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자, 문제가 생겼던 만큼 이제는 그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대해서 확인해볼 시간이었다. 민국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어디 보자… 언제쯤이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이후 이틀 정도가 경과한 즈음일 것이었다. 그때 민국은 서라와 함께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나누고 있었다.
[만나자.]
[어맛, 미치셨어여? 지는 많이 바쁜 몸이라구여! 온니찡이 아무리 인기만점이라 해도 지도 침대에게는 인기만점이라 누운 상태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거든여!]
[치킨 사줌]
[ㅇㅋ]
치킨의 힘은 저번에도 봤겠지만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윽고 민국의 말에 곧장 옷을 갈아입고 서라가 집을 나온다. 민국도 미리 준비를 한 상태에서 바깥으로 나갔다.
"……."
"……."
그렇게 두 사람은 약속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막 맞은편에서 서로가 걸어오고 있는 걸 보게 된 두 사람. 이윽고 서로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이 대치했을 때 민국과 서라는 한동안 서로의 눈동자만 쳐다보았다.
"으아아."
"……."
"온니찡, 막 으쓱으쓱 어색어색하지 않나여? 수영장에서 드라군 놀이하는 기분이에여."
"에라이 인간아, 누군 마음 편한 줄 아냐."
사실상 두 사람의 사이는 어색해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서로가 서로에게 친근하고 사이 좋은 오빠 동생으로서의 사이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 사이가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서로의 감정을 모조리 공유해버린 상태!
'예전에 공유했던 적은 있지만.'
민국에게 크나큰 사고가 있기 전, 도망가던 서라를 붙잡아서 마음을 공유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 그때는 서라의 마음을 어쩔 수 없이 거절하면서 더 이상의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3백년'이란 시간을 겪고 난 뒤… 민국과 서라는 다시금 다른 선택지를 고르게 된 것이었다.
'3백년이란 시간을 그렇게 고생했는데 모른 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비록 흑설 공주로 말미암아 더 이상 3백년의 시간의 후유증을 겪지는 않는다. 기억도 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머리가 자연스레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떻게 해서 그 악당 같은 흑설 공주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민국은 의문이 들어 서라에게 추궁해보았으나 서라는 '악당도 실은 착한 법이에여!'라면서 대화를 숨길 따름이었다. 이윽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서라를 보면서 민국이 말했다.
"마침 저기 치킨점 있네. 들어가자."
"아앗."
민국이 막 근처의 치킨점 아무대나 가리키며 들어가려하자 서라가 양손을 교차해서 엑스를 만들었다.
"실은 오늘 치킨 안 땡김여! 그냥 싸게싸게 돈가스나 먹어여!"
"너 어제 치킨 먹었냐?"
"히익! 들켰음!"
어쨌든… 두 사람은 치킨을 먹기 위해 만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근처의 돈가스 전문점으로 향했다. 돈가스 전문점 안은 의외로 한적해서 대화를 나누기 딱 알맞아 보였다.
이윽고 민국이 서라가 앉을 의자를 당겨서 앉을 공간을 만들어주자, 서라는 '고맙여!'하고 깡총 뛰어서 그 자리에 앉는다. 그 다소 귀여운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내심 피어오르려 하면서도, 한 편으론 솟아오르는 걱정스러운 감정에 다시 진지해지는 민국. 이윽고 서라와 마주할 수 있는 맞은편 의자에 앉은 민국이었다.
"여기 돈가스요."
"네에~."
점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뒤 민국은 다시 서라를 돌아보았다. 서라는 민국의 다소 진지한 눈빛이 자신을 겨냥하자 잠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뉘앙스를 보였다.
"엇흠 엇흠!"
"흐음…."
"엇흠 엇흠!"
"흐으으음…."
"엇흠 엇흠 엇흠 엇흠!"
"흐으으으으으음…."
"엇흠 엇흠 엇흠 엇흠 엇흠 엇흠 엇흠 엇흠!"
"그만해라 이놈아,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앗, 그렇네여."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한 두 사람의 무의식적인 발악이었다. 이윽고 서라가 어색한 헛기침도 멈추고 창문을 바라본다. 창문 너머로는 오늘 역시도 하얀 눈이 펑펑 쏟아져서 눈밭이 된 지 오래였다. 이따금씩 도로를 주행하는 무수한 차들만이 눈밭을 쓸어버리면서 가고 있었다.
