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라이프-2화 (2/59)

2장 하나씩 바꿔보자

저녁 9시.

하나둘씩 자리를 나섰다. 하지만 강철은 일어나지 않았다.

퇴근하던 김정민이 강철에게 말했다.

“첫날부터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아닙니다.”

“조금만 하다 퇴근해.”

“네.”

김정민이 사라지자마자 조용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볼게요.”

“네.”

“이 주임도 일찍 가세요.”

대산 D&S는 입사하면 전부 주임이었다. 그랬기에 조용훈도 강철을 이 주임이라 불렀다.

“네.”

조용훈까지 자리에서 떠났다. 하지만 박철수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강철이 박철수 옆으로 가 말했다.

“퇴근 안 하세요?”

“아, 이 주임. 나 신경을 쓰지 말고 가. 그런데 그 문제는 해결한 거야?”

“네. 테스트까지 해봤는데 실 DB에 적용할까요?”

“그, 그래 줄래? 내가 그거 확인해서 영업 쪽에 넘겨야 해서.”

“지금 바로 적용하겠습니다.”

강철이 자리로 돌아가 작업했던 결과물은 적용했다.

잠시 뒤.

박철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야. 진짜 되네. 이 주임 고마워. 이거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지 몰라.”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인데요.”

“아휴~ 일 잘못되면 사람을 얼마나 쪼아대는지 이 주임도 조심해. 여기는 일 하면 할수록 더 시키는 곳이니까.”

박철수 대리는 사람은 착한데 능력이 좀 많이 부족한 타입이었다. 그랬기에 김정민과 사이가 나빴다.

“알겠습니다.”

“나도 이제 가봐야겠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박철수까지 떠나고, 협력사들까지 전부 자리를 비웠다. 사무실에 완전히 홀로 남았다.

강철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중얼거렸다.

“그게 앞으로 한 이 주 후였지.”

이주 뒤.

대산 백화점을 비롯해 마트. 프리미엄 아울렛까지. 대산 그룹 전체의 고객 정보 해킹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폭풍으로 강력한 보안 점검이 시행되었다. 당시 보안 점검을 하러 온 외부 전문가가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던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이건 뭐, 그냥 다 가져가라고 만들어놨네.

그 말이 강철의 자존심을 건드려 매일 밤을 새워가며 관련 내용을 수정했었다.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놈아. 다른 사이트까진 몰라도, 프리미엄 아울렛은 안될 것이다.”

강철은 그 공격을 막고, 완벽하게 하진기의 눈에 들 생각이었다.

하진기는 후일 빅트리의 주축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 빅트리의 초반부터 함께해 상장까지 간다.

그게 현재 강철의 계획이었다.

* * *

일주일 뒤.

강철은 보안 점검 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김정민에게 보고했다.

“총 19가지 문제점이 발견됐고, 이걸 수정해야 한다.”

“네. 어찌 보면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그럼 이제 이걸 실제로 해야 하는데…….”

휙.

휙.

이번에도 고개들이 돌아갔다. 박철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고, 조용훈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리는 차세대 준비,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로 바쁘고, 조 주임도 협력사 관리에 신규매장 오픈 준비로 바쁜데…….”

강철이 입을 열었다.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야?”

“네. 이번 주 안으로 처리해 놓겠습니다.”

“그러면야 문제없는데…… 정말 할 수 있어?”

강철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과거에 한 번 했던 일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강철이 한 사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이 정도 문제는 발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 뭐, 할 수 있다니까. 한번 해봐. 박 대리가 결과물 나오면 테스트 한번 해주고.”

“네.”

“그럼 이걸로 회의 마치자.”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박철수가 강철을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네.”

강철을 불러낸 박철수는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주임이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괜히 문제를 만들진 않았으면 해요.”

강철은 박철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요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는 착했지만, 공부하거나 더 많은 일을 하는 건 싫어했다.

“절대 박 대리님께 일이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 내가 뭐 일이 싫다는 건 아니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일이 많으시니까요.”

“오해하진 말았으면 좋겠어요.”

“네. 오해 안 합니다. 차세대 구축에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까지 하려면 무척이나 바쁠 거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박철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네요.”

강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요.”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올라온 강철에게 이번에는 조용훈이 다가왔다.

“잠깐 커피 한잔할까요?”

“네.”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조용훈이 물었다.

