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다음도 여자 신청자였다.
"답정너 때문에 빡친 관계로 10초 안에 빨리 이야기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빨리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매우 분노하여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을 부를 지도 모릅니다."
"…저희 학교에서 쉼터 이름을 짓는데 잘 지으면 상금도 준대요. 저희 학교는 요고이고 쉼터는 1층에 있는데요. 어떤 작명이 좋을까요?"
"흐음."
고민 상담이었다. 현대왕은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여고에다가 1층에 쉼터라… 심지어 상금까지 주고 빈유와 거유가 있고 남고딩도 한 번씩은 다녔을 그런 학교라…."
이따금씩 거론되는 남고딩은 이젠 현대왕의 방송에서 때어놓을 수 없는 레파토리였다. 이윽고 민국이 엄지와 검지를 딱 맞대고 치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이거 어떻습니까?"
"어떤거요?"
"좆도 없는 곳."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혹은 여고 계단."
"……."
"왜, 맘에 안 드십니까? 좆도 없는 곳이 맘에 안 들어요?! 여고 계단이 맘에 안 드냐고 이 사람아!"
"차, 차라리 여고계단으로 하는 게…."
"아니야! 생각이 바뀌었어! 대세는 좆도 없는 곳이다! 이제부터 당신네 학교의 1층 쉼터는 좆도 없는 곳이야! 어! 이 좆도 없는 학생아!"
[히익ㅋㅋㅋㅋㅋㅋ]
[미친놈ㅋㅋㅋㅋ]
남고딩이 봤으면 정강이를 발등으로 걷어차버렸을 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어마무지한 드립이었다. 그리고 시청자로 들어온 여학생은 약간 일반인 끼가 보이는 여자였다. 현대왕의 드립에….
"좆도 작으시면서…."
"뭐시라?"
"좆 작은 사람."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가는 모습이었다. 사실상 현대왕의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중에는 정상인은 결코 없던 것이다. 아니, 정상인조차도 비정상인으로 만드는 게 바로 현대왕 마성의 매력! 결단코 좋은 매력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멘탈이 비상식적으로 강해진다는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이었다.
이윽고 다음 시청자가 들어왔다.
"넌 뭐냐."
"제가 채팅 칠 테니까 한 번 맞받아쳐보셈."
그리고는 토크온 방 전용의 채팅에 글을 적는 남자 시청자였다.
[dksakdw : 난 어린 여자아이]
[현대왕 : ㅇㅇ]
[dksakdw : ㅋㅋ {손가락으로 현대왕을 가리키며}]
[dksakdw : 저 남자 모태솔로래 ㅋㅋㅋㅋ]
[현대왕 : ……]
모태솔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모태솔로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본래 솔로들은 커플이 있으면 사람을 두 명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신비한 충동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왕은 커플인 사람으로서 여유롭게 넘어가기 보단, 그에 상응하는 맞장구 반격을 선보이자고 생각했다. 고로 이렇게 채팅을 쳤다.
[현대왕 : 고영욱 : 웃어?]
[dksakdw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감옥에 있을 그를 애도하며, 현대왕은 방송을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현대왕…."
"잠깐! 이번엔 내가 문제 낸다."
"……."
들어온 시청자는 이번에도 여자였다. 은근히 여자에게 인기 많은 막장 비제이 현대왕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토록 여자들이 들끓는 건 역시 그는 여자와 끊어질 수 없는 인연?
"사냥꾼이 사슴을 잡으려고 총을 들고 쫓고 있었는데, 사슴이 도끼질을 하는 한 청년을 보고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사슴은 숲속에 숨었고 청년은 다가온 사냥꾼과 대화를 하였지."
"네."
"사냥꾼이 사슴이 어디 있냐고 묻자, 청년이 말하길 '어어… 사슴은 저쪽으로 도망갔어요….'라고 했지. 그러자 사냥꾼이 거짓말 하지 마세요 사슴 여기 있잖아요 하면서 청년을 덮쳤다! 그리고 잠시 후 청년을 덮친 사냥꾼이 뭐라고 말했게?"
"읔… 안에다 사슴…."
"……."
"……."
[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어떻게 저런 미친 드립을 할 수가 있지? 나도 상상을 못한 엄청난 병맛 드립이다. 넌 역시 내 시청자야. 인정."
"고마워요."
"그래. 가는 길에 노래 한 곡 불러주마. 안녕 미워도 너는! 시청자~."
그리고 추방 당하는 여자 시청자였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안타까운 시청자가 떠나버렸습니다."
