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이달의 우수사원
회의실.
김정민이 강철을 보며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에이글 순위권 입상이 가능할까?”
“순위권이라 하시면 상금을 탈 수 있는 순위 말입니까?”
“맞아. 물론 거기에서 순위권에 드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거로 알고 있어. 입상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래도 최선은 다해보려고 합니다.”
“그래, 여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만약 순위권까지 들게 된다면 이 주임이 만든 알고리즘으로 우리 회사 추천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아…….”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이 주임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거야. 이를테면 핵심인재 선정 같은.”
강철은 핵심인재가 뭔지 알고 있었지만 놀란 척 되물었다.
“핵심인재요?”
“아직 신입이라 모르겠지만 회사에 S, A, P 급으로 나뉘는 핵심인재 관리 프로그램이 있어. 그리고 그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지.”
S 스페셜의 약자, A 알파의 약자, 그리고 P 포텐셜의 약자였다.
만약 해당 부분에 채택이 되면 진급에서부터 연봉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관련 정보는 핵심인재에 포함된 인원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극비사항이었다.
김정민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팀장님께서 거기에 널 추천하시겠다네. 에이글에서 순위권에 들 정도면 능력은 입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주임은 핵심인재가 되고 우리는 추천 시스템에 사용할 알고리즘을 얻고 서로 윈윈하자는 거지. 물론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고 해도 TF팀에는 포함될 거야. 다만 알고리즘 사용이나 핵심인재 추천은 안 될 수도 있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도 무척 중요한 일이야. 이번 대산 닷컴 리뉴얼의 핵심은 추천 시스템이 될 거라.”
“회사에서도 온종일 관련 일을 하게 된다면…… 한 일주일 정도면 다시 수정해서 올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할 수 있다는 말이지?”
“네.”
“내가 그때까지 다른 일은 다 커트해 줄 테니까. 거기에만 신경을 써줘.”
“알겠습니다.”
강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미국 에이글 본사의 론 브라운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올라왔다.”
“oh my gosh! 다시 4위로 올라왔잖아.”
함께 있던 동료가 론을 부추겼다.
“어서, 어서 확인해 봐.”
그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론이 관리자 페이지를 조작해 ‘리터너’의 채점표를 확인했다.
-10, 10, 10, 1, 2, 1, 10, 10…….
점수가 쭉 나열되어 있었고, 총점 1,100점을 기록했다. 그전에 올렸던 것의 점수가 800점이었으니 총 300점이 향상된 것이다.
론은 점수가 향상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다른 것에 주목했다.
“네 말이 맞았어…….”
“1점짜리 항목들이 10점으로 변한다는 거?”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하네. 특이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있었나?”
“한 번 있었지.”
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2년 전에 에이글 역사상 처음으로 만점을 받았던 사람 있잖아.”
“아…… 덕분에 바로 나일의 임원으로 갔던.”
동료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리 가드너. 이제는 나일의 추천 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다고 알려졌지. 그 사람의 답안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정확하게 이런 식이었다. 1점 아니면 10점. 그리고 점점 1점이 10점으로 바뀌는 거지. 그래서 내가 더 주목했던 거고.”
“너 설마…… 이 친구가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야?”
그러자 동료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물론 안 될 수도 있고. 하지만 지켜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은데?”
론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문제 답안 제출 기간이 언제까지였더라…….”
“앞으로 2주. 그 안이면 결판난다.”
론은 그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밤 11시.
퇴근한 강철이 모니터를 보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됐다.”
M1 Forecasting.
-Leaderboard
-1위. Media
-2위. dyhhhttt_SSU
-3위. LOL_LATA
-4위. retuner
-5위. gilGosh
…….
자신이 올린 수정본이 당당히 4위에 랭크 되었다. 순위권에 든 것이다.
하지만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1등까지는 어렵네.”
열심히 한다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높은 순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기존 논문 지식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공식들이 활용은 되지만 기초가 너무 부족해서 응용에 한계가 있어.”
기존에 나와 있는 기술들을 활용하는 건 어느 정도 되지만 기초 지식이 없다 보니 응용 발전이 잘되지 않고 있었다.
과거 사업을 할 때도 그랬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인 나일, 페이스북, 애플, 서치 등등에서 공개한 프로그램을 활용은 잘했지만 응용해서 더 발전된 무언가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강철이 입을 꾹 다문 채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이걸 보완하자면 기초 지식인 통계나, 수학. 그리고 응용학문인 데이터 분석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는데…….”
그러자 강철의 머릿속으로 죽기 전 들었던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난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해줄 생각이네.]
