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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표본-264화 (264/369)

264화

'허, 맙소사.'

민국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슬슬 김민철이 짝사랑하는 서라를 포기할 레퍼토리가 보이던 즈음이었다.

그런 와중에 하필이면 서라와 김민철이 조우하고 말았다. 심지어 엄연한 여자 복장을 하고 있는 강서라와 말이었다.

비록 외모 아기자기했으니 둘째라고 쳐도… 오랜만에 여성스럽게 고무줄로 땋은 저 머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라, 이 사람은… 어라라."

"……."

이윽고 김민철이 술에 취한 흐트러진 눈빛으로 강서라를 주시하였다. 서라는 눈동자만 움직여서 민국을 곁눈질하였다. 이제야 서라도 민국이 누구를 만났는지 알고는 대충 상황을 판단한 상태였다.

"강서…."

"민철아 위험해! 피해 새꺄!"

막 강서라의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던 김민철이 소리를 내뱉는 순간이었다. 민국이 완고하게 외침을 내지르면서 김민철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딱하고 때려버렸다. 길거리를 지나던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볼 정도로 강한 소리였다. 하지만 김민철은 민국의 의도대로 쓰러지지는 않고….

"악! 씨발! 왜 때리…!"

"민철 새끼야! 또 위험해! 또 피해 새꺄!"

강력한 욕질과 함께 또다시 민철의 뒤통수에 강한 일격을 날리는 민국이었다. 퍽! 퍽! 한대로 기절하지 않자 기절할 때까지 쉬도 새도 없이 손바닥으로 구타한다.

지속되는 구타의 일격에 양손으로 가드하던 김민철은 진짜 기절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무의식적으로 느꼈는지, 얼마지 않아 털썩 제자리에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기절한 김민철을 자신과 함께 쳐다보는 서라의 시선을 느꼈다.

"허억, 허억."

"……."

강서라의 눈빛이 민국에게로 돌아간다. 설마 하필이면 김민철과 만나고 있었을 줄이야…. 매우 급급해진 눈동자로 민국을 올려다보는 서라였다.

"행님…! 지 어떡하지여!"

"야 인마! 그러니까 빨리 가라고 했잖아!"

"의잉……! 하지만 행님이 다른 남자랑 놀고 있는데 내가 질투가 나겠음여 안 나겠음여! 부들부들!"

마치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소리를 하면서 민국과 서라는 서로 고뇌했다. 쓰러진 김민철…. 이 녀석이 일어나면 과연 강서라와 조우했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인지 못하고 있을까. 만일 인지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엄청 큰 일이 될 지도 몰랐다.

'그 양반에게 부탁해서….'

민국은 돌연 흑설 공주를 떠올렸다. 하지만 머지 않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으아아!"

애초에 그 양반에게 부탁하기에는 좀 거시기 했던 것이, 흑마법사처럼 민국의 팬이 아닌 지라 무언가 엄청난 조건을 요구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그 조건은 필시 민국의 주변 관련 인물이나 자신에게 무지막지한 피해를 줄 게 자명했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었다.

'후, 어쩌면 좋냐.'

한참을 고뇌하던 민국이었다. 이윽고 서라를 돌아보던 민국이 자신에게 건네려던 털장갑을 보면서 말했다.

"그거 그냥 너 끼고 가라."

"읭? 하지만 행님 건데여?"

"너 아까 전에 올 때 장갑도 안 끼고 왔더만. 그냥 너 끼고 가. 나는 주머니 속에 손 집어넣으면 돼."

"으으잉."

"그리고, 김민철 이 자식은 내가 어찌어찌 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제자리에 쓰러진 김민철을 업는 민국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쳐다보니까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윽고 서라가 염려하는 눈빛으로 민국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온니찡…. 어찌 보면 지 때문에 생긴 피해인데 혼자 감당하시기에는…."

"어이구, 괜찮으니까 빨리 가 이 로리 아이야."

그렇게 가벼운 핍박과 함께 민국은 김민철을 업은 상태로 몸을 돌렸다. 서라는 되레 돌려주다 말게 된 털장갑을 손에 든 채로 민국의 등을 말없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

스윽하고 천천히 자신에게 선물로 주는 털장갑을 내려다보는 서라였다.

*  *

"이놈이 몰라야 할 텐데."