[네가 추방시켰잖아 ㅋㅋㅋ]
"인생에 추방도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지. 자, 토크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토크온도 마친 현대왕이었다. 이제 본격 오늘 할 게임을 진행할 때가 되었다.
"자, 오늘 할 게임은 마린키우기입니다."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하는 현대왕이었다. 오늘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안의 유즈맵! 마린키우기!
"여기서 유즈맵이란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스타크래프트에서 다른 게임을 제작해서 진행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유즈맵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마린키우기죠. 마린 키우기는 유즈맵을 처음 해보는 초딩 분들이라면 한 번쯤 환장한 듯 빠져서 몰입하게 되는데요. 오늘 제가 할 게임은 바로 그것입니다."
마린 키우기는 다만 버전이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사골이자 많이들 기억하는 버전은 가로로 나아가야 하는 버전이었다. 현대왕은 오늘 그 버전으로 하자고 생각했다.
[마린 키우기라… 훗, 전 한 때 마린 키우기에 미쳐 있었죠.]
[마린 키우기하면 막 서로 팀킬하고 그런 맛이지 않나?]
[ㄴ 나쁜 새끼야]
[ㄴ ? 너 뭔데 나 욕하냐? 나 아냐?]
[ㄴ 분명히 마린 키우기 하다가 너랑 만났을 거야 이 나쁜 새끼야 너같이 팀킬하는 놈들 때문에 마린 키우기 거의 다 깨다가 항상 망하잖아]
[ㄴ ㅉㅉㅉ 꼴 좋당 꼴 좋아 마린 키우기에서 팀킬 당하는 건 네 운명이야!]
"그만 싸우거라 이 소드엠퍼러가 휘두르는 칼날의 먼지 묻은 때 속의 벌레 같은 것들아."
분쟁이 일어나는 채팅방을 잠재우고 슬슬 게임에 임하려던 찰나였다. 뚜루루루루, 그때 스카이 라이프로 누군가가 연락을 걸어왔다.
"앵?"
전혀 의외의 상대였다. 무엇보다 오늘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은커녕 잠수를 탈 줄 알았던 인물의 등장이었다.
'서라 이 녀석이 웬일로 들어왔다냐. 방송하려고 하나.'
강서라! 방송계 닉네임은 콩딱지! 혼자서 방송하기 보단 이 녀석과 방송을 하면 한결 편해지긴 하였다. 무엇보다 말도 많고 드립도 알아서 쳐주니까 굳이 방송의 재미를 살리겠다고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고로 현대왕은 곧장 녀석의 연락을 받았다.
"야 콩…."
"콩?! 행님 너무하시네여! 어쩜 지를 2등으로 만들 수가 있져! 지는 3등을 하고 싶었는데 1단계 올려버리다니여! 삐쳐서 끊음 뿡!"
뚝. 뚜루루루루루루….
"야 딱…."
"헐! 행님 너무하시네여! 어쩜 지의 성에 가까운 콩을 제외하고 딱을 먼저 부를 수가 있져? 행님은 지의 콩이 그렇게도 듣기가 거북하셨나여! 슬퍼서 눈물 나오다가 삐쳐서 끊음 뿡!"
뚝. 뚜루루루루루루루….
"병신아."
"넵."
드디어 반응하는 콩딱지였다.
"안뇽안뇽! 콩딱지임데스까! 현대왕 시청자들 하잉하잉!"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인사하는 콩딱지였다. 참고로 시청자들은 콩딱지가 여자인 걸 몰랐다. 고로 어설픈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청자들은 [ㅋㅋㅋㅋ]하고 웃거나 [우우]하면서 야유를 보였다.
'여자인 거 알면 다 '콩딱지당 우와아아!'할 새끼들이.'
이래서 요즘 여자들 중에 남자를 이용해 먹는 여자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못된 여자들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
"근데 너 방송은 안 켰는데 왜 스카이 라이프는 들어왔냐?"
"히잉, 행님은 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싫으셨나여? 너무너무하시네영…."
돌연 풀죽은 듯한 목소리를 내는 콩딱지였다. 그런 콩딱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암과 동시에 300년의 시간을 보낸 감각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현대왕은 일순간 성적인 충동이 들 수밖에 없었다.
'따먹고 싶다!!!!!!'
라고 본능적으로 충동이 들 뻔한 것이었다. 아직 고x욱을 따라 감옥으로 향하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간신히 충동을 억제하면서 현대왕은 잠잠히 말했다.