“혹시 제가 지난번에 드린 말씀 기억하세요?”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언질도 없이 보고서를 드리면 제가 곤란해요. 그래도 제가 사수인데-”

강철이 그의 말을 끊었다.

“보고서는 팀 전체 메일로 드렸는데요. 혹시 조 주임님한테 안 갔나요?”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전체 메일로 보내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달라는 말이었어요. 제가 강철 씨 사수잖아요? 그러니 먼저 관련 내용을 확인해서 회사 양식에는 맞나. 과장님께 보고하는 데 불필요한 내용은 없나. 제가 먼저 보는 게 강철 씨에게도 좋으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과장님께 문의했더니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잔뜩 당황한 조용훈이 되물었다.

“뭐, 뭐라고요?”

“일일이 사수에게 보고하지 않고, 과장님께 직접 보고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오늘처럼.”

조용훈이 황당한 얼굴로 강철을 바라보았다. 강철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끝난 걸까요?”

조용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주일 뒤.

강철은 대산 D&S 동기 단톡방에 링크를 올렸다.

이강철 : 요즘 신종 악성코드가 발견됐다고 해서 패치 올렸으니까. 시간 날 때 받아둬. 링크 남긴다.

https://www.daesan.com/freeboard/view/?no=298171&_rk=OmR&exception_mode=recommend&page=1

그 말에 다른 동기들의 답변이 빠르게 올라왔다.

김윤수 : ㅋㅋㅋㅋ혹시 이게 악성코드 아님?

홍성훈 : ㅋㅋ덜덜덜 들어가 봤는데 실행하자마자 컴터 꺼짐.

진만호 : 다운 완료. 실행했는데 성훈이 말이 맞네. 컴터 꺼지는 정도가 아님. 재부팅돼 버림.

남정복 : ㅋㅋㅋㅋㅋㅋ지리네. 동기 컴터 감염시키는 클라스.

그걸 보던 강철이 픽 웃음을 터뜨리곤, 답변을 남겼다.

이강철 :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라ㅋㅋㅋ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앞으로 3일 후다. 하루 이틀 오차가 있겠지만 그쯤 해킹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데이터 센터 관제실이 아닌 고객센터로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오면서 해당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

고객센터로 자신의 포인트가 사라졌다는 고객의 전화가 걸려왔다.

* * *

고객센터 직원 정유미는 오랜만에 걸려온 진상 고객의 연락에 짜증이 올라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현재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고객님 포인트는 상품권으로 전환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적이 없다니까요.

“저희 쪽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어제 전환하셨는데요. 접속 기록도 있습니다.”

전화기 반대편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아니, 어제 이 사이트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은 정유미는 다시 한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메일함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어제 고객님께서 평소 사용하시던 IE 브라우저가 아닌 오페라 브라우저로 접속하셔서 로그인한 거로 나오셔서요.”

-아니, 그러니까. 난 오페라가 뭔지도 모른다니까. 듣는 거나 알지. 오페라 브라우저는 본 적도 없어요.

“잠시만요 고객님.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정보와 고객이 말하는 정보다 다르다.

정유미는 바로 팀장을 호출했다.

“팀장님. 고객님께서 대산 닷컴에 접속한 적이 없는데 포인트가 사라졌다고 하셔서요.”

“포인트가 사라져요?”

“네. 오페라 브라우저에서 접속한 기록이 나오는데 고객님께서는 계속 접속한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팀장이 중얼거렸다.

“컴퓨터 해킹당한 거 아냐.”

놀란 정유미가 중얼거렸다.

“해킹이요?”

팀장은 당연히 자신들의 시스템이 해킹당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컴퓨터 해킹당해 놓고선 저러는 거지.”

“아…….”

“일단은 고객님 컴퓨터 바이러스 검사 한번 해보시라고 간접적으로 말해봐. 나도 전산실에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정유미는 팀장이 말한 대로 일단 다시 안내했다.

하지만 고객은 길길이 날뛰기만 했다. 자신은 어제 컴퓨터는 사용도 안 했다면서.

그럴수록 정유미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 * *

모니터를 보던 강철이 눈을 반짝였다.

-제목 : 전사 보안점검 시행 후 결과 보고.

-내용 : 해킹 의심 징후 발견으로 전 임직원 및 협력사분들은 보유 중인 컴퓨터에 대해 보안점검을 해 주시고, 그 실시결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왔다.’

