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안녕하세요 모태솔로들아. 우매한 모태솔로인 너희들을 갱생하러 온 구원자 현대왕입니다."
[우우우우우]
[뻐큐 머겅 두 번 머겅]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방송 날. 현대왕은 손뼉을 딱 치면서 신명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오늘은 24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까지 하루가 남았지요.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가난하고 굶주린 모태솔로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합동 방송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오오오!]
[콩딱지! 콩딱지!]
[대세는 강은별이다! 츤츤고딩]
"야 이 새끼들아 니들 내 팬 아니냐? 어휴, 모태솔로 새끼들이 고추는 있다고 여자를 그렇게 밝혀가지고 쯧쯧!"
비제이와 시청자들이 서로 맞짱을 뜨는 막장 방송, 본격 현대왕의 방송이었다. 이윽고 목을 다듬은 현대왕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제 슬슬 합동 방송을 진행할 계획이오니 다들 야동 그만 보고 방송 쪽으로 집중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현대왕의 합동 방송! 현대왕은 곧장 스카이 라이프에 접속해서 남고딩과 콩딱지에게 연락했다. 뚜루루루… 한참의 연락 끝에 남고딩과 콩딱지가 연락을 받았다. 남고딩은 기다렸다는 듯 꾸며낸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내일 크리스마스죠? 좋은 하루가 있길 바래요~ 남고딩이에요~."
"어유, 오늘도 내 여자친구답게 목소리가 예쁘고 상냥하십니다 강은별 님."
"…뭐래. 빨리 방송이나 진행해."
남고딩의 재촉에 현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콩딱지를 불렀다.
"야 딱지야."
"……."
딱지는 대답이 없었다.
"야 콩딱지?"
한참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콩딱지였다.
"아! 이응이응! 죄송여 님들!"
뭔가 오늘따라 이상한 콩딱지였다. 아니, 돌이켜보면 어제 합동 방송 컨텐츠를 시험삼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현대왕은 굳이 그 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이윽고 정신을 차린 콩딱지가 해맑게 웃음 지으면서 말했다.
"헤헤… 콩딱지입니다 이 스노우붸리 같은 님들아. 한 판 부탁합니데이!"
시청자들은 모두 콩딱지를 남자로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남자처럼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지사 콩딱지의 방송 시청자들도 비제이와 시청자 간에 맞짱을 뜨는 빅재미의 방송이었던 지라 나오는 말소리들이 하나같이 일반인이 보기에 사악할 수밖에 없었다.
"니 똥! 니 똥!"
그리고 그런 시청자들의 대답에 니 똥이라면서 반격하는 콩딱지였다. 어쨌든 다시 활발해진 분위기 속에서 현대왕은 컨텐츠를 진행하기 위한 진행 멘트를 날렸다.
"자, 오늘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컨텐츠! 마인크래프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마인크래프트를 진행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코딱지 같은 놈 한 명 때문에 망친 적이 있었지요. 야 이 콩딱지 같은 쉐리야."
반격의 맞장구를 쳐주길 바라면서 현대왕은 콩딱지에게 욕설을 한 번 날렸다. 그럼 보통 '아니 왜 그럼 행님!'이러면서 주주절절 말을 꺼내야 할 것이었다.
"……."
"……."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콩딱지는 다시 조용하다. 시청자들도 슬슬 이상함을 감지하고 [?], [??]하면서 물음을 던진다. 또다시 멍을 때리고 있던 콩딱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급급히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냠냠, 팝콘 먹느라 무슨 소리했는지 안 들림여. 무슨 소리했어여? 혹시 짹짹 지저귀는 소리인가여!"
"저 자식이…!"
그래도 나름대로 맞장구를 쳐주자 현대왕은 너그럽게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자, 그럼 오늘 진행할 크리스마스 마인크래프트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총 세 명의 비제이, 현대왕인 저, 남고딩, 콩딱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작할 것입니다."
