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왕의 표본-283화 (283/369)

283화

"…방송?"

당연히 은별은 놀랄 노자였다. 왜냐하면 예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적 없는 은별조차도 그녀가 대충 어떤 타입인지 곧잘 알고 있었다. 약간 요조숙녀 같은 느낌에 현모양처…. 그리고 전혀 방송 같은 날라리(?)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그녀가 방송을 한다니…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네… 방송 해보게요…."

참 오랜 고심을 하고 결정한 예나였다. 애초에 그녀도 자기 자신이 방송에 적합한 스타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국과 뭔가 취미를 공존하고 싶은 맘이 있는 그녀였다.

강은별처럼 서로 방송에 대한 컨텐츠도 짜보고 싶었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들도 하면서 이것저것 담소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런 예나의 욕망이 결국엔 방송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만 것이었다.

"예, 예나야?"

"안 될까… 민국아…?"

예나가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면서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다. 같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깜찍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내 얼굴에 흠뻑 빠진 민국이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괜찮고 말고! 얼마든지 해도 돼 예나야!"

"야! 너 제정신이야?!"

당연지사 은별이 제3자로서 끼어들면서 소리쳤다. 그녀는 당차게 수긍하는 민국에게 소리쳤다.

"애초에 방송이 어떤 건지 알고 있으면서 그런 걸 승낙하면 어떡해? 그리고 방송이 그렇게 쉬워 보여?!"

"쉬워 보여서 하려는 건 아니에요…."

은별이 돌아보면서 소리치자 예나는 그렇게 대응했다. 민국은 다소 진지해보이는 예나의 결심을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짜 같은데.'

그래도 민국도 보는 눈은 있는지라 예나의 맘이 영 거짓 같지는 않았다. 이윽고 불만 어린 표정을 짓는 은별을 돌아보면서 귀띔하는 민국이었다.

"그래도 은별아, 예나도 진심인 거 같은데 한 번 시켜보는 건 어떨까?"

"…하아, 너 정말…."

은별은 한숨만 내쉴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만 도리도리 저을 따름이었다. 민국은 피식 미소 지은 다음에 은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예나를 호명했다.

"예나야."

"으응…."

"그럼 한 번 해보자."

예나에게 방송에 대한 기초를 가르치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파뿌리TV에서 방송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으로 방송을 차리는 건 쉽지 않았다. 누구나가 다 한 번씩은 방송을 만만히 보고 도전해보곤 한다. 하지만 사람을 끌어모으기도 어려울뿐더러, 사람이 모인다 한들 그걸 쉽사리 유지시키기가 힘들었다.

고로 운도 좋아야 했고 실력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지.'

일단 사람을 끌어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나에게 말을 들어보기를, 애초에 예나는 전문 방송인이 아니라 그냥 취미로 삼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람이야 민국과 같이 합동 방송을 하면 언제든 맘에 들어하는 시청자들이 싸그리 들어올 것이었다.

'문제는 멘탈이 견디냐인데….'

민국은 솔직히 그 부분이 좀 걱정되었다.

"예나야, 정말 괜찮겠어? 인터넷 세상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민국아… 하지만 괜찮아. 꼭 해보고 싶어…."

예나의 고집은 완고했다. 오히려 행동적인 면에선 은별보다 예나의 고집이 한층 완고할 것이었다.

그녀의 그런 성격을 알았기에 민국은 더 이상의 설득은 올곧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예나와 단둘이 예나의 방에 있는 실정. 민국은 컴퓨터를 키고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마이크와 이어폰을 이용해서 시청자들이 보기 적합하게 방송 음량을 조절했다.

"한 번 말해볼래 예나야?"

"응. 아… 아아…."

"괜찮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

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모르는 점은 항상 이런 식으로 친절하게 도움을 주는 민국이 예나는 마냥 고마웠다.

이윽고 나머지 방송하기 부족한 부분을 일일히 마우스로 컨트롤하면서 짜맞추는 민국이었다. 그런 민국의 집중하는 옆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던 예나…. 그러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얼굴과 얼굴이 가까운 상태였다.

