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60화 (360/369)

360화

"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 소리가 입속에서 터져 나왔다. 남자는 순식간에 비틀어진 자신의 팔을 부여 잡으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살갗 밖으로 드러난 하얀 뼈…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잔혹한 핏방울. 아무도 없는 주차장 안이 서서히 붉은 피로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아프신가 보네요~."

설화는 입가에 손을 갖다대고 여전히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눈웃음 속에서 드러난 그녀의 눈빛은… 그야말로 자신의 세상에서 보았던 악랄한 몬스터를 향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얼마나 아프시죠오?"

"너, 너 뭐야아아아!"

"민국 님처럼 아프신가요오?"

너무 많은 피가 새어 나왔는지 벌써부터 급격히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그의 눈빛은 이미 평범한 인간이 아닌… 그야말로 괴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이윽고 비명과 함께 몸을 돌려 지하주차장 밖으로 뛰어나가려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설화는 입가에 다시금 손을 올린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눈웃음을 보이더니…. 푸드드드득!

"큭!"

퍽! 발에 순간 무언가가 걸린 것마냥 힘이 빠져버린다. 동시에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떨구는 해커 남자였다. 쓰고 있던 안경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태가 나가버렸고… 남자는 코피를 흘리며 자신의 발목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발목이 비틀려 있었다. 이전처럼 뼈가 보이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완전히 비틀린 상태로 거동조차 불가능하게 변해 있었다. 눈으로 그것을 목도하자 찾아오는 쩌릿한 아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통증에 남자는 다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설화를 올려다보았다.

"호홋."

"으아아아아악!"

지하주차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 소리와 함께… 남자는 있는 힘껏 기어나갔다. 그리고 기어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저벅저벅 걸으며 가만히 내려다보던 설화였다.

"이제 끝을 내기로 할게요~."

그 무엇도 필요 없다. 나에게는 서민국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가 칼을 겨누어 찌르려고 한다면, 자신이 가만 둘 리가 없다. 설화는 이미 결심을 하고 그를 죽일 계획이었다.

"사, 사람 살려어어어어!"

보이지 않는 투명한 손들이 그의 목을 향해 무수히 뻗어져 나가던 찰나였다.

"설화야!"

문득 들려온 그 소리에 뻗어져 나가던 손들이 일제히 정지되었다. 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음성이 설화의 살육 행위를 방해한 것이다. 이윽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드는 설화였다.

"민국 니임?"

"하아, 하아."

그리고 맞은편에는 쉬지 않고 뛰어온 탓인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민국이 서 있었다. 민국은 호흡이 가쁜 와중에도 결코 허리를 숙이지 않으며 시선을 돌렸다. 남자 해커를 향해서였다.

"히, 히이이이익…."

"……."

자신을 그토록 못 살게 굴던 남자 해커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모습이었다. 다시는 팔을 못 쓰게 만들 계획이었는지 팔이 완전히 비틀어져 있을 뿐더러… 다리 한 쪽도 거의 박살나 있는 모습이었다.

"사, 살려… 살려줘어…!"

"……."

그리고 민국을 쳐다보며, 자신이 했던 과오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는지… 구원을 요청하는 모습이었다. 그 행동에 어이없어하기도 전에… 민국은 호흡이 조금은 정돈되는 걸 느끼면서 진지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설화는 민국이 오자 반가운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민국 님도 참~."

"……."

"조금만 더 있었으면 되었을 텐데 너무 성미가 급하셔라~."

볼에 손을 갖다대고 말하는 설화를 향해 민국은 천천히 운을 띄었다.

"설화야."

"네 민국 님~."

"이거, 네가 그런 거야?"

진지한 음성으로 말하는 민국이었다. 설화는 볼에 대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가 당한 것 때문에?"

그 말에 설화가 웃으면서 말한다.

"민국 님을 건드리는 사람은 전부 위험한 사람들이니까요~."

"……."

"몬스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사람들…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어와요."

그래서 민국을 대신해서 자신이 처리해주겠다는 심보인 것이다. 민국은 거의 기절 직전인 남자 해커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아아아아…."

"……."

민국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해 설화야."

"왜요 민국 니임~?"

투명한 손들은 언제든지 남자 해커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숨통을 금방 조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안 되는 거야. 설화야, 그만해."

