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능력자라는 것이 생겨난 것은 푸른 달이 등장한 이후였다. 푸른 달…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밤하늘의 달보다 훨씬 푸르고 창백했다. 그리고 그것은 밤이 될수록 유독 창백함을 두드러지게 부각시켰는데… 그런 이상 징조 현상이 일어난 뒤로 갑자기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죄다 소설에서나 보던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었고… 정말이지 흉포하고 강력하기 짝이 없어 민간인들의 막심한 희생이 뒤따랐다.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몬스터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몬스터들에게는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도록 피부 겉에 알 수 없는 보호막이 처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푸른 달의 의지로 선택 받은 능력자들만이 뚫을 수 있는 것이었다.
몬스터 등장 이후 능력자들도 속속 출몰하기 시작했다. 능력자는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것으로, 힘이 굉장히 강해지거나 몸이 굉장히 단단해지는 기능 등이 있었다.
걔 중에는 몬스터의 독소에 다친 그 누구든 치료해줄 수 있는 힐러의 힘을 가진 아무개도 있었다. 정부는 그들을 공식 직업으로 인정해 능력자로 허가시켰고, 능력자들은 몬스터를 처리하여 사회 기반을 유지시킴과 더불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시체는 굉장히 돈이 되는 결정체였기 때문에… 아예 능력자 자체를 직업으로 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능력자 범위에는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나는 정부에 정식 능력자로서 허가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이 분명 나 말고도 또 존재할 것이었다. 어째서 정식 능력자로서 허가를 받지 않으려고 하냐면, 나는 목숨을 걸고 몬스터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몬스터와 싸운다는 건, 아무리 평범한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결국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이었고… 비록 몬스터를 처치해서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반대로 패배해서 능력자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속속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능력자 같은 경우 세계에서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정부가 꼼꼼히 관리하는 편이었다. 싸우기 싫다고 해도 정부는 갖갖이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능력자로서 싸움을 하도록 만들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능력자로서 테스트를 받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지내려고 하는 청년이었다. 나에겐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면 되었다. 괜히 위급한 상황에 목숨까지 얽히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나쁜 짓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못 참고 불굴의 의지로 뛰어드는 나를 볼 때… 실로 우스운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부모님이 오랫동안 주입시킨 가정 교육의 결말이었고… 본래의 나는 오로지 나 하나만을 소중히 여기는 놈이었다.
"……."
고로 이 여학생을 도와준 것도 어디까지나 내 의지가 아니라, 내 부모님의 주입식 교육이 일으킨 말로인 셈이다. 젠장.
'이제 어떡하지?'
나는 멘붕이었다. 어찌어찌 사람들이 없는 곳까지 무사히 데려오긴 했는데, 하필이면 내 집근처였고 무엇보다 이 여학생은 내가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입막음을 한담. 한동안 고민을 하던 그때였다.
"능력…자…."
"……."
조심스럽게 중얼거리는 그 말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여학생이 언제 상당히 죽어 있는 초점으로… 그러나 또렷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만 맨 얼굴로 마주했음에 소름이 돋았다가 중얼거렸다.
"아! 아까 전에 보여준 건 그러니까 능력이 아니라…!"
"……."
"으아아…!"
멘붕이었다. 물론 내 능력을 발동시킨다면 이런 사람쯤이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살인이었다.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민간인을 공격하는 사건이야 몇 번 있었지만, 그것은 전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인지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젠장….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
"제가 정식으로 허가 받은 능력자가 아니라서요…. 아니, 그냥 능력 같은 거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던 놈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구해드렸으니까 그 답례로 부디…."
여학생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도와준 사람을 신고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하지만 숨겨진 능력자를 발견하면 포상금을 주는 정부의 해택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름…."
"응…?"
"오빠 이름이 뭐예요?"
오빠라니. 아직 나이도 밝히지 않았는데. 하지만 여학생은 학교 교복을 입었고 나는 엄연히 성인이었다. 당연히 어른으로서 취급을 받는 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이름을 알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능력자 정부 쪽에 신고를 하기 위해서?
"혹시 포상금 때문에 신고를 하려는 거면…."
"오빠 이름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이름이 뭐예요?"
그녀의 물음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초점은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진지해진 눈빛이었다. 그 눈빛 때문에 나는 차마 대답을 안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백남…."
"……."
아니….
"민국…."
아니…….
"백남……."
아니 아니!
"서민…."
"아! 서민국으로 좀 합시다!"
모니터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유이에게 주정을 부리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애처럼 발버둥치면서 때를 쓰는 민국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와 단합하여 게임을 제작하게 된 유이. 지금 막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들을 전부 읽고 있는 참이었다.
"제가 그래도 강간 씨가 좋은 게임 제작할 수 있도록 출판한 작가까지 섭외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 보답으로 주인공 이름쯤이야 제가 원하는 걸로 해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민국은…."
"서민국이 뭐요! 서민국이 뭐 잘못입니까? 슈밤 내가 이 이름으로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데 당신이 감히 그 이름을 무시해?!"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가 신작의 캐릭터 주인공이랍시고 내놓은 이름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민국은 그 이름 대신 자꾸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징징대는 것이었다. 자신이 유이의 게임을 제작하는데 협조를 한 보답으로 말이었다.
