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언젠간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비제이로서 인기를 얻고 있었고, 오히려 이걸 직업으로 해도 될 만큼… 남부럽지 않을 만큼 수익도 벌고 있었다. 창창한 미래, 밝은 미래를 꿈꾸기에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민국은 한 편으로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비록 연예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준 연예인이었다. 뉴튜버로 현재 그의 영상을 구독하는 사람만 해도 무려 100만이 넘는 상황! 그런 와중에 얼굴을 밝힌다면…? 과연 문제 되는 일이 안 생길 수 있을까?
“…….”
이것은 비제이를 하는 사람들만이 때때로 고민하는 문제였다. 일반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제. 그래서 민국은 휴대폰의 영상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고 정색하게 되었다. 흑설 공주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든 신경 쓰지 않으며 우아하게 차나 홀짝였다.
“흑설느님.”
“왜 그러느냐.”
“이제 일 끝난 거 맞죠?”
민국이 고개를 돌려 흑설 공주에게 물었다. 흑설은 말없이 차나 홀짝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곧장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하는 민국이었다. 잠시 후, 본래의 사복으로 돌아온 민국은 곧장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쿵…. 홀로 남은 흑설 공주는 찻잔을 내려놓은 상태로 웅얼거렸다.
“끝까지 모르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않겠느냐.”
[너 이노무 홍당무 같은 자식아]
[크크크… 드디어 자극 좀 받았나 보군]
집으로 돌아온 민국은 곧장 화장실로 가서 휴대폰을 두드렸다. 우우웅… 몇 번이고 도착하는 메시지에 민국은 질문했다.
[나에게서 원하는 게 뭐야?]
굳이 어떻게 영상을 얻어낸 것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일단 합성도 아니었고, 그건 실제로 서민국이 방송을 할 때의 모습이 맞았으니. 필시 시청자로 변모해서 게시판에 이 게임을 해보라고 추천을 하고, 그 게임을 서민국이 받는 일이 있었겠지…. 바이러스 감지 프로그램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면 꽤나 컴퓨터를 잘 다루는 해커는 분명했다.
이전에 은별이를 건드렸던 상대보다 더 위험한 상대라고 할까?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별 거 없지. 난 널 무너뜨리고 싶거든.]
“…….”
[네가 내 노예가 되면 돼]
[이런 미친 게이 같은 새끼]
한창 키배질 중에 있었을까. 똑똑, 하고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흠칫하는 민국이었다. 잠시 후 화장실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민국 님~ 뭐하시와요?”
“아, 서, 서 설화구나! 기다려! 곧 나갈게!”
“일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와요~. 민국 님의 얼굴을 얼른 보고 싶어 그러는 거랍니다~.”
설화의 애교를 뒤로하고, 휴대폰을 숨긴 채 화장실을 나온 민국이었다. 그러자 설화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민국을 올려다본다. 그러다 곧 갸웃거리는 그녀의 고개.
“민국 님, 무슨 일 있으시와요? 땀이 흠뻑하네요~.”
“아? 이거… 크흠! 화장실 안에서 남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나왔거든. 그래서 그런지 현자 타임이 찾아오는구만.”
“어멋… 민국님도 참~. 변태 끼가 다분하셔라~.”
“하하하!”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의심을 없애게 만든 뒤, 안방으로 돌아가는 민국이었다. 설화는 그런 민국에게 웃음을 짓고 한참을 있을 따름이었다.
[노예가 되라고?]
[그래 널 노예로 만드는 게 내 목표다]
그리고 휴대폰 너머, 민국을 협박하는 상대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명령을 하든 넌 그걸 무조건 실시간으로 들어줘야 한다. 만일 그걸 못하면 이 영상을 퍼트려버리겠어]
[시발롬이]
[첫 번째 명령이다 내게 욕하지 마라 퍼트려버린다]
“끙.”
민국은 난감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순조롭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 컴퓨터를 포맷부터 하고, 그리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나을까? 흐음, 대포폰이니 잡을 수도 없을 텐데.’
가장 좋은 건 역시 흑설 공주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흑설 공주라면 금방 가서 잡아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무슨 조건을 달 테고… 앞으로 민국에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르는 것인데… 참으로 난감했다.‘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서 혼쭐 좀 내줘야겠구만.’
속내로 그리 생각하는 민국이었다.
