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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348화 (348/369)

348화

"……?"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구멍 안이 꽉 막혀 있던 것이다.

어둠으로 가득한 그곳에 해영은 안으로 들였던 고개를 빼고 다음 구멍을 살폈다. 하지만 다음 구멍 역시 어두웠다. …이윽고 마지막 남은 현관문 앞에 달린 이상한 문짝. 이내 해영은 그것의 손잡이를 붙잡고 망설임 없이 열어젖혔다.

끼이익…. 그러자 드러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방에 해영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와아앙…."

어떻게 민국의 집에 이런 방이 있는지 몹시도 신기했다. 민국의 집 방 전체를 합해도 이 방 크기만은 못 될 것 같았다. 이윽고 성큼성큼 겁도 없이 안으로 발을 들인 해영이었다. 안에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던 그 찰나였을까.

- 어이! 꼬마야!

"앗!"

문득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해영이었다. 후다닥 열어젖혔던 방문으로 되돌아가 몸을 숨긴다. 쿵! 하지만 언제 닫았냐는 듯 잠시 침묵 후… 끼이익 다시금 문을 열어젖히면서 틈새 안으로 방을 엿본다.

- 여기야 여기!

"???"

자꾸만 들려오는 소리에 해영은 멘붕하여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지팡이처럼 생긴 것이 고개를 앞뒤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것은 엄연히….

"지팡…이?"

- 그래! 네 눈엔 내가 지팡이로 보일 거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거란다!

해영이는 진심으로 멘붕하였다. 왜냐하면 비록 과대 중2병으로서 마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천지인 그녀였지만, 실질적으로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현실에 마법이란 실존한다는 것처럼 지팡이가 말을 해온 것이었다.

- 여기로 잠시 와볼래? 나 나쁜 지팡이 아니야 마치 사기꾼들이 하는 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며 지팡이는 말을 걸어왔다. 한참동안 겁을 내며 움찔움찔 움직이지도 못하던 해영이….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해영은 지팡이의 설득에 천천히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래, 옳지 옳지

"저, 정말 지팡이야?"

- 그래. 난 지팡이야. 정확히 말하면 마법 계약사지만지팡이의 말이 뭔가 이상했다.

"계약사?"

- 응. 실은 내가 아주 나쁜 마녀한테 감금 당했거든.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어. 그래서 그런데 좀 도와줄래?

지팡이에겐 뭔가 아주 위급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해영은 진심으로 궁금하단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도와줘?"

- 나와 계약을 맺고 마법소녀가 되어줘!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마법소녀??"

- 그래, 나는 계약사로서 소녀를 마법소녀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 계약만 하면 언제든지 실행이 가능해.

"마법소녀가 되면 뭐가 좋은데??"

- 그야, 마법을 쓸 수 있어!

그 말에 해영은 눈이 커졌다. 동시에 서서히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진짜루?"

- 물론이지!

그렇게 이야기가 오간 뒤였을까…. 또각 또각. 방의 주인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잠시 후 안방의 문이 열어젖혀지고 검은 옷의 흑설 공주는 지팡이가 있는 곳으로 차츰 걸어왔다.

"……."

그러나 아무것도 없음에 잠시 침묵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려 민국의 방을 돌아볼 따름이었다.

- 우선 전신 거울을 보고 나를 굳게 쥐면 돼해영은 민국의 안방에 있는 전신 거울에 섰다.

- 그리고는 나를 앞으로 세우면서 이렇게 외치는 거야, 마법소녀 니니컬 마노카 마기까 라고

"마법소녀 니니컬 마노카 마기까?"

- 그래! 그거야!

해영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거울을 보며 소리쳤다.

"마법소녀 니니컬 마노카 마기까!"

그리고 그 순간! 번쩍하고 해영이 서 있는 거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해영이 입고 있는 옷이 사그라 녹아들듯이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핑크빛 옷이 촉수처럼 해영의 몸을 기어올라가 서서히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윽고 타이즈하게 허벅지부터 가슴… 목까지 차근차근 조일 듯이 달라붙은 그 옷은, 아주 화려한 핑크색 마법소녀 차림을 만들어주었다.

