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10화 (10/59)

1장 싹이 터서 꽃이 피다(1)

대산 그룹 본사 진용민의 집무실.

진용민이 동생 진선미를 보며 물었다.

“대산 닷컴 리뉴얼 작업은 어때?”

“일단은 기획을 튼튼히 하고 있어. 오빠가 강조했던 추천 시스템 쪽에 힘을 싣는 중이고.”

“흠…… 그건 알고리즘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전문가 섭외는 된 거야?”

“한국대에 라영건 교수님이 도와주시기로 했어.”

“라영건 교수?”

“왜 지난번에 추천 관련해서 세미나 해주신 분 있잖아.”

“아…… 한국대.”

“그분이 고문으로 활동해 주시기로 했어.”

“인력 구성은? 최소한 한국대나 MIT, 스탠포드 출신으로 꾸려야 할 거 아냐.”

진선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일단은 사내에서 찾았어. 대산 D&S 이강철이라고.”

진용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강철?”

“대산 D&S 소속인데 쓸 만한 것 같더라. 라 교수님도 그 정도 실력이면 한번 시작해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셨어.”

“이강철…… 그 친구라면 나도 들어본 이름인데.”

“오빠도?”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아마 우수사원에도 선정됐을걸.”

“이번에 핵심인재도 통과됐어. P급으로.”

“대산 D&S 직원 실력이 그 정도가 안 될 텐데…… 더구나 거긴 이직이 많아서 공채보다 경력 출신이 많은 곳이잖아. 그룹 내에서도 비주류 계열사고.”

“가끔 기존의 틀을 부수고 아웃 라이어들이 나타나잖아.”

“흠…… 그래서 그 친구를 주축으로 시작하겠다.”

“맞아. 지난번 와서 발표하는 걸 보니까. 이미 전체적인 구상은 끝내 놨더라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자체적으로 만들어두었고.”

진용민이 턱을 문지르며 호기심을 표했다.

“알고리즘까지?”

“에이글이라고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이 모여 경연하는 사이트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도 순위권에 든 알고리즘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라 교수님도 인정하신 것 같고.”

“확실히 실력은 쓸 만한가 보네.”

“교수님이 인정할 만한 수준은 된다고 해야 하나. 지난번 회의 때 발표하는데, 아주 발칙하더라.”

“하하, 발칙해?”

“내 앞에서 떨지도 않고 아주 능청스럽게 발표를 하더라고.”

진용민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친구 내 앞에서도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라.”

“내 말이.”

“그런데 네가 이렇게 한 사람 이야기를 오래 하는 건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꽤 인상적이었나 봐?”

“오빠도 알잖아. 나 능력 있는 사람한테 관심 많은 거.”

“그래서 그 좋은 혼처들 전부 놓치고, 39살이 되어버렸지.”

“난 오빠처럼 살기 싫어. 그게 뭐야. 정략결혼하고, 서로 닭 보듯 하면서 딴 살림이나 차리고.”

진선미의 직설에 진용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선미야.”

“일 이야기 안 할 거면 난 간다.”

진선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진용민이 그녀를 붙잡았다.

“알았다. 일 이야기해야지. 네가 말한 추천 시스템. 정 상무도 추진하기로 했다.

“뭐? 그거 우리 쪽에서 하는 거 아니었어?”

“두 팀을 경쟁시켜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까.”

“만약에 내가 지면?”

“아버지 말씀대로 결혼해.”

“……뭐?”

“오빠 난.”

“아버지 소원이 너 손주 보는 거다. 너도 벌써 39살이야. 누구라도 좋으니까. 데려만 와.”

진선미가 으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집무실을 떠나 버렸다.

진용민은 그 뒷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팀이 만들어졌다.

천준호.

윤찬민.

유혜인.

김수철.

조진수.

거기에 강철까지 총 6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추천 시스템을 전담하여 개발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킥 오프를 하고, 프리미엄 아울렛 전산지원팀이 있는 곳에 자리를 마련했다. 기존에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던 협력사 직원들이 나갔기 때문에 자리는 충분했다.

그렇게 자리 배치가 끝나고, 강철이 그 다섯 명을 비롯해 하진기, 김정민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회의실 칠판에는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Lean Startup.

강철이 그 단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천준호가 특유의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반응을 본 후 다시 수정. 그걸 무한 반복하는 개발 방법론이잖아.”

“하하, 맞습니다. 이번 추천 시스템은 이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개발될 겁니다. 한 달을 주기로 서비스를 완성하고, 반응을 보고 부족한 점을 수정한다.”

하진기가 물었다.

“그럼 한 달 후면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말이네.”

“네. 그게 목표입니다.”

“좋군. 윗분들도 아주 좋아하겠어.”

“물론 첫 결과물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추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제율이 5%, 10%가 안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점점 성능을 높여갈 겁니다.”

“알았어.”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 분?”

다른 의견은 없었고,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은 총 5단계로 나누어졌다.