"응?"

"……."

"왜 그래 예나야?"

"……!"

눈이 마주치자 홱하고 고개를 돌리는 예나. 그래도 이미 눈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얼굴은 붉디 붉었다. 민국은 그런 예나의 표정에서 대충 그녀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눈치채고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윽고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민국이 물었다.

"근데 닉네임은 뭐로 지을거야?"

"닉네…임…?"

"응. 막 인터넷에서 짓는 이름들 있잖아. 그런 게 있으면 편하고 좋거든."

아무래도 현대왕이나 남고딩 같은 가명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찻잔…."

"……."

"좀… 이상할까…?"

음… 생각 이상으로 너무 평범해서 개성이 별로인 느낌이었다. 민국은 그 찻잔에 좀 더 개성의 네이밍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에다가 뜨거운 붙이는 게 어때?"

"……."

"아니면 앞에다가 흑화라던가."

"……."

흑화 소주가 워낙 개성이 깊었기 때문에 흑화라는 네이밍을 앞에다가 붙이면 괜찮단 생각도 들었다. 흑화 찻잔! 이 얼마나 멋진가!

"흐윽… 흑…."

"엇? 아, 아니 예나야! 그런 게 아니라…!"

"미안해 민국아… 나 때문에… 흐으윽!"

"어엇!"

아무래도 예나는 이전 흑화 소주 건으로 민국이 또다시 앙금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본래 그런 의도가 아니었던 민국은 느닷없이 예나가 울음을 터트리려 하자 난감해했다.

"진정해 예나야! 흑화 소주 말고 그럼 백화 하자! 백화! 백화 찻잔! 어때? 예쁘지 이름?"

백화 찻잔. 어디까지나 흑에서 백으로 바뀐 것이었지만 한 글자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울먹이려던 예나는 민국의 다독임 덕분에 간신히 울음을 그치게 되었다. 이윽고 민국의 다정한 말에 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마, 맘에 들어?"

"응… 맘에 들어 민국아…."

민국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예나였다. 본래 이런 예나도 학교에서는 정말 말조차 걸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말이었다. 필시 자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예나의 모습을 다른 남정네들이 보았다간 질투와 부러움으로 눈초리를 어마무지하게 받을 것이 자명했다.

"그럼 백화 찻잔으로 닉네임 정하자."

"응…."

그리고 백화 찻잔으로 닉네임을 정한 뒤, 예나는 방송할 시간을 정하게 되었다. 어차피 방학이었기 때문에 딱히 할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민국과 한 번 방송을 해보고 싶은 감정이 일었던 지라, 예나는 오늘 바로 시작하자고 부탁하였다. 물론 민국도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혼쾌히 승낙했다.

"누가 나쁜 말 하거나 너 건드리면 말해. 내가 혼쭐을 내줄 테니까."

"으응…."

"그리고 그렇게 해도 말 못 알아들으면 네가 직접 블랙 먹일 수 있어. 이 오른쪽 마우스 눌러가지고. 알겠지?"

"응… 고마워."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녀의 멘탈상 질 나쁜 시청자들과는 함께 어울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럼 시작할게. 기다리고 있어."

"응."

구멍을 통해 기어들어가는 민국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예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어폰과 함께 마이크를 책상 자기 입술 앞에 세워두었다.

"들리지 예나야?"

"으응… 들려 민국아."

스카이 라이프 아이디도 생성해서 서로 마이크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는 둘이었다. 이것을 알면 은별도 놀랄 노자…. 하지만 마침 은별도 민국과 예나가 같이 방송한다는 걸 알고 개입하려는 실정이었다.

"은별도 곧 온다고 하니까 좀만 기다려줘."

"으응…."