그 서슬 퍼런 목소리가 말했던 한 가지가 머리와 관련된 것이라는 걸 완연히 느꼈다.
“영어 실력이 안 돼서 포기했던 코세라 강의를 한번 들어볼까.”
코세라.
하버드, 스탠포드, MIT 등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무료 강의를 받아 서비스하는 1세대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 온라인 공개수업) 플랫폼이었다.
여기에는 유명 대학만이 아니라 SBM이나 서치 같은 유명 기술 기업들의 강의도 많았다.
강철은 바로 코세라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통계 강의를 검색해 보았다.
-Statistics with Python.
-University of Michigan.
-Basic of Statistics
-MIT.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한 곳인 미시간 대학에서 올려놓은 강의를 비롯해 수십 개의 강의가 올라와 있었다.
강철은 그중 하나를 바로 플레이했다. 그러자마자 백인 강사가 나와 영어로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였다면 분명히 이해되지 않았어야 할 내용이 듣자마자 해석이 되었다.
“본 강의는 파이선으로 시작하는 기초통계학 강의입니다. 총 32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강의를 1.5배속으로 빠르게 돌려보았다.
‘들린다.’
빠르게 영어가 플레이되는데도 귀에 쏙쏙 들어오며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이 강의는 영어를 알아도 이해가 힘든 강의였다.
통계.
그걸 일반인이 이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1.5배속으로 틀어놓았음에도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해가 되고 있었다.
‘나 정말 엄청 똑똑해졌잖아.’
강의를 들으며 지식이 늘어날수록 자신감이 붙어나갔다.
* * *
대산 D&S 프리미엄 아울렛 지원팀 강남 사무실.
한 통의 메일을 받은 박철수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제목 : 차세대 시스템 점검 후속조치.
-발신자 : 유혜인
-수신자 : 프리미엄아울렛 전산팀.
-첨부 : 후속조치.xlsx.
-안녕하세요. 프리미엄아울렛 유혜인 대리입니다.
차세대 시스템 관련하여 사용해 본 결과 수정해야 할 사항을 첨부하오니 업무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엑셀을 열어보자 수정해야 할 사항이 대략 30가지가 넘었다.
간단한 화면 수정에서부터 기능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할 것까지. 당장 다음 주면 시스템을 오픈해야 하는 마당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철수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걸 언제 다 수정하라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생각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는 절대 못 해.”
박철수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김정민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일이 너무 많다?”
“네.”
박철수, 조용훈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철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스템 두 개를 동시에 운영해야 하는 마당에 차세대 오픈이 앞으로 1주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직 미구현된 기능들도 몇 개 있고요. 더구나 과장님도 보셨다시피 현업이 보내온 수정 사항이 엄청납니다. 여기 조 주임은 과장님이 시키신 화면 개발로 바쁘고요. 최대한 일정에 맞추려면 신입도 여기 투입해야 합니다.”
김정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주면 강철이 풀고 있는 문제 종료일인데…… 하필이면 날짜가 이렇게 겹치나.’
조용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신입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팀에서 가장 급한 일은 차세대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오픈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장님도 아시잖아요. 시스템 오픈 전후로 얼마나 바쁜지.”
김정민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둘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화를 내며 쫓아냈으리라.
“유 대리가 보낸 수정 사항.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단단히 마음을 먹은 박철수는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협력사에서도 작업 마무리 중이라 일정 부분은 제가 처리 해야 하는데 과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제가 좀 느린 편이라. 일주일 안에는 절대 못 합니다.”
김정민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박철수를 보았다.
‘쯧쯧, 못 한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히 할 수 있다니.’
박철수와는 같은 팀에서 절대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같은 팀이니 어떻게 해서든 일을 꾸려 나가야 했다.
“절대 안 돼?”
박철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 당장 협력사에서 들어오는 테스트 요청만 수십 건을 넘어갑니다. 그걸 일일이 전부 다 확인해 줘야 해요. 그리고 한 달 동안 시스템 두 개를 동시에 운영하기로 했잖아요. 그것만 해도 저 혼자 감당이 안 됩니다. 거기에 유 대리가 보내온 수정 사항이 더해진 겁니다.”
김정민이 조용훈을 보며 말했다.
“넌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한다고 해도 화면 하나 하는 데 하루는 걸립니다. 그새 만들어야 할 화면이 늘어나서 최소 2주는 필요합니다.”
김정민이 짜증 섞인 투로 물었다.
“화면이 왜 늘어나?”
“오늘 보셨다시피 현업에서 계속 수정 요청이 오니까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그걸 그냥 협력사에 요청하면 협력사 입장에서는 일 늘어나니까 제대로 안 해줍니다.”
