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22화 (322/369)

322화

* 후기 꼭 봐주세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쭈구리였던 때가 있는데 그땐 키도 작고 몸도 외소해서 날 건드리던 놈이 있었지. 근데 그 놈이 항상 날 보면 이상한 드립으로 날 웃기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한 번은 웃어주었지. 하지만 두 차례 또 이상한 드립을 연달아 하더라고. 니들은 자장면을 하루종일 먹으면 그게 맛이 있냐? 처음에는 아무리 맛이 있어도 점점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맹맹해지고 오히려 구역질나고 토하고 싶어지지. 그게 바로 사람이란 것이고, 적응의 신비라는 거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란 아직도 과학적으로, 그리고 의학적으로 밝혀진 부분이 미미한 것이지. 어쨌든 나는 그렇게 드립을 연달아 치면서 웃길 바라는 나를 보는 놈을 보면서 이렇게 한 마디했다."

"……."

"너 같은 새끼가 꼭 노래방에서 마이크 혼자 독차지하고 계속 부르는 새끼라고 말이다. 물론 난 그리 말하고 주구장창 맞았지. 하지만 맞았다고 해서 이 세계왕이 굴복할 소냐? 나는 그 날부터 녀석을 적으로 선고하였고,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굴욕을 안겨주었다."

"……."

"엎드려 자고 있을 때 바리깡으로 삭발을 해버리던가, 치약 듬뿍 담은 물을 얼굴에다가 뿌려버린다던가, 굵고 기다란 나의 성스러운 고추로 엉덩이를 한 번씩 똥침해준다던가."

"……."

"훗, 하지만 돌이켜보니 다 아름다운 기억들이군."

어쩐지 피해자는 자신이라고 설명하는 서민국이었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이상하게도 가해자에게 동정이 가는 이야기였다. 한동안 빌딩 꼭대기에 다리를 꼬고 앉아 설교를 늘어놓던 서민국이 주변을 둘러본다.

"어쨌든."

"……."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냐 이 똥침만도 못한 것들아!"

"네, 네넷!"

- 네네넷!

"훗. 다시는 이따위 천박한 전쟁으로 이 세상을 어지럽힐 생각을 하지 마라! 미쿠미쿠하게 만들어버리기 전에!"

현재 민국의 설교를 듣고 있는 몬스터와 능력자들 모두, 대가리를 땅바닥에 박고 엎드린 상태였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만큼은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민국의 패기에 옆에서 날고 있는 드래곤도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 댈 따름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드래곤을 쳐다보며 말한다.

"너는 그럼 쟤네들 데리고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라. 다시는 말썽 부릴 생각하지 말고."

- 넵….

"아, 그리고 커피는 고마웠다. 다음에 혹시나 재회하는 일이 생기면 그땐 내가 사주지."

커피를 슬쩍 들어 보이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드래곤은 어설프게 웃음을 보이면서 물러가기 시작했다. 초반에 민국에게 맞설 때 강인하게 펄럭이던 녀석의 날개는 어느 순간 기죽은 모습 가득이었다.

민국은 뜨뜻한 커피를 다시금 한 모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벌컥, 하고 빌딩 꼭대기의 문이 열렸다.

민국은 몸을 홱 돌려 기다리고 있던 상대와 조우했다.

"드디어 만났군. 가짜 나."

"……."

조우한 상대는 다름 아닌 두 사람. 가상 세계의 서민국과 열흘 동안 추억을 새겼던 여인, 최설화였다. 민국은 설화에게 인사를 하기 전, 가상 세계의 민국을 눈앞에 두고 키를 재는가 싶더니 소리쳤다.

"이럴 수가! 가상 세계의 서민국이 나보다 키가 더 크다니!"

"……."

"쓔발, 그래도 고추는 내가 더 클 거다."

그리고 보란 듯이 바지를 앞으로 들이미는 민국이었다. 이를 본 설화가 손을 입가에 갖다대며 웃음 짓는다.

"민국 님~ 소녀 부끄럽사와요~."

