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98화 (298/369)

298화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큭큭, 그라피아의 화신이 너에게 깃들어서 말하기를. 신의 창조는 천상의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것. 라르안티아의 호피누스는 항상 그것을 누누히 여겨 사람의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악마가 되고 싶었지."

"……."

"그리고 카탈로니아의 칼은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아리토니아가 세상을 구하고 용기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 환상의 파루스 검, 레리카티오노이수파리노수안노이수를 손에 넣기 전까지 이 세상의 평화는 계속 될 것이라고."

"……."

"크크, 지금이 이때다!"

콩!

"아얏!"

쇼를 하던 서해영이 정수리를 부여 잡고 신음한다. 그녀가 울먹이는 눈동자로 울상을 지으면서 민국을 쳐다보는 가운데, 부모님과 얘기를 하고 있던 민국은 이리 말했다.

"정신 차리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해 이놈아."

"히이잉."

민국의 왈에 상당히 상처 받은 듯 울상을 지으면서 방문으로 나가는 서해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린 민국은 안방에 양반다리로 앉아있는 부모님에게 넙죽 절을 하면서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부모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미친 놈. 너도 맛이 갔구나."

"잘 놀고 있는 해영이는 왜 때려!"

퍽!

"으악! …아이고 엄마! 해영이 저러고 다니면 학교 생활하기 힘들다니까요! 그전에 바로 버르장머리 좀 고쳐놔야해요!"

"네가 어릴 때 중2병 짓 하던 건 신경 안 쓰고 해영이에게만 뭐라고 하냐? 어차피 저것도 시간 지나면 잊혀질 일이야!"

"크읏, 또 제 예전의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시다니."

단순히 중2병스럽기만 했던 민국이 아니었다. 워낙 개구장이에다가 천진난만했던 아이였던 지라… 장난을 쳐도 판타스틱한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또다시 해영이를 울린 죄로 한 대 더 때리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민국은 여기가 어디인지 되새겼다.

"……."

이곳은 민국이의 집. 그러니까 은별이나 예나가 항상 들리던 그 집이 아니었고, 아주 옛날에 민국이가 살았고 고향의 맛이 물씬 풍기는 과거의 집이었던 것이다. 현재는 부모님과 해영이가 같이 사는 집으로 지방에 위치해 있던 지라 꽤나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여기가 지방답게 도시의 무거운 느낌은 안 들어서 좋군요."

"그래서 편하냐?"

"전 어딜 가든 금방 익숙해져서 어떤 것이든 금방 편안하게 여기죠. 훗."

민국의 말에 아버지가 당연하겠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되는 사람은 '두 사람 다 철이 없어 똑같네.'하면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오랜만에 들린 집에서 두 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본 사이에 두분 다 많이.'

늙으셨다. 주름도 많이 생겼고 말이다. 도무지 예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민국은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효도의 마음이 생기는 걸 물씬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된 상태에서 민국은 부모님에게 뭔가 용돈이라도 챙겨드려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아참, 이거 받으십쇼."

"이게 뭐냐?"

"뭐여 이게?"

민국이 어줍잖게 봉투 한 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닥으로 스윽 내밀자, 그것을 받아 보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곧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돈 아니냐?"

"이게 얼마야? 너 설마 도둑질 하고 다니냐?"

"아닙니다요! 도둑질은 무슨 도둑질입니까? 일해서 버는 겁니다 일해서."

"허! 나쁜 일해서 번 돈 중에 100만원을 우리에게 주는 거냐? 이 나쁜 놈이!"

퍽!

"아이고야! 어머니! 그렇게 아들 능력 못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어지간히도 두드려 맞는 민국이었다. 평소에 항상 개구쟁이처럼 부모님을 괴롭히곤 해왔으니… 이 정도는 미래에 받는 보답의 응징이라고 해도 충분하였다. 그리고 그런 민국에게 어떻게 번 것이냐고 묻는 부모님. 당연지사 민국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드리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놈이 진짜 나쁜 짓으로 벌었구나!"

퍼억!

"아이고야! 사람 죽네 사람 죽어! 오해해서 사람 죽네 사람 죽어!"