1. 문제 정의.

2. 데이터 수집.

3. 데이터 정제.

4. 데이터 분석.

5. 결과 도출.

첫 번째는 단계는 이미 끝나 있었다.

1. 추천 시스템을 통한 매출 30% 이상.

2. 매출 추이 오차 범위 10% 내외로 예측.

이 두 가지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강철은 이 점을 주지시키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 * *

라운드 헌터는 꾸준히 순위를 치고 올라갔다. 당연히 매출도 따라 올라갔다. 김봉수의 표정이 환한 이유였다.

“어제 매출이 이천만 원이라고?”

“네. 오늘은 아직 반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삼천만 원을 넘었습니다.”

김봉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러다가 하루 1억 찍는 거 아냐?”

“1…… 1억이요?”

“그래, 잘나가는 게임들 보면 그러잖아.”

“그러면…….”

한 달이면 30억이고, 일 년이면 300억이 넘는다.

물론 하루 1억 매출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재 달성한 매출을 유지하기만 해도 초대박이리라.

하지만 김봉수의 꿈은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김봉수가 툭 내뱉었다.

“일 매출 10억 찍고 포엔 넘어서야지.”

그러자 부하직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부하직원은 김봉수가 포엔을 나올 때 함께 퇴사한 직원이었다.

-더럽게 치사해서 퇴사한다. 두고 보자. 내가 포엔보다 큰 회사를 만들 테니까.

그런 꿈을 안고 퇴사했었다. 마치 그 꿈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사무실 전화기도 불이 났다. 갑자기 엄청난 수의 유저가 몰리면서 게임 관련 문의 사항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게임 관련 문의 사항만 오는 건 아니었다.

드르륵.

드르륵.

김봉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연락을 받은 김봉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하, 아닙니다.”

“네. 감사합니다.”

“투자요?”

“아…… 지금은 현금 흐름이 괜찮아서요.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네. 기회가 되면 꼭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은 김봉수에게 부하직원이 이 물었다.

“투자 건이에요?”

“어. 게임 올라가고 나서 전화기에 불이 난다. 그전에는 그렇게 말해도 신경도 안 써주더니.”

투자 관련 문의도 급증했다.

현시대 게임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게임 하나 잘 만들면 제조업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30, 50%를 넘나드는 영업이익률을 기록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봉수에게 부하직원이 물었다.

“흐름 탄 것 같은데 마케팅비 더 집행할까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네.”

마케팅비를 지출할 때마다 라운드 헌터 순위는 올라갔고, 덩달아 퍼그의 매출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드르륵.

또 한 번 김봉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받아보니 투자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달랐다.

“테, 텐센트에서 ……2, 200억이요?”

정확히는 그 숫자가 많이 달랐다.

현재 주식회사 ‘퍼그’의 자본금은 10억이었다. 거기에 20배나 더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이런 제안은 지금까지 없었다. 포엔을 넘어서겠다고 했지만 내심 지금까지의 노력을 보상만 받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세자금대출까지 받아 회사에 털어 넣었으니 절벽 끝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부담감이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기에.

‘어, 어떻게 한다…….’

고심하던 김봉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자신을 제외하고 회사 주식을 가장 많이 들고 있는 이에게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 * *

점심 시각.

강철은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강철의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삐리리링.

삐웅삐웅.

쿠과과광.

귀에 인이 박일 정도로 들었다. 자신이 투자한 ‘라운드헌터’ 게임 효과음이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에서 천준호가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 주임님도 이거 하세요?”

“재밌더라. 너도 해?”

강철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당연하죠.”

제가 투자한 회사인데.

그 뒷말을 삼킨 채 말을 이었다.

“어때요? 재밌어요?”

“요새 이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 주말에 여자친구 약속도 펑크낼 뻔했다니까. 하마터면 차일 뻔했다.”

“하하하.”

강철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천준호가 실눈을 뜨며 강철을 보았다.

“너 어째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차이길 바라는 모양이지?”

네. 사실 차이시고, 종일 게임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철은 그 말을 삼킨 채 답했다.

“차이길 바라다니요. 그냥 상황이 재밌잖아요. 현질은 좀 하셨어요? 무과금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스타터 팩만 그거 가성비가 좋더라.”

현질을 했다는 말에 강철은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잘하셨어요.”

그런 강철을 향해 천준호가 툭 물었다.

“너는 여자친구 안 만드냐?”

“여자친구라…….”

과거 결혼까지 한번 해봤기 때문일까. 딱히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내가 소개팅해 줄까?”

“아직은 괜찮아요. 일부터 해야죠.”

그때 뒤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혜인이 작게 입을 오므린 채 숨을 내쉬고 있었다.

강철이 유혜인을 보며 물었다.

“어, 유 대리님. 오늘 컨디션 안 좋으세요?”

“아, 아니에요.”

유혜인이 종종걸음으로 먼저 사무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때 강철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리며 진동했다.

