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그게 바로 접니다
쭈우욱.
강철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
카페인이 몸에 흡수되며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김 과장님이 메일을 보냈다니.’
그저 별생각 없이 참가한 대회였다.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더구나 김정민 과장에게 쪽지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여전히 얼이 빠져 있는 강철에게 윤찬민이 물었다.
“뭐 하냐. 넋이 나가서는.”
“야, 잘 들어봐봐. 이건 내 친구 이야기거든.”
“친구 이야기라면…… 다들 자기 이야기던데.”
강철이 한 번 더 강조했다.
“진짜 친구 이야기야.”
“해봐.”
“그 친구가 어느 날 꿈에서 깼는데 머리가 엄청나게 똑똑해진 것 같다는 거야. 그리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다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래서 어떤 시험에 응시했는데 덜컥 순위권에 들어버린 거지.”
“그럼 좋은 거 아냐.”
“좋지. 물론 좋은데 그 시험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회사에서도 연락이 온 거야.”
“회사? 연락?”
“그 친구가 다니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 왜냐하면, 익명으로 시험에 응시한 거라 회사에서는 서로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모르거든.”
“그 정도면 다른 곳에서도 이직 제의 왔겠다.”
“그치.”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직하고 싶다?”
“그건 아니고. 그 친구도 혼란스러운 거지. 이직했다가 잘 안 될 수도 있고, 사업했다가 망할 수도 있고. 회사에 이런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지.”
윤찬민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툭 내뱉었다.
“확실히 네 이야기는 아니네. 넌 똑똑한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강철의 입가가 조커처럼 찢어졌다.
“윤찬민?”
“아하하…… 뭐.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 패치랑 자동화 툴 아주 잘 쓰고 있다.”
“하여간 네 생각은 어때.”
“내 생각에는 그 친구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꿈?”
“막연히 성공하고 싶다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회사 사장이 되고 싶다. 뭐 그런 거. 이를테면 내 1차 적인 목표는 ‘나일’ 같은 곳에서 일해보는 거야. 그런 대규모 트래픽을 다뤄보고 싶거든.”
“아…….”
윤찬민.
그는 그런 친구였다. 기술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았고, ‘빅트리’의 개발 팀장까지 하게 된 것도 탁월한 IT 능력 때문이었다.
“그 친구한테 먼저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해봐. 막연히 성공해야겠다. 사업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이를테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백억을 벌고 싶다, 뭐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고 싶다면 IT 분야인지, 음식료 쪽인지. IT면 게임인지 일반 서비스인지. 그렇게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강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자신도 목표는 세워두었다.
-성공.
하지만 구체적으로 경제적 성공인지, 기술 수준을 높이는 성공인지, 사회적 성공인지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다.
“좋은 말이네.”
“답이 된 건가?”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전해줄게.”
“그럼 이제 나도 한 가지 물어보자.”
“뭐든.”
“GUITAR 있잖아. 그걸 적용해 보고 있는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서.”
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꿈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윤찬민이 돌아간 후에도 강철은 커피숍을 떠나지 못했다.
‘내 꿈이 뭐였지.’
대산 D&S의 사장?
그건 아니었다. 그게 꿈이었다면 회사를 뛰쳐나와 사업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면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
그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시X 내가 10년 동안 개고생한 걸 생각하면.’
흔히 사람들이 말한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바깥은 지옥이라고.
강철이 바깥에서 경험한 건 지옥보다 더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또 다른 자아가 말을 걸었다.
-네 사업을 해.
-나일처럼 될 수 있어.
-데이비드 딩킨스. 너도 그처럼 될 수 있어.
데이비드 딩킨스.
나일의 사장이었다. 강철도 그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마음속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악마처럼 속삭였다.
-사업하고 싶잖아. 아니야?
-아직 포기한 거 아니잖아.
-남자가 시작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정말 빅트리에서 성공하는 거로 만족해?
강철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퇴사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내 사업이 상당히 진행되고 굴러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해야 해. 이를테면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주식은 내가 전부 가진 상황에서 회사 매출이 최소 100억 이상. 월급으로 1억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러면 퇴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그전에는 아니다.
그렇게 점점 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나자 혼란스러움이 조금 가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에서는 이렇게만 하면 된다. 하진기에게 인정을 받았고, 자신이 returner라는 사실을 밝히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회사 밖으로는?
주식에 투자금을 넣어둔 것처럼 뭔가 씨앗을 뿌려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강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가긴 최대의 강점. 그걸 활용한다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이미 그 강점으로 주식투자와 회사에서 큰 이득을 보았다. 그러면 다른 쪽으로도 이걸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강철의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맞다. 퍼그!’
과거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소위 엔젤투자자도 있었고, 강철과 비슷하게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퍼그.
그건 작은 게임 회사의 이름이었다. 일반 서비스업으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강철도 게임을 만들었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때 알게 된 회사가 퍼그였다.
‘어디 보자…….’
