…….”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엔지니어가 필요합니다. 단지 추천시스템만이 아닌 그걸 총괄해서 구현해줄 수 있는 그런 아키텍처 레벨의 엔지니어가.”

“나도 알아. 그래서 하 팀장을 염두에 뒀던 거고.”

“하진기 팀장의 관리 역량은 인정하지만, 실제 개발 역량은…… 많은 의문이 남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외주를 사용해 만들 수는 있겠지만 명예회장님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닐 겁니다.”

“오 비서 생각에는 이강철 이사가 제격이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가 적임자입니다.”

“하지만 이미 오빠 사람이 됐을 수도 있잖아.”

“그건 아닐 겁니다.”

“왜?”

“정현진이나 황희석 상무가 여전히 그를 적대하고 있습니다. 같은 라인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

“그건 오빠 특유의 용인술일 수도 있어.”

이번에는 비서실장이 의문을 표했다.

“……네?”

“서로 경쟁시켜서 살아남는 놈만 쓰는 거지. 오성전자랑 같은.”

“아…….”

“뭐 어쨌든 한번 지켜보자고. 과연 어떻게 될지.”

그때까지도 진선미의 입가에 서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 * *

재고관리 시스템.

마트, 백화점, 패션 등등 그룹사 전체에 산재해 있는 물건들의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관련 서버만 20대를 넘어가는 대규모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고 있는 강철은 해당 부분만 빠르게 훑었다.

‘문제는 대산 닷컴 재고관리 프로세스. 그리고 마트의 재고관리 프로세스. 그 두 개가 병합을 일으키면서 데이터를 잘못 업데이트 치면서 생긴다.’

강철은 해당 부분을 빠르게 훑었다. 역시나 과거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제를 확인한 강철이 시계를 살폈다.

‘다시 문제를 일으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자.

사내에 설치된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띠리리리.

“네. 여보세요. 대산 닷컴 전산팀 최석훈입니다.”

“……네? 사이트에 다시 품절이 뜬다고요?”

“자,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런 전화가 한 군데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네. 대산 닷컴 전산팀 송민기입니다.”

“다시 품절로 뜬다니요. 잠시만요.”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전산팀 개발자들이 사이트에 접속해 화면에는 다시 품절이라 떠 있었다. 긴장을 푼 채 뒷수습을 고민하던 정현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다시 품절로 뜹니다.”

“뭐?”

심기준이 과장이 급히 핸드폰을 열어 사이트를 확인했다.

“…….”

이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화면을 보았다. 정현진이 그런 심기준 과장을 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신성 소프트 이 새끼들은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당장 확인해 봐!”

“네, 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철이 심기준을 불렀다.

“심 과장님.”

“네.”

“지금 당장 신성 소프트와 화상 통신 연결하세요.”

“……네?”

“문제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현진이 픽 웃음을 흘렸다.

“허, 지금 장난하시는 것도 아니고 시간 없습니다. 심 과장, 내가 지시한 것부터 처리해.”

정현진은 끝까지 강철을 이사라 부르지 않았다.

강철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강철이 목소리를 낮추며 정현진을 불렀다.

“정 부장.”

“…….”

“상사가 부르는데 대답 안 하나?”

싸늘한 기세에 정현진이 마지못해 답했다. 자세는 삐딱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철은 굳이 존대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당장 화상 통화 연결해. 해결 못 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정현진이 비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정말 책임진다고 하신 겁니다?”

“그래. 내가 책임질 테니까. 연결시켜.”

정현진이 심기준을 불렀다.

“심 과장.”

“네.”

“말씀대로 해드려.”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회의실에 화상 통화가 연결되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신선 소프트의 담당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제가 심각하니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문제는 마트 쪽 재고관리 프로세스에서 대량 데이터를 테이블에 밀어 넣다 보니 테이블 락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걸 기다리던 닷컴 쪽 재고관리 시스템의 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빠져 비정규화된 집계 테이블을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강철이 심기준을 보며 말했다.

“심 과장님. 제가 아까 말씀드린 코드 띄워주세요.”

“네.”

“시간 없으니까. 코드 레벨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닷컴 쪽 stock 패키지의 ManageStockImpl.java 파일의 101번 라인부터 120라인까지. 이 부분에 어떤 문제가 있냐 하면…….”

강철이 설명을 이어나갔고, 화면 너머 인원들은 주의 깊게 그 내용을 경청했다. 그러다 화면 속 개발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그 부분을 수정하게 되면 전체 재고 수량 집계하는 부분에 사이드 이펙트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 말에 정현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애송이 자식이 뭘 한다고.’