예나는 가능한 한 민국과 단 둘이 방송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그게 불가능한 것 같았다. 애초에 예나가 민국과 방송을 하려는 이유는… 이전에 민국의 녹방을 찾아보았을 때 은별과 단둘이 오붓하게 방송하는 걸 보고 부러워한 탓도 있었다.

"…후우."

"오셨군 낭자여."

"…에휴."

한숨만 내쉬는 은별이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민국을 뒤로하고 은별은 예나를 향해 물어보았다.

"후회할 지도 몰라… 난 무슨 일 있어도 책임 못 져."

"……."

은별은 결단코 예나가 적응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나는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오늘의 방송 컨텐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참고로 예나 이름은 백화 찻잔이야."

"…백화? 흑화가 아니고?"

순간 움찔한 예나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컨텐츠를 정합시다! 자, 예나야! 넌 뭘 하고 싶니?"

"으…응? 음…."

예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방송으로 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해선 잘 몰랐으니까 말이었다.

'민국이라면 게임을 할 텐데… 하지만 난 게임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그냥 마인크래프트 해."

"아닛, 은별느님 마인크래프트에서 또 나랑 가족놀이 하고 싶소?"

"…에휴, 마땅한 컨텐츠도 없잖아 어차피? 차라리 마크하는 게 가장 나을 거라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

"흠, 예나야. 마인크래프트 혹시 들어본 적 있어?"

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유명한 게임조차도 그녀에겐 하나같이 낯설 따름이었다.

"아니…."

"으음, 큰일이군. 마인크래프트는 조작 방법은 단순해도 배워둬야 할 게 좀 많을 텐데."

애초에 건물을 짓고 무기를 만드는 게임인지라 여러가지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녀 불문하고 하나같이 재밌어 하는 독특한 게임이긴 했지만 말이었다. 이윽고 민국의 말에 예나가 꾹 참고 있다가 용기 내어 말했다.

"한 번 해볼…게 민국아."

"정말 괜찮겠어?"

"으응… 민국이가 잘만 가르쳐준다면… …민국이를 믿으니깐."

"허헛. 좋구만 좋아."

"…아주 좋네 좋아 죽어."

예나의 신뢰도 높은 말에 민국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고 은별은 한심하단 듯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어찌 됐든 이렇게 하여 예나의 첫 번째 방송이 진행될 준비는 완전히 갖춰진 실정이었다.

민국은 다시 예나의 방으로 들어가서 마인크래프트를 다운로드 해준 다음에 대충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예나는 직접 실전으로 배워본 다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다시 민국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할 때가 찾아왔다.

3

2

1

"반갑습니다 이 인간들아. 현대왕이다!"

방송 카운터를 세고 방송에 접속하자마자 싹 태도가 변모하는 현대왕이었다. 아무래도 방송 안에서는 그만의 컨셉이 있었고, 그만의 본성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예나도 이제 녹방을 통해 현대왕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조금은 적응해나가는 눈치였다.

"…반가워요~ 시청자들~ 남고딩이에요."

강은별, 남고딩은 방송을 킨 만큼 확실히 태도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물론 예나도 민국이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평소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그 성격이 조금은 익숙치 못했다. 하지만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처사였다.

[오오 단합 방송 하는 건가?]

[남고딩이랑 현대왕의 러브러브 컨텐츠?]

[ㅅㅂ 토 나올 듯]

"토 나온다고 채팅 쓴 놈은 거울 보면서 매일 토하면서 생전 처음 토하는 것처럼 채팅치고 있네. 아무튼 오늘은 내 사랑스런 여인 남고딩도 비롯해서 또 다른 내 사랑스런 여인을 불렀습니다."

"뭐야?"

"…죄송합니다. 아무튼, 오늘 새로 소개할 신인 방송인! 백화 찻잔을 소개합니다 이 인간들아! 빨리 채팅으로 짝짝짝 박수쳐!"

[오오오오오!]

[딸딸딸]

예나는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하고 동시에 방송에도 접속해 있었다. 이윽고 예나가 천천히 마이크에 대고 우물쭈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예나의 방송 컨텐츠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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