그 말에 설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의문의 얼굴이었다.

"적어도 제가 살던 세계는, 어떤 각별한 이유에서도 같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어와요. 하지만 이 세상은 다른 거 같사와요 민국 님."

설화가 말을 잇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걸 당연시 하는 세상이어와요~. 마치 몬스터처럼요~."

"……."

"민국 님이 왜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어와요~. 그래서 대신 처리해드리려고 하는 거랍니다~."

뭔가 잘못되어있다. 이전부터 어렴풋이 감은 잡고 있었지만, 확신을 하지 못했던 고민이었다.

민국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설화는 이미 그 세상에서 생명이란 것을 죽여본 여인이었다.

당연히 생명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악한 감정을 가지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몬스터와 같은, 이 세상의 질 나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증오가 다시금 꿈틀할 것이다.

"그래도 안 돼 설화야."

"……."

"멈춰."

하지만 민국은 반대했다. 완고하게 반대하는 그의 모습에 설화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설화는 언제든지 남자 해커를 죽여버리고말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치고만다.

"멈춰 설화야."

"민국 님~."

"안 멈추면 안마 안 해준다!"

그 말에 몰래 남자 해커의 목을 조이려던 투명한 손이 멈추고 말았다. 설화는 진심으로 놀란 듯 물었다.

"정말이와요?"

"그래! 진짜 안마 다시는 안해줄 거야! 암암!"

"…너무하시와요! 민국 님을 위해 저는 이렇게…."

"날 위한다면 손을 때는 게 올바를 지어다."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민국이었다. 결국 그런 민국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설화가 별 수 없다는 듯, 투명한 손을 남자 해커의 목에서 거두었다.

"어쩔 수 없지와요~ 후훗."

그리고는 다시 웃음을 보인다. 실로 예쁘지만, 실로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아닐 수 없다. 민국은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휘유'하고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세상의 평화를 또다시 지켜냈군.'

비록 세상의 평화라고 하기엔 개인적인 사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말이다. 민국은 다시 고개를 내려 남자 해커를 바라보았다. 고통 범벅인 남자 해커의 얼굴은 더 이상 민국을 사람처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설화와 함께 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일반적인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거겠지.

"…일단 가자 설화야."

어쨌든 처리할 일이 많았다. 우선 남자 해커는 119에 신고해서 구급대라도 불러야 할 것 같았고, 그 후에 설화의 사건 처리는….

'흑설 공주의 힘을 또 빌려야 하려나.'

또다시 그녀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니 막막할 따름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결국 얻는 것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네 민국 니임~."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 알았어?"

"알겠어와요~ 민국 님에게 손지겁하지 않는 이상 참을게요오~."

웃으면서 말하는 설화였지만 발언은 실로 오싹할 따름이다. 민국을 죽이는 놈이 있으면 그놈의 가족까지 죄다 몰살시킬 듯한 패기였다. 어쨌든 간에… 일은 완전히 종결. 이제 설화도 안정을 취한 것 같으니 어떻게든 일을 해결할 생각을 하는 민국이었다.

'씨…발….'

엎드려있는 남자 해커는 더 이상 기어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질 나쁜 눈빛을 뽑아내며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딴… 씨발… 서민국!'

다 뭣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를 향한 의미 없는 증오다. 그리고 그 증오는….

"일단 일어나라. 내가 부축해줄 테니까."

"……."

어디 근처 바깥 의자에 앉히고 일단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흑설 공주에게 도움을 받아…. 하지만 남자 해커를 부축하여 일으키던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결국 증오를 참지 못하고 정상인 나머지 손으로 민국의 목을 조이려고 하는 남자 해커였다.

"……!"

당연지사 민국은 깜짝 놀라며 뒤로 목을 뺄 따름이었고, 그때…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스쳐 지나갔다.

"안 돼 설화야!!!"

그녀의 투명한 손이 무수히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

"짧은 시간이 걸렸구나."

"그렇지."

와인을 졸졸 따르는 흑설 공주였다. 고급스러운 귀족풍의 옷을 입은 그녀는, 천천히 와인잔을 들며 부딪혀줄 것을 요구했다. 이윽고 짠, 하고 검은 코트의 여자 아이가 물잔을 부딪혀준다.

"오랜 시간이 걸렸군."

흑마법사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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