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고향의 향기를 맡으니 감회가 새롭구만.'
민국은 간만에 밖으로 나가서 고향 길을 거닐었다. 서울과는 다르게 지방이기 때문인지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차도에도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불법으로 무단 횡단을 많이 할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 지방이고 서울처럼 순수함이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일이지.'
서울은 과학 발전이 빠르다. 고로 일상에서 편리한 점이나 중요한 소식들은 지방보다 금방 금방 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큰 단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일상의 생활에 여유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민국도 의식은 안했지만 다들 이래라 치고 싸우고 경쟁을 하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특히 나처럼 잘난 놈은 대학교에서도 사내 놈들의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는 터.'
여자의 질투만이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여자의 질투가 워낙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다 보니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남자의 질투도 굉장한 무서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사내라서 그런지 고추가 달려서 그런 지 질투에 대해서 워낙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인성이 있었을 뿐….
"크으, 이때쯤이면 휴대전화에 연락 9건은 쌓여 있겠지. 나를 워낙 좋아하고 사랑하는 은별이니까 말이야. 한 시라도 멀리 떨어지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귀여운 그녀의 본 모습이지."
그리고 휴대전화를 들어 연락 건수를 확인하는 민국이었다. 빵 건.
"……."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음에 민국은 가만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전화기록부를 뒤적거려 은별에게 연락을 할 따름이었다. 뚜루루루…. 몇 차례 통화음과 더불어 그녀가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벌써 나를 향한 마음이 식어진 거니?! 은별아?!"
다짜고짜 그렇게 운을 띄우는 민국이었다. 은별은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서 반문하였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어떻게 연락을 안할 수가 있어! 내가 간만에 부모님을 보러 갔는데! 조금이라도 연락을 해야 하지 않겠니?! 설마… 너 그런 여자였던 거야? 클럽에서 밤낮 춤사위 부리다가 남자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배터리 없어서 못 받았다고 하는 그런 여자?!"
"…미친 거 아냐?! 부모님 뵈러 간 지 2시간밖에 안 지났으면서 무슨 연락을 해?!"
심지어 아까 전 집을 나오기 전에 은별과 짝짝쿵 잘 놀고 나왔던 민국이었다. 그러나 민국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러면 안 되겠어. 아무래도 은별아, 내가 다시 한 번 너를 조교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조교는 얼어죽을. 조교는 너님 두개골 속 두뇌에다가 하세요. 나 운동할 거야, 끊어."
그리고 뚝하고 전화를 끊는 은별이었다. 여전히 쌀쌀 맞지만 그래도 어떤 일을 하면 한다고 말하고 끊는 그녀였다. 그런 점이 필시 민국을 위하는 것이겠지. 민국은 통화를 했기 때문에 한결 편안해진 미소로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 이렇게 길을 거니는 것도 이틀 만이군.'
마치 오래 된 일인 것마냥 옛날을 추억하듯 걷는 민국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민국의 코트를 휘날린다. 후우웅….
"그리고 존나 춥군."
겨울 바람답게 몹시 추웠다. 민국은 언제 폼을 잡고 주머니 속에 두 손을 꽂아 넣었냐는 듯 오들오들 떨면서 몸을 두 팔로 둘러맸다. 그냥 집에 다시 돌아가서 소파에 드러누워 편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근처에 있는 공터에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응?"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자세히 바라보니… 해영이었다. 저 놈이 왜 여기 있는 것인가 의혹을 갖는 건 둘째치고, 눈이 와서 눈밭이 된 공터 안에서 해영이는 눈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한 명의 친구도 없이 썰렁한 공터 안에서 혼자 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민국은 '흠'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의 뒤에 서서 무엇을 만드는지 가만히 방관한다.
"……."
터덕 터덕. 손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한 상태로, 해영이는 혼자서 열심히 눈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곧 작은 원형 덩어리의 눈사람임을 알았을 때 민국은 운을 띄었다.
"뭐하고 있냐?"
"흐잉!"
익숙한 음성에 해영이가 소스라치게 놀란 모양이었다. 덕분에 만들고 있던 눈사람의 얼굴 부분이 또르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망가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아 멈추게 한 해영이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민국이 가만히 선 채로 해영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뭔가 남매 간의 관계이긴 한데 어색한 게 있다면 사실이었다. 애초에 민국이 해영이와 즐겁게 지냈던 것은 못해도 3년 전이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고 해영이도 어느 순간 중2병끼가 자라났기 때문에 제대로 같이 논 적이 없었다.
이윽고 해영이가 조금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더듬더듬거리면서 말하였다.
"누, 눈사람."
"혼자서 말이냐?"
"……."
그 물음에 대해서 대답이 없었다. 겁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해영이의 현재 성격상 친구가 있을 리 전무했다.
아무리 사춘기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게 15살의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그 나이 또래 학생들 중에 이토록 심한 중2병을 앓고 있는 학생은 거의 전무했다. 필시 같은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덕후 모임조차도 이런 학생은 부담스러워하겠지. 애초에 해영이가 반 학생들과 친하지 않다는 건 멀리 있는 민국조차도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에휴 이것아."
"……."
한숨과 같이 한 마디하는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의 말에 그저 움찔거릴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해영이. 이윽고 해영이의 옆으로 다가간 민국이 들고 있는 원형 눈을 가로챈 다음에 토닥토닥 맨 손으로 잘 다듬기 시작했다.
"이런 건 말이지. 좀 더 균형을 잘 잡아 만들려면 옆에 필요 없는 부분은 깎아내야하는 것이야."
"……."
"알겠냐?"