강철은 급히 서치의 앱 스토어로 들어가 ‘퍼그’에서 제작한 게임 ‘라운드헌터’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없다. 좋았어!’
당시 퍼그의 사장 김봉수는 투자금이 모자라 게임 런칭이 어려워지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퍼그에서 출시한 라운드헌터가 초대박을 치고,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하고 가치가 5천억까지 올라갔었지. 거기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한다면.’
못해도 100배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가 거기 사장을 해도 되지 않나.’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었다. 3억으로 사장이 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번 생각이 나기 시작하자 성공한 스타트업 이름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퍼그만이 아니라, 패스뱅크 이건 인터넷 송금으로 성공하고, 아이체크 이건 헬스케어 제품으로 성공. 또…….’
머릿속으로 성공하는 스타트업 이름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할 당시 성공한 이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지만 여기에 전부 투자하기에는 돈이 부족한데…….’
자신이 가진 거라고 주식에 들어가 있는 돈 3억에 불과했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들에 전부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돈이 한없이 부족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나.’
당장 월급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에이글 우승.
에이글에는 지금 자신이 풀고 있는 문제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당장 올라와 있는 문제가 10가지에 총상금만 10억이 넘었다.
거기에서 일정 부분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일단 해보자.’
계획을 세우고, 세부 행동 지침까지 마련한 강철이 빈 일회용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마침 김정민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도착했다.
-강철아.
“네.”
-너 다음 주에 신입사원 간담회 오라고 하네. 아침 9시까지 대산 본사로 가서 손재식 대리한테 전화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고했다.
“네. 그리고 과장님.”
-어. 뭐 할 말 있어?
“네.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너 뭐. 허튼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니지?
허튼 생각.
그게 퇴사라는 사실을 강철은 바로 알 수 있었다.
27살부터 35살까지 9년 동안 회사에 다녔다. 그 짬을 통해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 어딘데?
“여기 커피트리입니다.”
-내가 거기로 갈게.
“네.”
그 말을 끝으로 강철은 전화를 끊었다.
비슷한 시각.
하진기는 어안이 벙벙한 채 강철을 보았다.
“그러니까. 여기 나와 있는 아이디가 너란 말이지.”
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믿지 못했다. 김정민이 한마디 거들었다.
“제가 로그인하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하진기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아이디를 도용했다거나…….”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말을 멈추었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뭔데?’
없었다.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둘을 보며 강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드신 거 이해합니다. 저도 여기 10위에 올랐다는 게 사실 잘 안 믿겨서요.”
“내가 알기로 너 대학 전공이 컴퓨터 과학인데 통계 공부는 언제 한 거야?”
“대학 다니면서 틈틈이 했습니다. 혹시 회사에 나가서 필요할 것 같아서.”
“흠…….”
김정민이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팀장님도 기술사 시험 칠 때 이 분야 관련 공부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럼 강철이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했는지 들어보시고 맞는 말이다 싶으면 입증된 거 아니겠습니까?”
하진기가 코끝을 긁적거렸다.
자신이 직접 문제 해결은 할 수 없어도 상대가 맞는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정민의 말대로 기술사 시험을 치르며 데이터 분석 관련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었으니까.
강철이 말했다.
“그럼 설명해 드릴까요?”
하진기가 고개를 끄덕였고, 강철이 칠판에 글자를 써나갔다.
“여기에 사용한 방식은 회귀 분석입니다. 그중에서도 라이스터 회귀 분석법을 사용했습니다. 데이터 전처리를 하다 보니 아웃 라이어가 꽤 나와서 해당 데이터가 전체 평균값을 왜곡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요.”
“소수의 데이터에 의해 전체 추정치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네.”
“그런데 그 방법은 전체 데이터의 평균치가 일반적인 회귀 분석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 한국대 라영건 교수님께서 해당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문을 내셨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수정했어요.”
그 말에 하진기는 한 번 더 놀랐다.
“논문? 대학 논문도 본다고?”
“네. 데이터 분석 쪽 하려면 관련 논문을 주제로 공부하는 건 필수니까요.”
김정민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문적으로 하는구나.’
그 느낌을 확 받았다. 그건 하진기도 마찬가지였다.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니야.’
하진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라이스터 회귀분석 법에는 총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파라미터 변형법, 최소 제곱 대안법 그리고 유닛 추가법. 전 그중에서 최소 제곱 대안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게 마트의 각 물건 간 상관관계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을 거로 생각해서요.”
하진기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른 두 방법은 종속 변수와 독립 변수 간의 상관관계의 정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도 기술사 시험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내용인데 이걸 신입사원이 알고 있다. 더군다나 대학교수가 쓴 논문까지 참고했다니…….’
하진기의 표정에서 서서히 의심이 사라졌다. 강철은 아예 보드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수식을 하나 써도 될까요? 이번 데이터 분석의 핵심 알고리즘이라서요.”
하진기가 고개를 끄덕였고, 강철이 수식을 적어나갔다.
