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타입! 심지어 좋아하게 된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보여줄 수 있는 타입이었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데 요구하는 것을 못 들어줄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본래 여자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자연스레 내숭을 떨게 되는 법이다.
가령 ‘야, 저거 봐봐. 야동이야.’하면서 컴퓨터 화면의 야동을 가리키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럼 자연스레 여자는 남자 친구에게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해 ‘어머~ 몰라~’하면서 남자 친구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부끄러운 듯 볼에 손을 갖다대면서 난감한 미소까지 뿌리면서 말이다.
실상은 ‘야, 저거 봐봐. 야동이야.’하면서 컴퓨터 화면의 야동을 가리키는 동성 친구가 있으면, ‘뭐? 어디 있는데? 어디 있는데 씨발!’하며 발정난 동물처럼 찾을 여자조차도 남자 친구 앞에선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민국이 현재 상대하고 있는 2D 캐릭터, 최설화는 투박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뭔가 요염한 꿀 냄새로 벌들을 유혹하는 말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침대에 중요 부위를 묻히고 있다고 하지만 가슴살의 일부분이 드러나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모습! 평소 들이대던 건 항상 민국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녀의 타입은 정말이지 상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보통 내가 들이대고 상대가 튕겨야 하는데, 어찌해서 이런 입장 변화가 일어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강은별과 예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둘을 사귀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민국은 ‘이야호 요염의 바다다’하고 곧장 덮쳤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지켜야 할 여자들이 생긴 만큼 민국도 함부로 몸을 굴리는 것엔 조심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신이시여. 부디 저를 이런 요염한 자태에 넘어가지 않도록 페시브 스킬을 걸어주소서.’
그 페시브 스킬의 이름은 고자 스킬로, 민국은 좀 고자가 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아응♥”
“크흠.”
“아앙♥”
“크흠흠.”
“아앗 아아아앗♥ 가버려요 민국 니임 아아아아앗♥”
열심히 안마를 하고 있자니 설화가 붉어진 얼굴로 신음을 하면서 두 다리를 침대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리기 시작했다. 민국은 불교의 경전인 바하심경을 속내로 읊조리면서 인간의 참된 지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간만에 고뇌하기 시작했다. 그리 열심히 안마를 하고 있자니….
“아아앙♥”
“…저기.”
이윽고 안방 문이 열렸다. 민국이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우왓 예나야!’하고 재빨리 안마를 하던 손을 회수했다. 그것을 본 예나가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곧 말없이 민국을 쳐다보다가 설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화는 마치 중요한 행위를 한 사람처럼 거칠게 숨결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 하아….”
“…….”
“기분 좋았어요오♥”
자꾸 음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설화의 행위에 예나는 돌연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가까스로 야한 감정을 통제한 예나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미, 민국아… 은별 씨는 어떻게든… 진정시켰어.”
“아. 그, 그, 그래? 다행이네. 고마워 예나야.”
“으응….”
대화는 끝난 듯싶은데 예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설화는 여전히 기분 좋은 듯 현재의 고통(?)을 음미하다가 예나를 보았다. 그 눈빛에 은근한 느낌이 풍기는 걸 감지한 예나가 이윽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안방 문을 서서히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말의 틈을 남겨두고, 다시 문을 열어젖힌 예나가 민국을 불렀다.
“미, 민국아…!”
“어, 응?”
“자 잠깐… 이번 학기 준비하는데 모르는 시험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예나가 민국에게 그런 도움을 받을 리 전무했던 것이다. 거의 공부를 가르쳐줘도 예나가 가르쳐주는 쪽이었지, 가르침을 받은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고로 이 제안은 어디까지나.
“민국 니임~.”
“아, 잠깐만 설화야. 일단 예나도 급해 보이니까 예나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주고 오면 안 될까?”
평소답지 않게 동의를 구하는 민국이었다. 설화는 안마를 받다가 도중에 끊기자 약간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곧 동의했다.
“민국 님의 의견이니까요~ 하지만 오시면 저랑 뜨.거.운 안마 해주셔야 되요?”
