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38화 (338/369)

338화

<이건 개꿈입니다. 아시죠?>

“크윽! 시, 심장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친다…! 이것이 바로 이능력 발산의 계기…!!”

가슴의 옷자락을 굳세게 쥐고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숨결을 내쉬는 한 남자!

보드라운 피부의 그 남성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여긴 어디냐?”

혼자 탈춤과 같은 쇼를 부리기에는 상황이 전혀 녹록치 못했다. 왜냐하면 민국은 정체 모를 이상한 백색 공간에 발을 딛고 있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있자니, 문득 어디선가 우르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국은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응?’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헐! 뭐시라냐 저것들은!”

그리고는 마치 농민봉기를 일으키듯 각자 낫부터 창 등등을 들고 때로 몰려오는 무수한 남자들의 인파를 보게 되었다. 후줄근한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 혹은 직장인처럼 보이는 남자… 왜 그들이 이런 곳에 있는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할 사람들이 민국에게로 무섭게 달려오고 있음에 민국은 잠시 경악했다.

“서민국! 이 녀석! 이 개 같은 녀석!”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은별이랑 예나는 기본이고 나머지까지 먹버했다!”

“존나 부러운 개새끼야! 쳐죽어라!”

“헐, 이 미친놈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인다냐!”

당최 뭔 소린지 몰라 몸을 돌려 도망갈 준비를 하는데, 또 다른 남자의 소리가 들려온다.

“은별이랑 예나가 하렘 빨리 납득하게 해줘! 솔직히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면 앞으로의 전개가 좀 지루해질 거라고!”

“그 같이 사귀었던가 그 동급생 남자랑 유이랑 이어지면 때려치운다 새끼야!”

이것들이 당최 무슨 소리를 외치는 것인가! 의문이었지만 민국은 일단 도망치기로 했다. 민국을 쫓는 무수한 욕망의 사람들에게서!

“서라는 만 15세가 넘은 나이로 성관계를 합의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왜 아직도 안 하고 있냐! 이 막무가내 같은 새끼야!”

“뭐라는 거냐 이 미친놈들아! 니들이 누군데 나한테 지랄들이여!”

“5천명의 아리아!”

“앵?”

“아니 이젠 6천명의 아리아다 이 새끼야아!”

푸두두둑! 허공에서 곡선을 타고 민국의 등 뒤로 날아오는 무수한 곡괭이들. 민국은 사색이 되어 무의미하게 앞으로만 뛰어갈 따름이었다.

“으아아아아아!”

그렇게 정체 모를 그들에게 쫓기면서 한참을 도망가길 어연 10분. 마침내 막다른 길 안에 도착하게 된 민국…. 그리고 그런 그를 끝끝내 쫓아와서는 민국을 포위한 무수한 욕망의 존재들!

“허억, 허억.”

“하악, 하악.”

‘슈, 슈밤.’

민국은 매우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민국을 포위하고 있는 무수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민국을 남자의 적으로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윽고 민국을 포위한 남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너… 현재 대한민국 인구수의 절반 이상이 남자인 건 알고 있지?”

“알긴 한다만….”

“그러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남자와 여자가 일부일처제로 결혼을 전부 한다고 할 때 솔로로 남게 될 남자들이 더 많은 것도 알게 될 거야.”

“그렇겠지… 근데 그게 나랑 어쨌단 말이냐?”

민국의 진지한 물음에 남자 중 한 명이 ‘하!’하고 어이없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탄성이 마치 분위기를 이어주는 역할이 된 것처럼… 다들 저마다 낄낄거리면서 민국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국은 당최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들을 경계하며 바라볼 따름이었다. 평소 민국이라면 남자의 수가 어쨌든 무조건 막장으로 치고박고라도 했을 텐데, 이건 그럴 수준이 아니었다.

민국의 맞은편에 있는 그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내재된 무수한 욕망을 곧이곧대로 표출하며 살육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정말…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냐?”

“…….”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남자… 그리고 일부일처제로 결혼을 하게 되면 솔로로 남게 되는 숫자가 남자가 월등히 많다는 것… 그것은….”

민국과 대화를 하고 있는 남자가 정면으로 삿대질을 한다. 민국을 가리키는 그의 눈빛이 강인했다!

“서민국! 네놈이 우리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란 소리다!”

“…….”

“네놈은 약 다섯 명… 아니, 앞으로 몇 명이 될 지도 모르지. 한국 법상 절대로 공존해선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을 네놈은 실현하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간통죄를 폐지한 것과 같은 이치지…. 네놈은 아랍인이 되고 싶은 거냐아!!!”

