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5화 (5/59)

5장 신입사원 간담회

월요일 아침 8시 30분.

강철은 압구정에 위치한 대산 그룹 본사에 도착해 손재식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산 D&S 이강철 주임입니다.”

-3층 대회의실로 오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철은 안내에 따라 3층에 있는 대회의실로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윤찬민, 박인영, 정창우…….’

다들 미래 회사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었다. 강철은 윤찬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찬민아.”

“뭐야. 너도 왔어?”

“하하, 그렇게 됐네.”

“하긴 이런 자리에 네가 빠지면 섭섭하지.”

“그런 것치곤 꽤 놀란 얼굴인데?”

“큭. 사실 네 토익점수에 올 자리는 아닌 듯?”

“내가 토익은 그냥 그래도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고.”

“거기에 학점까지 더하면?”

“…….”

강철이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었다. 윤찬민의 말대로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여기에 올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삐졌나?”

“Why would I?”

“……뭐?”

“I'm strong in the real world. TOEIC scores are not everything.”

강철의 영어에 윤찬민이 두 눈을 부릅떴다.

“좀…… 하는구나.”

강철이 그런 윤찬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렇다고 쫄지 마. 형님이 잘 이끌어줄 테니까.”

윤찬민과 장난을 치는 사이 ㈜대산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재식 대리가 들어왔다.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듣고 다시 대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회장님께서는 10시쯤 오신다고 하니 30분쯤 남은 것이다.

그때 박인영이 강철에게 다가왔다.

“그땐 고마웠어요.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에요. 제 카드도 아니고, 뭐 어려운 일이라고.”

강철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입을 닫았고, 박인영은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다들 어떻게 든 한마디 붙여보려고 난리인데…….’

이 사람은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 대리님과는 친하신가 봐요?”

“그냥 일하면서 몇 번 만난 게 다입니다.”

“아~”

대답은 꼬박꼬박 잘해주는데 뭔가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한테? 이 박인영한테?’

얼굴 상.

능력 상.

몸매 최상.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지금껏 자신이 찍어 넘어오지 않은 남자가 없었고, 남자라면 유형별로 골고루 만나보았다.

그중에 이토록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유형은 한 가지였다.

‘뭔가 가진 게 있다는 말인데…….’

압도적인 능력을 갖췄거나 금수저로 태어나 자신 같은 여자를 수없이 만나 면역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밖에 없었다.

“전 회장님 오시기 전에 화장실 좀.”

“네.”

명백한 축객령에 박인영이 자리로 돌아갔다.

강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바깥 의자에 잠시 앉아 있었다.

‘쩝, 전 부인을 만나는 것도 참 부담스럽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회장님이 과거에 어떤 말을 하셨더라…….’

과거 진용민 회장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그룹의 비전, 액션 방안, 계획.

그것들을 잘 버무린다면 오늘 신입사원 간담회의 주인공은 자신이 될 수 있었다.

* * *

건물 꼭대기 층 진용민의 집무실.

비서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회장님 신입사원 간담회 시간입니다.”

업무를 보던 진용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출발하지.”

“네.”

진용민이 앞장서고 비서가 오른쪽 반보 뒤에 섰다.

“올해 신입사원들 상태는 어때?”

“전체적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스펙입니다. 현재까지 특출난 능력을 보여준 이라고 하면 보안 점검에서 성과를 보인 이강철 사원이 있습니다.”

“이강철…… 이강철이라. 그 친구는 엔지니어 아닌가. 그밖에 다른 인물은 없어?”

“네. 아직은 없습니다.”

“흠…….”

진용민은 신입사원들에 관한 간단한 대화를 비서와 나누며 3층 대회의실에 이동했다.

진용민이 들어오자 앉아 있던 신입사원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용민이 그런 신입사원들을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그가 가장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신입사원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는 신입사원분들과 허심탄회하게 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나누는 자리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진용민이 한 번 더 강조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긴장으로 몸이 바짝 굳어 있었다.

“먼저 간단하게 입사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손재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장 오른쪽에 있던 신입사원이 입을 열었다.

“아, 입사 전에는 몰랐는데 회사에 들어오고 보니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 분위기도 좋고, 회사 내부 환경도 좋고요. 팀장님을 비롯한 사수분들도 열심히 잘 알려주셔서…….”