이 메일이 왔다는 건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고객 정보가 탈취됐다는 건 이 메일이 도착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후에 발견된다. 그때는 메일 정도가 아니라 회사 전체가 발칵 뒤집혀서 질 정도의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강철은 다시 한번 프리미엄 아울렛 관련 서버들의 시스템 로그를 확인했다.

-var/log/messages

-var/log/secure/

-/dev/console

…….

var/log/lastlog

등등 시스템에서의 활동 기록이 남겨있는 여러 로그를 확인해 보았다.

특정 아이디나 툴로 로그인을 하면 해당 로그에 접속 기록이 남게 된다. 만약 관리자 아이디로 접속해 로그를 지웠다고 해도 지운 기록이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자신이 자체적으로 행한 보안점검과 패치 파일이 통했다는 뜻이었다.

“휴우…….”

강철이 깊은 한숨을 내쉴 때 김정민이 그에게 다가왔다.

“메일 봤어?”

“네.”

“뜬금없이 보안점검이라니. 센터 관제실 쪽에 연락해 보니까. 뭔가 단단히 일이 터진 모양이더라.”

“큰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김정민이 실눈을 뜨고 강철을 보았다.

“마치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말한다?”

강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제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아니, 공교롭게도 네가 보안점검을 하자고 한 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아…… 그거야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교육받은 FM 내용과 다르게 운영되는 거 같아서 그런 겁니다.”

김정민의 눈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이내 입가에 미소가 가득 드리워졌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들어왔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뜻밖의 말에 강철이 헛웃음을 흘렸다.

“네?”

“왜 그런 사람 있잖아. 뭔가 타이밍이 딱딱 들어맞는 그런 사람.”

“아…….”

“그리고 내 감에 아마 보안 관련해서 큰일 터진 게 맞는 거 같다. 곧 후속 조치 관련 메일이 올 거야. 그리고 네가 정말 보안점검을 제대로 했다면 우리는 후속 조치를 할 게 없을 테고, 윗사람들 눈에 들게 되겠지.”

강철은 민망한 척 머리를 긁적거렸다. 김정민이 그런 강철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뭐, 곧 알게 되겠지.”

* * *

비슷한 시각.

프리미엄 아울렛 팀장 하진기는 본사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하진기가 백화점 쪽 관리를 맡은 팀장을 보며 말했다.

“뭐야 갑자기. 왜 전부 호출이야.”

“X됐어.”

“왜?”

“개인정보 유출.”

“뭐?”

“시X 어떤 새끼가 다 털어 갔나 봐.”

그 말에 하진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갑자기 그게 무슨.”

“그러니까. 오늘 쥐죽은 듯이 있어.”

“그래서 이렇게 분위기가 싸늘하구나.”

회의실에는 백화점, 마트, 프리미엄 아울렛, 대산 닷컴 등등 각 사이트를 관리하는 전산팀장들이 굳은 표정으로 전부 모여 있었다.

이내 대산 D&S 사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 말에 여기저기서 꿀꺽거리며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개인정보유출? 개인정보유추울? 요즘 이런 일이 얼마나 민감한지 몰라? 안 그래도 회사 매출 떨어져서 분위기 개판인데 이런 거까지 터뜨려야 하냐!”

팀장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장이 가장 먼저 규모가 큰 마트 쪽 팀장을 불렀다.

“마트 말해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보라고.”

“저희 쪽 협력사 직원 컴퓨터를 통해서 악성코드가 유포된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 APT 공격을 비롯해 SQL 인젝션―”

마트 팀장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현재 대산 D&S 사장은 대산 백화점 부사장을 하다 좌천되어 온 사람이었다. IT의 I 자도 잘 모르기 때문에 마트 팀장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들어도 모를 거, 끝까지 들을 이유가 없었다.

“협력사 직원 관리 똑바로 안 하지?”

마트 팀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

“덕분에 백화점, 대산 닷컴, 대산 24시, 대산 패션 등등 빠져나간 고객 정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불같이 화를 내던 사장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 프리미엄 아울렛 팀장.”

“네. 사장님.”

“넌 뭘 어떻게 한 거야?”

“……네?”

“너희들 고객 정보는 하나도 안 털렸다고 하더라.”

고객 정보는 통합 관리 되는 것이 있고, 해당 사이트로 별도 가입한 고객 정보가 있었다. 해킹당하지 않은 건 프리미엄 아울렛 고유의 고객 정보였다.

