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88화 (288/369)

288화

"방제는 잘 생긴 현대왕입니다."

"못 생긴 현대왕이요?"

"이놈이?"

"헤헤, 농담임니다영. 지금 들어갈게여!"

이윽고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방을 만든 현대왕의 방에 들어가는 콩딱지였다. 현대왕의 아이디는 yougay였고, 콩딱지의 아이디는 sexygay였다.

"너나 나나 아이디가 비슷비슷하구나."

"행님, 유는 남을 욕하는 것이지만 섹시는 자신을 칭하는 말이지여. 나님은 자신을 착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고 행님은 욕을 하기 위해 쓴 것이니 엄연히 글자의 가치가 다름."

"존나 항문 폭파시키고 싶다."

"무, 무엇으로여?"

어찌 됐든 나머지 유저들도 접속하기 시작했다. 무려 5초 안에 가득 채운 풀방, 6인의 마린 키우기였다. 현대왕은 새로 들어온 4명을 일일히 확인한 다음에 자신의 팬과 콩딱지의 팬으로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xjjs : 와 현대왕 방에 들어왔네 내가

skak : ㅎㅎ 현대왕 못 생김

유저들의 가벼운 조크에 '훗'하고 여유롭게 넘어가면서 현대왕은 말했다.

"그럼 게임 시작하기에 앞서 마린 키우기 룰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린 키우기란, 적을 처치해서 얻는 골드로 병력을 늘리거나 마린의 공격/방어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골드는 시작 지점에 있는 제너럴에게 미네랄로 환전이 가능, 옆에 있는 메딕으로 회복이 가능하지요. 마린을 키우는 게임이며 최종 보스인 캐리건을 처치하면 승리합니다. 다른 버전은 캐리건이 쫄따구로 나오지만 원조 버전은 캐리건이 보스입니다."

"행님 이 게임 오래 해보셨나봄."

"내 원래 첫 여자 친구가 마린 키우기다. 한 때 365일을 마린과 함께 사랑을 속삭였지."

"헠, 행님 엉덩이 구멍이 장난 아니게 커졌을 거 같아여."

이렇다 할 소개도 없었으나 이미 공 수 중에 수로 몰린 현대왕이었다. 어찌 됐든 유저들도 준비가 되었겠다, 현대왕은 곧장 스타트를 눌렀다.

"자, 들어갑니다. 딱지야! 잘하자!"

"네! 행님! 행님이 마음 속으로 팀킬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지는 착한 사람으로서 조금도 생각지 않은 척할게여! 행님이 마음 속으로 누군가를 치려고 하는 걸 느끼고 있지만 절대로 생각도 안하고 있을게여!"

"제길! 들켜버렸군!"

그렇게 시작된 마린 키우기였다.

현대왕은 눈을 떴다.

그에게는 지금 자신의 두꺼운 팔뚝만한 총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연사가 가능한 총으로 반동이 상당했으나 입고 있는 옷은 저그의 유닛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방어구였다.

'훗.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군.'

그는 현재 착용하고 있는 전투구를 확인하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면에서 우르르르 날카로운 가시 같은 양손을 움직이며 돌진해오는 저그 종족이 보였다. 저글링부터 히드라까지… 보기에도 괴상스러운 그 괴물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오고 있음에 현대왕은 물었다.

"딱지 무슨 색이냐. 파란색?"

"넹. 바다 같이 넓은 마음 파란색임."

파란색 마린의 콩딱지가 대답했다. 이외 다른 유저들도 각기 다른 색깔로 무장하고 있었다.

"자! 저그 녀석들을 무찌르고 우리 세계를 되찾자!"

"오오!"

skdkas : 와아!

sexyboy : 우와아!

콩딱지처럼 스카이 라이프로 얘기는 불가능하니 채팅으로 얘기하는 그들이었다. 어쨌든 처음 스타트는 전의를 불태우며 시작된 현대왕의 게임이었다. 일제히 몰려드는 저그 무리와 한 차례 사투를 벌이는 마린 부대였고, 역시 초반답게 서로 팀킬 없이 의리를 지키며 행하는 느낌이었다.

'후후후후후.'

하지만 다들 그렇듯이, 마린 키우기란 원래 배신이 판치는 게임이다. 서로가 팀킬이 가능하게끔 트리거도 없는 게임! 애초에 제작자도 '야야, 좀 키워서 강해지면 팀킬해! 그리고 네가 다 먹어!'이런 목적으로 제작한 게임일 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적을 생각하기 전에 아군이 적군일 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심어주는, 현존 역사상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는 유일무이한 철학 게임!

