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47화 (347/369)

347화

<진짜가 되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다>

글쓴이 : 나 여자인데

내용 : 님들 저 여자인데요. 남자 친구가 있는데 이상하게 주위 사람들이 보면 커플 같지가 않대요 ㅜㅜ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우리 커플 맞지? 하니까 '응 당연히 우리 커플이지.'이러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인다네요. 오히려 말도 안하면 저한테 대시하거나 남친에게 집적거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대답 1 : 헤어지세요 헤어지면 해결됩니다. 한 커플에서 두 솔로가 나오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대답 2 : 남친 잠시 저한테 맡기시면 조기 교육해드릴게요대답 3 : 남친 저리 두고 저랑 만나서 데이트 어떠세요? 번호 알려드릴게요 제 번호는 1818에 1818….

짬을 내어 휴식 시간 동안 컴퓨터를 하고 있던 은별이었다. 마우스를 움직이며 이래저래 인터넷 화면을 훑던 은별은 생각을 하듯 중얼거렸다.

"…커플처럼 안 보인다는 거 아니야? 커플 같은 모습이 없으니까 그런 거겠지."

결론은 간단했다. 커플 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커플이 있었다.

SM처럼 변태적인 행위를 위한 커플도 있었고… 뭐 그냥 순수하게 사귀는 커플도 있었으며, 반대로 전혀 커플처럼 보이지 않는데 의외로 커플 같은 커플도 있었다. 그런 커플은 주로 커플다운 행세는 일말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인식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애초에, 남자 친구가 있으면 이래저래 데이트도 하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알콩달콩하게…."

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자신도 남자 친구랑 안 놀고 컴퓨터랑 놀고 있을 따름이다.

"…잠깐."

그런 생각을 하자니 돌연 은별도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진짜로 커플처럼 행동한 적은 없지 않나?'

…….

어디 한 번 민국과 커플이 된 이후의 일들을 돌이켜보는 은별이었다. 서로의 집에 들락날락거리면서 얘기를 나눈다던가… 어려운 학교 과제가 생기면 도움을 요청한다던가… 혹은 밤에 몰래 커플다운 놀이(?)를 한다던가….

"……."

는 얼어죽을! 은별은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쾅치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 너머의 창문을 바라보다가 이 상황의 심각함을 알아차렸다.

"…없어!"

그렇다!

"커플다운 게 없다고!"

정작 진짜 커플들이 하는 호화로운 일들은 없었다. 놀이공원에 단둘이 가서 즐겁게 노닥거린다던가… 혹은 둘이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손을 꼭 잡고 간다던가… 밤 길거리를 단 둘이 돌아다니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얘기해본다던가… 그런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해봐도 없엇!"

머리를 거머쥐고 책상을 내려다보며 심각하게 생각하던 은별이었다. …혹시 이렇기 때문 아닐까? 자꾸만 예나라던가 설화라던가… 하는 인간들이 남자 친구에게 찝적거리는 이유가…! 실은 은별과 민국이 커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정작 그런 행동을 제대로 선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었다.

'이래서야… 섹-(삐이이) 파트너랑 다를 게 없잖아!!'

인생은 깨닫는 순간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은별도 한 가지 인생에 큰 이점을 남길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셈이었다.

"뭔가… 뭔가 바뀌어야해!"

때때론 멈춰 있을 필요도 있었지만… 때때론 변화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은별은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덜컹 덜컹. 큰 무리 없이 구멍을 넘어 민국의 방으로 온 은별이었다. 가볍게 숨을 돌린 다음 이윽고 진지한 얼굴로 안방에 다가간다. 저벅 저벅….

"서민…."

그리고는 당차게 안방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침대 위에서 민국의 팔배게를 받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민국이 입던 하얀 와이셔츠에 바지는 입지 않은 채, 허벅지의 속살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 여자는 팔의 감촉이 기분 좋은지 눈을 감고 '민국 님~'거리고 있었다.

"민국 님~ 팔의 따뜻한 감촉이 저를 흥분시켜와요~."