-퍼그 김봉수.

그걸 본 강철이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 연락을 받았다. 강철이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네. 사장님. 게임 아주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저, 저기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하하, 네.”

-테, 텐센트에서 200억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왔습니다.

강철이 되물었다.

“네?”

-텐센트 아시죠? 중국 게임 회사. 거기에서 200억에 퍼그를 넘겨받겠다고 했어요! 완전 노난 겁니다. 사장님 지분이면 40억을 벌 게 생겼다고요!

하지만 강철은 여전히 놀라지 않았다. 미래 퍼그의 가치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강철의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지금 40억을 가질 것인가. 미래에 천억을 가질 것인가인데…….’

퍼그의 가치는 매년 올라간다. 정확히는 앞으로 18년 뒤였다. 자신이 45살에 죽고, 27살 대산 입사일로 되돌아왔으니까.

결국, 앞으로 18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김봉수가 내는 게임마다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40억으로 십수 년 후에 천억 이상을 만들 수 있다면 당장 파는 게 이득이었다. 만약 그 반대라면 그냥 퍼그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게 이득이다.

강철은 일단 선택지를 나열해 보았다.

1. 주식을 팔고 다른 회사에 투자한다.

2. 주식을 팔고 사업을 시작한다.

3. 주식을 팔고 꼬마 빌딩을 구매한다.

4. 안 판다.

일단 2번은 배제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시도했던 사업은 전부 망했다. 그랬기에 당장 사업을 시도하는 건 조금 두려웠다.

사업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에 시작하고 싶었다.

매달 오는 직원들 월급날의 중압감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날만 되면 쥐구멍에 숨고 싶은 날들이 한두 번이 아녔다.

그랬기에 아직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1번 3번 4번이 남는다.

하지만 1, 3번과 4번은 서로 반대되는 것.

고민하던 강철은 결정을 내렸다.

‘또 옛날처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일단은 그냥 팔자.’

혹시나 45살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강철은 1번과 3번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러자 선택지가 또 줄어들었다.

1번.

3번.

강철은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들을 떠올려 보았다. 생각나는 기업들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40억을 전부 투자한다……. 그건 또 별로였다.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마 오늘도 새벽부터 식당에 나가 일하고 있을 것이다. 동생은 또 어떤가. 학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적당히 섞자. 투자 조금 하고 주변에 아파트 하나랑 월세 나오는 빌딩을 하나 사면. 일단 먹고 사는 걱정은 없겠지.’

전생은 고생만 죽어라 하다 끝이 났다. 이번에는 조금 더 즐기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행복한 고민을 마친 강철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지막 5번. 200억보다 비싸게 판다.”

막 출시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텐센트에서 입질이 왔다. 그렇다면 ‘라운드 헌터’에 큰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최소 500억은 받을 수 있어.”

과거 김봉수가 스타트업 행사에 나와 했던 말이 있었다.

-창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텐센트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100억.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200억에 제안이 왔지만 전 팔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그들이 원했던 건 게임 내 알고리즘이더군요.

알고리즘.

그리고 현재 퍼그에 적용된 알고리즘은 그때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이었다.

200억이 아니라 500억도 받을 수 있다 확신하는 이유였다.

* * *

대산 닷컴 리뉴얼 총괄팀장 황희선.

그는 대산 그룹에 90년대에 입사해 지금까지 승승장구해 이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전형적인 옛날 사람으로 군대식 회사 문화가 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하진기에게 마땅찮은 시선을 보냈다.

“추천 시스템 개발에 실패했다고?”

하진기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실패한 게 아니라…… 성능을 개선해 나가는 중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추천을 통한 30% 매출 발생. 매출 예측 90% 일치 둘 다 달성 못 했잖아.”

“현재 저희가 사용하는 개발 방식은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빠른 개발을 통한 피드백으로 시스템의 성능을 개선해 나가는…….”

황희선이 하진기의 말을 끊었다.

“그만.”

“…….”

“린 스타트업이고 나발이고. 하 팀장이 말한 한 달이 지났는데 성과가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래서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최소한 6개월은 해야…….”

“뭐? 6개월? 고작 시스템 하나 만드는데 6개월? 그럼 처음부터 6개월 동안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든가.”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매달마다 성과를 측정하여…….”

이번에도 하진기는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됐고. 지금 회사에서도 결과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최대한 빨리 만들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개발자들 때려 넣어서 만들라고 했잖아. 신입사원 말 듣고 5명이 그걸 만든다는 게 말이 돼? 더구나 그 신입 출신 학교도 변변찮잖아.”

“학교는 변변치 않지만, 충분히 실력이 있는 친구로…….”

“됐고, 정 팀장도 병렬로 일 진행하기로 했어.”

정 팀장.

정현진으로 현 대산 닷컴의 개발 팀장을 맡은 이였다.

“네?”

“정 팀장은 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하더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건은 분명히 저희가 하기로 사전에 협의가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실패했잖아.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때를 대비해야 할 거 아냐.”

