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21화 (321/369)

321화

위잉 위잉! 여기는 지하에 설치된 주요 능력자들을 확인하기 위한 감시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경보음이 심각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서둘러 경보음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는 요원들. 그 요원들의 리더격인 총 책임자가 소리친다.

"서둘러! 뭐가 원인인지 확인해!"

"대장님! 원인에 대해 찾아냈습니다!"

"뭔가!"

"이 스크린을 보십시오!"

이윽고 원인을 찾아냈다는 직원이 스크린을 한 가지 감시실의 메인 화면에 띄었다. 요원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빌딩 꼭대기에서 찬 바람을 휑휑 맞으며 팔짱을 끼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꽤나 잘 생긴 얼굴에 썩소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키가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입고 있는 검은 코트도 멋져 보이는 모습이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총 책임자는 스크린을 보면서 요원에게 물었다.

"저 남자가 이 몬스터 붐을 일시적으로 멈췄다는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

현실의 서민국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무수한 존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몬스터들부터 능력자들, 그리고 군인들까지 모조리 민국에게로 고개를 돌린 채 멈추어 있었다. 마치 시공간이 정지된 것처럼 정적으로 휩싸인 이곳에서, 민국은 자신이 한 손에 들고 있는 노트를 접은 다음에 말했다.

"훗."

아니 그건 말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이윽고 빌딩 꼭대기에서 옆으로 몸을 돌린 민국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면서 폼나게 손을 눈 가까이에 가져간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

"어찌해서 이런 해괴망칙한 짓으로 세상을 괴롭힌단 말인가! 참으로 지독하고 한탄스럽도다!"

코트를 펄럭이면서 다시 정면을 보고 그리 소리치는 민국. 하지만 딱히 뜻을 가지고 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어느 영화나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폼나게 얘기하길래 따라해본 것이었다. 근데 의외로 간지나지는 않고 뭔가 중2병의 향연 같았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끝은 확실히 맺는 게 올바른 법.

"나는 슬프다… 나는 슬프도다! 너희들의 비탄한 싸움 속에서 절규의 울음 소리가! 구해달라는, 구원을 요청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나는 슬프도다!"

노트를 잡고 있는 손은 제외하고, 나머지 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불끈 쥐면서 강인하게 소리치는 민국이었다.

"진정한 인생이란… 진정한 행복이란 전쟁에서 나오는 법이 아닌데…! 싸움에서 비롯되는 법이 아닌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강압하고 강박하여 모든 것을 억압하려고 하느냐! 설득을 하지는 못할 망정!"

참다 참다 못한 군인 한 놈이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저 새끼?"

"너 10분 동안 고추 없다. 확인해라."

그리 단언하고는 슥슥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민국이었다. 그러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든, 민국을 모욕했던 군인이 자기 바지 속을 확인하고 거품을 물었다. 급작스레 쓰러지는 군인의 모습에 동료가 다가와서 그의 바지 속을 확인하다가 경악한다.

"저, 정말로 없어졌어!"

"훗."

군인의 외침에 민국은 또다시 폼나게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이곳에서 민국은 제작자이자 모든 것을 자기 꼴리는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흑설 공주를 통해서 얻은 비기의 힘으로서, 그 대가로 흑설 공주의 직원으로 더 일할 시간이 많아진 민국이었지만….

"보았냐. 이것이 바로 일하던 네 시간에서 플러스 한 시간을 더 늘림으로서 생겨난 초강력 필살기다."

"……."

민국이 수중에 거머쥐고 있는 노트는 그야말로 이 세계에서만큼은 지상 최고의 무기! 맘만 먹으면 그 무엇이든 다 자기 의도대로 만들 수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도 그 무엇이든 다 자기 뜻대로 들을 수 있었고, 모든 생물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되게끔 만들 수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민국이 손에 쥐고 있는 노트의 위력! 그리고 그 노트의 이름은 다름 아닌…!

"데스노트는 아니고 명령노트!"

