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17화 (317/369)

317화

<둘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꼭 그렇게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들이 여자는 많이도 데리고 다녀요.”

“그러게 킥킥. 재수 없어.”

사내 두 놈의 말이었다. 여자도 질투가 심하다고 하지만 남자도 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불만이 어린 행동 역시 없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여자에 비해 그 수가 적을 뿐. 방금 전 민국의 발등을 세게 밟았던 사내 둘은 백화점 화장실 쪽으로 향하면서 아까 전의 일을 거듭 중얼거렸다.

“분명 발등에 상처 났을 걸? 진짜 세게 밟았는데.”

“그러게 너 혼신을 다해서 밟더라. 나 하마터면 들키는 줄 알았다.”

“뭐 들키면 어쩌게. 그래봤자 여자 세 명에 남자 혼자인데. 우리가 이기지.”

어차피 여자가 아무리 세도 남자 둘은 못 이긴다, 거기에다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민국이 나대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렇게 비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던 둘이었다.

“흐으응~.”

막 두 사람의 뒤를 밟던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비하게 쳐다볼 정도로 콧대가 높고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최설화. 남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사내 둘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킥킥.”

아직도 그 일 가지고 계속해서 비웃고 있는지, 화장실을 나오는 와중에도 두 사내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득 화장실을 나왔을 때 서 있는 한 여자를 보고는 순간 깜짝 놀란다. 아무리 스쳐 지나가듯 봤다고 해도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예쁘장한 인상과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안녕하세요~ 아까 뵀던 분들이죠?”

“아, 안녕….”

두 남자가 순간 서로의 눈을 마주치면서 옥신각신한다. 그러게 좀 조심해서 밟지 않았냐, 하면서 네 탓 내 탓 서로 주고받는다. 그때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설화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시간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어?”

“엉…?”

두 남자도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설화는 기다렸다는 듯 눈망울을 글썽이면서 ‘흑….’하고 입가에 손을 갖다댔다. 금방 시련을 당한 여인처럼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까 저랑 같이 다니던 남자 분… 바람둥이에 저의 몸만 탐하는 못된 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이 도와주어서 그 남자 분이 한 눈을 팔았고 저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어요….”

“…….”

“그래서 그 고마움을 답례로 뭔가 사례를 해드리고 싶은데 시간 없으세요~?”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것처럼 급격히 웃는 얼굴을 짓는 그녀.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얼떨떨하던 것도 잠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거 기회 아니야?’

‘기회지. 시발, 저런 여자 보기가 얼마나 드문데.’

몸매는 잘 빠졌지, 얼굴은 예쁘지, 분위기도 뭔가 청초한 느낌이 나는 게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럭주물럭거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세계일 것이다. 그런 음탕한 생각에 두 남자가 급격히 허세를 부리면서 다가왔다.

“아, 뭐 그렇죠. 그나저나 그거 정말 나쁜 새끼네요.”

“흑… 네…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뭘 그거 가지고. 어떤 놈이든 말씀만 해주십쇼. 확! 혼쭐을 내드리죠!”

그 말에 은밀하게 눈을 가늘게 뜨던 그녀였다.

“좋은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추천하는 술집이 있는데 가주실 수 있을까요?”

“네네~ 술집이라~.”

“허허, 적극적인 여자시네.”

그렇게 가슴을 당당히 피고, 은근슬쩍 설화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얹는 두 남자. 설화는 그 두 손에 ‘어머….’하면서 난처한 듯한 얼굴을 지었으나, 곧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입가 근처를 소매로 가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 붉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지켜보던 두 남자가 ‘으헤헤헤’하고 졸지에 침을 흘릴 뻔했다.

“자, 안내해주세요 그 술집.”

“네~.”

이윽고 설화를 따라서 길을 옮기는 두 남자였다. 두 남자는 이게 왠 횡재냐는 듯 정말이지 좋아 죽는단 얼굴을 지었다. 끝끝내 자신들에게 생길 위기 같은 건 조금도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벅 저벅.

이윽고 목적지에 당도한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설화가 추천하여 찾아온 술집은 사실상 술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으스스하고 아무도 없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뭐야? 여긴 주차장이잖아?”

“차라도 끌고 왔나?”

두 남자가 이상하단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렇게 추측한다. 하지만 설화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두 손을 뒤에 얹고는 웃는다. 그런 그녀의 모 습에 두 남자가 더 이상함을 느끼다가 곧 씨익 미소 짓는다.

“그래, 너도 사실 즐기고 싶었던 거지?”

“이런 변녀….”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변녀라니요~.”

마치 앞으로 행할 행동에 비하면 당치도 않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입가에 또다시 손을 갖다댄다. 그러다 곧 손을 때고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이쪽 부근은 CCTV가 없어요~.”

“그래 그래. 사람도 없지.”

지하 B5 주차장이다. 주차된 차도 얼마 없고,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구석진 곳으로 이동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윽고 두 남자가 잔뜩 흥분해서 침을 질질 흘리는데 설화가 볼에다가 손을 갖다대면서 눈을 글썽였다.

“정말이지~ 소녀 적극적인 남자들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사옵니다~.”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빙그레 허공에서 원형으로 돌리는 설화였다. 그저 검지손가락을 한 번 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우와아악!”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두 남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갑작스레 엎어지자 지켜보던 동료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너 갑자기 왜 그러냐?”

“아, 아니야! 갑자기 뭔가가 날 붙잡았어!”

그리고는 발목 쪽을 양발로 붙잡고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 모습에 남자는 넘어진 동료의 발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붙잡긴 뭘 붙잡아?”