강철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네. 그래서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테스트 코드를 작성해 두었습니다. 예시로 제가 업로드 시켜놨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차분히 응대하는 모습에 정현진이 그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뭐야. 이게 말이 돼?’

어쩌면 정말 해결할 수 있겠다는 불길함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 * *

대산그룹 본사.

진용민의 집무실.

오전부터 들려온 불편한 소식에 진용민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해결됐어?”

“아직입니다.”

진용민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벌써 한 시간이 넘지 않았나?”

“현재 이강철 이사 주도로 시스템 수정을 하는 중이라 합니다.”

“이강철? 그 친구는 추천시스템 쪽이잖아.”

“문제가 생기니까.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며 나섰다고 합니다.”

진용민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벌써 성과 욕심부터 내는 건가.”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임원이 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본인이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무리를 한 것 같긴 합니다.”

“반대로 정말 해결하게 된다면 자신에 대한 말을 단번에 잠재울 수도 있겠군.”

“네.”

진용민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흠…… 과연……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협력사들 모아놓고 화상 통화를 진행한다는 걸 보니. 뭔가 아이디어는 있는 것 같은데 한번 파악해 보겠습니다.”

“난 왠지 해결할 것 같아.”

“……네?”

“그 친구 묘하게 믿음이 간단 말이지.”

“회장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아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기다려 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사내에 요상한 소문도 돈다면서?”

“진선미 전무의 약혼자다. 숨겨둔 애인이다.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푸하하. 별의별 소리가 다 있군.”

“이번 이사 승진은 그만큼 파격적인 인사였으니까요.”

“선미가 곤란해했겠어.”

“아마 회장님의 의중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하하.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이게 시집은 안 가고 호시탐탐 회사를 노리고 있으니.”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진용민이 차를 한 잔 마시며 비서에게 물었다.

“자네도 너무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생각하나?”

비서실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비서실장을 보며 진용민이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저 개발만 했다면 이사는 되지 못했을 거야. 자네도 듣지 않았나. 투자를 진행했고, 큰 성과를 낸 것을. 회사에는 그런 도전적인 인재가 필요해.”

“맞는 말씀이십니다.”

진용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아마 내가 아니더라도 선미가 임원 자리를 제안했을 거야. 플랫폼 기업. 그걸 위해서라도.”

“그렇게 되면…… 진 전무의 입지가 더 튼튼해지겠군요.”

“선미의 말대로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이 가시화된다면 더더욱 가만히 둘 수는 없는 일이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았습니다.”

“일이 된다 싶으면 우리 쪽 인원들로 채워서 가져와. 괜히 선미에게 헛된 희망 품게 하지 말고.”

고개를 꾸벅 숙인 비서실장이 집무실을 나섰다. 이내 진용민의 집무실이 적막감에 휩싸였다.

* * *

대산 닷컴 사무실에도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다들 초조한 표정으로 진행 상황을 체크 하는 가운데, 강철만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Git에 올라오는 협력사 코드를 살펴보았다.

‘시킨 대로 잘하고 있군.’

자신이 직접 코딩을 했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두 개에 수정해야 할 양이 상당했다. 아무리 빠르게 타자를 한다 해도 시간이 꽤 걸릴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자잘한 부분은 이제 부하 직원들에게 시키는 것도 익숙해져야겠지.’

또다시 업로드된 코드를 보던 강철이 침음을 흘렸다.

“흠…….”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기준 과장이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문제가 있나요? 협력사에 연락할까요?”

“하하, 아닙니다. 꽤 인상적인 코드가 올라와서요. 이거 수정하고 있는 곳이 신성 소프트라고요?”

“네.”

“나중에 여기 개발 담당 면담을 한번 진행하고 싶네요.”

“아, 알겠습니다. 이번 건 마무리 되면 준비시키겠습니다.”

심기준이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하하, 네.”

째깍.

째깍.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중간마다 협력사에서 관련 부분에 관한 질문을 해왔고, 그때마다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을 때.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전화를 받은 심기준이 강철에게 물었다.

“수정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재기동하세요.”

“네.”

상황은 강철이 완전히 주도하고 있었다. 해당 프로젝트 담당인 정현진은 완전 뒤로 밀려나 있었다.

정현진이 으득 이를 갈며 생각했다.

