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당장 게임 제작이라는 할 일이 있다 보니 그 업무에 치중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민국의 재촉에 유이는 결국 그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강철남 그 자식에게서 벗어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민국이 언급한 그 대사에 마음이 이끌린 탓도 있었다. 사실 내색은 안하고, 인정도 안했지만, 본능적으로 강철남에게 아직도 이끌리고 있었다.
그것은 필시 죽도록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유이는 딱 태어나서 두 번의 사랑을 하였다. 첫 번째가 어린 그 시절 사귀었던 남학생이었고, 두 번째가 강철남이었다.
전부 다 배신되는 사랑을 했던 그녀로서는 그 악마 같은 남자의 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
그래서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민국의 호의 같지 않은 호의에 마음이 이끌린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민국의 손길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자, 고를 만큼 마음대로 골라봐! 여기가 바로 당신의 꿈의 천국이니까!"
"……."
"물론 돈은 당신이 계산이다!"
그럴 거면 뭣하러 데려왔는가? 하지만 상식적으로 따져볼 때 민국이 유이보다 돈이 많을 리가 전무했다. 유이는 돈에 대한 욕심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욕심 낼 정도의 돈을 순수 재능만으로도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유이를 데리고 민국은 백화점 안으로 데려와서 주변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현재 이곳은 5층 백화점 안…. 여성 의류가 있는 5층이었다. 민국은 마치 자기가 헌심 쓴다는 듯 팔짱을 끼고 대범한 얼굴로 '흠흠'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뭐하십니까? 빨리 고르십시오 유이 씨. 여기서 당신이 원하는 옷, 그 어떤 옷이든 당신의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
살 생각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옷차림 가지고 그다지 초라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던 유이였으니까 말이었다. 결국 이 사람 뭐하러 온 건가 쳐다보던 유이가 몸을 돌려 에스칼레이터로 향하려고 했다. '어딜'하고 민국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제지했다.
"아니, 이 사람아. 사람이 사람이면 패션에는 신경 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다지…."
"물론 유이 씨 옷차림이 그렇게 조촐한 것도 아닌 지라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라면! 적어도 여자라면 좀 더 남자들에게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싶은 그런 욕구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
"안 되겠구만. 따라와봐요."
결국 유이를 강제로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그냥 말없이 가만히 따라갈 뿐이었다. 이윽고 여성 속옷들이 가득한 속옷 전문 쪽으로 향한 민국이었다. 속옷을 팔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여자 직원이 상업적 미소와 함께 다소곳한 두 손으로 인사하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자 빨리 고르세요 유이 씨."
"……."
"몇 컵입니까? 전에 만져봤을 때는 F컵은 되는 거 같던데. 설마 그 사이에 더 커졌다던가?"
"……."
"……."
직원이 순간 몹시 당황한 눈빛으로 민국을 쳐다보았으나, 민국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미지 컨셉을 잡으면서 생활하던 민국이었지만, 어차피 여기는 민국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고로 민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브레지어들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흐음, 이건 너무 작은 거 같은데."
"……."
"안 되겠군요. 한 번 대봐야겠습니다."
"……!"
그리고 유이의 가슴 근처에다가 브레지어를 갖다대는 민국이었다. 대놓고 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까이 댔음에 유이가 순간 눈을 크게 떴고,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퍼억!
"쿠웩!"
유이의 발차기에 복부를 정통으로 맞은 민국이 순식간에 멀리 날아가면서 침을 토했다. 뭐 어찌 됐든….
"잘 봐요. 이런 옷들도 있지 않습니까? 좀 골라서 입어 보십쇼."
"이런 건 필요 없…."
"필요 없긴 뭐가 필요 없어요? 여자가 좀 예쁘게 꾸미고 그래야지. 에이 쯔쯔쯔, 강철남 그 양반이 후회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변화해보고 싶은 맘이 없으신 겁니까?"
"……."