"허허, 그래? 이 몸 팔이 원래 한 따뜻함 하지."

"네~ 아앗… 민국 님의 따뜻함이 제 몸속에 퍼져버렷."

"……."

뭐 그냥 남자 팔에 여자가 머리를 대고 누워 있을 뿐인데, 음양합일을 할 때나 나올 법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수치심이 느껴지는 광경에 은별이 바들바들 떨자니, 나머지 한 쪽 팔로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던 민국이 소리쳤다.

"엇? 은별아?"

"…은별은 무슨 은별이야! 빨리 나와!"

버럭 외침에 민국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쿵 문이 닫히고 은별은 팔짱을 낀 채 한참동안 거실에서 기다렸다. 한 쪽 발의 발등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이내 그가 나왔을 때일까.

"무슨 일이시길래 우리 은별느님 또 그렇게 화가 나셨답니까?"

"설화 그 사람은."

"잘 얘기하고 나왔어. 큰 문제 없을 거야."

…분명 설화는 두 사람 뒤를 몰래 졸졸 쫓아다닐 게 자명했지만 말이었다.

"…요즘 들어 뭔가 이상하다는 거 못 느끼겠어?"

"엥? 뭐가?"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천연덕스럽게 반문하는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에게 울컥한 은별이 다시 말을 잇는다.

"…커플이잖아! 커플! 그런데 커플치고 영 이건 좀 이상하지 않냐구!"

"어? 아아, …올."

은별이의 힌트에 금세 눈치 챈 민국이 씨익 웃더니, 은별의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말한다.

"우리 은별느님. 저와 많이 놀지 못해 아쉬웠군요? 정 오늘 저와 놀고 싶으시다면 방에서 한 차례 찐한 사랑을…."

퍽!

"끄악!"

"…사랑이고 나발이고 빨리 제대로 준비하고 나와."

"예옙…."

다시 안방으로 돌아가는 민국이었다. 볼품없게 나오면 한 대 콱 쥐어박을 셈이었다. 하지만 은별은 다시금 민국을 기다리면서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왜 의식하는 거야? 어차피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게 데이트다, 라고 의식하고 데이트를 했던 적은 커플이 된 뒤로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다. 애초에 커플이 된 뒤에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도 많이 없었고 말이다. 주위 사람들의 방해도 있었고.

"……."

그래서일까. 은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어 자신을 타이르는 은별.

'…정신차려 강은별! 고작 커플다운 행동 한 번 해보겠다는 것뿐이잖아? 왜 이거 가지고 설… 내가 설렌다고? …아니야! 난 이런 거로 설렐 정도로 바보 같은…!'

"다 준비했는데 어떻소 은별 낭자."

이윽고 들려온 익숙한 음성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 은별이었다. 그런 은별의 괴상한 듯한 동작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국. 꽤 깔쌈하게 차려입은 그 모습에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을 억제하며 은별이 그에게서 홱 시선을 피하고 말했다.

"괜…찮네! 이제 빨리 나와!"

"흠흠, 알겠수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는 민국을 뒤로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신발을 갖고 몰래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은별이었다. 이윽고… 밖으로 무사히 나온 두 사람. 봄치고는 조금 쌀쌀한 공기가 불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유독 쌀쌀한데?"

'진짜… 왜 하필이면 이런 날에….'

마음을 다잡고 데이트를 하기로 결심한 날에 하필이면 이런 추위라니…. 강찬 바람이 일순간 불어 은별의 팔이 오돌오돌 떨렸다. 은별은 감기 걸릴 것을 감안해 다시 집에 갔다 올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은별을 꼬옥 껴안아주었다.

열려 있는 자켓과 함께 말이다. 이윽고 그 따뜻한 체온에 은별이 반응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때 은별아? 좀 따뜻해?"

"……."

상냥하게 안은 채로 질문하는 민국이었다. 웃으면서 묻는 민국의 얼굴에 은별은 한참동안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씨익 미소 지은 그의 입가를 보고 은별이 홱 고개를 돌리면서 투덜거렸다.

