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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341화 (341/369)

341화

최유이.

‘미연시로 따지자면 공략하기 제일 어려운 철벽 수비형 골키퍼 캐릭터.’

그런 그녀를 거짓말 탐지기 게임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워낙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그녀기 때문에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후훗. 유일하게 사람을 밀어내는 버릇을 가진 유이 씨라면 당연히 나에게 비호감을 갖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을 역으로 질문해서 나를 좋아한다고 던진다면! 승리는 나의 것이다!’

최유이가 비호감의 인식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에 찝찝한 마음은커녕… 오로지 승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민국이었다.

“아니….”

유이가 어설프게 대답을 내뱉었다. 동시에 이윽고 거짓말 탐지기의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번쩍번쩍… 양쪽으로 꺼졌다 켜졌다 하면서 번갈아 반짝이는 거짓말 탐지기의 모습에 유이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민국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라 모르겠지만, 유이는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였다. …민국을 좋아하냔 질문. 당연히 대답은 노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유이 씨!’

하지만….

‘빨리 뛰어요!’

그 날을 계기로 유이는 뭔가 바뀌었다. 그녀의 두툼한 가슴 속 안에 깊이 숨어들어 있는 마음이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국과 단 둘이만 있어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는 유이였는데… 거짓말 탐지기를 손에 댄 채 대뜸 그런 질문을 받으니 유이의 심장 박동수는 차츰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두근… 두근…!

“…….”

어느 때보다 높고 빠르게 뛴다. 이러다가 심장이 터져 두툼한 가슴을 뚫고 나오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하지만 그 염려보다 더 두려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근 두근…!

“……!”

삐이익!

“역시 거짓! 승리는 나의…! 엥?”

계획대로 된 줄 알고 환희를 하려던 민국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소리는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알리는 소리였다. 요컨대 민국이 던진 질문에 긍정의 대답이 들려온 것이었다.

“엥? 뭡니까 유이 씨?”

“…….”

민국의 재차 던지는 물음. 그 역시 의아한 듯 거짓말 탐지기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거짓말 탐지기가 거짓이라고 알려주었다면… 손바닥을 대는 곳에서 전기가 찌릿찌릿 나와야 한다. 그것은 꽤나 아픈 편에 속하는 전기로… 어느 남자들도 순간 ‘어우!’ 손사래를 치면서 손을 땔 정도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짓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 탐지기에선 전기가 안 나왔는지, 유이는 계속해서 손을 댄 상태였다.

“이상하다? 고장났나 이거?”

“…….”

“아까 전엔 잘 되지 않았습니까?”

거짓말 탐지기를 둘러보면서 의문을 품는 민국이었다. 한참동안 버티고 있던 유이가 이윽고 고개를 내리면서 천천히 운을 띄었다.

“고장….”

“엥? 그런데 작동은 제대로 되는데?”

“…….”

“한 번 다시 해봅시다 유이 씨. 유이 씨는 날 사랑한다! 맞으면 예! 아니면 노!”

유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

삐이이익!

“헐? 유이 씨 설마 저 좋아합니까?”

“…….”

다시 한 번 거짓을 외치는 거짓말 탐지기에 유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민국은 허 설마 하는 눈빛으로 유이를 쳐다보다가 다시 거짓말 탐지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진실이면 전기가 나와야 되는데 왜 안 나오지? 설마 참고 있는 거예요?”

“…….”

유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해명하듯 말한다.

“진짜 노….”

“허어! 그러게 말입니다. 유이 씨 가슴 가지고 만날 놀리던 걸 감안하면 도무지 나에게 호감을 가질 수가 없을 텐데, 이게 어찌 된 일이라냐.”

“…….”

알긴 아는지, 민국이 그리 중얼거리면서 의문을 표할 따름이었다. 어찌 됐건… 이렇게 위기를 좀 넘기는 듯싶었다.

