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끗>
시간은 다시 설화의 사건이 있던 때로 돌아간다. 민국을 잃어버린 설화가 폭주하여 사람들을 학살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그때, 불현듯이 나타난 흑마법사가 민국을 되살리고 설화를 보호했다. 사실상 학살자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그녀를 보호하고 시간 이동을 한 것이다.
"……."
그것은 평범한 시간 이동이 아닌, 그야말로 세상의 시간 자체를 되돌려버리는 방식이었다. 흑설 공주가 민국을 되살릴 때 사용했던 그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은 절묘하게 닮아 있었다. 흑마법사는 민국을 되살림과 더불어 설화 역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의식을 잠시 끊어버렸다.
"다시는 그런 짓하면 안 된다 설화야?"
"네~ 민국 님~."
'저는 민국 님만 있으면 되어와요~.'하면서 민국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으며 싱글벙글거리는 설화. 그야말로 강아지 같은 그 애교에 민국은 '흠흠! 역시 나야!'하고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리고 안겨 있는 설화를 설득하여 잠시 밀어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민국이었다.
"갔다 올 테니까 사고치지 말고 잘 있어."
"네~ 민국 님~."
말은 곧잘 하는 설화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열었다. 또각 또각….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설화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녀에겐 그런 사건을 저질렀단 기억도 의식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 세상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던 그녀다. 죄책감도, 불안감도 가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녀에겐 민국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살육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으니까. 사람 시체 몇 구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할 수밖에.
물론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그 짐작이 현실로 다가왔음에 민국도 조금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설화와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더욱 친근해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사회 생활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민국이 많은 것을 가르쳐줘야겠지. 이 세상과 그 세상의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점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말이다….
"……."
이런저런 잡념이 몇 번이고 스치던 끝에, 결국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왔다. 민국은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철문을 열자 쨍쨍한 햇볕이 민국의 머리를 정면으로 쏘았다. 일시적으로 어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등을 들어 햇볕을 막고, 정면을 쳐다보는 민국이었다.
"……."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어질거리던 느낌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동시에 눈앞에 있는 한 여자 아이를 보며 민국은 굳건히 입을 다문다.
"……."
상대방 역시도 그런 일 직후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 지 조금은 막막한 모양이었다. 사사건건 전체적으로 따져볼 때 이번 일은 누가 보아도 민국의 엄연한 잘못이었으니까. 비록 환경이 그랬고 상황이 그랬다 한들, 결과적으로 그녀를 속인 건 민국 자신이었으니까.
"미안해."
"……."
민국은 만나자마자 저도 모르게 입버릇처럼 사과를 하게 되었다. 사과를 받은 당사자는 아무 동요 없이 그저 민국을 쳐다보았다.
"……."
입을 선뜻 벌려 무언가 말을 하려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를 삼키고만다. 이전처럼 곧잘 내뱉던 그 목소리라는 것이… 쉽게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내가 여기 찾아온 건, 너랑 다시 사귀기 위함이 아니야."
"……."
그럼 무엇 때문에 온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민국의 무사함을 확인하기 위함일 것이었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설화의 허벅지에 누워 있던 그의 얼굴은 정말이지 끔찍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너에게 뭔가를 따지려고 온 것도 아니야."
"……."
"…다시 말하지만, 난 너랑 다시 사귀지 않아."
그리고 배를 만지는 은별이었다. 그녀의 뱃속에는 얼마지 않아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것이다. 신비한 힘이 잠시 동안 숨을 죽이게 만들었던 무엇인가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민국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 가벼운 손동작에도 은별은 움찔했다. 그녀는 필시 민국의 곁에 있던 여자들 중, 정말이지 많은 것을 감내하고 감당해온 사람일 것이었다. 그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 민국은 조심스러운 동작을 표했다.
"사귀지 않더라도, 노력할게."
"……."
"내가 네 마음을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리고 민국은 다소 진지한 얼굴로 그리 선언했다. 민국의 그런 진지한 얼굴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기에, 은별은 그만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중 눈동자를 글썽이게 되었다.
"…흑."