민국은 노트를 들고 있는 손을 하늘 위로 올리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그 타이밍에 맞게 '쿠웅!'하고 그의 등뒤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이것도 민국이 의도한 쇼맨쉽이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멋지게 서 있는 민국이 이윽고 소리쳤다.

"어쨌든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이 시덥잖은 전쟁은 멈춰라!"

이미 고추를 십분 동안 없앰으로서 본보기를 확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 민국이었다. 그래서 그리 명령했으나, 그래도 민국의 의도대로 행해질 리 없었다. 설사 이 세계가 게임 속이라 한들, 게임 속의 존재들도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감정과 행동, 사고회로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로….

"뭐라는 거야 미친 놈."

"저리 꺼져! 죽기 싫으면!"

- 크오오오오오!

- 크아아아아아아!

부들부들.

"이것들이, 후후후후! 나를 화나게 하는구나! 세계왕을 몹시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민국에겐 깽판이라는 패시브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패시브 능력은, 강은별처럼 패시브 무효화 능력을 소유한 인영이 아닌 이상 결코… 민국의 깽판을 자제할 수 없다. 심지어 그에게 이 세계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감당 못할 어마무지한 힘과 능력이 있다! 민국은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과 몬스터들의 포효에 소리쳤다.

"니들 모조리 고추 때 새끼들아!"

그리고 그 내용을 노트에 적는 순간이었다. 민국에게 야유를 보내던 대다수의 군인들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자신의 바지 속을 확인한다.

"헉!"

"으아아아악!"

그리고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바뀌어버리는 이곳! 자고로 남자란 자신의 생명의 가치만큼 자신의 중요 부위를 귀하게 사랑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부위가 불과 10초 남짓도 안 되는 사이에……!!!

"고, 고추가… 내 고추가!!!!"

"안 돼…… 아노돼애!!!!"

"자… 이제 몬스터들 니 새끼들에게도 본보기를 보여줘야겠구나."

- 크오오오오오

"거기 하늘 날고 있는 붉은 비늘의 드래곤 시끼!"

이윽고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붉은 비늘의 드래곤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민국이었다. 붉은 드래곤은 불과 방금 전까지의 전쟁에서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을 드러내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향해 대놓고 삿대질을 하는 민국의 패기에… 하나같이 모두의 시선이 붉은 드래곤에게로 돌아갔다.

"……."

가상 세계의 민국도 이 상황을 막연히 지켜보면서 차마 믿지 못할 얼굴을 짓고 있었다. 옆에 있는 설화는… 다른 마음으로 현실 세계의 민국을 보고 있었고 말이다.

"너 이 새끼, 입에서 뜨거운 불 제대로 뿜더라. 고기 같은 거 잘 굽겠던데 어디 한 번 돼지고기 하나 구워서 나 먹여줄 생각 없냐?"

그것은 일종의 도발이자 명령이었다. 자신감에 가득찬 민국과는 달리,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사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그라고 해도… 드래곤 같은 경우는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결과였다. 붉은 비늘의 드래곤은 민국의 도발에 굉장히 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불을 내뿜을 듯이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드래곤의 무시무시한 치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군인들이나 능력자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민국은 '훗'하고 폼나게 한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건들건들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 감히 인간 따위가 이 몸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슈벌, 드래곤이 말도 할 수 있었냐? 아, 그러고 보니 이 게임 설정이 그랬었지."

제작을 할 때 유이에게 얼핏 들었던 드래곤의 설정을 돌이켜보는 민국이었다. 확실히 이 세계에서 드래곤은 제일 강한 몬스터였고 지능도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편이었다. 이윽고 '크르르'하고 무섭게 숨을 내뱉던 드래곤이 민국을 노려보며 말했다.

- 인간, 죽기 전에 남길 유언은 없나?

"흠, 돼지 고기 먹고 싶다. 가져와라."

- 크르르르르르르! 죽여버리겠다!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렸구만."

