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쿵! 엄청난 대위기였다. 난생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서민국의 정체가 발각되는 위험한 순간! 휴대폰의 액정에 드러난 그 정체 불명의 메시지는… 민국을….
'뭐래냐 이 병신은.'
태연하게 받아 넘길 따름이었다. 사실상 이런 장난 같은 짓을 민국도 한 두 번 당한 게 아니었다.
서라라던가 서라라던가 서라라던가… 혹은 김민철이라던가, 원래 이런 짓궂은 장난은 한 두 번 쳐보고 당해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민국은 어느 정도 면연력과 강단(?)이 있었다. 고로 아주 태연하게 무시할 따름이었다.
스윽… 휴대전화를 주머니 안으로 다시금 집어넣는다.
"저기 봐,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서민국이야."
"와아… 진짜 잘 생겼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잘 생겼지?"
'후훗, 조각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여유 넘치는 민국이었다. 대학교 정문을 들어가며 쳐다보는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에 민국은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 게 잘 생긴 자들의 크나큰 특징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시 한 번 휴대폰이 우우웅 울린다. 민국은 이번엔 또 뭔가 싶어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네가 현대왕이란 사실을 내가 알릴 수도 있다. 만일 그게 싫다면 이 번호로 연락을 해라 010 ………]
"민철이 요놈 보소. 새로운 휴대폰 샀다고 자랑이라도 할 생각인가?"
역시 비제이들의 머리는 뭔가 남다르다. 일반인이 이런 일을 당하면 심각한 얼굴을 지을 텐데, 비제이들은 곧장 장난으로 치부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정작 그런 짓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로선 표적의 행동에 암 걸릴 지도 모른다.
[빨리 연락해라. 이 번호로 010……]
또다시 휴대폰이 울렸지만 민국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예전이라면 멋드러지게 대응했지만, 이젠 방법을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런 장난을 재미없게 만들어 그만두게 하는 방법은…! 바로 개무시다!
[야 이 씨발롬아]
오죽하면 계속해서 무시하는 민국 때문에 빡친 상대방이 욕을 날릴 정도였다. 그래도 민국은 무시했다. 이윽고 대학교 교실 안으로 들어온 민국.
"민국아~ 왔어?"
"응. 예지 넌 오늘도 예쁘구나."
"미, 민국이도 정말!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말을 쉽게 하니…!"
그러면서 은근슬쩍 민국의 가슴팍을 툭 건드린다. 민국은 씨익 웃었다.
물론… 더 이상 다른 여자들에겐 관심조차 가지 않는 실정이었다. 애초에 민국의 곁에 있는 은별이나 예나 같은 애들만 하더라도… 도무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갭 차이가 심하게 나는 예쁜 여자들이었고, 그들처럼 일편단심으로 민국 자체를 바라봐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애초에 그 두 사람은 내가 목숨이 위험할 때도 함께 해주었지.'
그렇다. 그게 아무래도 여기 있는 여자들과의 큰 차이점이리라.
이 여자들은 민국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를 좋아했지만, 그의 내면 속에 있는 거대한 것들은 전혀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야말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픈 마음만 있던 것이다. 하지만 예나나 은별은 민국을 그 자체로 사랑해주었다. 그래서 민국은 잘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그녀들에게 사과하고 계속해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사회 생활하기에 편한 정도로만 친해지는 게 낫겠어.'
이젠 민국도 조금은 달라진 마음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태도 자체는 이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휴대폰이 우우웅 울렸다.
"민국아 휴대폰 울리는데 안 받아?"
"그래, 잠시만."
그리고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오늘 전철 때부터 계속해서 진동이 울릴 따름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한 가지 같았지만.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한 번 증거 보여줘?]
그리고 그 이상한 번호로 사진 같은 게 좌르륵 첨부되어 보여진다.
"……."
민국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민국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기다리고 있어."
민국의 안색에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민국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자기 휴대폰에 올라온 사진들을 훑어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이 새끼…."