"우와아앗!"

- 계약 성사! 이제부터 너는 마법소녀야! 넌 이 마법의 힘을 이용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정말?"

- 그래!

그때, 또각또각 안방으로 다가온 한 여인이 있었다.

"여기 있었느냐?"

- 앗!

"엣!"

흑설 공주였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지팡이를 든 소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해영은 아무래도 아까 그 방의 주인이라 짐작이 되었는지 조금 질겁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해영이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가 진동하며 경고했다.

- 저 여자는 상대하면 안 돼! 빨리 도망쳐! 창문으로 뛰면 돼!

"에, 에에에?"

- 괜찮아! 넌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마법 소녀니까!

마.법.소.녀! 그 한 단어가 철없는 소녀의 심장에 얼마나 크게 박혔을까! 해영은 마치 굳은 결심을 한 소녀처럼 창문을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후다닥 망설임 없이 뛰더니 곧 열린 창문 너머로 도약! 그리고는 이렇게 소리친다.

"플라잉 플래쉬!"

- 그래! 그렇지! 잘했어!

지팡이가 기다렸다는 듯 불을 번쩍였고, 그 순간 해영의 옷 등에서 하늘거리는 천이 중력이 없는 것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해영의 몸도 순간 붕뜨기 시작했다.

"우…!"

해영은 막상 시도하긴 했으나 정말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이내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앗!"

그렇게 해영이의 마법 소녀 일지가 시작되었다.

"잘 다녀오셨사와요~ 민국 님?"

"그래, 아주 잘 다녀왔지. 뜨겁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왔단다."

"…이상한 소리하지 말아줄래? 괜히 오해 받기 싫으니까."

"어허, 여자 친구면서 오해는 무슨 오해오?"

"다, 달라붙지마!"

꽉 껴안는 민국의 행동에 당황해서 소리치는 은별이었다. 그리고는 흘긋 설화를 쳐다본다. 설화는 여전히 싱긋 웃고만 있을 뿐, 별 달리 질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상당히 이상한 여자애이긴 했다. 분명 본래라면 질투하고도 남을 텐데.

'후훗. 두 분이 즐겁게 노는 모습 아주 귀여왔어요~.'

하지만 설화의 스토커에 대해서 차마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녀도 성적 취향이 평범한 편은 아니었으니….(?)

"왔느냐."

"어머나 씨발!"

"…꺅!"

그런데 그 찰나였다. 현관문 옆에 있던 방이 열리면서 흑설 공주가 나타난 것이다. 민국은 일하는 날도 아닌데 왜 느닷없이 나타났는가 싶었다.

"아니 이 엄한 날에 웬일로 등장이십니까."

"중요한 사항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서 말이란다."

그리고는 스윽 은별과 설화를 둘러본다. 은별은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는지 흑설 공주 앞에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와 별도로 설화도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흑설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민국에게 물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흑설의 중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

"해영이가?"

흑설 공주에게 정황을 전부 들은 뒤였다. 당연히 민국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놈의 기집애는 또 무슨 일로 이곳에 찾아왔단 말인가? 심지어 흑설 공주의 아이템 중 한 개를 훔쳐서 달아나기까지 하다니!

"마법 소녀가 될 수 있는 장비란다. 자연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아이템이지."

"허허… 아니, 근데 잠깐."

해영이가 이 집에 왔었다면 설화를 만나야 하지 않았을까? 방에서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설화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민국이었다.

"설화야. 도중에 해영이는 못 봤어?"

"음~ 아마 조금 답답해서 바깥에 나갔을 때 오셨었나 보아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치는 설화였다. 이윽고 민국이 '허어'하고 흑설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럼 뭐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나는 다음 일을 처리해야 해서 말이란다. 대신해서 가지고 와주면 좋겠구나. 다만 일반적인 힘으로는 그 지팡이가 제압되지 않을 테니, 아이템을 하나 건네주도록 하마."

