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54화 (354/369)

354화

민국은 새삼 감탄했다.

'이 여자, 능력의 가치가 남달라!'

일단 가슴이 크다. 근데 체력도 발군이다. 심지어 머리도 좋다. 인간 관계, 교우 관계 같은 것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아주 출중한 사람이다. 사회적인 면까지 완벽했다면 어쩜 세상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인물이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에 역시 제일 발군인 건 유이 씨의 가슴이지."

"……."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진심이 흘러 나왔군요."

그 성드립에 유이는 그냥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예전이라면 실로 음란한 사람을 보는 것마냥 견제하는 눈초리를 지었을 텐데… 이제는 이상하게도 그럴 수가 없다. 이윽고 유이의 옆으로 다가온 민국이 화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 해킹 경로면 정확히 어느 지역입니까?"

"……."

유이는 이미 상대방의 아이피까지 완전히 해킹했다. 고로 아이피를 토대로만 검사해서 확인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윽고 아이피를 통해 지역을 확인하는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바이러스를 퍼트린 녀석의 집 주소를 확인…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감사합니다 유이 씨."

"가려고…."

"당연히 가야죠! 가서 아주 혼쭐을 내줄 겁니다."

물론 경찰에도 연락은 취하겠지만, 그전에 일 대 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지도 몰랐다.

"아."

"……."

그런데 가려던 도중이었다. 한 가지 어떠한 생각이 들었는지 민국이 고개를 돌려 유이의 손목을 냉큼 붙잡았다. 유이는 그런 민국의 행위에 그의 손아귀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이내 민국이 말하길….

"혹시나 저보다 싸움 잘할 수도 있으니 도움 좀."

"……."

같이 가달란 의미이리라. 사실상 유이도… 가고 싶은 마음은 충분했기 때문에 더도 말고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이윽고 전철을 타고 한참을 가던 찰나일까, 민국은 유이가 말해준 녀석의 집 장소로 향하면서 고뇌했다.

'이놈 집이 내 대학교 부근이랑 가까운데, 역시 예상대로 대학교 녀석 중 한 명인가.'

어쩌면 같은 학과 학생일 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이야 민국과 같은 학과가 되면 좋아라 하지만, 솔직히 남학생들 입장에선 달가울 리가 전무했다. 대학생이 되면 꽃피우는 청춘을 느껴보고 싶기 망정인데… 그런 기회를 민국이 샅샅이 긁어가곤 했으니까 말이었다. 당연히 남자들에겐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건 아니지.'

이윽고 녀석의 집 앞에 찾아가게 된 서민국! 원룸이 있는 건물로, 유이는 정확히 몇 층인지도 확실히 간추려서 파악했다.

"201…."

"201호요? 오냐, 어디 한 번 딜도를 박으러 가보자."

"……."

소매를 걷으며 민국은 영차게 건물 안으로 진입, 201호에 당도해서 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러자 마침 방문 너머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집주인 아들인데요. 얘기드릴 게 있어서."

말을 하고 나서 민국은 '어머나 씨발'하고 스스로 실수를 했나 돌이켜보았다. 집주인 아들이라고 하면 너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알고보니 집주인이 자식도 없는 미혼남, 녀 일 수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끼이익….

"그런데요?"

"그런데는 이 자식아, 나랑깨다."

퍼억!

"크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상대방의 복부에 있는 힘껏 발을 내다꽂는 민국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상대는 그대로 복부를 들이맞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윽… 너, 넌…!"

"그런 식으로 놀라는 거 보니 해킹범이 맞나 보구나 똘망똘망한 아이야."

욕 아닌 욕을 하며 민국은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너 누구냐…?"

"……."

"슈밤… 우리 학교에 이런 놈이 있던가?"

"개, 개새끼야!"

세상에 더 질 나쁜 짓이 바로 악감정을 가져야 하는 사람을 투명인간마냥 모르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분노였는지 주저앉아있던 놈이 막무가내로 일어나서 달려들려고 했다. 물론… 유이에게 싸움을 배운 민국은 그런 허접한 공세에 선뜻 낚여주지 않았다.