그리고는 그 번호가 연락하라고 했던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는 민국이었다.
[너 이 새끼…!]
[크큭,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해커냐?]
아무래도 저번에 은별이를 덮치려고 했던 그 해커와 비슷한 족손이 아닐까 추측이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질문하니 대답이 온다.
[해커라면 해커지. 애초에 이 학교 홈페이지는 해킹하기가 쉽거든. 특히나 대학교는 만들어두기만 하지 보안은 별 것도 아니라서 말이야.]
[젠장! 이 미친 놈이!]
[오~ 천하의 서민국이 그렇게 욕도 하나?]
[그럼 당연히 욕하지. 너 같으면 이 사진보고 욕 안하겠냐?]
그리고 민국은 메시지를 이어 썼다.
[왜 대학교 면접 때 쓴 사진을 저장하고 있어!]
[…뭐?]
민국이 분노한 점은 그것이었다.
[그 면접 사진 볼 쪽에 잘 보면 여드름 한 개 안 보이냐? 슈밤… 아침에 느닷없이 그 여드름 한 개 나가지고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는데 이 자식이 내 아픈 과거의 흔적을 건드리는구만!]
[…그게 분노할 일이냐? 난 네 정체를 알고 있다고 했는데]
[뭐라냐, 그럼 넌 네 볼짜기에 여드름 나면 기분 좋냐?]
[그거야 안 좋지]
[그런 거다. 넌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나의 과거를 건드렸어. 그 사진은… 금기된 사진이란 말이다!]
[…지금 그런 시답잖은 거 가지고 얘기할 생각은 없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닥쳐 등신아. 너 차단해버린다.]
그리고 민국은 망설임 없이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아무래도 서라나 민철은 아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컴퓨터에 조예가 없는 편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그 두 사람 말고도 민국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비제이 계에 몇 명 더 있었다. 강철남이라던가….
'설마 그 슈바르 놈이 컴퓨터도 다룰 줄 아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마당에, 다시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온다.
[내가 장난하는 거 같아!!!!!]
민국도 대답했다.
[당연히 장난 아닌 거 알지!(버럭!)]
[그래? 그럼 네가 현대왕이란 사실을 만천하에 뿌려도 된다 이 말이냐!]
[미친놈 작작해라 현대왕은 무슨, 내가 왜 현대왕이냐?]
[크크크… 이제 와서 숨기려고 하는군…]
그리고는 또다시 사진을 전송해서 보여주는데… 이번엔 파뿌리 TV의 현대왕 아이디 정보를 훔친 사진이었다.
[네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해서 네 정산되는 통장 그리고 네 개인정보 전부 다 입수했다. 만일 내가 이걸 뿌려버리면 어떻게 될까?]
민국은 '허허 고귀한 놈.'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대응했다.
[뿌릴 테면 뿌려라]
[아직도 내가 장난하는 줄 아는군]
[너 장난 아닌 거는 아는데, 어차피 그걸로는 나란 거 증명 못한다는 소리지]
[뭐라고?]
[에라이 병신아. 니 못 생겼지?]
민국은 논리적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네가 무슨 이유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존나 못 생긴 거로 감안하고 나한테 이러는 거로 알겠다. 그리고 넌 남자일 거야. 왜냐면 여자가 나를 이렇게 미워할 일은 추호도 없거든.]
자신감 있는 민국이었다.
[애초에 내가 직접 방송하는 것을 해킹한 것도 아니고, 도촬한 것도 아니면 병신아 그걸로 어떻게 나란 걸 증명하냐?]
[네 개인 정보…]
[개인 정보는 얼어죽을. 애초에 대학교도 알고 있는 거로 보아 딱 봐도 대학교 관련자인 게 분명한데, 지금까지 내 곁에 있던 여학생들을 생각해볼 때 대학교 애들이 내 말을 안 믿을 것 같냐?]