‘설마 진짜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로 생각하며 대산 닷컴 사이트를 리프레시 해보았다.

타닥.

타닥.

F5를 누르는 손가락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품절.

-품절.

-품절.

다행히 품절로 표시된 화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점점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때 전화를 받은 심기준이 강철에게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기동 끝났습니다.”

정현진이 그런 심기준을 보며 생각했다.

‘저 새끼는 지금 앞, 뒤 분간을 못 하고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일일이 강철에게 보고하는 심기준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신경질적으로 F5를 클릭했다.

탁.

그리고 정현진은 두 눈을 쓱쓱 비볐다. 다시 F5를 눌러 화면을 리프레시 해보았다.

그런데도 ‘품절’이라는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지, 진짜 해결된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정현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까도 이렇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다가 30분 만에 다시 문제가 생겼었어. 절대 이대로 해결될 리가…….”

강철이 정현진의 뒤에서 저승사자처럼 고개를 쑥 내밀었다.

“어째 문제가 생기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비록 겉은 27살 젊은이지만 강철의 안에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45살에 양아치들에게 맞아 죽은 영혼이 들어 있었다.

강철은 거침없이 정현진을 상대했다.

“아까 제가 말했죠? 이 사태 제가 책임진다고.”

정현진은 순간 한 발짝 물러났다. 거친 기세에 정현진은 흡사 황희석 상무를 상대하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내, 내가 쫄았다고?’

회사생활만 15년 차.

그 경력은 절대 이런 애송이에게 밀리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그 말은 지금 정 팀장이 본인의 일을 똑바로 해내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네, 네?”

“정 팀장이 해결해야 했을 일을 제가 해결했으니까요.”

“그…… 그건…… 그렇지만.”

말을 하던 강철이 돌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정현진의 어깨에 턱 손을 얹었다.

“하하,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건 없습니다. 저도 대산 그룹 직원, 부장님도 같은 대산 그룹 직원 아닙니까. 회사를 위해 다 같이 회사 일하는 처지에. 네 일 내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의외의 말에 긴장으로 잔뜩 움츠러들던 정현진의 정신이 탁 풀렸다.

“네?”

“그러나 각자에게 소임은 분명하게 있죠. 그리고 제 역할은 이걸 해결하는 게 아니었고요.”

조였다가. 풀었다가.

정현진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그…… 그건…….”

“더구나 바로 전에 기억나십니까?”

정현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전.

갑자기 발생한 문제 때문에 날카로워진 신경이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임원이라는 게 문제였다.

“죄…… 죄송합니다.”

“뭐, 사과를 받자고 한 건 아닙니다. 제가 직속 상사도 아니고, 다른 팀이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저 같은 초짜 임원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뭐 있겠습니까.”

여기서 강철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말 그대로 직속 상사도 아니고, 정현진 부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호통을 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 정도일까?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보셨듯이 회사 내 제 입지는 점점 커질 겁니다. 그러면 정 팀장님께서는 오늘의 일을 분명 후회하실 날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강철이 고개를 숙여 정현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때 후회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정현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는 회사다. 적을 만들면 자신만 피곤해질 뿐이다. 있던 적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회사생활에서는 무조건 이득이었다.

정 안 되면 상대를 옷 벗고 나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옷을 벗는 게 더 빠르겠어…….’

마른침을 삼킨 정현진이 빛보다 빠르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 정도는 강철도 알아들었다.

“하하, 네. 저도 굳이 팀장님과 각을 세우고 싶진 않습니다. 천 주임과 그런 사이라 해도 굳이 저까지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강철이 지긋이 정현진을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피곤해지기만 할 텐데요.”

이 순간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정현진은 절실히 깨닫는 중이었다. 강철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강철이 유유히 사무실을 벗어났다. 정현진은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게 어떻게 27살 신입사원이냐…….’

말하는 것을 보면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라 노련한 사회인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 * *

30분.

1시간.

그리고 2시간이 지나도록 더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정현진은 공식적으로 상황종료를 지시했다. 그리고 바로 황희석 상무를 찾아갔다. 그가 바로 대산 그룹 온라인 쇼핑부문장이기 때문이었다.

“해결했어?”

“네.”

“정말 이강철 그놈이 해결한 거 맞아?”

정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 하냐. 네가 싼 똥도 제대로 못 치우고. 도대체 똑바로 하는 게 뭐야. 이래서야 본사로 전배 할 수 있겠어?”

전배.