하진기의 머릿속으로 얼마 전 김정민의 보고가 떠올랐다.

“저희는 사전에 자체적으로 보안점검을 했습니다.”

“그랬어?”

하진기는 한발 더 나아갔다. 점수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네. 그리고 관련해서 신종 악성코드 중에 패치가 안 나온 게 있어서 본사 게시판에 업로드시켜 놨습니다. 저희는 협력사를 비롯해 팀원들 전부 해당 패치를 적용해 놨고요.”

그러자 비서가 귓속말로 사장에게 말을 전달했다. 사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 회사에도 일을 제대로 하는 놈이 있긴 있었네.”

“감사합니다.”

“마트 쪽에서 터진 일이니까. 마트 네가 책임지고 마무리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난 덕분에 본사 호출당했으니까. 갔다 와서 다시 보자고.”

사장의 마지막 말에 회의실에는 싸늘한 공기가 퍼져 나갔다.

* * *

하진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내 새끼 어디 갔어!”

협력사 직원들을 비롯해 김정민, 조용훈 등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거기에는 강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진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강철에게 걸어갔다. 강철은 일부러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진기를 보았다.

“팀장님.”

“너……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일이요?”

“보안점검 말이야.”

“아…….”

“어떻게 했기에 우리는 하나도 안 털렸어?”

강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냥……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꼭 적용해야 할 걸 적용했고요.”

“악성코드 패치도 만들었다면서?”

“그건 보안점검을 하다 보니까. 신종 트로이 목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관련해서 아직 패치가 없어서요. 시간이 남아서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하진기가 말했다.

“너 이달의 우수사원이다. 무조건 될 거야.”

이달의 우수사원.

그들 중 한 명은 올해의 우수사원이 된다. 우수사원은 핵심인재로 인사팀의 별도 관리를 받게 된다.

연봉에서부터 승진까지.

강철은 일부러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강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진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 덕분에 사장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차세대 시스템 화면 있잖아요.”

“그게 왜?”

“수정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뭐?”

김정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이미 유혜인 대리 컨펌 받은 건데.”

“혹시 최 이사님 확인도 받았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화면 구성은 불편한 것 같은데…….”

최석찬은 유혜인의 상사였다.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을 이끄는 실질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 말에 하진기가 고개를 휙 돌려 김정민을 보며 물었다.

“최 이사님께 확인받은 적 있어?”

김정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실제로 그에게 확인을 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없습니다. 안 그래도 다음 주에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진기가 다시 강철을 보았다.

“네 말은 유 대리보다 네가 최 이사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유혜인 대리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신입 공채 교육에서 최 이사님이 강조하신 것들이 있는데 그게 제대로 적용이 안 돼 있는 건 확실합니다.”

김정민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흠…… 그거 당장 다음 주에 확인받으러 가야 하는데.”

“생각을 해봤는데 다른 분들이 완성한 화면을 제 나름대로 수정해 봐도 될까요? 어차피 코드나 화면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도 있고요. 아시겠지만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차세대 쪽 코드는 거의 못 봐서요.”

“일을 두 번 하는 건 아닌지 몰라…….”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강철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신만만한 그 말에 하진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이 신입이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강한 직감이 들었다.

* * *

조용훈은 강철이 영 탐탁지 않았다.

처음에는 드디어 막내 생활을 탈피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막내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망나니였다.

‘지금 하는 일은 돕진 못할망정. 혼자서 저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팀장님께 건의해 혼자서 다른 화면을 개발하고 있었다.

더구나 얼마 전 자신에게 1차 보고하라는 말을 했음에도 과장님께 말하여 자신을 물 먹인 일을 생각하자 약간의 분노까지 솟았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자리에서 일어난 조용훈이 김정민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어.”

“다음 주까지 화면 마무리하려면 신입도 테스트에 붙어야 할 것 같아서요.”

“신입도?”

“네. 당장 한 달 뒤에 부산 신규 점포 때문에 전 거기에 들어갈 POS기도 테스트해야 하고, 기존 시스템과 연계도 테스트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김정민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차세대 화면 테스트를 좀 넘겼으면 해요. 어차피 테스트야 간단한 일이니까. 신입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지금 신입이 만드는 화면은 사실 쓰일지 안 쓰일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냥 공부 삼아 하는 것이니.”

그러자 김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해.”