“이, 이상하네! 뭐지!”

“후훗~.”

여전히 어여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여인, 최설화였다. 마치 그녀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이유를 전부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넘어져서 발버둥치는 동료의 생쇼에 남자는 좀 이상함을 느꼈으나, 곧 자신에겐 아무런 일이 없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두 손을 뻗고 설화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뭐 저 새끼는 저러고 놀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까 놔두고, 넌 나랑 헤헤….”

“손대면 무서와요~.”

“…어어억!”

설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는 찰나였다. 이번에도 설화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오른쪽으로 선을 긋듯 움직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설화에게 다가오던 남자가 미끄러지듯 넘어지면서 어디론가 끌려갔다. 쿵!

“크악!”

한참을 끌려가던 그 남자는 결국 지하주차장의 기둥 벽면에 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설화는 슬쩍 뒤를 돌아 CCTV를 확인했다. 다행히 남자가 끌려간 기둥 쪽엔 CCTV가 없었다.

“히, 히익… 히이익!”

그제야 이것이 단순히 이상한 현상이 아님을 직감한 남자들이었다. 먼저 쓰러졌던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는 설화. 공포에 잔뜩 질린 그 남자를 내려다보던 설화가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며 ‘쿡쿡’하고 입가에 손을 갖다대고 웃었다.

“여러분, 민국 님의 발등은 소중한 것이에요.”

“…….”

“여러분의 하찮은 발등 따위보다 훨씬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런 민국 님의 발등을 실수도 아니고 의도해서 밟다니,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나서 용서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어린애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듯 ‘답니다~’라는 말투로 말하는 설화였다. 하지만 그게 더 두 남자 입장에선 공포였다. 전혀 이유도 모르는 현상에 갑작스레 몸이 움직이지 않는 두 남자였고, 그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 갑자기 싹 달라진 기색을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이윽고 설화가 ‘흑’하고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제스쳐를 취하더니 말했다.

“하늘도 너무하시죠~ 어떻게 이런 이상한 남자들에게 민국 님의 발등이 밟힐 수 있을까요~?”

“으읍… 읍!”

이젠 말도 안 나온다. 살려 달라고 외치려 했으나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설화에게는 보인다. 그들의 몸을 붙잡고 있는 투명한 손들이, 그들을 넘어뜨렸던 투명한 손들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투명한 손들이.

…그것은 설화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민국님이든 가상 세계의 민국님이든 저에게는 귀중한 존재랍니다~. 고로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제가 민국 님을 도울 거랍니다~.”

“…….”

“흑,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불쌍하게 느껴지잖아요~.”

두 남자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여자, 초면에는 굉장히 아리땁고 청순해 보였지만 실은 달랐다. 서민국을 제외한 모든 남자에게는 다 가식일 뿐이며… 진심은 일 할도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현재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남자가 그녀를 표현하기에 훌륭한 단어는 단 한 가지.

‘싸이코.’

“발등이 아파 찢어지겠네~ 찢어졌을 때는 뭐로 상처를 낫게 하나~ 상처를 낫게 하려면 상처를 낫게 하여 덧씌우는 법~ 아~~.”

발버둥치는 두 남자에게 즉흥적인 노랫소리를 내던 그녀가 딱하고 손뼉을 쳤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말이다.

“발등을 백번 정도 밟아드릴게요~. 투명한 손으로요~. 아마 당분간은 걷기가 힘드실 거예요~.”

“…….”

“후훗, 빠방~!”

웃음과 함께 검지손가락을 정면으로 치켜들며 총처럼 빵하고 터트린 설화였다. 그러자 옴짝달싹 못하던 두 남자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면서 ‘읍읍!’거리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투명한 손들이 주먹을 쥐어 일제히 두 남자의 발등을 때리고 있는 것을. 이윽고 한참을 괴로워하면서 떨던 두 남자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거품을 물었을 때였다. 그들의 고통을 눈앞에서 내려다보던 설화가 ‘후훗~’하고 다시 미소 짓는다.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셔와요~.”

“…….”

“어머나, 저기 신발이 떨어졌네.”

투명한 손들이 한참을 발등을 가격해서 떨어진 신발. 그 신발을 주워다 남자 옆에다가 두고는 홀짝 뛰어넘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설화였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에 한 차례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돌아보던 설화가 곧 미소 짓고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민국 님을 건드리는 사람은 혼나는 거예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흑설 공주가 건네준 액체는 단순히 2D 캐릭터를 실존화 시키는 능력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2D 캐릭터가 본래 세계에서 사용했던 그 능력이나 기술도 모조리 실존화 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지구를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사람도 언제든지 실존화가 가능한 셈이었다. 흑설 공주에겐 다 대책이 있으니 그런 아이템을 손쉽게 준 것이었겠으나… 어쨌든 이 사실을 모르는 민국은 1층 화장품 가게에서 두 여인, 은별과 예나의 쇼핑을 지켜보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민국 니이임~.”

그리고 그때 먼 발치에서 달려오는 설화의 모습이 보였다. 납자답게 백화점에서 벌써 기력이 빠지기 시작한 민국은 달려오는 그녀를 발견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민국의 품에 와락 안기는 설화였다.

“기다리셨나요 민국 님~ 죄송해요오~.”

“크흠, 벌칙으로 뽀뽀라도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지만 참을게.”

“아응… 뽀뽀라니요~ 민국 님의 육식계 같은 모습은 참~.”

조크에 조크로 맞서며… 설화는 미소 짓는다. 오로지 민국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예쁘고 상냥한 모습이다. 그 뒤의 흑백은 모른 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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