좋다는 말만 수 번을 반복하며 중언부언했다.

진용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만약 신입사원이 아니라 임원진이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당장 옷을 벗었어야 했으리라.

신입사원의 말이 끝나고, 손재식이 말했다.

“다음 분.”

그다음 사람은 조금 나았다.

“겨우 2달 근무했지만 앞으로 20년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복지에서부터 일터 분위기까지 고객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직원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이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차례가 넘어가고, 강철의 차례가 되었다.

“입사 전, 대산 그룹을 공부하던 중 인상적인 수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평균 근속 연수가 11.4년이었다는 것입니다. 입사해 보니 타 업체 대비 월등히 높은 이 수치가 어떻게 하여 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철은 먼저 객관적인 데이터로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바로 반전을 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진용민이 처음으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어떤 게 있었나?”

“먼저 직급 체계입니다. 부장, 과장, 대리, 주임 같은 상명하복식의 체계가 회사에 수평적 문화보다는 수직적 문화를 만들고 있다 생각합니다.”

“흠…….”

“나일을 대산 그룹의 비전으로 보신다면 직급 체계도 그에 걸맞게 바뀌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철은 말을 하면서 진용민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년에 직급, 성과 체계가 변경된다. 그걸 선점해 말한다면 회장님의 관심을 충분히 끌 수 있을 거야.’

강철의 그런 생각은 맞아들어갔다.

“또 있습니까?”

진용민이 또 질문을 던진 것이다. 관심이 있다는 증거였다.

“다음은 성과 중심 문화입니다. 입사 시 안내받은 연봉 체계에 따르면 성과를 낸다고 해도 연봉이 위로 닫혀 있어, 제 성과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진용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부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네. 현재 인사팀장이 내부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인사팀이 신입사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을 테고.”

“네. 그렇진 않을 겁니다.”

“하하, 참. 신입사원의 생각이 우리 회사 인사팀장이 보는 뷰와 비슷하군.”

말을 마친 강철은 묵묵히 진용민을 마주 보았다. 진용민 역시 강철을 마주 보았다. 그 눈빛에는 강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간담회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 * *

강철은 회장 앞이라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온라인 쇼핑. 그중에서도 모바일 쇼핑이 60%를 넘었습니다. 회사의 역량을 그곳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UI, UX에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며 특히나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군?”

또한 회장의 말이라고 무조건 수용하지 않았다.

“저보다 대산 D&S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기술 베이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열사니까요.”

“우리는 유통 회사인데 기술 중심으로 생각을 전환하자. 이 말인가?”

“이미 물류센터에 자동화 장치들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들이 전부 외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걸 내재화시켜 다른 유통 기업에 돈을 받고 판다면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나일의 클라우드 서비스도 최초에는 자신들의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쓰다 보니 대외 서비스로 발전시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겁니다.”

그러자 강철이 말을 할 때마다 진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남에게 듣는 기분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철이 하고 있는 말은 과거 진용민이 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팔 수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되겠어.”

“또한 회사에서 발생하는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히 활용하면 대산 마트의 강점인 신선식품 판매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을 적재적소에 팔기 위해서는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야 하니까요.”

완전히 강철의 독무대였다.

15명이나 회의실에 앉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입을 떼는 이가 없었다.

마치 독대를 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맞아. 관련해서 회사에서도 인재들을 채용할 계획이네.”

그때.

비서가 나서서 귓속말을 전했다.

“회장님. 임원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진용민이 살짝 놀란 낯빛으로 되물었다.

“벌써 그렇게 됐다고?”

“네.”

진용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군.”

진용민은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또 한 번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대산 D&S 이강철입니다.”

“그래. 기억해 두지.”

그 말에 강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내 진용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간담회는 여기까지 해야겠어. 그럼 다들 수고하고.”

진용민이 회의실 밖을 나갔음에도 두근거림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간담회가 끝나고.

몰려든 동기생들 덕분에 강철은 쉬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전 이남훈이라고 해요. 마트 기획 쪽이고요. 앞으로 자주 봐요.”

“김재민이라고 합니다. 대산 패션 MD예요. 명함 나왔죠? 교환할 수 있을까요?”

“최수민이에요. 대산 백화점 경영지원이고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송승기입니다.”

“지유환입니다.”