기껏 효도하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매를 맞고 있다! 실로 어이없을 지경이다. 어찌 됐든 민국은 아직 부모님께 비제이를 하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없었다.

그 까닭은 실로 간단했다. 아직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었다.

애초에 비제이를 한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기에는… 자신이 파뿌리 TV에서 선보이고 있는 비제이 컨셉이 워낙 막무가내이기도 했고…. 자신을 욕하는 시청자들과 노닥거리는 것이었으니, 부모 입장에선 아무리 장난이라도 욕하는 시청자들이 맘 편히 보일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좀 받으십쇼."

"나쁜 짓해서 번 돈 못 받는다."

"으아아!"

100만원 주기도 힘든 민국! 참으로 효자 되기도 힘든 실정이다! …아무튼 이래라 저래라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면서 줄기찬 시간을 보내던 민국이었다. 이제 슬슬 안방에서 나가 집에 온 만큼 간만의 감흥을 느껴보려는 상황….

"……."

"……."

마침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벽 옆에 붙어 서 있는 해영이가 보였다. 민국은 그런 해영이를 돌아보았다. 해영이는 차마 민국과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로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는데, 민국은 그런 해영이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뭐하냐?"

"히, 히잉!"

이윽고 해영이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을 짓더니 돌연 태세를 잡고는 돌변한다. 중2병을 선보일 때 특유의 각오를 다진 얼굴을 보이면서 민국과 대치를 하더니, 두 손을 홱홱 대면서 기술을 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나의 아르테지오 아트로파이노의 불길! 화염의 대지가 시간을 초월하고 초월한 그 대지가 악마의 영혼을 불사지를 때! 나의 소울은 초강력 파워 어메지잉의…."

콩!

"아양!"

"이놈은 맞아도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네. 빨리 가서 공부나 해 임마!"

"히이잉!"

정수리를 부여 잡고 울상을 지으면서 민국을 쳐다보던 해영이었다. 곧 2층으로 투다다닥 올라가는 해영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민국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자신의 이전 과거를 자꾸만 떠올리게 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3차 대전이라던가.'

민국은 돌연 과거를 되새기게 되었다. 그 과거는… 한 때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 가족에게 저질렀던 미친 짓거리였다.

'으히히히히….'

천방지축스러웠던 나이의 민국은 어릴 때 3차 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비디오 테이프의 일부분을 녹화해서 다른 비디오에 담은 다음에 새벽에 되던 경에 틀 준비를 했었다.

'컴퓨터 전선도 빼고, 밥솥 전선도 빼고.'

어째서 텔레비전은 틀어지면서 컴퓨터와 밥솥은 안 켜지는 것이냐고 딴죽을 걸 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이 워낙 불가피하고 정신이 없어지면 그런 것도 신경을 못 쓸 따름이다. 이윽고 민국은 새벽에 녹화한 테이프를 틀어둔 다음, 곧장 볼륨을 높인 다음에 후다닥 여동생이 있는 서해영의 방으로 뛰어갔다.

'헉헉! 해영아! 해영아! 빨리 문 열어!'

'으응….'

'해영아! 얼른! 급해! 한 시가 급하다고!'

아직 중2병이 되지 않았던, 다소 일반인스러웠던 해영이. 그런 해영이가 문을 열어젖히고 눈을 비비면서 민국에게 말하길.

'무슨 일이야 오빠….'

'전쟁 났어!'

'응?'

'전쟁 났다고!'

민국은 테이프가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해영이에게 말했다. 덕분에 해영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는가 싶더니, 곧 놀란 표정으로 안방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엄마아아아!'

이때 민국은 '계획대로!'라며 씨익 미소 지었다. 이윽고 민국도 해영이를 따라 안방으로 다가간 다음에 안방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 쉴 틈 없이 두드리는 소음에 잠을 자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리나케 무슨 일이냐면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잠을 깨워?'

'뭔 일인데 그래?'

나와 해영이는 워낙 긴급한 상황에 빠진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뭔가 이상한 징조를 느낀 모양이었다. 나와 해영이가 텔레비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전쟁 났어요!'

'뭐?'