"없애버릴 거야! 죽여버린다아아!"

"죽이긴… 야이! 내 잘 생긴 얼굴에서 손 때라! 볼 꼬집지마! 씨발 고추 때버린다!"

"……."

서로 볼을 잡아당기면서 징징거리고 있는 두 사람의 꼬락서니에 현관문 앞에서 유이는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윽고 한참 씨름 중이던 민국이 자기 볼이 늘어지랴 구원을 요청했다.

"유이느님! 그러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줍쇼! 아야야!"

"……."

대체 자신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무엇을 배운 것인지… 유이는 어쩔 수 없이 저벅저벅 걸어나가 두 사람을 만류하려고 했다. 그때 민국의 볼을 잡고 늘어지던 남자가 흉흉한 눈빛으로 유이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저리 꺼져! 이 젓소 여인아!"

"……!"

그 순간이었다. 파밧! 하고 욕설을 내뱉은 남자의 복부에서 엄청난 빛 세례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빛과 같은 속도로 2m를 뛰어나가 남자의 복부에 발을 꽂아넣는 유이의 공격이었다. 마치 격투기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그 화려한 공격에 더불어… 남자는 '우욱!'하고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다 못해 벽면에 쿵! 하고 부딪히게 되었다.

"사스가 유이 씨!"

"……."

"근데 저놈이 뭘 알긴 하는구만. 유이 씨가 괜히 젓소가 아…."

파바바바바바밧!

"끄아아악! 살과 팔이 오랜만에 분리된다!"

"……."

오랜만에 분노를 실은 킥을 맞았음에 민국은 '앗 가버령'하면서 한참동안 쾌락을 즐기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현관문을 닫고 둘 다 정신을 차렸을 때… 조금은 안정된 모습으로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유이는 말없이 지켜보는 민국의 관계자였다.

"네가 이 협박 메시지 보낸 새끼 맞지?"

휴대폰의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캐묻는 민국이었다. 남자는 안경을 고쳐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난 잘 모르겠는데."

"거짓말치지마 이 안경 써야 눈 보이는 새끼야. 아이피 조회하니까 딱 여기로 나오더만."

"……."

그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다가 민국을 돌아보았다.

"난 모른다고. 애초에 아무것도 관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폭력을 쓰는 게 옳다고 보나?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 거 대학교 학과 애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에라이 고추도 작은 새끼. 난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넌 날 아는 걸 보면 이미 같은 대학교 학과 녀석인 건 맞는 거 같고. 아이피 조회해서 나온 장소가 여기에다가 심지어 너는 대학교 관련자인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녀석인 양 구는 건 말이 안 되지 임마."

민국의 논리 정연한 말에 그는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마주치지 않을 따름이다. 민국은 '뭐 이런 쌍쌍바 같은 놈이 다 있나.'하면서 두 개로 뽀개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때 유이가 방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다가가서는 물건 한 개를 쥡는다.

"이거…"

"앗!"

"어? 그거 휴대폰 아닙니까?"

이윽고 작은 휴대폰 하나를 들어 보이는 유이의 행동에 남자가 깜짝 놀랐고, 민국이 의아해하면서 그것을 건네받아 그 안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다가 곧 씨익 미소 짓는다.

"여기에 나한테 협박 메시지 보낸 증거가 가득한데 없다고?"

"……."

"그러고 보니 해킹을 했으면, 내 해킹에 대한 관련 자료도 컴퓨터에 다 남아있겠구만?"

"……."

"후후후후후후후."

민국은 폼나게 손으로 이마를 가리면서 말했다.

"체크메이트."

삐용 삐용.