배치전환을 뜻하는 것으로 계열사인 대산 D&S에서 ㈜대산으로 옮기는 것을 뜻했다. 같은 직급으로 본사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승진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아……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해 추천시스템도 밀리고, 대산 닷컴에서는 갑자기 문제가 터지질 않나. 또 그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그놈 손을 빌리지 않나. 너 몰라? 회장님이 왜 이강철 뽑았는지.”

“…….”

“나랑 경쟁시키려고 뽑은 거 아냐. 둘 중에서 살아남는 놈 거두시겠다. 만약에 내가 온라인 쇼핑 부문장에서 밀려나면 넌 어떻게 되겠어?

거듭된 호통에 정현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도 끈 떨어진 연 신세 되는 거야. 어쩌면 지금 있는 부장 자리에서 밀려날지도 모르지. 너도 알지? D&S 양주삼 사장이 나랑 입사 동기인 거. 내가 신경 써서 너 올려준 거야. 그런데 내가 밀려난다. 누가 너 챙겨주겠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좀 하자. 나도 밑에 애들이 잘 받쳐줘야 위로 올라갈 거 아냐.”

퍽퍽 한숨을 내쉬던 황희석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 그래도 위에서 오더 내려왔다. 추천시스템은 이강철이 팀장으로 나설 거야. 그리고 나뉘어 있던 팀도 하나로 합칠 거고. 추천시스템 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는 셈이지.”

“…….”

“분명히 여기저기서 자기 사람 그 팀에 꽂으려고 할 거야. 갖은 명분을 써서. 너도 알다시피 거기가 잘만 되면 알짜배기 사업부가 되는 거야. 각 계열사에 추천시스템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을 테니까.”

황희석의 잔소리는 1절에서 끝나지 않았다. 2절 3절로 이어졌다.

“어휴, 그런데 일을 잘해야 내가 너 거기 꼽아줄 거 아니냐. 과장 때는 좀 똘똘해 보이더니 얘가 부장 되더니 완전히 맛이 갔네. 맛이 갔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도 알잖아. 최선보다는 최고가 돼야 한다는 거.”

“네.”

“그러니까. 잘 좀 하자. 잘 좀.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황희석의 말이 끝날 때쯤 정현진의 가슴속에 다른 생각이 피어났다.

‘줄을 잘못 잡은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사내에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갔다.

-빽으로 임원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능력이 있더라.

거기에 한 가지 소문이 더 붙었다.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까 진선미 전무랑 그렇고 그런 사이 된 거 아니겠어?

그런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 * *

-이사님, 차 대기 시켰습니다.

아침마다 운전기사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한다. 규모가 작은 계열사는 사장급부터 운전기사가 제공된다. 대표적으로 대산 D&S가 있었다.

하지만 대산 그룹 본사 임원은 다르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업무에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운전기사와 차가 제공되는 것이다.

-네.

답장한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깨끗하게 다려져 있는 양복을 걸쳤다. 최용희가 매일 준비해 놓은 덕분에 옷깃에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이제 아줌마를 써도 된다니까. 엄마가 집에서 노는 데 왜 그런데 헛돈을 쓰냐며 한사코 만류했다. 그런 어머니를 강철도 굳이 더 설득하진 않았다.

아침 7시.

강철은 집을 나섰다.

“출근할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고.”

말을 하던 최용희가 뒤를 보고 빽 소리를 질렀다.

“희진아. 이년이 오빠 나가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괜찮아. 요즘 시험 기간이라 피곤할 텐데.”

“그래도 오빠 출근하는데 자빠져 자니까.”

“엄마도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수영도 좀 배우면서 취미생활 좀 해.”

“알았다. 엄마가 알아서 하마.”

지하 1층.

주차장에 준비된 차를 타고 강남을 벗어나 한강 위쪽으로 올라갔다. 아침 출근 시간으로 붐비는 도로를 가로질러 본사 정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나가던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강철을 알아본 직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숙였다. 강철은 신입사원에서 입사 1년 만에 이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직원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숙였다.

‘잘 적응이 안 되긴 하네…….’

한 번도 이런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이제 적응해야겠지.’

강철은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 * *

사무실은 대산 그룹 본사.

거기에 최수철 팀이 합류함으로써 추천시스템을 만드는 인원은 총 10명이 되었다. 강철은 그곳의 팀장이 되었다. 팀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건만 팀원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윤찬민이 천준호에게 물었다.

“주임님.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요?”