[참고로 이상한 수단을 쓰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안했으면 좋겠군. 난 이 영상 사본으로도 준비되어 있다]
‘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민국이었다.
“아하!”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민국!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그였다.
타다다닥… 오늘도 최유이는 변함없이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아주 희미한 진동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커다란 마음… 그 마음은 정말이지 대한민국 그 누구보다도 풍만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의 환심을 사게 만들 것이 확실했다.
‘…….’
그러나 그런 그녀가 오로지 한 남자에게 마음이 묶여있단 사실은…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서민국!
‘…….’
어째서 그녀가 그를 이토록 신경쓰게 된 것인지 영문일 따름이다. 혹시 주변에 남자가 그밖에 없어서?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기에는… 유이는 굉장한 철벽녀였다.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마음이 움직일 만큼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
타다다닥… 어찌 됐건… 지금 유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난처할 따름이었다. 우우우웅… 그런데 그 찰나였다.
돌연 책상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휴대폰으로 눈길을 옮긴 유이.
“…….”
혹시나 스팸 문자가 온 건 아닐까 하던 유이는 지속해 울리는 진동 소리와 더불어, 액정에 보이는 서민국이란 글자에 쿵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걸 느꼈다. 이윽고 황급히 휴대폰을 쥐어들어 양손으로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며 힘들어하는 그녀…. 하지만 곧 그런 자신이 바보 같음에 벽면에다가 ‘쿵쿵!’하고 이마를 부딪힌 뒤…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누른다.
부들부들… 믿기지 않게도 떨리는 두손으로 그것을 공손히 받는 유이였다.
“여보….”
“여보라고 부르고 싶은 유이 씨의 마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유이 씨.”
다소 진지한 음성이었다. 유이는 무슨 말을 하려는가 잠시 기다렸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이의 현재 입장상… 그거야 말로 듣다듣다 기쁜 소리였다.
*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놈이 말입니다.”
“…….”
유이의 집 근처의 커피숍이었다. 민국은 그곳에서 단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민국은 물었다.
“그래서 이놈 추적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완전히 혼쭐을 내주게요.”
“잠시 휴대전화 좀….”
“예, 여기요.”
공손히 양손으로 건네는 민국. 그리고 그것을 받던 도중 유이는 움찔했다. 민국의 손가락이 그만 자기 손가락에 닿고만 것이다. 두근두근거리는 감정을 가까스로 숨기며 유이는 민국의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질이 나쁜 장난은 분명했다.
“애초에 해킹부터가 엄한 범죄인데 말입니다. 너무 그 철없는 놈 좀 혼쭐내고 싶은데 단순히 경찰에 맡기면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요.”
실제로 이런 사건이 있어도 경찰 쪽이 쉽사리 해결하는 일은 어려웠다. 정말 작정하고 진행하는 놈들이라면 말이었다. 그래서 민국은 유이에게 부탁한 것이다. 혼자 게임을 만들다 못해 맞짱까지 잘 뜨는 이 여자라면…!
“…….”
끄덕,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는 유이였다.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들은 민국이 ‘우아! 땡큐 땡큐! 유이 씨!’하면서 유이의 두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유이는 그 양손의 감촉에 몹시 몸이 흥분되는 걸 느끼면서도… 이따금씩 메시지함에 대화를 나눈 은별과의 흔적에 가슴이 착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녀석에 대한 흔적이 하나도 없는데 잡을 수 있겠습니까?”
“감염을 시킨 파일의 경로만 안다면….”
그리고 유이의 집으로 향하게 된 민국. 민국은 해커에게 협박을 받기 전 자신이 추천 게시판에서 다운 받았던 게임 파일들을 하나 하나 가리켜 보았다. 유이는 바이러스 프로그램과 더불어 cmd를 사용하여 파일들을 다운 받을 때마다 하나 하나 검사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가지 바이러스 코드를 발견… 유이가 말했다.
“이거….”
“오오! 사스가 유이 씨… 가슴의 황제!”
그야말로 성드립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제 느낌이 달랐으니… 참 오묘할 따름이다.
“근데 문제는 이거 알아냈다고 어떻게 잡습니까?”
“…….”
그 말에 유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무섭게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괜히 몇 년 동안 컴퓨터와 먹고 살고 자고했던 게 아니다. 유이의 보이지 않는 키보드 실력에 감탄하기도 잠시… 유이가 말했다.
“잡았….”
“허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