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40화 (340/369)

340화

<거짓말 탐지기>

타다다닥… 어둑한 방안, 오로지 켜져 있는 불이라곤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 그곳에는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완성된 1루트, 2루트 게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마케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역시 방법은 비제이라는 명분을 통한 홍보가 제일 빠를 것 같았다. 그리고 비제이하면 역시 이곳에도 한 명 있었으니….

타다다닥….

“…….”

바로 커다란 마음씨를 가졌다고 소문난 최유이, 그녀였다. 그녀도 비록 방송을 열심히 살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방송을 해온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네임드는 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만일 그녀가 자신이 게임을 제작했다면서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최유이를 좋아하는 최유이 위원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게임을 자진해서 홍보해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무보수로!

“…….”

물론 그런 최유이만의 마케팅에는 다소 한계적 요소가 존재할 것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빨리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원수와 인기를 보유한 비제이인 게 좋았다. 그러나 유이는 그 인기라는 부분에선 조금도 속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타다다닥….

“…….”

탁.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이었다. 아니… 도움이라기 보단 게임 완성에 협조했다는 명분하에 마케팅에 도움을 받기로 한 사이였지만. 그리고 오늘 그가 마침 자신의 집에 올 계획이었다.

‘유이 씨!’

유이는 돌연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녀의 초점이, 마치 모니터가 아닌 환상 속의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뛰어요!’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공포의 대상을 비웃고, 손목을 붙잡으며 뛰도록 명령했던 그. 비록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평소 그의 모습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무슨 연유에선지 다른 감정이 들었다. 두근 두근….

“…….”

그래, 바로 이 감정…. 유이는 불끈 쥔 자신의 주먹을 가슴에 갖다댔다. 풍만한 그녀의 가슴 안에서 두근두근… 빠른 속도로 박동수를 높이고 있는 심장이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인지, 갑자기 느끼게 된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이는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주 오래토록 잊고 있던 중요한 사람의 감정임은 느끼고 있었다.

‘유이야.’

아주 오래 전, 과거의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부르던 그 목소리와는 다른….

‘유이 씨!’

조금은 변태 같고 이상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기 시작한 그 목소리….

“가슴 대마왕 납시오!”

“…….”

똑똑! 똑똑!

“현관문 앞에 도착한 것을 명분으로 가슴 대마왕을 소환한다! 나와라 최유이!”

“…….”

“크읏…! 이건…! 굉장히 강력한 가슴의 힘이로군!”

아무래도 이번 건 환청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얼핏하긴 했지만, 반복되는 그의 목소리에 유이는 착각이 아님을 확신했다. 유이는 현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 박동이 더 높아지는 걸 느꼈다.

“빨리 나와라! 최유이! 가슴 사이에 내 성스러운 것을 껴버리기 전에!”

“…….”

“크읏!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네카솔이…!”

하지만 민국의 계속되는 외침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높아지던 심장 박동은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평소대로 돌아왔다. 뭐라고 할까… 확실히 민국은 괴상한 남자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손으로 주우면 그만인데, 굳이 동전을 멀리 던져 버린 다음에 그것을 달려가서 주우려고 한다고 할까? 참으로 비유도 들기 어려운 남정네임은 자명했다. 어쨌든 유이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래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인가! 사스가 최유이! 가슴 마왕!”

이윽고 계단을 내려간 끝에 유이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막 그 너머에서는 유이에 관련해서 다른 비속어(?)를 담으려고 하던 민국이 있었다. 이윽고 눈을 마주친 두 사람.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민국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혀졌다.

“안녕하십니까 최유이 씨.”

“…….”

“아까 전에 어떤 놈이 유이 씨 집 앞에서 음담패설 하고 있길래 한 대 쥐어박고 왔습니다. 후우~ 어지간히 모자란 놈이군요.”

“…….”

손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저으며 ‘야레 야레’거리는 민국이었다. 실은 자기가 했으면서…. 유이는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유이의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들어가도 됩니까? 어이구, 들어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나저나 오랜만이군요 유이 씨. 그간 뭐하고 지내셨어요?”

참고로 유이와 민국이 만나는 건, 저번에 만난 뒤 약 3주가 경과한 뒤에서였다. 왜 3주 뒤에서야 연락을 하게 되었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각자 개인사정이라고 할까… 유이도 게임에 대한 마무리를 하느라 바빴고, 민국도 간만에 나가게 된 대학교에 적응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민국은 마치 오랜 전쟁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마냥 집안에 당도하자마자 두 팔을 펼치면서 변태처럼 숨을 흡입했다.

“흐음~ 이것이 바로 최유이 씨의 이산화탄소 냄새.”

“…….”

“킁, 그날입니까?”

사스가 서민국…. 이제는 적응이 된 자신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유이는 그냥 무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위로….”

“헐! 벌써 진도를 나가자구요? 여자가 왜 이렇게 앞서가?”

“…….”

“까짓것 갑시다 크흠.”

말없는 유이가 차마 무서웠는지 더 이상 개그는 치지 않고 먼저 계단을 오르는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의 뒷모습을 따라 유이도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방안에 선두로 들어와 있던 민국이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드디어 디자인도 완성되었군요. 크아… 끝내주는구만.”

“이제 홍보만 하면….”

“뭐 홍보야 저한테 맡기면 그만입니다. 그나저나 캐릭터 디자인은 좋은데 좀 꼴리는 느낌이 없네요. 수정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

“잠깐! 이젠 언제 때릴지 감이 오기 때문에 바로 선두를 칠 수가 있어! 여기까지 할 테니 진정하십쇼!”

그러하다.