"울어?"
"아, 아니거든!"
순간 그동안의 서글픔이 벅차 올랐는지 민국을 밀쳐내면서 고개를 돌리는 은별이었다. 얼굴을 어떻게든 가려서라도 자신의 눈물을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으나, 그게 뜻대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짜… 바보야…."
"……."
"바보야!"
그러고는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흐느끼는 은별을 바라보며, 민국은 지그시 미소만 지었다.
은별에게 듣기를, 서라와는 무사히 화해를 했다고 한다. 그 증거로 현재 통화를 하며 서라의 다소 밝아진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엣헴 행님!"
"오, 잘 화해했냐?"
"지는 행님처럼 우물쭈물거리는 지렁이가 아님여! 비록 달려 있는 건 없지만 달려 나갈 수 있는 직사광선이 있지여!"
"어휴, 그렇구나. 우리 서라 참 장하다. 착한 아이야."
"우왕… 뭔가 칭찬 아닌 칭찬으로 공격하시네여. 새로운 컨셉이세여?"
민국의 신선한 장난에 서라가 부들부들 떨며 질문한다. 민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임마. 난 또 니네들 우정 깨지랴 조마조마했지."
"엣헴! 행님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여! …근데 온니찡은?"
"엉?"
"온니…찡은 어케 됨여?"
아무래도 은별과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민국은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자고 생각했다.
"차였다."
"히익!"
"뭐 근데, 완전히 차인 것도 아닌 거 같으니 다시 돌다리 두드려야지. 원래 원숭이도 나무 열 번은 올라가면 과일은 딴다고 했다."
"그리고 내려올 때 추락사하지 않을까여?"
"이놈이 끔찍한 소리를 하네."
"데헷데헷."
애교로 넘어가는 서라였고, 이 역시 귀엽게 받아들이며 웃는 민국이었다.
"그나저나 너 오늘 할 거 없냐? 없으면 우리 집에 잠시 좀 와라."
"읭… 왜여?"
"어차피 다시 솔로가 되었으니 너나 키잡하게."
"은별 언니찡에게 전화."
"미안하다 슈밤. 그냥 와라. 심심하다."
그 말에는 고개를 까닥이는 서라였다.
"실은 오늘만큼은 수능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깐여!"
"그래, 끝까지 벗어나서 지잡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온니찡 죽을래염?"
터프한 서라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민국이 픽 웃는다. 그렇게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 뒤였다. 통화를 끊고… 민국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정말이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슬그머니 옆을 바라보자, 이젠 사라져 버린 검은 코트의 잔상이 스쳐 지나간다. 본래는 이 세상에선 존재해선 안 됐을, 한 소녀의 모습.
"사실상 알고 지낸 것도 얼마 되지 않으니 별 감정이 들진 않지만."
그래도, 무일푼으로 자신을 살려주고 사랑해준 소녀는 분명했으니까. 다만, 무슨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과정을 겪어가며 그 소녀는 현 시대에 무너진 것 같다. 앞으로 그것도 곧잘 극복해나가야겠지.
"할 일이 태산 같구만."
계단을 내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민국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상을 차리고 음식을 놓고 있는 은별이 있었다.
"오우, 은별 마님. 저를 위해 맛있는 끼니를 제공해주시고,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엿 먹어."
말은 시니컬하고 사납지만, 행동은 정말이지 따뜻한 여인이 아닐 수 없다. 민국이 으흐흣하면서 웃고 있자니 구멍을 넘어 예나가 나타났다.
"은별… 씨…."
"……."
예나는 민국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젠 알고 있었기에, 은별을 부르는데 조금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은별은 그런 예나의 시선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전히 똑부러진 얼굴로 상을 차리면서 말했다.
"…음식 나열이나 하는 것 좀 도와줘요. 혼자하기 힘드니까."
"네…? …네."
그리고 졸지에 접시들을 상에 내려놓는 역할을 하게 된 예나였다. 사실상 잘 찾아온 셈이었다. 오늘은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는 각오 하에 진수성찬을 차리면서 파티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라를 부른 것이었고 말이다.