이윽고 친절히 설명하는 민국 때문이었을까. 잠시 우물쭈물거리면서 지켜보던 해영이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의 친절한 민국 오빠를 보는 것마냥 말이었다.
"응!"
"어이구 녀석."
금세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해영이를 보면서 민국은 눈사람 완성을 마저 도와주었다. 얼마지 않아 두 사람이 공터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곳에는 두 사람이 완성한 작은 눈사람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민국아, 이리 와봐라."
"왜 그러십니까 어바마마."
대뜸 어머니가 민국을 호명하였다. 민국은 쏜살같이 안방으로 달려나가 인사를 드렸다. 이윽고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폐를 건넸다.
"오랜만에 네가 왔으니까 심부름 좀 시키자꾸나. 나가서 야채 좀 사와."
"헐. 나갔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소중한 아들을 살림살이 시키는 겁니까?"
"1분 쉬었으면 충분하지. 빨리 갔다 와."
"이럴 수가."
세상에 이토록 매정한 부모가 있을 수 있냐! 하지만 민국은 어쩔 수 없이 심부름을 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오늘 저녁 밥은 없는 게 되는 셈이었기 때문에. 민국은 별 수 없다는 것처럼 심부름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이내 근처의 시장 가게에서 음식들을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들을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다.
"흐음."
그러다가 문득 아이스크림이 있는 곳으로 눈이 갔는데… 자기가 땡기는 것도 있었지만 해영이에게 한 개 사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윽고 맘에 드는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민국이었다.
"사왔냐?"
"네. 받으십쇼. 어바마마."
이윽고 봉투 째로 어머니에게 공손히 물건을 건넨 뒤, 나머지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들고 2층으로 향할 따름이었다. 2층에는 민국이 사용했던 민국의 방과 해영이의 방이 있었는데, 민국은 더도 말고 해영이의 방문 손잡이를 잡아 당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야, 서해영."
"!!!"
"헉."
그리고 그것은 큰 실수였다. 해영이가 언제까지고 어린애일 거라고 생각한 민국의 크나큰 실수! 해영이의 나이도 어엿 15살이었고 사춘기 시즌이라는 걸 짐작했어야 하는데… 너무 만만히 본 게 탈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그 결과로 해영이의 봐선 안 될 모습을 바라보고 말았다.
마치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이불에 꾸비적꾸비적거리면서 바짓가랑이에 한 쪽 손가락을 넣은….
"헐, 헐."
"……."
"……."
그러하다. 여자도 때때로 자신을 위로하는 법이다. 어떻게든 낮게 보이고 싶지 않아 아닌 척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실질적으로는 자신을 위로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라는 동물의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민국은 해영이의 현재 상태를 보면서 극도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붉어져 있는 얼굴, 그리고 몹시 당황하고 있는 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침착하자. 침착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를 칠 뻔했지만, 그랬다간 부모님도 들어오고 매우 창피한 사실이 알려지는 일밖에 안 됐다. 특히 여자인 해영이라면 남자인 민국보다 그런 사실을 퍼트리게 되면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이었다. 고로.
"이해한다. 너도 몸은 거의 다 크고 있으니까."
"……."
"나도 한 때 아버지에게 이렇게 걸린 적이 있었지. 그때 아버지는 내가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날 이해하고 칭찬해주더구나."
"……."
"나 역시 네가 진정한 여자로 거듭나고 있는 이 상황을 보면서, 충격을 먹기 보단 널 위로하고 이해해주는 게 오빠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
"……."
"힘내라 동생아. 화이팅."
그리고 문을 닫은 민국이었으나, 곧 까먹은 게 있다는 듯 다시 문을 여는 민국이었다.
"아! 아이스크림은 여기다가 두고 갈게."
"……."
"그럼 다시 화이팅."
그리고 멋지게 대처를 했다고 생각하면서 방을 나온 민국이었다. 그리고 뒤를 도는 순간… 형언을 할 수 없는 괴음 같은 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민국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벌써 그런 짓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다니…. 돌연 아까 전에 바깥을 돌아다닐 때도 느끼지 않았던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뭐, 이해해주자고.'
여튼 어른의 마음으로 여유롭게 넘어가는 게 답이리라. 민국은 이 사실은 부모님에게 언급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저녁 했으니까 나와."
이윽고 어머니의 왈이었다. 간만에 자기 방에서 신명나게 만화책을 보고 있던 민국은 어머니의 소리에 '네'하고 반응했다. 그리고 곧장 옆방인 여동생의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이번엔 노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해영아."
"……."
대답이 없다. 민국은 혹시나 싶어서 질문했다.
"너 설마 아직도 하고 있냐?"
"@(#!(@*#([email protected]#!"
이윽고 민국이 놀리는 거라 생각했는지 해영이가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방문을 나와 민국과 눈을 마주치자 몹시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모습에 민국은 미소를 짓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인마. 다 그럴 수도 있는 거야."
"……."
해영이는 차마 얼굴도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모양새였다. 이윽고 민국이 머리를 쓰다듬다가 계단을 먼저 내려가기 시작하자 해영이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할 따름이었다.
민국의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기 그지 없었지만 해영이는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좌지우지할 거라 느꼈는지 얼굴이 몹시 암담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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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처리 부탁했는데 오늘 처리가 안 됐네여 'ㅅ'
그냥 월요일에 무료 연재로 5일간 전환할게여
헤헤
아니다
댓글로 한 분이 쿠폰을 열 장 주셨더군여! 그러면서 무료연재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4일간 무료연재할게여 헤헤
그리고 기존 노블레스 회원분들에겐 다른 이벤트가 있을 예정이니 이 이벤트 끝나는대로 말씀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