“그럼 일단 게임 파일부터 받고.”

“…….”

이윽고 유이를 통해서 완벽하게 완성이 된 게임 파일을 받은 민국이었다. 이로써 이제 집에 가서 비제이로 마케팅만 해주면 완료된 상태였다. 하지만 유이는 순간 내리고 있던 시선을 슬쩍 올려 민국을 보게 되었다. 두근 두근….

“…….”

또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는 그와 단 둘이 있어도 조금도 심장이 뛰는 일은 없었고… 그저 빨리 집에 가주길 바랐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이대로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럼 이만 집에 가볼까요?”

“…….”

“라고 말해줄 리는 없지요! 이래봬도 저 서민국입니다 유이 씨. 오랜만에 온 건데 제 채취를 이 방안 곳곳에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쿵하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 쿵하는 느낌도 ‘그럼 이만 집에 가볼까요?’라고 물음을 던지는 순간에 느낀 것이었다. 유이는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자기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아, 그나저나 유이 씨. 제가 재밌는 거 하나 가져왔는데 혹시 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재밌는 거….”

“예. 섹스라고 좋은 거… 아니, 농담입니다. 첵스 초코 말하려다 발음이 엇나갔어요.”

그런 거 같지는 않았지만. 이윽고 민국이 어떤 물건 한 가지를 꺼내들었다. 손자국이 나 있는 장난감이었는데… 앞면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유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그냥 내려다보고 있는데, 민국이 설명해주었다.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

“크흠, 예전에 이거로 고딩 때 친구들이랑 놀면서 장난을 쳤던 적이 있는데, 마침 창고에 있더군요. 그래서 한 번 옛날의 추억이나 회상해볼 겸 가져왔습니다.”

“…….”

“은별이는 츤데레라서 탱탱 튕겨대면서 하기 싫다고 끝까지 거부해서요. 그래서 저와 어중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유이 씨와 한 번 거짓말 탐지기 게임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유이는 왠지 모르게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선선히 물음을 던지는 그녀였다.

“이거로 어떤….”

“어떤 게임을 하냐고요? 뭐, 그야 간단하죠. 제가 유이 씨에게 질문을 던지고 유이 씨가 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답을 한 뒤에, 만일 거짓말 탐지기가 거짓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질문을 했던 사람이 1승을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

“이런 식으로 한 번 3승 게임 해보는 거 어떻겠습니까? 지는 사람은 뭐 벌칙이나 맛있는 거 사주기 하고요.”

아무래도 민국도 씁쓸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감을 가져와서 어중간한 사이의 유이에게 게임을 제안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유이는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싫….”

“좋다고요?”

“싫….”

“좋다고요?”

“싫…….”

“좋다고 했습니다! 좋다고 했어요!”

손가락으로 유이를 가리키면서 어떻게든 좋다는 대답을 받아내려고 노력하는 민국이었다. 그러나 유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민국과 마주함으로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표명했다.

“싫….”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좀 해줘어어어어우아아아앙! 나 심심하단 말이야 으아아아아아앙!”

“…….”

결국 마지막 필살기를 사용하는 민국이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아기가 때를 쓰는 것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천박하게 움직이는 서민국…. 실로 잘 생긴 그조차도 한심스럽게 보일 정도로 답 없는 행태였지만… 그가 이렇게 때를 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라는 고3이라고 수능 준비하느라 같이 못 놀아! 예나는 대학교에서 나보다 더 과제 많이 받아서 못 놀아! 은별은 대학교에서 새로운 거 준비한다고 못 놀아! 대체 나는 누구랑 놀란 말입니까 으아아아아앙!”

“…….”

“그렇다고 김민철 그 자식이랑 놀아요? 유이 씨! 그 자식은 남자예요! 남자는 자고로 여자를 봄으로서 수명이 늘어나는 과학적 이론도 존재하는데, 유이 씨는 남자와 남자가 놀게 만들어서 남자 둘의 수명을 줄어들게 만들 것입니까? 유이 씨 그렇게 나쁜 사람이었어요?!”

뭐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자명한 건 민국이 어지간히 심심하고, 그 심심함을 풀기 위한 놀이에 굉장히 간절함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유이는 언제나와 그렇듯이 민국의 설득에 어쩔 수 없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럼 조금만….”

“오케이!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삼판 선승제! 딱 세 번씩 돌아가는 거예요. 그럼 총 여섯 번 게임을 하는 셈이죠. 그 뒤에 벌칙을 정해서 진 사람에게 시키면 되는 겁니다.”

“…….”

왠지 그 진 사람에게 시키는 게 굉장히 신경에 거슬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알았어요….”

“오케이! 그럼 유이 씨부터 하십시오. 어떤 질문이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민국은 자신의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렸다. 아무래도 거짓말로 밝혀지면 저기 손바닥에서 찌릿찌릿하고 전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

유이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을까? 우선 그가 거짓이라 판단이 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게 좋을 텐데….

“나는… 변태다….”

“변태라고요? yes yes yes!”

“…….”

“자고로 남자는 모두 변태의 운명을 타고난 변태입니다.”

조금도 변태에 대한 거부감 없이 인정하는 민국이었다. 유이가 원한 건 거부였는데…. 띠링! 이윽고 거짓말 탐지기가 진실을 외쳤고 유이가 반대로 손바닥을 올리게 되었다.

“흐음, 뭐가 좋을까.”

“…….”

“훗. 그래 이게 좋겠군요.”

이윽고 자신 있게 외치는 민국이었다.

“유이 씨는 날 사랑한다!”

“…….”

“맞으면 네! 틀리면 아니!”

유이의 심장이 순간 급속도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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