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흑… 흑…."
"흐규… 흐규… 딸꾹!"
직장인들 출근하는 길 한복판에서 열심히 오열하던 두 여자였다. 한 남자 때문에 이게 무슨 생고생인가…. 어쨌든 은별은 보는 눈도 있다 보니 근처 공터로 장소를 이동했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면서… 자신의 옆자리 그네에 앉아있는 서라를 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넌 어떡하고 싶은 건데?"
"흐규 흐규… 딸꾹!"
딸꾹질이 쉽사리 멈추지 않는지, 이따금씩 진지한 분위기를 한 번씩 깨트렸다. 그러나 서라는 눈물을 훔치면서 말을 이었다.
"언니찡이 원하는데로 할래염…."
"……."
"언니찡도 온니찡만큼 소중하니까여…."
왠지 또다시 뭉클하게 만드는 감격의 멘트였다. 다시금 감동을 먹은 것처럼 울컥하는 표정을 짓던 은별. 곧 은별도 눈가에 다시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훔치면서 말했다.
"…그래."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성격이 엇나간 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 어여쁜 두 여자가 울고 있어야 한다니 말이다. 은별은 생각했다. 지금쯤 그놈은 뭣도 모르고 대학교에서 수업이나 듣고 있겠지?
'…갑자기 생각하니 짜증나네.'
울컥했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엄청난 미움과 증오심이 솟구치는 은별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아랫도리를 잘 관리했더라면….'
어떤 면에선 책임 전가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선 무책임한 발언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실상 그놈이 조금만 태도가 달랐더라면….
"이렇게 하자."
침착해진 음성으로 은별이 운을 띄었다. 눈물을 닦은 서라가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서라에게만큼은 호의적으로 대하듯, 은별이 미소를 띄우며 서라를 바라본다.
"얼굴 좀 가까이 대줄래?"
"언니찡… 이제 새로운 것에 눈을 뜨시려고 하는 건가염?"
"아니거든? 말할 게 있어서 그러는 거거든?"
그리고 누구 하나 듣는 사람도 없는데 조심스레 서라의 귓전에다가 속닥거리는 은별이었다. 얼마지 않아 그 이야기를 들은 서라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은별을 돌아본다.
"진짜 진짜 하실 건가염? 언니찡?"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 뭔가 보복하는 느낌이라도 들잖아?"
그리고 싱긋 미소 짓는 은별이었다. 서라 역시도 놀라던 것도 잠시 '굿'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쳐드는 모습이었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으로 태어났더라면 실로 재미났을 두 사람이었다.
*
한 편… 대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민국은 여러모로 기분이 심숭생숭한 상태였다. 평범한 학생들 앞에서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에 노련한 그라고 할 지라도… 마음 한 곳이 허전한 지금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으으으, 은별아아아아아.'
사실 대학교로 향하면서 민국은 은별을 향해 여느 때처럼 메시지를 투척해보곤 하였다. 그러나 답장이 전혀 없다. 아무래도 완전히 돌아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국 역시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 변명을 한다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비겁하단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은별에게 숨기고 있던 이야기가 있긴 했었으니까.
'은별아아아아아.'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민국은 알지 못했다. 이미 은별이 서라와 만나서 웃음보를 터트리며 재미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단 사실을…. 그리고 교수가 열심히 스크린 도어를 띄우고 강의를 하고 있을 때, 책상 아래로 몰래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민국은….
'…엉?'
불현듯이 메시지 창에서 이상한 것을 확인하고는 의문을 가졌다. 그것은 이전에 남자 해커와 대화를 나누었던 메시지창이었다. 이젠 대학교도 나오지 않고, 거의 자취를 감춘 셈이 된 그 녀석은… 민국에게 마지막이랍시고 보복을 한 차례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짜 만나서 후드려패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번에는 나도 잘못한 거니까.'
은별이 건이나 일단 해결하고 다음 일을 진행하자고 생각하던 민국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둘러본 해커와의 메시지 창에… 문득 이상한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그것은 도무지 자신이 대화를 나눈 행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뭐지? 난 이런 거 적지도 않았는데.'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크크… 만나서 또다시 후드려 패기라도 하게? 어차피 넌 나 두드려패는 순간 네 학교 생활도 끝장이야 내가 이번엔 가만히 넘어가줄 것 같아?]