남자가 눈물을 삼키며 말을 잇는다.

“네놈… 네놈이 약 다섯 명의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럼 네 명의 남자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 그들은… 음양합일도 못하고 자신의 아기도 만지지 못하며 불우한 인생을 살게 될 테지… 그리고 평생 여자라는 환상 속을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동물이 되어버릴 거다!”

“…….”

“서민국…! 네놈은 그랬으면 안 됐어! 아무리 남자로서 욕심이 나도! 단 한 명의 여자만을 원했어야 한다!”

“…….”

“특히 서라 빠돌이인 나로서는…! 네놈을…… 더 이상 용서할 수는 없다!!!”

(부들부들)

‘그런가.’

민국은 뒤늦게서야 이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던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민국은 그들의 얼굴을 세심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같이 민국에게 적의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그 감정 속엔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뼈아픈 감정….

[솔로로 살고 싶지 않은 감정]

그것이 강하게 분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들이 민국에게 뿜고 있는 것은 적의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슬픔이다!

‘자신도 서라처럼 배려 있고 눈치도 있고 잘 맞춰주면서 애교도 잘 부리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자신도 은별처럼 츤츤거리지만 튕기면서도 잘해주고 필요할 때 바로 바로 도와주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자신도 예나처럼 요리도 해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주기도 하고, 무조건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자신도 설화처럼 다소 괴이한 느낌이 들지만 애교도 있고 섹시함도 풍기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자신도 유이처럼 가슴이라던가 슴가라던가 큰가슴이라던가 왕가슴이라던가 가슴을 가진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

다들 하나씩 꿈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털썩….

“그랬…어….”

“…….”

“내가 니들을… 이해 못했다….”

민국은 결국 그들의 논리정연한 말에 타파당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눈에 초점이 없었다. 이대로 지고 마는 것인가… 하지만 이 패배야 말로 순수하게 인정할 수 있는 패배일 지도 모른다.

‘……만.’

그러나, 이대로 포기해도 좋은가?

‘…지만.’

정말로, 이대로 포기해도 좋은 것인가? 이대로 포기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그게 늘 보여주던 서민국 본래의 선택일까!

‘하치만!’

민국은 굽혔던 무릎을 다시 피면서 일어났다. 잠시 씨익 하고 미소 짓던 맞은편의 그들이 얼굴을 굳혔다. 민국이 한 쪽 손을 펼쳐들면서 외쳤다.

“너희들은 어리석다!”

마치 모든 군중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소리치는 서민국!

“정말로 어리석어… 아니… 어리석기 보단 바보 같다!”

“이, 이 자식…!”

“아직도 자기 스스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거냐!”

“잘못? 하…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로군!”

민국은 각성한 주인공마냥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붉은 듯한 눈동자를 보이면서 말했다.

“너희들이야 말로… 진짜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거냐?”

“뭐, 뭐라고오!”

“들어봐라!”

얼굴을 가리던 손을 옆으로 펼치며 민국이 소리쳤다.

“너희들이 서라부터 강은별, 예나, 유이, 설화 등등, 나와 연이 있는 여자들을 흠모한다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내가 한 명이랑 사귀게 된다고 해서 니들이 걔네들이랑 사귀게 될 가능성도 확답할 수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요즘 한국 남자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게 여자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냐!”

“그, 그럼 뭔데!”

“맞아! 뭔데! 말해봐!”

“훗… 이걸 내 스스로 말해야 한다니… 실로 우습군! 하지만 좋아! 말해주겠어!”

희망의 카드를 꺼내듯 민국이 한 남자를 지목하며 소리쳤다.

“한국의 일부 여자 중 한 명이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처했다! 그리고 넌 그 여자를 구했지! 그 여자의 목숨은 부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다음으로 너에게 행할 행동이 뭐라 생각되지?!”

“그, 그건…!”

남자는 자신 있게 말하려다가 순간 눈을 크게 뜨면서 움찔거렸다. 민국은 노렸다는 듯 ‘훗’하고 미소 지었다.

“그 여자가 성폭행범에게 당한 죄를 너에게 뒤집어씌울 일도 생길 수 있는 법이지! 아니라고? 요즘 인터넷 기사를 봐!”

“…….”

“자 그럼 다음 타자! 거기 너!”

“히, 히익!”