"서라야."
"왜여?"
"흐흠, 이 오빠는 말이다. 여자가 좋아요."
서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민국을 쳐다본다. 민국은 나름대로 설득을 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물론 스스로 얘기하면서도 이게 맞나 의심이 들긴 하였다.
"여자가 좋긴 하고 심지어 몸매에다가 얼굴까지 죽이는 여자면 아주 좋아하지요. 특히 너 같이 어린 영계면 당연히 더 좋아할 수밖에 없어."
"어맛."
"하지만 나에겐 이미 여자친구가 있잖니. 심지어 어쩌다 보니 이젠 예나도 내 여자 친구가 된 셈이야. 그런데 그 사이에 네가 낄 자리가 있을까?"
"으음! 없겠져?"
"그렇지. 근데 그렇다고 널 안 만나기도 거시기한 게, 내가 그 300년의 시간 동안 느낀 게 뼈저리게 많았던 모양인지 널 이성적으로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거든."
"어마마마맛?"
물론 300년의 시간을 겪기 이전에도 분명 서라를 좋아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땐 보호자로서, 여동생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필시 그 300년의 깨달음과, 기나긴 시간과 이해가 서라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품게 만든 큰 계기가 됐을 것이었다.
고로 민국은 그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서라를 향한 이 감정만큼은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고로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널 만지고 싶고 너의 가슴을 탐하고 싶고 너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어. 하지만 난 참고 있지. 난 그 정도로 신념이 굳건한 남자야."
"우왕, 노골적인 변태 말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에여!"
"기어이 간파했구나. 어쨌든."
민국은 이제 본론을 얘기하기로 했다.
"이제 어떡하지?"
"……."
난들아랴…. 서라를 향한 민국의 질문에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점원이 돈가스를 들고 당도했다. 서라는 그것을 보다가 답을 내렸다.
"돈가스 먹져."
"…훗, 맛나 보이는 돈가스구만."
그렇게 두 사람은 일단 돈가스부터 시식했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정말이지 어색한 관계가 된 셈이었다. 서로 좋아하긴 좋아하는데! 민국에겐 이전의 신념…이 있었으니 차마 슈퍼 개새끼가 되길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서라는 민국을 살리기 위해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그런 자신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300년의 시간을 대신 뒤집어 썼던 민국에게 또 한 번 반한 실정이었다. 아아,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대체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어차피 슈퍼 개새끼인 셈이니까 진짜 여자친구로 만들어?'
아마 서라도 여자 친구로 선언하겠다고 하면 은별이가 화병이 난 얼굴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 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한숨이 부쩍 늘은 그녀인데 아마 민국이 아는 무수한 여성들 중에서 가장 일찍 늙을 지도….
"솔직히 지도 잘 모르겠어유."
"……."
돈가스를 먹던 참이었다. 서라가 운을 띄었다. 그녀는 포크로 돈가스를 콕 찍으면서 얘기했다.
"나도 오빨 좋아함. 솔직히 얘기하는거임…."
"……."
"그냥 오빠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맞음. 하지만 오빠에겐 은별 언니찡이란 좋은 여자친구가 있심. 그리고 예나 언니찡도 이젠 온니짱이랑 함께 하는 거 아니셈? 근데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렵기도 함."
"……."
"그래서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음."
두 사람 모두 그릇된 짓이란 걸 알면서도, 막상 그 그릇된 짓을 놓치기엔 미련이 남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 미련은 300년이란 시간 때문에 더욱 짙어지고 짙어져… 이미 일반인의 시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민국은 그런 서라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포크를 꽉 쥐었다.
'후…! 내가 원래 이렇게 나약했던 놈이었나?'
민국은 돌연 미연시 세계를 떠돌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 민국은 결심했었다! 폭풍 사정으로 은별과 예나를 오염시키고! 서라에게 부카게를 하다가 실패하면서 결심했었다…!
'더 이상…!'
더 이상 자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로!! 물론 이번 사건은 책임을 회피한다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서라가 자기 때문에 3백년의 시간을 겪으면서 온갖 고생을 한 건 엄연한 사실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 고생이 결코 행복했을 리 전무하다. 민국도 본능적으로 그 3백년이 얼마나 치욕같고 지옥 같은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한 고로 민국은 더 이상 지체하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은 보이기가 싫었다. 천하의 개새끼가 되더라도, 모든 남자들의 부러움과 질타를 한 몸에 받게 되어도…! 그래도 꼭 지켜야 할 여자가 있다면 지키는 게 자신의 화끈함이었다. 고로 민국은 결심했다.