경찰이 도착한 뒤의 일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우선 민국을 협박하던 남자는 붙잡히게 되었다. 동시에 그가 같은 학과의 학생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학교 출석도 불성실하게 하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가 민국에게 해킹과 관련된 질 나쁜 짓을 한 까닭은 별 거 없었다. 그냥 왠지 미워가지고 건드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컴퓨터에 있던 증거 파일을 통해… 남자는 서로 가게 되었고, 민국은 단단히 혼쭐을 내주기 위해 따라가게 되었다. 잠시 후 서에서 홀로 나왔을 때는 유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구 기다리고 있으셨군요 유이 씨."

"……."

"아무튼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제 뽀뽀라도… 아니지, 뽀뽀하다가 맞아 죽을 테니 그냥 밥이나 사드리죠."

"……."

예전이라면 진짜 죽을 때까지 때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아쉬운 감정이 있을 수밖에……. 그러나 그것에 대해선 내색하지 않고 민국이 사주겠다는 식사를 얌전히 받을 따름이었다.

빠득 빠득….

이윽고 서에 혼자 남은 남자였다. 그는 안경을 벗고 엄지 손톱을 이빨로 빠득빠득거리면서 물고 있었는데… 얼굴이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었다.

'개 같은 새끼… 개 좆같은 새끼….'

설마 자신이 이런 식으로 꼬리가 물려 망가질 줄은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일찍 들킬 지도 몰랐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그의 복수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야성의 본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크큿….'

그리고 그 증거로… 남자는 머릿속에 USB를 떠올렸다. 그래도 만약을 감안해서… 차후를 대비해서 챙겨둔 USB가 있었다. 그곳에는 컴퓨터에 없는 아주 중대한 서민국에 관련된 파일이 숨어 있었고… 그 파일은 다름 아닌… 민국의 휴대폰을 해킹함으로서 얻어낸 파일이었다.

'이대로… 끝날 생각은 마라 서민국….'

당한 건 보답해줘야 분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이건 그를 향한 일종의 게임이었다.

"돌아오셨사와요 민국 님?"

"응,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걸터앉는 민국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설화.

"어떤 힘든 일이 있으셨나요?"

"그냥, 좀 질 나쁜 짓하는 애가 있어서 고쳐주고 왔지. 설화 넌 잘 모르겠지만, 이래봬도 나는 정의의 사도 끼가 다분한 놈이란다 크흠."

그 말에 '푸훗'하고 가볍게 웃음 짓더니, 민국의 팔에 팔짱을 끼는 설화다.

"그런 건 진즉에 알고 있어와요~ 민국 님에 대한 걸 제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허허, 이 녀석."

"간지러워요 민국 님~."

머리를 쓰다듬는 민국의 행동에 애교를 부리는 설화. 이것 참 여러모로 사과 따먹고 싶어지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때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자가 있었으니….

"아주 잘하는 짓이지 그래?"

"은별 마님 오셨습니까."

언제 설화랑 알콩달콩 시간을 보냈냐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민국이었다. 은별은 급작스레 변모하는 그의 태도에 한숨을 쉬고는 팔짱을 꼈다.

"…어딜 갔다 왔길래 밤까지 돌아다녀?"

"낭자, 자고로 남자란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지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오."

"네네, 그러세요? 혼자 있는 걸 워낙 좋아하는 거 같으니 아주 평생 동안 혼자 있게 해드릴게요."

"앗, 죄송."

그리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뒤… 이내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은별이었다.

"어휴."

소리없이 나가서는 밤 늦게 들어오길래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크게 근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리 생각을 마친 은별은 슬슬 안도하는 자신을 통감하면서, 책상에 앉았다.

우우웅… 그런데 그때였다. 돌연 휴대전화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 것이다.

은별은 말없이 그것을 잡고는 확인해보았다.

"…뭐야 이게?"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한 문장이 있음에 그녀의 인상이 순식간에 찡그려졌다.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네 남자 친구가 숨기고 있는 일을 알고 싶지 않니?]

은별은 그냥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무시하기로 했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스팸 메일이 오기도 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음 온 메시지로 인해 깡그리 부숴지게 되었다.

"……."

은별은 다음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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