“사, 상무님. 그리고 이건 전무님이 정하신 건데…….”

“VIP 오더야.”

VIP라면 진선미보다 위라는 뜻이었다. 하진기가 꾹 입을 다물었다.

“…….”

“어차피 그 건은 네 것도 아니었잖아? 하 팀장이야 원래 프리미엄 아울렛 하고 있었으니까. 그거나 잘하면 될 테고.”

하진기가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왜 싫어?”

상무의 앞이다. 하진기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화를 가라앉혔다.

“그…… 그게 아니라…….”

“두 달 뒤에 진 전무님 앞에서 성과 발표할 거야. 그때 괜찮은 놈으로 결정될 거야.”

“알겠습니다.”

“하 팀장도 알지? 이게 다 회사를 위한 길이야. 대산 닷컴 리뉴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거기에 핵심이 되는 시스템인데 실패 가능성은 없애야지.”

하진기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내려온 오더였다. 여기 있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 * *

프리미엄 아울렛 전산지원팀 회의실.

칠판에 써진 수식 하나를 두고 강철과 유혜인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이 주임도 알겠지만, CF 알고리즘의 기반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묶어 그들은 비슷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성향. 이 성향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인데. 너무 많은 요소를 넣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최대한 많은 팩터를 넣어야 해당 사람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25살. 여자.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근무. 이 세 가지 팩터로 유 대리님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건 아니지만 이건…… 다른 문제잖아요. 더구나 매달 시스템을 완성해서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많은 팩터를 넣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수가 있어요. 하나씩 늘려가는 게.”

“그럼 양보해서 15개로 줄이겠습니다. 그럼 될까요?”

유혜인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15개요? 평균적으로 CF 모델링을 할 때 개인의 성향을 구분하는 팩터는 10개를 넣는 게 평균이에요. 그래서 시작을 7개부터 하자는 거였고요.”

“그래서는 성능을 높일 수 없습니다. 15개. 그 이하로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하아…….”

강철이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리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뽑은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에 지원한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목표를 잡은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강철이 유혜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무리 아닙니다. 저는 보여요. 대리님 속에 숨어 있는 능력이.”

강철이 진지한 눈빛으로 유혜인을 보았다. 그 눈빛을 감당하지 못한 유혜인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국내 최고 대학인 한국대 경영을 졸업하셨잖아요. 업무능력은 또 어떻습니까. 회사 내에서 칭찬이 자자하시잖아요. 그래서 이달의 우수사원만 3번 수상하셨고요. 그런 유 대리님이기에 저도 흔쾌히 승낙한 겁니다. 분명히 잘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강철의 칭찬이 이어질수록 유혜인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강철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정 안되면 라영건 교수님이 고문을 맡아주고 계시니 상담을 받아보면 됩니다. 15개는 정말 안 되는지.”

“아, 알겠어요.”

“그럼 전 1번, 3번 알고리즘을 만들 테니까. 대리님은 2번 알고리즘을 만들어주세요. 완성되면 서로 토론을 통해 개선 시켜보자고요.”

1번이 라이스터 회귀분석을 이용한 방법, 3번은 딥러닝 기반의 추천 시스템이었다.

유혜인이 맡은 2번이 CF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강철은 이 세 알고리즘을 조금씩 변형해 가며 프리미엄 아울렛에 최적화된 것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과거에는 CF 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만 적용되어 시스템이 운용되었고, 최초 혹평을 받았었다.

강철은 거기에 2가지 알고리즘을 더해 전체적인 성능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유혜인이 살짝 입술을 달싹이며 답했다.

“알았어요. 일단 그렇게 해요.”

“하하, 네.”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하진기가 심각한 표정으로 강철을 잡았다.

“이야기 좀 하자.”

“네.”

수십 분 동안 본사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강철이 듣기에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 추천 시스템은 정 팀장, 하 팀장님이 합심해서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도 형편없었지.’

-추천 상품 고객 구매율 5%.

-매출 예측 오차 21%.

물론 조금씩 개선해 나가서 강철이 퇴사 전에 구매율은 20%까지 오차는 10% 범위로 줄어든다.

결국,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몇 년이나 걸린다는 말이었다.

“절대 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진기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당장 이번 달 우리 시스템 성능만 봐도 구매율 8%, 오차가 18%잖아. 다음 달에 개선이 된다고 해도 과연 밀리지 않을까?”

강철이 빙그레 웃었다.

“그 말씀은 저쪽은 목표로 하는 수치를 달성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불과 두 달 만에.”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못 할 겁니다.”

강철의 장담에도 하진기의 이마의 주름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자네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워낙 매우 급하다 보니까. 하는 말이야. 만약 지게 되면 팀 접어야 할 수도 있어. 여기서 나가리 되면…….”

하진기가 뒷말을 삼켰다. 아마 하진기의 회사 생활은 팀장에서 끝나게 되리라.