“전무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

윤찬민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준호가 까끌까끌하게 돋아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어요. 신입사원 간담회 때도 회장님한테 거침없이 말을 하더라니까요. 믿는 구석이 없었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이사님이 그랬단 말이지?”

“네. 회장님 말에 한마디도 안 지고 소신껏 행동하더라니까요. 그때는 그냥 아, 얘가 능력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에 천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해 그것도 아주 많이. 너도 알잖아. 재고관리 시스템 수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거.”

“그, 그거야.”

“거기에 추천시스템 프로젝트도 잘 이끌고 계시고. 결정적으로 코딩 테스트 사이트 있잖아.”

“네.”

“내가 완패했다.”

윤찬민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주임님이요?”

“여기 팀에 합류하라며 날 설득하러 왔더라고. 그리고 코딩 테스트에서 이기는 사람 말을 듣자고 하더니…….”

천준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완전히 발렸어. 안 그랬음 여기 안 왔지. 사실 그때 대충 1년 채우고 이직할 생각으로 가득했거든.”

“하긴 천 주임님 실력이면 오라는 데는 많을 테니까요.”

“내 말이.”

“그럼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전무님과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 사실이겠네요.”

“흠…… 그런데 이사님이 워낙 강경하게 아니라고 하니까.”

윤찬민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해갔다.

“그렇겠죠. 12살 나이 차. 더구나 여자가 연상. 재벌과 평범한 일반인. 저라도 아마 부인할 거예요.”

“하긴 12살 나이 차도 좀 그런데, 그것도 여자가 12살 위면…….”

“그래도 요즘 시대가 그런 거 따지지는 않잖아요. 연예인 중에도 많고.”

“너라면 어떠냐? 여자가 12살 위면 만날 수 있어?”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진 전무님 정도면 당연히…….”

하지만 윤찬민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귓가로 들리는 으스스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윤 주임님. 아침부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왔어…… 가 아니라 이사님 오셨어요.”

“맡은 바 일은 다 하고 이렇게 떠드시는 거겠죠? 더구나 사무실에서 상사 뒷말이라니.”

당황한 윤찬민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삐질 흘러내렸다.

“아하하…… 그, 그럼요.”

“그럼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나온 로커 서비스 이용 준비 잘되고 있나요?”

“그, 그건…….”

“제가 분명히 로커 컨테이너 기술을 이용해 여러 서비스를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하자고 한 것 기억나시죠?”

“네.”

“오케스트레이션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할 예정입니까?”

“아, 아직 리서치를 하는 중이라…….”

윤찬민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에도 강철이 한번 확인하기 시작하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사가 되었으니 찍소리 못하고 한소리 들어야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쿠버네이티스와 스웜인데 그 두 개 리서치하는 게 아직 안 끝났다는 말인가요?”

강철이 조곤조곤 물을 때마다 윤찬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빠, 빨리 알아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부탁해요. 그래야 차주에 마이그레이션을 진행할 테니.”

“네.”

강철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천 주임님.”

천준호가 움찔하며 답했다.

“아, 네.”

“CF 모델링 쪽 최 팀장님이랑 합의해서 수정한 거 반영 끝났나요?”

“그, 그거…… 의사 코드 받아서 막 수정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넘긴 지 벌써 며칠 된 것 같은데요.”

천준호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아하하…… 이번 건 다른 쪽에 미치는 여파도 커서요.”

“내일 안으로 확인할 테니까. 적용해주세요.”

“넵.”

그렇게 둘을 잠재운 강철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사무실 가장 안쪽. 팀원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옷걸이에 옷을 걸고 자리에 앉은 강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번 입을 타기 시작하니까. 소문이 멈추질 않는구나.’

진선미 전무와는 나이 차가 무려 12살이나 난다. 그런데도 소문이 난다는 건 이 이야기가 그만큼 자극적이기 때문이리라.

‘능력이 없을 때는 ‘빽’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니, 능력을 보여주니 그래서 진선미 전무와 만났다라…….’

겉모습은 27살이지만 속은 45살 이혼남이다. 그런 강철에게 사내에서 돌고 있는 소문은 그저 피식 웃음 한 번 흘리게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유혜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강철에게 다가왔다.

“알고리즘 개선 회의 시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유혜인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유혜인은 뒷모습에서부터 냉기를 풀풀 흘렸다.

강철은 특유의 촉으로 그걸 느끼는 중이었다.

‘뭐, 기분 나쁜 일이 있나.’