"작가 님이 싫어할 수…."
"으아아아아앙! 해줘어어! 해줘여어어어! 해주라고요오오오오!"
"……."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때를 쓰는 민국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설명이 필요할 것이었다.
게임의 기반 툴은 유이가 다 완성했고, 게임에 필요한 캐릭터들도 모조리 완성한 상태. 다만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가 제작한 캐릭터에 알맞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막 작성된 스토리 파일을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에게서 받은 유이가, 그것을 토대로 게임에 덮어 씌우고 있었는데… 민국은 주인공 이름을 백남 말고 서민국으로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건 작가 님이…."
"작가님이 싫어하실 거라고요? 웃기지 마! 그놈은 내가 만원 주면 뭐든 할 놈이야!"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가 듣고 나면 부들부들 떨 소리였다. 하지만 부정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추천도 좋아했지만 때때로 원고료도 짭짤하게 받아들였으니.
"제발요 유이 씨. 제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제 이름으로 게임 하나 제작해달라는 건데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
어렵다.
"아 거참! 자꾸 그러면 모유 나올 때까지 가슴 만져버릴 겁니다!"
투다다다다다!
"끄악!"
가슴을 만질 시늉을 하면서 손을 뻗으려 드는 민국에게 강렬한 킥을 선사하는 유이였다. 잠시 후 처참해진 모습으로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버린 민국에게서 고개 돌린 유이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두드리던 키보드를 잠시 멈칫한다.
"……."
돌이켜보면 민국이 확실히 유이의 게임을 제작하는데 큰 일조를 한 것은 분명했다. 자신 혼자서 스토리까지 제작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렸을 이 게임을, 작가를 섭외시킴으로서 도와주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유이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민국이 대신해서 작가와 의논을 나누고 진행해주곤 하였다.
합의점과 타협점을 확실히 찾아내서 진행시키는 면에선 민국이 유이보다 나았던 것이었다.
"……."
그래서 그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민국에게 뭔가 해택이 있어야 할 건 자명했다. 인건비도 받지 않고 게임 제작에 협조해준 사람인 것은 자명했으니까.
"……."
그래서 유이는 민국이 잠들어 있는 동안, 하는 수 없이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작가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의논을 나누었다. 전화로는 차마 얘기하기가 꺼려지는 유이였지만 그래도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의논을 하는 건 잘하는 편이었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으니. 그리고 한참동안 의논을 나누던 유이였다.
"으헝헝."
"됐어요…."
"…으헝헝 …옙?"
유이의 말에 언제 울었냐는 것처럼 재깍 고개를 드는 민국이었다. 이윽고 유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국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민국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유이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유이와 추천 받고 싶어 하는 남자가 적어나간 채팅을 본다.
추천 받고 싶어 하는 남자 : ㅇㅋ… 그럼 서민국으로 이름 바꾸죠.
"오오!"
민국은 만세 삼창을 외쳤다. 드디어 간절하던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본래 소원이란 간절히 빌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었지만, 애쓰고 때를 쓰면 이룰 수 있는 법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좋아라 하고 있는 찰나에, 추천 받고 싶어 하는 남자가 다음 이야기를 유이에게 털어놓았다.
추천 받고 싶어 하는 남자 : 그런데 지금 드린 스토리는 루트 1입니다. 루트 2 같은 경우는 트루 엔딩으로 따로 짤 예정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에 유이는 재깍 반응하여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민국은 그러든 말든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현했음에 마냥 좋은지 만세 삼창을 외칠 따름이었다.
"슈벌.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마초 파워를 게임 세계에서 세워 나가겠다!"
"……."
차마 마초와는 거리가 어울리지 않는 민국이었으나,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지. 유이는 애써 외면하며 키보드나 두드릴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공헌에 공헌을 한 끝에… 게임 제작이 완료되었다.
"오오, 이게 루트 1 게임입니까?"
"네…."
유이는 느리게 고개를 까닥였다. 거의 한 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마냥 게임 제작에만 열정을 쏟은 유이였다. 덕분에 평소 그녀에겐 보이지 않던 다크서클이 눈밑에 심하게 깔려 있을 지경이었다. 민국은 자신이 게임을 먼저 테스트하기로 했던 유저이니 만큼 유이에게 그 게임이 담겨 있는 usb를 받게 되었다.
"후후, 그럼 어디 가서 잘 해보도록 하지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
"그거야 당연합니다. 제가 언제 물건 잃어버리는 거 보셨습니까? 물건 망가뜨리는 건 많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
어째 그 말이 더 불안하다. 어쨌든 유이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이젠 방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드러누울 따름이었다. 민국은 '수고하십쇼!'하면서 유이의 집을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이동할 따름이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게임, 플레이어 존이 담긴 usb. 과연 루트 1의 스토리는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을까. 방학이 마저 끝나가는 기간에 민국은 할 것도 없겠다, 한 번 유이가 제작한 게임이나 싱그럽게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훗날 그 usb가 가져올 운명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