강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강철이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성능은 점점 올라갈 테니까요.”

“그럼 다음 달에 목표 달성 가능하다는 말이지?”

“그건 어렵습니다. 시간이 너무 짧아요.”

“이 주임. 내가 지금까지 한 말…….”

강철이 그 말을 끊었다.

“정 팀장님. 지금 사내에서 쓸 만한 인재는 제가 다 끌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데 우리나라 유통 쪽에서 대산보다 잘나가는 기업은 없습니다.”

“…….”

“그러면 ‘윌마트’나 ‘나일’에서 인력을 섭외해야 하는데 그런 인력이 들어왔으면 분명 소문이 났을 테지요. 즉 그런 인력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대나…… 오성전자에서 인력을 데려왔으면?”

“그 인력들은 아직 유통 데이터에 익숙지 못합니다. 데이터 분석은 해당 산업에 대한 기반 지식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팀장님도 보셨잖아요. 에이글에서 제 순위가 어떤지.”

하진기가 마른침을 삼켰다.

-retuner RANK. 549.

에이글에 접속하는 데이터 분석가 중 전체 순위였다. 즉 전 세계에서 549명 안에 든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에이글 문제에 관심 없는 능력자도 많을 것이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대단한 숫자였다.

오성전자나 한국대 졸업생들에 못지않으리라.

“알지, 알아.”

강철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한번 믿어보세요. 결과로 보여드릴 테니까.”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드르륵’거리며 핸드폰이 진동했다.

하진기가 눈짓했고, 강철은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선미 전무님 비서실입니다.

“아, 네.”

-다음 발표 준비 상황이 어떤가 해서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상황이 조금 변했습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관련 회의를 했습니다.”

-만약 좋은 결과를 보여주시면 핵심인재 A급으로 올라가고, 이번 승진 인사에 포함될 겁니다. 직급은 과장으로.

“……네?”

-그러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강철이 멍하니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미국 시애틀.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루이스 캐스에게 동료가 다가왔다.

“리터너. 그 친구에게 의뢰한 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

“확실히 실력이 있어. 그 친구랑 대화하면서 아웃 라이어 데이터 건은 거의 해결했으니까.”

“오오, 그걸 해결했다고? 사내에서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냥 쓰레기 데이터니까. 삭제하자고 했던.”

루이스 캐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가 제안한 라이스터 회귀분석 알고리즘을 좀 더 개선 발전시키니까. 효과가 나타나더라고.”

“그럼 우리 추천 시스템의 성능도 더 올라가는 건가? 지금까지 추천 시스템을 통한 구매 비율은 28%에서 멈춰 있었잖아. 거기에 특이 소비 사용자들의 패턴까지 분석해서 추천해주면 마의 30% 벽을 깰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가능성이 커. 지금 테스트해 보는 중인데. 이를테면 예전에는 텐트 장비를 사고, 쿠션을 사는 고객 데이터를 정제 과정에서 그냥 버렸다면 이제는 포함시킬 수 있게 된 거지.”

“라이스터 회귀분석에서는 그 데이터를 통해 상관관계를 뽑아낼 수 있단 말이지.”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당 패턴을 가지고 추천해 주는 상품은 남, 여,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과거 데이터와 비교해 보면 정확도가 70%가 넘어.”

동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70%나 된다고? 그 정도면 다른 알고리즘과 비교해도 성능 비슷하잖아.”

“그러니까 성능이 높아진다고 한 거야. 다른 알고리즘들과 비슷한 성능을 내면 네 말대로 우리 추천 시스템 전체에도 2% 정도의 영향을 미칠 테니까.”

“2%면 정확히 30%네.”

루이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동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우리도 이제 나일에 못지않은 시스템을 가지게 되는 건가.”

루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안 될걸. 나일의 추천 상품 구매 비율은 과거 5년 전에 30%였어. 그 이후로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 지금쯤이면 50%를 넘었을지도 몰라. 거기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자세히는 이야기 안 해주지만 50%라는 수치를 부정은 하지 않더라.”

그러자 동료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정도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들은 사용자가 검색하는 순간 개인화된 데이터를 내보내 버리니까.”

“엄청…… 나구나.”

“그러니까 나일의 독식이 계속되는 거겠지. 우리도 신선식품이라는 강점이 없었다면.”

루이스가 손으로 목을 그었다. 동료가 살며시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해고당했겠네.”

“그렇진 않아도 매출이 매년 줄어들어 파산하지 않았을까?”

“뭐…… 우리야 다른 회사로 가면 되긴 하지만.”

“여기서 이룬 기반은 잃게 되는 거지.”

동료가 까끌하게 돋아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네 말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한데.”

“리터너?”

“우리 회사로 이직 제안을 하고 싶은 정도야.”

“그렇지 않아도 팀장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

“그래서? 말은 해봤어?”