“하아…… 그럼 시스템 오픈하고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나마 중요도가 낮은 화면은 뒤로 미룬 게 이 지경입니다.”
질끈 입술을 깨문 김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리고 김정민은 생각했다.
‘어차피 에이글에 올라온 문제야 또 다른 것들도 있으니까. 그걸 풀면 되겠지. 이번은…… 포기하자.’
에이글에는 여러 문제가 올라온다. 차세대가 안정적으로 끝난 후에 풀어도 되리라.
“그럼 조 주임이 하고 있던 화면만 일단 신입에 넘기면 될 것 같아?”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넘기고, 현업 수정 사항 용훈이랑 나누면 숨통은 트일 것 같습니다.”
“알았어. 강철이 들어오라고 해.”
어두워져 있던 박철수의 표정이 겨우 밝아졌다.
* * *
며칠 뒤.
WBS를 살피던 협력사 신우시스템의 신종권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옆자리에 있던 천 대리가 물었다.
“왜요? 뭐 잘못됐어요?”
“아니. 갑자기 완료가 왜 이렇게 많아졌어.”
천 대리가 고개를 쑥 내밀어 모니터를 살폈다.
-실시간 정상 상태 조회. 이강철, 완료.
-실시간 전 매장 매출 조회. 이강철, 완료
…….
-정산 롤백 기능. 이강철, 완료.
-영업정보시스템 접근 아이디 생성. 이강철, 완료.
이강철이라는 이름으로 완료된 기능이 상당했다. 얼마 전까지 진행 중으로 표시되었던 기능이었다.
“……이거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설마 자기가 만들어놓고, 자기가 됐다고 완료 쳤을까 봐요?”
“지난번에 프리랜서 한 놈이 그런 짓 하고 도망쳤잖아.”
그때가 생각난 천 대리가 입을 벌렸다.
“아…… 하긴 그런데 이강철이라면 여기 신입사원인데…….”
“신입?”
“왜 지난번에 화면 테스트 툴 만들어준 사람 있잖아요.”
“그게 이 친구야?”
“네.”
“아무리 화면 테스트 툴을 만들었다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냐? 거의 하루에 화면을 두 개씩 만든 꼴인데. 신입이라 의욕만 넘쳐서 막 완료 치고 있는 거 아냐?”
“하긴 그 정도면 너무 빠르긴 한데…….”
“한번 확인해 봐봐. 짬 시키다가 나중에 우리한테 미룰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같이 X되는 거야.”
천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WBS에 완료라고 표시된 기능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정상.
-정상.
-정상.
-정상.
-정상.
다섯 개 정도를 확인해 보니 전부 정상 작동하였다.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다 잘되는데요.”
하지만 신종권은 믿지 못했다.
신입.
그것도 입사한 지 불과 수개월도 되지 않은 병아리가 이토록 일을 빠르게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갑’사와 일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진짜?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네. 잘되는 것 같은데…….”
그때.
진행 중으로 표시되어 있던 기능 하나에 또다시 완료 표시가 떴다.
클라우드상에서 공유된 엑셀 파일을 작업 중이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고 매출 고객 확인. 이강철, 완료.
그걸 보고 있던 박철수도 믿기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 주임. 잠깐만요.”
“네. 대리님.”
박철수가 가장 최근에 완료를 표시한 기능을 가리켰다.
“이거…… 제대로 한 거 맞아요?”
“네. 맞습니다. 멤버쉽 카드를 가진 고객들을 지점별, 브랜드별로 구매 이력을 볼 수 있는 화면을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게 맞긴 하는데…… 너무 빨리하는 것 같아서. 이 주임도 알다시피 일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일일이 확인해 줄 수가 없어요. 이 정도는 이 주임이 직접 만들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박철수가 피곤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 문제가 없다?”
“네.”
강철의 일관된 태도에 박철수의 목소리에 짜증이 서리기 시작했다.
“만약 문제 있으면 어쩔 겁니까?”
강철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
문이 열리고 김정민이 별도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나왔다.
“야, 내가 확인해 봤어. 제대로 했더라.”
강철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과장님이 확인해 보셨다고 하네요.”
박철수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그러면야. 된 거긴 하지만.”
김정민이 강철을 보며 말했다.
“이 주임은 잠깐 들어와 봐. 할 말이 있으니까.”
“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강철의 뒷모습을 보며 박철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일을 너무 많이 맡긴 것 같아서.”
김정민의 첫 마디였다.
“괜찮습니다.”
강철의 대답이었다.
“데이터 분석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없을 텐데.”