“그래. 그럴게.”
참으로 음란한 느낌이 드는 말은 둘째치고, 예나의 도움을 받아 안방에서 빠져 나오게 된 민국이었다. 집 바깥으로 예나와 함께 나온 민국이 ‘우와 슈벌’하면서 기가 막히다는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마워 예나야.”
“…….”
“이성 날아갈 뻔했네 으허헉.”
“으응… 아니야.”
어디까지나 자신의 질투로 인해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으나, 민국에게도 득이었나 보다. 그래도 요즘 들어 자신을 절제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민국의 행동에 예나는 뭔가 믿음이 생기는 걸 느꼈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과 체온을 느끼면서 예나는 한동안 눈을 감고 시간을 보냈다.
* *
“온니찡. 뭐하심요?”
“뭐하긴. 손가락 운동 중이다.”
“아앗! 설마 온니찡 나님의 전화 음성으로 가버리려고 하는 건가염? 정말 너무너무 하시다가 모자르게 빵하시네여!”
“이 알량하게 모자른 놈이 무슨 소리라냐. 어쨌든 지금 나 바쁘다 임마. 한가롭게 놀아줄 만큼 여유 있는 남자가 아니야 엇흠.”
“읭… 뭐하시는데염?”
“안마 중.”
“아앙♥ 민국 니임♥”
“히익?”
갑자기 휴대폰 너머를 타고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서라가 반응했다.
“온니찡 어떻게 나의 음성으로 만족을 못해서 야동을 보면서 하실 수가 있지여?! 지의 음성은 야동만도 못한 존재였나여!”
“사스가 강서라. 보통은 거기서 태클을 걸지 않는데 역시 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비제이 기질이 있는가 보다.”
“헤헤, 칭찬 감사 감사.”
“아앙♥ 민국 님 좀 더 쎄게요~.”
“읭… 어디선가 환청 소리가.”
“아니, 아마 환청이 아닐 거다.”
“아앙♥ 그래요 그렇게에♥”
확실히 환청 같지는 않았다. 민국을 부르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렸고 말이었다.
“아읏 민국 님 거긴… 거긴 아응♥”
“온니짱 역시 노답이네여.”
“노답이라니 이놈아. 내가 아무리 변태 기질이 다분한 남자라고 해도 네 음성을 들으면서 딸을 치지 다른 짓을 하면서 딸은 안 쳐.”
“후덜덜… 온니찡의 멘트에서 뭔가 견딜 수 없는 로리콘의 향기를 느끼고 갑니다여. 근데 누구 목소리예염?”
은별이나 예나 같지는 않았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 서라가 궁금해서 질문하자 민국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2D 캐릭터.”
“의잉?”
“게임에서 튀어 나왔다.”
그 말과 함께 나중에 전화하자고 덧붙인 뒤 전화를 끊는 민국이었다. 민국에게서 대답을 들은 서라는 이해하지 못하겠단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읏♥ 민국 니임♥ 좋아요 정말 좋아요오♥”
“어, 응 그러합니까. 다행이군요.”
“아흣♥ 아응♥ 아앙♥”
민국은 인내했다. 평소답지 않게 자신을 가꾸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그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아으으으으응~!”
‘슈밤, 밤에 부모님 몰래 19세 미연시 하던 느낌이다.’
성인 이용가 미연시. 그 신세계를 민국은 웹하드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부모님 몰래 밤을 지새면서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런 신음 가득한 소리가 그의 해드셋에서 울려 퍼졌는데… 최설화가 2D 캐릭터에서 실존된 것이라 생각하니 자꾸만 미연시의 신음을 연상케 만들었다.
“잠시 화장실 좀.”
“네 민국 니임♥”
결국 급한 볼 일(?)이 생긴 민국이 안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민국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설화는 안마의 손길이 아직도 몸에 전달되는지 한참을 하악하악거렸다. 잠시 후 민국이 자취를 감춘 뒤 혼자 남게 된 설화.
“민국아…?”