'원래 인생은 혼자 사는 것. 속는 자가 멍청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왕은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대기를 깠다. 그러던 도중 언덕 지형에 있는 저그 기지 한 곳을 공략하기로 마음 먹고 여섯 명 전원 언덕으로 치고 올라가는데.

"들어가 이 사람들아! 니들이 죽는 건 상관없으니까 들어가서 싸우다 멋지게 뒤져!"

"지는 행님이 명령한대로만 따름네다! 님들 가서 먼저 뒤지셈! 그것이 님들의 의무!"

이럴 땐 쌍으로 단합하는 두 사람이었다. 허나 참여했던 유저들이 아무리 그들의 팬이라 할 지 언 정 뜻대로 다루기 쉬울 리 전무했다. 같은 비제이에 같은 팬이라고… 언덕 쪽을 막으려 할 때마다 기회를 틈타서 나오는 녀석들이었다.

"크으, 영롱한 녀석들."

"크으. 노답이네여."

아쉬워하는 현대왕과 콩딱지. 시청자들이 [ㅋㅋㅋㅋ]하고 웃는 마당에, 현대왕은 진심으로 고뇌했다.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날까!'

애초에 마린 키우기를 이길 생각은 추호도 없던 것이다! 이 게임의 본 목적은 같은 팀을 죽이는 것!

'타이밍을 봐서 그냥 선빵을 쳐야 하나? 아니다! 아직 공업이 모잘라. 지금 내가 선빵을 쳐밨자 오히려 다섯 명에게 일제히 다굴을 맞을 수도 있다. 콩딱지의 힘을 빌리면 한 명을 금방 죽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녀석이 동의하는 척하고는 나를 칠 지도 몰라.'

콩딱지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행적이 사람을 결정하는 법! 지금까지 뒤통수를 몇 번이고 싸대기로 얻어맞은 게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대왕은 방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뒤통수를 맞기 전에 먼저 뒤통수를 때려야 한다!'

멋지게 각오를 다지는 현대왕!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현대왕 뿐이 아니었다.

'후후후후, 온니찡. 인생은 원래 콜라보다 사이다를 선택하는 쪽이 옳은 거예여. 콜라는 톡쏘는 맛이 있지만 사이다도 톡 쏘는 맛이 있거든여.'

나름대로 논리적인 생각을 하면서 콩딱지도 입에서 흐르는 침을 소매로 닦으면서 게임에 집중했다. 그녀도 지금 언제 팀킬을 할까 긴장감에 휩싸여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실저잉었다.

…그리고.

xjjs의 속마음 : 현대왕 언젠간 한 번 죽여보고 싶었는데 skak : 콩딱지 너무 나대더라. 나보다 나대는 놈은 싫어. 나보다 잘난 거 같잖아.

skdkas : 크큭, 다 죽여버릴 테다. 내 마음 속의 증오가 일깨워진다.

sexyboy : 앙 당하고 싶다 앙

이외 유저들도 마치 만장일치인 것처럼 공통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들 비제이와 좋은 방송을 만들기 보단, 자신만의 이득을 위한 순간을 원하는 것이었다.

"……."

"……."

"야, 딱지야. 말 좀 해라. 넌 왜 방송을 하는 애가 왜 이렇게 말이 없냐."

"히히, 행님찡. 지는 오늘 방송을 키지 않았으니 방송인이 아닌 셈이지여! 공중파 프로에 주연으로 나오는 사람과 게스트가 어찌 같다고 생각하시나여!"

"하지만 게스트에 나오는 사람도 일말의 활약을 꼭 해야 하는 법이지. 그건 의무이고 그럼으로서 존재감이 올라가는 법이다."

"지의 존재감은 가만가만 있어도 드러나는 법이에여! 지는 존재감을 오히려 낮춤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공평화가 되고, 그 공평화를 통해서 서로가 평등해지는 유일무이한 아름다운 방송을 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여! 행님은 설마 그런 나의 큐티하고 깜찍한 마음을 모르시는 건가여? 설마설마 그런가여?"

'큭, 이 자식.'

'후후후후훙!'

서로의 기싸움이 일어나는 가운데.

"야, xjjs. 네가 언덕 올라가서 저그 기지 나머지 것 좀 처리해라."

xjjs : 나 현대왕 팬 아님.

"미친 놈이? 아까 내 방에 들어왔다고 좋아했었잖아 이 딱따구리 새끼야."

xjjs : ??

