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8화 (8/59)

8장 제가 만들었습니다

미국 시애틀.

윌마트 IT 본부에서 근무하는 루이스 캐스는 캐글에서 종료된 M1 Forecasting 문제의 결과를 살펴보았다.

“흠…….”

루이스 캐스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1등이 문제를 푼 코드였다.

“이 사람은 K-means Clustering을 썼구나……. K값을 잘 조절해서 적절한 결괏값을 찾았네.”

루이스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모니터에는 난해한 수식이 한가득 화면을 채우고 있었지만, 루이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에게 이건 흥미로운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런 루이스에게 동료가 한 명 다가왔다.

“결과가 어때?”

“이제 막 1등 수상자 결과물을 보는 중인데 꽤 흥미로운 점이 보이네.”

“그래?”

“간단하게 K-means Clustering을 사용해서 문제를 풀었어.”

그러자 동료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너한테나 간단한 거 아냐?”

“아니야. 진짜 간단해. 이게 어떻게 작동하면 말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루이스가 막 설명하려는 걸 동료가 막았다.

“크큭, 알았다. 알았으니까. 어서 다음 거나 살펴봐 봐.”

“2등 한 사람 거는 크게 볼 게 없어. 그냥 무난해.”

“그럼 3등은?”

“어디 보자…….”

루이스가 모니터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렇게 한 10분이 지난 뒤 짧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이것도 크게 참고할 점은 없네.”

그러자 동료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럼 10만 달러나 썼는데 크게 참고할 만한 건 없다는 거 아냐? 치프 엔지니어가 단단히 벼르고 있어서 성과가 좀 나야 할 텐데…….”

그때.

다음 순위를 확인하던 루이스가 눈을 반짝였다.

“잠깐만.”

“응?”

“이건 좀 흥미로운데…….”

루이스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동료가 바짝 고개를 내밀며 모니터에 쓰인 코드를 살폈다.

그도 윌마트의 시니어 엔지니어였다. 이 정도 코드는 단숨에 이해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이건…… 라이스터 회귀 분석이잖아. 그중에서도 최소 제곱 대안법을 썼네.”

“그런데 좀 달라.”

“다르다고?”

“너도 이건 알다시피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잖아.”

“전체 평균값 왜곡?”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처음 이 데이터를 가지고 캐글에 문제를 냈던 이유가 뭐였지?”

“아웃 라이어가 너무 많아서.”

아웃라이어.

대부분의 데이터는 평균값 근처에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 둘 중 하나였다.

-데이터가 잘못 수집되었다.

-분석 방법이 잘못되었다.

루이스는 2번이라 확신했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캐글에 문제를 낸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면 그게 해결될 것 같은데?”

“라이스터는 우리도 검토했던 알고리즘이잖아. 아까 말했듯이 평균값…….”

동료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이스가 말했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 같아.”

동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4위라며?”

“지금 당장은 그렇지. 그런데 조금만 바꾸면…… 꽤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은데. 너도 알다시피 이건 우리가 올린 데이터에 한정돼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프로토타입 같은 거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좀 더 자세히 모니터를 살펴보던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확실해. 이거 변형하면 괜찮은 작품 나올 것 같아. 이왕이면 이거 제출 사람이랑 대화하면서 했으면 더 확실할 것 같은데…….”

루이스가 작은 바람을 담아 제출자 아이디를 클릭해 보았다. 그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응? 이거 올린 사람이 한국 사람이야?”

“한국이라…….”

루이스에게는 너무 먼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시대였다.

“일단 메일부터 보내보자.”

루이스가 소개란에 쓰여 있는 메일 주소로 보낼 메시지를 작성해 나갔다.

[안녕하세요. 윌마트 데이터 분석 부서에 근무하는 루이스 캐스입니다. 귀하가 캐글에 제출하신 답안이 인상적이어서 연락 드리게 되었습니다.]

메일을 보낸 후 순위권 바깥의 답안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참고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루이스는 4위 returner의 답안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 * *

강철을 비롯해 하진기, 김정민이 대산 그룹 본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진기가 강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연습했던 것처럼만 하자.”

살짝 굳어져 있던 강철이 애써 표정을 풀며 답했다.