하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아직 서로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만큼 친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최수철이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하하, 네.”

최수철은 사내에 떠도는 소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더 나은 추천시스템. 그걸 위해 필요한 건 성능이 더 뛰어난 알고리즘이었다.

“일단 이사님이 수정하신 라이스터 회귀분석을 검토해 봤습니다. 몇 가지 수정을 좀 하면 성능이 더 나아질 것 같은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최수철이 화이트 보드에 수식을 적어나갔다. 거의 10줄에 달하는 수식을 적은 최수철이 수식의 끝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부분 있잖아요.”

“두 종속 변수를 이용해 평균을 구하는 부분 말씀입니까?”

“네. 이때 들어가는 식을 검증해보기 위해 독립표본T검정을 사용해서 테스트를 좀 해봤습니다.”

“두 집단 간의 평균 차이를 알아보는 수식으로 테스트를 하셨다라……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수철이 말을 이어나갔다. 유혜인은 한 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필기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강철이 최초 만든 알고리즘은 고도화되었다.

* * *

대산 그룹 본사 진용민의 집무실.

진용민이 빙그레 웃으며 동생 진선미를 바라보았다.

“재고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던데?”

공적인 자리라 생각한 진선미가 존대했다.

“해결했습니다.”

“대산 D&S 자체 힘으로는 실패했지. 이제 이강철 이사는 엄연히 ㈜대산의 사람이니까. 안 그래?”

“…….”

“지난번 보안사고부터 이번 품절 사태까지. 네가 대산 D&S를 맡은 이후로 문제가 끊임이 없어.”

자존심이 상한 진선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진용민이 말을 이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고민을 좀 해봤어.”

“…….”

“문제의 핵심은 지나친 외주화라는 생각이 들던데. 어때?”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겠지.”

진선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기술 내재화라면 자체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으로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하지만 진선미는 그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외주비용 -30%. 기한은 5개월.”

놀란 진선미가 되물었다.

“네?”

외주는 대부분이 인건비다. 즉 인력을 30% 줄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인력으로는 시스템 운용이 안 된다. 된다고 해도 내부에서 엄청난 불만이 터져 나올 게 뻔했다. 그것도 겨우 5개월 만에 줄이라니…….

진용민이 진선미를 지긋이 보며 말했다.

“단 신규채용 없이.”

“신규채용도 없이 외주비용을 -30%나 줄이면 시스템 운용이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5개월이라니.”

“기존의 관리직 인원들을 교육해서 사용하면 되잖아. 그게 바로 기술 내재화고.”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하고 또…….”

진용민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선미를 보았다.

“마트나 백화점이 역성장이야. 대산 D&S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천천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려우면 포기하든가. 회사 일이 원래 그래. 어렵고 힘들지. 그걸 네가 계속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나가라.

그 뜻이었다.

진선미가 이를 악물었다.

“…….”

“내가 오빠라고 해서 너만 봐줄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진용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수고하고. 더 할 말 없지?”

진선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전무였고, 오빠는 회장이었다. 지시를 따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 * *

대산 D&S 본사.

사장인 양주삼의 집무실에 대산 D&S의 인사팀장이 잔뜩 표정을 굳힌 채 앉아 있었다.

“외주비용을 30% 줄이라고요?”

“그래. 그리고 당분간 신입 뽑지 마. 인력 채용 없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도 팀장들이 인원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판에.”

양주삼 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보안 사태에 이번 재고관리 시스템까지. 문제가 한두 번 터져야 말이지. 본사에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나 봐. 그래서 기술 내재화를 진행하라네.”

“기술 내재화 말입니까? 그렇다고 해도 30%나 줄이는 건 너무 극단적인 처방인데…….”

양주삼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인사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혹시 진 전무님이 대산 D&S를 맡으면서 저희가 회장님 눈 밖에…….”

양주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헛소리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년부터 임직원 대상으로 분기나 반기별로 코딩 테스트까지 할 거야. 최종적으로 대산 D&S를 기술기업으로 바꾸는 게 회사 방침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전파해서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둬. 인원 줄이는 건 팀장급들에 미리 언질 주고.”

인사팀장이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면 오히려 인원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야 하잖아요.”

“그동안 조직이 너무 비대화 됐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더구나 기존 사람을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으니 최대한 이용하려는 거고.”

인사팀장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 포지션이 애매하잖아. 기술도 관리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니까. 그냥 백화점이나 마트 똥받이 아니겠냐. 어쨌든 그래서 대산 D&S 대대적으로 바꿀 생각인가 봐. 그 목표가 기술기업이고.”