“그럼, 일 몇 가지 넘기겠습니다.”

“그래.”

조용훈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몸을 돌려 강철에게 다가갔다.

조용훈이 강철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이 주임. 잠시만요.”

그 소리에 강철이 고개를 들었다.

“제 자리로 와볼래요.”

“네.”

“이 주임 바쁜 건 알겠는데 최 이사님 점검 전에 기존 화면 테스트도 완벽하게 마쳐야 하거든. 사실 이 주임이 만드는 화면이야 그냥 소꿉놀이 같은 거잖아.”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투였다.

강철의 이마에 살짝 힘줄이 돋아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다.’

조용훈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유 대리님에게 컨펌 받은 화면인데 이게 테스트할 양이 만만치 않아서 좀 나눠야 할 것 같아요. 김 과장님께는 제가 보고했습니다. 시간 되죠?”

틀린 말은 없었다. 지금 회사에서 가장 급한 일은 다음 주에 있을 차세대 시스템 시연회였다.

“화면 테스트만 하면 될까요?”

“일단 그거면 될 것 같아요. 어떤 화면 테스트해야 할지는 내가 정리 한 거 줄 테니까. 맡아서 해줘요. 전 신규 점포에 들어갈 POS기 테스트를 해야 해서.”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해요.”

강철이 자리로 돌아가고, 조용훈은 바로 정리해 두었던 테스트 목록을 메일로 전송했다.

원래 자신이 해야 할 테스트의 절반가량을 강철에게 넘겨 버렸다.

‘후후, 고생 좀 할 거다. 어디서 뺑끼를 쓰려고.’

그리고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제목 : 화면 테스트 담당자 변경.

-내용 : 영업정보, 인사 메뉴 전반의 화면 테스트는 앞으로 이강철 주임이 담당하게 됐습니다. 해당화면 테스트는 이강철 주임에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협력사가 만든 화면을 대산 D&S 본사 직원이 테스트한 후 확인해 주는 구조였다. 그 일을 강철에게 넘긴 것이다.

이내 메일을 확인한 협력사 직원들이 강철에게 몰려들었다.

* * *

조용훈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강철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화면 테스트. 진짜 과거에는 왜 그렇게 멍청하게 했었는지.’

신입사원 당시 아무것도 몰라 그걸 일일이 손으로 클릭하며 테스트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산 그룹에 다니는 동안 내내 자동화를 시키지 못하고, 일일이 손으로 테스트했다. 관성에 젖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멍청한 짓이었다.

‘자동화 툴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미 화면 테스트라는 작업을 자동화시켜 놓은 오픈 라이브러리가 있었다.

GUITAR.

해당 라이브러리의 이름이었다.

사업이 망하고, 직원들이 떠나가며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했고, 찾아낸 방법이었다.

‘먼저 라이브러리를 설치하고 스크립트를 만들어 넣어주면. 엑셀로 결과 보고서까지 만들어주니 얼마나 편해.’

강철은 몰려든 테스트 화면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스크립트를 만들고, GUITAR이라는 라이브러리에 넣어 실행시켰다. 그러자 엑셀로 된 결과물이 주르륵 나왔다.

‘이걸 협력사에 설명해 주고, 엑셀 결과물만 받아서 체크하면.’

자신이 이 일에 투입해야 하는 시간은 아마 절반, 그 이상 줄어들 것이다.

* * *

사흘 뒤.

회의 시간.

하진기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민이 주관하여 회의가 진행되었다.

“박 대리. 차세대 공정율은?”

“현재 95%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럼 다음 주 화면 시연회는 문제없겠네.”

“네.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조 주임도 테스트 잘하고 있지?”

“네.”

“신규 점포 건은?”

“현재 대한 POS 협력사 직원들이랑 POS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그거 권 종별로 테스트 시나리오는 짰어?”

“네. 현금, 카드, 은련, 포인트 등등 여러 권 종을 합성해서 30여 가지 테스트 시나리오 만들었습니다.”

“실제 운용해 보면 별의별 경우가 많이 나오니까. 테스트 케이스 최대한 많이 만들어놔.”

“네.”

그리고 강철을 보며 물었다.

“화면 테스트는 잘되고 있어?”

“네.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그때 말한 화면 개발은?”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그러자 조용훈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김정민이 빠르게 되물었다.

“문제없다고?”

“네.”