김정민은 까막눈으로 변했고, 하진기도 대충 저게 어떤 의미라고 느끼는 수준이었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게 해당 논문에 나와 있던 수식입니다.”
강철이 또 하나의 수식을 적어나갔다.
“이건 기존 라이스터 회귀분석의 수식이고요. 이 두 수식의 차이점 혹시 보이십니까?”
“…….”
회의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 뒤로는 강철의 일방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하진기도, 김정민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강철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강철을 조용훈이 위아래로 훑었다. 조용훈의 시선이 강철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향했다.
“루이뷔통? 쇼핑을 도대체 몇 시간을 하는 겁니까? 선배들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아 그게…… 쇼핑은 빨리했는데 일이 좀 있어서요.”
한번 미워지기 시작하자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무슨 일이요? 회사 일보다 바쁜 일이 있습니까?”
방금까지 김정민, 하진기와 회의를 하고 왔다. 강철은 당당하게 답했다.
“회사 일 했습니다.”
“이제는 거짓말까지? 밖에서 무슨 회사 일이요?”
대답은 뒤이어 들어온 김정민이 대신했다.
“나랑 회의했어. 그러니 그만해라.”
당황한 조용훈이 멈칫거렸다.
“과, 과장님.”
“그리고 앞으로 강철이는 업무 지시는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너희 둘은 별도로 할 필요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강철이한테는 내가 따로 시킬 일이 있어. 어차피 이제 신규 점포 오픈도 끝났고, 차세대만 마무리되면 크게 일없잖아.”
그러자 바로 박철수가 반박했다.
“아니, 일이 없다니요. 현 시스템 유지보수에 새로운 시스템 유지보수까지 하려면 일이 얼마나 많은데.”
“새로운 시스템이야 협력사에서 몇 명 남아서 한 달 정도 봐주기로 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강철이를 원래 일에서 완전히 빼겠다는 말은 아니야. 지난번 보안 점검이나. 화면 때처럼 계속 관련 일은 할 거다. 어차피 그건 너희 둘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
“…….”
그러자 이번에는 둘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보면 너희 둘이 할 수 있는 일을 강철이는 하는 데 강철이가 하는 일은 너희 둘이 못하는 상황 아냐?”
꿀을 먹은 벙어리였다. 조용훈은 이대로 있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나섰다.
“회계나 재무 쪽은 신입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쪽은 천천히 알아가도 되니까.”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강철이 나섰다.
“모르지 않습니다. 오기 전에 열심히 공부해서요.”
조용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계산서 떼고, 영수증 발행하고, 인건비나 일용직 비용 처리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고?”
“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회계나 재무 쪽 프로그램에 몇 가지 버그가 있었거든요.”
“……뭐?”
“일단 현재 개발된 연말 정산 부분부터 보면 체크카드 세액공제 비율이 변경되었는데 반영이 안 됐더라고요. 그리고 제로페이 세액공제율도 작년 것 그대로고요. 일단 그게 수정돼야 하고, 일용직 비용 처리 하는 기준이 3개월 미만 근무자잖아요.”
“그, 그런데?”
“그런데 이게 1월 2일간, 2월 10일간, 3월에 15일 근무한 경우 3개월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 경우에 대한 처리 기능이 빠져 있더라고요. 지난번 유혜인 대리님도 세세하게 못 봐서 놓치신 것 같은데 추가가 필요합니다.”
청산유수로 쏟아져 나오는 말에 조용훈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있던 김정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잘 알고 있네. 그럼 불만 없지?”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김정민이 강철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난 팀장님이랑 마무리할 게 있어서.”
김정민이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조용훈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 * *
부산에서의 일이 끝나고 서울행 KTX 안.
강철은 자리를 잡고 앉아 공책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런 강철의 옆에 긴 생머리의 여자가 다가와 자리를 확인하곤 다시 강철을 쳐다보았다.
“또 뵙네요.”
상큼한 목소리에 강철이 고개를 들었다.
“유 대리님.”
유혜인 대리가 강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정신없이 보고 있어요?”
강철이 멋쩍은 표정으로 픽 웃음을 흘렸다.
“아…… 이거 그냥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게 있어서요.”
곁눈질로 공책을 흘낏 살핀 유혜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수학 공식 같은데요?”
“통계예요. 통계. 요즘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커져서.”
“오~ 그럼 우리 시스템에도 적용되는 건가요? 예상 매출 뭐 그런 거로?”
“그렇지 않아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상 매출액만이 아니라 고객들이 좋아하는 명품 군이나 상품을 합쳐서 추천해 준다거나 지점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 분석을 통해 최적의 쇼핑 코스를 찾는다거나. 같은 것들을요.”
생각보다 진지한 반응에 유혜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요?”
“하하, 가짜도 있습니까.”
“신입인데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어떻게 들어온 곳인데 최선을 다해 봐야죠.”
그 말에 묻어나온 진심에 유혜인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은 다시 수식에 집중했고, 유혜인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2시간 40분 동안 둘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