'3차 전쟁!!!'

그리고 마침 녹음했던 비디오 테이프에선 뉴스의 아나운서가 이렇게 긴급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비상계엄령 선포로 지금 당장 집안에 있으신 분들은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

'허억.'

'여, 여보!'

텔레비전을 보고는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짓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뒷목이 땡기는 와중에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버지가 곧 침착한 표정을 짓는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와 해영이를 보면서 그는 굳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언젠간 이런 일이 닥칠 줄 알았다. …어서 창고에 있는 가방 꺼내고 나갈 준비 해!'

'여보! 어디로 도망가게요!'

'어디긴 어디겠어! 차 타고 최대한 멀리 가야지!'

최대한 경기도 부근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지방이라면 3차 전쟁의 미사일이 날아올 가능성도 현저히 적었으니까! 이윽고 그리 생각을 완료한 아버지와 가족들이 허겁지겁 짐을 싸는 동안 민국도 여유롭게 짐을 쌌다.

'웃차!'

'빨리 다들 타!'

쏴아아아아! 마침 비가 오고 있었고, 워낙 폭우였기 때문에 바깥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마치 전쟁의 신호라 생각했는지 아버지는 쌀쌀히 부는 비바람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돌아가신 어머님 아버님. 결국 때가 왔습니다….'

'…….'

'제가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겠습니다.'

마침 그 대사를 듣고 감동하는 민국의 어머니를 뒤로하고, 아버지는 차에 탑승한 다음에 곧장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럼 출발한다!'

'네!!!'

'아빠 화이팅!!!'

맞장구치는 민국이와 응원하는 해영이. 두 손을 꼭 모으고 하늘에게 기도하는 어머니! 그렇게 3차 전쟁에서 도망가기 위해 열심히 차를 운전하는 아버지! 어느 덧 고속도로에 진출하여 새벽부터 뺑 여기 지방보다 더 먼 지방으로 향하자니….

'차가 많이 없는 거 보니 아직 사실을 모르나봐!'

그렇게 멋대로 추리하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민국은 여전히 키득키득거리면서 이 상황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두 시간 가량 차를 타고 내려온 뒤… 좀 안전한 곳까지 내려온 것 같음에 민국의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짐도 내리기 시작했다.

'짐 내리고 안전한 여관 구해서 그곳에서 조금만 머물자.'

'여보… 회사는요.'

'회사고 뭐고 그런 게 어딨어! 일단 너희들부터 살아남아야지!'

또 감동하는 어머니! 하지만 그렇게 짐을 힘차게 빼내는 가족을 보면서 막 길을 지나가던 뒷짐 진 할아버지가 보고는 '허허허'웃으면서 중얼거린다.

'무슨 급한 일이길래 그렇게 열심히 짐을 내리시는감?'

'…할아버지! 누구신지는 몰라도 빨리 대피하십쇼! 여기 곧 있음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3차 대전? 그게 무슨 개소리가 얼어죽다 씹어먹을 소리인고?'

'아직 뉴스 못 보신 겁니까?'

'뉴스?'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곧 얼마지 않아 '여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본다. 민국의 어머니는 정신없어 미처 확인 못한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곧 영문을 알 수 없단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오늘….'

'…….'

'날씨 맑음이래….'

'…….'

그리고 그 아무 일도 없었다. 전쟁에 대한 소식이나 그런 건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이윽고 '푸헤헤헤헤헤!'하고 웃음을 터트리면서 바닥을 뒹구는 민국이었고,

'푸헤헤헤헤! 속았대요! 속았대요!'

'…….'

'…….'

'푸헤헤헤헤헤헤헤!"

한참을 줄기차게 웃던 민국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얼마지 않아 다가오는 무서운 두 사람의 기세에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푸, 푸헤… 푸헤헤….'

'서민국….'

'…넌 죽었다.'

'…푸헤! 끄아아아아악!'

어릴 때부터 워낙 심한 장난을 쳐온 민국이었기 때문에 심한 응징을 받아도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고로 이 날의 민국은 정말이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죽을 때까지 혼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참 아름답던 기억이지.'

민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옛날의 추억을 즐겁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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