루이스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슬쩍 던져봤는데 아직 크게 생각 있는 것 같진 않더라. 아무래도 생활 기반이 한국에 있으니 옮기는 게 쉽진 않은가 봐.”

“하긴 만약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더 어렵겠지.”

루이스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번 기회가 되면 만나보고 싶긴 해. 그 기회가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나도 불러줘.”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 * *

발표 8주 전.

강철은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유혜인과 함께 토론하며 알고리즘 성능을 높였고, 천준호를 비롯한 개발팀에 그 사항을 전달했다. 윤찬민은 나일을 통해 최대한 더 편하게 서비스를 운영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 아주 조금씩이지만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발표 7주 전.

발표 6주 전.

발표 5주 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내부 중간 점검일이 되었다. 하진기를 비롯해 관련 인원들이 전부 회의실에 모였다.

강철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천 상품 고객 구매율 10%, 매출 예측 오차 18%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하진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직 목표치에서 많이 모자라는군.”

“네.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달이면 각각 15%, 15%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쪽이 어떤 시스템을 들고나올지가 문젠데…….”

김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오성전자 쪽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던 과장급 인원을 스카우트했다고 합니다. 그 인원을 주축으로 팀원 2명이 같이 넘어왔고 나머지는 자사 인원으로 팀을 꾸린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하진기가 강철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될까?”

“저희가 이길 겁니다.”

강철이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인원 구성이 과거와 똑같아.’

물론 그들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자마자 불과 3개월 만에 천지개벽할 성과를 내진 못한다.

그들이 3년 차에 달성하는 수치가 강철이 말한 15%, 15%였다. 자신만만한 강철과 달리 하진기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네가 잘하는 건 알지만…….”

하진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강철이 걱정 가득한 하진기를 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잘될 겁니다.”

하진기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강철이 하진기에게 다가갔다.

“내일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휴가?”

“네.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하진기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뭐, 그러면 가긴 해야겠지만…….”

“그럼 내일 하루 쉬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강철은 걱정 가득한 하진기를 뒤로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마자 유혜인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진짜 중요한 일인가 봐요? 이 시기에 휴가라니.”

강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습니다.”

아주. 아주. 아주. 중요했다.

퍼그와 텐센트의 협상일이 잡힌 것이다.

강철은 거기에 2대 주주로 참석하길 원했고, 김봉수는 시원하게 허락했다.

고심하던 유혜인이 물었다.

“중요한 일이라면 혹시…… 이직해요?”

직접적인 질문에 당황한 강철이 되물었다.

“네?

다들 묻고 싶지만 묻지 못한 말이었다. 동료들의 귀가 쫑긋 세워져 강철을 향했다.

유혜인은 강철의 표정을 보고 단박에 그게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님 말고요.”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하게 되면 유 대리님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말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다음 날.

양복을 차려입은 강철이 아침 일찍 가산디지털단지에 도착했다.

강철은 지하철역 입구에서 다시 한번 과거 김봉수가 했던 말을 반추했다.

-창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텐센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00억에 회사를 사고 싶다. 하지만 전 거절 했죠. 그리고 몇 년 뒤 이번에는 200억에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회사가 가진 기술력이 탐났기 때문이더군요. 결국,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면 창업자가 자기 회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적용된 알고리즘은 더 뛰어난 것이니…… 절대 500억이 적은 금액은 아니야.’

지하철역을 나와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니 김봉수가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에 반해 강철의 태도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200억이면 꽤 괜찮은 액수라 생각하고 있어서요.”

과거에는 100억을 제안받았고, 거절했다. 하지만 100억이 더 올라가자 오히려 김봉수가 안달복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걸 보는 강철의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원래는 100억을 제안받고 거절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저 때문에 금액이 올라갔으니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강철은 그 마음을 감춘 채 말했다.

“저들이 관심 있는 건 내부 알고리즘일 겁니다. 사실 중국에서 게임 베끼는 거야. 다들 잘 알지 않습니까. 디자인만 살짝 바꿔서 내면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베끼지 않고 사겠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내부 알고리즘은 베낄 수 없으니까?”

“네. 내부 코드를 완벽하게 디컴파일해서 까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죠. 그렇다고 해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게임회사를 200억에 산다는 건 과한 액수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겠다고 하는 건 이 알고리즘을 자사의 다른 게임들에도 적용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200억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죠.”

김봉수가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사실 우리 적 AI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왜 게임을 할 때 멀티 플레이를 할까요?”

“그야…….”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적 AI가 실제 사람처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김봉수가 단호하게 답했다.

“우리 기술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그건 저보다 사장님이 잘 아실 텐데요. 이걸 사장님이 만드신 거니까요.”

강철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야 물론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발전된 AI를 만들어낸 게임회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말씀은…….”

“아마 퍼그를 산 후에 게임을 발전시킬 생각일 겁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도면이라도 있는 상태에서 만드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흠…….”

“잘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텐센트 관계자가 회사에 도착했다. 김봉수를 비롯해 강철 그리고 퍼그사 관계자 한 명이 더해져 바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마자 강철은 초강수를 던졌다.