자신이 남긴 메시지는 어떻게든 녀석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녀석은 어이없게도 그것을 또 답장해주고 있었다. 어지간히 민국에게 쓸데없이 불만이 많은 녀석인 건 자명했다.
[꼭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네가 나한테 이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다고 할까]
[크크, 그래?]
그리고 메시지 맨 마지막에는 녀석과 만나기로 한 장소가 적혀 있었다. 어떻게든 만나는 것이 성사는 된 모양이었다.
"……."
그러나 그것을 본 민국의 얼굴은 당연지사 심각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적은 게 아니야.'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적었다고는 할 수 없다. 심지어 술김에 적었다고 하기에는 술도 마시지 않았으니까. 민국은 의문이 가는 얼굴로 한참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누구일까… 누가 이런 글을 적었을까?
'은별? 서라?'
아니다. 그 두 사람이 이 스토커 건에 대해 알고 있다 한들, 이런 단독적인 행동을 혼자서 실행할 리 전무했다.
'그럼….'
한참을 고민하던 민국이었다. 마침내 무언가 퍼즐이 맞춰지듯…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화.'
흑설 공주는 절대 아니다. 그녀가 아무런 보답도 없이, 이득도 없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리 전무했다. 하지만 설화라면… 게임 스토리 속에서도 그를 위해서 어떤 행동이든 저지르던 그녀를 떠올리노라면…!
"……."
민국은 곧장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업 교실을 뒷문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당연지사 그런 민국의 태도를 처음 보는 학생들은 의혹 어린 표정으로 물어올 따름이었다.
"민국아, 어디가려는 거야?"
"아직 수업 중인데?"
당연히… 민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숨기는 게 어려울 정도로 그의 진지한 얼굴이 다소 드러나 있던 것이다. 끼이익, 쿵! 곧장 교실 문을 닫고 밖으로 튀어 나가는 민국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연락할 수 있는 휴대폰도 없었지!'
급히 뛰어가면서, 민국은 설화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메시지 창에 적혀 있는 약속 장소로 열심히 향할 따름이다.
'…….'
약속 장소는….
'하람아파트 지하 1층.'
하람아파트는 지하철을 타고 건너면 몇 정거장 뒤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였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못해도 20분은 걸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랴? 민국은 곧장 전철에 탑승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얼마지 않아 하람 아파트에 도착하여 메시지에 적혀 있는 지하 1층 주차장으로….
*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거지만, 역시 이 세상도 잘못됐어요~.'
어떤 면에선 더 많이 그릇되고 잘못된 세상이다.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세상…. 설화가 살던 세상에서는 적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런 세상이다.
'어떻게 이런 야만적인 행동이 가능한 걸까요? 단순한 이유로 사람의 살을 갉아먹는 짓을 할 수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을 관대하게 여기고, 남에게 엄격하게 굴 것이다.
설화는 이 세상에 살며 그런 쓰레기 같은 구조를 배웠다.
"고쳐야 되겠지요~."
잘못되었다면 고치는 게 올바른 방식이다. 그렇다면….
"고칠 거여와요~."
민국을 괴롭힌 자는 확실히 말살한다. 그것이 설화의 목표. 또각 또각.
그리고 얼마지 않아, 약속했던 장소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모자를 내려 쓴 그는 한 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딱 봐도 굉장히 불량한 느낌이 나는 모습이었다.
"……."
스윽 스윽.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한 그 행위에 설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사람인가 보네요오?"
그리고는 슬그머니… 숨어 있던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리우며, 맞은편에서 또각또각 그 남자에게로 향하는 설화. 입고 있는 원피스가 얼마지 않아 붉은 피로 물들 것을 생각하며….
"……."
이윽고 갑작스런 인기척의 등장에 남자가 깜짝 놀란 듯 움찔거리다 설화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자신이 만나려고 하던 상대가 아니자 무시하려는 모습. 하지만 이윽고 설화가 그의 옆을 지나치듯 근처에 섰을 때였다.
"민국 님을 기다리시는 거시와요?"
"……."
은근슬쩍 추궁하는 그녀의 음성에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누구…."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림자가 그의 팔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은. 그림자가 그의 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한 것은.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얼마지 않아 사라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