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유희열 사태>
“재미있지 않느냐.”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고, 넓고 우아한 인테리어의 실내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양털로 된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그녀는 마치 보는 것만으로도 귀족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와인잔을 잡아 손가락에 걸고 한 모금 홀짝이는 모습에, 만일 주변에 남자들이 가득하다면 모두 법을 어기고 야수로 변모해서 덮칠 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녀는 옆에 일어서 있는 집사를 뒤로하고 와인잔을 쳐다보다가 운을 띄었다.
“현대에서 나의 마법으로 안 되는 건 없지 않느냐. 돈부터 시간까지, 설사 생명조차도 나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법이지.”
와인잔에 비추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 기나긴 쌍꺼풀은 정말이지 어느 연예인보다 짙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간혹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몇 가지들이 존재했는데, 간만에 그 소녀 덕분에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구나.”
“괜찮으십니까.”
“괜찮단다. 하지만, 영 기분이 좋지는 않구나.”
흑설 공주는 진솔하게 자신의 옛 이야기에 대한 감상평을 표했다. 그녀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언제고 떠올려도, 참으로 씁쓸하고 잔혹한 과거였다. 지금의 그녀는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노라면, 왜 그렇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 이 한 몸 바쳐서 그런 처절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의혹만 앞당길 따름이었다.
‘…….’
한 남자가 들판을 거닐고 있었다. 키는 작지만 건장하고 매사에 밝은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성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 때, 자신은 하염없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었었다. 이제는 지을 수 없는, 진심어린 그 미소를 말이었다.
‘진심이란 건, 본래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말이란다.’
진심으로 그를 붙잡기 위해 처절히 노력했던 고뇌와 시간. 하지만 결국 끝끝내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노력하고 노고를 치러 결국 마법을 손에 넣었을 땐 이미 늦었다. 사랑하는 그를 다시 붙잡기에는 너무나도 늦어버렸던 것이었다.
‘이 마법이란 것도 결국 모두 부질없는 것이거늘.’
오랜 시간, 몇 백년의 노고 끝에 결국엔 손에 넣은 마법이었지만 흑설 공주는 자신의 마법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을 한들, 태반이 부정적인 곳에 사용될 수준이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마법을 사용할 때도 절대 공짜를 운운하지 않는 거겠지…. 흑설 공주에게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것은 굉장히 연이 깊은 법칙이었다.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그래서, 자신과 닮은 미모의 그 아이가 혼자서 찾아와 냉큼 그 요구를 하였을 때, 흑설 공주는 마음이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엔 대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가에 대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오히려 3백년이란 시간을 겪고 난 뒤로 더 강인해진 모양새였다. 그건… 그 아이가 흠모하던 남자에게서도 느낄 수 있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그 오랜 시간의 부작용으로 비틀거리고 휘청였지만, 그래도 그 오랜 시간을 겪은 것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 모습이었었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와인잔을 돌리면서, 잔으로 비추는 자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쳐다보던 흑설 공주는 내심 자문했다.
‘과연, 저버릴 수 없는 사랑이란 게 존재하는지.’
만일 존재한다면, 자신은 부정 당하는 게 되는 것이니까.
* *
대물왕 : 그런 일이 있었거든.
미친놈1 : 오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냐?
유희열사태 : 되게 궁금하게 하네 이 놈인터넷 유명 카페 중 하나로 거듭나 있는 친목 카페에는 채팅방이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의 참가 인원이 존재하는 소규모 채팅방이 하나 있었다. 비밀번호로 체크되어 있는 그 채팅방에는 대물왕, 미친놈1, 유희열사태라는 닉네임을 가진 총 세 명의 유저가 존재했다.
현재 그들은 대물왕이 하는 속사정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대물왕 : 그런데 말이지, 뭔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동생이랑 다시 만나게 됐어.
미친놈1 : 와, 이거 양다리가 아니라 문어다리 새끼네. 고추 몇 개냐?
유희열사태 : 사스가 슈퍼 개새끼현재 채팅방에 있는 이 세 사람은 실제로 친분이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각자 얼굴도 공유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닉네임과 나이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어제 막 이 카페에 가입했던 대물왕은 그냥 고민 풀이의 조언 좀 얻을 겸 실명도 모르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물왕 : 너희들이 생각하기엔 어떻게 됐을 거 같냐?