“화면 테스트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아 그건 자동화 툴이 있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자세히 설명해 봐.”

“GUITAR이라고 화면 테스트 자동화 라이브러리가 있습니다. 이걸 이용하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김정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아시는 네스트에서 자사 웹 페이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툴인데 우리 영업정보 시스템도 웹 기반에서 작동하니까. 테스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적용해 보니 별 무리 없이 돌아가더라고요.”

네스트.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중 하나였다. 김정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번 보여줘 봐.”

강철이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노트북을 들고 와 빔 프로젝트와 연결했다.

“이 GUITAR이라는 놈을 내려받아 설치하면 이런 화면이 나옵니다.”

강철은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된 GUITAR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 두었던 스크립트 하나를 띄웠다.

“이건 영업정보 화면에서 일별 조건으로 조회를 하라는 테스트 스크립트입니다. 이걸 넣고 실행을 눌러주면.”

그러자 강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화면에 브라우저가 뜨고, 마우스가 움직이며 조회 조건을 일별로 바꾼 후 조회 버튼이 눌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스트 결과가 엑셀 파일로 뽑혀 나왔다.

“협력사 직원들에게 이 방법을 알려주고 결과물로 나온 엑셀 파일을 제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전 간단하게 해당 엑셀만 확인하고요. 그러니 시간이 많이 절약되더라고요. 검색 조건 넣고, 조회하고 하는 일들이 절대적인 시간이 많이 드는 일들이라.”

김정민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좋은 게 있으면 진작 알려줬어야지.”

강철이 볼을 살짝 긁적거리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화면 개발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김정민의 시선이 조용훈 쪽을 향했다.

“조 주임.”

“네.”

“넌 지금까지 이걸 일일이 손으로 클릭하면서 테스트한 거야?”

조용훈의 귀가 발갛게 변했다. 혀를 날름거리며 바짝 말라 버린 입술을 축였다.

“신입은 일을 자동화시켜서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있는데 일 년 선배라는 게 알려주진 못할망정.”

김정민의 그 말에 조용훈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김정민이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주임한테 알려달라고 해서 당장 적용해. 알았어?”

조용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회의 끝나자마자 바로.”

“네.”

“이 주임 수고했어. 앞으로는 이런 내용 있으면 바로 공유해 주고.”

“알겠습니다.”

“그럼 화면 개발했다는 거부터 한번 볼까.”

이내 강철이 지금까지 개발한 화면을 띄웠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정민은 강철의 설명을 들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 친구가 만든 걸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강철이 조용훈을 불렀다.

“조 주임님.”

조용훈이 썩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지금 설명해 드릴까요?”

“그, 그러시죠.”

강철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용법은 간단해요. 문제는 스크립트를 만드는 건데. 이것도 사실 인터넷만 보면 다 나와 있고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으시죠?”

“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메신저로 참고한 링크 보내드릴게요. 그거 보시면 설치에서부터 스크립트 작성까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그거 보고 하루 만에 했으니. 주임님은 하루도 안 걸리실 거예요.”

그러곤 설명이 끝나 버렸다. 조용훈은 미간만 긁적거릴 뿐 더 설명해 달란 말은 하지 못했다.

조용훈이 자리로 돌아가고 강철은 동기 단톡방에 링크를 올렸다.

이강철 : 이건 화면 자동화 테스트 툴. 간단한 예제랑 올렸으니까. 한 번 써봐.

https://www.daesan.com/freeboard/view/?no=30190011&_rk=OmR&exception_mode=recommend&page=1

그 말에 다른 동기들의 답변이 빠르게 올라왔다.

홍성훈 : 후덜덜 패치 만드신 분 아닙니까.

남정복 : 나 그때 그냥 한번 실험 삼아 깔아봤는데 결국 칭찬받았다. 대박. 갓철님 덕분에 칭찬 +1

김윤수 : 갓철님 오셨다. 소리 질러!!

윤찬민 : 오키. 내려받아서 해볼게.

이강철 : 꼭 해봐라. 꽤 쓸 만해. 화면 테스트 시간이 확 줄어들 것이다.

홍성훈 : 너 인사팀에서 이달의 우수사원 이야기 나오더라. 신입이 우수사원이라니. 우리 갓철님.

김윤수 : 진짜?

남정복 : 대박!! 신입이 우수라니. 절 버리지 마세요. 갓철님!

윤찬민 : 진짜 갓철이네.

