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무서운 이야기>
저벅 저벅.
깊은 산속, 그곳에는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닥불 근처에는 텐트가 이곳저곳 깔려 있었는데… 딱 봐도 어디 동호회나 카페 모임에서 나온 여행 모임 같았다. 그리고 그 여행 모임에는 이제 막 열아홉 수능을 끝마치고 성인이 된 학생 한 명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그 학생은 타닥타닥 불씨를 내뿜고 있는 모닥불 근처에 모여 있는 형들에게로 향했다.
그 형들은 하나같이 깊이 절망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걔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뭐해요 형.”
“아, 너냐.”
형이라 불린 그 남자는 야윈 얼굴로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지고 있었다. 더 활활 잘 타오르라는 의미에서 하는 행위였다. 그런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동생이 물었다.
“여기서 다들 뭐하고 계신 거예요?”
“각자 무섭거나 절망적이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분위기가 이렇게 우중충하게 됐네.”
형의 말에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먼저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다른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동생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남자는 정말로 실화였던 모양인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서히 감정이입을 하고는… 머리를 쥐어 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머지않아… ‘으아아아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 울먹이는 그런 그를 동료들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줄 따름이었다.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이 오가는 그곳에서… 동생은 다시 대화를 나누었던 형을 돌아보았다.
“이제 자네 차례이네.”
“벌써 저군요.”
이윽고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조금은 진정된 모습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동생과 대화를 나눈 형이었다. 동생이 다시 형을 돌아보았고, 형이란 사람은 씁쓸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내려다보았다. 타닥타닥… 모닥불은 여전히 차디찬 바람 속에서 씁쓸히 나무를 태우고 있었다.
“제 무섭고 절망적인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
“그리고… 제 소중한 무엇인가를 앗아갈 뻔하게 했던… 정말이지 무지무지 두려운 일이었지요.”
“…….”
말을 하는 형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동생으로서는 도저히 그 형의 표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는지 모를 따름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절대 겁이란 것이 없을 것 같은 형이었는데… 지금 표정을 보면 막 공포에 질려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 날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
.
.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여보세요.”
“안녕하세여 호갱님! 다름이 아니라 저희 신용 대부 대출 카드에서 대출을 받으시게 되면 매년 500%의 이자가 주어지는 대신 1원이란 거금을 대출 받을 수 있는데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여!”
“강서라 키잡하고 싶다.”
“히이익!”
전화를 건 당사자는 다름 아닌 강서라였다. 막 대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민국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서라도 요즘 수능 공부를 하느라 어지간히 바쁜 시기일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방송은 꾸준히 하고 있었고, 민국과도 항상 몇 번씩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이가 그리하고 그리한 사이였으니까.
“헤헤, 심심해서여. 아! 근데 행님! 지가 수능 문제 풀다가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을 알았음여!”
“이 자식. 딱 봐도 삘이 넌섹스 문제로군.”
“사스가 온니찡… 어떻게 니은자가 기억자가 될 수 있는 거지여?”그리고 서라가 말을 잇는다.
“이거늬 회장님이여.”
“아, 그 삼숑의 이거늬 회장?”
“이응이응. 사실 나 아무도 모르는 그분만의 비밀을 알게 되었음.”
“올.”
대수롭지 않게 ‘올ㅋ’하고 대답하는 민국이었다. 그 반응에 서라는 ‘의잉,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여! 부들부들!’하고는 말을 잇는다.
“이 비밀을 이거늬 회장님이 듣게 되면 지는 분명 이 나라의 표적이 될 거예여! 그래서 온니찡에게 이 숨겨진 비밀을 알리고 기어이 같이 죽겠어여!”
“그럼 같이 죽기 전에 으쌰으쌰는 한 판하고 가자.”
“의잉… 왤케 저돌적이삼!”
어찌 됐든 서라는 그 비밀이란 것을 털어놓았다.
“실은 이거늬 회장느님 씹덕후임.”
“헐 미친 일반 병원 꼴등 환자 같은 놈아.”
“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셈여! 그럼 납득하게 될 거임여!”
그리고 서라는 질문했다.