강철은 거듭 강조했다.
“팀에서 원래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요. 진짜 괜찮습니다.”
김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에서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강철.
그가 하는 일이 신입임에도 대리인 박철수나, 조용훈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올해 인사고과는 걱정하지 마. 나랑 팀장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A+로 받아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김정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래서 진행 상황은 어때? 순위권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순위권.
김정민에게는 그게 중요했다.
이 알고리즘이 에이글 순위권에 들었던 알고리즘이다. 그 경력이 있어야 추천 시스템이 설득력을 얻고, 빅트리 TF를 총괄하고 있는 본사 임원을 설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철은 당장 장담하기 힘들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워낙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서요.”
“흠…… 아무래도 그렇겠지.”
“동료라도 있으면 토의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안 되니…….”
“이해해.”
그래서 김정민도 데이터 분석 관련 전문가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근래 관련 직종 전문가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버렸다. 채용하고 싶어도, 인원이 없었고 부르는 연봉은 너무 높았다.
강철이 두 눈에 바짝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도 잘될 겁니다. 반드시 순위권 내에서 마무리되도록 하겠습니다.”
김정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리하진 말고.”
“네.”
“바쁜데 내가 너무 잡고 있었네.”
“아닙니다.”
“그럼 잘 부탁해.”
“네.”
살짝 고개를 숙인 강철이 다시 일하러 나가고, 김정민이 묵묵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압구정.
대산 각 백화점 지점을 총괄하는 본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박인영이 들고 있던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바로 위 과장이 한 말 때문이었다.
“그…… 이강철? 그래, 이강철이 너랑 동기지.”
“네. 맞아요.”
과장이 하얀 쌀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 친구 요즘 아주 핫하더라. 안 그래도 이달의 우수사원 주요 후보였는데 위에서 찍었나 봐.”
“찍, 찍어요?”
“어, 우수사원으로 선정하라고.”
박인영이 살짝 입을 벌렸다.
“아…….”
“그리고 회사에서 비밀리에 추진하는 프로젝트 알지?”
“대산 닷컴 리뉴얼 말씀하시는 거예요?”
과장이 이번에는 국을 한 그릇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거. 거기 개발 쪽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라. 신입이 TF에 포함되는 일이 지금까지 없었는데 말이야.”
박인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회사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인데.’
자신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TF 단계에서는 신입을 뽑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었다.
“그, 그래요?”
“그쪽 개발 담당이 하진기 팀장님인데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나 봐. 꽤 일을 잘하는 모양이지?”
과장의 질문에 박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고 신입사원 입문 교육 당시에 같은 조를 한 번 한 게 다였다.
“거기까진 저도 잘…….”
“신입이 TF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야. 더구나 최근에 회장님이 개발 쪽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는 마당에 잘하면 위로 쭉쭉 치고 올라갈 수도 있겠어.”
그러자 옆에 있던 김 대리가 코웃음을 쳤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되려고요.”
그러자 과장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핵심인재 시스템이라고 들어봤어?”
박인영은 모르는 단어였다. 하지만 김 대리는 알고 있었다.
“설마…….”
“그래, 그 친구 거기에 들어갈지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일단 P급만 받아도 초고속 승진인 거 알지? 내 후년에 과장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헐…….”
“물론 계열사가 다르긴 하지만 P급 인재를 언제까지 대산 D&S에 두진 않겠지. 대산 본사에 관련 팀 하나 만들어서 키워줄지도 몰라.”
그 말에 점심 식사 자리가 조용해졌다.
김 대리가 탁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에휴, 누구는 핵심인재로 거론되면서 쭉쭉 치고 올라가는데 난 언제 승진하나.”
“짜샤 그러니까. 일 좀 똑바로 하라고. 너 어제 올린 보고서도 팀장님한테 까였다면서?”
김 대리도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그거야 차 팀장님이 너무 깐깐하게…….”
하지만 김 대리는 그 말을 끝까지 이어 갈 수 없었다.
“차 팀장님 실력파인 거 몰라? 곧 별 다실 분이야. 그런 분 눈에 못 들면서 승진은 무슨.”
“아, 과장님도 참. 신입 있는 데서.”
“그러니까 잘 좀 하란 말이야. 잘 좀.”
하지만 박인영의 귀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강철…… 그렇게 능력이 좋았단 말이야?’
자꾸만 그의 이름을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외모였다. 어머니 가방을 산다는 걸 보니 효심도 있는 성실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능력에 인성까지 된단 말이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났다.
* * *
대망의 차세대 시스템 오픈 일.
