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 배고파?
꼬르륵. 해영이의 뱃속에서 신호가 들려왔고, 그것을 엿들은 지팡이가 그리 물었다. 한참 하늘을 날던 해영이가 근처의 저택 빌딩에 발돋움하고는 멈춰섰다. 그리고는 배를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배고파…."
- 그럼 마법을 쓰면 돼! 저기 근처의 빵가게를 공략해볼까?
공략이란 단어가 여기에서 쓰여도 되는 것인지 다소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지팡이가 가리킨 곳을 돌아보는 해영이었다. 꿀꺽하고 절로 침을 삼키게 된다. 빵가게 거울 너머로 보이는 빵들이 하나같이 기가 막히게 맛있어 보였다. 이윽고 지팡이가 말했다.
- 손을 들어서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돼! 그럼 저기 있는 빵 하나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마법의 주문은 어떻게 외우는 거야?"
- 그냥 네가 원하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하면 돼. 대신 저 거울 안에 있는 빵 하나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져야해!
지팡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해영이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천천히, 자신의 중2병스러움을 발휘한다.
"아카르티아의 화신이여, 불의 대지가 일으켜 세운 이 나라의 혼돈이 시간을 초월하니… 초월한 이 아름다움에 물들어 그대를 바꿔놓아라 …라르테이오스!"
그리고 지팡이를 멋지게 원형으로 휘두른 해영이는 정확히 빵가게의 빵을 가리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빵가게의 거울 너머에 있던 빵 하나가 뿅하고 사라지더니….
"앗!"
해영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해영은 허공에 나타난 그 빵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지팡이가 소리쳤다.
-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
한참동안 말없이 그 빵을 쳐다보던 해영이었다.
"우아아아아앗!"
이 지팡이가 결코 장난이 아님을, 그리고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님을, 완전히 확신하는 해영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중2병스러움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지금 이 순간 자각한다!
*
흑설 공주가 말하길, 마법 소녀는 마법 소녀가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 특유의 감이란 게 있다고 할까…. 그리고 그 말대로 마법소녀가 된 노장(?) 강은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저택 건물 옥상을 한 달음에 뛰어넘고 있었다.
"오오! 역시 내 아내! 강은별!"
"…입 다물어줄래? 진심으로 입 다물어!"
참고로 지금 은별이의 등에는 민국이 업혀 있었다. 마법 소녀가 되면 힘도 쌔지는 모양이다. 민국을 업고 빠른 속도로 건물 옥상을 넘고 있는 은별은 정말이지 창피해 죽을 맛이었지만 가까스로 견뎌냈다. 그리고는 마침내….
"어디인지 알겠소 낭자?"
"…대충 감이 와. 진짜 그 여자 말대로 어디에 있는지 촉이 느껴지네."
흑설 공주의 말이 결코 틀렸던 건 아닌 모양이다. 이윽고 직감으로 미친 듯이 뒤를 쫓던 은별은 마침내 어느 폐허된 근처의 건물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업혀 있던 민국이 내려서는 건물을 올려다본다.
"이런 곳에 해영이가 있다고?"
"그런 가봐… 여기 말고는 특별히 느껴지는 곳이 없어."
"뭐? 은별이 너 이 상황에도 그런 야한 말을… 역시 내 여자."
"장난치지 마. 지팡이로 한 대 후려버릴라."
그리고 먼저 걸음을 옮기는 은별이었다. 민국 역시 그런 은별의 뒤를 쫓아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해영이 이 녀석 누구 닮았길래 이토록 말 안 듣고 사고나 치냐."
"…난 대충 감이 오는데."
"역시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거 같군."
"멋진 패드립이시네요?"
이윽고 한참 계단을 오르던 그때였다. 문득 인기척이 강하게 느껴졌는지 은별이 벽면에 숨어서 앞을 엿보았다. 민국도 '발견했어?'라면서 은별의 등뒤에 도착했다. 이윽고 은별이 '쉿'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는 가운데… 천천히 앞을 보자….
- 너에겐 마법을 다루는데 아주 충분한 소질이 있어! 그건 곧 너의 재능이야! 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마법소녀가 될 수 있어!