"아, 맞아. 슴가왕도 불러야겠구만."
그리고 곧장 유이에게도 연락을 하는 민국이었다. 뚜루루루루…. 착신음은 이전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고, 곧장 받는 그녀였다.
"여보세…."
"슴가왕이시여. 지금 그대를 위한 진수성찬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얼른 오셔서 드십쇼."
더도 말고 본론을 말하는 민국이었고, 유이는 이전이라면 어떻게든 안 가려고 때를 썼겠지만… 오히려 이젠 이것을 명분으로 하여 갈 채비를 갖추는 그녀였다.
얼마지 않아 그렇게 서라와 유이가 모이도 모이게 되고, 김민철도 부를까 하다가 그냥 서라 때문에 관두기로 한다.
'괜히 와서 이런저런 옛 감정 느끼게 하는 것도 친구로서 도리는 아니겠지.'
최소한 친구라면 이런 건 지켜주자는 생각 하에 민국은 고개 돌려 문 쪽을 보았다.
"역시 은별 님~ 가슴이 작으면 요리를 잘 만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와요~."
"…미쳤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어느새 설화도 안방에서 튀어나와 은별과 어울리는 와중이다. 서라나 유이, 예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두고, 잠시 문 쪽을 돌아보는 민국이었다. 그가 보는 문은 현관문이 아닌, 흑설 공주가 있을 문이었다.
'아니야.'
이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던 도중, 얼마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는 민국이었다. 그리고는, 빨리 오라고 손짓하거나 호통치는 그녀들을 보며 상으로 걸어나갈 따름이었다.
*
가벼운 파티가 끝난 뒤였다. 아니, 가벼운 파티라기에는 졸지에 술도 마시게 되어서 긴 파티가 되어버렸다.
"서민국… 너 때문에 내가 진짜…! 얼…마나… 끅!"
"언니찡… 지는여,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에여…."
"민국…아… 이거 은근히 어지럽네…?"
"…꿀꺽 꿀꺽."
"재미나게 노시네요~."
하지만 이전처럼 과하게 마시는 모습들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각자 술버릇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다들 가급적 조심조심 마시는 모습이었으나, 그래도 조금은 취해 알딸딸거리는 모양이었다.
민국은 본래 이 시간까지 놀 생각이 아니었는데 긴 밤까지 놀게 되었음에, 가벼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바람 좀 세고 올게."
"어디 와! 이리 앉아!"
"은별 마님, 진정하시옵소서. 소인 바람 한 번 세고 싶습니다요."
"으으…."
억울하다는 얼굴로 신음하는 은별. 그런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토닥이듯 위로하는 서라였다.
"은별 언니찡, 온니찡이 원래 그러하잖아염. 그냥 언니찡이 참아주세여."
"서라야… …역시 난 너밖에 없어."
"으앙! 언니찡 개감동!"
자신에게 안기는 은별을 보며 서라도 감동해서 와락 안는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미소를 머금던 민국은, 이내 예나에게 눈짓을 한다. 예나 역시 조금 술에 취해 얼굴이 붉었지만 민국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하고 있을게."
그렇게 확답을 받은 민국은 안심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계단을 거닐어, 다시 옥상에 도착하게 된다.
"휘유."
그러자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곳에, 귀족스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파티를 계속해서 즐기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파티야 뭐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아마 새벽까지도 줄창 마실 거 같으니까요."
민국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정면을 보았다. 늘 어딘가가 멀어 보이던 흑설 공주의 뒷모습이,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내 그녀의 옆까지 도달한 민국이었다.
"괜찮으신가요."
"괜찮단다."
"뭐가요?"
그 말에 흑설 공주가 민국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흘린다.
"말장난을 하고 싶은 것이느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진심으로 궁금해서요."
민국은 가늘게 뜬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
"당신의 또 다른 세상의 흑마법사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 정작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죠. 하지만, 그 흑마법사는 현 시대의 당신이 현 시대의 나로 인해 받은 상처가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흑설 공주를 마주하는 민국이었다.
"당신은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지운 겁니까?"
"……."