그 순간 유이의 가슴에서 무언가 벌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강철남…. 그 이름이 가져온 감정은 커다란 충동이었다. 확실히 그에게는 원망의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혹여나 자신이 변할 수 있다면 변함으로서 무언가 큰 후회를 안겨주고 싶었다.
"자, 빨리 들어가서 입어보세요."
"……."
"아, 그리고 시간되면 이 속옷도 한 번."
속옷은 제쳐두고… 유이는 민국이 자신에게 어울리겠다면서 건네준 원피스를 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했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했던 그녀인지라 직원에게 안내를 받을 때 조금 우물쭈물하긴 했지만, 결국 민국의 눈총에 들어갈 따름이었다.
"……."
지이익….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지를 벗고, 상의를 벗으면서 유이는 순간 생각했다. 자신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고…. 하지만 강철남을 향한 복수를 하고 싶단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일단 어떻게든 옷을 벗는 유이였다. 물론 상의가 풍만한 가슴에 끼었기 때문에 탈의를 할 때 상당히 낑낑거렸다.
"유이 씨, 아직 덜 됐습니까?"
"다 됐어요…."
옷을 입는 와중에도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가슴 때문에 자꾸만 옷이 결렸던 것이다. 유이는 일반 여자들보다 약 세 배 가량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흠흠."
바깥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민국이었다. 이윽고 촤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탈의실의 문이 열리고… 유이가 나와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오!"
민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그 정도로 유이가 입은 원피스는 상당히 볼륨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본래 원피스란 청초한 느낌을 주기 위함에 입는 것인데, 유이는 원피스를 입어도 도무지 가슴의 풍만함을 가릴 수가 없었다.
"오, 죽이네요 유이 씨."
"……."
"엄지 손가락 척."
정말로 엄지 손가락을 척하고 드는 민국이었다. 옆에 있던 직원도 '잘 어울리네요.'하고 상업적 미소를 띄었지만, 한 편으론 자꾸만 유이의 가슴에 시선이 가는 모양이었다.
여자 직원이라서 그런지 내심 부럽다는 듯 시샘하는 눈길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유이는 그저 민망하고 어색했던 지라 천천히 두 팔을 붙여서 가슴을 숨기려고 했다.
"오오!"
하지만 그럴 수록 가슴이 더 앞으로 나와서 부각되었다. 결국 민국의 감탄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행동이 실수임을 깨닫고는 원래대로 되돌릴 따름이었다.
"괜찮네요. 다음엔 이것도 입어 보십쇼 유이 씨."
"……."
"후후, 어차피 유이 씨가 사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뭐 병…. 어쨌든 민국의 지도 하에 따라 유이는 간만에 쇼핑을 하게 되었다. 백화점 쇼핑 같은 것을 제대로 하는 건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항상 옷 살 때가 되면 사람 없는 시장바닥에서 몇 겹 살 따름이었으니까. 초면에 민국을 만날 때 입었던 원피스도 시장 바닥에서 대충 구매한 것이었다.
"그때 원피스보다 이 원피스가 훨씬 예쁘군요."
"……."
"이거 말고 이것도 한 번 입어보십쇼."
그러면서 민국은 유이에게 자꾸만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게 만들었다. 유이는 번거로운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이렇게 안해주면 집으로 못 갈 것 같아 차례대로 입어볼 따름이었다. 섹시한 옷부터… 청초한 옷까지… 핫팬츠에 하얀 와이셔츠의 상의까지…!
"와, 은별이가 입을 때랑 천지 차이네."
"……."
"빨래판과 축구공의 차이인가."
"……."
은별이가 들으면 제대로 노할 소리를 선뜻 하면서 민국은 순수하게 감상을 표명할 따름이었다. 어찌 됐건 간에… 옷을 너무 많이 골라버렸다. 못해도 열 벌…. 애초에 이걸 전부 살 생각도 없던 유이였다.
"여기서 아홉 벌은 유이 씨가 맘에 드는 거로 골라서 사시고요."
"……."
"이 한 벌은, 여기 카드요."
"……."