“네.”

김정민이 하진기를 보며 물었다.

“하 팀장님. 혹시 진 전무님 만나본 적 있으십니까?”

“한 번 있어. TF팀 처음 만들어질 때.”

“그 전에는…….”

하진기가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 회장님 동생이야. 내가 만나볼 일이 있나.”

“하긴…….”

“듣기로는 엄청 깐깐한 분이라고 하시던데 진짜 강철이 브리핑해도 되겠죠?”

하진기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그럼 너 저 알고리즘 발표할 수 있어?”

그 말에 김정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못 할 것 같습니다.”

“나도 비슷해. 하라면 할 순 있는데 쿡 찌르면 바로 탈탈 털릴 것 같더라. 그래서…….”

말을 하던 하진기가 고개를 돌려 강철을 보았다.

“네가 직접 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더라. 그리고 네 공인데 네가 차지해야지. 너도 이제 알겠지만, 상사 앞에서 브리핑한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야.”

“네.”

“그래, 가보자.”

하진기가 먼저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강철이 그 뒤를 따랐다.

30명은 충분히 들어갈 법한 거대한 회의실.

그곳을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이 꽉 메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하진기를 보며 말했다.

“하 팀장. 진짜 괜찮겠어?”

“하하, 네. 충분히 준비시켰습니다.”

“하 팀장도 알지? 오늘 TF팀 전부 모인 거.”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에는 차지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지철.

대산 그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산 백화점의 마케팅팀장이었다. 그리고 하진기보다 입사 기수가 높은 사람이기도 했다.

“네.”

“하 팀장이 충분히 준비시켰다니 내가 더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강철은 말석에 앉아 정면을 보고 있었다. 아직 가장 상석에 앉아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았다.

‘진선미 39세. 대산 일가의 막내딸. 스탠포드 출신에 미혼. 깐깐한 성격이라 보고서의 오탈자 하나 놓치지 않는다. 일에 미쳐 있다고 알려져 있음.’

강철이 기억하고 있는 전선미의 프로필이었다. 김정민이 그런 강철을 보며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괜찮지?”

강철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실제로 괜찮았다. 45살까지 살며 산전수전 다 겪어보았기 때문인지 크게 긴장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진선미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들 뿐이었다. 강철도 진선미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일까.’

그런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외모만 보면 전혀 39살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많이 쳐줘도 30대 초반? 20대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돈의 힘인가…….’

그런 그녀 옆으로 한 노신사가 함께 따라 들어왔다. 그 신사를 본 강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런 강철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리에 앉은 진선미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회의 내용인 추천 시스템. 거기에 들어가는 주축 알고리즘이 라이스터 회귀 분석이라 들었어요. 맞나요?”

하진기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보내준 자료를 보면 한국대 라영건 교수님의 논문을 참고했다고요.”

하진기가 눈치를 주자 이번에는 강철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라영건 교수님을 직접 초빙했어요. 오늘 하는 내용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라 교수님 인사 부탁드려요.”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노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한국대 라영건입니다. 졸작 논문을 참고해서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오게 됐습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지 않던 강철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출현에 마른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진선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들 바쁘신 분이니까. 바로 시작할까요.”

강철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대산 D&S 이강철입니다.”

“알고 있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네. 그럼 개요는 넘어가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강철이 들고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그러자 준비된 PPT가 ‘휙휙’ 넘어가며 바로 본론 부분이 나타났다.

-라이스터 회귀 분석.

-CF 기반 모델링.

-딥러닝 기반 모델링.

“대산 닷컴 리뉴얼에는 이렇게 총 3가지 알고리즘을 조합해 추천 시스템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럼 첫 번째 라이스터 회귀분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내 화면에는 난해한 수식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수식을 살피던 라영건이 말했다.

“제 논문에 적혀 있던 것이라 부르긴 힘드네요. 수정이 너무 많이 됐어요.”

“아, 네. 해당 논문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참고만 했습니다. 그대로 적용해 봐도 아웃라이어 데이터를 일정 수준까지 분석할 수는 있었지만, 주를 이루는 데이터는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질 않아서요.”