이강철 : 받아봐야 알지 뭐. 하여간 잘 써봐.

톡을 남긴 강철은 의자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댔다.

‘진짜 받으려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 * *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현재 대산 그룹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계열사 중 한 곳으로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원들은 대부분 영어는 기본으로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유혜인은 그들 중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탁월한 문서작성 능력.

뒤지지 않는 학벌.

빼어난 외모까지.

그런 그녀도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상사의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

보고서를 보고 있던 최석찬 이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 대리. 이번 신규 점포 마케팅 방안 있잖아.”

“네.”

“이렇게 해서 되겠어?”

“최근 SNS상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의 유명 크리에이터들과 협업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보다 그냥 유명 연예인 한 명 부르는 게 낫지 않아?”

“보시면 최근 해당 크리에이터들이 부산 지역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말씀하시는 김수희, 이지민에게 못지않다는 데이터입니다. 저 비용으로 고효율을 추구할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 대리.”

“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어.”

유혜인이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어떤 말이 나올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온 건 그 결정마다 이런 데이터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야.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 그걸 믿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

“내가 최초 프리미엄 아울렛을 하자고 보고서를 올렸을 때 다들 뭐라고 했는지 아나?”

이미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유헤인은 즉각 대답했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명품을 싸게 팔면 명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되는 사업이라고 밀어붙였지. 바로 강한 직감, 그걸 믿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지.”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데이터가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야.”

“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오직 거기에 따라서 의사결정을 내릴 거면 뭐하러 사람이 필요하나. 그냥 컴퓨터가 다 하면 되지.”

이것도 수없이 들은 멘트였다.

유혜인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유 대리는 다 좋은데 아직 그게 부족해. 나가봐.”

살짝 고개를 숙인 유혜인이 이사 실을 나왔다.

유혜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건 사무실 내 유일한 상사인 송호중이었다.

“유 대리. 이사님이 뭐라셔?”

“굳이 연예인을 부르셔야겠다네요.”

“내가 말했잖아. 이사님은 연예인 좋아한다고.”

“아니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이해하려 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책임지는 위치에 가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되니까. 유 대리라고 다를 것 같지 않은데?”

“전 절대 저렇게 안 될 겁니다.”

“후후, 그건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그나저나 내일 화면 점검 준비는 끝났어?”

“네.”

유혜인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과장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최 이사님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최종결정은 유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석찬이 하는 것이다. 회사는 능력이 아니라 직급에 따라 굴러가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그것 말고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다음 날.

대산 프리미엄 아울렛 본사에 회의실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최석찬이 가장 상석에 앉았고, 그 옆에 하진기가 앉아 있었다.

준비가 된 걸 확인한 김정민이 입을 열었다.

“그럼 영업정보시스템 시연회 시작하겠습니다.”

최석찬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정민이 화면에 로그인했다.

“첫 번째 설명해 드릴 것은 메인화면입니다. 메인화면에서는 대표적으로 셀렉트 박스를 이용해 일별, 주별, 월별 영업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각 브랜드별 상품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하지만 그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최석찬이 바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글자가 너무 작은 거 아냐?”

“네?”

“이 화면은 실무진들도 보지만 나를 비롯한 사장님, 그리고 본사 높으신 분들도 가끔 확인하는데 이렇게 폰트가 작아서 어떻게 보겠나. 이거 대고객용도 아니고 내부용이잖아.”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칸 간격은 왜 이리 좁아. 숫자가 끝까지 보이질 않잖아.”

“아, 그건 마우스로 간격을 조정하면.”

“처음부터 널찍하게.”

김정민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때마다 유혜인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이 화면을 확인한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화면 설명 이어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도 채 이어나가지 못했다.

“브랜드별 최고 매출은?”

“그건 브랜드 매출로 넘어가서 정렬하시면…….”

최석찬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야. 그러면 당연히 메인화면에 나와 있어야지. 오늘의 최고 브랜드 매출. 이렇게 뜨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김정민이 유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유혜인은 살짝 한숨을 내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김정민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수정하겠습니다.”

최석찬이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이면 오늘 확인하는 게 의미가 없겠어. 이거 컨펌 해준 게 누구야?”

유혜인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강철이 하진기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진기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지만, 강철이 자신 있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기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사님. 혹시나 해서 화면을 또 하나 준비했습니다.”

“뭐?”