사실 유이가 손바닥에 대고 있는 거짓말 탐지기는 전기가 안 나온 게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참아낸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치솟아 오르는 전기에 흔들리는 정도로 유이는 혼란스러운 자기 마음을 선뜻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뭐 별 수 없지요. 그럼 이건 거짓말 탐지기의 오답이라 생각하고, 다시 질문합시다.”

“…….”

어떻게든 위기는 넘어간 모양이었다. 꽤나 긴장된 듯 봉긋 솟아 있던 유이의 가슴이 조금은 안도하듯 호흡에 따라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질문했다.

“제 고추 좋아합니까?”

“노….”

띠링! 이번엔 진실이었다.

“크… 안 되겠구만. 언젠간 보게 되면 맛보지 못해 안달나실 겁니다.”

“…….”

“자, 다음 차례로 유이 씨.”

성드립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유이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하게도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은별 씨를… 사랑한다….”

“예스.”

민국은 당연하다는 듯 진실을 외쳤다. 그러자 손에 대고 있던 거짓말 탐지기에서 띠링! 하고 진실된 소리가 나왔다. 민국은 흡족하다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였다.

“저와 은별이의 사랑에 대해서 시험하신 겁니까? 훗, 유이 씨는 제 사랑을 너무 얕보시는군요. 제 사랑은 다편단심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만을 바라볼 수 있는 타입이지요.”

“…….”

결국엔 바람둥이라는 거 아닌가? 어쩌다 은별과 예나가 자초지종 다 얽히게 되었는지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기가 막힌 사연이 있는 건 자명했다. 어찌 됐든 간에 유이는 다음 차례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자, 그럼 제 질문입니다.”

“…….”

그런데 문득 그 질문을 받으면서 유이는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걸 느꼈다. 방금 전 자신이 던졌던 은별과 민국에 관련된 질문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씁쓸해지는 게 느껴졌다.

“…….”

분명 이전의 자신에겐 두 사람이 그런 사이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변화였다.

“자, 그럼 다음 질문은!”

어찌 됐든 두 사람 간의 삼세판 게임은 계속되었다.

게임의 승자는 안타깝게도 민국이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여자상대로 온갖 음흉한 성드립을 치는 민국이 승리를 얻게 되었으니… 패배자가 받게 될 벌칙이야 이루 말할 것 없이 가혹할 게 자명했다.

“후후 사실 지금까지 이런 게임을 했던 건 이 순간의 추진력을 위해서였습니다.”

“…….”

“각오하십시오 유이 씨. 내 벌칙은!”

유이는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이상한 설레임도 있었다. 이윽고 민국이 벌칙을 소개했다.

“옷 사러 나갑시다!”

“…….”

“아, 물론 비용은 유이 씨 돈으로 하는 겁니다. 저도 조금은 보태겠지만, 흠흠 모두 유이 씨를 위한 것이니까요.”

이게 뭔 벌칙인가… 말문을 닫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민국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유이 씨. 집에 옷 몇 벌 있습니까?”

“…….”

유이는 자신이 소유한 옷이 몇 벌인가 되뇌어보기 시작했다.

“열 벌 정도….”

“거봐요! 소지한 옷도 그렇게 적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체 바깥에서 좋은 인상은 풍기겠어요? 기껏 해봐야 가슴이 전부겠다!”

“…….”

팔짱을 끼며 민국이 단호히 조언했다.

“유이 씨, 여자란 말입니다. 물론 가슴이나 골반이 제일 중요하긴 합니다. 모성애와 더불어 섹시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매력이니까요. 그런 매력 포인트를 유독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데 유이 씨는 다 가지고 있지요. 그 점에선 정말 플러스 투 플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패션 센스 같은 건 정말이지 영 꽝입니다. 세상에 아주 예전에 만났을 때 입었던 원피스! 바지! 그런 걸 지금까지 입고 다니면 어떡합니까? 심지어 어째서 그런 옷을 집안에서도 입느냔 말입니다.”