“흠…… 논문을 쓸 때 고민했던 부분을 아프게 찌르는군요.”

“교수님 논문에서 참고했던 부분은 라이스터 회귀분석의 최소 제곱 대안법을 사용해 알고리즘의 단점을 개선한 점입니다. 하지만 전 논문에서 사용하신 최소 제곱 대안법처럼…….”

한창 신나게 말하던 강철의 옆구리를 김정민이 쿡 찔렀다.

“쉽게.”

“아…….”

강철이 정신을 차리고 회의실을 보니 다들 멍하니 PPT를 볼 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내용 이해를 못 한 것이다.

그런 풍경을 이해한 라영건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냥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하나 제안했고, 저 직원분이 그걸 수정 보완해서 새롭게 만들었다. 미리 PPT를 받아서 결과물을 보니 성능도 더 뛰어난 것 같더군요.”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가로 넘어갈까요?”

잠시 멍하니 화면을 보던 진선미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대답했다.

“그, 그래요.”

강철이 버튼을 눌러 다시 화면을 넘겼다.

이 알고리즘이 실제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시 화면으로.

회의가 끝나고.

진선미와 라영건이 차를 두고 마주 앉았다.

진선미가 찻잔을 들며 물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발표한 논문보다 나은 면도 있었고요. 물론 대체적으로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긴 합니다.”

“그 말씀은 저걸 보완 발전시키면 우리도 ‘나일’의 추천 시스템 같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라영건도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턱을 쓱 문지르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기술은 몇 가지 알고리즘으로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몇 사람의 아이디어로 되지도 않고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실제 상용화를 거쳐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나일의 한국진출이 가시화되고 있어요. 조바심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조바심내실 건 없습니다. 오늘 회의가 대산 그룹 추천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어떤 시작점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시작점이라는 말씀은…… 저 직원이 가져온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시작점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괜찮은 건.”

“사람 말인가요?”

라영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 전무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어떤 일을 할 때 처음부터 대성공을 거두지는 않습니다. 실패하고, 수정 보완하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 보완하다 보면 그 기록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성과를 내고 있죠.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용해보고, 수정 보완해 발전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걸 끈기 있게 해나가는 사람이 필요한데…… 잠깐이었지만, 그 직원. 가능성이 보이더군요.”

“흠…… 불과 한두 시간 정도 보신 거로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 아닌지…….”

“저 청년이 처음부터 제 논문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을까요?”

그 질문에 진선미가 찻잔으로 가져가던 팔을 멈칫거렸다.

라영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수 많은 논문을 살펴봤을 겁니다. 그전에 무수한 알고리즘을 검토했을 테고요. 들어보니 본업은 따로 있고, 과외로 그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진선미도 라영건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진선미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라 교수님이 인정한 친구라…….’

라영건.

한국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는 손에 꼽히는 학자였다. 그런 사람이 인정하자 진선미의 관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이강철…… 기억해 둬야겠어.’

라영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노력이 헛되기만 했다면 거기에서 끝이었을 겁니다. 전무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사회는 성과를 내는 친구를 원하니까요.”

“성능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리고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낼지.”

그 말에 진선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앞으로 기술 자문 역할을 맡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라영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신 역할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라영건이 손을 내밀었다. 진선미가 그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 *

비슷한 시각.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본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락을 받은 최석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네.”

“알겠습니다.”

“당장 팀을 꾸리겠습니다.”

“네.”

“지시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최석찬 이사가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굳어진 최석찬의 표정 덕분에 회의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방금 진 전무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한 통 왔어.”

진 전무라는 말에 직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회장 일가인 진선미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본사에서 추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데 최초 적용을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정했다고 한다.”

자리에 참석해 있던 유혜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추천?’

그 단어를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이강철의 이름이 떠올랐다.

‘설마…….’

유혜인이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최석찬이 말을 이었다.

“관련해서 우리가 필요한 서비스 기획이나 발생하는 데이터 제공 등등 실무적으로 적극 협력을 해주라고 하시네. 대산 D&S에서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래서 그걸 담당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최석찬 이사의 눈이 직원들을 쭉 훑었다. 과장에서부터 대리, 주임까지.

그러다 유혜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차세대 시스템도 잘 오픈했고,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하니까.’

