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마린 키우기>
“어, 음… 예나야.”
“미안… 끅! 해… 민국 … 흑! 아….”
“어어, 나한테 미안해 할 일은 아니니까 너무 울지 마.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한참 소동이 있은 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예나는 민국과 단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졸지에 민국에게 못 볼꼴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예나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민국은 난감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민국이가 많이 실망했을까봐….”
“…….”
실망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소 충격은 충격이었다. 설마 예나의 입속에서 그런 상스러운 이야기가 나오다니…!
“흑….”
“아, 예나야! 아니야! 아무리 예나가 그런 말들을 했다고 해도 난 실망하지 않아.”
강경하게 선언하는 민국이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던 예나가 돌연 멈칫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올려 민국을 쳐다보았다.
“정…말…?”
“암 그러고 말고! …다만.”
강경하게 선언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민국이었으나, 그래도 예나가 아까 한창 방송 놀이를 할 때 사용했던 컴퓨터로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방송은 가능한 한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민국의 말이 맘에 와닿는 예나였다. 일순간 방송에 대한 재미를 봤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 역시 자신이 방송을 하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가늠한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민국과 취미를 공유할 생각으로 방송에 도전했던 것이니… 사실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끊는 게 옳은 도리이리라.
무엇보다 민국이가 원치 않는데 한다면 그건 민국이가 굉장히 슬퍼할 일일 테니까.
“응… 민국아….”
“미안해 예나야. 괜히 사과하게 되네.”
“아니야… 그래도 즐거웠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니까. 예나는 솔직하게 소감을 표명했고, 강경하게 방송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즐거웠어….’
민국의 옷깃을 꾹 잡고 컴퓨터를 쳐다보면서 예나는 속마음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흘렀을 때였다.
예나는 한창 방송을 즐길 때 밤낮이 바뀌었던 걸 고치느라 상당히 고생하였다. 그리고 결국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돌아와 이제는 눈 밑에 다크서클이 없는 정상인이 되었는데… 간만에 민국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자 그의 방으로 들어갔던 찰나였다.
“민국아…?”
“아, 예나야.”
막 책상에 앉아 서적들을 펼쳐 들고 있는 민국이 보였다. 그가 보고 있는 서적의 내용을 흘긋 보니, 다음 학기에 필요한 중요한 내용들이 보였다. 예나는 그의 근처로 다가가서 서적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공부하는 거야…?”
“그렇지. 미리 공부해두는 게 나중에도 좋으니까. …아! 그렇구만!”
“???”
“예나야, 나 공부 좀 도와줘.”
민국에게 요리를 대접하러 왔던 예나는 졸지에 공부를 가르쳐 달란 제안을 받자 눈을 휘둥그레 뜰 따름이었다. 이윽고 민국이 웃음 지으면서 말을 잇는다.
“왜, 평소에도 내가 어려워하는 문제들이 있으면 예나 네가 풀어주곤 했었잖아. 중학교 때든 고등학교 때든.”
“…….”
“이번에도 그 도움 좀 받으려는 거지.”
확실히 머리 자체는 민국보다 예나가 더 우수한 편이었다. 공부 자체를 즐기는 편에 속하던 예나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예나는 항상 민국에게 공부를 곧잘 가르쳐 주곤 하였고, 민국은 그렇게 모르던 문제들을 쏙쏙 습득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공부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 받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인지라 감회가 새로웠다.
“으응….”
“오오. 역시 예나양.”
“도와줄게… 잠시만 기다려줘.”
그리고 자기 방에서 서적들과 함께 볼펜을 가지고 민국의 방으로 돌아온 예나.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의자에 앉아서 같은 책상에서 함께 문제 풀이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중하는 민국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예나….
‘아….’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예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서로 공유하는 취미라는 게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았다.
예나는 언제든지 민국이가 자신을 필요로 하면 달려와서 무슨 일이든 도와주곤 했으니까. 그리고 그걸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곤 했으니까. 사람마다 이야기를 공유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다 다른 법이다.
‘…….’
예나는 미소 짓고 이 순간을 즐겼다.
* *
“예, 안녕하세요. 현대왕입니다.”
오랜만에 합동 방송이 아닌 혼자만의 방송을 준비하는 현대왕이었다. 채팅방에 시청자들이 우후죽순 들어오기 시작했고, 현대왕은 채팅방에 올라오는 채팅들을 얌전히 쳐다보면서 즐겼다.