"아이템이라."

그리고 흑설 공주가 코트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지팡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은별이 그것을 잠시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지팡이…?"

"그 소녀가 가져간 것과 비슷한 용도의 지팡이란다. 마법을 부릴 수 있고, 마법 소녀가 될 수 있는 지팡이지."

"호오라. 그런데 마법 소녀라면 남자 전용은 아니란 뜻 아닙니까?"

"그렇단다."

"흠, 그렇군요. 이런 때야말로 은별이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군요."

"…뭐어?"

흑설 공주에게 받아 챙긴 지팡이를 은별이에게 건네주는 민국이었다.

"은별아! 난 딱히 네 마법 소녀 복장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저 네가 마법 소녀로 변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야!"

"그게 다 그거잖아 등신아!"

"후훗~ 민국 님 멋져부려요~."

설화가 응원하고 있었고, 은별은 반쯤 어이없다는 듯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애초에 왜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는 건데? 내 일이 아니라 네 동생 일…."

"앞으로 결혼까지 할 텐데 어떻게 남의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어! 너와 나의 가족의 일이야!"

"미, 미미, 미친 놈아!"

졸지에 이상하게 프로포즈를 받은 은별이었다. 이런 식으로 프로포즈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참 빌어먹게도 재수없는 프로포즈였다. 어찌 됐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고 은별이 '끄응'하면서 흑설 공주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내가 해야 해요?"

"마법 소년은 보기 싫지 않겠느냐?"

흑설 공주의 가벼운 미소와 함께 던져진 반문에 은별은 침묵하면서 상상했다. 상상해보니… 민국이 마법 소년 거리면서 이상한 복장을 하면 정말이지 헤어지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애초에 이 지팡이는 여성 전용이라고 하니까….

"하…아…."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이럴 때 그냥 흑설 공주가 나서서 처리하면 되는 일 아닐까? 하지만 민국의 책임이 있었으니 알아서 해결하게끔 크게 개입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고… 그럼 결국….

"…화장실 갔다 올게."

"엇, 화장실에서 사용하게? 그냥 여기서 사용하지."

"지팡이로 머리에 피분수 날 때까지 때려줄까? 잠자코 있어."

그리고 흑설 공주에게 주문이 어떤 식이냐고 묻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흑설 공주가 가볍게 말하였다.

"마법 소녀 니니컬 마노하 짜응 이라고 외치면 된단다."

"……."

씨발…. 정말 오랜만에 은별이의 입속에서 욕이 나올 정도였다. 이윽고 저벅저벅 민국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 은별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심호흡과 함께 거울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정말…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민국의 간절한 부탁이었고, 이 세상에 마법이란 건 상식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아주 큰 문제로 불거질 수가 있었다. 그런 고로… 은별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뜻을 받아 들어주기로 하였다. 이윽고 천장 높이 지팡이를 드는 은별이었다.

"마, 마법 소녀…! 니니컬 마노하 짜응…!"

다행히 덕력이 어느 정도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순조롭게 마법 소녀로 변신하는 모습이었다! 붉은 색의 촉수 같은 옷이 은별에게 찰싹찰싹 달라붙기 시작했다. 찰싹!

"…읏!"

찰싹!

"앙…!"

찰싹!

"아흐윽!"

가벼운 신음 소리가 화장실에서 음란하게 퍼지는 가운데, 민국은 화장실에 귀를 대고 '오오!'하고 잠시 동안 엿들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변신이 끝났는지 이상한 괴음이 사라지고… 끼이익 화장실 문이 열렸다.

"……."

"……."

그러자 마법 소녀처럼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치마에 율동복 같은 옷을 입은 강은별이 보였다.

"일단 맞아!"

"으악!"

퍽! 지팡이로 민국의 대가리를 한 대 후려갈기는 은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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