김정민을 비롯한 프리미엄 아울렛 전산지원팀에 전운이 감돌았다.
“준비 끝났습니다.”
“확실해?”
“네.”
하진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민이 박철수에게 말했다.
“기동시키라고 해.”
“네.”
박철수가 협력사에 연락을 취하고, 얼마 뒤 시스템이 정상 가동됐다는 연락이 도착했다.
“가서 말해줘. 정상 기동 됐다고.”
고개를 끄덕인 박철수가 회의실을 나가 유혜인 대리에게 말했다.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사용하면 되는 거예요?”
“네.”
“알았어요. 직원들한테도 말해놓을게요.”
이곳은 박철수가 일하는 사무실이 아니었다.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그들이 일하는 곳이었다.
하진기를 비롯해 지원팀 전체가 시스템 오픈에 맞춰 현업들이 있는 사무실로 전부 출장을 와 있었다. 혹시 있을 문제 상황에 대비해 즉각 대응해 주기 위함이었다.
“네. 문제 생기면 바로 말씀 주세요.”
그렇게 박철수가 회의실로 다시 들어가고 난 후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끼이익.
회의실 문이 열리며 현업 팀 막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기 대리님.”
“네.”
막내 신입사원이었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공지사항을 올리려고 하는데 에러가 나서요.”
“공지사항이요?”
“네. 한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박철수가 바로 공지사항을 작성해 보았다.
-알 수 없는 오류.
그 화면이 나타나며 멈춰 버렸다. 로그를 확인해 보니 에러 메시지가 아주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아……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박철수는 바로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신우시스템 신종권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문이 열리며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저기 대리님. 유 대리님이 전해달라고 하시는데 연말 정산 시뮬레이션 결과가 이상하다고 하세요.”
박철수가 으득 이를 깨물었다.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또 문이 열리고 신입사원이 찾아오자 하진기도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박 대리 일을 어떻게 진행한 거야.”
“그게 확인한다고 했는데…….”
하진기가 김정민을 바라보았다.
“김 과장.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내가 크로스 체크 하라고 했잖아.”
김정민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체크 한다고 했는데 빠진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아…… 알았으니까. 빨리 고치라고 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 문이 열리며 막내 사원이 들어왔다.
“저기 죄송한데 또 문제가…….”
하진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곤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오늘 발생한 문제 다 고치기 전까지 집에 갈 생각하지 마라.”
그 말에 박철수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다.
* * *
그렇게 아침부터 점심을 먹기 전까지 발생한 문제가 30건이 넘었다. 해당 문제를 정리하던 김정민은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까지 강철이 개발 한 건 문제가 없네. 더구나 강철이 테스트에 관여한 건에서도 문제가 없어.’
그래서인지 협력사들에 연락을 취하기 바쁜 박철수나 조용훈보다 한가해 보였다.
그때.
또 문이 열리며 현업 막내 사원이 들어왔다.
“대리님 또 문제가 생겼는데요.”
박철수가 입술을 꽉 깨물며 답했다.
“네. 이번에는 어떤…….”
“그 자유 게시판 있잖아요.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내용이 꼬이는 상황이 생겨요. 2페이지에 있는 게 1페이지에서 보인다거나.”
“네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막내가 나가자마자 박철수가 거친 콧김을 뿜어냈다.
“이거 조 주임 네가 한 거 아냐?”
“……네. 마, 맞습니다.”
“좀 똑바로 좀 하자 똑바로. 어. 너 때문에 내가 욕먹어야겠어?”
“죄, 죄송합니다.”
박철수의 시선이 강철을 향했다.
“그리고 이 주임 너도…….”
박철수가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하아…… 넌…… 네가 맡은 부분은 문제가 없구나.”
“네. 지금까지는요.”
마른침을 삼킨 박철수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그래.”
오후 7시.
현업들은 전부 퇴근했지만, 전산지원팀은 한 사람도 퇴근하지 못했다. 하진기의 엄명 때문이었다.
-전부 다 해결할 때까지 퇴근할 생각하지 마.
하지만 유일하게 퇴근을 허락받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철이는 뭐 해. 짐 싸지 않고.”
“저도 같이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들 실력은 언제 늘겠어.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지.”
“그래도 저 혼자 간다는 게.”
“괜찮아. 그리고 온종일 네가 한 것에서는 오류가 한 건도 없었잖아.”
“네.”
“그럼 당연히 퇴근해야지. 이건 회장님의 지시사항이기도 해. 성과주의. 알겠어?”
“네.”
하진기의 엄명에 강철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강철을 향해 김정민이 작게 속삭였다.