“저희 퍼그AI라 이름 붙여진 것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다. 퍼그 AI는 지도, 비지도 사이의 준지도 머신러닝의 일종으로 볼트 머신의 기초 위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그럼으로 말씀하신 200억은 터무니없는 가격인 거죠.”

그러자 거래 상대방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럼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1억 달러.”

1억 달러.

환율을 따져보면 천억이 넘는 돈이었다. 놀란 김봉수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허억!”

거래 상대방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강철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에서부터 협상을 시작해 보시죠. 저희 알고리즘의 단점을 잘 이야기해 보시면 좀 깎아드릴 수는 있습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요.”

과거 스타트업 창업자 대상 교육 당시 협상에 관해서도 배웠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세요.

-그걸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해 나가는 겁니다.

-그게 바로 협상입니다.

강철은 그 이론을 그대로 실천했다.

* * *

강철의 예상대로 들어맞았다. 그건 협상 자리에 알고리즘 전문가를 데리고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관심 있는 건 게임에 적용된 알고리즘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뿔테 안경을 착용한 남자가 영어로 입을 열었다.

“볼트 머신은 아시다시피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질 않습니다.”

강철이 영어로 답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정했습니다. 기초 데이터가 없어도 작동할 수 있도록. 소형기기에 적합하도록. 어떻습니까? 지금 텐센트에 딱 필요한 기술 아닙니까?”

“…….”

“디자인 조금 바꾸고, 게임 방식 그대로 차용한다고 해서 비슷한 재미를 내진 못할 겁니다. 이런 기술이 없으니까요.”

이 기술이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이냐?

그건 아니었다. 미래에는 오픈 소스로 풀리니까.

그렇다고 쉬운 기술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텐센트에서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려움과 쉬움 그 중간 정도 단계에 있었다.

“본인이 알고리즘 튜닝을 했고, 그래서 이런 성능을 낼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고 완벽하게 소형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서버에 쌓이는 사용자 플레이 데이터도 조금 이용하고 있습니다. 스테이지가 올라가는데 적이 그대로면 재미가 반감되니까요. 그래서 천억을 주장하는 겁니다. 완벽하지 못하기에. 완벽했다면 더 큰 금액을 불렀을 겁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비쌉니다. 코드도 모른 채 천억이라니. 막상 구매했다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해당 부분에 대해 개념적인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럼 일단 400억에 사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시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게 핵심인데 듣고 나서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듣고 나서 헛수고라 생각되면요?”

그 말에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련 수식을 적어나갔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볼트 머신의 수식을 적어낸 것이다.

“이게 볼트 머신의 원 수식입니다. 보시면 제곱 승수가 붙어 있어 필요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해결한 건 이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했냐.”

강철이 다시 보드 마카를 움직였다. 그리고 겨우 2줄을 쓰고 멈추었다.

“자, 맛보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결정하세요. 어차피 게임을 통해 결과물을 봤으니 어떤 건지는 충분히 아시잖아요.”

“……잠시 저희끼리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봉수에게 눈치를 주었다. 김봉수와 함께 퍼그 쪽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김봉수가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휴우…… 사장님.”

“네.”

“분위기 보니까…….”

“최소 400억은 가능하겠죠?”

김봉수가 위, 아래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김 사장님이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낸 덕분이죠.”

“아닙니다. 이번 게임의 핵심 요소는 적 AI인데 그걸 이 사장님이 만들어주셨잖아요.”

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아니었어도 김 사장님은 충분히 해내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정도 능력이 되니까 제가 투자를 진행한 겁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지금 수준의 성능은 아니더라도 내년에 적 AI를 성공적으로 개발해 게임을 출시했으니까. 그랬기에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진심을 느낀 김봉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진심으로 감동을 한 표정이었다.

면도하지 않아 까끌까끌하게 돋아난 수염에 팔다리에 잔뜩 근육이 붙어 있는 남자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강철은 괜히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이 김봉수 의리 빼면 시체입니다. 앞으로 죽어도 사장님과 같이 죽고 살아도 사장님과 같이 살겠습니다.”

“……네?”

“사장님.”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봉수가 말을 이었다.

“이걸 팔고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답하질 못했다. 그사이 김봉수가 말을 이었다.

“퍼그 AI를 만들어내신 능력이나 오늘 텐센트와 협상하는 모습에서 정말 많은 걸 느꼈습니다.”

강철이 미간을 긁적거렸다. 김봉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제가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포엔을 넘어서겠다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더군요. 자금은 떨어지는데 게임은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텐센트가 200억을 제시했을 때 빨리 회사를 팔고 싶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이것도 솔직한 말이었다.

강철도 저 기분을 뼈저리게 느꼈다. 김봉수는 다행히 끝이라도 보았지 강철은 터널 중간에서 어이없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김봉수는 살짝 오해한 것 같았다.