[와아 현대왕이다]
[현대왕 만세]
[빠샤빠샤]
“훗, 어딜 가든 나의 인기란 넘쳐나는 법이지. 이 인간들아, 나 너무 좋아하지 마. 보통 사람은 한 번 좋아하다가 코딱지 파는 모습만 봐도 실망하게 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 코딱지 파는 모습을 보면 금을 본 것처럼 생각해서 오히려 심장이 두근두근해져버린단 말이야. 그러다 니들 다친다.”
[쇼하네]
“너 벙어리.”
진짜로 욕한 시청자에게 벙어리를 먹이는 현대왕이었다. 하지만 한 명의 시청자만 [쇼하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무려 오십 명의 시청자들이 순서대로 [쇼하네]하고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벙어리를 먹어도 상관없다.
현대왕에게 욕을 할 수 있다면…. 오로지 그 마음가짐으로 채팅을 치던 그들은 쾌락을 얻은 만큼 응징도 정당히 받게 되었다.
“흐음, 어찌 됐든 오늘도 평화롭구만.”[현대왕님 현대왕님]
그때 현대왕을 호명하는 시청자 한 명의 채팅이 눈에 띄었다.
[저 여친 생김]
“오올~.”
[행복하네여 후후. 어서 부러워해주세요.]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시청자의 채팅을 보던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반쯤 썩소를 지으면서 멋지게 한 마디를 날려준다.
“성가신 여자를 떠맡았다고 후회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어.”
[ㅋㅋㅋㅋㅋㅋ]
“이거 은별이가 보면 나 맞아죽겠다.”
그리고 예나는 어쩜 울지도…. 현대왕은 오늘 녹방은 가능한 한 편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왕님 아빠가 고래 잡자고 하는데 뭐 들고 가야하죠? 고래 잡다가 사망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ㅠㅠ]
이번에도 어떤 시청자의 왈이었다. 은근히 눈에 띄는 내용에 현대왕은 굳이 말로 하지 않고 타자로 쳐주었다.
[현대왕 : 꼭 잡을 ‘고래’가 있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대왕의 비아냥에 질문했던 시청자가 [으아아앙]하고 눈물을 흘린다. 멘탈이 은근 약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 현대왕의 방송을 몇 번 보다보면 달라지겠지….
‘나의 방송은 사람의 멘탈을 성장시키는 방송. 재미와 함께 멘탈도 강화시키는 일석이조 교육용 방송이다!’
그런 쓸데없는 자부심과 함께 현대왕은 오늘 무슨 게임을 할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시청자들은 질문 파도타기에 맞들렸는지 계속해서 현대왕에게 자신의 사적인 고민들을 질문할 따름이었다.
[우리 학교 도서관 작명 좀 해주세요. 도서관 자명 괜찮은 걸로요 ㅎ]
“속수무책.”
[방송 도중에 키는 게 BGM이라던게 BGM의 약자가 뭐예요? 알려주세요]
“베지밀 새끼야.”
[ㅋㅋㅋㅋㅋㅋ그럼 OST의 약자는 뭔데요?}
“OST랄로피테쿠스.”
[아하~]하고 납득하는 시청자. 이윽고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현대왕은 못 마땅했는지 반대 입장으로 나가기로 했다.
“야야, 정 그러면 내가 질문해볼게. 니들이 한 번 맞춰봐라. 내가 항상 이야기 들어주었으니까 한 번 너희들이 대답도 해볼 때가 됐잖아 안 그러냐?”
[ㅇㅇ]
[어디 해보셈]
“좋아, 어디보자. 무슨 이야기가 좋을까.”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현대왕이었다. 이윽고 손뼉을 치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독화살을 맞은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의사에게 독이 스며든 어깨를 내주며 뼈를 긁어 달라 하지. 하지만 마취제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수술은 가혹했다. 하지만 사내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걸 보던 의사가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하는데…. 과연 어떻게 말했을까?”
[????]
[나 죽어?]
“땡.”
[섹스]
“땡. 병신아.”
[ㅠㅠ]
[수술이 완벽하군요?]
“내 방송에 이런 정상인이 있다니. 끔찍하도다, 나가라.”
[제, 제길! 타쿠타쿠오타쿠!]
“네 다음 오덕후.”
결국 아무도 못 맞히는 것 같자 현대왕은 답을 내놓았다.