“혹시 시간 나면 데이터 분석 순위권 유지할 수 있게. 알지?”
“네. 그건 꼭 해내겠습니다.”
툭.
툭.
김정민이 강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수고하고.”
사무실을 나온 강철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서둘러 탔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들어간 강철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퇴근하세요?”
유혜인. 그녀였다.
강철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 네. 퇴근합니다.”
“다른 팀원분들은 아직 안 가시는 것 같던데…….”
“하하, 네. 부장님이 어서 가라고 하셔서.”
유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하 팀장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 자랑밖에 되지 않았다.
“신입이라 먼저 가라네요.”
유혜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함께 있던 현업 막내가 풉 웃음을 흘렸다.
강철과 유혜인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
“아, 죄송해요. 웃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이 주임의 민망함이 이해돼서요.”
유혜인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 팀장님이 먼저 가라고 하신 이유요. 제가 우연히 들었는데 여기 이 주임이 맡은 일에서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서 가라고 한 거예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오늘 시스템 오픈하고 나온 문제만 수십 가지잖아요. 그래서 유 대리님도 조금 화가…….”
유혜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현업 막내가 황급히 말을 바꿨다.
“나시진 않고 평상시처럼 일하셨죠. 헤헤. 그건 그렇고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주임이 맡은 일에서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 팀장님이 먼저 가라 한 거고.”
강철이 민망함에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유혜인이 강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랬어요?”
“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일 잘하시네요.”
“하하…… 뭐,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유혜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지난번 말씀하신 매출 추이 분석도 정말 적용되는 거예요?”
“마침 그것 때문에 일찍 퇴근하는 겁니다. 관련해서 공부할 것도 있고 해서요.”
그때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강철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담백하게 인사를 한 강철이 건물을 빠져나갔다.
유혜인은 왠지 모를 아쉬움에 한동안 그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 * *
미국 실리콘 밸리 에이글 본사.
론 브라운이 습관처럼 관리자 페이지를 열어 returner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새로운 답안을 올렸나.”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M1 Forecasting.
이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도 답안을 제출해 놓았다.
-Search Image Classification.
-Detect hidden data from digital images
-MIT Pig Identification
…….
returner라는 아이디로 참가한 문제만 5가지가 넘어갔다. 이 추세로 보면 에이글에 올라와 있는 문제에 전부 참가할 기세였다.
“한 문제에서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해서 어쩌려고.”
자세히 살펴보니 기존 문제에도 새로운 답안을 올렸다. 하지만 순위를 바꿀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순위는 낮지만 여러 문제에서 수상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나…….”
문제마다 상금을 받을 수 있는 순위가 달랐다. 어떤 문제는 5위까지. 어떤 문제는 3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건 전부 문제를 올리고 상금을 거는 출제자의 마음이었다. 어차피 1등이 되는 것이 어렵다면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긴 했다.
“흠…….”
론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리터너라는 아이디가 올린 문제들을 살폈다.
“4위, 2위, 5위, 2위…….”
화면을 보던 론의 옆으로 동료가 다가왔다.
“답안 봐봐. 지난번이랑 비슷한지.”
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우스를 조작해 답안을 살폈다.
“10점, 1점, 10점, 10점, 1점, 1점, 1점…….”
10점과 1점의 향연이었다. 5점이나 6점은 통 보이지 않았다.
“같네.”
“그럼 이번에도 제대로 수정하면 점수가 팍팍 오를 수도 있다는 말이군.”
“처음에 올린 문제 있잖아.”
“M1 Forecasting?”
“거기에 새롭게 올린 답안을 봤는데 몇몇 1점들이 10점으로 수정되어 있더라. 10점이 1점으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고.”
“그 말은…….”
“진짜 코리 가드너와 비슷한 실력이라는 건데…….”
화면을 지켜보던 론이 무의식적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리프레시 되며 새롭게 제출된 답안이 확인되었다.
-WMO Weather Forecasting.
리터너라는 아이디가 새롭게 제출한 문제의 제목이었다.
* * *
휴우.
강철이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새벽 2시였다.
“그래도 올리는 족족 순위권에 들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답안을 제출한 문제가 총 7문제였다. 1위는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총 6개가 순위권에 들었다.
“이 순위를 유지하면 받을 수 있는 상금이 대략 1억. 1억이면 또 한 회사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되네.”
어차피 자신이 알고 있는 회사들이 전부 올해에 서비스를 런칭하는 건 아니었다.
퍼그처럼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회사도, 서비스를 런칭했지만, 아직 반응이 밋밋한 회사도 있었다.
타임 테이블을 잘 맞춰서 투자를 진행한다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으리라.