미친놈1 : 우리가 원하는 건 진실 된 이야기인데 이 새끼는 진실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상상하게끔 하네.
유희열사태 : 설마 사랑의 도피? 아니, 근데 두 명이나 되는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까지 사귀면 다른 여자들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지 않나?
대물왕이란 닉네임을 가진 남자는 실제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자 친구가 둘이 있으니 다른 여자를 또 사귄들, 기존의 여자 친구들이 ‘그래 넌 원래 그런 애였지. 더 사귀어도 돼.’하면서 관대하게 받아줄 거라 생각하는가? 여자의 무기는 옛날부터 질투라고 전해져 들어왔다.
고로 조금이라도 다른 여자와 썸을 타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여자 친구를 한 명만 사귈 때보다 두 배로 목숨의 위협에 처할 게 자명했다.
대물왕 : 그리고 단순히 질투에서 끝나는 게 아닐 거야.
미친놈1 : 그럼?
대물왕 : 졸지에 나랑 썸을 타게 된 그 여동생이 실은 내 여자 친구 둘이랑 알고 있는 사이거든. 심지어 이 여동생인 애가 워낙 배려심도 깊고 자상해서 여자 친구 둘에게도 인식이 좋았어.
미친놈1 : 오~ 마이~ 갓~
유희열사태 : 신이시여, 잘하면 현실판 드라마를 보겠군요.
이 무슨 아침드라마 같은 현실이란 말인가? 적어도 아침드라마조차도 이 정도의 막장성은 못 보일 것이었다. 대물왕은 자신의 속사정을 듣고 있던 두 사람이 혀를 내두르는 장면에 키보드를 놀렸다.
대물왕 : 아무튼 어떡하냐… 나도 지금 큰 일이다.
미친놈1 : 너 돌직구 성격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냥 네 성격대로 나 여자 친구 한 명 더 사귀었다! 라고 표명하는 게 어때? 차라리 그렇게 한 다음에 죽을 때까지 맞으면 끝날 거 같은데.
대물왕 : 나보고 죽을 때까지 맞다가 죽으라는 소리냐 어리석은 비타 사백 같은 새끼야.
유희열사태 : 정 뭐하면 그냥 몰래 사귀던가. 어차피 들키면 위험하다며. 그럼 차라리 안 들키고 계속 사귀는 게 좋지. 무슨 조건 때문에 그 세 여자가 너랑 함께 있어야 하는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게 차라리 낫지 않냐?
어차피 미친놈1이랑 유희열사태는 대물왕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고로 그가 자기 자신을 잘 생기고 키가 크며 여자에게 인기 만점이라 소개한들, 그걸 믿을 수 있을 리 전무했다.
어차피 넷상은 자기 자신만의 재미를 위한 자유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자신만 재미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대물왕이 현재 언급하는 이야기의 세 여자도 어디까지나 가상에서 나온 픽션의 인물들일 거라 생각하는 둘이었다.
대물왕 : 이것들아, 니들이 진짜 내 입장이 되어봐야 알지.
유희열사태 : 만일 네가 진짜로 그런 일을 겪고 있다고 가정하면 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새끼야 임마.
대물왕이 지금까지 언급한 얘기가 실제라고 가정한다면! 정말로 대물왕은 모든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남녀에게 잘 나가는 츤데레 인기 여자에다가 소꿉시절부터 자기 자신을 잘 따르고 늘 어머니처럼 포근히 안아주었던 따뜻한 여자. 영계에다가 귀엽기까지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동생. 전부 다 대물왕이 언급했던 것처럼 외모 수준이 연예인을 초월할 정도라고하면… 대물왕은 그야말로 남자들이 장난을 칠 때 자주 언급하는 ‘개새끼’가 되는 셈이었다.
대물왕 : 아이고 그래 이것들아. 난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새끼다. 어디 평생 동안 부러워하면서 살아봐라!
유희열사태 : 야 설마 가려고?
미친놈1 : 이야기 듣는 거 재밌어서 그러는데 그 뒷 이야기는 없냐?