"…따뜻하긴 하네 뭐…."

"후훗."

붉어진 얼굴을 애써 숨기기 위해 심술 궂은 표정을 지어 보지만… 미소가 피어 나는 건 별 수 없었다.

'그럼 오늘 두 분이서 데이트 하는 걸 보게 되는 건가요? 후훗!'

민국의 집, 열린 창문 너머로 아래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설화였다. 오늘 역시 저번 때와 마찬가지로 민국의 뒤를 졸졸 쫓아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 식으로 지켜보는 게 설화의 재미있는 놀이였으니까.

"나나나나~."

가벼운 노랫소리와 함께 현관으로 뛰어나가던 설화였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별아?"

"응?"

아무래도 이 집안에서 들린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집안에서 들린 소리긴 한데 적어도 민국의 집은 아니었다. 설화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곧장 향했다. 구멍이었다. 그 구멍 안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자.

"은별아? 안에 있니?"

"아앗? 이거 큰일인 거 아닌가요?"

심지어 은별이의 방안 구멍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멍을 액자로 막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었다. 똑똑. 몇 번이고 노크를 하던 은별이의 어머니였다.

"은별아, 문 열게."

"에구."

끼이익,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통해 잽싸게 능력을 발동하는 설화였다. 그러자 구멍 너머 은별의 방안에 떨구어져 있던 액자가 자연스레 구멍에 달라붙었다. 이윽고 열린 문 너머로 은별의 방을 확인하는 은별 어머니.

"어디 나갔나?"

의문 어린 음성이 들려오고,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갔어와요~."

이윽고 다시 문이 닫히고 나서야 능력을 해제하는 설화였고, 액자는 무사히 부착된 것 같았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윽고 민국을 따라 룰루랄라 집을 나가는 설화였다.

저벅 저벅.

그러나, 그 뒤에 있을 일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크큭… 신의 양탄자가 신을 노하게 만드니 하늘의 대지는 어둠의 불꽃을 내세워 파랑의 물을 물들게 하리다. 에스독스 이노시운드!"

1층 철문 앞에서 혼자 간드러지게 폼을 잡고 있는 한 소녀! 중2병에 걸린 그 소녀는 다름 아닌 중학생 2학년의 나이! 막 지나가던 어떤 꼬마 남자가 사탕을 물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운데, 소녀는 폼나게 철문을 열고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다.

"핵핵."

금세 지치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2층 현관문 앞에 당도한 소녀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열쇠를 거머쥐고 현관문의 구멍에 꽂아 넣었다. 끼리릭, 열리는 소리가 들림과 더불어 소녀가 현관문을 열어젖히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하앗! 파이로엑서스더스 원!"

쿠광쾅쾅! 하는 효과음이 원래 나야 할 텐데 그런 건 없다. 이윽고 멋드러지게 안으로 들어온 소녀, 민국의 동생 해영이가 조용히 텅빈 방을 두리번거렸다.

"…나타나라 적의 화신이여! 이 아킬레오스 칼의 힘을 받아 신성함에 물들어서 비명을 질러라!"

"……."

"크큭… 내가 무서워서 감히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아 보구나…."

한참을 중2병스럽게 현관문 앞에서 쇼를 하던 그녀였을까. 이윽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결국엔 신발을 벗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는 해영이었다.

"오빠…?"

안방으로 향해 덜컹 문을 열어본다…. 그러나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해영은 간만에 놀러온 것인데 아무도 없자…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큭…! 나의 무서움에 간파당하는 게 싫어 먼저 도망을 갔구나! 어리석은 자객 파시오노스의 마법!"

……. 어쨌든 그러하다. 중2병스럽게 소리치던 해영은 결국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조용한 그곳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어?"

문득 이상한 것이 보였다. 현관문 앞에 있는 문 한 짝과… 두 개의 구멍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왔을 때 한 번 본 적은 있던 구멍 같았는데, 정확히 어느 용도로 사용되는 것인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 해영은 조심스럽게 맨 왼쪽에 있는 구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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