- 크르르르르르르!

이윽고 드래곤이 포효를 내지르면서 민국에게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바람을 꿰뚫고 달려드는 드래곤은 그야말로 폭풍을 일으키는 존재와도 같았다.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그 드래곤의 모습에 민국은 한 번도 눈을 깜빡하지 않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초고속으로 자기 앞까지 다가오는 드래곤을 미지근한 눈길로 보더니.

"차렷."

뚜욱! 막 민국의 앞까지 다가와 입을 벌려 집어삼키려던 드래곤이었다. 본래 의도한 건 이게 아니었을 텐데, 드래곤은 어느 틈엔가 차렷 자세로 날개를 접은 채 민국을 예의 바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민국은 마주한 드래곤을 향해 또 한 번 말했다.

"경례."

- …….

그러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꾸벅하고 허리를 숙여서 민국에게 인사하는 드래곤이었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이 돌연 그런 행위를 보이자 지켜보는 몬스터들부터 사람들까지 모조리 할 말을 잃었다. 민국이 노트에 적은 것은 앞으로 드래곤들은 자기가 말하는대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주문이었다.

"돼지 고기는 됐고, 근처 커피숍가서 커피나 한 잔 사와라."

- ……

"물론 돈은 네가 내고, 에스프레소로 하나 사오면 된다."

- ……

"빨리 사와 임마!"

- 네, 넷!

그리고 휘잉! 바람처럼 날아가서는 60초도 되지 않아 에스프레소 커피 하나를 대령한 드래곤이었다. 커피를 손에 쥐고 홀짝 마셔보는 민국이었다.

"흐음~ 향기롭고 기품이 나는 에스프레소, 역시 좋은 맛이야."

- …….

"나머지는 너 먹어라."

- 고, 고맙습니다.

양손으로 공손히 민국의 커피를 받아드는 드래곤. 그리고는 그에게는 굉장히도 작은 사이즈의 커피를… 어떻게든 빨대에 입을 대고 쪼르륵 빨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흠흠'하고 주변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전체를 확인하기 시작한다.

민국을 올려다보는 무수한 사람들부터 몬스터들까지… 모조리 할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모두가 납득했단 사실이 느껴지자 민국이 피식 웃음을 머금고는 중얼거렸다.

"뭐해 이것들아?"

"……."

- ……

"진짜인 거 알았으면 빨리 엎드려뻐쳐!!!!"

일제히 엎드려 뻗치는 사람들과 몬스터들이었다. 사람들 같은 경우는 군인부터 능력자들까지였고,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트롤부터 가고일 등등…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었다. 오로지 붉은 드래곤만이 민국의 옆에서 하늘을 날며 쪼르륵 커피를 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민국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실망했습니다."

"……."

- ……

"사람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을 일단 믿을 것부터 생각해야지, 어떻게 의심부터 하고 구박부터 할 생각을 합니까! 그게 과연 사람과 사람 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까!"

"……."

- ……

"그리고! 몬스터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일단 들을 생각을 해야지! 느닷없이 포효 소리부터 내질러서 귀청 떨어지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 …….

"됩니까 안 됩니까!"

노트에 몬스터들도 말할 수 있게끔 바꾼 민국이었다. 그러자 일제히 중얼거리는 몬스터들이었다.

- 안 돼요오…

- 안 됩니다…

"그렇죠? 에휴, 이 어리석은 것들. 꼭 매를 벌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요! 이러니까 대한민국 학교 교육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요즘 교사들도 학생들 생각 안 하고 지들 꼴리는대로만 하는지라 문제가 되고 있고, 학생들도 교사 우습게 알고 함부로 행동하니까 세상이 이렇게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곳으로 바뀌는 겁니다!"

"……."

- ……

"심지어 판매되는 과자들, 요즘 봉투나 박스만 엄청 크지 속안에 있는 과자들은 항상 적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입니다! 존나! 손님 속이는 것도 정도를 지켜야지 이 우스운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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