“아닙니다. 사장님은 아닙니다. 당장 500억은 받을 수 있다며 절 설득하셨고, 협상장에서는 400억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채 상대를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굳이 그런 말로 절 위로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장님의 배포가 저보다 크십니다.”

아니라니까요. 100억이었으면 사장님도 거절하셨을 겁니다.

강철의 그런 속마음은 전달 되지 않았다.

“이번에 절절히 느꼈습니다. 포엔을 이기겠다고 나와서는 겨우 200억에 흔들리다니 역시 사업은 범인들의 영역이 아닌가 봅니다.”

이제 김봉수의 두 눈에서는 숫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김봉수가 이글이글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혹시 허락하신다면 아이온에서 사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과 성을 다해 사장님을 거들겠습니다.”

“……아.”

“이걸 팔고 나면 아이온에 들어가 사장님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강철이 입을 떡 벌린 채 김봉수를 보는 사이.

다행히 회의실 문이 열렸다.

“다시 이야기하실까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 * *

대산 그룹 본사.

거기에 정현진 팀장이 이끄는, 대산 닷컴 전산지원팀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 한편에 있는 커다란 회의실에 A4용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대산 닷컴 추천 시스템 개발팀.

정현진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팀장님.”

정현진의 말에 호리호리한 체격에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네.”

정현진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흔들며 말했다.

“중간 결과 보내주신 거요. 이게 맞는 수치입니까?”

남자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두 달 만에 구매율 30%, 오차 범위 10%는 불가능하다고.”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추천 상품 고객 구매율 4%.

-매출 예측 오차 23%.

정현진이 받아든 수치였다. 이런 데이터를 생각하고 이들을 채용한 게 아니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말씀하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쌓여 있는 백화점 데이터를 전부 드렸잖아요.”

“양보다는 질입니다.”

“네?”

“보내주신 데이터의 절반은 분석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어요. 처음부터 목적성을 정확히 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 이건 마치 쓰레기 더미를 주고선 그 안에서 보석을 찾아내라는 격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말씀하신 많은 데이터라는 전제 자체가 틀린 겁니다.”

상대는 정현진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성전자에서 특별히 스카우트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개발자를 더 붙이면 성능이 좋아질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능력 있는.”

그러면서 회의실에 있는 다른 개발자들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미친 곳에 있는 건, 대산 D&S의 개발자들이었다. 정현진은 그 시선의 의미를 대번에 알아들었다.

“…….”

“저런 분들 붙여주시면 제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가르쳐야 합니다.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린다 했죠? 그런데 그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정현진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현진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괜찮다고 소문난 친구들로 보낸 건데…….’

그런데도 실력 발휘는커녕 일을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냐며 타박을 들었다. 그만큼 오성전자에서 넘어온 최수철의 실력은 대단했다.

‘하아…….’

정현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다음 발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팀장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다른 팀의 팀원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 팀원으로 가게 되면 다들 옷을 벗은 것이다.

한숨을 내쉬는 정현진을 향해 최수철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어떤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마세요.”

“……네?”

“어차피 이건 절대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를 이기는 게임입니다. 오성전자에서 항상 했던 일이에요.”

“아…….”

“이 수치로도 상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대산 D&S에서 가장 실력 있다는 분들이 어떤 상태인지 정 팀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러자 정현진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우리 쪽 개발자가 최수철 팀장에게 배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면 그쪽에 있는 개발자들도 비슷한 상태일 테고…….’

결국, 최수철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신의 입지는 유지된다. 어차피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이었다.

생각을 마친 정현진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네.”

고개를 끄덕인 최수철이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 * *

비슷한 시각.

강철은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럼 600억.”

반대편에 앉아 있던 전문가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알겠습니다. 대신 최대한 코드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두 달 정도는 원격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전문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정말 우리 쪽으로 넘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최대한 ‘급’에 맞는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강철의 입가에 썩소가 그려지다 사라졌다.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버림당한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

좋은 대우를 약속받고 넘어갔다가 머릿속에 든 지식만 넘기고 수년 뒤 한국행을 택한 기술자들의 뉴스를 수도 없이 봤다. 강철은 절대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하, 네. 전 지금에 만족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걸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텐센트 쪽 사람들이 전부 떠나고.

회의실에는 김봉수와 강철만이 남아 있었다. 강철이 김봉수를 보며 물었다.

“아까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 하셨죠.”

김봉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 주변 승모근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그 모습에 강철이 살짝 움찔거렸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럼 아이온에 들어오셔서. 게임 한 번 더 만들어보시겠어요?”

“혹시 생각하신 게임 있으십니까.”

강철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김봉수를 보았다.

“하하, 네. 몇 가지가 있습니다.”

대답한 강철이 속으로 생각했다.

‘미래 사장님께서 성공한 게임들이 몇 작품 더 있거든요.’

물론 실패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성공한 것들도 있었다.

강철은 그중 엑기스만 맡겨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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