기억 안 나는 척, 모른 척하는 xjjs였다. 대단한 패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먼저 쳐도 죽지만 먼저 맞아도 죽는다.'

고로 이곳에서 제일 존재감이 높은 사람일 수록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특히나 방송인에 속하는 현대왕과 콩딱지는 오히려 더 쉽게 타겟점으로 잡혀서 죽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고로 현재 상황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말 좀 해라 ㅋㅋㅋㅋㅋ]

[왜 갑자기 말을 안 해?]

[존재감 죽이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일부러 말을 안하는 콩딱지와 현대왕이었다. 그리고 오로지 게임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다른 마린들의 체력바를 확인한다. 다들 체력이 괜찮은 편이었으나, 체력이 많이 깎여도 메딕에게 가면 곧장 치료가 되었기 때문에 결코 팀킬을 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크으, 누군가 둘러쌓인다면 좋을 텐데.'

그리 생각하면서 한 놈부터 죽이기 위해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막 선두에 서서 나대던 xjjs가 저글링들과 히드라들에 순식간에 포위되어 오락가락 못하게 되었다.

"오오!"

"욜 행님!"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마치 현대왕과 콩딱지가 의기 투합한 듯이 서로에게 소리쳤고, 일제히 공격 표시를 xjjs로 겨냥했다.

"야! 빨리 우리의 소중하고 현명하고 멋지고 다이나믹한 xjjs를 구해! 빨리 xjjs를 구해서 우리 쪽으로 오게 해!"

"님들찡들! xjjs님 죽으면 증말증말 위험함여! 빨리 우리 쪽으로 오게 해야 해여! …어이쿠 그만 실수로 a키를 xjjs님에겡!"

'빨리 되돌려야징!'하고 덧붙이면서 콩딱지는 그대로 xjjs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대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외 유저들 중에 순수한 sexyboy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의기 투합하듯이 xjjs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히드라와 저글링들에게 포위되어 공격 당하고 있겠다, 혼란스러워서 이렇다 할 대처도 못하고 있겠다… 일제히 xjjs를 죽이는 네 사람이었다.

xjjs : 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도배를 하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xjjs였지만 이미 늦었다! '끄아악!'소리와 함께 5초 만에 죽는 xjjs의 마린이었다.

'나이스!'

'요시여!'

속으로 쾌재를 불러 일으키는 두 사람! 하지만 그건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sexyboy : ??

다만 sexyboy라는 사람은 저글링과 히드라가 원래 이렇게 쌨냐는 것처럼 채팅으로 의아하단 물음표를 보내고 있었다. 훗, 순수한 녀석. 현대왕은 녀석의 순수함에 코웃음치면서 생각했다.

'순수하면 이 사회에서는 지는 법. 그것이 바로 지니어스 게임이다.'

졸지에 마린 키우기는 하나의 지니어스 게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현대왕이 눈물을 참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러분… 우리의 사랑스러운 전우가 한 명 죽고 말았습니다."

xjjs : ㅈㄹ

"지금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xjjs를 위해서 최후의 순간까지 열심히 싸우도록 합시다! 여러분!"

동조하는 참가 유저들이었다.

sexyboy : ……네 ㅠㅠ

skak : 으아아아아! 어떻게든 xjjs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skdkas : 가만두지 않겠어어어어어!

xjjs : 미친 놈들 나가 죽어라

진심으로 빡쳐서 한 소리 하는 xjjs였다. 애초에 마린 키우기에서 마린이 죽어도 나가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진심으로 빡쳤는지 막무가내로 도배를 하는 xjjs.

xjjs :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띡, 하고 xjjs가 갑자기 방에서 나가진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표시창이 떴다.

(영어로) xjjs가 드랍되었습니다.

"!"

"!"

skak : !

skdkas : !

sexyboy : ??

현대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했다.

'드랍!'

콩딱지도 마찬가지였다.

'드랍이라니영!'

드랍… 스타크래프트의 아군 참가자든 적군 참가자든 전부 강제로 나가버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게임…. 승패를 결정하는 요소를 뒤엎을 수 있는 슈퍼 사기템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린 키우기의 참가자 중 한 명이 사용했고 그것은 곧….

'…….'

이 다섯 명 중에, '드랍'이라는 무시무시한 아이템을 소유한 녀석이 있다는 것.

'누구지? 누구냐.'

현대왕의 촉이 예민해졌다. 콩딱지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겠군.'

씨익하고 미소 짓는 현대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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