“그렇긴 하지만…….”

“기술 쪽에 능력이 있으면 확실하게 성과를 주고, 아니면.”

양주삼이 엄지로 목을 그었다.

“이렇게 되는 거지.”

순간 인사팀장의 머릿속으로 한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강철 이사가 그 신호탄이군요.”

“그런 셈이지.”

“알아들었으면 나가봐. 팀장들한테도 어서 알려야지. 이제 당분간 나가면 사람 못 뽑으니까. 밑에 애들 관리 잘하라고.”

“이거 알려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네요.”

“그 난리 계속 날 것 같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해.”

인사팀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추천시스템 런칭 D-50.

-구매율 : 24.2%.

-매출 예측 오차 : 10.5%.

시간이 지날수록 추천시스템의 성능은 향상되었다. 물론 시스템을 수정한 후 매번 실제 상용화에 적용해 테스트하는 건 아니었다.

프리미엄 아울렛.

백화점.

그 두 개 계열사에서 제공한 과거 데이터를 추천시스템에 적용해 성능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수정.

개발.

수정.

개발.

같은 일을 반복할 때마다 성능은 향상되었다.

-구매율 : 25.8%.

-매출 예측 오차 : 10.1%.

높아지는 성능에 팀원들도 고무되었다. 조금만 더하면 최종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정된 알고리즘을 적용한 천준호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윤찬민도 마찬가지였다.

“휴우…… 다행이에요. 혹시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천준호가 그런 윤찬민을 보며 말했다.

“하하, 별걱정을 다 해. 누가 하는 일인데.”

강철이 장난스레 거드름을 피웠다.

“에헴. 그럼요 누가 하는 일인데. 로커 적용 상황은 어때요?”

로커.

서치에서 출시된 최신 기술 중의 하나였다. 해당 기술을 사용하면 유지보수 인력으로 10명이 필요한 시스템도 6명이면 된다. 인건비가 비용 대부분인 IT 분야에서 30%나 비용 절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행히 서치에서 오픈소스로 전 세계에 공개했고, 수많은 개발자의 열렬한 환경을 받는 기술이었다.

“최적화 버전 찾아서 적용 완료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NCS(나일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별문제 없죠?”

“네.”

그때.

강철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번호를 확인해 보자 이미 저장해 둔 번호였다.

“전무님이 왜 또…….”

그 중얼거림을 들은 천준호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고, 윤찬민도 동그랗게 변해가는 눈동자를 멈추지 못했다.

* * *

대산 그룹 진선미의 사무실.

그녀가 차를 마시며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개발 상황은 어떤가요?”

“구매율 : 25.8%. 매출 예측 오차 : 10.1%까지 왔다고 합니다.”

“최종 목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군요.”

“네.”

“이강철 이사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나요?”

“딱히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승진 이후 회장님과 별도로 만난 것 같지도 않고요. 사람을 계속 붙여 쫓아다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다만?”

“이강철 이사가 설립한 ㈜아이온 산하 아이체크 서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핸드폰으로 음식 사진을 찍으면 칼로리를 계산해 주는 서비스 말인가?”

“네. 비슷한 서비스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아이체크 앱이 가장 성능이 좋다고 합니다. 벌써 다운로드가 300만을 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중국, 일본 쪽에서도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고요.”

진선미가 검지로 긴 머리를 베베 꼬았다. 고민할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확실히 안목이 있군요.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고 있으니.”

“최근 딜리버리브라더스라는 배달 전문 서비스, 나인소프트라는 신선식품 판매 쇼핑몰에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벌써…… 4개 회사나 투자를 하다니 너무 공격적인 것 같은데요.”

“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퍼그 매각 대금이라고 해봐야 120억인데 거기에 빌딩, 집까지 사고 다른 회사를 매수할 여력이 없을 테니…….”

머리카락이 베베 꼬이다 못해 검지를 완전히 휘감고 팔목까지 내려오려 했다. 생각에 빠진 진선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회장님이 투자했다?”

“네. 아마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도 큰 이점이 될 거고요.”

오 비서가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내부에서는 한계가 있으니 외부에 쓸 만한 회사를 키워 명예회장님께 선보이는 겁니다. 봐라. 내 안목이 이 정도다. 그리고 그걸 대산 그룹과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간다면…… 전무님이 그리는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에 버금가는 파급효과를 낼지도 모릅니다.”