그 말에 메시지가 없다. 그렇다…. 실제로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주로 '증거'보다 신뢰를 받는 자가 던지는 말이 더 진짜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잘 생긴 아이돌의 팬들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르고 범죄 행각을 하여도… 결국엔 잘 생기면 장땡, 그들이 하는 말을 믿지 언론에서 하는 말을 믿지는 않는다.
'얼굴은 힘이야 푸헤헤헤헤!'
그리고 이 정도로 쫄 정도면… 비제이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동안 겪어온 사건 사고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젠 멘탈갑… 아주 두꺼운 시멘트로 장벽처럼 쌓인 민국의 멘탈이었다.
[씨발 롬아!]
우우웅하고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그런 메시지를 한 번 더 보내왔지만, 민국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독오독…. 엄지 손톱을 이빨로 열심히 깨물면서 남자는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국과의 메시지를 이용한 접선 이후… 확실히 이 정도로는 그에게 큰 이미지 타격을 주기가 무리인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우스를 계속해서 딸칵딸칵… 거리며 그 남자는 어떤 식으로 해야만 하는가 고민을 해보았다.
[애초에 내가 직접 방송하는 것을 해킹한 것도 아니고, 도촬한 것도 아니면 병신아 그걸로 어떻게 나란 걸 증명하냐?]
그러다 문득, 접선한 민국이 우연찮게 던진 그 메시지에 깨물고 있던 엄지 손톱에서 이빨을 땐다.
"좋아. 크큭… 씨발, 반드시 해주지."
그리고는 적의가 가득찬 목소리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남자였다.
"어서 오십쇼."
이젠 아예 민국의 새로운 일터가 되어버린 흑설 공주의 거실이었다. 거실에는 굉장히 우아한 인테리어와 샹들리에가 꾸며져 있었고, 유망난 사업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희희낙락거리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역시 흑설 공주… 그녀 한 명뿐이었다.
모두들 그녀에게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었으니, 그곳에서 사업가들에게 식사를 대령하는 민국 딴에선 참으로 기괴한 일이었다.
'정작 나는 막대하는데 말이지.'
어떤 이유에서 흑설 공주가 민국에게 이토록 호의를 갖추어주는 건지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받으면 주어야 하는 것을 신조로 여기는 흑설 공주 딴에선 호의만으로 전부를 해주기엔 조건을 항상 달아왔으니….
'그나저나 그 양반은 그럼 언제 찾아오는 건가.'
민국은 흑설 공주가 언급했던, 그리고 한 때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 검은 코트의 소녀를 떠올렸다. 아직 일 년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재미있지 않느냐."
사업가들이 전부 가고 난 뒤, 거실에 홀로 남은 흑설 공주가 홀짝이던 차를 찻잔에 내려놓고는 그리 중얼거렸다. 민국은 돌아보았다.
"어떤 유망한 사업가들도 내 앞에서는 항상 귀머거리가 되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 된단다. 그저 나는 내 마법을 이용하여 도움을 주는 것뿐인데 말이지."
"그 마법 쓰는 거 그 사람들은 압니까?"
"당연히 모른단다. 이론을 토대로 만들어진 과학의 기술인 줄 알 뿐."
"다들 한 번쯤은 의심은 해보겠군요. 그래도 뭐, 그런 마법을 가지고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도 구할 수 있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데."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라."
흑설 공주의 시선이 멀리 향했다.
"다 부질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넌지시 던지는 그 말에 민국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린다.
"에구구, 잠시만요."
"일하다 말고 휴대전화를 보는 건 못된 버릇이란다."
"10초면 됩니다. 10초면 똥 싸고도 남을 시간이에요."
흑설 공주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휴대전화를 내려다본 민국이었다. 그리고는 그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기 시작했다. 당연지사 휴대전화의 메시지는 아주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이 정도면 네 이미지에 타격 한 방 먹일 수 있겠지?]
그 메시지와 함께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민국의 방송을 도촬한 민국의 맨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