"크흠, 설화야. 어떠냐. 이 운명을 바꾸는 게이 플레이머의 솜씨."

당당하게 자신감을 표출하는 민국. 확실히, 조금 어이없긴 하지만 설화의 운명은 바뀐 셈이었다. 애초에 가담한 역할이 적다 한들 게임 제작자에 속한 민국이었기 때문에, 설화가 아무리 죽도록 발버둥쳐도 바꾸지 못할 운명을 그는 고작 펜 몇 번 끄적이는 것으로 바꿔낸 것이다.

이윽고 설화가 손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멋지세요 민국 님~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 훗, 하기야 나는 언제나 멋지지."

폼나게 말을 하던 민국이 다시금 가상 세계의 자신을 돌아본다. 가상 세계의 민국은 본래 민국보다는 조금 말이 없고, 약간 고자 성향이 짙은 타입 같았다. 하지만 눈빛의 당당함은 어쩌면 현실 세계의 민국보다 당당할 수도 있었다. 현실의 민국은 녀석을 한참동안 마주하다가 설화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설화야."

"네 민국 님~."

"어떡할래?"

민국의 물음이었다. 설화는 뜻을 몰라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가 원하면, 진짜 세계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어."

"네에?"

설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이해를 못한 모양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열흘 동안 있던 그 세계에서 평생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어. 흑설 인간에게 좀 더 부려먹어지긴 하겠지만."

"……."

"결정하는 건 네 몫이야 설화야."

이 세계는 게임 세계. 하지만 설화의 고향이다. 비록 모든 것이 설정집에서 이룩된 기억들이라 한들, 결론적으로는 설화의 모든 추억들이 있는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게임 세계. 모든 것들이 실은 조작된 것이며, 이 게임의 스토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겠지만 사실상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죽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이 현실적으론 무생물인 존재들. 그러나 민국은 말하고 있었다.

널 살려줄 수 있다고, 널 진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흑설 양반에게 부탁하면 불가능한 것 자체가 없으니까.'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설화의 의견이다. 그녀는 행동은 순수한 아이 같아 보여도,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여자임은 자명했다. 그래서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민국 님~."

마침 설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의 팔에 팔짱을 끼고,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며.

"저는 괜찮아요~ 민국 님이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래?"

"네에~ 그리고 이 세계가 결국엔 제 세계잖아요?"

설화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자신의 고향에 머무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깨를 기댄 민국은 현실의 민국의 어깨가 아니었다. 가상 세계의 어깨, 자신보다 좀 더 키가 큰 민국의 어깨였다.

"크흠, 그렇군."

"네에~."

"큭. 그럼 결국 나는 나에게 NTR을 당한 셈인가!"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완벽한 거절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옳은 선택이다. 오랜 추억을 안고 있는 세계와, 열흘의 추억을 갖고 있는 세계. 어느 곳을 선택할 지는 뻔할 뻔자인 것이다.

이윽고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떠는 척 연기를 하던 민국이 '좋아.'하고 몸을 홱 돌려 다시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능력자와 몬스터를 바라본다.

"엎드려 뻗쳐 그만하고 다들 일어나."

"으으으으…."

- 끄에에에에…

"자슥들이? 군대도 안 갔다 온 놈들이 어디서 아픈 척을."

생각해보니 자신도 안 갔다 왔다.

"아무튼, 더 이상 싸우는 일 없이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만약 이 시간부터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거나 싸우는 놈들 있으면 확 마 항문에다가 당근 쑤셔넣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어쩐지 항문을 만든 피조물이 원망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럼 각자 집으로 돌아가!"

민국의 명령이었다. 그 명령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모두들 등을 돌리면서 천천히 갈 길을 향하기 시작했다. 능력자들이나 몬스터들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분이 풀리지 않는 감정을 맘속에 담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별 수 있겠는가. 꼼짝도 못할 만큼 어마무지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라는대로 해야지.

"자, 그럼. 이제 전쟁으로 다친 놈들이나 복구해볼까?"