[오오]
"하지만 그 크리스마스 트리는 세 명이 단합을 해서 제작하는 게 아니라 각자 맵에 숨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찾아서 그것들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도중에 다른 비제이가 훼방을 놓아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고, 만들던 트리 조각을 빼앗아서 자신의 것으로 챙길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겠네]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는 우리 불쌍한 모태솔로, 12월 25일에 다른 사람들이 생명을 낳을 시간에 혼자서 씁쓸히 집안에서 울먹일 불쌍한 솔로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들 마음 속 빈 자리를 이 컨텐츠로 위로받고 저는 25일날 남고딩과 폭풍 아기 낳기를 하러 가겠습니다 푸헤헤헤헤헤헼!"
"…잘하는 짓이다 정말."
츤츤거리면서 투덜대는 남고딩이었지만, 그래도 25일 날 자신과 약속한 것을 잊지는 않았음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 날 한예나의 데이트 제의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말이다….
"25일…."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콩딱지였다. 현대왕은 '응?'하면서 콩딱지의 그 작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캐치했다.
"콩딱지 넌 25일에 가족이랑 함께 있겠다고 하지 않았냐? 이런 효자 녀석. 마음 따뜻한 솔로구나 너도 푸헤헤헤헤헤."
"……."
"……."
반응이 없다. 아니, 반응을 해도 항상 몇 초 뒤에 이어진다. 마치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청자들도 계속해서 끊기는 흐름에 콩딱지에게 내심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오늘 콩딱지 왜 저러지?]
[뭔가 맛이 간 듯한데]
[?? 무슨 문제 있나?]
남고딩, 현대왕의 채팅방에서는 이미 콩딱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몇몇 시청자들은 너무 타비제이에 관련해서 많은 얘기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후후! 행님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게 진정 효도의 마음임! 고로 행님은 불효자!"
뒤늦게서야 드립을 침으로서 조금씩 이상함이 모면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한 건 이상했다. 현대왕도 놓치지 않고 그 드립을 받아쳤다.
"하하, 이 낭랑한 녀석. 내가 자주 먹는 밥을 먹게 하고 싶구나."
"그 밥이 뭐길래여?"
"좆밥."
"히익."
어찌 됐든… 어떻게든 컨텐츠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에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송이 시작되었다. 셋 다 각자 마인크래프트 방에 접속했고 오랫동안 비밀리에 제작했던 크리스마스 제작맵이 드디어 드러났다.
제작맵은 굉장히 넓은 편으로 집부터 빌딩이 가득이었고, 숨겨져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들도 넘쳐났다. 그리고 그 꽁꽁 숨어 있는 트리들을 쟁취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작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 카운트 다운 시간을 알리기 위해 현대왕은 스카이 라이프로 말하였다.
"자, 그럼 이제 5초 후에 게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훗, 드디어 운명을 건 사투가 시작되는 군…. 나를 좋아하다 못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랑의 여인, 강은별이여…. 어찌해서 나와의 전쟁에 참여했단 말인가…."
"쇼한다…."
오늘따라 츤츤 요소가 한층 강렬해진 남고딩이었다. 자, 이제 신호를 알리는 현대왕이었다.
"자! 시작합니다! 유루유리 하지마루요!"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컨텐츠! 현대왕과 남고딩은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각자의 스타트 지점에서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카운트 다운을 들은 콩딱지는 스타트 지점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안호 멍하니 있었다.
[콩딱지 왜 그래 ㅅㅂ]
[갑자기 애가 맛이 간 거 같아]
[무슨 일 있음여 콩딱지님?]
"아…!"
뒤늦게 다시 이 상황을 자각하고 키보드를 움직이는 콩딱지였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빠르게 헤드폰의 마이크로 입을 여는 콩딱지.
"헤헤, 자꾸만 깜빡거리네여. 여러분, 깜빡이는 건 님들의 인생이에여!"
[뭐여 ㅅㅂ?]
