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 *
“그럼 난 간다. 도착하면 연락하마.”
“오빠!”
도로에서 무사히 택시를 잡고 타려던 민국이었다. 서라가 돌연 소리를 내질렀다. 민국은 생소한 그 부름과 동시에 거친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져 돌아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오빠? 오빠라고 했냐.”
“…….”
“신이시여! 이 새끼 갑자기 이상합니다! 저보고 오빠랍니다! 오 로리 만세!”
돌연 오빠라고 소리치는 서라의 부름에 민국이 하늘을 보면서 과한 제스쳐를 한다. 그래, 다행히 이곳은 현실이다. 서라는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생각해보니 눈길인데 택시는 좀 위험하다 싶네여! 전철타고 가세여!”
“응? 야, 인마. 전철 운행하려면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데….”
“그냥 내 말대로 하세여!”
그리고 민국이 열었던 택시 문을 닫아버리는 서라였다. 민국은 갑작스런 서라의 언동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윽고 택시 기사가 어이없단 얼굴로 쳐다보다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떠나가는 택시를 보던 민국이 서라를 돌아본다.
“갑자기 왜 그러냐. 똥마려워?”
“…….”
서라는 이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곧 마음을 다잡고 웃음을 머금는 서라였다.
“온니찡! 요즘 택시에는 엄청난 마가 끼어 있음여! 나님이 요즘 들어 안 건데 실은 택시 의자는 시금치로 만들어져 있어여! 그래서 앉으면 바지에서 시금치 냄새가 나게 됨여! 어마어마함!”
“뭐 이런, 느닷없이 집 가다가 죽는 아침드라마 같은 소릴 하냐?”
“헤헤.”
서라는 웃음 지으면서 민국에게 애교를 부렸다.
“어찌 됐든 좀만 더 있다가 가세염! 아잉아잉!”
“…흐음.”
본래라면 지금쯤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할 민국이었다. 은별이 연락도 좀 있음 올 터였고 말이다. 하지만 서라가 이토록 엉겨붙는 일은 사실상 처음이었기 때문에 민국도 난감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다음에 갑자기 이러니….
“너 설마 나의 정자를 받고 싶다던가….”
“저기 부근에 경찰서 있네여. 잠깐 가실래여 손님?”
“세상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악당이라 생각하는 경찰서가 코앞에 있네.”
맞장구를 치던 민국이었다. 곧 피식 웃음을 머금으며 서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알겠다 인마. 네가 그토록 원하는데 좀만 더 있어야지.”
“따, 딱히 원한 건 아니라능! 전철타고 가라능!”
“어이구 녀석.”
츤데레 연기까지 하는 서라에게 아프지 않은 꿀밤을 먹이며 민국은 다시 인도를 거닐기 시작했다. 서라는 꿀밤을 맞은 곳을 아픈 것마냥 양손으로 부여잡고 괴로운 척 표정을 지었지만, 얼마지 않아.
“…….”
미소를 머금고 걷고 있는 민국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때기 시작하는 서라였다.
* *
‘아… 아아….’
서라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방금 전만 해도 태평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민국이었다.
차창으로 비추는 민국의 옆얼굴을 본 것만도 불과 몇 초 전이었는데… 서라는 실로 믿기지 못할 참상이 나타났음에 손이 찬찬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갖갖이 경보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다섯 개의 차가 서로에게 꼬라박아 연기를 내뿜는 그 모습은 최악이었다.
“어… 어어….”
천천히 뒤집어져 있는 택시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서라였다. 중앙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에 주변 차들이 하나같이 멈춰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서라는 결국 도로 쪽으로 나와서 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이… 퍼엉! 뒤집어져 있던 택시가 연기를 뿜어내더니 얼마지 않아 강한 폭발음을 냈다.
서라는 다가가다가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동도 않고 서 있는 모습으로 막연히 정면을 주시하는 서라였다.
타닥 타닥…. 마치 한 줌의 재가 된 것처럼 타고 있는 그 참상을 보면서 서라는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오…빠?”
어렵사리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여는 서라였다. 후우우웅… 추운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그것은 여느 때처럼 따뜻하기는커녕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펑펑 쏟아지는 눈이 택시의 불난 화를 식혀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끌시끌한 소란스러움은 그치지 않았다.
“누구 살아있는 사람 없는지 봐봐!”
“어떡해! 어떡해!”
서라는 생각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어째서 바캉스 때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터지고 말았는지. 그때는 보다 많은 관계자들이 연루되어 있었지만… 관계자가 많든 적든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 위기에 처한 건 자명했다. 아니… 이건 과연 위기라고 해야 할까?
“…….”
서라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의 생명의 촛불은 이미 꺼졌다는 것을.
“오빠…!”
결국 서라는 이성을 잃고 택시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는 불길에 근처에서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한다. 마침 근처에 경찰서도 있던 지라… 경찰관들도 몇몇 우르르 몰려와 어지러워진 도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방해했다. 서라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타고 있을 그 인영을 떠올리면서 서서히 눈물이 떨어지려는 걸 느꼈다. 이윽고 글썽이던 눈망울에서 한 점의 눈물방울이 흘러나오려던 찰나였다.
“재미있는 운명이지 않느냐.”
뚝. 엄지와 검지가 맞부딪히는 경쾌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주변의 시끌시끌하던 차음과 사람들의 소음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아니, 순간적으로 멈춘 게 아니었다. 아예 완전히 멈추었다 확신해도 과언이 아닌 조용함이었다.