“어, 씨발 이쪽 어깨가 아니네?”
[ㅋㅋㅋㅋㅋ]
[에이 뭐야….]
[노잼]
[꿀잼인데]
웃는 시청자들과 정색하는 시청자들. 같은 방의 시청자들임에도 개그 코드가 이리 다를 수가! 역시 현대왕의 방송에 있는 시청자들은 정말이지 무수할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런데 이런 질의응답 오랜만에 하니까 은근히 재밌네.”
불현 듯 비제이를 불러 질의응답 퀴즈 시간을 해보고 싶어진 현대왕이었다. 스카이 라이프에서 대충 아무나 찾던 현대왕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함께 할 비제이가 없었다.
남고딩도 접속해 있지 않았고 콩딱지도 오늘은 잠수였고, 예나는 이제 방송을 접은 실정이었으니까. 강강 또한 아까 전에 방송을 하고 지금은 종료한 상태였다.
“흐음, 별 수 없지.”
간만에 토크온에 접속하는 현대왕이었다. 이를 보고 시청자들이 [오오]하면서 감탄의 소리를 외친다. 현대왕은 간략하게 선언했다.
“본 컨텐츠 진행하기에 앞서 딱 5분 동안만 진행합니다. 비밀번호로 방 만들 테니까 한 명씩 들어와서 저에게 질문 던지면 됩니다. 그럼 제가 대답해드리지요.”
[ㅇㅇㅇㅇ!]
[기대 만발!]
토크온 방을 개설함과 동시에 비밀번호를 알려줄 준비를 하자 시청자들은 언제라도 들어갈 태세를 취했다. 이윽고 현대왕이 비밀번호를 언급한 순간이었다. 바로 한 명의 시청자가 토크온 방에 접속했다.
“오, 어서 와라 백성이여.”
“섹스섹스! 섹스섹스! 크윽! 자기야 오빠! 간다! 으아아악! 아아아앙! 이쿠이쿠이쿠요!”
“이, 이럴 수가!”
어느 곳에든 항상 또라이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이 토크온 방에 들어온 사람은 일종의 성 또라이…. 성적인 드립을 치면서 즐거워하는 부류였다. 그리고 보통 비제이들은 이런 또라이가 등장하면 바로 추방시키거나 욕지거리를 한 사발한다. 하지만… 현대왕은 달랐다.
“섹스섹스! 아아아앙! 가버렷!”
“훗, 약하군. 나의 남고딩은 너처럼 하찮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어.”
“섹…스! 섹슥세슥세스!….”
“그리고 진정한 신음소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섹스게셍섹슥세게셍…!”
“아앙 현대왕의 그곳이 너무 커여! 가버렷! 조임이 장난 아니야! 으윽… 싸, 싼다 고딩아! 너의 안에 그대로 깊숙이 쌀게! 으응… 아, 아직 다메요… 지금 싸면…!”
“섹…스섹스….”
“아아아아아앙! 안에 들어오고 있어! 푸슛푸슛 안에 따사로운 것들이 들어오고 있어! 마치 온몸이… 아앙 더 이상 못 참아 아아아아앙!”
“…….”
차마 현대왕의 성드립을 이길 자신이 없었는지 나가버리는 시청자였다.
“병신. 너의 초급 내공으론 고급 내공에 속하는 나를 범접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녹방을 남고딩이 오면 현대왕은 또 맞아죽겠지. 또다시 이 부분도 편집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윽고 다음 시청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현대왕님.”
남자였다.
“네, 안녕합니다.”
“질문할게요, 커흠.”
“커흠, 하십쇼 커흠.”
회심의 질문을 날리는 질문자였다.
“남자들이 저만 보면 자꾸 바지를 내려요. 왜 그러는 걸까요?”
“이름이 변기 씨 맞으시죠?”
다음 시청자. 이번엔 여자였다.
“현대왕님….”
“오오, 네 여성 분.”
“저… 고민이 있는데요.”
“네, 말씀해보십쇼.”
그녀가 울상을 지으면서 중얼거린다.
“주민등록증 나온 지가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술집이나 편의점 pc방 가면 자꾸 민증을 달라 해요. 왜 자꾸 민증을 달라하는지… 귀찮아 죽겠어요….”
“네가 사람인지 확인해본 거겠지.”
뚝하고 추방시키는 현대왕이었다. 답정너에게는 가차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