동기생들이 너도나도 밀려와 악수를 청했다.

강철은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네. 여기 제 명함이요. 이강철입니다.”

“네.”

“네. 여기요.”

마치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 강철을 윤찬민이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고 윤찬민이 물었다.

“뭐야. 너 원래 이런 놈이었어?”

“뭐가.”

“원래 이렇게 능력 있는 놈이었냐고. 그런 줄 알았으면 평소에 좀 더 잘 보이는 건데.”

“뭐?”

“아니, 그렇잖아. 회장님이라고. 무려 회장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그냥 뭐. 평소 생각해 둔 것들이니까.”

윤찬민이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맨날 게임이나 하는 게 아니라?”

강철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머리가 달려 있어. 안 보이냐?”

“난 그냥 장식품인 줄 알았지.”

친구의 장난에 강철도 그냥 웃어버렸다.

“……찬민아 형이 지난번에 영어 실력 보여준 거 기억 안 나?”

윤찬민의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부산 커피트리.

그곳에서 보았던 강철의 영어 실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윤찬민에게 강철이 말했다.

“이건 그 연장선상이랄까. 그리고 앞으로 더 놀랄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니?”

강철의 장난스러운 말에 윤찬민은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자니 박인영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혹시 명함 교환할 수 있어요?”

“네.”

강철은 지갑을 뒤적거려 명함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어…… 뭐지.”

지갑을 들어 탈탈 털어보아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강철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죄송한데 아까 명함을 다 교환해서 없네요.”

그러자 박인영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명함이 없으면 당연히 전화번호라도 교환하자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남자들이라면 그랬다.

당장 오늘 모인 신입사원 간담회 때도 남자들이 명함을 교환하자며 자신에게 접근했었으니까.

‘어디 얼마나 잘났는지 두고 보자.’

박인영은 은근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 오기를 빌미 삼아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럼 전화번호라도 알려주실래요? 연락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박인영의 핸드폰을 받아든 강철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사내 임직원 게시판 보면 다 나오는데…….”

그 말을 들은 박인영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세워졌다.

하지만 번호를 찍고 있던 강철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 * *

비슷한 시각.

프리미엄 아울렛 전산 지원팀.

박철수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신 과장님 이거 이렇게 해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처음 설계가 이렇게 돼 있었어요.”

“이렇게 설계가 되어 있다니요. 이런 식이면 기존 시스템이랑 달라질 게 없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제가 정산할 때 필요한 모든 일 처리를 화면상에서 처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래서 최대한 넣은 겁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롤 백 기능은 애초에 WBS(Work Breakdown Structure)에도 빠져 있어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박철수가 모니터에서 WBS를 확인해 보았다. 신종권 과장의 말대로 데이터를 롤백하는 기능이 빠져 있었다.

박철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왜 빠져 있는 거야. 그냥 이거 하나만 넣어주면 안 돼요? 이거 꼭 필요한 기능이에요.”

“그렇게 넣은 기능만 벌써 수십 개입니다. 당장 한 달 뒤 오픈인데 또 기능 추가를 해달라니요. 그러면 일정 늘어집니다.”

신종권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렇게 추가된 기능만 벌써 수십 개야. 이번에 또 하나 해주면 다음에 또 하나 더 해달라고 할 게 뻔해.’

그의 얼굴에 단호한 의지가 서렸다.

하지만 박철수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 과장님. 우리가 한두 번 보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딱 이번 한 번만 해주세요. 이 기능 안 되면 저 진짜 큰일 나요.”

신종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안 됩니다. 아시겠지만 그 기능은 난이도도 최상급이에요. POS에서 불러온 데이터 전부 지우고, 다시 불러와서 밴사 데이터랑 비교하는 등등 로직 자체가 복잡한 거예요. 나중에 끝나고 하시죠.”

“끝나면 다들 가실 거잖아요. 우리는 할 사람도 없는데.”

“조 주임님도 있고, 새로 오신 분도 있고. 정 안되면 박 대리님도…….”

자신을 지칭하는 말에 박철수의 표정이 한층 더 구겨졌다.

“저 지금 기존 시스템 유지 보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렇지 않아도 차세대 오픈하고 몇 달 동안은 두 벌로 운영하자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놀란 신종권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네? 동시 운영이요?”