“아… 아….”
“아무리 피해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악재. 그런 악재를 달고 태어난 사람은 참으로 기고한 운명을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
사람들의 말림은 더 이상 없다. 서라는 흑백이 되어버린 이 공간에서 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되어 있을 뿐 뜨겁지 않았다. 이윽고 서라가 부수어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고 뒤집어진 차의 조수석에 타 있는 민국에게로 손을 뻗었다.
정신없이 그를 꺼내기 위해 애를 쓰던 서라는 결국 얼마지 않아….
“아….”
“…….”
눈물을 흘렸다. 꺼낸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지금 이곳의 불은 뜨겁지 않았지만, 결국 실제의 불은 뜨거웠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민국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그는 끔찍한 참상을 맞이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너무 슬퍼할 필요 없단다. 그는 원래 그런 운명이었으니.”
모든 것을 흑백처럼 정지시키고 조용하게 만들어버린 그녀, 흑설 공주는 천천히 도로의 차들 사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된 영문으로 이곳에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차피 서민국은 또다시 죽게 될 운명이었고 그 시련이 다시금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라는 것이었다.
“도와주세요….”
“…….”
“도와주세요… 제발….”
어느 덧 흑설 공주는 뒤집어엎어진 택시 앞에 당도해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서라를 보던 흑설 공주가 거슬리는 불꽃들을 한 손으로 싸악 치워버렸다. 놀랍게도 마치 마술처럼 순식간에 불길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무엇을 도와달라는 말이느냐.”
흑설 공주는 서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라의 얼굴은 어느 틈엔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한 사람을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구슬픔을 담고 있었다.
“어차피 그는 죽을 운명이야. 그 운명을 지금까지 연장했을 뿐이지. 오히려 죽음의 연장은 더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할 따름 아니겠느냐.”
서라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흑설 공주는 타버린 택시를 보면서 그 날의 일을 회상했다. 흑마법사가 민국을 두고 떠나기 전,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했던 소리를. 그녀는 또 한 번 들이닥칠 서민국의 위기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죽은 자는 떠나보내는 게 옳은 길이거늘.’
흑설 공주는 돌연 또 다른 옛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그녀도 흑마법사와 마찬가지로 몇 번이고 다른 인생을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행위였는지 이젠 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되살린다 한들 결국 소용이 없단 뜻이었다.
“도와주세요….”
“…….”
“도와주세요….”
서라는 어느 덧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흑설 공주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흑설 공주의 고개가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내려갔다. 서라는… 이미 요전에 본 적 없던 슬픔을 한데 모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
“…….”
“제발….”
가슴이 찢어져 나갈 것처럼 슬퍼하고 있었다. 흑설 공주는 가늘어진 눈으로 서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도 그를 살리고 싶단 말이느냐.”
“제발….”
흑설 공주는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서라의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가 실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행위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흑설 공주는 쉽사리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들어주길 바라겠지. 지금도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어디론가 떠나버린 흑마법사를 떠올리면서 흑설 공주는 그리 질문했다. 하지만 질문을 답해줄 수 있는 대상은 이곳에 없다. 고로….
“재밌는 제안을 하고 싶구나.”
“…….”
“사람을 살린다는 건,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어찌 보면 굉장한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단다.”
“…….”
“그리고 사람을 살린다는 건, 그 사람을 십년을 기다리든 백년을 기다리든 천년을 기다리든,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지. 나는 그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단다. 하지만.”
흑설 공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굉장히 따뜻하고 수려했지만, 한 편으론 모든 현실을 다 경험한 미소였다.
“실험해보고 싶구나. 과연 네가 그만큼 이 남자를 사랑하는지.”
“…….”
“대체 무슨 매력으로 이 남자에게 다들 그렇게 빠지는 것인지 말이란다.”
단순히 얼굴 때문에 빠진 것이라면, 자신의 실험도 얼마지 않아 포기하고 말겠지. 사랑이란 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감정이다. 적어도 그 감정에 얽매여서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게 더 못하는 행위란 뜻이었다. 흑설 공주는 궁금했다. 과연 이 강서라라는 아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할 수 있겠느냐? 대상은 오로지 너뿐으로, 너만이 이 남자를 살릴 수 있단다.”
부드러운 어조에 담긴 내용의 의미는 악마 그 자체였다. 하지만 흑설 공주는 진심이었다. 과연 서라의 마음이 어디까지가 진심일지 말이었다. 옛 추억도 되새길 겸… 그녀는 물었다.
“…….”
서라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거기까지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역시 그게 일반적인 생각일 거라 느꼈다. 하지만 흑설 공주의 예상을 깨듯 서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구나.”
흑설 공주는 한 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요염하게 눈물 자국이 나 있는 서라의 볼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짐을 등에 올리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싶구나.”
희생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앞으로 1분이 흐르면, 서민국과 너는 다시 과거의 때로 돌아가게 될 거란다.”
“…….”
“그리고 그곳에서 너는 그를 전철을 타고 가게끔 만들면 죽음은 피할 수 있단다.”
“…….”
“일단 그를 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테니, 한 번 해보겠느냐?”
서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흑설 공주의 테스트가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이 아니게 만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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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무려 12시간을 잠 ㅡㅡ....
늦어서 쏘리쏘리합니다!
다시 하루 2편 연재를 시작!
그리고 이번 편에서 세계관에 대해 어느 정도 나온 거 같군여.
진짜 메인 파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짧고 굵게 가겠슴다!
그리고 이후로 주인공 죽는 일은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