"사실 네가 존나 보고 싶었는데 마침 나타나줘서 고마웠다. 같이 방송이나 하자."
"이잉, 실은여. 컴퓨터가 좀 맛이 가서 방송을 키면 자꾸 팅겨여. 그래서 컴퓨터 사야함."
"무슨 너네집 컴퓨터는 항상 일찍 고장나냐. 야동이라도 보냐?"
"헐! 들킴! 행님 내가 어제 했던 일도 기억할 듯!"
"훗, 어제 네가 본 건 서양 야동이겠지."
"게이 야동 봤는데여? 노답이시네여."
"으아악 슈벌럼이 내 항문 조심해야겠다!"
그런 드립을 치면서 자유롭게 방송을 즐기는 두 사람. 워낙 죽이 잘 맞는 둘이다 보니까 시청자들은 [ㅋㅋㅋㅋ]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개잘 어울리네 ㅋㅋㅋㅋ]
[역시 남고딩도 좋지만 콩딱지도 좋네 ㅋㅋㅋ]
남자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비제이 성향을 따지고 말하는 시청자들이었다. 현대왕도 그건 어느 정도 공감했다. 확실히 콩딱지는 이래저래 자신의 방송 성향과 상성이 딱 좋은 타입이었다.
"아무튼 방송은 못한다 치고, 그럼 같이 게임은 할 거냐."
"행님 무슨 게임하는데여? 지는 스팀에서 15000원짜리 정도 가격은 나와야 게임해여!"
"훗, 그렇군. 그럼 딱 그에 견주는 좋은 게임이 있지."
"오옹 뭔데영?"
"스타크래프트다."
"행님. 수능 날 지났는데 다시 엿 드셈."
"요즘 엿 사먹었는데 맛있더라. 너도 하나 줄 테니까 나중에 집에 놀러와라."
"사, 사양할게염!"
어찌 됐든 콩딱지가 이제 결정을 내릴 차례였다.
"의잉. 마린 키우기하면 씁쓸한 기억밖에 없는데 꼭 해야 하나영? 지한텐 아주 씁쓸한 기억이 있단 말이에염. 같은 팀이 마린 업그레이드 하고 있는데 지가 마린 다섯 기 뽑아가지고 팀킬해서 죽였던 씁쓸한 기억잉!"
"마침 시청자 중에서도 팀킬했던 시청자랑 싸우는 시청자가 있었는데, 그 시청자는 앞으로 널 죽도록 싫어하겠구나."
"그럼 나한테 시집오겠군여."
"개그는 여기까지 하고."
현대왕이 재차 물었다.
"할 거냐 말 거냐."
콩딱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여."
"언제."
"일년 후에여."
뚝하고 스카이 라이프를 끊는 콩딱지였다. 동시에 스카이 라이프에서도 접속을 종료하는 모습이었다.
"……."
혼자 남은 현대왕은 늘 그래왔듯 콩딱지의 통수 아닌 통수에 잠시 말을 잃었다. 시청자들이 [ㅋㅋㅋㅋㅋ]하면서 현대왕을 비웃기 시작했다. 현대왕은 '쩝'하면서 입맛을 다시고는 생각했다. 뚜루루루루….
"다시 등장!"
"오냐."
뚝. 스카이 라이프에서 접속을 끊었다가 다시 접속을 해서 연락을 하는 콩딱지. 그런 콩딱지에게 이번엔 반격을 하기 위해 현대왕이 대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동안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네가 연락해라 네가 연락해라 콩딱지 이 슈버러마 네가 연락해라아아아아."
시작되는 기싸움! 하지만 1분이 지나도 콩딱지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결국 먼저 연락을 하게 된 건 현대왕이었다. 아쉬운 사람이 먼저 연락을 하는 수밖에.
"어맛? 행님 올만이네여! 무슨 일로 갑자기 연락하셨어여? 지 수능 공부 중이라 매우매우 바쁜데!"
"스카이 라이프 틀어놓고 수능 공부하는 기세 보소. 역시 너도 보통 놈은 아니다.그런 고로 너에게 이런 별명을 선사하고 싶구나."
"무슨 별명이여?"
"좆도 없는 놈."
"히이이익."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현대왕이 하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찌 됐든 할 거지?"
"넹 합니다영."
콩딱지도 이미 스타크래프트에 접속한 상태였다. 비록 같이 방송을 키진 못하지만, 현대왕의 방송에는 나오니까.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리고 이제 시작했다.
"마린 키우기, 시작합니다."
배신과 배신이 난무할 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