김민철을 데리고 근처 술집으로 온 민국이었다. 대뜸 한 남자가 자기만한 남자를 업고 술집으로 들어오자 순간 이상하게 취급하는 모습이었으나, 민국은 대충 넘어가고 술을 시켰다.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마라 기억하지….'

"끄응…."

"깼냐."

온갖 저주를 기절해 있던 김민철에게 퍼붓던 민국이었다. 술집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김민철이 서서히 의식을 차리는 듯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민국은 그런 김민철에게 한 마디 하고는 태연한 척 직원이 가져온 술을 술잔에다가 담았다. 쪼르르륵…. 이윽고 정신을 차린 김민철이 뒤통수를 어루만지면서 물었다.

"뭐지 여긴… 우리 아까 밖에 있지 않았나…."

"한 시간 전에 밖에 있었지. 너 술기운 때문에 기절해가지고 여기서 혼자 술만 주구장창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거짓말을 치면서 민국은 내용물이 담긴 술잔을 김민철에게 건넸다. 김민철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비비다가 손을 내밀면서 거절했다.

"아씨 잠깐만… 머리가 너무 아픈데… 뭐지? 아까 뭔 일 있지 않았나…."

"뭔 일은 무슨 뭔 일이야. 너 나한테 부축 받다가 갑자기 혼자 쓰러질 때 땅바닥에 뒷머리부터 박았잖아. 그거 때문에 아픈 걸 거다."

"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됐고 빨리 마셔 인마. 술 식겠다."

그리고 술을 마시길 계속 재촉하자 결국 얼마지 않아 내용물을 입에 담는 김민철이었다. 꿀꺽 꿀꺽…. 아주 시원하게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에 민국은 다행히 까먹은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맛 괜찮지? 이 동네 술집 내가 여기 딱 한 번 와봤었는데 괜찮은 것 같더라."

"크으… 괜찮긴 하네…."

2차로 마시는 술이었고, 얼굴도 꽤나 홍조가 올라 있는 김민철이었다. 아까 전에 워낙 술 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 까먹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김민철은 강서라에 대해서 아예 언급을 안하고 있었다. 아니,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더 마셔라 더. 아예 배터질 때까지 더."

"어… 그래. 근데 너무 빨리 주지 마라. 나 또 기절한다."

"너 기절하라고 주는거야 인마."

그렇게 두 사나이 간의 오붓한 술자리가 오갔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지냈냐."

"…그걸 꼭 알고 싶나. 어차피 내가 말 안 해도 대충 알 거 아니지 않나."

민국의 질문에 그리 대답하는 김민철. 민국은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포기해 자식아. 어차피 걔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먼저 연락받지 않아도 알아서 연락할 애야."

"하아… 정말 안타깝네."

아무래도 김민철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모르는 어마무지한 사실…. 강서라가 실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이놈은 진짜 서라가 남자였어도 상관없었다는 건가.'

그만큼 서라의 외모에 흠뻑 빠졌던 모양이다. 하기사 서라 정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남자라고 해도 어지간히 동성 애들이 꼬였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외모 면에선 퍼펙트한 아이였으니까.

"그래… 포기해야겠지."

"그래 포기해라."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면서 충고하는 민국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넌 왜 서라 씨가 여자인 거 말하지 않았나."

"…쿠웩!"

'콜록 콜록'거리면서 사례 들린 목을 다듬는 민국이었다. 이윽고 진정된 모습으로 민국이 정면의 김민철을 올려다본다. 민철은 다소 진지해진 눈빛으로 민국을 마주하고 있었다.

"너 설마…."

역시 한 대 맞은 거 가지고는 기억을 잃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네 하는 행동 보니 확신이 생기네. 서라 씨 여자지?"

"……."

"목소리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감이 온다."

김민철의 눈빛은 다소 진지했다. 어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실상 민국은 서라를 보호하기 위해 김민철을 속인 셈이었으니까.

'큰일이군.'

*                                    *결국 다음 날, 3자 대면이 진행되었다. 물론 실제로 만나서 3자 대면을 하는 건 아니었다.

몇 개월간 남몰래 짝사랑해온 김민철이었기 때문에 그 근성을 감안하면 실제로 만나는 건 영 좋지 못할 것 같았다. 고로 스카이 라이프를 통해서 세 명이서 3자 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3자 대면의 참가자는 강서라, 서민국, 김민철.