그리고 현실 민국은 빌딩을 도약하여 내려갔다. 현실 세계라면 엄두도 못 낼 행위였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명령 노트가 있는 이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이윽고 빌딩에서 단숨에 뛰어내려온 민국이 뚜벅뚜벅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쓰러진 시신들이나 몬스터들의 시신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고작 손으로 시신들을 지목하는 것이었지만, 마치 데이터가 복구되듯 살아나는 모습들이었다.

그 진귀한 장면에 가상 세계의 민국은 빌딩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다행이에요 민국 님~."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등을 돌아보이는 가상 민국이었다. 그러자 설화가 두 손바닥을 모으고 진심으로 다행이란 듯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덕분에 민국 님이 죽지 않게 되었어요. 무사히 끝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설화야… 너…."

"실은 제가 죽지 않으면, 민국 님이 살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요~."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설화는 가상 세계의 민국을 살리기 위해 몇 개월간 고군분투를 한 셈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세계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려고 했었다.

"……."

가상 민국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그저 이 세계가 진짜 세계라고 알고 있었고, 이곳에 현존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환상이 우수수수 깨지자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컸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설화가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화 너는…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날 살리려고 했던 거야?"

"……."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한 거냐고."

가상 세계의 민국이 이렇게 따지는 것도 납득이 된다. 용납할 수 있는 행위다. 하지만 설화는 그에 맞서기 보단, 부드러운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죠~ 민국님인 걸요~."

"……."

"가족도, 친구도 없는 제게, 유일한 안식처인 걸요."

말하는 그 눈빛이 씁쓸해 보인 건 가상 세계의 민국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가상 세계라느니 또 다른 나라느니 그런 건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그렇다. 자신보다 키는 좀 작지만, 얼굴이 똑 닮았고 심지어 목소리도 일치했다. 그건 도무지 지구상의 나와 닮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도플갱어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상자들을 저렇게 살린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납득을 했어."

가상 민국이 땅바닥의 시체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본래 세계의 민국은 사상자들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는 것만으로도, 되살리고 있었다. 허공에 일정한 크기의 데이터 베이스 같은 것이 일순간 생겼다 사라지면서 말이었다.

"이 세계는 저 사람 말대로라면 가짜 세계겠지?"

"……."

"그리고 우리들은 실제 생물이 아니란 것일 테고."

이해가 빠르다. 확실히 이런 부분은 실제 서민국을 닮았다. 하지만 머리론 이해하되 마음으론 이해가 될 리 없었다. 아무 말 없는 설화는 곧 긍정을 표명한단 뜻이었다. 이윽고 '하….'하면서 해매이는 얼굴로 비틀거리던 민국이었다. 얼굴을 가리고는 잠시 생각을 바로잡던 민국이, 곧 냉정해진 음성으로 말한다.

"설화야."

"……."

"저 남자가 있는 세계로 가."

가상 민국이 말했다.

"솔직히 정돈도 안 되고… 제대로 정리도 안 되지만, 그래도 저 남자 말이 맞다면 이 세계는 더 이상 나아갈 게 없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그건 살아도 곧 산 게 아니란 뜻이겠지. 설화 네가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는 없어."

가족도, 친구도, 없다. 세계 또한 가짜다. 그리고 설화는 이곳에서 늘 괴로운 일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저 남자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곧 설화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다.

"안 되요 민국 님."

그러나 설화는 망설임도 없이 곧잘 받아쳤다. 가상 민국은 맞은편에서 웃고 있는 설화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씁쓸한 바람이 설화의 근처를 맴돌았고, 그녀의 곱게 땋은 머리가 흩날리고 있었다. 설화는 웃어 보였다.

"여기에 민국 님이 있잖아요~."

"……."

가상 민국은 그 말에 '큿'하고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가상 민국의 눈앞에 두 가지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오로지 그에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1. 설화를 이곳에 둘 것인가.

2. 설화를 보낼 것인가.

============================ 작품 후기 ============================

자, 여러분이 고르시면 됩니다.

댓글로 골라주시면 되고, 1,2루트 중에 다수결인 쪽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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