그때였다. 느닷없이 민국이 카드를 건넨 것이었다. 유이는 직원이 건네받는 그의 카드를 보면서 순간 이해 못하겠다는 듯 민국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민국이 말하길.
"엇흠, 저의 스승을 향한 답례입니다."
"……."
"그리고 앞으로 여성스럽게 차려 입고 다니십쇼. 그래야 나 이런 사람 스승으로 두었다 해도 안 창피하지."
"……."
"얼마입니까?"
이윽고 직원에게로 향하는 민국이었다. 막 옷들을 계산하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12만원입니다."
"예? 헐… D, DC 좀…."
"……."
옷 한 벌이 12만원이라니… 역시 백화점은 백화점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민국이나 유이가 버는 돈을 감안할 때 큰 돈도 아니었으니….
"……."
유이는 민국이 입어보게 했던 옷들을 돌아보았다. 걔 중에 맘에 드는 옷은 총 다섯 벌 정도로…. 그래도 한 번 구입해보는 건 낫지 않을까 싶긴 했다. 그가 노력한 흔적도 있었고… 말이었다.
"……."
그렇게 손으로 맘에 드는 옷들을 고르는 유이였다.
* *
웅성웅성.
"저 여자 뭐야? 대따 커…."
"우와아… 진짜 대박인데…?"
"오빠! 어딜 보는 거야? 설마 지금 저 여자 가슴이랑 내 가슴을 비교하면서…!"
막 백화점을 나가는 길이었다. 민국의 강요로 새로 산 옷을 입고 백화점을 돌아다니게 된 유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여성들은 차마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향한 질투의 시선을 선보였고, 남자들은 한 번 풍만한 그곳에 안겨보고 싶다는 모성애와 성욕이 가득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민국도 무려 잘 나가는 남자였다. 턱을 들고 당당히 걷는 민국과 옆에서 소극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유이. 그래도 빛이 나는 두 사람의 포스에 길을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볼 따름이었다.
"유이 씨. 이럴 땐 가슴을 더 당당히 피고 걷는 겁니다."
"……."
"설마 흔들린다고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럴 필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흔들리는 게 좋은 겁니다."
"……."
유이는 그저 땅만 보고 걸으면서… 이 시간이 빨리 흐르길 기다릴 따름이었다.
"아이고 참!"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민국이 유이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는 대뜸 유이의 양볼을 뒤에서 붙잡더니,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에 고개를 위로 번쩍 들게 만들 따름이었다.
"보십쇼. 천장의 빛은 이토록 밝은데 어째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겁니까? 뭐 죄 지었어요?"
"놔주세…."
"고개 들고 다니면 놔드릴게요."
어쩔 수 없었기에… 유이는 일단 고개를 성급히 끄덕였다. 이윽고 유이의 얼굴을 놔준 민국이 그녀와 함께 다시 백화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창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 유이는 정말이지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보세요. 어색하긴 해도 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
"그렇게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유이를 격려하는 민국. 그러나 유이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할 따름이었다. 이윽고 백화점을 나온 뒤였을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음에 유이는 처음으로 숨이란 걸 길게 내쉬었다.
"아직 내성이 덜 생겨서 그래요. 가슴도 좀 당차게 흔들면서 시선을 즐겨 보시죠 좀."
"……."
"아, 맞아! 그리고 이것도 받으십쇼."
그리고 불현듯 무언가를 주머니 속에서 꺼내드는 민국이었다. 예쁜 꽃 같은 게 그려져 있는 머리핀이었다.
"제가 아까 전에 사두었던 겁니다. 이 머리핀에는 용기의 증표가 담겨 있지요. 이걸 착용하시면 용기가 생길 겁니다."
"……."
"옛다."
이윽고 유이의 손바닥에 그것을 쥐어주고 몸을 돌리는 민국이었다. 유이는 자신의 손바닥에 포갠 그 머리핀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
그때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머리핀이, 훗날 자신에게 얼마나 용기를 복돋아 줄 지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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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을 위한 에피소드였습니다여자 이제!
다음 에피소드는! 후후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