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69화 (외전) (369/369)

369화

<4컷 편>

4컷 외전

1. 설화는 싱글벙글합니다.

이젠 대학교 2학년생으로서 이번 여름 기말고사를 앞둔 민국! 1학년생도 아니고 2학년생이니 만큼 이제는 슬슬 공부에도 열중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비제이라는 직업이 있었으니 수입 공급원은 짭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할 만큼 민국은 욕심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민국 니임~."

"아, 설화야."

아침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던 민국. 이윽고 침대에 있던 설화가 잠에서 깬 듯 뒹굴거리면서 민국을 호명했다. 그 귀여운 애교 같은 소리에 책상에 앉아있던 민국이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하시와요?"

"엣헴, 공부하고 있지. 이 몸이 이래봬도 공부 좀 하는 놈일세다."

"와아~ 대단하셔요~."

아직은 막 일어난 지라 눈이 잘 안 떠지는 모양이지만, 그 와중에도 박수를 짝짝 치면서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 설화였다. 어지간히 그녀도 리액션이 좋은 편이었다. 현 시대에 걸맞지 않는 가치관만 조금 제외하면, 정말이지 많은 남자들에게 인기를 받을 여성이었다.

"그래 그래. 아무튼 나 공부 좀 할 테니 자려면 좀 더 자."

"민국 님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깨게 되어와요~. 그냥 지켜볼게요~."

그리고는 침대에서 엎드린 상태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민국을 쳐다보는 설화였다. 민국은 피식 웃은 다음에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볼펜을 쥐고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

이거 이거, 시간이 지날 수록 옆에서 전해지는 시선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어떻게 된 게 설화는 아까 전의 모습에서 조금도 변함없이 민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 설화야."

"네 민국 님~."

"크흠! 지금 이 몸이 공부 좀 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피곤하면 굳이 나 신경쓰지 말고 좀 더 자."

그만 쳐다보고 잠을 좀 더 자거나 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일절 모르는 설화는 그저 미소만 지으면서 말할 따름이었다.

"아니여와요~ 괜찮아요~."

그리고 또다시 싱글벙글.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해바라기인가? 왠지 모르게 설화의 얼굴이 진짜 꽃인 해바라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민국은 '하핫'하고 쓴 웃음과 함께 다시 고개를 돌려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

하지만 계속해서 전해지는 시선…. 시선… 시선…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계속해서 전해지는 시선…. 이거, 은근히,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한다.

"…설화야."

"네 민국 님~."

"부탁인데 이쪽 안 쳐다보면 안 되겠니?"

조금은 직설적으로 부탁하는 민국이었다. 그러자 설화가 조금 눈을 크게 뜨다가 상냥하게 묻는다.

"안 되어와요~."

"헉, 어째서냐."

"민국 님을 봄으로서 민국 님 에너지를 제 몸속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기 때문이와요."

"커험! 뭐, 그렇게 내가 대단한 존재라고 칭송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민국. 그러나 싱글벙글 싱글벙글….

"……."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싱글벙글

"!"

인내심이 바닥난 민국이 볼펜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설화야. 미안한데 나 이번 기말 꽤 중요해서 말이야. 조용히 공부하고 싶으니 그만 쳐다봐줄 수 있어?"

조금은 냉랭하지만, 아무래도 시험을 앞두고 있다 보니 조금은 과감하게 요구하는 민국이었다. 설사 일편단심 민국 바라기인 설화가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 있게 말한 순간이었다.

"……."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리는 설화였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웃고 있다.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뭔가가 스르르르… 스르르르…? 올라오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설화만이 꺼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민국 님은 사람한테서 행복한 시간을 빼앗는 그런 사람이시와요?"

"……."

은근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묻는 설화의 모습에 강한 패기를 느낀 민국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패왕색인가! 어떤 의미에선 흑설 공주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분위기에 민국은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못 들었다는 듯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

사각 사각…. 열심히 공부를 하는 민국을 보며 싱글벙글 웃는 설화였다. 싱글벙글 싱글벙글.

2. 서라는 녹음합니다.

"온니찡, 지는 지금 인생의 쓰디쓴 참맛을 보고 있어여."

"커피 마시고 있냐?"

"헐. 어떻게 아셨지여? 아까 전에 카페라떼 마심."

"어휴,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다. 3600원짜리 카페라떼 쳐마시면서 부모님 등골 휘게 만드는 녀석."