“후후, 크로믹스랑 IJ 엔터도 계속 오르는 중이니까 잘만 하면 주식 평가 금액만 4억이 될 수도 있겠어.”
크로믹스가 출시한 전기차가 시장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주가는 고공행진 했다.
IJ엔터에서 출격한 트리플도 벌써 수 주째 음원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덕분에 관련 주식이 매일 신고가를 갱신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핵심인재 선정되면 당해 연봉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니까. 그 돈까지 더하면 꽤 큰돈이 되겠는데.”
대산 그룹 핵심인재.
인재의 유실을 막기 위해 인재로 선정되는 순간 일시금으로 당해 연봉을 지급한다. 물론 2년 내에 퇴사하면 받은 돈을 토해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했지만 그게 어딘가.
답안을 올리고, 스트레칭을 한 강철이 다시 코세라 사이트에 접속했다. 기초통계학 관련 강의를 전부 듣고 심화 과장을 듣기 위해서였다.
“중급 과정인 데이터 사이언스로 검색하면…….”
이번에도 관련 강좌만 수십 가지가 넘었다. 강철은 그중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수강한 강좌를 선택했다.
“존스 홉킨스에서 나온 강좌를 가장 많이 들었구나. 그럼 이것부터 들어볼까.”
기초통계학 관련 강의를 들으며 관련 용어에 익숙해졌다. 그러자 1.5배속도 조금 느리게 다가왔다. 강철은 강의 속도를 조금 올려 1.75배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려는 순간.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진동했다.
-M1 Forecasting. The winner has been announced.
바로 전에까지 보고 있던 에이글에서 온 알람이었다. 강철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알람을 터치해 보았다.
그러자.
-Congratulations. You won 4th place.
4위로 입상했다는 알람이었다.
순식간에 피곤함이 날아가며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됐다!”
한밤중에 지른 소리에 그때까지 깨어 있던 동생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되긴 뭐가 돼! 오빠 게임 그만하고 잠 좀 자!”
동생의 핀잔에도 강철은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 * *
다음 날.
대산 그룹 본사 인사팀.
이곳에서 하는 일은 다양했다.
그룹사 공채, 승진, 월급, 인센티브까지. ㈜대산만이 아니라 그룹사 전체를 총괄하는 팀이었다.
그 팀의 손재식 대리의 담당이 각 계열사 우수사원 및 핵심인재 관리였다.
“이달의 우수사원 대산 백화점은 장혜영 대리, 대산 마트는 유석만 과장, 대산 패션은 원희영 주임…….”
그렇게 쭉 목록을 확인하던 손재식 대리의 눈이 한곳에 멈추었다.
“대산 D&S 이강철 주임. 이 친구 신입사원 간담회에 참석했던 친구잖아. 이강철…… 이강철이라 이 친구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이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과장이 툭 한 마디 던졌다.
“핵심인재 추천서 들어온 놈이잖아.”
“아!”
“그 친구 입사한 지 3개월 조금 넘었나? 그런데 핵심인재 추천이라니 좀 말이 안 되긴 해.”
“그거 하 팀장님 추천서잖아요.”
“그러니까 더 말이 안 되지. 하 팀장이 지금껏 누구 칭찬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긴…….”
“아무리 P급이라지만 신입이 P급 받는 게 어디 쉽나. 그룹사 내에 신입은 아마 없지?”
손재식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까지 선정된 사람 중에 가장 경력이 짧은 게 2년 차 주임일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대화를 나누던 손재식이 메일을 클릭했다. 거기에는 하진기가 보낸 추천서가 담겨 있었다.
“주요 경력 사항에 에이글 순위권이라고 적어 놨는데 과장님 혹시 에이글 아세요?”
그러자 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 모르는 곳이긴 한데 잠깐 검색해봐도 블로그 글이 많긴 하더라. 꽤 유명한 곳인가 봐.”
“그래요?”
“데이터 분석 쪽으로는 알아주나 보던데.”
“그럼 P급에 선정될 수도 있겠네요…….”
“그거야 모르지 심의위에서 조사해 보고 공신력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휘유~ 만약 선정만 된다면 대박이겠네요. 이달의 우수사원에 핵심인재라니. 이 친구 회사 생활에 아주 아스팔트가 깔렸네.”
“크큭, 그럼 너도 좀 성과를 내봐.”
손재식이 헛웃음을 흘렸다.
“전 틀렸습니다. 과장님이나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젠장, 누구 놀리냐?”
“하하, 그럼 전 이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줘야 해서.”
“인마, 나도 바빠.”