"아니면, 당신과 만났던 그 시간들을 지운 겁니까?"
직설적인 물음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찾아왔다. 수 초가 흘렀을까…. 민국을 마주하던 흑설 공주가 선뜻 입을 열었다.
"이젠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것들 아니겠느냐."
"……."
민국은 이전처럼 흑설 공주가 냉랭해 보이지 않았다. 필시 흑마법사와 실제로 만나 느낀 게 있어서일까. 300년의 기억 사건 이후 흑설 공주가 어느 정도 털어놓았을 때하고는, 인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필시 그녀는… 어딘가가 무너질 대로 무너져, 더 이상 복원조차 불가능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요."
"……."
"그렇겠군요, 아마."
하지만 민국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이상 캐묻는들,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는 행위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이내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는 민국이었다. 흑설 공주는 그 자리 그대로에 서 있었다.
"당신의 과거를 묻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겠죠."
"……."
"당신의 현재를 알아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두 마디와 함께 민국은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홀로 남은 흑설 공주는 그저 말없이 서서 저평선을 바라보다가,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흑설 공주와의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민국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신명나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다섯 여자가 보였다. 어지간히 재미나게 놀고 있는지, 술을 아예 바닥에 쏟으면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민국은 왠지 일이 커질 거 같음에 슬슬 제제에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자, 다들 이제 멈추고."
그러나 그 발언 한 마디를 한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공기. 동시에 알 수 없는 냉랭함. 민국은 '응?'하고 그녀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민국을 일제히 쳐다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어딘가… 맛이 가 있었다.
"오…빠…."
"엥? 서라야?"
이내 성큼성큼 다가온 서라가 민국의 팔을 꽉 붙잡으며 흐느낀다. 민국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울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은별이가 나머지 손을 붙잡는다.
"은별아? 갑자기 왜 그래?"
"…안아줘."
"엥?"
"섹스…해줘."
"헐."
설마 여기서 5P라도 하자는 건가? 아니, 물론 그거야 좋긴 하다만….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번엔 정면에서 누군가가 민국의 살결을 만져왔다.
"헉! 예나야!"
"민국아… 살결 느낌이 좋네…?"
그제야 민국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붉어진 예나의 얼굴… 유혹하는 은별… 울고 있는 서라… 이것들… 취했…! 콰앙!
"히이익!"
이번엔 민국의 옆얼굴 근처로 날카로운 발길질이 한 번 비껴 지나간다. 민국의 뒤에 있는 벽면이 움푹하고 파였다. 그것을 본 민국은 사색이 되었고, 허리춤을 쓰다듬는 예나를 뒤로하고 정면의 유이가 흉포한 얼굴로 소리친다.
"너!"
"네, 네넷!"
"너 이 개자식…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
버럭 소리치며 깡패처럼 변모해버린 유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다. 졸지에 팔까지 묶여버렸으니 난리일 수밖에.
'잠깐만!'
그럼 마지막 설화는? 설화는 아무래도 이능력까지 소유하고 있다 보니 장난이 아닐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녀니까!
"후훗~."
이윽고 설화가 매우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입가에 손을 갖다댔다. 그러는가 싶더니 곧 쓰르르륵….
"……."
의외로 설화는 술버릇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그렇게 웃어 보이는가 싶더니 옆으로 그대로 고꾸라져, 웃는 얼굴로 잠에 들고 마는 모습이었다.
"너어!"
"으아악! 네, 네! 이, 일단 진정하세요 유이 씨!"
"진정하라고? 이걸 어떻게 진정해!!!!"
쿠웅 쿠웅! 몇 번이고 민국의 옆얼굴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발길질에 민국은 아연실색이었다. 심지어 허리는 예나가 붙잡고 있고, 두 팔은 은별과 서라가 맡고 있으니…! 이거 어찌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진정하냐고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민국은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정말이지 우습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게 청춘이라면 나름 청춘 아니겠는가? 물론 무서워서 그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민국은 불현듯이 이런 한 마디를 하고 싶어졌다.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끗
============================ 작품 후기 ============================
그동안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오전에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