최석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 대리가 한번 해보는 건 어때?”

“하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일의 종류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하긴 설명이 너무 짧았지. 본사에서 온 메일 공유해 줄 테니까. 한번 보고 말해줘. 그럼 회의는 이걸로 마치지.”

최석찬의 말을 마지막으로 짧은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유혜인은 바로 최석찬이 공유해 준 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메일을 보자마자 자기 생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참여 인원

-대산 D&S 하진기 부장.

-대산 D&S 김정민 과장.

-대산 D&S 이강철 주임.

보고서에는 이강철의 이름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어…….’

보고서의 내용은 과거 부산에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 대화는 내용이 구체화 된 형태였다.

유혜인은 좀 더 집중해서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추천 시스템 개발.

-추후 해당 시스템은 그룹사 전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

유혜인의 시선이 그 문구에서 멈추었다.

‘그룹사 전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전 영역…… 전 영역…….’

유혜인은 그 문구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서비스 예시

-고객 구매 데이터 이용 상품 추천(30% 이상 매출 발생)

-매출 추이 분석을 통한 매출 예측(정확도 90%)

-파주, 여주, 부산 지점별 고객 동선 분석을 통한 매장 위치 최적화.

……,

그 밖에도 몇 가지 서비스 예시가 있었다. 그리고 예시 하나하나가 강철이 했던 내용이었다.

보고서를 끝까지 읽은 유혜인이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거 잘만하면 핵심인재에 들 수도 있을 정도의 프로젝트네.’

강력한 촉이 왔다.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서 어떤 위치를 지킬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그렇다면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이 프로젝트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준비해 주축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가장 필요한 지식이…….

‘통계.’

유혜인은 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 책을 주문했다.

공부라면 자신 있었으니까.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강철은 대산 그룹 본사를 찾았다. 핵심인재 선정을 위한 1차 전문가 면접을 위해서였다.

벌써 수 번째 오는 것이어서인지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강철은 건물 앞에서 손재식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올라가겠습니다.”

강철은 손재식의 안내에 따라 건물 5층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 잠시 앉아 있자 손재식 대리가 음료 한 병을 들고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신입이 서류 통과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는데 강철 씨가 최초라는 기록을 쓰게 되겠어요.”

“하하, 아닙니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닌데요.”

“얼마 전 본사에서 회의하셨다고요?”

“네.”

손재식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벌써 소문 다 돌았습니다. 회의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

“그 정도면 이번 면접도 충분히 통과할 겁니다.”

그러면서 손재식이 눈을 찡긋거렸다. 마치 자신이 1차 전문가 면접을 100% 통과할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강철은 그저 의례 하는 소리라 생각했다.

“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면접관님도 도착하셨다고 하니 곧 들어오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네.”

손재식이 나가고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노신사가 결제 판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 사람을 본 강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교수님?”

“하하, 반갑군.”

라영건 교수가 환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강철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그제야 손재식 대리가 했던 말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충분히 통과될 거라는 게 이런 말이었나…….’

라영건 교수가 말했다.

“이번에 데이터 분석 관련 대산 그룹 고문을 맡기로 했어. 마침 핵심인재 추천에 전문가 면접이 있다면서 혹시 시간이 되냐기에 상대가 누구냐고 물었지.”

“아…….”

“그랬더니 자네라고 하지 않겠나. 하하,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였지. 마침 그때 못 한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야.”

“네.”

“자, 앉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그때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자리에 앉은 라영건이 신이 난 어린이의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그 수식부터 자세히 듣고 싶은데 혹시 괜찮겠나?”

수식.

아마 자신이 만든 그 수식을 말하는 것이리라.

회사 외부인이라면 알려주는 것이 꺼려졌겠지만 라영건 교수는 회사의 고문이었다.

강철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보시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바로 말씀 주세요.”

“하하, 그러지. 그러려고 고문을 맡은 것이기도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강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관련 수식을 적었다.

이내 면접이라기보다는 토의가 벌어졌다. 그 순간 면접은 통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토의라는 것은 서로 말이 통한다는 뜻이었고, 그건 곧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인 라영건이 상대를 인정한다는 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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