사담을 끝낸 손재식이 대산 그룹 사내 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이번 달 우수사원에 선정된 인원 목록을 업로드시켰다.
* * *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강철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전부 대산 D&S 동기 방에 올라온 톡이었다.
김윤수 : 대박!!!!!! 방금 사내 게시판에 대박 소식이 올라왔다.
진만호 : 뭐야. 뭔데? 누구 결혼이라도 한데?
김윤수 : 갓철 이달의 우수사원 확정.
홍성훈 : 뭐? 우수사원?
남정복 : 스벌 뭐? 우수사원? 진짜야?
김윤수 : 여기 링크.
강철도 선정될 수 있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 선정된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이강철 : 진짜?
김윤수 : 내가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하겠냐. 빨리 들어가 봐.
강철이 김윤수가 남긴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대산 그룹 사내 게시판에 연결되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자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제목 : 이달의 우수사원 발표.
-내용
안녕하십니까.
대산그룹 인사팀입니다.
이달의 우수사원이 선정되었기 발표합니다.
대산 백화점은 장혜영 대리.
대산 마트는 유석만 과장.
대산 패션은 원희영 주임.
…….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유혜인 대리.
명단을 읽어 내려가던 강철이 멈칫거렸다.
‘유 대리님도 받으셨구나. 하긴 능력이 좋으신 분이니.’
강철의 시선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제일 밑에 강철의 이름이 당당히 적혀 있었다.
대산 D&S 이강철 주임.
강철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핸드폰은 여전 ‘드르륵’ 진동음을 토했다.
윤찬민 : 헐 대박 방금 확인함.
진만호 : 갓철 쏴리 질러!
홍성훈 : 이거 인센 300 나오지 않음? 한번 쏴야 하는 거 아니야.
남정복 : 대박 300이나 나와?
홍성훈 : 내가 알기론 그럴걸.
단톡방에서는 끝없이 톡이 올라왔다. 하지만 강철은 그것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어느새 하진기가 다가온 것이다.
“봤어?”
“아, 네. 감사합니다.”
“들어와 봐. 따로 할 말이 있으니까.”
“네.”
강철이 회의실로 들어와 앉자 하진기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먼저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아직 오픈이 완벽하게 끝난 것도 아니고.”
“그거야 박 대리랑 조 주임이 마무리해야지.”
“네.”
순간.
하진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번에 핵심인재 신청도 해두었다. 에이글 10위도 대단한 거니까.”
강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핵심인재.
회사의 중추가 된다는 말로 핵심인재에 선정된 후 능력을 잘 발휘하면 임원을 넘어 그룹사 사장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하진기가 말을 이었다.
“잘될 거야. 물론 꼭 선정된다는 보장은 없어. 인사팀에서 관련 사항을 조사해서 최종 판단할 테니까.”
“정정할 사항이 하나 있는데 저 에이글 10위 아닙니다.”
“뭐?”
“어젯밤에 발표 났는데 정확히 4위로 마무리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 전까지 10위였잖아. 그리고 그 이후로 회사에서 차세대 준비하느라 다른 건 하지도 못했고.”
“퇴근하고 열심히 했더니 순위권에 들었습니다.”
“……어?”
“그리고 다른 문제들에도 답안을 제출했는데 잘하면 순위권에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진기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뭐? 다른 문제들도 순위권에 들어?”
“한번 감을 잡으니까. 다른 문제들도 수월하게 풀 수 있었습니다.”
놀란 하진기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너…….”
그런 하진기를 보며 강철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으로 추천 시스템으로 만들려면 적용해 볼 테스트 베드가 필요한데 그걸 여기 프리미엄 아울렛에 해보는 건 어떨까요?”
“…….”
“먼저 우리 팀에 적용해 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백화점, 마트에 적용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점점 범위를 넓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내에서 인정을 받을 테고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하진기가 실눈을 뜨고 강철을 보았다.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팀에서 널 도와줄 사람이 없어. 김 과장은 코딩을 거의 못 하고, 박 대리나 조 주임 상태도 네가 봤으니 잘 알겠지.”
“그래서 프리미엄 아울렛에 먼저 적용해 보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마트나 백화점과 비교하면 데이터양이 적어서 소수의 인원으로 운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몇 명이면 될 것 같은데?”
“나일 클라우드에 서비스를 개설하고 운용한다면 한 5명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놀란 하진기가 되물었다.
“다섯 명이면 된다고?”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규모 있는 추천 시스템을 다루는 곳은 수십에서 수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한 시스템에 매달리기도 하니까.
“네.”
강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기는 그저 놀란 얼굴을 강철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