대물왕 : 흠, 이 새끼들 알게 모르게 내 이야기를 소설로만 판명 짓는 주제에 내심 재밌는 모양이군.
대물왕은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가 꽤나 맛깔나게 느껴졌는지,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두 유저의 모습에 형언하지 못할 뿌듯함을 느꼈다.
대물왕 : 여동생 이야기는 잠시 뒷전으로 두고, 내가 직업으로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해줄까? 니들 알면 존나 놀랄 걸?
미친놈1 : 사스가 인터넷은 국회의원부터 능력자까지 될 수 있는 곳이라서 별로 놀라울 것 같진 않지만, 어디 한 번 말해봐라.
유희열사태 : 심심하니까 들어보자. 또 재밌는 걸지도 모르지.
대물왕은 실제로 ‘후훗’하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키보드로 타닥타닥 글자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대물왕 : 나 사실 게이버 인기 검색어 1위에도 오른 적 있는 몸이다.
미친놈1 : 미친놈
대물왕 : 왜 네가 너를 부르냐
미친놈1 : 난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놈1이고. 미친놈은 널 대상으로 부른 거야.
대물왕 : 야 이, 비록 인터넷이고 내가 인증하기도 뭐한 실정이니까 차마 더는 못 말하겠다만. 니들은 지금 엄청난 존재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기쁘게 알아도 된다고 자식들아.
유희열사태 : 거짓말하면 유희열사태 일어나는 거 모르는감? 지속되는 거짓말은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대물왕 : 아니라니까? 하 이놈들이. 야, 그럼 정 뭐하면 내가 인증 하나 해줄까?
유희열사태 : 무슨 인증
대물왕 : 내가 닉네임이 대물왕이잖아.
미친놈1 : ㅇㅇ
대물왕 : 그럼 실제로도 대물이지 않겠냐?
미친놈1 : 미친 놈. 그걸 인증하겠다고?
대물왕 : 애초에 슈벌넘들아 니들 내가 18센치라고 한 것도 안 믿지?
유희열사태 : 18센치면 백인이나 흑인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데 네가 흑인이라고?
대물왕 : …야 흑인 언급은 하지마라. 내가 한 때 목욕탕에서 흑인이랑 대물 거론하면서 싸운 적이 있어가지고.
미친놈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아무래도 진짜 안 믿는 모양이다. 왠지 오기가 생긴 대물왕이었다.
대물왕 : 진짜 인증한다? 인증하면 니들 어쩔래.
유희열사태 : 아서라. 뻥도 작작 쳐야지. 그 정도 치면 정신병원 수석환자 수준이야.
대물왕 : 허허, 이 자식들이.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미친놈1 : 네가 그렇게 크면 한 번 인증해보던가. 어차피 비밀방이고 사람들 들어오지도 못하니 우리가 신고만 안 하면 너 신고도 안 당하지.
대물왕 : ㅇㅇ. 그래, 좋다. 두고 봐라.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난 대물왕 본인은 실제로 바지와 속옷을 벗고 대물로 만들기 위해 노고를 치렀다. 얼마지 않아 노고를 치러 대물이 된 장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대물왕은 그것을 그대로 채팅방에 올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친놈1 : 언제쯤 되냐
유희열사태 : 기다리기 개귀찮
대물왕 : 이메일 통해서 옮겨야 돼서 좀 걸린다. 기다리고 있어봐.
그리고 얼마지 않아 이메일로 사진을 옮긴 대물왕은 그것을 저장해서 그대로 채팅방에 첨부했다. 잠시 후 20cm 자로 정확히 잰 자신의 대물이 채팅방에 올라왔다.
대물왕 : 자! 봤지? 진짜로 대물….
유희열사태 : 부러워서 신고
미친놈1 : 미친놈 같아서 신고
- 아이디가 한 달간 정지되었습니다.
“…….”
대물왕이란 닉네임의 인영은 실제로 아이디가 정지 당하자 @*#!*@#@! 하고 소리쳤다.
“으아아! 이 놈의 자식들!
분노의 마우스 질을 하면서 다시 본 아이디로 접속하려고 하지만 무려 한 달 동안 게이버 아이디는 이용 정지였고, 해제가 불가능했다. 결국 포기하는 대물왕, 서민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