“흠…….”

“어쩌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벌 2세가 회사를 만들어 모기업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하며 빠르게 성장시킨 후 합병한다. 그러면 상속 이슈도 없고요. 이미 사례야 많지 않습니까.”

“일리가 있군요.”

“개연성이 농후합니다. 어쩌면 이강철 이사를 승진시킬 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 팀장은 뭐라고 합니까?”

“지금까지 이강철 이사가 회장님 쪽 라인과 접촉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 아직 라인이 확실하지 않다는 건데…… 우리가 외주비용 절감 건에 관해 물어봐도 될까요?”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내부에서는 5개월 안에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누군가 똑똑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이강철 이사님 도착하셨습니다.

이내 강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자리에 앉자마자 향긋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네. 전무님.”

“요즘 좋은 소식이 자주 들려요. 재고관리 시스템 문제도 잘 해결해 주고, 추천시스템도 거의 완성했다면서요.”

“관심 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무님이 신경 써주셔서 프로젝트도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호호, 혹시 어디서 회사생활 해봤어요? 말솜씨가 우리 임원들 못지않네.”

“회사생활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처음치고는 너무 잘하고 있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진선미가 그런 강철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마치 내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듯이 한동안 그렇게 노려보기만 했다.

그 시선을 견디다 못한 강철이 먼저 말했다.

“혹시 뜬소문 때문에 그러십니까?”

강철이 걱정되는 건 그것 하나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진선미가 고개를 흔든 것이다.

“얼마 전 재고관리 시스템에 일어난 문제를 해결했는데도 뭔가 보상을 못 한 것 같아서요. 겸사겸사 다른 일도 좀 의논하고.”

“아…… 그야 괜찮습니다. 어차피 회사 일이니까요.”

“외부에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하는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진용민이 알고 있으니 진선미가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라.

그런 생각으로 진선미를 보고 있자,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침 마케팅팀에 그런 서비스가 필요한 참이었는데…… 한번 제안서 넣어보겠어요?”

세상은 기브앤테이크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한다.

재고관리 시스템 건을 해결해 준다고 이걸 제안한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전 무엇을 하면 되나요?”

“말이 통해서 좋네요. 회사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생겼어요.”

“외주 축소 말씀입니까?”

“맞아요.”

강철도 하진기 팀장을 통해 전해 들었다.

-외주비용 30% 축소.

그것 때문에 대산 D&S가 발칵 뒤집혔다.

외주비용은 대부분이 인력이었다. 그걸 축소 시킬 수 있는 인원을 파악하고, 대체할 인원을 파악하는 것으로 부산스러웠다.

진선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추천시스템 개발로 바쁘겠지만 이 이사라면 복안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강철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있긴 있어. 큰 비용을 잡아먹는 데이터 센터를 NCS로 옮기면 해결될 테니까. 이상한 점은 이걸 해결하라 지시를 해도 될 텐데 굳이 당근을 제시했다.’

아마 절박하다는 뜻이리라.

‘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철의 머릿속으로 5년 뒤에 벌어질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5년 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 공을 세워놔야 더 많은 계열사를 가져가는데 그렇지 못할까 봐?’

하지만 강철의 상념은 거기서 끝나야 했다.

“어때요? 방법이 있습니까?”

강철이 급히 입을 열었다.

“혹시 현재 온라인 쇼핑몰 1위인 쿠키가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전하면서 어느 정도의 비용을 절약했는지 아십니까?”

그런 사항까지 잘 알지 못했다. 다른 일로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런 기색을 읽은 강철이 자문자답했다.

“32%. 이미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리프트 등등 수많은 IT 기업이 나일의 서비스를 사용해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대산도 그렇게 한다면 30%가 아니라 4~50%까지도 충분히 절약할 수 있습니다. 현재 데이터 센터의 비효율은 어마어마하니까요.”

이건 과거에도 문제가 된 사안이었다. 쓸데없이 서버를 구입하고, 필요 없는 외주 인력을 고용했다. 그것만 효율화시켜도 비용의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진선미가 강철을 쓱 훑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잘하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과거 10년간.

스타트업을 하며 비용 절감을 위해 나일 클라우드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싸게 사용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아마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자신 있게 답하는 강철을 보며 진선미가 눈을 반짝였다. 강철은 다른 의미로 진선미를 쳐다보았다.

‘확실해. 자신의 입지가 좁혀질까 봐. 불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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