"서라야."
"읭?"
"안 되겠다. 나가자."
막 식사 중이던 서라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하지만 민국은 이미 돈가스 점원에게 음식 값을 계산하고 서라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서라는 반도 먹지 않은 돈가스는 남겨두고 자신을 끌어 당기는 민국의 뒷모습에 눈을 크게 뜨면서 물었다.
"온니찡! 돈가스가 자기 안 먹어줬다고 울어염!"
"돈가스의 눈물 따위! 우리의 사랑의 도피에 비하면 별 거 아니야!"
뒷모습을 보이면서 소리치는 민국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거론한 '사랑의 도피'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서라였다.
"사…랑의 도피염?!"
"그래! 야, 강서라!"
서라를 잡고 막 인도 길까지 끌고 온 민국이었다. 서라를 호명하면서 민국이 몸을 홱 돌렸다. 그의 당찬 몸놀림에 서라가 움찔하다가 쳐다보았다. 민국이 말했다.
"너 나 좋아하지? 이성적으로? 아주 확실하게?"
"네, 네넹?"
"확실하게 대답해 이것아. 그렇지? 어?"
서라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더듬듯 끄덕였다.
"그, 그렇지여?"
"그래. 나도 널 좋아한다. 널 엄청나게 좋아해!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남들이 감당하지 못할 300년이란 시간을 감당했고, 그것은 평소 안고 있던 이성으로서의 호감이란 감정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남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어마무지한 사랑의 의지를 만들어냈다. 지금 두 사람은 아마 떨어지면 평생토록 괴로워할 것이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국은 차라리 개새끼가 되더라도… 결실을 짓자고 생각했다.
"강서라! 난 지금부터 네 몸을 탐하겠다!"
"히익!"
"그리고 너도 내 몸을 탐해라! 이것이 바로 등가 교환의 법칙!"
느닷없는 민국의 제안에 천하의 서라조차도 얼굴이 상당히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온니찡! 소고기에다가 옥수수수염차 말아드셨음?! 뭔 소리셈!"
"가자! 모텔로!"
"히이익!"
"아니, 여긴 모텔이 없군! 마침 저기 DVD 방이 있는데 저기로 가자!"
"이이이이이익!"
그리고 서라는 민국의 완력에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서라는 그의 확고한 다짐에 뭔가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건물 윗층의 DVD방에 당도한 민국과 서라였다.
"방 다 찼는데요."
"……."
"…나가자!"
그리고 호쾌하게 소리 짓고는 다시 다른 DVD방을 찾는 민국!
"방 다 찼어요."
"나가자!"
"방 다 참."
"나가자!"
"방 다 찬 지 오래인데."
"나가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DVD 방을 많이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조금도 없는 자리에 민국은 한참을 DVD 방만 찾다가 결국엔 길바닥에서 머리를 부여 잡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나보고 어쩌라고오오오오오오!"
"큰일 남… 온니찡이 맛이 가기 시작했음…."
오래 된 신념과 새로 생긴 신념에 갈등을 때리는 민국. 이를 이해하면서 지켜보면서도 한 편으론 맛이 간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짓는 서라. 그렇게 두 사람 간의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후후후, 소설 계의 비제이가 되어주겠다!
고로 이제부터 저는 쿠폰을 쏘는 사람들에게 리액션을 취합니다
6000원 쿠폰 쏴주신 효늬남푠 님!
사랑합니다, 제가 쿠폰 쏴주신 답례로 리액션을 해드리죠.
저의 리액션은 아주 독특합니다. 노래를 한 곡 불러드리겠습니다. 후...
짜랏짠짠
끗
무려 3분 동안 열심히 완창했네요.
네?
노래가 어디 있냐고요? 글자도 안 적혀 있고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요?
그건 여러분이 선한 마음을 안 가져서 그런 겁니다!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왜 마음의 소리라는 웹툰이 있겠습니까?
그게 다 마음으로 노래방의 노랫소리를 들으라는 다단계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고로 난 자러 간당 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