“만일 너에게 한국의 여자 중 일부에 속하는 여자가 애인으로 있었는데 그 여자 친구가 100일 선물로 너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너는 그 무언가가 뭐라고 생각되지?”

“…….”

“분명 돈과 연관 된 무언가겠지! 자 그럼 그 여자는 100일 선물로 너에게 무엇을 줄까? 돈과 연관이 된 선물을 줄까! 아니, 아니지!”

민국은 굉장히 음험한 얼굴을 지으며 지목한 남자를 향해 사납게 말했다.

“너에게 주는 건 ‘정성스럽게 적힌’ 편지 한 장이다.”

“히, 히이이이익!”

“네가 알바를 해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핸드백 하나를 사주면! 너에겐 정성스럽게 적힌 편지 한 장이 돌아오는 거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겠지… ‘나만한 여자는 없지?’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패닉에 휩싸이는 무리들! 그때 남자 한 명이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지금 저 자식은 여자들 전체를 매도하고 있어!”

“훗… 너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군. 나는 분명….”

눈가 근처에 손을 갖다대고 그늘을 만들며 민국은 말했다.

“‘일부’라고 했다.‘”

“히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악!”

순식간에 무너지는 남자 그룹! 그렇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민국은 울먹이거나 무릎을 꿇고 좌절하거나, 혹은 하늘을 보며 ‘으아아아!’절규하는 남자들을 씁쓸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좋은 가정의 남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

민국은 저벅저벅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리더 역할을 하던 한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그 남자가 고개를 올려 민국을 바라보았다. 민국은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거냐? 아니, 그래선 안 돼.”

“…….”

“너희들에겐… 아직 포기 못할 씨앗이 있잖아? 이제부터 차근차근 지표를 밟고 일어날 유일한 씨앗….”

울먹이던 그 남자가 콧물을 흘리다가 물었다.

“그게… 뭐지…?”

민국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야동이다.”

“…….”

“남자는 고로 여자를 멀리하고 자위를 하며 살아야 한다, 라는 속담이 있지.”

민국은 씁쓸히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얼굴은 마치 지난 인생의 한탄을 하듯, 어둑한 표정이었다.

“고로 우리는 게이가 되어야 해….”

“…….”

“그게 이 인류의 새로운 지표이자 희망이니까….”

“아아… 아아아아아아!”

감동적인 연설에 무릎을 꿇던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면서 서럽게 울먹였다. 그러다가 민국의 품에 안긴다. 엉엉!

“서민국…! 서민구우우욱!”

“그래… 마음껏 울어… 울고 나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아!”

남자의 절규는 애처로웠다. 그를 포옹한 채로 민국은 눈을 감고 한참동안 보다듬어주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계획대로.’

하고 씨익… 은근슬쩍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멈추십시오. 서민국.”

“응?”

그때… 맞은편에서 남자가 한 명 나타났다. 그는 판사 복장을 한 남자였는데, 딱 봐도 보통 남정네가 아닌 느낌이었다.

“당신이 지금 저들에게 얼마나 쓰디쓴 절망을 안겨주고 있는지 아시는 겁니까?”

“…….”

판사 복장의 남자가 하는 말이었다. 민국은 서서히 안고 있던 남자를 풀어주고 그를 바라보았다. 민국이 물었다.

“무슨 소릴하는 거지?”

“저야말로 하고 싶은 말입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요… 서민국.”

그가 안경을 고쳐쓰더니, 곧 매서운 눈매로 말한다.

“야동은 불법입니다.”

“…….”

“우리나라에 새로 생긴 법, 야동 규제의 법이 남자들의 희망을 꺼버렸기 때문이지요.”

“…….”

그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울먹이며 절규하던 남자들이 모두 더 큰 절망을 맞본 얼굴을 지었다. 그러나 판사 복장의 남자가 하는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안경을 고쳐 쓰며.

“그리고 서민국… 설사 일부의 여자들이 그렇다고 해서….”

“…….”

“당신의 여자들까지 그러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그 말에 남자들이 모두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이 커다랗게 바뀌었다. 그리고 일제히 민국을 바라보는 남자들! 한 순간 정적으로 휩싸인 이곳에서… 민국은 한참을 침묵했다.

“…쿳.”

그러다가 서서히, 서서히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웃음은 너무나도 오싹하고 끔찍해서… 여기 있는 남자들 모두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래…!”

이내 민국이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그의 웃음은…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내가 하렘왕이다….”

“…….”

“…….”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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