“차세대만 운영하다가 시스템 멈추면 어떡하냐고, 한두 달 정도는 같이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자 신종권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러니까요. 그 어려운 일을 하게 생겼다니까요. 제가 앞에서 최대한 막아줄 테니까. 이 기능만 좀. 네?”

신종권의 눈빛이 흔들렸다. ‘을’의 입장에서 계속되는 ‘갑’의 부탁을 거절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박철수가 말을 이었다.

“대신 화면 쉬운 거 몇 개 우리 쪽으로 넘기세요.”

“네?”

“난이도 ‘하’인 화면들 있잖아요. 그거 해드릴 테니까. 이것만 좀 해주세요.”

박철수의 제안에 신종권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근데 다음부터는 진짜 안됩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일단 이 기능부터 빨리 부탁해요.”

고개를 끄덕인 신종권이 자리로 돌아가자 박철수가 조용훈을 불렀다.

“조 주임 잠깐만.”

“네.”

“화면 좀 만들자.”

“저 지금 협력사에서 올라오는 테스트만 해도 다 처리 못 하고 있어요.”

“테스트야 신입이 만든 자동화 툴로 하면 되잖아.”

“그거야 그냥 화면만 테스트하는 거고, 통합 테스트까지는 되지 않잖아요. POS기에서 결제하고, 그게 영업 정보 데이터로 올라오고, 해당 내용이 정확하게 밴사로 갔는지. 밴사에서 다시 넘어왔는지. 정산할 때 이상은 없는지.”

더 말을 하려는 조용훈을 박철수가 막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냥 신입한테 시키면 안 돼요?”

“신입은 김 과장님이 직접 업무지시 한다고 하시니까.”

“과장님도 참 바쁜 거 뻔히 아시면서…… 그럼 과장님께 말씀드려 보죠. 저랑 같이 말씀드리면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그러자 박철수가 눈을 반짝였다.

“둘이 같이?”

“네. 그래도 저희 둘이 팀의 주축이잖아요. 도저히 안 된다고 하면 들어주실 것 같은데.”

구미가 동한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리고 신입한테도 미리 언질을 해두면 되잖아요. 할 수 있다, 하라고. 자기도 같은 팀인데 선배들 말을 마냥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네.”

“우리가 다른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회사 일 시키는 건데.”

마침 강철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조용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철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 * *

한창 일하고 있는 강철의 어깨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간담회는 잘 갔다 왔어?”

“아, 오셨습니까. 간담회는 잘 끝났습니다.”

“그래, 이 주임이야 잘했겠지.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어?”

“화면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김정민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화면 개발?”

“네. 그게…….”

앉아 있던 박철수가 급히 입을 열었다.

“차세대 시스템 오픈 전이라 일이 너무 많아서 신입에게 시켰습니다. 안 그래도 과장님 오시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김정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박 대리. 내가 부산에서 신입 일은 직접 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야 그렇지만…….”

박철수가 곁눈질로 조용훈을 보았다. 조용훈이 스르륵 시선을 회피했다.

김정민은 강철이 개발하고 있던 화면을 살폈다.

“어디 봐봐 무슨 화면인데.”

강철이 모니터에 화면 목록을 띄워 주었다.

“이거 중요도도 낮은 거잖아. 현업에서도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고 했던 화면인데. 지금 신입한테 텃세 부려?”

“아, 아닙니다.”

“쯧쯧. 그리고 이런 간단한 화면도 제대로 개발을 못 해서 신입을 시켜? 조 주임은 넌 뭐 하냐. 박 대리 바쁘면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조 주임은 시스템 오픈 전에 통합 테스트로 바쁘다고…….”

“그렇게 바쁜 놈이 신입보다 일찍 퇴근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 말에 조용훈이 움찔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김정민이 박철수와 조용훈을 번갈아 가며 보곤 말했다.

“이거 너희 둘이 가져가서 이 주 안에 처리해 놔. 알았어?”

“과, 과장님.”

“알았어. 몰랐어.”

박철수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네.”

“이 주임은 나 따라 들어와 봐. 부산에서 했던 이야기 좀 하자.”

강철이 김정민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박철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조용훈을 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 주임.”

“……네.”

“둘이 같이 이야기해 보자면서.”

“죄, 죄송합니다.”

“화면 개발 다 해놔. 알았어?”

조용훈이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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