“현재 보시는 화면은 최초 설계된 화면입니다. 화면 설계를 마친 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별도 준비한 화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방금 이사님이 말씀하신 지적사항이 전부 들어 있고요. 한번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최석찬이 살짝 턱을 문질렀다. 강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당연히 각 정보 폰트는 지금보다 1.5배 키웠으며 메인화면에는 브랜드별 최고 매출이 나와 있습니다. 또한, 버튼을 누르면 여주, 파주 그리고 신설될 부산에 있는 매장별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 봐.”

흥미가 동했다는 뜻이었다.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일별 매장 매출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전일 대비 몇 프로의 상승을 기록했는지도 표시되도록 했습니다.”

최석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설명이었다.

“진작 그렇게 해오지.”

“혹시 몰라서 두 벌을 준비했습니다.”

“열어봐.”

“네.”

강철은 자신의 노트북으로 빔프로젝터를 연결하게 했다. 그리고 차분히 화면 설명을 이어나갔다.

최석찬이 가장 관심이 있는 화면은 영업정보. 어차피 재무나 회계 인사 관리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과거에도 그랬다.

* * *

한 시간 뒤.

영업정보 관련 화면 설명이 끝나고, 최석찬이 유혜인을 보며 말했다.

“이거 유 대리가 진행한 거지?”

움찔한 유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수고했어.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좋잖아.”

강철이 한마디 거들었다.

“유 대리님이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희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주시면 많은 관심을 쏟으셨어요.”

최석찬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니까. 결과가 잘 나오네. 앞으로도 이렇게 진행해.”

“네.”

“나머지 화면은 알아서들 하고.”

그 말을 끝으로 최석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하아.”

“흐으.”

유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전 저런 화면을 검토한 적이 없는데요.”

하진기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우리 신입이 공채 교육 때 최 이사님께 들은 말씀을 가지고 화면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건의하더라고.”

유혜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한번 해보라고 했지. 그리고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유혜인의 시선이 강철을 향했다.

“그런데 왜 아까는 마치 제가 검토한 것처럼…….”

그러자 강철이 나섰다.

“정말 대리님이 검토하신 화면이니까요.”

“네? 전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컨텐츠들, 즉 최고 매출브랜드, 매장별 매출 등등은 대리님이 말씀하셔서 들어가 있는 겁니다. 전 그걸 이사님이 보시기 편하게 배열한 것뿐이에요. 대리님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

“그리고 어차피 서로 도와가며 일해야 하는 마당에 니가 했니 내가 했니 따져서 무얼 하겠습니까.”

살짝 입술을 달싹 이던 유혜인이 결국 입을 닫았다. 하진기가 웃음을 잔뜩 머금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 그럼 다음 메뉴로 넘어갑니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그 말에 강철이 다시 화면 설명을 이어나갔다.

CRM.

재무.

인사.

등등.

그 밖에도 여러 메뉴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해당 메뉴는 실무자인 유혜인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유혜인이 크게 이상하지만 않으면 메뉴 대부분에서 별말 없이 넘어갔다.

결국, 지금까지 한 화면 점검 시연회 중 가장 이른 시간 안에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 * *

일행이 떠난 텅 빈 회의실.

유혜인이 조용히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런 유혜인을 향해 송호중이 말했다.

“아까 걔 신입이지?”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한 방 먹었어.”

“…….”

“자네 능력은 누구나 인정해. 하지만 자기 사업할 거 아니면 상사 취향도 좀 알아야지.”

유혜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려고 해봤어요.”

“그런데?”

“저 스스로가 납득이 잘 안 돼요.”

“이해가 안 돼?”

유혜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호중이 말을 이었다.

“원래 그래.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람 마음 읽는 거잖아. 그런 면에서 아까 그 친구 아주 크게 될 놈이야. 최 이사님 마음과 우리 유 대리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으니.”

유혜인은 굳이 부정하지 못했다. 송호중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뭐라더라 여기 있는 컨텐츠들 즉 최고 매출브랜드, 매장별 매출 등등은 대리님이 말씀하셔서 들어가 있는 겁니다?”

송호중이 감탄사를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캬아. 그다음 말이 명언이지. 어차피 서로 도와가며 일해야 하는 마당에 니가 했니 내가 했니 따져서 무얼 하겠습니까. 그거 평소에 유 대리가 했던 말이잖아. 그걸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까 어때?”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유혜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이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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