[미친 ㅋㅋㅋ]
콩딱지는 드립을 치긴 했지만 자꾸만 현실과 이상이 헷갈리는 걸 느꼈다. 그렇다. 지금 그녀는 이백 년의 꿈을 통해서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꾸만 오늘과 어제가 너무나도 긴 공백이 있던 느낌이 들었고, 그 공백이 자꾸만 콩딱지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고, 너무 오랜 기간 깨달음을 얻어왔기에 이런 것들이 하나 하나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
고로 키보드를 움직이다가도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마음에 다시 손을 놓게 되고… 그녀는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해야 함여.'
그래도 그동안 가져왔던 비제이의 프로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집중되어서일까. 콩딱지는 키보드에서 손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방송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간혹 보이는 그녀의 해괴한 행동에 시청자들도 의문을 가졌지만, 그 정도는 별 수 없는 것이었다.
흑설 공주가 건 일종의 저주 마법이 조금도 영향을 안 끼칠 리 전무했으니까.
'모든 게 느리게 보이고.'
'모든 게 원망스럽다.'
'모든 게 보잘 것이 없고.'
'모든 게 하릴 없는 짓이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콩딱지는 안간힘으로 참았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도리였다.
장장 다섯 시간의 방송.
무사히 방송을 마친 현대왕 일행이었다.
"훗, 여편네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 나에게 승리를 주기 위한 여편네의 힘찬 사랑이었습니다."
"너 이기게 해줄 생각 눈꼽만큼도 없었거든? 빨리 벌칙이나 받으시지?"
"크윽, S끼가 있는 강은별 양 같으니."
크리스마스 트리 제작은 남고딩의 승리였다. 현대왕도 필사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결국 남고딩에게 막판에 트리를 빼앗겨서 지고 말았다. 콩딱지의 경우는 열심히 하긴 했는데, 거의 혼자 하는 느낌이었고 이번 방송엔 참여도가 많이 낮았었다.
"뭐 사나이로서 패배를 피할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당당하게 내기 벌칙을 받기로 하지요."
"……."
"아, 야동 한 편만 보고 와서 벌칙 받기로 하겠습니다."
"빨리 해 이 바보야!"
어쨌든 벌칙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현대왕…. 그리고 여전히 말이 없는 콩딱지. 이윽고 현대왕이 시청자들이 보지 못하는 스카이 라이프 채팅방에서 콩딱지에게 채팅을 쳐보였다.
[딱지야. 오늘 상태 많이 안 좋냐?]
아까부터 직감하고 있던 현대왕이었으니까. 남고딩도 대강 느끼고 있었지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콩딱지는 또다시 그 질문에 약 10초 정도 뒤늦게서야 반응했다.
[아, 아니라능. 괜찮다능.]
[…너무 무리하지마.]
[그래. 너 지금 상태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어차피 벌칙은 나 혼자 받는 거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쉬던가 해라.]
남고딩과 현대왕이 천천히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 위로가 마치 자신을 쫓아내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그 쫓아낸단 느낌조차 느낀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시 깨달은 콩딱지는.
[이응…]
먼저 방송을 접기로 하였다. 이윽고 시청자들과 먼저 작별 인사를 고하는 콩딱지.
"미안여 님들. 나님이 오늘 상태가 거시기 하네여. 오늘 가봐야겠음."
"그래, 콩딱지 시청자들아. 섭섭해하지 말고 비제이 아플 땐 그냥 보내줘라."
[쩝]
[부들부들]
[잘 쉬다 오세여 콩딱지 님]
시청자들도 다들 콩딱지가 아픈 상태라고 느꼈는지 크게 반발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콩딱지는 먼저 접속을 끊게 되었다. 단 둘이 남게 된 현대왕과 남고딩.
"훗, 그럼 벌칙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벌칙은 남고딩이 절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저랑 같이 받아주겠다네요!"
"어디서 헛소리를…!"
그렇게 재미도를 끌어 올리면서 방송을 마친 현대왕과 남고딩이었다.
방송이 끝나자 창밖은 깊은 밤으로 짙어져 있었고, 해드셋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서민국은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곧장 서라의 상태를 묻기 위해 연락을 하려는 민국이었지만, 얼마지 않아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멈추는 모습이었다.
"……."
돌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괴함에 민국은 눈으로 쫓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