"후우, 결국 이렇게 되었구만."

"……."

"서라야.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스카이 라이프의 마이크에 대고 한숨과 함께 쏟아내는 민국의 말이었다. 이미 민국에게 일대일로 자초지종 사정을 들은 서라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스카이 라이프 방에 접속해 있는 민철의 이미지를 보면서 서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여…."

"네. 안녕하세요 서라 씨. 목소리는 속인 게 아니었네요."

"읭…."

서라는 어찌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자신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들이미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예쁜 나머지 남자들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서 접근을 못하는 타입이라고 할까. 그래서 서라는 김민철이 한 편으론 부담스러웠다. 이윽고 민철이 부드럽게 물었다.

"여자 분이신 건 맞죠? 제가 본 게 거짓이 아닌 이상."

"네 맞아여…."

서라가 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비제이 행세를 하고 있었는지는, 민국에게 이미 사정을 들은 김민철이었다. 여자로서 시청자들에게 막무가내로 인기 세레를 얻는 건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서라의 비제이 의식이 김민철의 마음에 또 한 번 들게 했다.

"서라 씨. 기왕 여자인 걸 알게 되었으니 말씀드리는 거지만, 혹시 제가 파뿌리 TV에 서라 씨가 여자인 걸 밝힌다느니 그런 짓은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주세요. 애초에 인간적인 기본 도리는 저도 지키는 사람이니깐요."

"넹…."

"다만… 한 번만 꼭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 많은 걸 바라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꼭 만나주세요."

"안 돼."

"민국이 넌 빠져라. 친구 사이에 거짓말이나 쳤던 놈이."

"빠지긴 뭘 빠져 인마. 안 되는 건 안 돼. 어디서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로리를 키우려고 해? 그거 범죄다."

"…나이는 사랑과 별개라는 소리 못 들어봤나."

김민철의 애정 행세는 계속 이어졌다.

"서라 씨.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만나고 결정해주세요. 그때도 저에게 별로 호감이 없으면 그만두겠습니다. 예? 부탁입니다."

"의잉…."

서라는 진심으로 난감해했다. 이윽고 스카이 라이프의 민국 아이디를 보는 서라였다. 이윽고 서라가 묻는다.

"지 그럼 잠시… 온니짱이랑 대화 좀 나눠도 될까여?"

"예? 서민국 저 새끼랑요?"

"이응… 그래도 좀 의논해야 할 거 같음여."

애초에 친 동생도 아닌데 의논을 하겠다고 하니 김민철은 '끙'하면서 머리가 아파온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서라가 하는 말이니 별 수 있으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하는 김민철이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여…."

그리고 일대일 스카이 라이프 방을 만들어서 대화를 나누게 된 민국과 서라였다. 서라가 운을 띄운다.

"어떡하지여?"

"하아, 저 녀석 참."

"온니찡. 여자인 것도 들킨 상태인데 안 나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여?"

"흐음, 그래도 김민철 저 자식이 내 친구인데 그럴 놈은… 아니, 그럴 놈이니까 내가 저 놈에게 널 소개시켜주지 않으려고 했던 거지."

김민철이 여자 관계가 불신한 놈은 아니었다. 오히려 민국보단 그 편은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를 다루는데는 정말 잼병인 녀석이라…. 이윽고 민국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서라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아무리 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결국 네 의견도 중요하니까."

"의잉."

서라는 멘붕이었다.

"한 번 만나긴 해야 할 거 같기도 해여…. 온니찡이랑 지가 속인 것도 있어서…."

"이런 착한 녀석."

============================ 작품 후기 ============================

쪽지로 저에게 스폰이 왔더군요.

그 스폰을 작품 후기에 장식하려고 합니다. 아래에 스폰 내용입니다.

- 두둥! -

아직도 작가의 글을 그냥 보고만 있으십니까?

"크윽! 독자들이 내 글을 그냥 보고만 있어! 왠지 스토킹 당하는 거 같아 숨통이 조여!"

단순히 쳐다보기만 하면 그것은 일방적인 스토킹!

하지만 그곳에 따뜻한 정성의 손길이 오간다면!

"어엇! 추천 감사합니다! 갑자기 조이던 숨통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어! 이 사람들...! 알고 보니까 다 착한 내 독자들이었던 거야!"

그것은 사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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