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311화 (311/369)

311화

"안녕하시와요~."

"……."

"……."

"다들 말씀이 없으시네요? 설마 제 수려한 용모에 반하셔서… 후훗, 아무리 그래도 저는 민국 님뿐이랍니다~?"

그리 말하면서 민국에게 팔짱을 끼는 설화였다. 한 쪽 입을 가리고 웃다가 민국에게 자연스레 안기는 그런 설화는 정말이지 2D 애니메이션의 예쁜 캐릭터를 빼닮았다. 심지어 민국의 팔 쪽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유이 급은 못 되어도 예나보다 조금은 더 컸다.

"오오."

"웃어?"

"아닙니다."

"민국아…."

은별이 팔짱을 끼고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가운데, 예나도 조금은 실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민국은 일단 이 정황을 제대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듯 손사래를 쳤다.

"잠깐! 일단 둘 다 지금 머릿속으로 내가 어떤 여자가 맘에 들어서 전화번호를 땄고, 그 여자와 연락을 해서 지금 너희들에게 소개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굉장한 오해와 착각이니까!"

"……."

"……."

이젠 은별과 예나의 생각을 속속히 알아차릴 만큼 사이가 좋아졌다고 보는 게 옳은 걸까? 하지만 은별과 예나가 이젠 크게 충격도 먹지 않고 민국의 또 다른 여자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것은… 민국의 이미지가 얼마나 크게 하락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손사래를 치던 민국이 이윽고 '흠흠'하면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2D 캐릭터에서 실존 인물이 되어버린 최설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최설화는 '아앙~ 민국님~.'하면서 마치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얼굴을 붉힌다. 그런 그녀의 신음 소리가 상당히 거슬린 은별이었으나 일단 민국이 하는 해명을 들어보자고나 생각했다.

확실히 그가 숨기지 않고 먼저 여자와 함께 다가왔다는 건 이유가 있는 듯싶었다.

"일단 이 애는 게임에서 나온 캐릭터야."

"……."

"막 모니터에서 자기 여자 친구가 안 나온다는 덕후 친구들의 소망 있잖아. 그 소망이 그대로 실현된 증거물이라고 보면 돼."

애인은 있으나 모니터 속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2D 캐릭터를 대상으로 지껄이는 개그 드립이었다. 그러나 그 드립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민국은 말하는 것이었다.

당연지사 일반인이라면 '이게 뭔 개소리야.'하면서 민국의 이마빡을 한 대 후려쳤을 것이다. 그러나 은별과 예나는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설마 흑설 그 사람에게서 받은 아이템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 노예 짓을 해서 받은 해택이 2D 캐릭터를 열흘 동안 실존화시키는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템을 그만 이상한 곳에 사용해버리고만 것입니다."

딱딱한 기계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민국이었다. 지켜보던 예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민국아… 저분은 어떤 곳에서 나온 분이야…?"

예나가 지목한 것은 다름 아닌 최설화였다. 일반적으로 2D 캐릭터를 실존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면 분명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던가 그런 캐릭터들을 실존화 시킬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민국의 옆에 있는 캐릭터는 어느 정도 덕력이 있는 은별조차 모르는 캐릭터에다가 심지어… 무슨 까닭에선지 신경이 거슬릴 정도로 민국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티나게 민국의 팔뚝에 가슴을 붙이는 설화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은별이었다.

"어, 음 그러니까."

"바른대로 말해."

"옙. 바른대로 말하지요. 유이 씨의 게임 usb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은별과 예나였다.

"뭐어?"

"무슨 말이야…?"

"어, 음. 내가 유이 씨 게임 제작에 조금 협조했다고 말했었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이 이따금씩 유이의 집으로 놀러가서 게임을 제작하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C언어 같은 건 하나도 몰라서 그저 유이의 집에서 유이가 두드리는 키보드 옆에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루트 한 개가 완성이 되어서 그걸 내가 플레이어로서 처음 진행을 해보고 소감을 말해주기로 했었거든. 그래서 가져온 usb가 있었는데 그만 흑설 인간이 준 액체를 거기다 떨어뜨려버린 거지."

"……."

"그랬더니 이 캐릭터가 튀어 나왔어."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하트 뿅뿅으로 계속해서 민국에게 부비부비거리는 최설화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은별이 다음 건에 대해 물었다.