“2010년에 처음에 나온 갤럭시가 뭐였는지 기억해여?”
“흠? 갤럭시 A지 않냐.”
“맞음! 그럼 다음에 나온 거는요?”
민국은 기억을 되뇌었다. 2010년 4월에 나온 게 갤럭시 A였으니까 그 다음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S지.”
“맞음여! 역시 온니찡! 휴대폰에 도찰 사진이 저장되어 있을 듯한 지식!”
“헐? 너 언제 내 휴대폰 뒤적였냐?”
“헐?”
어쨌든.
“다음꺼는여?”
“U지.”
“또 다음꺼는여?”
“K지 인마.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후후후훙. 그 다음으로 나온 갤럭시가 Ace지여! 자 그럼 여기서 뭔가 꺼림칙한 게 느껴지지 않으세여 온니찡?”
“한 가지 알 수 있지. 갤럭시 S가 존나게 단단해서 바닥에 떨어뜨려도 쉽게 안 부서진다는 점. 고로 여러분, 우리는 갤럭시 S를 씁시다.”
그나저나 서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 잘 이해가 안 갔다.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뭐냐?”
“후후후훙. 온니찡, 에바게리온 보셨어여?”
“에바게리온이라.”
에바게리온은 원래 엄청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무조건 랭킹 탑에 오르는 작품으로서 일반인들도 한 번씩은 이름과 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정도는 들어보았을 정도였다.
“그 유명한 에바게리온에 아스카찡이라는 캐릭터가 나옴여.”
“아, 서라 너랑 닮은 캐릭터지.”
“헐… 어쩜 지와 아스카찡을 닮았다고 해서 나만의 아스카찡을 더럽힐 수가 있지여! 나만의 아스카찡을!”
“이 녀석 부끄러워서 오덕후 행세하는 거 보소.”
“으헤헷… 암튼 아까 말했던 갤럭시들 있잖아여. 그 갤럭시 시리즈의 네이밍을 발매순으로 읽으면 어떻게 될까염?”
“엥? 아.”
이윽고 뭔가를 깨달은 듯한 민국이었다. 서라가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갤럭시 A,S,U,K,A! 아스캉! Soryu Asuka Langley!!!!”
“허, 슈밤….”
데프콘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
“존나 소름이네.”
“리얼…! 나님도 또 소름 돋았음여…. 으으 닭살.”
“아니, 너 말이다 너.”
근데 어떤 의미에선 서라의 말대로 갑자기 소름이 돋기도 했다. 설마 이거늬 회장은 진짜 에바게리온 아스카를 죽도록 사랑하는 아스카 빠인 것일까? 하기사 애니메이션에서 츤데레의 시대를 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역할이었다.
그것을 감안하면 에바게리온 시절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츤데레에 침을 흘려도 할 말이 없는….
“야 그래도 재밌는 개그 같았으니 나도 개그 하나 쳐줄까?”
“뭔데여?”
“너 새 키운다며?”
“의잉?”
“나라는 피앙새.”
뚝,하고 통화가 끊겼다. 막 ‘깔깔깔깔!’하고 웃으려던 민국은 ‘아, 젠장.’하면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서라에게 다시 통화를 걸었으나 받는 일은 없었고, 대신 이런 문자가 왔다.
[주화입마 걸렸음여. 힐링될 때까지 연락 ㄴㄴ요]
데미지가 은근 큰 모양이었다. 어찌 됐든… 이렇게 서라와의 통화는 일단락하고… 민국은 서라와 통화 중에 연락이 왔던 상대를 향해 이번엔 연락했다.
“왜 연락했냐.”
서라랑 통화를 할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두터워진 말투였다. 그런 민국을 향해 전화를 걸었던 상대, 김민철이 운을 띄었다.
“뭐하냐.”
“네 생각.”
“망할 놈아.”
“왜 욕을 하냐? 사실 나 이제야 밝히는 건데 너 가지고 딸깜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밤마다 네 엉덩이를 상상하며….”
“으아, 이 미친 놈.”
“훗. 네 녀석은 그래도 주화입마는 입지 않는 모양이군.”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연락한 것일까?