유이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엔 그나마 조금 헐렁한 느낌이 나는 와이셔츠와… 바지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민국의 말대로 바깥에 안 돌아다니는 동안 줄창 이것만 입고 있었다. 세탁을 돌리고 다시 입고 세탁을 돌리고 다시 입고…. 샤워도 늘 했으니 깨끗하지만….

“그런 패션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유이 씨, 저와 새로운 캐릭터를 창안하러 가죠. 제가 프린세스메이커의 플레이어가 되듯 유이 씨를 꾸며드릴 테니 빨리 밖으로 나가자 이 말입니다.”

“…밖은 사람들이….”

“그놈의 대인기피증 따위 유이 씨의 가슴 맥시멈이면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자, 빨리 나와요!”

하나같이 유이의 커다란 가슴을 쳐다봐서 문제인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질질 끌고 나오는 민국 때문에 유이는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가야만 했다. 느닷없는 외출이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벌칙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민국이었으니까. 의지할 수 있는….

“자, 출발합시다.”

“…….”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옷가게가 있는 번화가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유이가 있는 동네는 몇 미터만 가면 넓은 번화가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나왔다. 한적한 동네와 더불어 시끄러운 잔치 위치가 같이 있다고 할까. 여러모로 좋은 셈이었다.

“자, 고릅시다. 그 모자 벗고요.”

“아….”

후드티를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렸던 유이였다. 민국이 강제로 벗기자 유이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만지다가 어색하게 고개를 올렸다. 민국은 ‘흠흠!’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역시 비쥬얼은 나쁘지 않구만.”

“…….”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요동치는 감정이 든 유이였다. 하지만 용케 내색은 하지 않았다.

“백화점은 사내로서 감당하기 조금 어려울 거 같고, 저기 옷가게들이 즐비하니까 저기서 고릅시다. 나쁘지 않겠군요.”

“…….”

그리해서 민국의 리드에 따라 유이는 옷가게에 가게 되었다. 실로 어색한 행위였다. 옷가게 같은 건 정말이지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주로 옷은 인터넷으로만 구매하고 입는 게 다였다.

“잘 어울리세요 손님~.”

이윽고 민국이 골라준 옷을 입고 나온 유이였다. 가슴 때문에 조금 껴서 문제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소화하기에 어울리는 원피스였다.

특히나 파랑색 계열의 원피스였는데, 평소 음울한 느낌이 칙칙 풍기는 유이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윽고 상업적으로 직원이 미소짓고 칭찬하는 가운데, 민국이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귀띔했다.

“유이 씨. 가슴이 너무 쪼이지 않습니까?”

“…….”

“그럴 땐 확실하게 말하는 겁니다. 가슴이 너무 쪼.인.다.고 말입니다.”

직원에게 하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이는 그 말을 하지 못했고, 결국 민국이 대신해서 답해주었다.

“저기 옷이 조금 답답하다고 해서 그러는데 조금 더 큰 사이즈 없을까요?”

“큰 사이즈요? 잠시 기다려 주세요 손님~.”

“…….”

“훗, 가슴이 쪼인다는 말을 유이 씨의 목소리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군요.”

계획대로 되지 못했음에 아쉬움을 느끼는 듯한 민국에 유이는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좀 더 큰 사이즈의 원피스가 유이에게 대령되었고, 유이는 그것을 입게 되었다. 이번엔 다소 편하고 입기 간편했다. 보기에도 좀 더 나은 느낌이었다.

“어떠세요 손님? 손님 그쪽 사이즈가 조금 크셔서… 부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정말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유이는 그냥 거울의 자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근처에서 몇몇 여성들이 유이를 지켜보며 속삭였다.

“저 옷 괜찮지 않아?”

“꽤 예쁜 옷 같네.”

본래 옷이 잘 팔리는 비결은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데려다놓고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럼 저 옷이 저렇게 예쁘고 귀티나나 생각하게 되는 법. 고개를 마냥 숙이고 있는 유이를 보면서 민국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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