"그럼 그 캐릭터가 널 왜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

"얼굴까지 부비부비거리면서… 팔짱까지 끼고 말이야."

애초에 게임 캐릭터라 한들 민국과 면식도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단 말인가. 하지만 그 사실은 설화가 대신 얘기해주기로 하였다.

"그건 말이죠~ 이쪽 세계 말고 제가 살던 본래 세계에도 서민국 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오호라."

고작 한 문장이었지만 쉽게 알아차리는 은별이었다. 예나 역시도 서민국의 본래 성격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그가 usb 안에 있는 게임에 어떤 것을 요구했는지는 곧잘 알아차렸다.

"현실 세계로도 부족하니까 이젠 게임 세계까지 침범하겠다 이거야? 아예 매트릭스를 찍지 그래?"

"민국아… 너 2D도 취향이었어…?"

"으아, 아닙니다요. 그냥 내가 유이 씨에게 일조한 것도 있고, 인권비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차라리 보답으로 날 게임 주인공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을 뿐이야. 나중에 비제이 방송할 때도 써먹게!"

이젠 은별이 뿐만 아니라 예나에게도 해명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평소 은별이야 의심이 많은 타입인지라 그렇다고 쳐도, 예나도 이젠 의심이 좀 많아진 모양이었다. 확실히 민국의 태도 자체가 영 허술하고 애매했으니까 말이었다. 그래도 가끔씩 보여주는 그의 줏대 있는 모습 때문에 마음이 가서 다행이지, 그런 부분도 없었으면 민국은 진즉에 싸대기를 맞고 차였을 게 뻔할 뻔자였다.

아무리 외모가 잘 생겨도 기본 마인드라는 게 있었으니까.

"어쨌든, 어떡할 거야. 흑설 그 사람에게 부탁해서 보낼 수도 있는 거잖아."

"으아. 그러기는 조금 아깝지 않습니까 은별 마님…."

"아깝긴 뭐가 아까워? 어차피 게임 캐릭터인데."

지나가듯이 중얼거린 은별이었다. 여자 친구로서 남자 친구에게 치근덕대는 2D 캐릭터 실사판이 영 꼴싸납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본의 아니게 듣게 된 2D 캐릭터 실사판, 최설화가 곧 정색하였다.

은별은 언제 해맑게 웃었냐는 듯 급속도로 정색하고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뭐, 뭐야?'하면서 마주하였다. 이윽고 민국의 팔을 안던 최설화가 몸을 옆으로 조금 빼면서 손가락을 확 치켜들어 은별을 가리켰다.

"민국 님~."

"응?"

"저런 납작 가슴인 여자보단 2D 캐릭터라도 가슴이 풍만한 제가 훨씬 더 나아요."

"헉."

"헐."

"……."

예나가 '헉'하고 놀랄 정도였고 민국이 '헐'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대범하고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동시에…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납.작.가.

슴이라니…! 신이 격분하여 지구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도 모자랄 정도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장본인 강은별은 순간 벙이 찐 표정을 지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참을 있던 그녀는 이윽고 눈을 몇 번 깜빡이는가 싶더니… 부들부들….

"뭐어라아고오오오?!"

"은별양… 참아요!"

"저, 저게 진짜아아아!"

열이 잔뜩 뻗친 얼굴로 금방에라도 잡아 먹을 듯 달려들려는 강은별이었다. 그녀의 심리 상태를 느낀 예나가 곧장 뒤에서 은별을 잡아서 다행이었다. 와락하고 달려들려는 강은별이 흉흉한 얼굴을 짓고 있자 '후훗'하고 입술에 손을 갖다대는 설화였다.

"민국 니임~ 3D보단 때때로 2D가 더 나을 때도 있답니다? 민국 님도 동의하시죠오?"

"앵? 어어, 어 그렇지. 그렇긴 하지 흐흠, 확실히 2D가…."

화르르르르! 뜨거운 불길 같은 것이 근처에서 치솟고 있었다. 그것이 은별의 등에 져 있는 휴화산의 폭발임을 알게 된 민국은 말미를 도중에 끊었다. 동의하다 말고 멈추는 민국의 모습에 쳐다보던 설화가 조금 충격을 먹은 듯한 얼굴을 지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연기였다.