"우물우물."
-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니? 너는 나와 팀워크를 합하면 최고의 마법소녀가 될 수 있을 거야!
"저기 있네… 근데 저 지팡이는 말도 하네."
"호옹이. 마침 저기 해영이도 있네."
그리고 은별이 언제 들어갈까 틈을 보려던 때였다. 민국이 당차게 후다닥 해영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막 빵을 먹고 있던 해영은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코앞에 도달한 민국에게 두 팔이 묶이게 되었다.
"야 이놈아!"
"꺄아아아악!"
"에라이 이 모자르지만 착한 동생아. 미쳐도 유분수지 지금 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나 알아!"
"…꺄아아아아악!"
해영은 너무 깜짝 놀랐는지 그저 비명만 지를 따름이었다. 이윽고 그런 해영이가 수상한 짓을 못하도록 양손을 포박한 민국이 그녀를 이끌면서 말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혼 좀 나자. 그리고 그 지팡이도 가지고…."
- 마법 소녀야! 얼른 나를 잡아! 그리고 휘둘러!
"앵?"
지팡이의 외침과 더불어, 해영이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잽싸게 지팡이를 붙잡는다. 민국이 다소 화난 얼굴로 '야, 서해…!'하면서 그녀에게 소리치려는 찰나였다. 해영이가 눈을 질끔 감으면서 소리친다.
"아르카티시스트!"
"해영…! 어억! 야 이… 으아악!"
퍼엉! 급작스런 폭발과 폭음에 민국은 결국 해영이의 붙잡았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방금 전 민국이 있던 자리에서 연기가 치리리… 나다가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해영이를 멀리하고 그 바닥을 보던 민국이 '허얼….'하면서 중얼거렸다.
"설마 진짜 마법이냐?"
"허억… 허억…."
가볍게 숨결을 토해내던 해영이었다. 그때 지팡이가 다시 진동을 울리면서 소리친다.
- 이때 빨리 도망치는 거야! 마법 소녀!
"!"
해영이가 정신을 차리고는 후다닥 하늘로 뛰어오르려고 한다. 그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고 은별이 잽싸게 튀어나갔다. 민국이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마찬가지로 소리친다.
"가라 피카츄! 백만볼트!"
"누가 피카츄야! …에라잇!"
이윽고 지팡이를 일직선으로 내리치듯 허공에 휘두르는 강은별이었다. 그와 동시에 강은별의 짧은 치마가 펄럭이고! 허공에서 튀어 나간 강렬한 바람이 해영이의 뒤통수를 정확히 노리고 달려들었다. 해영이는 그 오싹한 기운에 잽싸게 뒤를 돌아보았다. 지팡이가 소리친다.
- 똑같은 마법소녀야! 나를 앞에 세우고 한 번 휘둘러줘!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지팡이 말은 잘 듣는다는 것을 표명하듯, 해영이는 빠르게 지팡이를 가로로 그었다. 후우웅! 그러자 은별이 소환했던 강렬한 바람이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이윽고 모든 것이 조용해진 폐허된 건물 안에서…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해영이와 은별이 대치했다. 그것을 보며 민국이 감탄하듯 중얼거린다.
"설마 내가 살다 살다 마법소녀의 싸움 일지를 보게 되다니."
"…싸울 생각 같은 거 추호도 없거든?"
정말 싸울 생각은 없다는 듯, 은별은 조금 마음을 다잡고는 해영이를 올려다보며 설득했다.
"해영아. 그 지팡이는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지팡이야.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말썽 피우면 나중에 네 오빠한테도 크게 혼날 거야. 그러니까 돌려주지 않겠니?"
"라, 라크네시오스의 파도의 힘이 있다면…."
"그래. 그 라크네시오스의 파도의 힘을 지팡이를 이용해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정말 위험한 물건이야. 돌려줄 수 없겠니?"
은별이 재차 설득한다. 애초에 마법 가지고 싸우는 일도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가능한 한 말로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지팡이가 우우웅거리면서 소리친다.
- 저건 거짓말이야! 저런 빈유 마법소녀의 말은 듣지마!