“왜 연락했냐?”
“다름 아니고 이번 주말에 카페 모임이 있어서 그러는데 너도 한 번 와볼 생각 있나 해서 연락한 거다.”
“올, 카페 모임? 무슨 카페 모임?”
“그냥 사내들끼리 서로 이야기나 털어놓으면서 공감하는 자리지. 다만 산도 오르고 텐트도 챙기고 그래야 한다. 1박 2일이지만.”
“흠.”
우선 어느 카페에서 진행하는 등산모임인 모양이었다. 심지어 텐트까지 구비하라고 하는 거 보면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곳인가 본데, 민국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요즘 등산이라거나 그런 건 한 적이 없군.’
심지어 남자들만이 교류할 수 있는 돈독한 우정이라던가 그런 걸 쌓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도 요즘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민국의 곁에는 이제 거의 여자들뿐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형이 운영하는 곳이니 너무 경계할 필요도 없다. 그냥 생각 있으면 한 번 오란 셈이지.”
“그러냐.”
일단 고민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주말까진 시간이 남는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서라 건은 완전히 포기했나 보네.’
예전처럼 좀 더 마음을 갖고 있다거나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 서라가 여자라는 사실을 약속했던 대로 방송에 털어놓지도 않았다. 확실히… 이렇게 말했던 걸 지키는 면모 때문에 그를 친구로서 맘에 들게 된 것이라.
‘카페 모임이라.’
통화를 끊은 뒤 민국은 곰곰이 생각해볼 따름이었다.
그러나 훗날… 민국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들이닥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설마… 설마했던… 어디까지나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했던 그 이야기를… 자신이 경험하게 될 줄은….
그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여.”
“왔냐.”
이윽고 들이닥친 주말, 마침 민국도 할 게 없겠다 결국엔 카페 모임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등산복과 함께 배낭에 물건들도 여럿 챙겨 넣었다. 텐트 구비는 김민철이 대신 해주었다.
“호옹이. 카페 모임치고 인원수가 많네.”
“못해도 스무 명이지. 꽤 오래 된 곳이라서 친한 사람들이 많다.”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다들 남자로, 진짜 남자들의 우정을 돈독히 하기 위함에서 제작된 카페 모임인 모양이었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만에 뜨거운 사나이의 맛을 보겠다고 느꼈다.
‘사나이의 맛이라면 역시 이런 거지.’
대충 민국이 그리는 상상은 이런 것이었다.
- 퍼억!
‘크윽… 퉷!’
‘훗… 퉷!’
서로 펀치를 교환한 뒤 입안에서 나는 피를 침으로 뱉는다! 그리고는 강렬하게 서로를 째려보며….
‘이 자식….’
‘네 이놈….’
그리고 얼마지 않아 서로 ‘훗!’하고 미소 짓는다. 그 후 다시 펀치 교환! 퍽퍽! 이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만 해도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상황! 하지만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고 깊은 밤까지 지속되는데…. 퍽! 퍼억!
‘크으으으….’
‘하아, 하아!’
‘네 녀석… 난 아직지지 않았어!’
‘나야 말로! 너 같은 것한테 지진 않아!’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단 둘만이 남은 그곳에서 결국 쓰러져 버린 두 사람! 그리고 얼마지 않아 깊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거친 숨을 내쉰다. 이내….
‘풋!’
‘푸훗!’
한참동안 철없이 싸우던 자신들이 우스웠는지.
‘푸하하하하하하하!’
‘푸,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곧 철부지처럼 웃음을 지으며… 둘도 없는 친구로 자리매김을 하는 사나이들의 우정!
“키아, 내가 생각해도 병신 같다.”
대충 그렇게 소감을 표하는 민국이었다. 어찌 됐든 민국은 김민철의 소개로 카페 모임의 개최자라는 사람과 인사하게 되었다.
‘헐?’
근데 그 사람의 겉모습이 의외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흑인?’
“내가 친하게 지내는 형인데 흑인이지만 한국에서 5년 동안 있었고 말도 잘하는 편이야. 인사해라. 형, 내 친구 민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