"우왕. 강한 독설이시네여. 울면서 은별 언니찡에게 구조 요청을 해야지여!"

"야 이 약삭 빠른 놈아! 그만 둬! 내 점수 더 깨진다!"

"헤헤, 역시 은별몬!"

"이놈… 은별이를 포켓몬으로 다루는 거 보소."

언젠간 은별이를 피카츄 급으로 끌어올려 포켓몬 마스터가 되려고 할 지도 모를 강서라였다. 어쨌든 현재는 통화 중. 시험 공부를 하느라 민국이나 서라나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실정이었다.

"수능 공부는 잘하고 있냐."

"온니찡. 이래봬도 수능 공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여. 수능이 얼마나 쉬운 지 모르셈여?"

"오, 꼴에 자신감 보소."

"잘 들어보세여. 수능에 출제되는 문제들을 전부 찍어서 맞추는 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과 맞먹는다고 생각해여. 그러면 그 논리를 이용해서 지가 로또 1등에 당첨될 운을 수능 문제를 찍는 운으로 대체하면 되여!"

"포기했구만 이 녀석."

'으아아아앙!'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다.

"온니찡! 인생은 왜 이렇게 쓰리고 쓰리씁씁한 걸까여! 지는 수능 따위… 수능 따위이잉!"

"훗. 아서라 아서. 어차피 수능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거쳐가는 일생일대의 위기일 뿐이다. 다들 한 번씩 겪는거니 견뎌낼 수 있는 방법도 있고 말이지. 내가 한 가지 좋은 방법 추천해주랴?"

"우왕, 두근두근. 뭔데여?"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면 만사 끝이다!"

"죽을 때 유서에다가 온니짱에게 강간 당했다고 써야징."

"미안하다. 다신 안 그럴게."

"히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얼굴 보기가 참 힘들구만. 그래도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 보는 사이 아니었냐?"

"언니찡에게 혼쭐 난 다음에 관두기로 했잖아여. 언니찡 이제 온니짱이랑 나님이 만나면 상처 받을 거예염. 지는 그런 거 싫습니다요."

그 부분은 단호하게 말하는 서라였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서라 역시 민국이 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닿아도 몸이 함께가 아니면 역시 외로운 법이었다. 민국도 아니라면 거짓이겠지.

"후우! 그래도 역시 힘들구만! 그냥 은별이 몰래 얼굴이나 보자!"

"거절! 반대!"

"흠! 그럼 하는 수 없지, 은별이랑 3인으로 볼까?"

"읭? 은별 언니찡도 포함해서여?"

"그래. 이참에 모텔에서 3P나 하면서 놀자."

"그 말을 은별 언니찡이 들었더라면 '어휴… 노답….'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을 듯."

"이제 너도 은별이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했구나. 은별이는 완벽한 츤데레지."

"그러하지여. 앗? 그럼 지는 무슨 성향일까여?"

"흐음."

일단 은별이는 츤데레다. 예나는 약간 얀데레끼가 있는 현모양처 타입이고, 유이는 말없는 쑥맥 같은 타입이다. 설화는 일편단심 해바라기지만 한 편으론 진성 얀데레 타입이며… 서라는… 서라는….

"그러고 보니 넌 무슨 타입이라고 해야 하냐."

"나님이 떠올려봐도 꽤나 특이한 타입 같네여?"

"크으… 음양합일만 하면 어떤 타입인지 완전히 알 것 같은데! 모텔이나 갈래?"

"소름…. 나님 순간 온몸에 닭살 돋아서 커피 마심."

"아까 마셨다고 하지 않았냐?"

"표현만 그렇게 하는 거지여. 순진하게 왜 그러세여?"

"흠흠, 그렇군."

어쨌든 이제 슬슬 끊을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둘 다 공부를 해야 하는 몸이다 보니까 계속해서 평안하게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그럼 나중에 은별이랑 너랑 합해서 세 명이서 보기로 하자."

"은별 언니찡이 허가해줄 리는 모르겠지만여! 아무튼 알겠습니다여!"

민국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휴대전화 너머의 서라도 따라서 미소를 짓고 있을 터였다.

"그래, 잘자고."

"온니찡도염. 내 꿈꾸세염."

"그래, 널 범하는 꿈을 꿀게."

"이거 녹음 완료!"

그리고 뚝 통화를 끊는 서라였다. 순간 뻥진 표정을 짓는 민국이었지만, 곧 다시금 미소를 지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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