마침 방에서 공부를 마친 예나가 잠시 민국을 보기 위해서 들리던 타이밍이었다. 민국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구멍을 통해 민국을 부르던 예나는 반응이 없자 잠시 불안한 느낌을 가졌다.
…최설화. 상당히 불안한 여자이다. 은별보단 촉이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예나의 여자의 촉과 감으로도 그 정도는 감지가 되었다.
특히 최설화는 어디 오갈 곳도 없는 사람. 고로 민국의 집에서 머물 테고 앞으로 10일간을 민국과 함께 할 것이었다. 심지어 민국에게 강렬한 호감을 가진 그녀인데 남녀 관계에서… 아무리 애인이 있고 요즘 들어 여자에게 선을 긋는 민국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민국아… 잠시만 들릴게.”
그렇게 민국이 없는 와중에 말은 던진 뒤, 구멍으로 스스럼없이 들어가는 예나였다. 구멍을 나가는 도중 골반이 살짝 끼었지만, 그래도 흑설 공주가 크기를 조절해줘서 지금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끄응….”
이윽고 구멍을 나온 예나가 천천히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안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마치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천천히 안방으로 소리 없는 걸음을 내딛는 그녀였다.
“민국아…?”
이윽고 노크를 하는 것을 잊고, 본능적으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그녀였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히면서 틈새를 들여다보는데….
“…….”
예나는 거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의 감이라는 게 처음으로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감이 빗나간 것을 감사히 여기게 될 정도로 예상외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어쩌지 어쩌지? 정말로 덮쳐지면 어쩌지?”
“…….”
“하으으, 덮쳐질 각오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두려운 걸 어떡해요. 으으하으….”
“…….”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디 아프지 않은 고통 속에서 남녀 교제가 성사될 수 있게끔 비나이다 비나이다.”
‘뭐…죠?’
정말로 ‘뭐죠?’라는 물음이 나올 실정이었다. 그토록 민국을 유혹하며 발가벗은 몸까지 다 보여주려고 했던 듯한 최설화가 혼자서 머리를 쥐어 잡고 궁시렁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궁시렁거리는 말들은 다 하나같이 오늘 밤을 두려워하는 처녀의 심정이었다.
“아아앙!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벽을 칠 걸 그랬어요오! 하지만 좋아하는데 어떡해요오!”
“…….”
예나도 그제야 최설화가 지금까지 민국에게 보여준 것이, 일종의 ‘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 스토리상으로 설화가 민국을 좋아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래도 본래 성격 자체는 엄연히 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유이가 캐릭터 설정을 했던 것도 있었다. 물론 민국의 발언으로 어쩔 수 없이 말이었다.
‘유이 씨. 자고로 여자 캐릭터의 모에성이란 말입니다. 남자를 유혹하긴 하는데 속으로는 은근 부끄러워하고 떨려하는 처녀일수록 남자들이 모에를 느끼는 것이란 말입니다.’
‘…….’
‘고로 여자 캐릭터는 남자들이 그 여자 캐릭터의 범해지는 동인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에하게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자, 빨리 범해지고 싶어질 정도로 색끈한 캐릭터를 만드십시오!’
그런 조언 아닌 조언으로 어쩔 수 없이 말이었다. 그리하여 창조된 캐릭터가 바로 최설화. 정작 민국은 최설화가 자신의 그런 조언에 힘입어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건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거기 누구인가요?”
“…앗.”
마냥 쳐다보던 예나가 이윽고 눈치를 채고 이쪽을 쳐다보는 설화와 눈을 마주쳤다. 설화는 문틈으로 보이는 사람을 가는 눈동자로 주시하는가 싶더니….
“예나야?”
“아… 민국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친 민국의 등장. 예나가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돌려 민국을 보며 반응한다. 그와 동시에 안방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자.
“아흥♥”
“…….”
“민국 니임♥ 어서 와서 못다한 주무르기로 저를 가버리게 해주세요. 민국 님의 따뜻한 온정으로도 저는 행복해져요오.”
순식간에 태세가 변환되어 있는 최설화였다. 하지만 예나는 볼 수 있었다. 아주 미세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설화의 손길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