"흐흑! 설마 민국 님… 2D에게는 아무런 욕심도 없단 말씀이신가요? 저는 오로지 민국 님만을 바라보며 민국 님만을 따를 뿐인데, 가혹한 인생이네요…."

풀썩 주저앉아 눈물이 맺힌 얼굴 근처에 소매를 갖다 대는 설화. 커다란 눈망울이 글썽글썽거리자 굉장히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그것은 설화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분위기.

"아아, 민국 님이 2D에게 조금만이라도 호감을 가져주신다면 저는 민국 님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텐데…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텐데, 민국 님은 정말로 기어이 저를 버리실 생각이신가요?"

"크, 크흠!"

무엇이든이라는 말에 조금은 반응하게 되는 민국이었다. 너 쟤 잡으면 죽는다 하는 눈빛으로 매섭게 쳐다보는 은별 때문에 차마 어쩌지도 못했지만 말이었다.

"일단 다들 진정하고…."

"진정은 무슨 진정이야? 유전이 죄야?!"

울상을 치으며 버럭버럭 난동을 피우는 은별이었다. 여간 가슴에 콤플랙스가 있는 은별이었다.

"휘유우."

작은 가슴의 은별을 진정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 민국은 안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안방에는 다소곳이 두 무릎을 꿇고 앉아 뜬금없이 민국에게 절을 하고 있는 설화가 보였다. 민국은 그런 설화를 피곤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뜬금없이 뭐하는 겨?"

"뭐하는 거냐니요~. 남녀가 한 방에 단 둘이 묶게 되면 그 후의 일은 당연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러면서 입고 있는 옷을 헐렁하게 만들어 부드러운 어깨를 보여주는 설화였다. 노골적으로 보이는 그 섹시미에 민국은 순간 '우오옷'하고 또다시 충동을 일으킬 뻔했지만.

"후우!"

"후훗."

은별이 건도 있었고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간 정말 끝장이란 걸 아는 민국이었기 때문에 자제하는 그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매혹적인 눈빛을 표하던 설화였다. 이윽고 민국이 입장을 표명했다.

"일단 은별이랑 예나는 어떻게든 잘 넘어가게 한 거 같으니까 괜찮은 거 같아."

"역시 민국 님~."

"그래. 역시 나지. 그리고 아이템 기간이 끝나는 열흘 동안은 이 집안에 계속 머물게는 해줄게. 그래도 명색의 싸나이인데 책임은 져야 하니까."

실은 예쁜 얼굴의 여자랑 한 방에서 동거를 하게 되는 셈인데 아쉬울 게 뭐가 있겠소냐…. 하지만 은별이나 예나의 눈도 있고 최대한 의리 있는 사나이처럼 말하는 민국이었다. 다시 한 번 절을 하는 설화였다.

"역시 민국 님이에요~. 민국 님의 말은 어떤 것보다 무겁게 느껴진답니다~?"

"으흠흠, 그건 그렇지."

팔짱을 끼며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민국이었다. 그런데 그때 절을 하던 설화가 자기 어깨를 주무르더니 중얼거렸다.

"그런데 민국 니임. 갑자기 어깨가… 아응…♥ 갑자기 어깨가 좀 아프네요오?"

"흠흠. 나의 강렬한 마사지가 필요한 모양이로군."

"아응! 역시 민국 님은 눈치가 너무 좋으셔라~."

그리고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화가 대뜸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등이 보이도록 입고 있는 옷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보여야 할 브레지어 끈은 안 보인다. 노브라였다.

"허억."

"으응♥ 민국 니임~ 어서 부탁드려요~ 어서요오~."

'슈, 슈밤.'

본래 주도권을 잡는 면에선 민국을 이긴 사람이 얼마 없었다. 흑마법사나 흑설 공주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은 말이었다. 그런데 설화의 경우는 민국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성격이라 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잠시만요. 광고 보고 가실게여!

"당신,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생? 그것은 후훗.... 달마시안과도 같은 것이지."

"그럼 달마시안은 어디에서 나온 존재지?"

"바로 유아용 티비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그래! 너희들은 유아용 티비 프로그램 달마시안을 유아들에게 '추천!'하겠지!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추천을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허억!"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

천!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추천합시다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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