"…누가 빈유야!!!!!"
버럭 소리치면서 은별이 홱 무의식적으로 지팡이를 긋는다. 재차 강렬한 바람이 해영이의 지팡이를 노리고, 지팡이가 '마, 마법소녀!'라고 외침으로서 해영이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거하게 휘두른다. 그리고 사라지는 바람… 동시에 '아차!'하고 자신의 무의식적인 실수를 자각하는 은별!
- 도망쳐! 마법소녀야!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몸을 돌려 곧장 하늘로 쏜살같이 달아나기 시작하는 해영이었다. 은별은 '아, 잠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싶었다. 이윽고 은별은 이런 복장으로 계속 있기도 쪽팔린 지… 머리를 쥐어잡듯 하면서 소리쳤다.
"아으으…!"
"허허, 놓쳤군요. 이제 마법소녀 강은별의 결말은?"
"자꾸 이상한 해설 늘어놓지 말아줄래?! 애초에 네 여동생이잖아! 네가 해결해야지 왜 내가 이러고 있는 건데!"
억울함에 그리 토로하고 있자니 민국이 '흐음 그렇구만.'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들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하는 수 없군."
"…? 뭐하는 거야?"
"훗. 사실 이것만은 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이젠 이것말곤 인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구나."
그리고 곧장 어디론가 연락하는 민국이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어두운 건물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착신음…. 잠시 후, 누군가가 연락을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잘 들어보니… 해영이의 목소리였다. 하늘을 날고 있는 해영이가 그래도 휴대폰은 소지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민국이 운을 띄었다.
"해영아 잘 들어."
"……."
"너 지팡이 빨리 안 돌려주면 엄마에게 성적표 갔다 준다."
"……!!!!"
크게 놀라는 해영이었다. 하지만 민국의 그 발언에 은별은 정말 하찮은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을 하면서 말했다.
"바보 아냐? 고작 그런 거 가지고 돌려줄 만큼……."
휘이익! 은별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 다시 건물로 돌아오는 해영. 덕분에 은별은 할 말이 싹 사라져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다. 민국은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폼나게 '훗'하고 말했다.
"역시 이 필살기는 최고의 수단이로군."
"…진작에 쓰지 그랬어 멍청아!"
퍽!
"으악!"
결국 한 대 맞고 마는 민국이었다.
그리하여 민국의 여동생, 해영이는 지팡이를 흑설 공주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흑설 공주의 곁으로 돌아가던 지팡이는 -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어어! 하면서 한참동안 절규했지만, 그렇게 절규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이리하여 사건은 끝이 났고… 은별은 결국 마법소녀 복장을 입음으로서 온갖 창피함은 다 느낀 실정이었다.
"괜찮아 은별아! 이 시기를 통해서 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으니까!"
"뭘 깨달아?"
"다음 번에는 마법소녀 복장 입고 섹스하자! 좋은 패티쉬의 발견인 거 같다!"
"…병신!"
어찌 됐든… 이렇게 사건은 종결. 해영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다만 집에 돌아가기 전에 마법에 관련된 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도록 엄숙히 요구한 바였다. 본래라면 지팡이를 몰래 도둑질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할 테지만, 어리기도 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비밀을 잘 지키냐에 따라 책임을 묻냐 안 묻냐를 결정할 모양이었다.
그런 나름대로의 흑설 공주의 관대함(?)에 감사해하며… 하루를 슬슬 마감하는 민국 일행이었다.
"크크큭…."
그리고 그 찰나… 한 남자는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키보드를 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는 안경을 쓰고 치아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었는데, 화면 안에는 서민국에 대한 신상 자료가 싸악 나열되어 있었다. 자기 대학교의 홈페이지를 해킹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싸그리 입수한 것이었다.
"역시 비제이 현대왕이 맞았어."
동시에 비제이 현대왕에 관련된 정보 역시 모조리 입수했다. 그리고, 그간 이상하다고 느껴왔던… 퍼즐들이 완전히 맞춰지는 것을 몸소 느끼는 바였다. 그는 안경을 고쳐쓰며 중얼거렸다.
"재밌겠는걸?"
마지막 사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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